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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72화 (71/94)

72화

이미 넘어왔습니다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할수록 몸에 열이 올랐다.

입술을 맞물리지 않으면 눈빛이 맞물리고, 눈빛을 맞물리지 않으면 입술을 맞물리면서 서로에게 적셔 들었다.

“난 네 거야. 너한테만 반응하는 네 거.”

“강현 씨….”

“그러니까 너도 내 거만 해. 누가 뭐래도 넌 내 거니까.”

집안의 반대가 부담스러운지 지아의 눈빛이 걱정으로 가득 차자, 강현은 그녀의 눈에 입을 맞췄다.

“걱정 마. 다 내가 해. 내 옆에만 있어.”

강현은 지아의 안을 빈틈없이 파고들었다.

* * *

출근 시간, 뻔뻔하게 미술관으로 출근을 한 경옥을 보고, 직원들이 놀라서 입을 벌렸다.

분명히 차 회장 사람들이 와서 관장실을 폐쇄시키고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인사를 못 하고 있는데, 경옥은 어설프게 인사를 하는 직원들을 노려봤다.

“나 처음 봐? 지금 인사 제대로 안 한 직원들… 명단 적어 내.”

그 말에 직원들 모두 경옥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오셨습니까?”

인사를 제대로 받고서야 기분이 좀 나아진 경옥은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경옥이 사무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사무실 문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뭐야?”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라는 회장님 지시가 있었습니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더더욱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셔서….”

그 순간, 경옥이 경호원의 따귀를 때렸다.

“어디서 건방지게? 비켜! 안 비켜?”

따귀를 맞고도 경호원이 문 앞을 지키자, 경옥은 다시 또 그의 뺨을 때렸다.

“비켜!”

“죄송합니다.”

경옥이 또 뺨을 때리려고 하자, 강현이 나타났다.

“그만하시죠.”

“……?”

경옥은 강현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곧 제 아내가 이끌어가게 될 곳인데… 운영 상황이 어떤지 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뭐, 뭐야? 여기를 누가 운영해? 누구 마음대로? 여긴 내 거야.”

경옥이 문을 열려고 문고리에 손을 올리는 순간, 강현이 입을 열었다.

“감방에 들어가야 얼씬거리지 않으려나?”

“뭐, 뭐?”

“살인 미수, 협박, 주거 침입, 폭력, 살인 교사, 공금 횡령… 자세한 설명도 필요한가?”

설명은 필요 없었다.

강현이 읊을 때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으니까….

다 제가 한 짓이 맞았다.

경옥이 오기인지 뭔지 아직도 문고리를 잡고 서 있자, 강현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병현이 죄도 좀 읊어줘야 그 손을 놓을 건가? 성추행, 마….”

“그만.”

경옥은 다른 직원들이 들을까 봐 얼른 강현의 말을 막았다.

지금도 어디에서 사고 치고 있을지 모르는 병현이 소문을 타서 조사라도 받게 되는 날엔… 그동안 숨기고 막아왔던 그의 죄가 드러나게 되는 거였다.

그럼 안 됐기에 경옥은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았다.

“내가 이대로 물러날 거 같아?”

“발악할수록 내 자비는 줄어들고, 죄만 늘어난다는 거… 명심하시죠.”

경옥은 이를 악물고 강현을 노려봤다.

“용서 못 해.”

“그건 내가 할 말이고. 난 당신한테 용서받을 일이 없거든. 그 역겨운 얼굴 더 보기 싫은데… 이만 나가주시죠?”

경옥이 움직이지 않자, 강현은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눈짓했다.

경호원들이 팔을 잡자, 경옥은 그들을 거칠게 뿌리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더럽게.”

경옥은 직원들의 눈을 의식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당당히 미술관을 나갔다. 아주 꼴사납게.

그러고는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비서실장이 차 회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데, 회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채영이 들어왔다.

“아버님,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차 회장이 호통을 쳐도 채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아버님, 저 할 얘기 있어요.”

차 회장은 막무가내로 나오는 채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병현이 얘기라면 듣고 싶지 않다.”

“저 임신했어요. 곧 아버님 손주가 태어난다고요.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쫓아내실 수가 있으세요?”

“네 시어머니가 시켰냐?”

“…….”

“진짜 네 배 속에 있는 애를 위한다면, 병현이부터 정신 차리라고 해. 부모 자격도 없이 부모 되는 게 자식한테 제일 못할 짓이니까.”

“아버님….”

“왜?”

“병현 씨는 정말… 저도 감당이 안 돼요.”

“네가 데리고 갔잖아. 네가 알아서 해.”

“아버님!”

“큰애를 봐라. 강현이 달라진 거.”

“네? 큰애요?”

“네 형님.”

채영은 지아 얘기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하며 눈을 치켜떴다.

“저한테 형님이 어디 있어요? 청선그룹이랑 선보게 할 거라면서요?”

“네 시어머니가 망쳤잖냐. 결론적으로 보면 잘 망친 거지만….”

“아버님!”

채영이 소리를 빽 지르자, 차 회장이 인상을 구겼다.

“어디에서 소리를 질러? 그렇게밖에 못 배웠냐?”

“아버님!”

“아무튼 너도 이렇게 찾아오지 말고 병현이한테 전해.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 보이지 않으면 용서는 없다고. 더 사고 치면 수습은 없다고.”

“그래서 지금… 병현 씨 회사에 복귀 안 시켜주시겠다는 거예요?”

“뭘 잘했다고 회사에 복귀를 시켜?”

“저 그럼 이혼할래요.”

쉽게 이혼을 말하는 채영을 보며, 차 회장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허, 뭐야?”

“제가 왜 쓰레기를 치워요?”

“쓰레기?”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의심하는데, 채영이 쐐기를 박듯 다시 말했다.

“아버님 아들 쓰레기잖아요.”

“남편한테 쓰레기?”

“네. 쓰레기요. 그럼 아니에요? 아버님 지금 저한테 쓰레기 떠넘긴 거잖아요. 성문그룹이 없는 병현 씨가 쓰레기가 아니면 뭔데요?”

채영의 말하는 본새를 보고 차 회장은 혀를 끌끌 찼다.

“참… 비교를 안 할래도 누구랑 절로 비교가 되는구나.”

“누구요?”

“됐다. 너도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

“아버님 병현 씨 회사 복귀 안 시켜주시면 저 이혼해요. 둘째 아들까지 이혼남 만들고 싶은 거 아니시면 그 사람 빨리 복귀시켜주세요.”

“나가!”

“아버님!”

채영이 나가지 않고 버티고 서 있자, 차 회장은 비서에게 호출했다.

“채영이 나간대. 얼른 데리고 나가.”

채영이 인사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가자, 차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으이그….”

그 순간,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차 회장은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차 회장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탁탁 쳤다.

“왜 이렇게 안 받아? 일부러 안 받나?”

차 회장은 전화를 끊고 다시 걸었다.

이번에도 상대가 한참 동안 전화를 받지 않자 차 회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거참… 내 전화도 안 받는 건가?”

그 순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언제 심기가 불편했냐는 듯 차 회장은 반색했다.

“오랜만입니다, 사돈.”

* * *

“자네가 여긴 왜 온 건가?”

강현이 집으로 들어오자, 건명은 문전 박대했다.

이때,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난 희숙이 강현을 끌고 소파로 데리고 갔다.

“잠깐만 있어요. 내가 빨리 가서 차 내올게.”

그런 희숙을 건명을 찌릿 째려봤다.

“당신이 문 열어줬어?”

“그럼, 사위가 왔는데 안 열어줘요?”

“누가 사위야?”

“누구긴 누구야? 당신은 눈이 어떻게 됐어요? 여기 번듯한 차 서방이 안 보여요?”

희숙이 두둔하자, 건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현을 노려봤다.

“난 자네랑 할 얘기 없네.”

그 순간, 강현이 건명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강현의 태도에 건명도 희숙도 놀라 입이 벌어졌다.

뻣뻣하기로는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1위를 할 것 같은 강현이 무릎을 꿇은 거였다.

희숙은 얼른 강현의 팔을 끌어당겼다.

“왜 이래? 왜 무릎을 꿇어?”

“아닙니다, 장모님.”

“장, 장모님?”

그러고 보니 강현에게 장모님 소리도 처음 듣는 것 같자, 희숙은 와중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고 우리 사위!

요즘 지아한테 끔찍이 잘한다는 얘기도 들어서 안 그래도 예뻐 죽겠는데, 장모님이라고까지 부르니 살짝 서운했던 마음도 사르르 풀렸다.

당장이라도 씨암탉을 잡아서 저 예쁜 입에 넣어주고 싶구만, 건명이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자 희숙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여보….”

이때, 건명이 강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런다고 내가 내 딸을 자네한테 보낼 것 같나?”

“지아는 저한테 이미 넘어왔습니다.”

“뭐, 뭐야?”

건명은 어이가 없어 눈을 키웠고, 강현은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제 뜻을 밝혔다.

“오늘은 장인어른, 그리고 장모님. 두 분을 저한테 넘어오게 하려고 왔습니다.”

“지금 장난하나?”

“저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가 왜?”

“지아 저보다 좋은 남자 못 만납니다.”

강현의 말에 건명은 뒷목을 잡았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왜 못 만나? 내 딸이 뭐가 모자라서 못 만나?”

“지아가 모자라서 못 만난다는 게 아니라, 제가 지아한테 제일 좋은 남자라는 뜻입니다.”

“허! 지금 자네 잘났다고 자랑하려고 왔나?”

“네. 잘난 놈한테 잘난 딸 보내셔야죠. 지아 다른 어설픈 놈들한테 절대 못 줍니다. 이미 저한테 빠져서 다른 데 가지도 못할 거고요. 눈이 높아졌거든요.”

“뭐? 눈이 높아져? 다른데 못가?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자네가 그렇게 잘났어?”

건명이 부들부들하고 있는데, 희숙이 그를 어깨로 툭 밀었다.

“잘났잖아요. 얼마나 잘났어. 우리 차 서방.”

이미 강현에게 넘어간 희숙을 건명은 눈빛으로 제압했다.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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