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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68화 (67/94)

68화

울어요?

“아… 떨려.”

심호흡을 한 영지는 긴장도 풀 겸, 시간도 때울 겸 휴대전화 게임을 켰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게임을 하다가 문득 30분이 거의 다 됐다는 걸 확인한 영지는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 거울을 봤다.

얼굴 상태를 점검하고, 영지는 주위를 둘러봤다.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입구 문이 열리자 영지는 눈을 크게 떴다.

“왔나?”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헐크 님인가 기대를 하고 있는데, 에? 저 사람은….

영지는 치킨집 아들 지석이 들어오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 사람은 여기 왜 왔어?”

순간 지석과 눈이 마주칠 것 같자, 영지는 얼른 뒤로 돌았다.

“헉!”

저도 모르게 돌아선 영지는 스스로 피하고도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피한 거지? 피할 이유는 없잖아?”

영지가 다시 뒤로 돌아서는데, 그 순간 지석과 눈이 마주쳤다.

“어?”

“아, 안녕하세요.”

영지는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지석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그도 다른 곳을 두리번거렸다.

영지는 다시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차가 막히나?”

그 순간, 헐크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지는 잠깐 기다렸다가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저 도착했는데, 어디 계세요?”

“아, 도착하셨어요? 저 앉아 있는데, 저 잠깐 일어날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지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저 일어났…?”

“저도 지금 서 있…?”

지금 카페에 서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영지와 지석.

영지와 지석은 서로 눈을 마주친 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헐크 님?”

“소피 님?”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헐크 님?”

“소피 님?”

동시에 “헉!”소리를 낸 두 사람이었다.

“아니죠?”

“아니죠?”

“맞네.”

“맞네요….”

보고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지석은 소피 님… 아니, 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지석은 다시 한번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소피 님?”

“저라고요. 헐크 님!”

영지가 대답을 끝내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 지석은 그제야 힘겨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소피 님?”

“네, 소피입니다.”

지석의 입이 곧 울 것 같은 모양이자, 영지는 인상을 구겼다.

“울어요?”

“제가 왜 웁니까?”

말은 그렇게 해놓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지석을 보며 영지는 미간을 좁혔다.

“표정이 왜 그래요? 사람 앞에 두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석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지석은 입을 몇 번 더 삐쭉이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하고는 힘겹게 입을 뗐다.

“아, 안녕하세요. 문지석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그렇게 어렵냐?

영지는 살짝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네… 저는 채영지입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지석과 영지는 마주 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아주 긴 적막이 흘렀다.

누가 먼저 입을 열지 못한 채, 자주 얼굴 마주칠 사이니 대놓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석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석이 전화를 받겠다고 양해를 구하려고 하는 순간, 영지의 휴대전화도 울리기 시작했다.

* * *

지아가 잠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강현은 병실 문을 닫고 나왔다.

강현이 많이 지쳐 보이자, 기순이 그를 위로했다.

“괜찮을 거야.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놀란 거야?”

강현은 자꾸만 도망치던 치한이 떠올랐다.

치한을 따라갔던 영준은 결국 그를 놓쳤다고 했다.

영준은 그가 차를 타고 도망가는 바람에 잡지 못했다며, 차량번호와 함께 치한이 지아에게 다가가려고 했었다는 얘기를 해주고는 약국으로 떠났다.

지아가 일부러 임치한 앞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절할 정도로 몸을 떤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좀 전에 두 사람의 모습을 봐서는 지아는 어릴 때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치한을 피해 도망을 쳤다고 봐야 정황상 맞았다.

길을 잃어버렸던 거라면, 그렇게 치한을 보고 떨 수는 없는 거였다.

강현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때 지석과 영지가 급하게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지아는요?”

“괜찮아?”

일이 다 마무리됐는데, 굳이 찾아온 지석과 영지였다.

심지어 둘이 같이 나타나다니….

왜 둘이 나타나냐는 표정으로 강현과 기순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어떻게 둘이 같이 와?”

“어?”

지석이 대답을 못 하자, 영지는 대충 둘러댔다.

“이 앞에서 만났어요. 지아는요?”

“지금 자.”

영지가 문을 열려고 하자, 강현이 막아섰다.

“나중에. 깨우지 말고.”

“아, 네….”

강현에게 제지를 당하자, 영지는 입을 삐쭉이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그제야 기순이 함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어? 사장님도 계셨네요?”

“강현이랑 같이 발견했거든.”

기순은 지석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소개팅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안 와도 된다니까 굳이 왔어?”

“어? 언제 그랬어? 급하다며? 빨리 오라며?”

“누가? 강현이 네가 불렀니?”

“아뇨.”

“넌 오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왜 와? 소개팅한 여자가 마음에 안 들었어?”

“어?”

지석은 영지의 눈치를 살폈다.

강현은 그저 치한을 봤다는 얘기와 함께 내일 그에 대해 더 알아보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당장 오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지석은 영지와의 소개팅 자리가 불편해 전화를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난 거였다.

영지도 물론 마찬가지였고.

서로 굳이 올 필요는 없었는데, 좋은 핑계가 생긴 거였다.

이렇게 금방 들킬 줄은 몰랐지만.

지석과 영지는 뻘쭘하게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는 등을 돌려 섰다.

그때, 강현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지석을 바라봤다.

“난 병원에 더 있어야 되니까 넌 어머니 모시고 들어가.”

“어?”

“지아는 계속 잘 거 같으니까, 친구도 가고.”

“네.”

진짜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는 게 민망해 지석과 영지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 * *

“정말 지아를 봤어?”

“그랬다니까.”

치한은 지아가 소리 지르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 지지배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도망쳐 나오긴 했는데, 분명히 지아였어.”

병희는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왜 하필 이때 나타나? 진짜 도움 안 돼. 차강현한테 이미 거짓말은 다 해놨는데, 왜 이 타이밍에 지아 그게 나타나냐고. 안 죽고 여태 살아 있었다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건 자기 생모랑 너무 가까이 살더라고.”

“하… 진짜 짜증 나….”

병희는 불안함에 연신 손톱을 뜯었다.

“아빠, 이거 빨리 일을 진행해야겠는데? 죽었을 줄 알고 여유를 좀 부렸는데… 안 되겠어.”

“이걸 계속하게? 그러다가 차강현이가 지아를 찾으면?”

“여태 못 찾은 걸 어떻게 찾아? 다만 그게 살아있다는 게 좀 불안하다는 거지.”

“하긴… 아, 이제 지아 생모한테는 돈 못 받겠네.”

“그게 아쉬워? 그깟 푼돈이? 아빠, 우리는 무려 대 성문그룹의 후계자인 차강현을 뜯어 먹을 거야. 그깟 푼돈에 얽매이지 마.”

“그 여자 돈도 쏠쏠하긴 했는데….”

“아빠! 다시는 거기 가지 마. 걔 생모가 눈치채면 골치 아프니까.”

“알았어. 에이, 빌어먹을 년. 끝까지 도움도 안 되고 재수 없지. 근데 꼴에 잘사는 것 같더라? 때깔이 아주 좋아졌어.”

“뭐? 때깔이 좋아?”

“그래, 좋더라니까. 앞치마를 하고 있는 거로 봐서는 그 근처에서 일을 하는 거 같은데… 식당을 하나?”

“남의 집 종업원 정도 하겠지.”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니까 그러네.”

“그래? 한 번 가볼까?”

“가지 말라며?”

“아빠만 안 가면 되잖아? 지아 생모가 내 얼굴은 모르니까.”

“하긴… 근데 가서 뭐 하게?”

“아빠, 걔가 없이 살면 엮여서 골치 아프겠지만… 잘살면 달라지는 문제 아니야?”

“으이그, 걔가 잘산다고 우리한테 돈을 주겠어?”

“아빠! 안 주면 주게 해야지.”

“……?”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는 듯 쳐다보는 치한을 보며, 병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내가 하는 대로만 따라 해.”

* * *

똑똑-

꽃집 문을 두드린 기순이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바쁜가?”

“사장님?”

지아가 아는 척을 하자, 기순은 얼른 꽃집 안으로 들어갔다.

“더 쉬지 않고, 일을 나온 거예요?”

“안 그래도 강현 씨가 못 나오게 해서 이제 겨우 나왔어요. 근데 이건 다 뭐예요?”

기순은 양손 가득 들고 있는 짐을 들어 보였다.

“아, 이거? 별건 아니고….”

기순은 냄비 하나와 보냉 가방을 테이블에 위에 올려놨다.

“사골을 좀 끓였는데, 내가 또 많이 끓이고 말았네?”

“네?”

“이 냄비에 든 거는 지금 폭폭 끓여서 먹고, 이 가방에 든 거는 내가 소분을 했어요. 하나하나 꺼내서 녹여 먹기 편하게. 냉동실에 넣어두고 두고두고 먹어요. 가만 보니까 혼자 일한다고 매번 점심을 대충 먹는 거 같더라고. 잘 먹어야 돼요. 그래야 어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거야.”

“이걸 저한테 다 주시는 거예요?”

“왜 너무 많나? 너무 많으면, 강현이랑 나눠 먹어요.”

“아… 네. 그럴게요.”

“어제 벌벌 떠는데 어찌나 안쓰러운지… 내 딸이랑 나이가 같아서 그런가… 딱 내 딸 보는 거 같아서 맘이 다 안 좋더라고.”

지아가 의문 가득한 눈을 껌뻑이자, 기순이 아차 싶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 하은이 말고 다른 딸.”

“아, 맞다. 딸이 또 있다고 하셨죠? 저랑 나이가 같아요.”

“네.”

“근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디 멀리 있나 봐요?”

“그게… 지금 찾고 있어요.”

“네?”

“잃어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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