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찾았다고요?
“다른 이유여도 오는 건가? 내가 부르면?”
강현의 물음에 지아는 새침한 표정으로 입을 삐쭉였다.
“어떤 이유인지 들어보고요.”
“자자.”
“네?”
“어젯밤에 못한 거 해야지.”
지아는 찌릿 강현을 째려보고는 영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입모양으로 ‘미쳤어요?’라고 하는데, 강현의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어, 미쳤어. 당신한테.”
“어머, 진짜 미쳤나 봐.”
지아가 가슴을 콩 때리자, 강현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제 입술에 가져다 댔다.
쪽-
지아의 손목에 입을 맞춘 강현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지아가 영준의 눈치를 보며 손을 빼내려고 하자, 강현은 그녀의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지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지아가 작게 신음과 가까운 숨을 내쉬자, 강현은 혀로 그녀의 손가락을 야릇하게 놀리며 말했다.
“같이 있고 싶어. 이 이유면 되나?”
강현의 말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놔줘요.”
손을 놓아주자마자, 지아는 부끄러워서 얼른 방을 나갔고, 강현은 그 모습이 귀여워 혼자 웃고 있는데…퍽! 윽….
영준이 자는 척을 하면서 옆구리를 때렸다.
이건 분명 일부러 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 강현은 똑같이 영준을 때렸다.
그러자 영준이 또 퍽! 강현도 퍽! 영준도 퍽! 아침부터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 * *
“아침 먹어요.”
콩나물국을 끓인 영지가 아침상을 다 차리고 부르자, 강현도 영준도 방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욕실을 사용한 지아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면서 나오자, 강현은 미간을 좁혔다.
“남의 집인데 왜 이렇게 익숙해?”
“친구 집이잖아요. 그리고 나 여기 잠깐 살았거든요. 요즘도 자주 와서 자기도 하고.”
그 말이 신경 쓰여 인상을 구긴 강현은 지아가 맞은편에 앉자 자리를 옮겨 그녀의 옆에 앉았다.
유난 떠는 강현이 꼴 보기 싫어 영준은 고개를 박고 콩나물국을 떠먹었고, 다들 식사를 시작했다.
“지아야, 오늘 일 끝나면 같이….”
영지가 말을 하는데, 강현이 말을 끊었다.
“오늘 은서 나랑 약속 있는데?”
“아, 그래요?”
“그리고 어제부터 말이야… 왜 자꾸 은서한테 지아라고 하는 거지?”
강현에게 설명도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지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걸 깨달은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지아가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 지금 말을 하는 게 맞는 건가 당황하고 있는데, 영지가 대신 대답했다.
“얘 본명이요. 우린 본명으로 부르거든요.”
“본명이 따로 있었어?”
“네….”
“지아… 본명이 지아?”
지아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인가?
강현이 이름을 곱씹고 있는데, 영준이 맘에 안 든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쪽도 이제 은서라는 이름 말고 지아라고 불러요. 그게 얘 진짜 이름이니까.”
저보다 지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게 언짢은 강현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제는 반말하시더니, 술 깨셨나 보네요.”
“반말이 편하다면 반말로 할까? 어차피 나보다 한 살 어리잖아?”
“허!”
강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그러는 그쪽은 이름이 뭡니까? 다들 오빠라고만 하니… 나도 오빠라고 할 수도 없고.”
“채영준.”
“저는 채영지요.”
잽싸게 영지까지 이름을 말하자, 강현은 고개를 기울였다.
“성이 채… 채영준, 채영지?”
강현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그때, 영지가 국을 뜨려다 말고 강현을 바라봤다.
“저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뭐지?”
“정말 지아랑 다시 결혼할 거예요?”
“물론.”
“그럼, 그 시어머니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
영지가 직접적으로 묻자, 지아가 놀라서 그녀를 말렸다.
“야, 그 얘기를 왜 꺼내.”
“왜? 당연히 꺼내야지. 너랑 다시 결혼을 하겠다잖아. 근데 이대로 결혼하면 어떻게 되겠어? 또 당할 순 없잖아. 너도 당하지만 말고 이젠 다 말해. 너 그때 녹음한 것도 있잖아. 들려줘.”
“야!”
“녹음을 했어?”
“네, 녹음한 거 저도 갖고 있어요.”
“어디 있는데?”
강현이 관심을 보이자, 지아는 얼른 영지에게 눈치를 줬다.
“야, 무슨 소리야? 아니에요. 그냥 밥 먹어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얘 또 이러는 거 봐요.”
영지는 답답한 마음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아랑 다시 결혼하실 거면, 그 시어머니부터 어떻게 좀 하세요. 이대로는 지아만 또 힘드니까.”
“친구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절대.”
강현은 지아의 손을 꼬옥 잡고 눈을 바라봤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강현은 지아가 영지의 방에서 화장을 할 동안 어색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데 그의 눈에 액자가 하나 들어왔다.
“어?”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액자로 향했다.
액자를 가까이에서 보는 순간, 강현은 깜짝 놀랐다.
멀리서 긴가민가했는데, 선명하게 쓰여져 있는 ‘참빛보육원’이라는 글자에 놀라고, 그 사진 안에 있는 자신과 지아, 그리고 채영준, 채영지….
“……?”
강현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아가… 지아가… 윤은서가 지아?”
영준과 영지가 은서를 지아라고 부르던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지아가 꽃을 좋아했던 것처럼 은서도 꽃을 좋아했다.
그리고 생일날, 지아의 생일날 집으로 배달된 프리지아 꽃. 은서가 보낸 꽃이었다.
마침 지아의 생일날, 지아가 좋아하는 프리지아를, 은서가 미리 예약을 해둔 꽃이라고 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그리고… 그리고… 아, 갑각류.
지아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보육원에서 큰일 날 뻔했던 적이 있었다. 윤은서도… 갑각류 알레르기를 갖고 있었다.
퍼즐이 자꾸만 맞춰지자, 강현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지아는 죽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실종이 됐고, 발견되지 않은 거였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했는데, 윤은서가 지아였다고?
뭐지? 지아의 양아버지는 알고 있는 건가?
그 순간, 지석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강현은 멍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어.”
- 본부장님, 굉장한 소식이요. 임치한 씨한테 지금 연락이 왔는데요.”
“뭔데?”
- 지아 씨를 찾았다고 합니다.
강현은 잘못 들었나 싶어 지석에게 다시 물었다.
“뭐? 누굴 찾아?”
- 놀라셨죠? 지금 막 임치한 씨한테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아 씨를 찾았다고요. 실종된 줄 알았던 딸을 찾았다고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찾았다고?”
- 네. 안 기쁘세요? 아, 너무 놀라셔서 그러세요?
“아니, 우선 끊어 봐.”
강현은 불안한 생각이 스쳐 바로 임치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치한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차강현입니다.”
네, 연락받으셨군요. 바로 연락을 하려다가 바쁘실 것 같아서 문 실장….
“지아를 찾았다고요?”
네, 찾았습니다.
“언제? 아니 지금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저랑 같이 있죠. 바꿔드릴까요?
“같이요? 지금 같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네. 같이 있죠.
지아는 분명히 저 방에 있는데?
강현은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저었다.
“지아랑 같이 있다고요?”
네, 본부장님도 믿기지 않으시나보네… 자꾸 묻는 거 보니. 저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외국에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못 찾았습니다.
“외국?”
네, 제가 사업 망하고, 집사람 그렇게 떠나고 나니까 우리가 힘들까 봐 폐가 될까 봐 집을 나간 거였더라고요. 불쌍한 것… 포기하지 않고 찾길 얼마나 잘했습니까… 매일 빌고 또 빌었더니 이런 기적이….
“정말 지아라는 거죠?”
그럼요.
“확실히 지아라고요?”
그럼요. 제가 딸도 못 알아보려고요. 그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는데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암요. 제 딸인데요.
“알겠습니다.”
네? 바꿔 달라고요?
말을 잘못 알아들은 치한이 전화를 바꿔주겠다고 하자, 강현은 마지못해 답했다.
“네, 바꿔주시죠.”
강현은 도대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지아라고 하나 싶어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강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방문이 열리고 지아가 거실로 나왔다.
강현이 통화를 하고 있자, 지아는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주방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강현은 지아를 바라보며 통화를 이어갔다.
“우선 만나죠.”
그래요, 오빠… 만나요. 보고 싶어요.
“또 연락하겠습니다.”
강현이 전화를 끊자, 지아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제 나가요.”
“지아야.”
지아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미소를 보였다.
“바로 지아라고 불러주는 거예요?”
“지아야?”
“네….”
강현은 지아를 와락 껴안았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 너한테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지아로 살지 못하고 윤은서로 살고 있었던 거지?
임치한의 정체는 또 뭐고?
지금 이렇게 가짜 지아를 들이밀며 사기 치는 거로 봐서 치한은 지아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아가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걸 생각하니… 힘든 시간을 보낸 그녀에게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건가 싶어 또 후회가 밀려들었다.
누구보다 곱게, 예쁘게 지켜주고 싶었던 아이였는데… 앞으로 얼마나 잘해야 당신한테 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빚을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
강현은 지아를 꼬옥 껴안았다.
* * *
“기쁘지 않으세요? 지아 씨를 찾았다는데?”
지아의 소식을 전하는데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강현을 보며 지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임치한이 만자고 했다고?”
“네.”
“약속 잡아. 되도록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