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밤보다 더한 짓-56화 (56/94)

56화

내가 알아서 해.

영지는 꽃집을 나오자마자 지아를 툭 밀쳤다.

“너!”

“왜….”

“왜? 이 앙큼한….”

영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지아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뭐….”

영지가 한참 동안 말없이 째려보기만 하자, 지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봐?”

“이러면서 혼자 심각한 척, 괴로워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내가 언제….”

“아, 안 그랬다고?”

“내가 그랬나?”

지아가 뒷목을 쓸어내리자, 영지는 그녀의 목에 난 키스 자국을 발견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새 또 쪽쪽 댔구만?”

영지의 시선이 목으로 향하자, 지아는 얼른 머리카락으로 키스 자국을 가렸다.

“음!”

“너 언제 이렇게 된 거야?”

“오늘….”

“오늘? 오늘 다시 만났는데 창고에서 쪽쪽 대?”

“안 그랬어.”

“안 그러긴… 증거가 있구만.”

영지가 키스 자국에 대고 삿대질을 하자, 지아는 머리카락을 더 내려 자국을 가렸다.

“음!”

“오늘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뜨거우세요?”

“어? 그게… 며칠 됐나?”

“왜 또 말이 바뀌어? 며칠? 너 계속 가게에 저 사람 끌어들였던 거야?”

“끌어들이다니… 말이 좀 이상하잖아.”

“네가 이상한 짓을 했겠지. 창고에서?”

지아가 딱히 반박을 못 하자, 영지는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다.”

“너무 그러지 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얼른 말 안 해?”

“말하려고 했어.”

지아는 영지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편, 호빵을 먹기 위해 꽃집으로 온 영준은 문을 열자마자 강현을 확인하고 미간을 좁혔다.

“뭡니까?”

강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 앉으라고 팔을 뻗어 권했다.

영준은 그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다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뭐냐고 물었습니다.”

“글쎄.”

강현이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데, 문이 열리고 지아와 영지가 꽃집으로 들어왔다.

영준이 강현을 노려보는 게 보이자, 지아는 얼른 호빵을 작업대에 올려놨다.

그러고는 마치 강현을 보호하듯 그의 옆으로 가 영준을 바라봤다.

“오빠, 왔어?”

강현의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아를 보며 영준은 심장이 아려왔다.

“너….”

영준의 입에서 강현에게 기분 나쁜 말이 나올까 싶어 지아는 먼저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한 적은 없었지? 차강현 씨….”

영준이 인상을 구기자, 강현은 쐐기를 박듯 보란 듯이 지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많이 추웠어? 차가워졌네.”

“아, 네….”

지아는 영지와 영준의 눈치를 보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서로 인사해.”

제발….

그 누구도 먼저 인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매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진땀 흘리는 지아가 안쓰러워 강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차강현입니다. 은서 남편.”

“……?”

세 사람 다 놀라서 강현을 바라봤고, 그는 태연하게 지아의 손을 잡았다.

“뭘 놀라? 어차피 다시 합칠 거.”

“그게….”

지아가 말을 잇지 못하자, 영준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너 다시 합치기로 한 거야?”

“그게….”

“이하은은?”

영준은 참고 있던 그 이름을 꺼냈다.

제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건 지아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참았지만, 지금은 다급했으니까.

이하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강현이 당황한 기색도 없이 느리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영준은 오히려 당황했다.

“……?”

영준의 앞에 멈춰선 강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노려봤다.

“이하은이랑 난 당신이 기대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기대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강현을 영준은 노려봤다.

“어떻게 믿죠?”

“나도 이하은이랑… 아니 그 누나랑 나도 당신이랑 은서처럼 가족 같은 사이거든. 친남매나 다름없는.”

“……?”

강현은 관계를 정확히 하고자 굳이 되짚었다.

“당신도 은서랑 그런 사이라면서요? 여자, 남자 아니고, 친남매 같은 사이.”

영준이 지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말이 맞아. 우리가 오해했어.”

강현은 고개를 기울이며,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고,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그럼 내가 본 건?’

영준이 받아들일 수가 없어 반박하려고 하는데, 영지가 그의 팔을 잡았다.

“오빠, 맞아. 우리가 오해한 거.”

영지마저 인정하자, 영준은 더 어쩌질 못하고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당장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강현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영준은 꾹 참고 겨우 입을 뗐다.

“나중에 얘기하자.”

영준이 분노를 못 이기고 꽃집을 나가자, 영지가 바로 따라 나갔다.

“오빠!”

지아도 따라 나가려고 하자, 강현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여기 있어.”

“강현 씨….”

“진짜 친오빠 아니잖아.”

“무슨 소리예요?”

“저 자식도 남자라고.”

“무슨….”

“내 앞에서 다른 남자한테 가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여기 있어.”

강현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지아는 아무래도 영준이 걱정돼 안절부절못했다.

“잠깐만요….”

지아가 영준을 신경 쓰는 게 보이자, 강현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윤은서.”

“네?”

“당신한테 남자, 나 하나야.”

“……?”

“당신이 나 말고 아무것도 못 보게 눈을 가리고, 아무 데도 못 가게 다리를 묶고, 아무것도 품지 못하게 심장을 숨겨두고 싶어. 나만 아는 곳에.”

정말 그럴 것처럼 진지하게 말하는 강현을 보며, 지아는 놀라서 손목을 뿌리쳤다.

“미쳤나 봐.”

지아가 뒷걸음질 치고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강현은 그녀를 다시 끌어당겨 안고는 그녀의 양쪽 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니까 다른 놈 만나지 마. 이 예쁜 눈으로 다른 놈 보지도 말고, 신경 쓰지도 마. 당신이 그러는 순간, 그 자식 가만 안 둘 거니까.”

“왜 이렇게 심하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당신 심하게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심한 짓 안 하게 해달라고.”

“강현 씨….”

강현이 지아를 와락 껴안으며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난 당신뿐이야.”

“강현 씨….”

강현은 지아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그녀를 더 꽈악 껴안았다.

“난 당신 거가 분명한데… 난 왜 당신이 아직 불안할까?”

“……?”

강현이 고개를 뒤로 물러 지아의 눈을 바라봤다.

“결혼하면 이 불안이 좀 줄어들까?”

지아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강현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말이 없어?”

강현의 물음에, 지아는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강현 씨, 결혼은 아직… 알잖아요. 우리 집도 당신 집도….”

지아가 결혼 얘기에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강현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강현 씨….”

“당신 힘들게 안 해. 그런 각오 없었다면 다시 당신 보러 오지도 않았어.”

“…….”

“당신만 내 옆에 있으면 돼. 당신만. 그러니까 이것만 약속해. 내 옆에 있겠다고.”

지아는 아무것도 약속할 수가 없었다.

그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경옥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집안에서 강현을 얼마나 반대하는지 다 아는데….

전보다 더 안 좋아진 상황에서 무슨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지아가 망설이고 답을 안 하자, 강현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빨아당겼다 놓았다.

“대답.”

지아가 근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강현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빨아당겼다 놓았다.

“대답.”

원하는 대답을 안 하면 하루 종일 그에게 입술을 빨릴 게 분명했다.

지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하는 대답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거였고,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으니까.

* * *

“강현이랑 잘 지내니까 얼마나 좋아요.”

기순은 강현과 함께 치킨집으로 인사를 온 지아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잘했어요. 잘했어.”

“사장님 덕분이에요.”

“내가 뭘 했다고….”

“제가 괜히 오해를 해서…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이고, 아니에요. 오해할 수도 있지. 오해 풀렸다니 다행이에요. 둘이 이렇게 서 있는 거 보니까 너무 좋네.”

기순은 슬쩍 강현을 쳐다봤다.

입이 귀에 걸려서 지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강현을 보며, 기순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그를 툭 쳤다.

“그렇게 좋아? 꽃집 사장 얼굴 닳겠네. 닳아.”

강현은 반박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기순은 몰라보게 좋아진 그의 얼굴을 보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우리 지석이도 얼른 짝을 찾아야 할 텐데….”

“생기겠죠.”

“좋은 여자 없어?”

기순은 묻고도 혼자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물을 사람한테 물어야지.”

주변에 사람을 잘 두지 않는 강현이었다. 특히 여자는 더.

그런 강현에게 할 질문이 아닌 것 같아, 기순은 묻자마자 후회했다.

“그나저나 그거 알아요? 내가 꽃집 사장 며느리 삼고 싶었는데.”

“네?”

지아가 쑥스러워 미소를 짓는데, 강현의 표정은 빠르게 식었다.

강현의 표정이 좋지 못하자, 기순은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안 뺐어.”

“네?”

“내가 네 사람을 지석이한테 소개시키겠어? 그러고 싶었다는 거지.”

“싶은 것도 좀….”

“아이고, 그래. 미안하다.”

눈치가 보인 지아가 강현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강현 씨, 왜 그래요?”

강현은 지아를 보며, ‘뭐?’라고 입 모양을 하더니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강현의 모습을 처음 본 기순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강현이한테 이런 모습도 있었네? 아무튼 보기 좋아. 우리 애들도 얼른 짝이 생겨야 할 텐데… 언제나 데려오려나?”

그때였다.

치킨집으로 영준과 영지가 들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