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안달나게
“강현 씨….”
지아가 카트에서 꽃을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강현이 나타났다.
“어디로 옮기면 돼?”
“내가 할게요.”
“내가 해. 어디야?”
꽃을 들고 있는 그의 표정이 살짝 화가 나 보이자, 지아는 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작업대를 가리켰다.
“그럼, 저기 작업대에 올려줘요.”
강현은 작업대에 꽃을 내려놓고는 지아를 바라봤다.
강현이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지아는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봐요?”
“2주 만에 보면서… 그런 말밖에 못 하는 거지?”
강현은 지아를 더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지아를 껴안으니 강현은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만 같았다.
지아도 팔을 올려 그를 껴안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아를 안고 있던 강현은 깊게 숨을 내쉰 뒤, 그녀를 안은 채 고개를 뒤로 물렀다.
“밀어내지는 않으면서… 일부러 이러나?”
“밀어내지 말라면서요.”
순간, 그녀가 얄미워 보여 강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밀어내지 않는 그녀를 보니 안심은 되는데, 서운하단 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빛이 변하자 지아는 눈치를 살폈다.
“왜요?”
“말 되게 잘 듣네, 윤은서?”
강현이 더 가까이… 정확히는 하체를 더 가까이 붙여오자, 지아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
“왜 이래요?”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좀 보려고.”
“……?”
지아가 상체를 뒤로 무르자, 강현은 그녀가 물러난 만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 밀어낸다며?”
“그건 그런데… 이러지 마요.”
“싫은데?”
저 표정….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노골적으로 붙여오는 그의 하체가 이미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현 씨, 여기 가게예요. 사람들 들어올 수도 있다고요.”
강현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지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그를 밀어냈다.
“장난 그만 쳐요.”
“장난 아닌데?”
“그러니까….”
진짜 장난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지아는 뒷걸음질을 치며 주위를 살피느라 바쁜데, 강현은 주변 따위 신경 안 쓴다는 듯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며 다가왔다.
“잠깐만요….”
지아는 또 뒷걸음질을 쳤지만, 강현은 그만큼 또 다가와 몸을 붙여왔다.
“왜 자꾸 날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지? 맘에 들게?”
지아는 가게에 누가 들어와도 들키지 않을 곳, 문을 잠글 수 있는 곳으로 그를 유도했다.
그가 어떤 짓을 할지 알 것 같았으니까….
지아는 그래도 끝까지 그를 말려보자는 생각으로 간절히 사정했다.
“그만 해요.”
지아가 뒷걸음질을 쳐 어두운 구석에 들어서자, 강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곳이 있었네.”
강현은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처럼 그녀에게 몸을 붙인 채 더욱더 구석으로 몰아갔다.
지아가 팔을 뻗어 밀어내자, 강현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밀어내지 않는다며?”
지아는 그를 밀어내던 손을 다시 거두고 그를 올려다봤다.
“알았어요. 안 밀어낼게요. 그러니까 그만 해요.”
“진짜 안 밀어내는지 확인을 해야겠는데?”
뒤로 물러나던 지아의 등이 벽에 닿자, 강현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다리를 밀어 넣었다.
“여기서 확인하면 되는 건가?”
“못됐어.”
“2주를 참았어. 누가 더 못된 것 같아?”
그의 단단한 다리가 지아의 다리 사이를 뭉근하게 눌렀다.
“누가 더 못된 것 같냐고.”
지아가 입술을 짓깨물며 움찔했다.
“흐읏….”
고개를 떨궜던 지아는 그에게 또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억울해 고개를 들었다.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히 강현은 지아를 보내주며 기다리겠다고 말하긴 했다.
근데 이렇게 2주나 감감무소식일 줄이야….
심지어 연락하겠다는 대답조차 안 하고 떠난 지아였기 때문에, 애가 타는 건 강현이었다.
“그래서 잘했다?”
“나만 늘 기다리는 거 억울해서 한 번 해봤어요. 왜요?”
사실 지아도 2주라는 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감정의 방향을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또 그가 태도를 바꾸진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이번에도 또 그와 어긋나면 버틸 수 있을지… 그것도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런데 생각을 할수록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더 커질 뿐… 모든 문제가 그를 향한 마음의 크기에 비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을 뿐이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연락을 하려고 했었는데, 강현이 참지 못하고 와준 거였다. 고맙게.
그런 것도 모르고 강현은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운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게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자신을 또 곤란하게 만든 그가 얄미워 지아는 오기를 부리며 일부러 더 툴툴댔다.
강현은 조금의 그리움도 없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지아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그랬다?”
“……?”
“일부러?”
“네?”
이게 아닌데… 화난 거야?
강현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리자, 지아는 더럭 겁이 났다.
뭔 짓을 하려는 거지?
“왜요….”
“윤은서, 당신은 참아지는구나? 난 네가 그리워 지난 2주 동안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부족했네.”
“뭐가요?”
“내 잘못이야.”
“뭐가요?”
“안달 나게 못 만든 내 잘못이라고….”
왜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요?
지아가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에 그의 빠른 손이 움직임을 시작했다.
강현의 손이 셔츠 안으로 훅 들어와 브래지어를 밀어 올렸다.
단숨에 가슴을 움켜쥔 강현은 지아의 가슴 끝을 자극했다.
“하읏….”
“더 안달 나게 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인 거지?”
“그게….”
“내가 안달 나는 만큼 당신도 안달 나게 만들 거야.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도 보고 싶게 만들 거야. 물론, 당신은 내 밭 끝도 못 따라오겠지만.”
“강현 씨….”
“내가 어떤 심정인지 조금은 알아야 이게 얼마나 참기 힘든 건지 당신도 알지.”
누가 누구 얘기를 하는 건지….
“그게 아니….”
반박을 하려는 찰나, 지아는 입을 제대로 떼기도 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아의 뒤통수에 손을 올린 강현이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혀를 옭아맨 탓이었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그의 숨결에 지아가 어깨를 움츠리고 휘청이자, 강현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제 품으로 더 끌어당겼다.
예상치 못한 급한 전개에 심장은 주책맞게 뛰고 있었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상체를 오가는 그의 야릇한 손길에 온몸의 세포가 예민하게 날뛰고 있었다.
“하아… 흐읍….”
어느 타이밍에 숨을 쉬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숨 쉴 틈도 없이 뜨겁게 몰아붙이는 그였다.
지아는 산소 부족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그를 밀어냈다.
“하아….”
“밀어내지 마.”
“그게… 하아….”
“후우….”
강현은 숨 쉴 시간은 줬다는 듯 몇 번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두 손으로 지아의 얼굴을 감싸더니 다시 입술을 맞물렸다.
지아는 그가 주는 아찔한 감각에 또 휘청였고, 다리에 힘이 빠져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다리가 잘게 떨리자, 강현은 그럴수록 더 빈틈없이 몸을 붙이고, 입술을 맞물렸다.
“하아….”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지아가 상체를 무너뜨리고 허벅지를 오므렸다.
그러자 그의 손이 순식간에 지아의 속옷 안으로 밀려들었다.
지아는 깜짝 놀라 그의 손목을 잡았다.
“강현 씨, 여기는… 하아….”
지아가 손목을 잡았는데도 강현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고, 곧 그의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적나라한 소리가 허공에 번졌지만, 지아는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 다리를 떠는 것밖에… 지금 지아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하아… 강현… 하아….”
감당하기 힘든 감각이 온몸을 잠식시키더니, 이내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아하… 아흑….”
발작하듯, 지아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몸을 떨었다.
상체를 쓰러뜨린 지아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헐떡이고 있는데, 바지 버클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고개를 든 지아가 눈을 키우는 순간, 강현이 욕망을 밀어 넣었다.
지아는 강현에게 매달려 그의 어깨를 때렸다.
“하아… 안 돼… 안 돼요….”
“돼.”
“여기서는 안 돼… 안 된다고요.”
“여긴 지금 된다는데?”
강현은 일부러 더 몸을 붙여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하아….”
지아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음하자, 강현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강현은 지아를 번쩍 안아 더 깊숙이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하아….”
지아는 강현에게 매달려 그를 더 세게 껴안았다.
한편, 한창 바쁜 때가 지나고 살짝 한가해진 영지는 약국에서 꽃집을 힐끔 쳐다봤다.
“지아 어디 나갔나?”
“왜?”
조제실에서 나온 영준이 꽃집을 바라봤다.
“꽃집에 있을 시간이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안 보이네… 오빠, 당 당긴다. 호빵 하나 사 먹을까? 편의점에 호빵 돌리기 시작했던데?”
“그래.”
“오빠는 피자 호빵?”
“어.”
“오케이! 이거만 정리하고 호빵 사러 가야지. 오빠는 나 나가고 5분 뒤에 꽃집으로 와. 지아랑 같이 먹게.”
“그래.”
“지아랑 같이 편의점 가야지. 아이스크림도 사 먹을까?”
“난 호빵만.”
“난 아이스크림도 먹어야지.”
영지는 룰루랄라 신이 나서 하던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