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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53화 (53/94)

53화

밀어내지 마

“어디 가?”

“……?”

“가지 마.”

“안 가요. 그냥 좀 일어나려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현이 지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강현 씨….”

“잠깐만… 잠깐만 이렇게 있자.”

지아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현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지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오늘 일… 어머님이 한 거죠?”

“……?”

강현이 고개를 뒤로 물러 그녀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아까 문 실장님하고 하는 얘기 들었어요. 얼핏… 그리고 이런 일 벌일 사람… 뻔하잖아요.”

지아가 그 여자의 민낯을 알고 있자 강현은 미안함이 들었다.

이 정도로 이경옥을 알고 있는 거라면… 결혼생활 내내 지아에게 그 여자가 어떤 짓을 했을지 뻔했다.

그런데도 제 곁을 버텨준 그녀였다.

그런데 난 이런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하아….”

후회가 밀려든 강현이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자, 지아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지아는 강현을 꼬옥 안으며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힘들었죠?”

“……?”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건지….

지금 나 같은 놈을 위로하는 건가? 진짜 당신이란 여자는….

강현은 고개를 뒤로 물러 지아를 빤히 바라봤다.

애잔한 눈빛…

그녀의 이 따뜻한 눈빛이 너무 그리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강현은 커다란 손을 뻗어 지아의 뺨을 쓰다듬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해?”

지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도망쳤으면 좋았잖아. 도망칠 기회 줄 때… 그랬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됐을텐데….”

마주친 그의 눈이 점점 더 진해지자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일었다.

뺨에 닿은 그의 손이 뜨거운 건지, 뺨에 열이 오른 건지 모를 정도로 맞닿은 곳에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내린 그가 다가오자 지아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완전히 닫히자, 그의 입술이 입술에 닿았다.

입술이 부드럽게 닿았다 떨어지고,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숨결이 오고 가고, 숨 막히는 정적이 일고 있었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이 맞물렸다.

고개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입술은 더 깊숙이 맞물렸고, 농밀하게 적셔오는 그의 숨결이 밀려 들어왔다.

점점 멍해지는 의식 속에 거칠어지는 그의 숨결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의 힘이, 야릇하게 유영하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지아는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오므리고 움찔거릴 정도로 젖어 들고 있었다.

그의 손이 예민한 살결 위로 닿자, 옷을 입었는데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지아는 반사적으로 예민한 살결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을 잡았다.

“……?”

눈빛이 부딪쳤고, 빠르게 얽혀들었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등이 닿는 순간 그가 위로 올라왔다.

입술을 맞물리며 몸을 붙여오는 그의 무게가 느껴지자 이상하리만치 안정감이 들어 지아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서로의 옷이 벗겨져 있을 정도로 그가 다급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너무 빨라….

지아가 팔을 뻗어 그를 밀어냈다.

“강현 씨….”

“밀어내지 마.”

흥분으로 이성을 잃은 그를 조금 진정시키려고 한 건데, 오해를 한 그가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안을 파고들었다.

“잠깐… 하아….”

그에게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몸은 금세 그를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그를 받아들였다.

놀라울 정도로… 몸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강현은 지아를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옭아매듯 그녀의 안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쓰다듬는 그가 지독하게 섹시했다.

그의 눈빛에 취해, 그의 손길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는데, 그가 허리에 힘을 실었다.

“읏.”

“하아… 강현 씨….”

그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지아의 호흡이 버겁게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하으윽… 하아….”

이성을 잃어가는 지아를 보면서도 성에 안 차는 듯 강현은 허리를 더 세게 움직였다.

집요하게 바라보며, 더 집요하게 그녀의 자극점을 파고들던 강현은 달뜬 숨을 내쉬는 지아의 입술을 매만졌다.

“밀어내지 마. 밀어내지 말고 기회를 줘.”

“하아… 강현 씨….”

“가지마….”

강현은 더 강하게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넌 절대 나 못 떠나.”

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강현은 그녀의 눈에 입을 맞춘 뒤 더 세게 그녀를 안았다.

“울어도 내 옆에서 울어. 이렇게 내 옆에서. 사랑해.”

지아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들을 모두 쏟아내듯 울었고, 그는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안을 채우고 또 채웠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강현도 지아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함께 있었다.

일을 빼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일이 아니었다.

강현은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지석에게 처리하도록 하고, 바로 해결해야 될 일들은 지아가 자고 있을 때 몰래 처리했다.

1분, 1초도 지아를 외롭게 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앞에서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를 위해 일주일을 쏟아냈다.

뒤늦게라도 서로를 보듬어 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 오래 놔둬 더 곪아버린 상처를 치료하는 게 급선무였다.

늘 바쁘게 살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 일도 없을 때, 서로가 뭘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종일 영화도 보고, 퍼즐도 맞추고, 요리도 하고, 그러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온전히 감정에만 충실한… 함께 살았던 1년보다 농도 짙은 일주일을 보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와 하고 싶었던 얘기들, 엉켜 있던 오해를 풀어나갔다.

그러다 지아가 서운함을 토해내면 그는 기꺼이 받아주고 토닥여줬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숨기지 않고 나눴다. 어떻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는지… 그때 왜 말을 못 했는지… 어떻게 하다가 그랬는지… 얘기를 나누고 속에 있던 응어리를 풀어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정말이지 참 짧게만 느껴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지아는 아무런 기약도 하지 않고 떠났다.

여전히 집에는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서로 연락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의 흔적을 보며, 암묵적으로 서로 잘 지낸다는 것만 확인할 뿐, 그녀가 그걸 원하는 것 같아 강현도 함께 응했다.

멈춘 것만 같던 지루한 시간이 2주 지나고, 더 이상은 못 참겠는 강현이 움직였다.

* * *

“회장님, 내 얘기 좀….”

집에 들어온 차 회장은 경옥을 못 본 체 무시하고 지나쳤다.

감히 내 아들한테….

그동안 날 농락해?

차 회장은 경옥이 강현의 집에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친엄마 이상으로 강현을 위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동안 속았었다니….

강현의 집에서 잡힌 남자가 경옥의 이름을 말했다는 걸 전해 듣고 그때 받았던 충격이란… 정말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도 강현은 경옥이 집에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인정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차 회장은 놀랐다.

“넌 괜찮은 거냐?”

“익숙합니다.”

“익숙하다니?”

강현의 익숙하다는 말에 차 회장이 혼란스러워하자, 그의 옆에 있던 지석이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경옥이 강현의 집에 녹음기를 설치했다는 것과 감시를 했다는 것을.

이 모든 게 강현을 후계자에서 밀어내고, 병현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차 회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데도 강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원래 왈가왈부 떠드는 성격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현이 정말 괜찮은 줄만 알았다.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강현을 보며 차 회장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조금은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도 내가 아버지인데… 네 아버지인데… 투정을 부리든, 화라도 냈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강현을 보며 차 회장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동안은 왜 말을 안 한 거냐?”

“제가 후계자가 되면 다 해결될 일이니까요.”

“……?”

멋없게 말하는 강현을 보며, 차 회장은 아들 녀석이 어떻게 버티며 지내왔을지 그려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새엄마에 대한 반항을 하는가 싶어 잔소리를 했었다.

욕심이 많다고, 동생을 챙기지 않는다고, 그 좋은 엄마한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고 탓했었다.

차 회장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당장이라도 경옥을 내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게 만들고 싶었지만 강현이 말렸다.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간다는 거였다.

차 회장도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강현의 뜻에 따라 경옥이 경찰 조사를 받는 것까지는 막았지만,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출장을 핑계로 집을 비웠었는데, 경옥을 보는 순간 다시 화가 치밀었다.

화가 조금도 누르러 들지 않은 차 회장은 경옥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짐 싸. 당신 같은 여자랑 더는 같이 못 사니까.”

아무리 빌고 사정을 해도 받아주질 않는 차 회장을 보며 경옥도 화가 치밀었다.

“내가 왜요?”

“뭐야?”

“내가 왜 나가요? 여기는 내 집인데?”

언제나 나긋나긋하고, 화 한 번 낼 줄 모르던 경옥이 드세게 나오자 차 회장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아… 이제 나한테도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그 말에 경옥은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나긋나긋한 아내처럼 그에게 사정했다.

병현이를 후계자로 만들려면 참아야 했으니까.

“그게 아니라…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가 있었어요. 내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요? 제발요….”

“이유? 무슨 이유가 있으면 아들을 감시하고, 사람을 시켜 집을 침입하지?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다고?”

“윤은서!”

“뭐?”

“윤은서 때문이었어요.”

예상치 못했던 이름을 들은 차 회장은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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