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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52화 (52/94)

52화

여기 있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 검은 옷, 검은 신발까지 신은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헉….”

강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지아는 그대로 얼음이 된 것처럼 멈춰 섰다.

지아는 너무 놀라 악 소리도 못 지르고,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몇 초가 흐르고, 지아는 소리를 질렀다.

“아악!”

남자도 당황해서는 잠시 멈칫했다가 지아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놀라 밖으로 도망쳤다.

“에잇.”

남자가 나갔는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지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얀데 순간적으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 전화… 전화….”

지아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워 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강현이 전화를 받았다.

지아의 전화가 의외라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윤은서?

“강현 씨, 나 지금 당신 집인데….”

그 순간이었다.

- 철컥!

현관문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떡해….”

- 여보세요? 왜 그래?

수화기 너머로 강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아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지아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풀렸지만,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좀 전에 나간 남자가 다시 문을 열기 전에 방으로 숨어야만 했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 남자는 소리를 쳤다.

“야, 너 어디 있어?”

지아는 그 소리에 놀라 도망치다가 휴대전화를 놓쳤고, 야속하게도 휴대전화는 튕겨져서 저 멀리 떨어졌다.

“우리 쉽게 쉽게 가자.”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아는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를 포기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방문을 잠그고, 문에 귀를 기울인 채 숨죽이고 있는데… 밖에서 남자가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 있나? 아니면… 이 방에 있나? 방이 왜 이렇게 많아?”

남자는 일부러 겁을 주려고 큰 소리로 말하며 지아를 찾고 있었다.

심장이 졸아들고 있었다.

지아는 속으로 제발, 제발을 외쳤다.

강현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문고리가 흔들렸다.

남자는 일부러 문고리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잠겼네? 여기 있구나?”

지아는 입술을 깨문 채, 잠금장치를 꾹 누르고 문을 밀었다.

남자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묻어났다.

“포기해. 너 휴대전화도 떨어뜨렸던데… 신고도 못 할 거 아니야. 조용히 나와서 협상하자. 너 그 안에 있는 거 다 안다니까?”

지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방에 없는 척을 할 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나오면 살려는 줄게. 진짜라니까?”

지아가 아무 말도 안 하자, 남자는 피곤하다는 듯 목을 돌리더니 주머니에서 장비를 꺼냈다.

“꼭 이렇게 일을 시켜요… 넌 나 귀찮게 했으니까 목숨 건질 생각은 하지 마라.”

잠금장치를 누르고 있는 지아의 손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달칵-

지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문을 쉽게 열었다.

문고리가 돌려지자, 지아는 문을 밀었다.

남자는 문을 밀면서 비웃었다.

“나랑 힘이 된다고 생각해? 애쓰지 말라니까….”

남자는 어깨로 문을 확 밀쳤다.

지아는 남자의 힘에 밀려 그대로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벌벌 떨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지아를 향해 다가갔다.

“예쁘게 생겼네?”

“……”

“여기 사는 놈 애인이야?”

“이… 이러지 말아요….”

“이러지 말기는… 이래야지 내가 살지. 네가 신고할 거 아니야.”

얼굴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서 남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지아는 남자가 웃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조용히 나가자. 좋은 말로 할 때.”

“시… 싫어요.”

“이래봤자 소용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힘 빼지 말자. 나 더 열받으면… 너한테 뭔 짓을 할지 몰라.”

남자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지아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지아가 비명을 지르자, 남자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조용히 나가자고 했지?”

남자가 지아를 향해 손을 날리려는 순간, 방문을 열고 강현이 들어왔다.

“이 자식이!”

강현이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남자는 갑자기 뒤에서 날아든 공격에 바닥으로 쓰러졌고, 강현은 남자의 위로 올라가 연신 주먹을 날렸다.

퍽- 퍽- 퍽-

흠씬 두들겨 맞던 남자가 가까스로 빠져나가자 강현이 지아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아?”

지아는 강현의 등에 기댄 채, 흐느꼈다.

겨우 바닥에서 일어난 남자는 무언가 무기가 될 만한 걸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젠장….”

마땅한 걸 찾지 못한 남자는 강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강현은 지아를 막아서며 그 주먹을 피했다.

“은서야, 나가. 물러나 있어.”

지아는 얼른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방을 나가 휴대전화를 찾았다.

“어디 있는 거야….”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자, 지아는 강현을 돕기 위해 그의 골프채를 손에 쥐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강현이 남자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자, 지아가 남자를 향해 골프채를 내리치려는 순간,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었다.

남자는 경찰이 왔다는 걸 깨닫고, 강현을 밀쳐냈다.

“아, 젠장.”

남자가 급히 방을 나가자, 강현은 그 뒤를 따라갔다.

“거기 안 서?”

그때 지석이 집으로 들어오다가 남자와 마주쳤다.

“이 자식이!”

“하아….”

남자는 수로 밀리자 밖으로 도망쳤고, 그 뒤를 지석이 따르자 강현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집 밖에 경찰들이 있는 걸 창으로 확인하고는 다시 방으로 향했다.

마침 방에서 나오던 지아는 강현을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가 와락 품에 안겼다.

“흑… 괜찮아요?”

“하아….”

강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지아를 더욱더 세게 껴안았다.

강현의 몸이 떨리자, 지아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강현 씨….”

강현은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지아를 다시 꼬옥 껴안았다.

“강현 씨, 어디 다친 거 아니죠?”

“지금 누굴 걱정해. 괜찮아?”

“네….”

“하… 진짜….”

강현의 몸이 계속해서 떨리자, 지아가 그를 세게 안았다.

“진짜 괜찮아요? 왜 이렇게 떨어요?”

지아가 그의 상태를 살피려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강현은 그녀를 끌어당겨 더 세게 안았다.

“가만히 있어.”

지아의 정수리에 입을 맞춘 강현은 그녀를 한참 동안 안은 채 놔주지 않았다.

* * *

주치의의 진료를 받은 지아는 어느새 침대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강현은 침대 옆에 앉아 잠든 지아의 손을 잡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도 쪼그라든 심장이 회복하지 못한 것만 같았다.

그녀가 잘못되는 줄 알고,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름 강심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위험해 처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강현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혀 침착할 수가 없었다.

집에 가는 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출장을 빨리 마무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했다.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가 반가운 것도 잠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비명 소리를 듣는 순간 이성은 마비가 되었다.

운전을 하는 지석의 운전대를 뺏어들고 제정신이 아닌 채 악셀을 밟았다.

최고 속도를 내면서 질주했다.

오로지 그녀에게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강현은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들어가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 그려질 뻔했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도 두려움에 떨었던 몸은 진정할 줄 모르고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 떨림이 느껴질 정도로….

강현이 지아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주치의를 보내고 돌아온 지석이 방으로 들어왔다.

“형, 괜찮아?”

“어.”

지석은 강현이 그렇게 흥분한 건 처음 봤다.

운전대를 뺏은 그는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명령했다.

늘 이성적이던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보안업체에도 연락했고, 경찰서에서도 연락준다고 했습니다. 남자가 아직 자백하지는 않는데, 서재에서 남자가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녹음기가 발견되고, 남자의 점퍼 안주머니에서 본부장님 컴퓨터에 있는 파일이 담긴 USB가 나온 거로 봐서는….”

지석이 말을 하기도 전에, 강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짓이겠지. 이경옥.”

“아니 진짜 어떻게 이렇게까지….”

“병현이가 후계자 되는 게 위태롭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방법까지 썼나 본데… 더 이상의 자비도, 시간도 줄 필요 없겠어.”

“제 생각도 그럽니다.”

“그래. 이대로는 안 돼.”

* * *

잠이 들었던 지아는 어느새 잠이 깨 눈을 떴다.

침대 옆에 앉아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잠이 든 강현을 발견하고, 지아는 상체를 일으켰다.

“강현 씨….”

“……?”

깜빡 잠이 든 강현은 지아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

“편히 안 자고 왜 이렇게 있어요?”

“괜찮아?”

“난 괜찮아요.”

강현의 지친 얼굴이 너무 안타까웠던 지아는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침대에 누워요. 난 다 잤으니까.”

“아니야. 뭐 좀 먹어야지?”

“배고파요?”

“당신은?”

“난 괜찮아요.”

“나도.”

“그럼 누워요.”

“당신 뭐 좀 먹어야지.”

“난 괜찮으니까 얼른.”

강현이 못 이긴 척 침대로 올라오자, 지아는 그에게 자리를 내줬다.

“좀 자요.”

지아가 침대를 빠져나가려 하자, 강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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