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내가 어떻게 하면 돼?
강현이 문을 닫자, 지석은 얼른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문 닫았을 텐데, 꽃가게로 간다고요? 설마 밤새 차 안에 있겠다는 건 아니죠?”
지석은 업무 모드를 해제하고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는 강현을 바라봤다.
“형.”
“낼 아침에 네가 운전해라. 난 차에 있을 테니까.”
“그럼 우리 집에서 자고 사모님 출근할 때 나가.”
“됐어. 언제 나올 줄 알고. 출발해.”
강현이 말을 해도 지석은 시동조차 걸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밤새 차 안에 있는 건 너무 미련하잖아.”
지석의 말에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걱정돼서 그래. 그러니까 잔말 말고 출발해.”
지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차 시동을 걸었다.
* * *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로 기사를 보고 있던 경옥은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죄송합니다….”
책상 앞에 서 있던 강 실장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하자, 경옥은 그를 쳐다봤다.
보고 있으니 더 짜증이 나는 듯 경옥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이인형 이게 진짜….”
“그날 미술관 행사 때문에 사람들 눈이 워낙 많았기도 했고, 기자들도 여럿 있어서….”
“그래서? 그래서!”
경옥이 언성을 높이자, 강 실장은 말을 삼켰다.
인형은 그날 미술관에서 강현에게 창피를 당한 뒤, 병현에게 이 사실을 들키면 그의 지원마저 끊길까 봐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뭐? 차병현 상무님과 워낙 돈독한 오빠, 동생 사이라 미술관 행사에서 VIP석에 앉은 거라고? 이 물건 입에서 병현이 이름 나올 동안, 이런 인터뷰할 동안 뭐 했어? 이딴 기사 하나도 못 막고 뭐 했어?”
경옥은 손에 쥐고 있던 마우스를 강 실장에게 집어던졌다.
“죄송합니다.”
“연예 기자들이 병현이랑 이 물건 데리고 소설 쓰는 동안 뭐 했어?”
“죄송합니다.”
“지금 터지고 있는 기사들 얼른 막아.”
“그건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래? 근데 이렇다고?”
경옥은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또 강 실장에게 집어던졌다.
강 실장은 티 안 나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를 악물었다.
경옥은 병현에 관련된 다른 기사를 보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뭐? 사실상 후계자는 차강현 본부장으로 확실시되어 가고 있다고?”
다른 기사들을 봐도 차강현이 후계자로 확실하다며 병현의 평소 행실과 그동안 성문그룹에 끼친 손해, 과거 유학 시절에 사고 쳤던 것까지 소환해 모든 걸 강현과 비교하는 기사가 도배가 되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도 외도를 한다는 기사까지.
“이 기자들 싹 다 고소해.”
“네,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현이가 어떤 증거 갖고 있는지 찾아냈어?”
“아뇨, 그건 아직….”
“악!”
경옥이 분노의 비명을 지르자, 강 실장은 숨을 삼켰다.
경옥은 그런 그를 노려보며 흥분이 고조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당장 나가서 뭐라도 해! 우리 병현이… 병현이 위해서 뭐든 하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 * *
“진짜 대박 아닙니까?”
지석은 강현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인형의 인터뷰 기사와 병현의 기사, 후계자 관련 기사를 보고했다.
“이런 기사까지 났으니… 지금쯤 난리 났을 겁니다, 그쪽은.”
“그러게.”
강현은 모니터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확인했다.
“이런 인터뷰까지 하다니… 이 여자도 정상은 아니네.”
“그러니까요. 제가 그 여자한테 차 상무 또라이라고 했거든요. 또 나타나면 본부장님 꼬시려고 한 거 다 말하겠다고 했더니, 차 상무한테 말할 핑곗거리 만든 거 같습니다. 차 상무는 또 단순하니까 그 여자 말을 믿겠죠. 큰사모님은 자기가 푼 뱀한테 본인이 물린 꼴이 됐고요.”
“자기 방패 만들겠다고 이런….”
지석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 상무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 거죠. 자기만 생각했으니까 인터뷰를 한 건데… 진짜 한심합니다. 차 상무라도 잡아야 하나 봐요. 지금 이 여자 처지가.”
“그래도 한때 누나랑 라이벌 아니었나?”
“라이벌이었죠. 그것도 인기가 더 많은… 근데 그날 이인형 보고 느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자의 최후를요.”
“이경옥이 이 기사를 봤으면, 어떻게든 나한테 흠집 내기를 할 수 있으니까 우리 쪽에서도 조심하자고.”
“네, 물론입니다.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일정은 어떻게 되지?”
“되도록 만들지 말라고 하셔서, 다 정리해 놨습니다.”
“잘했어.”
“설마 또….”
“됐고. 나가 봐.”
* * *
“오빠, 기사 난 것 때문에 화난 거 아니지?”
인형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옆에 있는 병현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려 손끝으로 그를 자극했다.
병현은 좋으면서도 살짝 짜증이 올라 그녀의 손을 밀었다.
“기사야 엄마가 알아서 막겠지. 그건 상관 안 해. 그러니까 너 어제 차강현이랑 무슨 얘기 했냐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기사보다 인형이 강현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가 더 중요한 병현이었다.
인형은 어제 일은 그냥 대충 좀 넘어가려고 했는데, 병현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연기에 돌입했다.
“차강현 진짜 재수 없더라?”
“……?”
“어제 비서 시켜서 나한테 따로 나가서 대화를 하자고 하질 않나, 막 추근대는 거야.”
인형의 말에 발끈한 병현은 당장이라도 침대를 뛰쳐나갈 것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뭐야? 그 자식이?”
예상한 대로 병현이 반응하자, 인형은 새침하게 상체를 일으켜 그의 허벅지 위로 앉았다.
“응, 그래서 내가 단박에! 내가 차병현이랑 무슨 사이인지 모르냐? 딱 이래버렸어. 나 잘했지?”
인형이 껴안으려고 하는데, 병현은 당황한 기색으로 눈을 키우고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떨어뜨렸다.
“너랑 내 사이를 말했다고?”
“무슨 사이인지 모르냐고 했을 뿐이야. 우리가 이렇게 한 침대에 있는 사이라는 건 얘기 안 했어.”
“그래도….”
병현이 살짝 불편해하는 게 보이자, 인형은 일부러 적반하장으로 그를 몰아붙였다.
“왜? 오빠 나랑 하루 이틀 만나고 말 사이야? 이제 애 아빠 된다고 나 모르는 척하게?”
“아니 그건 아니지.”
“치… 오빠 와이프 임신했다는 소리 듣고… 나 기분 좀 이상하더라?”
인형이 삐친 척을 하자, 병현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넌 내가 그렇게 좋냐? 튕길 때는 언제고?”
병현이 키스를 하려고 다가가자, 인형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아, 나 좀 속상한 거 있어.”
“또 뭔데?”
“오빠네 어머니는 왜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해?”
“왜 또?”
“이번에 행사에서도 차강현이랑 나랑 같이 있는 거 보고는… 나한테 차강현 꼬시는 거냐고… 진짜 너무해. 내가 오빠 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안 그래?”
“엄마도 참… 아, 맞다. 너 그날 VIP석에는 왜 있었던 거야?”
“그거야 내가 유명하니까… 내가 나타나니까 관계자가 VIP석에 딱 앉혀주더라고. 마침 오빠 자리도 비었고.”
“아, 그런 거야?”
“그럼? 내가 오빠한테 뭐? 숨기는 거 있을까 봐?”
“아니, 아니야… 이리 와.”
병현은 인형에게 입을 맞추며 침대 위로 털썩 그녀를 눕혔다.
“차강현이 내 거에 침 바르려고 했다, 이거지?”
“…왜 오빠?”
“이대로는 못 넘어가지.”
이대로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구만, 병현의 말에 인형은 일이 커질까 봐 불안해졌다.
“오빠, 어쩌게?”
“내가 알아서 할게. 우리 예쁜이는 오랜만에 오빠 좀 즐겁게 해줘 봐.”
병현은 뒹굴 몸을 뒤집어서 인형을 자신의 몸 위로 올렸다.
이때, 틀어놨던 텔레비전에서 이하은의 광고가 흘러나왔다.
병현이 고개를 돌려 멍하니 텔레비전 속 이하은을 보자, 인형이 그를 찌릿 째려봤다.
“이하은 보지 마.”
“우리 회사 광고라 보는 거야.”
“그래도 보지 마. 그리고 왜 오빠 회사 광고 이하은 줘? 나 안 주고? 나 줘. 오빠, 그런 힘 있잖아.”
“뭐 어떤 광고가 하고 싶은데? 내가 후계자 되면 그까짓 거 못 해주겠냐?”
병현의 말에 인형은 눈을 반짝였다.
“오빠 진짜 후계자 되는 거야?”
“당연하지. 나 말고 후계자 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애 가진 것도 다 후계자 되려고 한 거야. 애도 있겠다. 우리 엄마가 나 후계자 만들려고 밤낮으로 애쓰시는데, 곧 되지 않겠냐?”
“그럼 오빠 후계자 되면 이하은이 하는 광고 다 나 줘.”
“까짓거 그래.”
“진짜지?”
“그래. 그러니까 빨리 오빠 좀 즐겁게 해봐.”
“기다려. 오늘 죽었어.”
인형은 병현에게 달려들었다.
* * *
지아는 오전 내내 멍한 채로 꽃집을 지켰다.
일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아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정신 차리자.”
힘을 써서 몸을 고단하게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지아는 화분 정리를 시작했다.
밖에 있는 화분을 들고 낑낑대며 안으로 들여놓는데, 뒤에서 불쑥 누군가 나타났다.
“이것만 들면 되는 건가?”
강현이었다.
그는 불쑥 나타나 화분을 덥석 뺏어 들더니 꽃집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보며 지아는 인상을 구겼다.
“여기 왜 온 거예요? 이리 줘요.”
강현이 대꾸도 안 하고 계속해서 화분을 옮기자, 지아는 그에게서 화분을 뺏었다.
“차강현 씨!”
“내가 어떻게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