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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37화 (37/94)

37화

이 사람이 왜…

지아는 벨소리가 제 휴대전화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허둥지둥 휴대전화를 살폈다.

이미 전원이 꺼져 있는 휴대전화를 확인한 지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 맞다, 나 아까 휴대전화 껐지….’

진정하고 다시 귀를 기울이는데, 남자가 휴대전화를 받으러 갔는지,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지아는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들킬까 봐 문을 살짝 열고 닫았지만, 거실로 나온 강현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미간을 좁혔다.

“……?”

강현은 수상한 낌새가 느껴져 인터폰으로 밖을 살폈다.

지아는 인터폰 불빛이 들어오자, 재빠르게 몸을 벽에 붙였다.

‘들켰나?’

한참을 숨죽이고 있던 지아는 인터폰 불빛이 꺼지자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자 지아는 코너로 숨어 숨을 죽였다.

지아의 움직임에 센서등이 켜졌다.

강현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누구야?”

그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리자, 지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남자의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지아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에 강현은 걸음을 멈칫했다.

지아는 몸을 숨긴 채, 말을 이어갔다.

“죄송해요. 꽃다발을 놓고 간다는 게…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절대 마주치지 말라는 말만 생각이 나 지아는 얼른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뒤늦게 강현도 나가 보려고 했지만,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나갈 수가 없었다.

“근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는 착각일까?

복도가 울려서 정확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에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수상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했으니 집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집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나온 지아는 그제야 제대로 숨을 골랐다.

지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을 바라봤다.

“마주치지 말랬는데 어떡해… 그냥 인사는 할 걸 그랬나? 당황해서 그냥 도망쳐버렸네… 변태로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서둘러 걸음을 옮긴 지아는 얼른 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는 꺼놨던 휴대전화를 켰다.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영지였다.

지아는 지친 기색으로 영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영지가 전화를 받았다.

- 어디야?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생사를 오갔어.”

- 무슨 소리야?

지아의 얘기를 들은 영지는 숨넘어갈 듯 웃어댔다.

- 이게 뭐야… 첩보 영화 찍어?

“진짜 첩보 영화 찍었다니까… 너한테 전화 왔을 때는… 나 진짜 죽었구나 생각했단 말이야.”

- 이왕 이렇게 된 거 얼굴이라도 보고 오지.

“절대 마주치지 말라고 했잖아. 게다가 그 사람 샤워하고 나온 거였단 말이야… 옷이라도 안 입고 있으면 어떡해….”

- 옷 안 입고 현관 나왔겠냐?

“그런가? 몰라… 너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 그냥 도망쳤다니까. 근데 왜 전화했어?”

- 오늘 불금인데 한잔해야지? 근데 치킨집 문 닫았어. 딸 생일이라고 문 닫으셨나 봐.

“그럴 수 있지.”

- 아! 나 치킨집 아들 봤잖아. 그 아들 글쎄….

“야, 너 그 얘기 시작하면 우리 통화 안 끝나. 나 우선 이 근처를 얼른 벗어나고 싶거든? 장소 정해지면 연락 줘. 남은 얘기는 그때 하자고.”

- 그래, 그러자. 우선 가게로 와.

“어.”

지아는 통화를 끝내고, 좀 전에 놀랐던 속을 숨 고르기로 달랬다.

“우선 여기를 벗어나야겠어.”

지아는 시동을 걸고,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 * *

기순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강현을 발견했다.

“이제 와?”

“네. 오늘 너무 아름다우신데요?”

“아름답긴….”

강현의 편안한 츄리닝 차림을 보고 기순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잠잘 준비 하고 온 거지?”

“네. 오늘 재워주세요.”

“당연히 재워줘야지. 오늘 실컷 먹어. 살 빠진 거 보면 맘이 안 좋아.”

이때, 강현이 뒤로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선물이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어머, 이게 다 뭐야?”

기순은 꽃다발을 끌어안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꽃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당연히 알죠. 생각해 보니까 제가 어머님 생신에 한국에 있는 게 올해가 처음이더라고요.”

“맞아. 그랬네. 바쁜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어? 이건 뭐야?”

꽃다발 안에 카드가 있는 걸 보고 기순은 눈을 반짝였다.

“카드?”

“네, 뭐….”

카드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꽃다발을 가져다준 아까 그 여자가 카드를 줬길래… 강현은 간단하게 카드를 적었다.

<늘 감사합니다. 생신 축하드려요.>

아주 간단한 말이었지만, 강현이 이런 걸 준비하는 성격이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기순은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고, 너무 감동이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줘서 내가 감사하지. 얼른 들어가자.”

“네.”

기순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강현이 왔어요.”

잠시 후, 생일 주가 오고 가고, 생일 축하 자리가 무르익자, 수다도 열이 오르고 있었다.

“진짜 약국 여자가 나를 ‘아….’이러면서 이렇게 쳐다봤다니까?”

“왜 그렇게 봤을까?”

“모르지… 암튼 기분 나쁜 눈빛이었어.”

지석이 투덜대자, 하은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약국 남자 눈빛이 마음에 안 들던데….”

“약국 남자?”

“응. 그 여자 남편. 나만 보면, 이러고 이러고, 노려본다니까.”

듣고 있던 기순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둘 다 왜 우리 애들한테 그래?”

“그러니까 엄마! 그리고 그 남자 진짜 이상한 게.”

“또 뭐가 이상한데?”

지석이 눈을 밝히자, 하은이 예리한 척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분명히 부인도 있으면서, 여기 꽃집 있지? 꽃집 사장한테 엄청 다정하게 구는 거 알아?”

“꽃집?”

“어. 나는 이러고 째려보면서, 꽃집 볼 때는 아주 꿀이 뚝뚝 떨어져.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약국 그 남자, 꽃집이랑 부부인 줄 알겠더라니까.”

“무슨 소리야? 그런 사이 아니야. 약국 여사장이랑 꽃집 사장이랑 얼마나 친한데… 약국 남사장이 워낙 모두에게 친절하잖아. 그리고 난 꽃집 사장, 우리 지석이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지석이?”

하은이 위아래로 쳐다보자, 지석이 발끈했다.

“그 눈빛 뭐야?”

“아까 약국 여사장도 나처럼 쳐다봤냐, 혹시?”

“뭐라는 거야? 지금 누나 말은, 내가 별로라고?”

“꽃집 사장님 눈 높을 거 같던데?”

“아니, 도대체 그 꽃집 사장님이 어떻길래 나한테 이래?”

“CEO인 거잖아. 그 외모에 그 몸매에 그 능력이면… 남자 보는 눈 높지 않겠어?”

하은의 말에 기순이 더 발끈했다.

“넌 네 동생이 어디가 어떻다고 그래? 우리 지석이 정도면 일등 신랑감이지.”

“엄마, 누나가 진짜 날 무시한다니까?”

“딸, 내 아들 무시하지 마.”

“무시한 게 아니라 객관적인 눈이지. 그 꽃집은… 그래, 강현이가 더 잘 어울리겠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현이 흠칫했다.

“나?”

“너도 재혼해야지. 너네 집에서는 재벌 집 딸이랑 재혼하라고 하려나?”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네가 꽃집 소개받아.”

“됐어. 약국 남자랑 바람피우는 거 같다며?”

강현의 말에 기순이 더 발끈했다.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런 사이였으면 내가 지석이 소개시켜주려고 했겠어? 얘가 넘겨짚는 거야. 꽃집 사장 그런 사람 아니야. 약국 남자 사장도 그럴 사람 아니고.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데.”

기순의 칭찬에 하은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쭉였다.

“좋긴… 아, 맞아. 그 약국 남자! 나 방송국에서 마주쳤어. 라디오 하러 갔다가. 방송하더라?”

“아, 그래? 개인방송도 한다던데 라디오까지 하는구나.”

“엄마, 그 남자가 개인방송을 해?”

“응. 훈남 약사로 유명하다던데?”

“유명해?”

하은은 얼른 ‘훈남 약사’를 검색했다. 검색을 누르자마자 영준의 얼굴이 떴다.

“헉… 진짜네?”

영준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훈남 미소를 짓자, 하은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이 남자 이 표정… 이거 가식이야. 방송 이렇게 하는 거 아니지. 진실성이 있어야지 말이야.”

“누나는 진실성 있고?”

“그럼, 당연하지. 이렇게 가식 떨진 않아.”

“가식? 나도 좀 보여줘 봐. 내가 가식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겠어.”

지석이 휴대전화를 뺏어서 영준의 얼굴을 봤다.

“이 남자 얼굴이 좀….”

고개를 갸웃하는 지석을 보며, 하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내 말이 맞지? 가식적으로 생겼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지석은 화면을 더 크게 해서 영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내가 이 얼굴을 어디에서 봤더라?”

“여기 앞에 약국이니까 오다가다 얼굴 봤겠지.”

“그런가?”

지석은 영준의 얼굴을 보면서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때였다.

“헉!”

지석이 깜짝 놀라자,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를 바라봤다.

“왜 그래?”

“그게….”

지석은 얼른 강현에게 영준의 영상을 보여줬다.

“형, 이거 봐.”

“왜?”

강현도 영준의 영상을 보고 얼마 안 있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그렇지, 맞지?”

“이 사람이 왜….”

강현은 혼란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고, 지석은 하은을 보고 물었다.

“이 남자 진짜 여기 약국 남자야?”

“응, 왜?”

“결혼을 했다고?”

“응. 엄마, 이 남자 결혼했다며?”

“응, 약국 부부잖아.”

그 말에 지석은 강현을 쳐다봤다.

혼란스러움에 멍해진 강현이었다.

“유부남을 만났다는 건가?”

“누가? 무슨 소리야? 이 남자 진짜 여자 있어? 꽃집 아니고?”

“아, 지금 꽃집이라고 했어?”

“어, 왜?”

“설마….”

지석은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졌다.

“꽃집 사장님 얼굴이 혹시….”

지아의 사진을 찾은 지석은 하은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혹시 이 사람이야?”

“어… 네가 왜 꽃집 사장님 사진을 갖고 있어?”

지석은 힘이 풀린 채, 강현을 다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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