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밀어냈어야지
지아는 화들짝 놀라 전화를 끊었다.
영지의 전화였다.
다시 그의 몸을 닦아내고 있는데,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또 안 받으면 계속 걸려 올 것 같아 지아는 어쩔 수 없이 강현의 이마 위에 수건을 올리고는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너 목소리가 왜 그래?
강현이 깰까 봐 목소리를 작게 낸 건데, 영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또 물었다.
- 너 어딘데 전화를 그렇게 받아?
“나 지금 통화 좀 힘들거든? 나중에 전화할게.”
- 왜? 너 어딘데? 아직도 그 집이야?
“영지야, 내가 이따가 전화할게.”
지아는 영지의 전화를 끊고는, 혹시라도 또 전화가 걸려 와서 그가 깰까 봐 휴대전화 전원까지 아예 꺼버렸다.
지아는 조심스럽게 그의 방문을 열었다.
아직도 자고 있는 강현을 발견하고 지아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미지근한 물로 적신 수건을 하나 더 가지러 욕실로 향했다.
한편, 지아와의 통화를 끝낸, 영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지?”
“왜?”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돌아와 빠르게 약사 가운을 걸치고 일할 준비를 마친 영준은 영지에게 다가갔다.
“지아가 뭐래?”
“나중에 전화하겠대.”
“나중에? 왜 나중이야?”
“모르겠어. 통화하기 힘들대.”
“지금 어딘데? 아직 그 집이래?”
“그것도 모르겠어.”
영준은 답답한 마음에 지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
“왜 그래?”
“전원이 꺼져 있어. 아까 통화에서 뭐라고 했다고?”
“별말 안 했어. 지금 통화 힘들다고… 이따가 전화한다고… 어? 진짜 무슨 일 있나?”
영준은 혹시나 싶어서 지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역시나 전원이 꺼져 있었다.
영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지아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고, 계속 전화를 걸던 영준은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운을 벗었다.
“안 되겠다. 가봐야지.”
* * *
괴로운 신음을 내던 강현은 점점 상태가 좋아지는지, 숨소리가 조금 편안해졌다.
지아는 체온계로 열을 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조금씩 열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도가 보이는 것 같아, 지아는 더 열심히 그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근데 이번엔 목이 마른지 그가 입술을 옴짝거렸다.
지아는 얼른 주방으로 가 물을 가져왔다.
수건을 받치고 그에게 물을 주는데, 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목이 마르면서도 강현은 물을 받아먹지 못하고 있었다.
지아는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짓깨물었다.
“제발요… 조금만… 목마르잖아….”
땀을 많이 흘려서 탈수에 걸릴 것 같은데… 물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자꾸만 받아 마시질 못하는 강현을 보며, 지아는 애가 타들어 갔다.
“어떡하지?”
지아는 잠시 망설이고는, 물을 한 모금 입에 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려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 안에 있는 물을 천천히 조금씩 그에게 전달했다.
다행히도 강현은 물을 곧잘 받아먹었다.
그래도 목이 마른 지 강현이 물을 찾자, 지아는 또 한 번 입에 물을 머금고는 그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입으로 그에게 물을 전달하는데, 그 순간이었다.
강현이 강한 힘으로 입술을 빨아 당겼다.
당황한 지아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뒤통수까지 잡고 입술을 맞물리는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아픈 상태였는데도, 지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힘이 더 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팔을 뻗은 강현은 이젠 지아를 침대로 끌고 들어갔다.
지아는 강현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그의 손길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입술은 떨어질 줄 모르고, 그의 손길은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뜨거운 그의 혀가, 그의 몸이 저항할 마음까지 녹여버리고 있었다.
어느새 옷을 벗어 던진 그의 뜨거운 몸이 맨살에 닿자 지아는 발끝까지 전율이 올랐다.
땀을 흘린 그의 체취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의 체취를 맡고 나니 지아는 알 수 있었다…
그를 보고 싶어 했었다는 걸… 그가 그리웠다는 걸….
지아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꾹 참았다.
한참 동안 입술을 탐하던 그가 목덜미로 입술을 내리고, 쇄골을 자극했다.
신음을 참고 있던 지아는 점점 더 진해지는 그의 손길에 참지 못하고 거칠어진 숨결을 토해냈다.
“하아… 강현… 강현 씨….”
지아의 목소리에 반응한 듯, 입술을 붙여오던 그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지아도 순간적으로 눈을 키우고 눈동자를 굴렸다.
고개를 내렸던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빛이 부딪히는 순간, 강현도 지아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의 눈빛이 혼란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몸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꿈인 줄 알았는지 강현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눈앞에 있는 지아를 보고 강현은 입술을 짓깨물었다.
“당신이….”
“강현 씨….”
“이게… 이게….”
강현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내리깔았던 눈을 치켜떴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짐을 가지러 왔어요….”
강현이 그다음 말을 원하는 눈빛을 보내자, 지아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당신이 아픈 것 같아서… 열이 나고 그래서….”
“당신이 왜!”
“강현 씨….”
“내가 아프든 열이 나든 당신이 왜….”
강현이 이를 갈고 으르렁대자, 지아는 겁에 질려 작게 숨을 삼켰다.
“당신이 아프니까….”
“내가 아픈 게… 그게 당신이랑… 하아….”
강현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지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강현 씨….”
“지금 뭐 하는 거야?”
“모르겠어요….”
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눈을 바라봤다.
강현은 지아를 노려보며 숨을 삼켰다.
“내가 덮쳤다 해도 피했어야지….”
“…….”
“피했어야지… 밀어냈어야지, 윤은서… 밀어내라고!”
애원에 가깝게 울부짖는 강현을 보며, 지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몰라, 모르겠어. 모르겠어요… 모르겠어….”
강현은 움직임을 멈춘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밀어내야 하는데… 자신이야말로 밀어내야 하는데… 그녀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지아가 목을 더 세게 끌어안자 이를 꽉 다문 강현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그녀의 안을 단숨에 파고들었다.
“흐읏….”
“하아….”
욕망을 그녀의 안, 끝까지 밀어 넣은 강현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안 끝까지, 그녀의 안 가득히. 닿을 수 있다면 더… 채울 수 있다면 더… 강현은 조금의 거리도, 간극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파고들었다.
모든 말초신경이 곤두서고,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이 그녀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말도 안 되고, 이해도 가지 않았지만, 지아의 앞에서는 늘 모든 이성이 무너졌다.
역시나 여전히, 그녀의 앞에서 무너지는 이성을 강현은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이건 분노인지, 욕망인지, 원망인지, 미련인지, 애증인지… 그리고 이 순간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분명한 건, 지금 그녀를 밀어낼 수 없다… 지금은 밀어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 *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지아는 간신히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는데, 강현은 없었다.
출근한 건가?
거실에 있나?
몇 시지?
지아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대전화를 집어 화면을 켰다.
8시 2분.
그가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지아는 눈을 비비고 수십 통의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도착한 걸 확인했다.
영지와 영준이 번갈아 가며 남긴 거였다.
그때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영지였다.
강현의 전화가 아니라는 것에 순간적으로 실망을 한 지아는 제 반응이 또 잠깐이지만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요란한 벨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지아는 전화를 받았다.
- 야!
전화를 받자마자 영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럴 것을 예상했지만, 예상하고도 깜짝 놀란 지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 미안해.”
- 너 지금 어디야?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어디야?
“여기?”
지아가 선뜻 대답을 못 하자, 영지가 다시 물었다.
- 어디냐니까?
“강현 씨랑 같이 있었어.”
- 뭐?
영지는 옆에 누가 있는지 목소리를 낮췄다.
- 너 미쳤어? 말이 돼? 우선 빨리 와. 오빠가 너 당장 데리러 간다는 거 겨우 말렸어.
“진짜? 미안해… 갈게. 안 그래도 수업 있어서 가야 해.”
- 너 와서 얘기해.
“알았어.”
전화를 끊은 지아는 다시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강현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간밤에 지아는 쉴 틈 없이 안을 채워주던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강현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안을 뿐.
아직도 그의 체취가, 그가 준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지아가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강현이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방으로 들어온 강현을 보고, 지아는 눈을 껌뻑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회사 안 갔어요?”
“문 실장 오기로 했어. 계속 그렇게 있을 건가?”
강현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이불을 두르고 있는 지아를 빤히 바라봤다.
“난 상관없지만.”
“……?”
잊고 있던 그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아니, 화가 난 건가?
간밤에 느꼈던 그의 온도와 너무 달라 지아는 당황스러웠다.
강현이 방을 나가려고 돌아서서 문을 열자, 지아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만요, 강현 씨.”
“……?”
돌아보는 그의 눈빛에 지아는 얼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