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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15화 (15/94)

15화

네가 좋아하는 거라며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서는 늘 달콤한 갈비 냄새가 났다.

엄마의 옷에서 머리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 갈비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지아가 먹을 수 있는 건 엄마가 갈비집에서 가져온 남은 밑반찬뿐이었다.

그것도 감사하게 먹었다. 종일 빵만 먹으면서 버텼으니, 그것도 꿀맛이었다.

그러다 엄마가 남은 갈비라도 싸오는 날은 정말이지 천국이었다.

그렇게 먹을 건 일하는 갈비집에서 가져온 음식들로 충당했고, 여관비는 일당으로 근근이 내며 버텼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여관에 있을 때 위험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흐릿한 기억 속, 일하다 말고 달려온 엄마 품에서 울었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럴 때마다 여관을 또 옮기고, 여관 갈 돈이 없으면 찜질방, 그마저도 돈이 부족할 때는 어디 남의 밭 정자에서 몰래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지아를 데리고 보육원으로 갔다.

이제 여기에서 살아야 한다며, 진짜 이름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이름을 말하면 아빠가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아빠가 찾으러 오는 건 죽어도 싫었다. 정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엄마는 보육원에 아빠도, 엄마도 없다고 말하라고 했다. 생일도 말하지 말고, 어디 살았었는지도, 아무튼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버려졌고, 그리고 만났다.

보육원 앞에서 준우 오빠를….

그날 오빠도 버려졌다.

아니, 오빠는 자기 발로 직접 찾아왔다.

버려지기로 했다고 했다.

특이한 오빠였다. 버려진 건 버려진 거지, 버려지기로 한 건 뭔지… 엄마, 아빠가 없는 건 똑같은 거 아닌가?

아무튼 그 오빠는 자기도 버려졌으면서 날 달랬다.

귀찮아하면서도 준우 오빠는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꽃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실려 온 꽃잎을 만지며 미소 짓자, 오빠가 물었다.

“꽃 좋아해?”

“응, 난 꽃 좋아해.”

이제야 울음을 그치고 좀 대화가 될 것 같자, 오빠는 또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엄마가 아무것도 말하지 말랬어. 말하면 큰일 난다고… 헉!”

지아가 놀라서 제 입을 틀어막자, 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엄마가 엄마 있다고 말하지 말랬는데….”

“난 어차피 너네 엄마가 너 버리는 거 봐서 알아. 너 엄마 있는 거.”

“오빠, 그거 말하면 안 돼. 엄마가 말하면 안 된댔어.”

“알았어. 말 안 해.”

“고마워.”

지아가 고개를 다시 푹 숙이자, 준우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봤다.

“아… 그럼 널 뭐라고 부르지?”

“휴우….”

한숨을 내쉬며 애꿎은 꽃잎만 괴롭히고 있자, 오빠는 물었다.

“너 꽃 좋아한댔지?”

“응.”

“어떤 꽃 제일 좋아해?”

“프리지아. 오빠, 그 꽃 알아?”

“알지. 노란 꽃 말하는 거지? 프리지아?”

“응. 우리 엄마도 그 꽃 좋아하는데….”

지아가 또 울먹이려고 하자, 준우는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럼… 네 이름, 지아 어때?”

“지아?”

“이름을 프리라고 할 순 없잖아. 그래서 지아. 네가 좋아하는 거라며 프리지아.”

“아… 프리지아의 지아?”

“응.”

“좋아. 지아 좋아. 나 지아라고 불러줘. 근데 나 무슨 지아야?”

“성은 그냥 원래 네 거 써.”

“안 돼.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랬어. 오빠는 성이 뭐야?”

“권.”

“나 그럼 권지아할래.”

“……?”

“나 오빠 동생 할래. 나 오빠도 좋아.”

“뭐… 맘대로 해라.”

그때, 준우 오빠가 웃는 걸 보며 지아도 함께 웃었다.

그리고 그날이 지아의 생일이 됐다.

그래서 지아는 생일 때만 되면, 이렇게 프리지아를 볼 때면 준우가 생각났다.

어디에 있을까?

잠시 감상에 젖어 있는데, 영지의 목소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야, 너 호적 정리는 안 해?”

“야….”

“왜?”

“아무것도 아니야.”

“호적 정리 안 하냐고.”

“그 생각만 하면 머리 아파. 내 생일인데, 그 얘기는 안 하면 안 될까?”

“해결할 건 해결해야지.”

“이럴 때 보면 너 영준 오빠 동생 맞아.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야.”

“넌 감성의 꽃밭을 뛰노는 물러터진 소녀고?”

“물러터진은 빼지?”

“물러터졌으니까 해결할 걸 안 해결하고 이러지. 얼른 호적부터 정리해.”

“할 거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골치가 좀 아플 뿐이야.”

“그 입양된 집에 가서 호적 정리하고, 은서는 사망신고하고, 그럼 끝.”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그래도 해야지. 힘들면 내가 같이 가줄게. 피하지 말고, 얼른 정리하자.”

“알았어… 해야지. 우선 그 집을 찾아가긴 해야 하는데….”

이때, 지아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다.

* * *

“이 꽃인가요?”

“네.”

강현의 집에서 프리지아를 챙긴 지석은 아까부터 옥산댁이 영 불편한 행동과 표정을 짓는 걸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네? 뭐가요?”

“아까부터 서재 문 앞에만 서 계시잖아요.”

“아, 제가요?”

아닌 척 시치미를 떼면서도 옥산댁이 여전히 서재 문 앞을 버티고 서 있자, 지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옥산댁 앞에 섰다.

“지금 좀 수상하신 거 알고 계시죠?”

지석의 물음에 옥산댁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렸다.

“네? 뭐가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아까 제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서재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오셨죠?”

“네? 제가요?”

지석이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오자, 옥산댁이 서재에서 뛰어나왔었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마치 들켜서는 안 될 걸 들킨 것처럼 놀란 눈으로.

은서가 집을 나갈 때 옥산댁도 같이 정리를 했었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받아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여기고 놔둔 게 화근이었나?

지석이 계속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자, 옥산댁은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다.

“볼일 다 보셨으면 가보셔야죠? 꽃 시들면 어떡해요?”

“꽃을 걱정하시는 게 아니라, 제가 여길 들어갈까 봐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뇨, 전혀….”

“아, 그래요? 그럼 제가 좀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안 돼요!”

“왜 안 되죠?”

“여긴 본부장님 서재니까요. 본부장님께서 외부인은 절대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사님도 들어가시잖아요.”

“저야 청소를 해야 해서….”

“그럼 저는 업무를 봐야 해서!”

지석이 옥산댁을 밀어내고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옥산댁이 혼비백산 따라 들어와서는 책상을 가리고 섰다.

“지금 청소 중이었어요. 조금 어수선할 텐데… 뭐 찾는 거 있으면 제가 찾아드릴까요?”

옥산댁의 뒤로 보이는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놓여있고, 거기엔 무언가 연결이 되어 있었다.

“청소가 아니라… 무슨 작업을 하고 계셨나 보네요? 본부장님 서재에서?”

“네? 아, 아니 그게….”

옥산댁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뒷짐 진 손을 움직였다.

옥산댁의 어깨가 들썩이자, 지석이 인상을 팍 썼다.

“허튼짓하지 마시고, 비키시죠. 사람 부를까요?”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 손에 쥔 거 내놓으시죠. 험한 꼴 당하고 뺏기기 전에.”

“…….”

“사람 부를까요? 그냥 내놓으실래요?”

옥산댁은 입술을 짓깨물고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지석은 옥산댁이 손에 쥐고 있던 걸 뺏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물건이었다. 단추 같기도 하고….

“이거 뭡니까?”

옥산댁이 대답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이자, 지석은 손톱만 한 물건을 다시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러자, 옥산댁이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제발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본부장님께는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여사님….”

“본부장님께 말씀만 안 하시면… 제가 큰 사모님께 말씀드려서 큰 거 한 장! 아니 두 장이라도 드리라고 할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정말 다시는….”

“이거 큰사모님과도 관련이 돼 있는 겁니까?”

지석의 지적에 아차 싶었던 옥산댁은 입술을 말아 물고는 더 싹싹 빌었다.

“제가 미쳤나 봐요. 큰사모님은 아무 상관 없어요.”

지석이 노트북에 뜬 파일을 열어 재생시키자, 강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옥산댁은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살려만 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제발요… 잘못했습니다.”

지석은 정지 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본부장님.”

* * *

지석에게 보고를 받은 강현은 그동안 알고 있던 진실이 흔들리고 있음에 분노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버릇이… 이 사달을 일으킨 것이었다.

지석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사님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어디 있지?”

“아직 본부장님 집에 있습니다. 지시 내려주실 때까지 감시하라고 해놨습니다.”

“전화 연결해. 녹음 켜놓고.”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옥산댁과 전화 연결이 되자, 강현이 전화를 바꿨다.

“지은 죄는 이미 잘 알고 계실 테니, 묻는 말에만 대답하십시오.”

- 네….

“저를 감시하고 녹음하라는 지시를 이경옥이 한 게 맞습니까?”

- 네….

“결혼 생활 내내… 아니 그전부터 감시를 했던 겁니까?”

- 그전에는 아니었고… 결혼하시고… 후계자로 거론되시고부터….

“그럼 그때부터 계속 이경옥에게 저에 대해 보고를 했고요?”

-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제발 살려주세요….

경옥의 아들인 병현이 강현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일은 다반사였다. 거의 성사된 거래도,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밀리에 만남을 가진 자리에 병현이 나와 있던 적도 있었고.

이 모든 시기가 결혼과 겹쳤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은 어딜 가지 못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은서를 의심했고, 미워했다.

지석의 보고를 들어도, 정황상 은서라는 게 너무 분명해서… 그래서 의심했다. 너무 당연하게.

어쩌면 은서라고 이미 단정 짓고 모든 퍼즐을 거기에 끼워 맞췄는지도 모르겠다.

숨을 고른 강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윤은서도 함께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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