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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7화 (7/94)

7화

엄마 윤은서, 아빠 차강현

“어머님이 말씀하시면 바로 대답해야지… 진짜 왜 그래요?”

“……?”

“표정은 또 왜 그러니? 내가 물어본 게 불만이라는 거니?”

“아뇨.”

그냥 차라리 대놓고 ‘너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젠 괜한 사람 표정이나 트집을 잡으니….

별걸 다 시비 거는 경옥과 채영을 향해 은서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해세요. 제 표정이 안 좋았나요?”

웃는 얼굴에 곧 침 뱉을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경옥이 혀를 끌끌 찼다.

“웃는 것도 어쩜… 내가 널 보면, 좋던 기분도 나빠져. 채영이 봐라. 보기만 해도 화사해지고 절로 미소 지어지는 거. 근데 너는….”

채영이 얄밉게 말을 거들었다.

“어머님, 사람 표정 어디 하루아침에 안 바뀌는 거랬어요. 그게 살아온 환경이 묻어나는 거라고 했거든요.”

“하긴….”

경옥이 은서를 향해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채영이 더 밝게 미소 지었다.

“안 그래요?”

채영이 묻자, 은서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기분 나빠하는 내색 없이 여유까지 느껴지는 은서를 보며 채영은 이를 갈았다.

“지금 그 웃음, 무슨 뜻이에요?”

“……?”

채영이 씩씩대자, 경옥은 은서를 흘겨봤다.

“넌 좀 올라가 있어라. 나 채영이랑 할 말이 있으니까.”

은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2층 강현의 방으로 올라갔다.

늘 이 집에 오면 강현의 방 아니면 주방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 집 식구들은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은서에게는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은서가 방에 들어가 쉬고 있는데, 이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은서가 대답하자 문이 열렸고, 채영이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 얘기 좀 해요.”

“그래요.”

“왜 사사건건 그렇게 웃어요?”

“내가 어떻게 웃었는데요?”

“여유 넘친다는 듯 웃었잖아요. 사람 깔보듯이.”

“글쎄요. 그렇게 웃은 적이 없어서….”

“까불지 마.”

“……?”

채영은 툭하면 자기가 나이가 더 많다고 은서에게 반말을 했다.

역시나 둘이 있으니 본색을 드러내는 채영이었다.

“다시 말해줘? 까불지 말라고. 차강현이 나이가 많다고 후계자 될 것 같아? 너 같은 게 옆에 있는데 될 리가 없는 거잖아, 안 그래?”

“하….”

“네가 릴브리즌 대표를 만나고 왔다고 아무리 여유로운 척 까불어도, 후계자 자리는 내 남편 거야. 아무리 차강현이 날고 기어도 안 된다고. 알겠어?”

“동서, 초조해?”

존댓말을 쓸 필요성을 못 느낀 은서가 반말로 여유롭게 응대하자, 채영은 이를 갈았다.

“초조? 누가 초조하다는 거야?”

“남편을 못 믿나 봐, 동서?”

“뭐, 뭐야?”

“지금 그런 거잖아? 남편 능력을 못 믿어서 이렇게 날뛰는 거 아닌가?”

“이게 정말?”

채영이 손찌검을 하려고 손을 올렸지만, 은서에 비해 키가 10센치 이상 작고 몸도 더 왜소해서 그건 불가능했다.

은서가 채영의 손을 잡고 눈싸움을 하는데,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러자 은서가 잡았던 채영의 손을 홱 놓았다.

문이 열리고, 강현이 들어왔다.

“가자.”

“네.”

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방에서 나왔고, 강현은 아직도 방 안에 있는 채영을 바라봤다.

“뭐 합니까? 남의 방에서 안 나오고?”

채영은 차갑게 말하는 강현은 한번 찌릿 째려보고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채영을 확인한 강현은 은서를 바라봤다.

“…….”

“왜요?”

강현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 * *

집으로 가는 차 안.

운전 기사가 운전을 하고, 뒷자리에 앉은 강현과 은서의 사이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 창밖만 바라보다가, 은서가 강현을 바라봤다.

“저기 오늘….”

“……?”

강현이 살짝 고개를 돌리자, 은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들었어요? 동서랑 나랑 하는 얘기?”

“…들었으면?”

“오해하지 말아요. 그건 그냥….”

오해라….

은서가 변명을 하려고 하자, 강현은 미간을 좁힌 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가고 싶은데.”

“네?”

“듣고 싶지 않다고.”

“…네, 그래요.”

하긴, 아무리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고는 해도, 손아랫사람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걸 들었으니 그의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은서는 입을 다물었다.

* * *

- 옥산댁 일 똑바로 안 해?

“죄송합니다. 사모님….”

아침상을 치우고 작은 방에서 잠깐 쉬고 있던 옥산댁은 갑자기 걸려 온 경옥의 전화 때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 내가 일 똑바로 하라고 돈도 따로 챙겨주는데… 돈 받았으면 제대로 해야지. 옥산댁, 돈 필요 없어?

“죄송합니다. 사모님… 더 신경 쓰겠습니다.”

- 나 때문에 남편 허리 수술도 하고, 애들 교육도 시키면 잘해야지. 내 덕분에 먹고사는 거잖아.

일용직이었던 옥산댁의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추락해 허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었다.

안 그래도 힘든 형편에 남편 병원비에 아이들 대학 학비까지… 막막한 옥산댁에게 경옥은 검은 손을 내밀었다.

강현과 은서를 철저히 감시하라는 거였다.

행여 강현이 후계자가 될까 봐… 그의 약점을 잡고, 그가 성과를 이루기 전에 가로채기 위해서.

옥산댁은 어쩔 수 없이 경옥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날 이후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임신 초기라서, 제가 눈치를 못 챘나 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당연히 없어야지. 계속 이런 식으로 일 제대로 안 하면 나도 옥산댁을 계속 옆에 놔둘 수가 없어. 알지?

“네, 죄송합니다….”

- 옥산댁이 나랑 한 일이 있어서… 여기서 잘리는 순간, 다시는 도우미 일 못 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지? 먹고살아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네, 그럼요… 잘하겠습니다.”

- 그래, 두고 볼게.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아. 그것만 알아둬.

“네, 알겠습니다.”

다른 지시 사항까지 다 듣고 나서야 통화를 끝낸 옥산댁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임신은 왜 한 거야… 그리고 왜 티도 안 내? 하… 진짜 짜증 나서….”

옥산댁은 문 쪽을 찌릿 째려봤다.

* * *

출근 준비를 하는 강현을 돕던 은서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 늦어요?”

“늦어.”

“할 얘기 있는데….”

“해.”

“지금 할 건 아니고요. 이따 퇴근하고 봐요. 너무 늦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얘기 좀 해요.”

“그래, 그럼.”

강현이 출근을 하고, 방으로 들어온 은서는 휴대전화에 깔아둔 임신 앱을 클릭해 오늘의 상태를 적으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이… 6주 3일 되는 날이네. 빨리 말해야 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말할 수 있을까?”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하는데, 그가 자꾸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었다.

얼른 얘기를 해야 오해 없이 관계를 조절할 텐데… 은서는 제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배 속의 아이한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아빠한테 꼭 말할게, 기다려.”

배를 쓰다듬으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옥산댁이었다.

은서의 ‘네.’라는 대답을 듣고, 옥산댁은 안방 문을 열었다.

“큰사모님께서 차 대기시켰다고 30분 뒤에 집 앞으로 나오시래요.”

“왜요?”

“그건 모르겠어요.”

“네, 알겠어요.”

대답을 들은 옥산댁은 안방 문을 닫고 나갔고, 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또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건지…

지금 마음 같아서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이라도 더 자고 싶은데… 너무 움직이기 싫었지만, 은서는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어제 들고 나갔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맞다.”

은서는 가방을 집어 들고 화장대에 앉았다.

가방을 열자 산모 수첩이 보였다.

은서는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나오는 산모 수첩을 보물 다루듯 여러 번 쓰다듬고는 펼쳤다.

맨 첫 장, 아이 태명과 엄마, 아빠 이름을 적는 칸이 비어 있었다.

“엄마… 아빠….”

은서는 눈을 반짝이고는 화장대 맨 오른쪽 서랍을 열어 여러 개의 펜 중에 하나를 골랐다.

펜을 잡은 은서는 심호흡을 하고는 엄마 이름을 적는 칸에 윤은서라고 또박또박… 이게 뭐라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신중히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옆에 빈칸, 아빠 이름을 적는 칸을 바라봤다.

은서는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차… 강… 현.

엄마, 아빠 적는 칸에 이름을 적고 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 빈칸은 아이 태명을 적는 칸뿐이었다.

“태명을 뭐로 짓지?”

은서는 산모 수첩에 끼워뒀던 초음파 사진을 꺼내 여러 번 쓰다듬었다.

“아빠랑 상의해서 예쁜 태명 지어줄게.”

초음파 사진을 다시 산모 수첩에 끼워 넣고는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가방 안에 얌전히 챙겨 넣었다.

그러고는 가방 속에 있는 약병을 쥐었다.

“엽산이랑 비타민D랑, 유산균… 영양제, 더 사올 걸 그랬나? 영지한테 물어볼걸.”

은서는 산부인과에서 약을 받아오면서, 병원 근처 약국에 들러 배 속 아이한테 좋은 영양제를 사 왔다.

원래 영양제를 챙겨 먹는 버릇은 없었지만, 은서는 아이를 위해서 한 알 한 알 정성껏 삼켰다.

“건강해라.”

또 제 배를 쓰다듬으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네.”

“차 도착했답니다.”

옥산댁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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