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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6화 (6/94)

6화

달라진 사정

고급 주택이 즐비한 골목길, 그중에서도 단연 높은 담벼락이 인상 깊은 성문그룹 차 회장의 집 대문이 열렸다.

마치 성곽 문이 열리는 것처럼 서서히 열린 문으로 나온 빛이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고, 헤드라이트를 밝힌 최고급 세단들이 줄지어 대문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집 대문을 통과하고도 끝이 안 보이는 길을 따라 양옆으로 고급스러운 정원을 지나면 그제야 한옥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기능은 최신식으로 갖춘 대저택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래로 연결된 차고로 좀 전에 대문을 통과했던 최고급 세단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어서 와라.”

경옥은 온화하고 친절한 사모님 분위기를 풍기며 현관에 섰다.

근데 들어와야 할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고, 병현과 채영만 들어서자 미간을 좁혔다.

“왜 너희들만 오니? 강현이는?”

“몰라요.”

병현과 채영이 뒤를 돌아보는데, 이때 차 회장이 방에서 나왔다.

“왔냐?”

“네, 아버지.”

“아버님, 저 왔어요.”

“그래.”

인사를 나누는 동안, 현관을 더 쳐다보던 경옥은 차 회장을 바라봤다.

“여보, 강현이가 안 왔어요.”

“늦는대.”

“네?”

오늘 이 자리를 왜 마련했는데… 경옥이 티 안 나게 인상을 쓰고는 차 회장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일이 좀 늦는다네.”

“아, 그래요?”

또 무슨 일을 몰래 하는 건가 싶어 찝찝한 표정을 지은 경옥이 병현을 바라보는데, 순간 눈이 마주쳤다.

* * *

강현이 야릇한 손길을 멈추자, 은서는 억울하다는 듯 그를 노려봤다.

“하아… 미쳤어….”

“왜? 미치게 좋았나?”

민망해진 은서는 시선을 피했다.

“…이러다 늦겠어요.”

은서가 걱정하는데도 강현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그녀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은서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실크 슬립 위로 닿은 그의 손이, 가슴 위로 야릇하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은서를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늦으면… 하아….”

어쩔 줄 몰라하는 은서에 비해 강현의 표정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늦으면 뭐? 당신 몸이 이래서야… 늦을 수밖에 없잖아?”

“하아… 강현 씨….”

“벗어.”

“……?”

은서의 가슴 끝을 괴롭히던 강현은 한발 뒤로 물러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살짝 턱짓을 하고는 은서를 빤히 바라봤다.

벗으라고.

은서가 민망해하자,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기울인 강현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마치 은서를 괴롭히는 게 즐겁다는 듯이.

은서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강현은 바지 주머니에서 한쪽 손을 뺐다.

“내가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현은 은서의 실크 원피스 어깨끈을 손가락에 걸었다.

그의 손가락이 놀리듯 어깨끈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옆으로 툭-

반대편 어깨끈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옆으로 툭-

은서의 몸에 걸쳐져 있던 슬립 원피스가 바닥으로 스르륵 툭 떨어졌다.

“강현 씨….”

강현이 다가오자, 은서가 뒤로 물러나며 문 쪽을 살폈다.

“밖에 문 실장님 계시잖아요.”

“그럼 당신이 조용히 하면 되겠네.”

강현은 지석에게 은서에 대한 좋지 않은 보고를 받으면, 늘 이렇게 벌을 내리듯 그녀를 몰아세우곤 했다.

마치 포식자가 사냥하듯, 강현은 은서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즐겼다.

결국, 나중에는 그녀를 안는 거에 미쳐 좋아 날뛰는 자신의 모습에 경멸을 느꼈지만….

그의 속을 알 리 없는 은서는 자꾸만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등에 차가운 벽이 닿자 은서는 눈을 키웠다.

“강현 씨, 제발… 밖에 문 실장님이….”

은서의 나머지 말은 강현의 입속에서 묻혔다.

순식간에 은서에게 몸을 붙이고 빈틈없이 입술을 맞물리는 강현이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옭아매는 그의 강한 힘에 은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흐읏….”

은서의 신음이 커지자, 강현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소리를 내면 곤란하지 않나? 조용히 해야지.”

귓가에 속삭이는 말과 달리, 그의 손길은 은서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아… 강현 씨….”

은서가 매달리자, 강현은 그녀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하읏….”

말로는 그를 거부했지만, 제멋대로 달아오른 몸은 이미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강현의 움직임에 은서의 신음은 더 요란하게 허공에 번지고 있었다.

“하아….”

“쉿….”

조용히 하라면서 강현의 행동은 야한 소리를 유도하고 있었다.

“하읏… 하아….”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아득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는데, 점점 도가 지나칠 정도로 거칠어지는 그의 손길에 은서는 더럭 겁이 났다.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젠 배 속의 아가가 이런 못된 말을 함께 듣는다는 게 너무 싫었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들려주고 싶었는데….

배 속의 아기가 생각난 순간, 은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은서는 얼른 그의 손을 막았다.

“그만… 그만해요.”

그래도 강현이 손을 움직이려 하자, 은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

예민해진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은서는 그의 손을 밀쳐냈다.

“이런 거 싫어요. 이러지 말아요.”

은서는 강현을 거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한 적은 아마 처음일 것 같았다.

강현은 은서의 칼 같은 거절에 헛웃음을 지었다.

“윤은서가… 지금 안 된다고 한 건가?”

“저 그게… 이렇게는 싫다고요….”

무안해할 그에게는 미안했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시선을 피한 채, 은서는 그에게서 떨어져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자 강현이 은서의 옷을 또 거칠게 끌어당기며 으르렁댔다.

“벗어.”

“싫어요.”

“윤은서….”

“나 이제 이렇게는 안 할 거예요. 안 한다고요.”

눈동자가 떨렸지만, 은서는 강현의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 * *

강현과 은서는 결국 저녁 식사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차 회장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둘이서만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강현은 차 회장과 병현과 함께 서재로 향했다.

“릴브리즌 대표를 만났다고?”

“네.”

“곧 좋은 소식 있겠구나?”

“물론입니다.”

“네 엄마가 네 칭찬을 어찌나 많이 하던지… 오늘 저녁도 너 고생했다고, 좋은 거 먹여주고 싶다며 준비한 거니까 인사라도 한 번 더 하고 가.”

차 회장 앞에서는 착한 엄마인 경옥이었다.

강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고, 병현은 차 회장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차 회장은 그만 보채라며 눈짓하고는 강현을 바라봤다.

“근데 말이다. 다음에는 병현이도 함께 불러서 가도록 해. 이번엔 병현이 몰래 만났다고?”

예상한 상황이라는 듯, 강현은 덤덤하게 답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릴브리즌 측에서 비밀로 하길 원해서 그렇게 한 것뿐입니다.”

“그래도 가족이라면 비밀이 없어야지. 네 엄마는 이번 일에도 병현이 맘 상한 것보다 네 걱정을 하더라. 네가 괜히 마음 불편할까 봐 걱정이라면서… 하여간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이 약해서는… 네 엄마 성격 알잖아. 그러니까 동생 좀 챙겨.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게 네 엄마 소원이라는데 형인 네가 이러면 되겠어?”

앞에서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결국엔 차 회장에게 강현의 이미지를 안 좋게 심어놓는 경옥이었다.

그러고는 결국 차 회장이 강현을 다그치게 만드는 게 그 여자의 목적, 오늘 저녁 식사 자리의 목적이었다.

다시는 이런 짓, 자신의 아들 병현을 빼고 일을 진행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자리였다.

“내가 항상 말하지? 욕심 버리라고. 넌 욕심이 너무 많아. 병현이는 남이 아니다. 가족이야, 가족. 병현이 상대로 욕심내지 마. 챙겨야 형인 거다.”

“형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병현이 너도! 사업을 한다는 놈이 마음 좀 독하게 먹고, 사고 치지 말고 제대로 좀 해.”

“네….”

고분고분하게 기죽은 듯 답했지만, 고개를 숙인 병현은 티 안 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의도한 대로 강현이 혼나는 상황이 재미있는지, 병현이 자꾸 힐끔거리며 비웃는 게 느껴졌지만, 강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저 모자의 타고난 연기력이야… 익숙했다.

진실을 말해봤자, 경옥의 베갯머리 송사에 빠진 차 회장에게는 강현의 모든 말이 친엄마가 아닌 새엄마에 대한 반항, 비딱함 그쯤으로 늘 치부됐을 뿐이었다.

억울해도 억울해할 자격이 없었다. 더 이상 힘없이 휘둘리는 권준우로 살 순 없었다.

이 집에 들어오던 날, 권준우는 죽고, 차강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사방이 적이었고, 마음 둘 곳은 없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게 엄마가 바라는 일이고, 엄마를 위한 복수니까.

그래서 더 실력을 키웠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야말로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으니까.

성문그룹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거야말로 진정한 복수니까.

한편, 거실에 남아 있던 은서는 경옥, 채영과 함께 다과를 즐겼다.

채영과는 웃으면서 대화를 하던 경옥이 은서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뭐 하다가 늦게 온 거니?”

“네? 그게….”

“왜 말을 못 해? 또 뒤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강현이 놔주지 않았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는데, 경옥과 채영이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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