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회: 눈 위에 붉은 꽃 -->
“그만두겠다고?”
화연각 행수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기방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기생인 유경이 이제 그만두겠다는 말에 그녀가 적잖게 당황한 것이다.
물론 유경이 이 기방에 적을 두고 있는 기생은 아니다.
이곳에 강제로 붙들어둘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이다.
“기적은 어찌하려고?”
하지만 기방에 매여 있지 않더라도 기적에는 이름이 남는다.
한번 기적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이상 기적에서 이름을 빼는 것, 즉 면천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유력한 양반이 첩으로 들여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단순히 돈만 많다 하여 기생을 첩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반드시 양반이어야 했고, 첩으로 들어앉혀야만 기적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다.
“저를 첩으로 들이겠다는 분이 계십니다.”
“그것이 혹시...”
그제야 행수 기생이 짐작을 한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했다.
평소 그럴 위인이 아닌데 한성부 권세까지 사용해서 유경을 묶어둘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었다.
“이판관 나으리시냐?”
“네...”
행수 기생의 물음에 유경이 살며시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 분이라면야 더할나위 없기는 하지만...에휴...”
행수 기생이 낮은 한숨을 쉰다.
“이럴 때 그 나으리께서 계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행수 기생이 말하는 <그 나으리>가 누구인지는 유경도 알고 있었다.
우시영.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와 기생으로 만들어준 사내.
그 사내가 없었더라면 수윤과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추영과도 다시 인연이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그녀의 은인인 사내.
그러나 지금은 그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사내.
“잘 살거라. 내가 해줄 말은 그것 밖에는 없다. 잘 살거라.”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유경이 다소곳하게 인사를 한다.
그동안 행수 기생이 그녀를 어여삐 여겨 많은 편의를 봐주었던 것이 고마웠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하늘이 내리는 복 중의 복이라 하였는데 그녀가 새삼 자신에게 준 하늘의 복에 감사했다.
하늘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실상은 이렇게나 소중한 인연들을 그녀에게 허락한 것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늘이 허락한 인연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 인연들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것이다.
*
“으읏...읏...”
짙게 신음하며 유경이 허리를 젖혔다.
벽에 기대고 앉은 추영의 위에 올라앉은 유경이 그의 것을 받아들인 채로 몸을 움직였다.
녹을 것 같았다.
너무 뜨거워서 녹을 것만 같은 혀를 몇 번이나 주고 받으며 그녀가 추영의 목에 매달린 채로 그 위에서 허리를 움직였다.
“흐읏...”
하체가 섞이는 것처럼 두 사람의 혀가 섞였다.
이미 수없이 섞은 혀인데도 아직 느껴야 할 부분이 더 남아있는 듯 두 사람의 혀가 뜨겁게 엉겨붙었다.
혀가 섞이는 질척한 소리와 함께 그보다 더 지독하게 젖은 소리가 아래에서 피어 올랐다.
유경이 허리를 흔들 때마다 그녀와 그의 허벅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아아아!”
“으윽!”
몸에 찬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에서 추영이 허리를 쳐 올렸다.
깊은 곳까지 꿰뚫리는 감각에 유경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으응! 나으리!”
밀려 올라간 허리가 내려오기도 전에 다시 쳐올려지자 그녀가 추영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며 무너진다.
“하읏! 읏!”
정신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입술에서 헐떡이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뜨거운 숨이 추영의 가슴을 적셨다.
그녀가 몸을 기대어오자 추영이 그녀의 허리를 잡은 채로 더 격렬하게 움직인다.
“아아아아! 나으리...!”
유경이 아찔한 소리를 지르며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아래 쪽에서 확, 하고 뜨거운 것이 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던 추영의 손에서 힘이 빠지자 그녀가 그의 허벅지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
“하아...하아...”
땀투성이가 된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은 채로 숨을 헐떡였다.
벌써 세 번째 정사를 끝내고 지친 몸을 서로의 품 안에 맡기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내일 그대를 소개할 생각이오.”
추영의 말에 유경이 얼굴을 붉힌다.
이 남자는 정말 거침이 없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한번 정한 일에는 멈춤이 없다.
청혼을 수락하자마자 이 남자가 꺼낸 말이 그녀를 본가로 데려가 그의 양친에게 소개하겠다는 말이었다.
양반 중의 양반이라는 댁으로 기생을 데리고 가서 소개하겠다는 뜻이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지만 이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두 분 모두 좋은 분들이오. 그대를 반겨줄 것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오.”
이 남자의 성격이 이렇게 형성되기 까지는 분명 그를 양육한 양친의 영향력이 가장 클 것이다.
이 남자를 보고 있으면 그 양친의 성품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좋은 분들일 것이라고 유경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그 좋은 분들께 자신이 실망을 시킬까 염려가 될 뿐이다.
어떤 좋은 이들이라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기생을 아내로 맞겠다는 것을 좋아할까.
“밖에다 따로 살림을 차릴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싶었소.”
“왜...”
“그대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추영의 말에 유경이 입을 벌리고 말았다.
“가족...”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대에 대해 알아보았소. 송도 청연루에 있던 행수 기생 추월에게 그대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잃고 혼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소. 마땅히 받았어야 할 어머니의 사랑을 그대가 받지 못했으니 내 모친께 그 사랑을 대신 받았으면 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오.”
“나으리...”
“내 어머님은 자상하신 분이시니 분명 그대를 딸처럼 어여삐 여겨줄 것이오.”
이 남자의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무엇이 들어 있어서 이렇게나 그녀를 따뜻하게 만족시켜주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대가 누려야 했지만 누릴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이제 내가 그대에게 주겠소. 그대는 다만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그 품 안에서 유경이 살며시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는 행복하기만 하라는 그 말 앞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대가 행복해지는 것이 날 위해 그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니...”
이 태산 같은 남자의 사랑 앞에서 그저 눈물 외에는 보일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