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회: 눈 위에 붉은 꽃 -->
강한 팔이 몸을 감싸는 순간 유경이 입술을 빼앗겼다.
화연각이 아닌 곳에서 추영과 입 맞춘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화연각에 손님으로 오는 경우 외에는 추영과 한 번도 몸을 섞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 이곳에서 그녀를 안으려 하고 있었다.
문을 닫아 건 방 안은 그늘이 져 있지만 밖은 환했다.
근처에 다녀 온다고 나간 문한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안는 남자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으응...”
그녀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혀가 그녀의 혀를 휘감았다.
애써 밀어내려는 그녀의 옷깃을 그가 잡는다.
옷고름은 미끄러지듯 풀려 버렸다.
저고리가 벗겨지며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옷고름이 풀려지듯 그녀의 마음 역시 풀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추영이 생각했다.
마음을 묶고 있는 매듭이 이 옷고름과 같다면 풀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그 단단해 묶여 있는 매듭은 이렇게나 오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
“아아...나으리...”
유경의 달뜬 목소리에 추영이 목덜미를 빨아들이며 그녀의 농익은 가슴을 손에 쥔다.
투박한 손바닥 안에서 일그러지는 젖가슴 위로 뜨거운 숨결이 내려 앉았다.
그녀를 원하는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었다.
“이렇게나 그대를 원해. 그대를 원하고 또 원하는 데...”
뜨겁게 몰아쉬는 숨결이 그녀의 가슴으로 끼쳐왔다.
“아읏...”
단단하게 솟아버린 유두가 그의 입술에 머금어진 순간 그녀가 어찌할 수 없는 신음을 내버렸다.
“읏, 나으리...으읏...”
이 남자의 애무에 익숙해진 몸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주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매일같이 값 주고 산 남자다.
기방에 살림을 차렸냐는 염려어린 소리에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매일 퇴청을 한 다음 자기 집을 찾아오듯이 화연각을 찾아온 남자다.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이르도록 단 한번도 그녀를 다른 사내에게 내어주지 않았던 남자다.
매일 밤을 그녀를 취하고도 무엇이 그리 모자라는지 늘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봐왔던 남자다.
그녀를 독점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들려진 힘을 사용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은 남자가.
한양 기방들이 한성부 관할 하에 있다는 것을 십분 활용해서 화연각 행수로 하여금 유경을 다른 방으로 보내지 않게 압력까지 행사한 남자다.
알고 보면 그렇게 무서운 속내를 가진 남자였다.
조용한 외모 안에 그렇게나 집요한 소유욕을 가진 남자였다.
이 남자는 기다린다면 기다릴 것이다.
이 남자는 한다면 하는 남자인 것이다.
그것을 유경은 알고 있었다.
수윤과는 다르다는 것을.
무서울 정도로 수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런 남자에게 한번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끝이 나버린다는 것을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이 남자는 수윤이 그녀를 놓아준 것처럼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 남자는 그녀를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한번 잡히면...
달아나지 못하게 된다.
“하읏...나으리...여기서는...”
젖은 혀가 그녀의 유두를 탐하며 핥아 댄다.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방바닥에 눕혀진 채로 유경이 추영에게 몸을 맡겼다.
그녀의 가쁜 호흡 속에 열기가 배어나고 있었다.
거칠어진 두 사람의 숨이 점점 습기를 띠며 엉겨든다.
억누를 수 없는 신음, 옷자락이 몸에서 벗겨지는 소리, 그리고 젖은 혀가 살갗을 핥는 질척한 소리가 햇살이 스며드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아...!”
유경이 허리가 뒤로 휘었다.
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의 몸은 어쩔 수 없이 이 남자를 원하고 있었다.
마음이 가기 전에 먼저 몸이 알아버리는 것이다.
무섭도록 정직한 몸이 뜨거운 남자의 몸짓에 스스로를 열고 있었다.
추영의 손에 의해 그녀의 허벅지가 벌어지며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농염한 꽃송이가 드러났다.
*
“...”
방 안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뜨거운 신음에 문한이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잡것들이 왜 여기서 저 지랄 들이야?’
슬쩍 콧잔등을 찡그리지만 영 싫은 표정은 아니다.
내심 수윤 보다는 추영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던 문한이기 때문이다.
추영이 유경을 잡아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몇 달 전에 추영이 문한을 찾아와서 유경을 자신의 반려로 맞겠다 그리 당당하게 말할 때부터 수윤이 아니라 추영이 유경의 짝이었으면 했었다.
이제 그것도 딱히 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조금만 더 찍으면 유경이라는 나무 역시 넘어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또한 사람의 마음이기에 그 틈새만 비집고 들어가면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제 곧 유경이를 추영에게 시집 보내고 나면 또 혼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문한이 문득 쓸쓸함을 느꼈다.
전에는 시영과 둘이었지만 그가 떠나고 난 다음에는 유경을 의지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 유경 마저 떠나면 진짜 혼자가 되는 것이다.
‘나쁜 놈, 내 생각은 하지도 않겠지.’
풍문에 소문을 듣자면 조정에 출사를 했다고 한다.
새끼나 꼬던 놈이 조정에 출사했다는 말에 출세했다고 코웃음을 쳤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과는 멀어지는 것이다.
꿈에서라도 손 내밀 수 없는 높은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나 나버리지, 발병은커녕 잘도 위로 올라가네.’
속으로 꿍얼거리던 문한이 결국 다시 사립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방에서 들려오는 뜨거운 정사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배알이 틀리는 것이다.
어디 가서 누굴 잡고 술이나 푸자는 생각으로 문한이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
“나는 원래 겁이 없는 성격인데...”
거침 숨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고 있는 유경을 등 뒤에서 끌어안고 추영이 속삭였다.
“그대를 만나고 나서 겁이 많아졌다오...”
따뜻한 팔 안에 감싸인 채로 유경이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직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가쁜 숨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그대를 두고 내가 먼저 죽어버리면 어떡하나 겁이 나고, 나를 두고 그대가 먼저 가버리면 어쩌나 겁이 나고, 행여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겁이 나고, 내가 다치면 그대 마음이 상할까 싶어서 이제는 검을 잡는 것도 겁이 나니, 그대를 알고 나서 내가 겁쟁이가 되어버렸소.”
그 고백에 그녀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는 데 그 사랑에 대답을 돌려줄 수 없는 자신이 아픈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며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때 즈음, 그녀는 마음에서 수윤을 놓았다.
겨우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놓았다 하여 이 남자를 잡을 수는 없었다.
이 남자를 잡으면, 이 남자에게 갇혀버릴 것이기에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그대도 나 때문에 약해지면 안 될까...그 단단한 마음 이제 그만 약해지면 안될까...이 가엾은 나를, 이 겁 많은 나를 불쌍히 여겨서라도...”
대답 대신 유경이 그녀를 끌어안은 다정한 팔에 얼굴을 기댄다.
얼굴에 닿은 살갗의 느낌이 아늑했다.
겨울의 추위를 잊게 만드는 아늑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