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회: 그들, 그리고 사랑 -->
온 몸의 피가 머리끝으로 몰리는 느낌이라고 시영이 생각했다.
몸속의 피가 아우성을 치며 미친 듯이 날뛰는 느낌.
그 참을 수 없는 뜨거운 느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읏...”
그 소리에 반응하듯 문한이 손으로 시영의 음낭을 잡아 문질렀다.
그 자극적인 손길에 시영의 허리가 뒤틀렸다.
시영의 몸이 절정으로 달려가는 것을 느낀 문한이 음낭을 문지르던 손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그의 회음부를 더듬어본다.
그 짜릿한 느낌에 시영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윽!”
시영의 것을 잡고 위아래로 훑어대던 문한의 손이 멈추는 순간,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터져나온 희뿌연 액이 문한의 손가락을 적시며 시영의 다리에 흘러내렸다.
눈물까지 맺힌 눈을 한 채로 깊은 숨을 토해내던 시영이 다시 그의 입술을 찾는 문한의 혀끝을 핥아 올렸다.
한번의 파정으로 식어질 것 같았던 몸이 얽히는 혀의 느낌으로 다시 달아오르고 있었다.
“좋아?”
시영이 귓가에 문한이 속삭인다.
아찔하게 취하기에 좋은 그 목소리에 눈을 뜬 시영이 그를 감싸고 있던 문한의 팔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 손으로 문한의 어깨를 떠밀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 손길에 문한이 순순히 뒤로 넘어가 준다.
문한이 눕기를 기다려 시영이 그의 위로 올라 앉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몸이 시영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몸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하체가 뻐근해지고 있었다.
몸 안 가득한 것을 배출하고 싶은 욕망이 시영의 안에서 꿈틀거리며 살짝 벌어진 입술을 통해 거친 숨으로 새어나왔다.
“으읏...”
문한의 입에서 시영이 그랬던 것처럼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했듯 시영이 그의 것을 두 손으로 잡은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문한이 손으로 그를 느끼게 해주었다면 시영은 문한의 것에 혀를 갖다댔다는 것이다.
시영이 혀를 내밀어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핥아 내려갔다.
그 뜨겁게 젖은 혀의 느낌에 문한이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젖혔다.
“그...”
문한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
시영의 젖은 입술이 그의 것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뜨겁게 젖은 입안에서 혀로 감싸듯 움직이며 위아래로 쓸어내리는 그 움직임에 어쩔줄 몰라 머뭇거리던 문한의 손이 시영의 어깨를 거머쥔다.
어깨에 올라가 있던 손이 시영의 머리카락을 헤집듯이 눌러 잡으며 조금 더 빠르게 고개를 움직이도록 유도하자 그 손길에 반응하듯 시영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젖은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영의 입술과 혀에 문한의 입술에서 연신 뜨거운 한숨을 터져 나왔다.
“나, 나와...!”
혀의 자극적인 움직임에 사정감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문한이 다급하게 시영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로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시영이 비켜나지 않는다.
“윽!”
짧은 소리를 내며 문한이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그가 온 몸을 떠는 동안에도 시영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입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순식간에 입안을 가득 채워버린 비릿한 맛의 액체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마지막 사정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던 시영이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한의 가슴에 자신의 몸을 포개며 속삭인다.
“좋았나?”
그 흐릿하게 웃는 미소가 참을 수 없는 유혹처럼 다가와서 문한이 그의 얼굴을 끌어당겨 다시 입술을 찾는다.
이미 한번 맛본 아찔한 감각을 다시 찾으려는 듯 서로의 입술을 헤집으며 서로의 몸을 더듬는 손길이 바빠지며 혀가 엉기듯 몸이 엉겨갔다.
혀와 혀가 얽히며 타액이 뒤섞이는 소리와 젖어있는 살이 질척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 차고 있었다.
“사랑해.”
문한의 속삭임에,
“알고 있네.”
시영이 대답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눈은 자네만 뒤쫓았었지.”
시영의 말에,
“나도 그랬어.”
문한이 대답한다.
‘아아...기다리길 잘했다. 정말 기다리길 잘했다...’
다정한 숨결을 느끼며 문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이전에 느끼고 있던 불안감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이 행복을 이어가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
까치 소리에 문한이 눈을 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던 것을 그가 기억했다.
늦은 밤에 찾아온 시영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 다음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저 놈의 까치가 눈치가 있어가지구.”
문한이 웃으면서 옆을 더듬어본다.
까치가 울면 그날 좋은 일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
까치가 울면 그날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지 않던가.
“어디 갔지?”
까치가 울면 예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온다 하지 않던가.
“뒷간 갔나?”
문한이 옆에 없는 시영의 모습을 찾아 문을 열었다.
아직 날이 밝은지 얼마 되지 않아 단이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이 집이 조용했다.
“어이!”
문한이 시영을 불러본다.
뒷간은 지척이다.
그런데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 하고는.”
문한이 영차, 하며 일어났다.
풀어헤쳐진 저고리를 채우고 신을 신는다.
그리고는 작은 집을 한바퀴 돌아본다.
“먼저 갔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둘이 같은 방에서 나오는 걸 단이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먼저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부끄러움이 많지 않은가.
“허리가 그렇게 가늘어서 어디에 쓸까. 오늘 푸주간에 가서 고기라도 한 근 사다가 먹여야지 안 되겠어. 너무 부실해.”
중얼거리며 문한이 터벅 터벅 걸어간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집에 다다르면 분명 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립문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부터 먼저 할까.
벌건 대낮에 창피하긴 하지만 입술부터 빼앗아볼까?
아니면 무조건 방으로 끌고 들어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문한의 발이 멈췄다.
어느새 집에 다다른 것이다.
여전히 까치가 반갑게 울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까치가 반갑게 우는 까닭을 문한이 알지 못했다.
무슨 그리 좋은 소식이 올 것이 있다고 저 놈의 까치가 저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 무엇이라고.
반가운 이가 있을 것이 무엇이라고.
이렇게 마음만 아픈데, 좋을 것이 무엇이라고....
“어쩐지 유난히 곱더라...”
문한이 중얼거렸다.
“미워하지 못할 만큼 곱더라...”
그의 눈 안에 텅 빈 집이 들어왔다.
열려있는 방문 안으로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시영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화연각으로도 가지 않았다는 걸 문한은 알고 있었다.
그가 호태의 객주로도 가지 않았을 거라는 걸 문한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니, 느끼고 있었다.
떠나버렸다는 것을.
그 뜨거웠던 몸짓은 이별의 인사였다는 것을.
“참 잘났다...”
문한이 중얼거렸다.
“참 잘났다...어찌 그리 잘나서 사람 마음을 이렇게나 도려내고 베어내고 가는 걸까. 응? 어찌 그리 잘나서...뭐가 그리 잘나서 사람 마음을 이렇게 난도질해놓고 가버린 거냐고.”
문한이 마루에 털석 주저 앉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그래도 네 놈을 미워할 수 없으니...참 이상도 하지...”
까치가 머리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유난히 까치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반가운 손님은 오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