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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내가 무슨 마음으로 찾아갔을 것 같아. 단순히 갈 곳이 없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방문을 두드렸을 것 같아.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방으로 들어갔을 것 같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벽에 대고 있던 시영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그 밤이 새도록 그 누군가의 옆에서 잠들지도 못한 채 자는 척을 해야 했는지...알고나 있을까...”

잠시 말을 멈춘 시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문한의 손이 멈칫거린다.

시영이 천천히 일어나 앉았기 때문이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나는 기다렸고, 그리고 서서히 밝아오는 햇살 앞에서 결국 절망해버렸어. 마음을 알고 있는데도 안되는구나 하면서, 그 눈동자에 담긴 서로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역시 안되는구나 하면서. 이건 안되는구나 하면서 절망해버린 그 밤의 내 심정을 알고나 있어? 날이 밝도록 그 누군가가 나를 만져주기를 바라다가 결국에는 절망해버린 내 심정을 알고나 있어? 이십년 동안이나 나를 절망 안으로 몰아넣은 주제에 이제 와서 뭘 하겠다고? 자신이 원하는 사내들에게 안기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웃고 있는 기생들을 보며 이십년 동안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네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나도 그네들처럼 여인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절망감은 느끼지 않았겠지 하면서 질투와 동경을 느껴야 했던 내 마음도 모르면서 뭘 하겠다고? 사랑?”

벽을 보고 앉았던 시영이 천천히 돌아앉았다.

“웃기지 말라고 해.”

시영의 시선이 문한을 향하고 있었다.

“하려면 이십년 전에 했어야지. 집에서 도망쳐 나올 정도로 내 마음이 뜨거웠을 그때에 했어야지. 내 마음은 이미 이십년 전에 식어버렸어. 안되는 것이라고 이미 체념해버리고 잘라버렸어. 그때는 거절한 주제에 지금에 와서 뭘 하겠다고?”

“그때는...무서웠으니까...”

문한의 중얼거림에 시영이 비웃듯이 입술을 끌어올린다.

“자넨 이십년 동안이나 무서워했어. 그런 자네의 두려움을 보며 나는 이십년 동안 절망했고. 이제 그 절망이 끝을 보이며 이대로 늙어가면 된다고 겨우 평온함을 찾은 내게 다시 절망을 느끼게 하고 싶은 건가?”

“지금은 무섭지 않아. 난 지금은...”

“내가 무서워서 안 돼.”

시영이 딱 잡아 말해버린다.

그 목소리가 단호했다.

“그때는 무섭지 않았지만 이십년 세월이 흐르며 지금은 무서워졌어. 그래서 안 돼. 우린 이래서 안 돼. 내가 무섭지 않았을 때에는 자네가 무서워했었고, 자네가 무섭지 않게 된 지금 내가 무서워져 버렸으니. 우리는 안 돼.”

“돼.”

“안 돼.”

“내가 되게 만들어.”

“뭘?”

“사랑.”

“사랑?”

문한의 말에 시영이 작게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이 멈췄을 때 시영이 문한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개나 줘 버려.”

*

“으응...!”

추영의 손가락이 내벽을 문지를 때마다 유경이 아랫배가 당기는 것을 느끼며 신음했다.

금침 위에 누운 그녀의 알몸이 부드럽게 물결칠 때마다 추영의 손이 더 격렬하게 움직인다.

부풀어 오른 꽃술을 빠는 입술도,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는 그의 왼쪽 손바닥도 열기에 번진 상태였다.

“미안하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얼굴을 들어올린 추영이 그녀를 향해 낮게 말했다.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수윤이 그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 강제로 그녀를 취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묵직한 덩어리의 감촉이 닿고 있었다.

“그대가 내 첫 여인이 아니라서 미안하오.”

그런 것이 미안한 것일까?

유경이 자신의 첫 여인이 아니라서 미안한 것일까?

그런 것으로 미안해하는 사내를 유경은 본 적 없었다.

어느 사내가 지금 자신이 안고 있는 기생이 자신의 첫 여인이 아니라는 것으로 미안해할까.

사내들은 자신들이 품은 여자들을 자랑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던가?

어느 사내가 동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여자 이전에 다른 여자를 안았다는 사실로 미안해할까.

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 그것을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대는 내가 첫 사내였건만 나는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오.”

애액으로 흠뻑 젖은 그녀의 계곡으로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들어오고 있었다.

뜨겁게 젖어 있는 그녀의 입구를 찾아 그 묵직한 것이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맹세하건데 그대가 나의 마지막 여인이 될 것이오.”

“아...!”

유경이 뜨겁게 신음했다.

그 뜨거운 신음이 지금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드는 단단한 남성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이 남자의 뜨거운 고백 때문인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뜨겁게 휘저어 놓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대에게 내가 마지막 사내가 되어달라고 강요는 하지 않아. 사랑은...내가 할 것이니...”

“하읏!”

천천히, 그러나 뜨겁게 안으로 밀려드는 그 감각에 유경이 두 팔을 들어올려 추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 뜨거움에 자신을 내어맡길 뿐이었다.

“나를 거부하지만 말아주오...”

추영의 속삭임을 들으며 유경이 다리를 들어올려 그의 허리에 휘감는다.

올려다 본 추영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속삭임이 흘러나오는 그 입술에서 속삭임과 함께 뜨거운 숨결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거부하지 말아달라는 남자의 속삭임에 유경이 그의 허리에 휘감은 다리를 비비며 그를 끌어당겼다.

수윤을 생각하면 거부해야 했지만, 수윤과 이 남자의 관계를 생각하면 거부해야 했지만 이 속삭임에 더 이상의 거부를 할 수 없었다.

“으응...”

추영이 유경의 턱을 붙잡고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기 시작했다.

혀와 혀가 휘감기며 서로의 혀를 빨고 그 타액을 들이마신다.

유경의 입안 가득 추영의 숨결이 그 뜨거운 혀와 함께 채워졌다.

집요한 입맞춤이었다.

숨결 하나 놓치기 싫다는 듯 길고 집요한 입맞춤이 이어지는 사이에도 추영의 허리는 그녀의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부술 듯이 밀어붙이는 남자의 아래에서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안을 가득 채운 그를 조였다.

그녀가 헐떡이는 숨이 고스란히 그의 입술 안에서 삼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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