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회: 재회 -->
“네 년이 바로 그 소문이 자자한 소향이 년이로구나.”
유경의 허리를 끌어안은 양반이 그녀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보내온다.
그 입에서 술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이미 진득하니 취한 것이 틀림없었다.
“네 년 치맛속이 아주 꿀단지라고 그러던데, 나도 오늘 그 꿀단지 좀 구경하자구나.”
“나으리, 이 년 치마는 아무나 들출 수 있는 치마가 아니어요.”
치마를 들추고 손을 밀어 넣으려는 양반 사내의 손을 유경이 지그시 누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무나 들치지 못하는 치마라고?”
“이 년 치마는 동해야 열리는 치마인데 아무것도 동하지 않게 하시고 치마부터 열라시면 그것이 열리겠어요?”
“동해야 한다? 이 년 말하는 것 좀 보게나. 말하는 걸 보니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분명한데 꼬리는 어디에 감추어 두었으려나?”
꼬리를 찾겠다고 그녀의 엉덩이를 지분거리는 양반의 손을 유경이 꺄르륵 웃으며 걷어낸다.
바로 눈 앞에서 다른 양반과 수작질을 벌이고 있는 유경의 모습에 수윤의 심기가 뒤틀리고 있었다.
‘연소답청을 다녀온 것으로도 모자라 내 눈앞에서 다른 놈과 수작질을 부려? 네 눈에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인단 말이지?’
수윤의 안에서 부아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번도 이런 격한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던 수윤이었다.
기생은 기생일 뿐, 한번도 기생을 상대로 격한 감정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눈앞의 유경은 그에게 생소한 경험을 안겨주는 것이다.
생소한 평안함을 그에게 허락하더니 생소한 질투심까지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격분이라는 낯선 감정을 그의 안에서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기방에서 기생 하나를 두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보며 그것보다 더 우스운 일은 없다고 비웃었던 수윤 자신이었다.
여자는 그저 즐기는 대상일 뿐, 기생은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대상일 뿐 흔들릴 이유가 없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안에서 격분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칠 듯한 격분, 그것이 질투라는 것을 수윤이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눈앞의 양반을, 유경의 몸을 더듬는 양반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 손을 잡아 떼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유경의 손을 잡고 이 자리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존심이었다.
한번도 꺾여본 적 없는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한번도 짓밟혀 본 적 없는 자존심이 그에게 그런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화야.”
수윤이 옆에 앉아 바짝 몸을 기대고 있는 이화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시선은 유경을 향한 채로 수윤이 이화의 손을 잡았다.
“너무 마셨구나. 그만 가자.”
“네, 나으리.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화가 고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수윤을 부축한다.
“나으리, 이화를 너무 독점하지 마시어요. 벌써 나흘째가 아니십니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수윤과 이화를 향해 행수 기생이 농짓거리를 던진다.
“저러다가 첩실로 들이시겠어.”
깔깔거리며 웃는 행수 기생의 말에 주연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수윤이 나간 문을 힐끗 쳐다본 유경이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는 양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양반의 손을 살며시 걷어내며 말한다.
“무엇이 이 년을 동하게 하는가 하면, 그 첫 번째는 마음이 동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주머니가 동해야 하는 것인데 나으리는 이 년의 마음을 동하게 하실 겁니까? 아니면 주머니를 동하기 하실 겁니까?”
유경의 말에 술이 흥건하게 취한 양반의 얼굴에 히죽 웃음이 떠오른다.
“어떤 게 쉬우냐?”
“주머니가 동하는 쪽이 쉽지요. 마음은 쉬이 동하지 않으니까요.”
“그 년 마음이 비싸기도 한가 보다.”
“주머니는 작고 좁지만 마음은 한 없이 깊어서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밑도 끝도 없는 마음을 채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밑이 있는 주머니를 채우는 편이 더 수월하시다는 뜻이어요.”
“그래. 내가 오늘 네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고 네 치마를 한번 열어보련다.”
양반 사내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주머니를 풀어 유경의 치마폭에 던진다.
열어보지 않아도 그 묵직한 무게감에 그 값어치를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주머니가 차겠느냐?”
“아무렴요. 하오나 나으리, 한 꺼풀 열 때마다 주머니가 하나씩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차분한 미소를 머금고 속삭이듯 말하는 유경의 모습에 그녀의 치마를 들추려던 양반이 잠시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수려한 외모가 아니어도, 우아한 춤사위가 아니어도 말 한마디로 사내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자신감에서 흘러나오는 그 아찔한 매력에 양반 사내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주머니는 쉬이 차지만 또 쉬이 빠져나가는 것. 하지만 마음은 쉬이 채워지지 않지만 또한 쉬이 비워지지도 않는 것.’
“으응...”
치마를 들추고 안으로 파고드는 양반의 몸짓에 유경이 낮게 신음했다.
주연 자리에서 다른 방으로 이미 자리를 옮긴 후였다.
더 이상 욕정을 참지 못한 양반이 그녀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건너오자마자 그녀의 치마를 들추고 들어간 것이다.
치맛단 안에서 꿈틀거리는 양반의 몸짓에 그녀의 관심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 순간 상처받은 눈으로 주연 자리를 떠나던 수윤에게 가 있었다.
‘나으리...아니, 서방님...그리 상처받지 마시어요...제 주머니가 동할지언정 제 마음은 동하지 않으니 그리 상처받은 얼굴 하지 마시어요. 이 년의 마음을 동하게 하신 분은 서방님 외에는 없으니...그리...상처받은 눈동자를 하지 마시어요...’
“하읏...”
유경이 허리를 들썩였다.
그녀의 치마 안으로 파고든 양반이 그녀의 속바지와 속곳을 벗겨내고 있었다.
뜨거운 숨결이 하체에 퍼지는 느낌에 유경이 몸을 떨었다.
‘알고 계셨잖아요...제가 기생이라는 걸 알고 시작하신 거잖아요...그러니 이제 더 명확히 아셔야지요. 저는 순결한 처녀가 아니라 기생이라는 것을. 이젠 서로를 정확하게 봐야 하잖아요. 제가 기생이고 서방님은 양반이라는 현실을. 저는 시간이 흘러도 기생일 것이고 어느 순간 제 곁에 서방님이 더 이상 머무르지 않으실 거라는 현실을. 서방님이 제가 기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시고도 여전히 절 마음으로 곁에 두신다면 전 원 없이 서방님을 사랑하겠어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시고 서방님이 절 보시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전 여전히 서방님을 사랑하겠어요. 아니면 지금은 인정하시다 먼 훗날 서방님이 제 곁을 떠나시더라도 그때도 후회없이 서방님을 사랑하겠어요.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않으며 사랑하겠어요. 울지도 아파하지도 않으며 사랑하겠어요. 저는 기생이니까, 기생 답게 사랑하겠어요. 그러나 서방님도 저를 그리 사랑해주세요. 붙잡지도 말고 아파하지도 말고...’
지금의 뜨거운 마음이 언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수윤은 언젠가 혼인을 하고 자식을 볼 것이고, 때가 되면 더 이상 기방 출입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은 뜨겁게 사랑하더라도 언젠가 이별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때를 위한 시작인 것이다.
이별을 위한 시작인 것이다.
붙잡지도 아파하지도 않게 이별할 수 있게.
서로를 놓아주고 사랑하는 법을 시작하는 것이다.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양반이고, 그녀는 기생이라는 현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