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회: 재회 -->
“아하하하하.”
가볍고 경망스러운 기생의 웃음소리가 계곡 물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
시원한 계곡 물이 찬 바위를 타고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옆으로 파릇파릇 연두빛을 자랑하는 새잎들이 그 연녹음을 물씬거리고 있었고 그 옆으로 돗자리를 깔아놓은 위로 몇 명의 기생들과 양반 자제들이 음란한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음란한 유희라 함은 넓게 펼쳐놓은 대나무 돗자리 위에서 짝을 지은 남녀가 성교를 벌이는 것을 뜻했다.
이 젊은 양반가 자제들의 방탕한 행실이야 이미 진즉부터 유명해서 어지간한 기생들은 이들과 함께 연소답청을 나서지 않았지만 이들이 찔러주는 돈이 워낙에 큰 지라 돈에 눈이 먼 기생이나, 아니면 방탕한 양반 자제도 마다하지 않는 음탕한 기생들이 이런 자리에 따라 나서곤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유경이 끼어 있었다.
유경의 옆에서 저고리를 풀어헤친 기생 한 명이 젖가슴을 드러낸 채로 한 양반 자제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이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기생이 대나무 돗자리 위에 누운 채로 허여멀건한 양반 자제의 아래에 깔려 간드러진 교성을 뱉어내는 중이었다.
음란한 유희.
누가 보면 손가락질 하기 딱 좋은 그런 음탕한 연회였지만 이 자리를 정해서 그녀를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시영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내에게 매이고 싶어하는 유경의 마음을 잘라버리겠다며 고르고 골라 이런 자리로 보내버린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버리기에는 이런 음탕하고 난잡한 연회가 적격이라는 것이 시영의 이유였다.
유경 역시 시영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류장화가 아니라 울 안의 꽃이 되고 싶어했던 것이다.
바람에 지는 꽃이 아니라 사내의 품 안에 거두어지는 꽃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잘라내야 할 마음이었다.
평생 품고 갈 수 없는 마음이었다.
언제까지나 그 다정한 품에 자신을 맡기고 봄날의 꿈처럼 안락함에 취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봄날은 짧고 꿈결은 쉬이 깨기 마련이기에...
“네 년이 그렇게 콧대가 높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유경을 꿰차고 앉아 있던 양반 자제가 음흉한 웃음을 흘린다.
딱 봐도 유경 보다 더 어려보이는 나이였다.
어린 것이 음란한 짓거리만 배웠는지 이미 그 손이 유경의 저고리를 풀고 있었다.
“기생 년이 콧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문이 있을 뿐이지요.”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문? 그래, 그 문이 어디 있느냐. 나도 그 문 좀 구경하자구나.”
저고리를 풀던 손을 멈추고 어린 사내가 그녀의 치마 자락을 들춘다.
“그러지 마시고, 나으리...”
음흉한 손이 기어 들어오는 치마 자락을 꾹 누르며 유경이 눈웃음을 흘렸다.
유경이 눈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이 년과 뱃놀이는 어떠하십니까?”
“뱃놀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이 년의 배를 타고 노심이 더 흥이 나지 않을까요?”
유경의 말장난에 사내의 입이 찢어지게 웃는다.
“이 년이 말도 청산 유수구나. 그래, 내 오늘 배 위에서 네 년 배를 타고 뱃놀이 좀 해보자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가 유경의 손목을 잡아 끌고 밧줄이 묶여 있는 나룻배 쪽으로 걸어갔다.
배는 떠내려가지 말라고 밧줄로 묶여 있었다.
“자, 이리 오르거라.”
먼저 배에 올라탄 사내가 유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유경이 작은 배 위에 올라탔다.
“어머...!”
흔들리는 배를 따라 유경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린다.
“배가 너무 흔들려요. 나으리...”
“조금 있으면 이것보다 더 흔들릴 것인데 뭘 그러느냐.”
뱃전에 기대어 주저 앉아 있는 유경을 향해 사내가 음흉하게 몸을 겹쳐 온다.
“으응...”
저고리를 푸는 사내의 손길에 유경이 눈을 가만히 치켜 뜬다.
그 도발적인 시선에 사내가 서둘러 푼 유경의 저고리를 벗겨냈다.
하얀 젖무덤이 불룩 튀어 올라온 그녀의 살결에 군침을 흘리던 사내가 그녀의 치마 끈을 풀어냈다.
사내의 다급한 손길에 풀어진 치마가 그녀의 옆으로 밀쳐졌다.
“요런 앙증맞은 앵두 같으니라고.”
사내가 유경의 젖가슴 위에 얹어져 있는 작은 열매를 게걸스럽게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으응...나으리...”
사내의 더운 숨결을 느끼며 유경이 목을 뒤로 젖혔다.
그녀의 젖가슴을 빨며 사내가 그녀의 속바지를 더듬어 벗겨나갔다.
“아읏...나으리...거긴...”
“여기냐? 여기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그 옥문이냐?”
그녀의 속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 넣은 사내가 손바닥에 와 닿는 까슬한 수풀을 비벼대기 시작하자 유경의 연지 바른 붉은 입술에서 달뜬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응...나으리...아아아...나으리...”
다급하지만 서툴기 그지 없는 입술과 손길에 신음하면서도 유경이 머릿속으로 수윤을 떠올렸다.
떠올리려 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다정하게 취해가던 수윤의 손길이, 누구보다도 상냥하지만 또한 뜨거웠던 그 입술이 그녀의 생각을 빼앗아갔다.
지금 몸을 더듬고 있는 손길과는 달랐다.
왜 그런 것일까.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 이 양반 사내가 더듬어오는 손길이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을 왜 그런 것일까.
왜 이 손길이 닿는 곳마다 징그럽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아니, 수윤에게 안기기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다정함을 알아버린 지금은, 그의 상냥한 뜨거움을 알아버린 지금은 뭇 사내의 손길이 이렇게나 징그럽고 벌레 같은 것이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유경이 생각했다.
이래서는 더 이상 기생일 수 없다고 그녀가 생각했다.
사내의 손길을 싫어하는 기생은 있을 수가 없다.
시영은 그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리라.
수윤에게 길들여져 버리면, 그 사내에게 길들여져 버리면 더 이상 기생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녀에게 선택하라 한 것이리라.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선택을 해야 했다.
시영의 앞에서 한 선택이 그녀의 다짐이었다면 이제는 이곳에서 몸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벌레처럼 징그러운 손길을 참아내고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에게라도 짓밟힐 수 있는 하잘 것 없는 들꽃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이 사내를 받아내며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마치 그때, 머리를 올린 다음날 뭇 양반들의 방을 돌며 빨이를 하던 그때처럼, 수치스러움을 기꺼이 수용함으로서 자신이 고고한 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수윤이 다정하게 대함으로서 마치 자신이 특별하고 고고한 꽃이라도 된 듯했던 그 착각에서, 그 단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으응...나으리...”
허리를 비틀며 신음하던 유경의 허리를 사내의 손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를 허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리려고 할 때,
“으앗!”
“아앗!”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위태롭게 흔들리던 배가 사내의 거친 움직임에 그만 뒤집혀 버린 것이다.
첨벙-!
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배가 뒤집힌 아래로 유경과 사내의 몸이 가라 앉았다.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가라앉는 유경과 그녀의 위로 헤엄쳐 올라가는 사내의 모습이 엇갈렸다.
‘으윽...!’
유경의 몸이 시퍼런 물 아래로 가라 앉고 있었다.
그녀는 헤엄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