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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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하는 짓들인지...쯧쯧쯧...”

“팔자들 좋다~”

저자를 가로지르는 한 무리의 일행들을 보며 짐을 집 안으로 들이던 사내들이 혀를 찼다.

물론 그 혀 차는 이면에는 부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누구는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누구는 팔자 좋게 기생들을 끼고 산으로 들로 놀이를 가는 것이 배가 아픈 것도 한몫을 거드는 것이다.

“저게 뭔데 그러십니까?”

짐군들이 짐을 들이는 것을 도와주던 산호가 짐군 사내들이 바라보는 쪽을 쳐다봤다.

화려한 차림의 기생들이 나귀 위에 올라타고 줄을 지어 가고 있었고, 그 앞 뒤로 갓 쓴 선비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옹위하며 걷고 있었다.

선비들은 하나 같이 얼굴에 어린 티가 역력했고 기생들은 화려한 옷차림에 입에는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양반댁 자제들이 장안 기생들 끼고 봄나들이 가는 거지 뭐긴 뭐야?”

“봄나들이요?”

송도에서도 봄이 되면 양반들이 기생들을 데리고 봄나들이 가는 것을 본 적 있는 산호였다.

그러나 저렇게 대놓고 저자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한적한 장소를 하나 잡아 놓으면 기생들이 조용히 찾아가는 형식이었는데 한야에서는 대놓고 저자거리를 활보하며 지나가는 것이 산호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다.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훤한 대낮에 사방이 트인 곳에서 기생 욕보이는 짓을 하고 싶어서 돈을 물처럼 뿌린 것이지.”

어느새 산호의 뒤에 와있던 호태가 연초를 피우며 하는 말에 산호가 얼른 돌아서서 허리를 숙인다.

이 객주의 주인인 호태는 마흔 중반의 나이에 꽤 대성한 장사꾼이었다.

마른 체격에 사람이 가볍게 보이는 이 사내는 행동도 말도 가볍고 조금도 묵직한 구석은 없지만 장사 수단 하나만큼은 일품이라서 그것으로 대성한 사내라고 상단 호위를 맡은 무사들에게서 들은 산호였다.

가진 돈 하나 없이 그 수완 하나로 지금의 재산을 일군 것이다.

비굴하게 굴어야 할 때는 비굴해지는 법을 알고, 적당히 뒷구멍으로 청탁 뇌물 찔러주는 법도 잘 알고, 그리고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 기회를 잘 아는 잔머리 회전이 빠른 사내인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득에 따라서 신의도 뭐도 없이 이 줄을 탔다 저 줄을 탔다 하는 위인으로 보이겠지만 호태 자신의 말처럼 ‘과정이야 어찌됐건 마지막에 웃는 놈이 이기는 놈’인 것이다.

나루터에서 만난 문한이라는 사내가 산호를 이 호태의 상단에 호위역으로 맡긴지 꽤 여러날이 지났다.

그동안에 상단을 따라서 송도에도 한번 다녀오고, 그리고 왜관과 제물포에도 다녀와 봤었다.

내년 쯤에는 왜로 가는 상단 호위도 맡기겠다고 호태가 미리 산호에게 말해두기도 했다.

타국으로 가는 상단 호위는 어지간해서는 신참에게 맡기지 않는 법인데 산호가 호태 눈에 좋게 보였다고 옆에서들 산호에게 축하도 해주었다.

성실함이 통한 것이리라.

한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있는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아마도 이 약삭빠른 장사군의 눈에도 들은 것이리라.

송도에 다녀오며 산호는 집에 들르지 않았다.

아직은 유경을 만날 때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인정받고, 조금 더 자기 자리를 굳게 다진 다음에는 유경을 데리러 갈 생각인 것이다.

저자거리를 나귀를 타고 어린 양반들과 지나가는 기생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문득 유경이 떠올라서 산호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나이 지긋한 양반들이 간화 답청을 가는 것이야 봄바람에 풍류나 즐기자는 것이겠지만 저런 새파란 것들이 기생을 끼고 가는 연소답청이야 뻔하지 뻔해. 집에 돈은 남아돌고 돈 지랄은 하고 싶고 어르신네들 간섭은 싫고, 주위에 으스대고는 싶고.”

“구경 갈까?”

뜬금없이 호태의 말에 끼어든 것은 한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던 단이였다.

“어른 말에 톡톡 끼어드는 거 아니다.”

갑자기 끼어든 단이를 향해 호태가 눈살을 찡그렸다.

“단이, 오랜만이구나.”

산호가 아는 척을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뒤를 쫓아다니며 귀찮게 굴던 단이가 산호의 주위에서 보이지 않은지 벌써 달포가 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다가도, 신경쓸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을 접어두다가, 그래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늘 있는 그 공간이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이던 산호였다.

오랜만에 보는 단이는 조금 야위어있었다.

병이라도 앓은 것인가, 하고 산호가 생각했다.

“오라버니, 우리 저거 구경갈까요? 저거 훔쳐보면 얼마나 재밌는데...”

“쬐끄만 계집애가 발칙한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단이 넌 구석에 가서 밥이나 먹고 네 아버지 밥이나 싸가거라.”

호태의 구박에도 아랑곳않고 단이가 실실 웃으며 연소답청 행렬을 손으로 가리킨다.

“냇가에 가면 저 치들이 홀딱 벗고 우스운 짓거리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라버니 구경하러 가요, 네?”

“이 놈이!”

호태가 한번 더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단이가 뒤로 얼른 물러난다.

“저런 거 구경할 사이에 아버지 밥이나 싸다 드리라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하여간에 우리 아버지 밥을 무지하게 챙긴다니까.”

단이가 투덜거리며 입을 삐쭉 내민다.

산호가 알기로는 단이는 재 너머 백정 마을에 살고 있다.

백정의 딸인 것이다.

백정은 태어날 때부터 천해서 몸 어딘가에 낙인을 찍고 있다지만 단이에게서 그런 것을 본 적은 없다.

아마도 옷으로 감추어진 어딘가에 단이도 낙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늙고 병들어서 일을 못하는 백정이지만 젊었을 때는 호태가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하여 지금도 늙은 백정과 그 딸인 단이를 호태가 챙겨준다고 산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이가 이곳 객주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이다.

“어?”

객주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경이잖아?”

나귀를 타고 가는 기생들 가운데서 유경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연소답청 기생 무리에 유경이 끼어 있다는 것 때문에 놀란 단이였지만 진짜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단이의 입에서 나온 이름 때문에 산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지더니 그 시선이 단이의 시선을 따라 옮겨졌다.

그리고 산호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단이의 말이 아니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설마 이런 곳에 유경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하며 기생들을 눈 여겨 보지 않았을 것이니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아니, 눈 여겨 보았더라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유경이라고 알아보기에는 너무나도 달라진 그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그녀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흐려지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나귀에 탄 것은 분명 유경인데 유경이 아니었다.

적어도 산호의 기억 속의 유경은 아니었다.

천진하게 웃던 소녀는 간곳없고 성숙한 여인의 표정을 한 기생이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유경인데...유경이 아니었다.

“유...경아...”

하지만 그럴지라도...산호에게는 유경이었다.

어찌할 수 없이...그의 어리고 작은...그리고 사랑스러운 그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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