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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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유경이 생각했다.

속이 메스꺼우면서도 비릿한 냄새였다.

그것이 피냄새라는 것을 유경이 알아차린 것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괴한의 그림자가 피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직후였다.

“꺄악!”

유경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둠에 익은 그녀의 눈이 문한의 방 한 구석에서 피 흘리고 있는 검은 옷의 그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검은 옷인데도 피가 보인 것은 그 손등이 피로 얼룩져 있었던 덕분이다.

그리고 바닥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핏자국 역시 그러했다.

그 얼굴을 유경이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였다.

단이.

한번도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다.

이 단이라는 처녀는 가끔, 아주 가끔 이 집으로 문한을 만나기 위해 오는 처녀였다.

성품이 밝고 활달한 것과 유경 자신의 또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말을 걸기가 어려워서 한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저 시영과 문한의 대화를 통해서 그녀의 이름이 단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고개 넘어 백정 마을에 살고 있는 또래의 처녀.

그런 그녀가 지금 문한의 방에서 피 흘리는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던진 유경이 단이의 옆으로 다가앉아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어딜 다쳤길래...”

단이의 검은 옷을 살펴보던 유경이 그녀의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검은 옷의 옆구리가 찢어져 있고 그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를 싸매야 하는데...”

유경이 얼른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문갑에서 달거리에 쓰는 개짐을 하나 꺼내들고 다시 문한의 방으로 건너온다.

“급한 대로 이걸로라도 상처를 싸매야겠어요.”

개짐으로 상처를 싸맨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위급한 상황에 가릴 것이 무엇인가.

유경의 손이 단이의 옆구리를 개짐으로 둘러쌌다.

“으윽...”

단이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쩌다가...”

평소의 단이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수상쩍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단이의 상처를 개짐으로 싸매준 유경이 일단 떨어뜨렸던 칼을 구석에 세워놓는다.

“잠시만 있어 봐요. 내가 약이 있나 찾아보고 올게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상처에 약을 바르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걸 유경이 깨달았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천을 둘렀어야 했는데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급해서 상처부터 싸매고 만 것이다.

시영의 방에서 약 상자를 본 기억이 얼핏 나서 유경이 약상자를 가지러 가기 위해 일어섰을 때 사립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어두운 밤에 어울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평소 사람이라고는 그다지 오지 않는 외떨어진 이 집의 사립문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유경이 뒤를 돌아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서 피 흘리고 있는 단이와 연관된 사람들인 건 틀림없다고 그녀가 생각했다.

단이가 이런 밤중에 자기 집도 아닌 문한의 방으로 피를 흘리며 기어들어온 것은 여기 밖에 갈 곳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사립문 밖에서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단이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경이 얼른 단이를 부축해서 다락으로 올려 보낸다.

비틀거리며 신음하는 단이를 다락으로 올려 보낸 다음 다락의 문을 닫은 유경이 서둘러 방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를 어째...”

유경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마당에는 핏물이 없었는데 지금 방안에는 핏자국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마당까지는 손으로 상처를 잘 막고 온 그녀가 방안에서 쓰러지며 바닥에 피를 흘리고 만 것이다.

“들킬지도 몰라...”

아무리 사람을 감춰도 핏자국을 없애지 못하면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걸레를 찾아 밖으로 나가려던 유경이 마침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누구...”

유경이 놀란 눈으로 마당 안으로 들어온 사내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모두 관복을 입고 있었다.

포도청의 포교들이 분명했다.

“수상한 자를 찾고 있소. 혹시 검은 복면을 하고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상처를 입고 여기로 오지 않았소?”

이 근처에서 홍앵을 쫓다가 놓친 포교들이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는 중이었다.

상대는 상처를 입었고 멀리 가지 못했다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주변에 인가는 몇 채 없었다.

그 몇 채 되지 않는 인가 중 한 곳인 이곳으로 들어온 포교들이 마침 방에서 나오던 유경과 마주친 것이다.

“그건 피가 아니오?”

포교 한 명의 눈이 유경의 손에 묻은 피를 발견했다.단이의 상처를 싸매주다 묻은 피였다.

“아...이건...”

“여기에 숨어들었군!”

유경의 손에 묻은 피에 포교들이 당장이라도 안으로 들이닥칠 듯이 걸어오자 유경이 뒤로 주춤 주춤 물러나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버티어 선다.

“여기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외간 사내들이 여자 혼자 있는 집으로 들어온단 말입니까.”

“공무 수행 중이다. 썩 비키거라!”

“도망자를 숨기고 있지 않다면 그 피는 무엇이냐!”

험상궂게 생긴 포교들이 댓돌을 딛고 신발 째로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들의 눈이 방바닥에 뿌려진 핏자국에 가서 멈춘다.

“여기도 핏자국이 있다!”

그 말에 포교들이 우르르 방 앞으로 몰려왔다.

그 순간 유경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어찌들 이러십니까?! 여인네가 불경한 일을 당하는 중이라 손에 피가 묻고 방에 피가 묻었기로서니 어찌 이리 무례하게 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불경한 일?”

유경이 치마 안으로 손을 쑤욱 집어 넣어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포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윽...”

눈앞에 들이민 그것에 포교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것이 다름 아닌 피 묻은 개짐이었기 때문이다.

“달거리 하는 여인네가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 불결한 것이 새어서 손과 바닥에 묻은 것을 가지고 수상한 자 운운하며 함부로 방을 뒤지려 들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피가 묻어 있으면 다 수상한 자를 방안에 들인 것입니까? 저 피가 어디서 온 것인지 제가 보여드릴까요?”

유경이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개짐을 하지 않은 그녀의 흰 속바지가 핏물에 젖어드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포교들의 눈에 들어왔다.

“아, 아니...우, 우리는...”

이쯤되면 당황한 것은 포교들이었다.

핏자국을 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여자가 하필이면 달거리 중이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달거리 핏물을 본 포교들이 당황해서 뒤로 물러난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돌아서 계셔 주세요. 그래야 제가 다시 개짐을 할 것이 아닙니까? 바닥에 피 범벅이 되기 전에 개짐을 다시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그러시오.”

당황한 포교들이 돌아서자 유경이 속바지를 내리고 다시 개짐을 찬다.

개짐을 찬 그녀가 속바지를 입고 치마를 내리자 등 돌리고 선 포교들이 물어온다.

“다 하였소?”

“네.”

다소곳한 유경의 대답에 포교들이 천천히 돌아서려고 할 때,

“찾았느냐?”

누군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선다.

추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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