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회: 야앵 -->
“그런데 나으리는 왜...”
“어허, 서방님.”
얼른 나오는 수윤의 말에 유경이 잠시 눈을 흘겼다가 다시 말을 꺼낸다.
“서방님은 왜 벼슬길에 나가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왜 궁금한 것이냐?”
“오늘 저녁 술자리에서 나으리, 아니 서방님의 함자가 오르내렸더랬어요. 양반님네들 말씀이 나으리는 글재주도 출중하시고 과거만 보시면 그 길로 벼슬길이 열릴 거라고 다들 그리 말씀하시던데 어찌하여 벼슬은 하시지 않고 기방에서 저 같은 기생년이나 끼고 사시는 지 그것이 궁금하여...”
휘영청 떠오른 달그림자가 문지방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밤이었다.
달빛을 받아 새하얀 유경의 알몸을 끌어안고 그녀의 젖무덤 냄새를 맡고 있던 수윤이 나직하게 웃는다.
뽀얀 젖무덤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앵두 같은 유두를 혀끝으로 희롱하는 수윤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젖무덤 사이에서 습기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벼슬을 해서 무엇하라고. 기껏해야 사람을 죽이기 밖에 더하겠어?”
“네?”
벼슬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말에 유경이 살며시 고개를 내려 그녀의 젖가슴을 희롱하는 수윤을 내려다봤다.
“정치라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 것은 사내가 할 짓이 못 돼. 그런 짓을 할 바에얀 차라리 기생 치맛자락 안에서 살냄새나 맡는 것이 더 낫지, 아무렴 낫고 말고.”
유경의 앵두 같은 유두에서 입술을 뗀 수윤이 천천히 그녀의 아래로 얼굴을 미끄러뜨렸다.
그 얼굴이 향하는 목적지를 유경은 알고 있었다.
“세상사 다 잊고 그저 이 향기로운 꿀샘에 취해 있으면 시간은 그저 가는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언젠가는 죽어 스러지는 날이 오겠지.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남 죽이는 일에 애쓰다 죽는 것보다는 향기로운 꿀에 취해있다 죽는 편이 호사스럽다.”
유경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수윤의 손이 그의 얼굴을 따라 내려가 어느새 그녀의 다리를 살며시 벌리고 있었다.
수윤의 손에 의해 벌어지는 허벅지 사이로 문창호를 뚫고 들어온 달빛이 환하게 비춰진다.
달빛 아래 꽃잎처럼 피어난 여체의 계곡 앞에서 수윤의 혀가 나비가 꿀을 취하듯이 할짝댔다.
“나비는 향기로운 꿀이 있는 꽃만 찾아다니지요...”
벌어진 허벅지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수윤의 머리를 내려다보던 유경이 다시 얼굴을 들어 머리맡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올려다본다.
“그런데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합니다...”
달빛에 비친 유경의 얼굴이 분꽃처럼 새하얗게 빛났다.
“기생은 바람 한번에 지는 꽃이라고들 하지요. 꽃이 바람에 지듯이 기생도 바람에 지는 날이 오는 법인데...”
유경의 허리가 살며시 꿈틀거린다.
그녀의 은밀한 동굴 안으로 파고 들어온 뜨겁고 축축한 혀에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꽃은 져도 나비는 날아다니니...이 꽃이 지면 저 꽃으로...저 꽃이 지면 또 이 꽃으로...향기로운 꿀을 찾아서 매일 새로이 피는 꽃을 찾아다니는 것이 나비라면 서방님도 언젠가는 이 년을 버리고 떠나시겠지요.”
유경의 말에 그녀의 수풀을 헤치고 좁고 뜨거운 동굴 안을 혀로 헤집던 수윤이 살짝 얼굴을 들어올린다.
숨을 내쉴 때마다 가볍게 들썩거리는 유경의 젖가슴과 아랫배가 달빛에 새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세상사도 잊고 사는 나비이니 져버린 꽃 따위야 순식간에 잊어버리시겠지요...”
“꽃은 져도...”
천천히 그녀의 몸 위로 올라오며 수윤이 다정하게 속삭인다.
“꽃이 진 자리에 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향이 없는 꽃에는 꿀이 있어도 나비가 머물지 않는 법. 꽃의 진짜 꿀은 향이고, 그 향은 꽃이 바람에 져도 여전히 바람결에 실려 코끝에 맴도는 법이란다. 꽃이 진다고 나비가 꽃을 잊겠느냐. 나비는 향을 기억하는 법이다. 네가 진다고 내가 너를 잊겠느냐. 비바람은 잊어도 나비가 꽃을 기억하듯이 세상사는 잊어도 나는 너를 기억할 것인데, 너는 바람이 불기도 전에 질 것을 미리 걱정하는구나.”
수윤의 얼굴이 어느새 유경의 코앞에 닿을락 말락 닿아 있었다.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숨결을 마시며 유경이 그를 지그시 올려다본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꽃이 질 것을 염려하고, 꽃이 지기도 전에 나비가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을 보니 네가 어지간히 내게 빠졌나 보구나.”
수윤이 유경과 눈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는다.
그 다정한 웃음에 유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주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윤의 눈웃음에 유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느 사이엔가 가슴 한 켠에 들어와 있는 이 사내의 눈웃음이 그녀의 가슴을 뜨끔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들어오라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제멋대로 들어와 가슴 한켠에 자리를 잡고 나가지 않는 이 사내가 여간 미운 것이 아닌 유경이었다.
마음을 주겠다 허락한 것도 아닌데 제멋대로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 이 사내가, 마음을 빼앗아 간 주제에 언제 돌려주겠다 확답도 아니 하는 이 사내가, 허락도 없이 마음을 가져가 버린 주제에 미안하다 사과 한번 하지 않는 이 사내가...
이것저것 모든 것이 다 제멋대로인 이 사내가...
“네가 그리 염려하니 이제부터 내가 나비가 아니라 바람이 되어야겠구나. 지는 꽃의 마지막 향기 한 줌까지도 고스란히 품어주는 바람이 되어야겠구나. 그래야 네가 안심한다면...”
“누가 그런 염려를...억측하지 마시어요...”
가늘게 눈을 뜨며 흘겨보는 유경의 뺨에 수윤의 입술이 내려앉는다.
그녀의 뺨에 다정하게 입 맞춘 수윤이 이내 그녀의 입술을 내리 덮는다.
입술을 덮어오는 따뜻한 감촉에 유경이 살며시 눈을 감았다.
봄바람 같은 따뜻한 훈풍이 그녀의 입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입안에서 시작된 그 작은 훈풍은 그녀의 가슴에서도 피어오르고 있었고, 수윤의 손이 닿는 그녀의 모든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따뜻한 바람의 느낌이 사랑이라는 것을 유경은 모를 것이다.
이 간질간질하고, 가끔은 뜨끔거리는 이 느낌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미운데 밉지 않는 이 마음이...
얄미운데 자꾸만 보게 되는 이 눈길이...
눈을 흘기면서도 그 손길을 기다리는 이 마음이...
그리하여 행여나 언젠가는 떠나겠지...하는 이 염려가...
이것이 실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아직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한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였으니까.
사랑이 찾아와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를 것이다.
꼬리 아홉 달린 기생이지만 정작 사랑 앞에서는 먹물 하나 찍히지 않은 백지였으니까.
이것이 첫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를 것이다.
아직은 모를 것이다.
어쩌면 내일은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