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회: 그 꽃, 피어나다 -->
유경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는 이미 방 안은 흥이 무르익은 상태였다.
잔뜩 취기가 오른 양반들이 갓을 벗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양반들의 옆에 트레머리 올린 기생들이 술을 따르는 중이었다.
잔치 자리의 상석에는 화사한 녹원의를 입은 기생들이 가야금 선율에 맞춰 간드러지게 춤 사위를 보이고 있었지만 취한 양반들은 그저 옆에 끼고 있는 기생들의 저고리 안으로 손을 넣어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교방에 다닐 때 그렇게 죽어라 배웠던 가무는 취한 양반들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유경이 새삼 느끼고 있었다.
취하기 전이야 가무에 장단을 맞추지만 취한 다음에는 가무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던 시영의 말에 옳았다고 그녀가 생각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유경이 앉기를 기다려 그녀의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양반이 취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소향이라 하옵니다.”
유경이라는 이름은 쓰지 말라고 시영이 충고해주었었다.
기생은 이름도 중요한 법인데 유경이라는 이름으로는 사내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며 시영이 새로이 소향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소향이? 거참 이름 하나 곱구나. 어디 손도 이름처럼 고운가 한번 보자구나.”
술에 흥건하게 취한 양반이 유경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온다.
그 취한 손에 자신의 손을 내맡기며 유경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손만 보시렵니까?”
은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는 유경의 나긋한 목소리에 그녀의 손을 잡았던 양반이 잠시 눈을 껌뻑거리더니 이내 입이 함박 벌어진다.
“그러면 뭘 또 봐주랴?”
“손만 보시지 마시고 속도 봐주시어요.”
“속?”
유경이 살며시 눈을 내리 깔았다.
당당하게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여인이 어느 순간 눈을 내리 깔면 그것이 사내에게 어떤 뜻으로 다가가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유혹.
그 손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언의 유혹.
“이 년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구나. 요 앙큼한 년.”
유경의 손을 잡고 있던 양반 사내가 그녀의 저고리 위를 젖가슴과 함께 움켜 쥐었다.
“어디 속도 한번 보자. 속도 네 년 눈빛 만큼이나 앙큼한지.”
양반의 손이 유경의 저고리 고름을 풀어낸다.
순식간에 풀려나간 저고리가 옆으로 벌려지며 그녀의 젖무덤이 드러났다.
치마끈에 꽁꽁 동여매진 그녀의 젖가슴의 윗부분이 불룩 솟아나 사내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빨아나 보...”
“나으리. 일단 제 술 한잔 받으시어요. 일에도 순서라는 것이 있는 법이온데 이 년 술 한잔 받지 않으시고 어찌 가슴부터 보려 하시옵니까?”
유경이 살며시 몸을 빼며 술병을 손에 들었다.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갖다 대려던 양반 사내가 그 말에 취한 얼굴로 껄껄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잔을 내미는 것이다.
“그래. 내 일단 네 년 술부터 한잔 받자. 아주 앙큼하고 재미있는 년이구나.”
“이 년의 술은 특별한 술이어서...”
유경이 술병의 주둥이를 자신의 가슴에 문지르더니 치마끈 사이에서 살며시 한쪽 젖가슴을 빼내어 분홍빛 유두를 술병의 주둥이에 넣는다.
그리고는 ‘앙’하는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술병의 주둥이에 가슴을 문질렀다.
그런 다음에 다시 치마를 올려 젖가슴을 가린 다음 그 술병으로 양반의 손에 들린 술잔에 술을 따라 붓는다.
“이 년의 음기를 넣은 음양주이옵니다. 한잔 드시면 몸 안에서 양기가 충만해지고 두 잔 마시면 치솟는 양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못해서?”
“아잉...망측해서 그 다음을 말하지 못하겠어요.”
“말해보거라,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유경이 교태를 섞은 목소리로 양반을 살며시 바라본다.
그리고 양반의 귓가에 붉은 연지를 바른 입술을 가져가서 속삭인다.
‘이 년이 밤새도록 비명을 지르지 않겠어요?’
그 음란한 속삭임에 양반의 입술에서 허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유경이 따라준 술잔을 연거푸 세잔, 네 잔을 비우는 것이다.
“요 년이 술맛 나게 교태를 떠니 오늘 술이 아주 잘 받는구나.”
양반 사내와 유경이 하는 모습을 옆에서 다른 양반들이 힐끗 힐끗 훔쳐본다.
다들 기생을 끼고 있으면서도 유경을 끼고 앉은 양반이 부러운 듯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얼굴은 그리 반반하지 않은데 하는 짓이 꼬리만 없는 여우인 것이다.
*
“고맙네. 내 부탁을 들어주어서.”
시영이 술잔을 비운 다음 눈앞의 여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기방의 주인인 행수 기생이었다.
보증도 없는 송도 기생을 받아줄 만큼 한양 기방들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기생 중에서 한양 기생 텃세가 가장 심하다고 소문이 나지 않았던다.
그런 한양 기방에서 송도에서 온 어린 기생을 떡 하니 받아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래서 시영이 전에 친분이 있던 이 행수 기생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나으리가 데려오신 아이니 오죽 잘하겠습니까. 제가 잠깐 보니 하는 짓이 천상 기생이더군요. 아주 사내를 치마폭에 싸고 홀리겠더라구요. 저러다가 한양 양반님네들이 전부 저 치마폭에 싸일까 걱정이옵니다.”
“좋게 봐주니 그런 것이지.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아이니까 자네가 부족한 부분은 눈감아주면서 잘 좀 챙겨주게.”
“나으리께서도 시간이 나실 때 가끔 우리 아이들도 좀 봐주고 그러시어요. 요즘은 어린 기생들이 영 마땅찮아서...”
“나야 이제 한물 갔는데 뭘...”
“나으리.”
행수 기생이 시영을 정감있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 년은 아직 나으리의 수청 한번 들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언제가 되어야 이 년의 소원 한번 풀어주시겠습니까?”
“나는 그쪽으로는 병신이라고 말하지...”
“이 년이 세우지 못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나으리.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행수 기생의 말에 시영이 말문을 잃었다.
기생질을 오래하면 백년 묵은 구렁이가 된다더니 눈앞의 행수 기생이 딱 그짝이었다.
“제가 기생 노릇 오래하면서 이런 저런 양반님들 살수청을 들다보니 이제는 사내들을 보기만 해도 압니다. 서지 않는 사내인지 서는 데 세우지 않는 사내인지. 병신인지 병신인척 하는 것인지.”
“...”
“나중에라도 이 년 생각나시면 한번 불러주시어요. 열일 제쳐놓고 달려가서 나으리 품에 안기겠습니다.”
살며시 눈웃음을 지으며 행수 기생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방쪽을 쳐다본다.
유경이 들어간 방이었다.
“분위기가 좋은 걸요? 저 아이는 기생으로 대성하겠어요.”
아마 송도 기생들이 들었으면 배를 잡고 웃었을 것이다.
송도의 누구도 유경에게 그런 말을 한 기생들은 없었다.
모두가 유경이는 기생이 될 인물이 못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한양의 기생은 달리 말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인물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들으며 시영이 살며시 웃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정말 한양 바닥을 휘어잡을 큰 기생이, 이제 그 화려한 꽃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