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회: 두 남자 -->
“호태 있나?”
식전부터 큰 대문간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 들어가며 집 주인의 이름을 부르는 문한을 본 마당에서 비질을 하던 상노가 쪼르르 달려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오셨습니까?”
“호태 있나?”
대뜸 그것부터 묻는 문한을 쳐다보던 상노 아이가 안쪽을 가리켰다.
“어르신은 새벽부터 짐이 실려 와서 그것 확인 중이십니다.”
“거참, 부지런하네. 산삼인가 인삼인가 먹었다더니 힘이 넘치는 모양이야.”
안 그래도 내내 산삼이 아니면 인삼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문한이었지만 호태가 혼자서 그걸 먹어버렸다는 소문에 잔뜩 부아가 난 것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힘쓸 곳도 없는 놈이 그걸 먹어서 뭐에 쓰겠다고. 의리 없는 놈.”
상노 아이가 가리킨 안쪽을 향해 걸어가는 문한의 뒤를 산호가 뒤 따라 간다.
이곳이 뭘 하는 곳인지는 몰라도 <큰일>을 해보겠냐며 문한이 산호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집 주인을 만나기 위해 안쪽으로 가던 중 지나치는 뜰에 앉아 있는 몇 명의 사내들을 산호가 볼 수 있었다.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눈빛이 매서운 사내들이었다.
그런 사내들이 몇 명이나 이 집에 있는 까닭이 이제 궁금해지는 산호였다.
대체 집 주인인 호태라는 자가 뭘 하는 자인지 궁금한 것이다.
“오셨습니까?”
허리에 칼을 차고 앉아 있던 눈빛 매서운 사내들이 문한을 보고 엉거주춤 일어나 다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잘 들 살고 있지?”
그런 사내들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걸어가던 문한이 드디어 찾던 사람을 발견했는지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 놈, 호태야. 형님 오셨다.”
그 말에 안쪽 뜰에서 하인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던 중갓 쓴 사내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어, 왔어?”
시큰둥하게 문한을 쳐다보던 호태라는 사내가 다시 종이를 접어서 하인에게 건네준다.
“식전부터 바쁘네?”
“왜로 실어갈 물목들 적어 보내느라고. 요즘은 되려 청국보다는 왜가 더 돈벌이가 쏠쏠하다니까.”
“떼놈보다는 왜놈이 더 나아?”
“무조건 실어가면 돈이 되니까. 그런데 식전부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길 왔냐? 시영이는 같이 안 오고?”
“시영이야 새로 들인 계집 치마폭에 싸여 있고 난 오랜만에 재미난 놈을 발견했고...”
“시영이가 계집을 들여?”
뒷말 보다는 앞말이 더 귀를 잡아 끌은 듯 호태가 반색을 하며 문한을 쳐다봤다.
“어떤 계집인데? 인물이 반반해?”
“왜? 인물이 반반하면 장가 들게? 아서라, 서지도 않는 물건으로 어느 여자 수절시키려고.”
“내가 왜 안 서? 아침마다 발딱 발딱 잘만 서는구만.”
“정말?”
“그건 그렇고 시영이가 정말 계집을 들였어? 왜? 어디에 쓰려고?”
“기생이야.”
“아.”
기생이라는 문한의 말에 호태가 짧게, 수긍을 해버린다.
“기생. 그렇군. 그런데 왜 갑자기 기생? 이제 기생 오래비 노릇 때려치운다 하지 않았었나? 기생 오래비 노릇 그만하고 새끼나 꽈서 먹고 산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벌써 작심삼일이래?”
“불쌍해서 거뒀지. 인물도 촌스럽고 하는 것도 맹해서 엄동설한에 얼어 죽기 딱 좋아 보이니까 시영이가 거둬들였지. 시영이는 이제 기생 오래비 노릇 다시는 안한다고 했는걸.”
그때까지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 받던 두 사람의 시선이 문득 뒤에 멀끔하니 서 있는 산호를 향했다.
“저건 또 뭐야?”
호태가 턱짓으로 산호를 가리키자 문한이 씨익 웃는다.
“힘도 제법 쓰고 쌈도 제법 하더라고. 뱃짐이나 나르고 있기에는 아까울 것 같아서 내가 데려왔지. 네가 데리고 있어라.”
“애들 넘친다 넘쳐.”
“될성 부른 나무라니까. 내 안목 못 믿어?”
문한의 말에 호태가 잠시 고민했다.
그러더니 산호를 향해 물어온다.
“이름이 뭐냐?”
그러자 산호가 얼른 공손하게 대답했다.
“산호입니다. 유산호.”
“이름이 곱상하네.”
“그 왜 귀식이 패거리 애들과 붙어서 혼자 다 이겨먹었다니까.”
“정말?”
그제야 호태의 눈이 반짝거린다.
구미가 당기는 것이다.
“내 밑에서 일 좀 보겠느냐?”
호태가 하는 말에 산호가 무슨 일이냐 묻지도 않고 얼른 알겠다고 대답을 한다.
무슨 일이라 하더라도 나루터에서 뱃짐 지는 일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청나라와 왜와 무역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이 오고 가는 길에 도적떼도 많고 탈도 많은 일이라서 힘 쓰고 칼 쓰는 애들이 많이 필요하다. 네가 일을 잘해주면 이삼년 안에 너도 큰 돈을 만져볼 것이고, 내 마음에 쏙 들게 일을 하면 내가 네게 배 하나 뚝 떼어줄 생각도 있다.”
“호태 밑에서 자기 배 얻어서 나간 애들이 여럿 있어. 그러니까 잘 해봐.”
문한이 산호에게 귀뜸을 해주고는 돌아선다.
“가려고?”
“가시려구요?”
돌아서는 문한에게 호태와 산호가 동시에 물어왔다.
그러자 그 꼴을 보며 문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둘이 짝꿍이 잘 맞는 걸 보니, 앞으로 같이 일 잘하겠네.”
껄껄거리며 걸어가는 문한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산호의 어깨를 호태가 툭툭 두드렸다.
“밥은 먹었느냐?”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아직...”
“그러면 들어가서 밥이나 먹고 나와서 저기 앉아 있는 놈들에게 일을 배우거라.”
호태가 허리에 칼 차고 앉은 사내들을 가리켰다.
대충 들은 것을 모아보면 이 호태라는 남자는 상단일을 보고 있고 산호 자신은 그 상단의 호위를 맡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잘해주면 큰 돈을 만지게 되는 것이고, 잘만 하면 자기 배를 가진 작은 상선 운영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산호로서는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열심히 하면 이삼년 안으로 유경을 데리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산호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
“이리 좀 들어와 보게.”
찬 바람에 얼굴이 언 채로 마당으로 들어오던 문한을 시영이 손짓하며 불렀다.
방에 들어앉은 채로 문만 열고 들어와 보라 손짓하는 시영을 살짝 노려보던 문한이 신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자네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야.”
“난 한숨 잘 생각인데?”
“잘 때는 자더라도 날 좀 도와주고 자게나.”
시영이 문한에게 앉으라 바닥을 툭툭 친다.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는 문한의 눈에 한쪽 구석에 누워있는 유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부자리를 펴 놓고 그 위에 유경이 누워 있었다.
“뭘 하는 건데?”
문한이 수상쩍다는 눈으로 시영을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는 유경의 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기 때문이다.
속곳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유경이 누워서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계집을 안을 사내가 필요한데 내가 사내 구실을 못하니 자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지.”
시영이 짓궂게 웃으며 문한의 등을 떠밀었다.
“내가 왜?”
시영의 손에 떠밀리는 문한의 입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고자인 내가 하리?”
시영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문한이 입을 다물었다.
시영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제일 싫은 문한이었다.
“알았으니까 입 다물어. 듣기 싫으니까.”
살짝 뿔이 난 얼굴로 문한이 누워있는 유경의 옆으로 다가 앉았다.
봉긋한 젖가슴 아래 아랫배 위에 두 손을 다소곳하게 올려놓고 유경이 살며시 속눈썹을 떨었다.
“사내를 기쁘게 하려면 먼저 자신이 느낄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의 몸에서 만족을 얻는 사내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사내를 녹이려면 먼저 네가 몸의 기쁨을 알아야 한다. 문한이가 널 도와줄 것이니 마음껏 느껴보거라, 숨기지 말고.”
“네, 나으리.”
누워있는 유경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오자 시영이 문한에게 눈짓한다.
그러자 문한이 그녀의 몸 위로 천천히 엎드렸다.
문한의 손이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에 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