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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유경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아궁이 앞에 허리를 숙인 채로 불을 때고 있는 이 남자가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 장본인인 것이다.

“나으리, 제가...”

“됐다. 아서라. 기생은 손에 찬물을 묻히는 게 아니다. 찬물 묻어 거칠어진 기생의 손을 누가 좋아하겠느냐.”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짓겠다며 부엌으로 들어온 유경을 뒤따라 들어온 시영이 뒤로 보내고 자기가 소매를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능숙하게 쌀을 씻어 가마솥에 얹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시영의 모습에 유경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날이 춥다.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안에 들어가 있거라. 내가 소셋물을 떠다 주마.”

“네?”

소셋물을 떠다 주겠다는 시영의 말에 유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에게 자기가 이렇게 극진하게 대접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생이 되겠다며. 그러면 부엌에서 밥 지을 궁리보다는 방 안에서 차려주는 밥을 먹을 배짱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그 정도도 없이 무슨 기생 노릇을 하겠다고.”

“네에...”

유경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 우시영이라는 남자는 뭔지는 몰라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이 남자가 말하면 그게 진짜인 것처럼 믿어지는 것이다.

*

방 안에 오도카니 앉은 유경이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어제는 날이 어두웠고 상황이 낯설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방이었다.

어제와 별다를 것은 없었다.

방 구석 한 켠에 덮고 잤던 이부자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에는 시영과 그녀가 한 이불 안에서 잠이 들었었다.

그 남자가 자신을 안을 것이라고 유경이 예상했었지만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불을 덮은 치 조금도 지나지 않아 시영이 코를 골며 골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도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단잠이었다.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두 발을 뻗고 잠들 수 있는 오랜만의 밤.

“어어, 날이 춥구나.”

문이 열리며 시영과 함께 찬 바람이 같이 들어왔다.

군불을 땐 방안은 따뜻했지만 정월의 칼바람은 차가웠다.

시영이 그녀의 앞에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를 내밀었다.

“잠시만...”

구석의 경대 서랍을 뒤적이던 시영이 낡은 주머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대야 옆의 작은 종지에 담는다.

그것을 숟가락으로 잘 갠 다음 걸죽해 진 것을 옆에 놓고 시영이 유경을 쳐다봤다.

“세수를 할 때는 먼저 더운 물로 얼굴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여섯 번 정도 더운 물로 얼굴을 씻어낸 다음 여기 이것을 얼굴 전체에 바르거라.”

“이것은...”

“팥을 간 것이다. 기생은 보이는 외모도 중요하지만 닿았을 때 살결의 느낌이 더 중요한 법이다. 앞으로 세수를 할 때는 꼭 이렇게 해야 한다.”

송도에 있을 때 기생 언니들이 세수를 할 때면 대야에 뭔가를 뿌리거나 뭔가를 얼굴에 바르는 것을 봤어도 누구 하나 그것을 유경에게 가르쳐주는 이는 없었다.

다들 어차피 경쟁상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남들보다 더 빼어난 외모를 가져야 했기에 그것은 어쩌면 비밀이었는지도 모른다.

“깨끗하고 단아한 피부, 그것이 첫 번째다. 알겠느냐?”

눈앞의 이 남자, 우시영이라는 이 남자에 대해서 유경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 남자는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것을 알고 있을까 싶은 것이다.

“앞으로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네게 맞는 세안법, 네게 맞는 화장법, 그리고 잠자리에서 사내를 녹이는 방법까지 하루 아침에 배우지는 못하겠지만 봄이 되어 나무에 꽃눈이 필 때쯤이면 도성 내의 양반들 도포 자락 네 다리 사이에 휘감을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

“저어...나으리께서는 대체...”

알고 싶었다.

대체 이 남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유경을 향해 시영이 딱 잘라서 대답한다.

“규칙을 하나 알려주마. 여기에 있는 동안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 것. 지켜야 할 것은 그것 하나 뿐이다. 그걸 지킬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떠나면 그만이다. 지키겠느냐?”

“...”

자신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는 남자.

더 궁금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자, 빨리 세안을 마치거라. 그래야 조반을 먹지 않겠느냐.”

“다른 분께서는...”

문한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젯밤 이곳에 같이 있었던 문한이 아침부터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당 건넌방이 문한의 방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방 댓돌 앞에 신발은 없었다.

그것은 그 방 주인이 아침 일찍 어딘가 갔다는 뜻이다.

“문한이? 문한이 그 친구는 식전 댓바람이면 나루터를 한번 도는 것이 일과니까 신경 쓰지 말거라. 지내다보면 차차 알겠지만 문한이처럼 좋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잘 보여 두거라.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 친구만큼 든든한 사람이 없을 것이니.”

“네에...”

작게 대답하며 유경이 대야 안으로 손을 넣었다.

더운 물이 그녀의 손에 엉겨 붙었다.

“거, 빨리 빨리들 움직입시다!”

“서두르라고! 배 떠나면 더 헛것이여!”

“거기, 줄을 더 팽팽하게 당겨!”

거친 사내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오가는 아침 나루터의 정경 속에 어깨에 칼을 올린 채로 문한이 서 있었다.

시영의 말처럼 새벽에 눈을 뜨면 나루터를 한번 돌아보는 것이 그의 일과의 시작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어디 시비 거는 놈이 없나 한번 살펴보고, 어디 맞장 뜰 놈이 없다 또 한번 살펴보고, 시영의 말을 빌리자면 ‘한 판 붙을 놈을 찾아서 늘 싸돌아다니는’ 것이다.

남들 보기에도, 친구인 시영이 보기에도, 그리고 문한 자신이 보기에도 할 일 없는 건달, 딱 그 모습을 한 채로 오늘도 문한이 어깨에 어젯밤 손질 끝낸 칼을 메고 버티고 서 있었다.

어디 붙을 놈이 없나 하면서 말이다.

“그건 여기에 가져다 놓거라.”

막 나루터에 도착한 짐배에서 쌀섬을 옮기는 한 짐군에게 문한의 시선이 가서 닿는다.

떡 벌어진 어깨며 매서운 정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낸 맨 살갗의 울퉁불퉁한 근육이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딱 한번 맨손으로 붙어보면 좋은 상대이지만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기는 조금 그렇다.

무슨 이유를 갖다 붙일까 잠시 고민하던 문한의 귀에 시끄러운 시비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뭣들 하는 겁니까?!”

“여긴 우리 구역이라는 거 몰라?!”

조금 전에 찜해 놓은 짐군 청년과 나루터 근처에서 장사꾼들 자릿세를 뜯어먹고 사는 왈패들이 시비가 붙은 것이다.

왈패들의 손에는 칼이 있고 청년은 맨손이었다.

‘어디 보자...’

문한이 눈을 빛내며 그 광경을 지켜본다.

“통행세도 내지 않고 물건을 내리면 안 되지.”

왈패 한 명이 청년이 쌓아놓은 쌀섬에 칼을 찔러 넣고 빼자, 그 안에서 쌀알이 주르륵 쏟아진다.

쌀알이 주르륵 쏟아지는 그 순간, 청년이 꽉 움켜진 주먹으로 왈패 사내의 턱을 후려 갈겼다.

퍼억-!

“크윽!”

비명 소리와 함께 왈패 사내가 뒤로 거꾸러지자 그 뒤에 서 있던 왈패 사내들이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옳거니, 한판 붙는구만.’

순식간에 나루터 주변이 살벌하게 변해 버리고, 주위에 오가던 짐꾼들과 장사꾼들이 겁을 먹고 물러나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 문한만이 싱글벙글 즐겁게 웃으며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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