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회: 두 남자 -->
쓰윽 쓰윽.
찬 바람에 언 손으로 볏짚을 비비는 손길이 무척이나 바빴다.
굳은 살이 잔뜩 박힌 거친 손 아래서 잘 꼬인 새끼가 술술 풀어져 나온다.
두 가닥의 볏짚이 그 거친 손을 통과하자 새끼가 되어서 또아리를 틀며 내려왔다.
새끼를 꼬는 사내의 옆으로 그렇게 꼬아낸 새끼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그 새끼로 꼬아 놓은 짚신과 망태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 엄동설한에 구슬땀을 흘리며 새끼를 꼬는 사내의 뒤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호태 놈이 어제 보니 여기저기 힘자랑 하고 돌아다니던데, 그 이유를 알고 있어?”
“으악!!”
기척도 없이 다가와 갑자기 등 뒤에서 던지는 목소리에 기겁을 한 사내가 꼬던 볏짚을 내던지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것인지 사내의 바로 등 뒤에 웬 사내가 다가와 있었다.
눈매가 제법 무서운 사내의 모습에 새끼를 꼬던 사내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 이 사람아, 기척이라도 내고 다니게나.”
“놀라기는. 뭐 몰래 혼자 훔쳐 먹었나?”
“그나저나...호태가 힘 자랑 하고 다닌다고?”
“응”
“잘은 모르겠는데 엊그제 무슨 산삼인가 뭔가를 한 뿌리 얻어 먹었다고 자랑질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어디서 도라지 한 뿌리 주워 먹고 그러는 가 보구만.”
사내의 말에 새끼를 꼬던 사내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호태라는 순진한 사내가 또 누군가에게 속아 도라지를 산삼으로 알고 먹고 여기저기서 불끈 불끈 힘자랑하고 다니는 모습이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쁜가?”
“짚신 삼고 나서 왕골을 짜야 하네.”
다시 볏짚을 집어 드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눈매 사나운 사내가 심퉁스럽게 한마디 내뱉는다.
“그건 나중에 하고 나 하고 어디 좀 가세.”
“응?”
뜬금없는 사내의 말에 새끼를 꼬던 사내가 눈을 멀뚱 멀뚱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송파 나루 근처에 일이 좀 있는데 혼자 가긴 심심하고 누가 같이 가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 홍연이 놈도 안보이고 해서 자네라도 같이 가세.”
“...”
쉽게 대답을 못하는 사내를 향해 눈매 사나운 사내 문한이 씨익 웃었다.
이 사내 문한을 쉽게 따라 나서지 못하는 것은, 이 사내를 따라 나서면 싫어도 문제와 엮이게 되는 것이 영~불안하기 때문인 것이다.
삼짓 나루에서 소문이 나 있는, 문제를 몰고 다니는 사내 문한이 바로 이 눈매 사나운 사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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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해야 하지? 나도 실은 바쁜 사람이란 말일세”
“시끄러. 새끼나 꼬고 있는 놈이 말이 많아.”
“지금 뭘 하려고 하는지만 알려주면 안될까?”
“모르는 게 약이야.”
“불안하단 말일세.”
“그냥 시간만 때우면 되는 일이야. 시간만. 나 혼자는 심심하다고 말했잖은가.”
“난 내일까지 왕골을...”
“쉿!”
티격태격 말을 주고 받던 중 문한이 갑자기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대며 나루 근처의 주막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상한 낌새가 모락모락 풍겨나는 다섯 명의 사내들이 모여 무언가를 수건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찾았다.”
문한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뭘?”
“얼마 전에 시비가 붙은 놈들인데 몇 놈을 놓쳤거든. 저 놈들이야. 그때 놓친 놈들. 뒤끝이 남아있으면 좋지 않은 법이니까 찾아내서 싹쓸이하려고 찾고 있던 중이었어.”
“뭐?”
“자넨 여기 있어.”
이거 위험한 일에 끼어들었다 싶어 이마로 식은땀이 흐르는 사내를 무시한 채 문한이 주막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주막에 앉아있던 다섯명의 사내들이 그제야 문한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네 놈은..!!”
“겨우 숨은 곳이 여기냐! 바보들!!”
“빌어먹을!!”
앉아있던 사내들이 문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검을 잡으며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을 뽑아드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문한이 차갑게 한번 웃는다.
이 사내는 일단 검을 들면 인정사정이 없는 사내인 것이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검을 뽑아드는 동시에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내의 목을 문한이 베어버리자 피가 솟구쳐 문한의 짙은 군청색 옷자락을 적신다.
다음 순간 왼쪽에 서있던 사내가 휘둘러 오는 검을 문한이 아직 왼손에 들고 있던 검집으로 막아낸 후 오른손의 검으로 봐주지 않고 베어 넘겨 버린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휘두른 칼날이 문한 특유의 대범하고 자신감 있는 호선을 그리며 다음 사내의 어깨를 베어버렸다.
“...”
새끼를 꼬다가 끌려온 사내는 그저 문한의 짙은 군청색 옷자락과 차가운 칼날의 서늘한 광채와 흩날리는 핏방울, 그리고 그를 비추는 저무는 해의 주홍빛 흔적을 보며 마치 무희의 춤사위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버렸을 뿐이다.
검무를 추는 듯한 검이 그의 특기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난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사내 한 명이 남은 순간, 문한이 그의 검을 시원스레 날려버리고는 다리를 뻗어 사내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그 힘에 밀려 사내가 주막집의 나무 기둥에 부딪쳐 주르륵 미끄러지려는 순간 문한이 그 걷어찬 다리에 힘을 주며 사내의 가슴을 눌러 버린다.
“크윽!”
갈비뼈가 나간 듯 사내의 입에서 선혈이 흘렀다.
“이제부터 여긴 내 구역이니까 날 건드리는 놈은 다 죽는다”
바닥으로 늘어뜨렸던 검을 든 오른손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문한이 차갑게 웃었다.
문한의 검이 사내의 목덜미를 찌르는 마지막 순간에 새끼 꼬던 사내가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 것을 보는 취미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내는 이미 주검으로 변한 후였고 문한은 검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고 있었다.
스르릉, 검이 쇳소리를 내며 검 집으로 들어갔다.
“실례지만 시체 좀 치워주겠소?”
부엌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놀라 떨고 있는 주막 주인을 향해 말을 건넨 다음 문한이 품에서 꽤나 두둑해 보이는 주머니를 꺼내 마루에 던져준다.
그것으로 값을 받고 시체나 좀 치워달라는 뜻이리라.
“죽일 만큼 큰일이었나?”
바라보던 사내의 말에 문한이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이 시큰둥하게 돌아보았다.
“딱히 구역을 챙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가만히 있는 놈 건드리는 놈들이 잘못이야. 그냥 조용히 강 구경 하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통행료를 받겠다고 하잖아. 감히 누구에게 통행료 운운하는 건지 주제를 가르쳐 주는 거야. 물론 그 값은 목숨으로 치르는 거구”
“정말, 사납기 그지없는 친구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문한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비켜간다.
그리고 뭔가를 발견한 듯 문한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저건 뭐지?”
“뭐가?”
문한의 시선을 따라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주막 문턱을 막 넘어서고 있는 사내 한 사람과 그 뒤를 따르는 계집 한 명이 문한과 그의 동행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누가 이런 짓을!”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는 사내들의 주검을 발견한 사내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행색을 눈으로 살피던 문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한 패거리군.”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피 묻은 검이 위로 쳐올려졌다.
“으악!”
칼을 들어올리는 문한의 모습에 막 주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사내가 허둥지둥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넘어질 듯 허둥거리며 달아나는 사내의 뒤를 쫓아간 문한이 사내의 등을 한번에 내리 그었다.
촤악-!
살이 가르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사내의 등에서 솟구쳐 오른 핏방울이 그의 뒤를 따라 오던계집의 얼굴과 옷에 날아 들었다.
“꺄아악!”
새하얀 얼굴과 고운 저고리에 튀어드는 붉은 핏방울에 유경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털석 주저앉은 그녀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우시영이라는 사내에게 데려다준다는 말을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주막에 도착하자마자 웬 사내가 길잡이 사내를 한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광경을 목격하며 유경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었다.
문한의 손에 들린 칼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할 것 같아서 유경이 덜덜 떨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때였다.
“다 처리한 것 같으니 그만 가세나, 시영이.”
칼 든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에 유경이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칼 든 사내는 분명 같이 서 있는 또 다른 사내를 향해 ‘시영’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시영, 우 시영.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그 남자일 것이다.
틀림없다고 생각한 유경이 주먹을 꽉 쥐고 피투성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시영 나으리?”
그 순간 문한의 옆에 서 있던 사내가 그녀를 돌아봤다.
“나를 아느냐?”
놀란 목소리였다.
삼짓 나루가 아닌 송파나루, 그 강바람 불어오는 주막 위로 어느덧 완전히 자취를 감춘 해 대신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