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회: 겨울 -->
“그래. 한양 젊은 놈 맛이 좋더냐?”
얼굴 전면에 불쾌한 미소를 띤 이 늙은 양반은 원래 유경의 머리를 올려주기로 했었던 윤진사였다.
더 많은 값을 부르는 양반이 기생의 머리를 올려주는 것이 관계라지만 한양에서 내려온 젊은 놈에게 자기가 찜해 놓았던 새끼 기생을 빼앗겼다는 앙심이 아직 이 윤진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처음 선을 보이는 유경을 바로 불러들여 자기 앞에 앉혀 놓은 윤진사가 유경의 저고리를 풀며 음흉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기생 노릇 해 먹으려면 누구 눈에 잘 들어야 하는 지 너도 머리가 있다면 잘 알 것이다. 네가 한양 기생 노릇을 해 먹겠다면 또 모를까, 송도에서 기생질을 해먹으려면 한양 양반이 아니라 송도 양반 눈에 들어야 하는 법.”
불쾌한 기색이 어린 윤진사의 목소리에 유경이 눈을 들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윤진사의 손이 자신의 옷고름을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경의 저고리가 벗겨 나가며 그녀의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그년, 피부 하나는 곱구나.”
윤진사가 투명한 속적삼 너머로 불룩 솟아오른 유경의 젖가슴에 침을 한번 삼키고는 그녀의 치마 끈을 그 주름진 손으로 풀어낸다.
입고 있던 연분홍 치마가 힘없이 벗겨지며 이어서 속적삼과 속치마가 바닥에 뒹굴었다.
윤진사는 불도 끄지 않았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벗겨 놓으니 볼만은 하구나. 그래, 너는 입고 있는 것보다는 벗고 있는 것이 더 나으니 차라리 벌거벗고 다니는 게 어떻겠느냐?”
음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윤진사가 유경의 손목을 잡아서 금침 위에 눕혔다.
금침 위에 눕혀지며 유경이 눈을 감으려다 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눈을 감아버리면, 지금 도망쳐버리면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삶이 이런 것이라면 여기서 도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도망쳐버린다면 자신의 머리를 올려준 추영이라는 사내에게도, 그리고 자신을 기적에 올려준 추월에게도 못할 짓을 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이 기생의 삶이라면 도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당하게, 이리저리 꺾여질지언정 당당하게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유경의 눈동자 안에 허연 수염을 턱에 매단 윤진사의 얼굴이 가득 차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이 유경의 젖가슴을 움켜 잡았다.
“아읏...나으리...”
가느다란 신음이 유경의 입술에서 흘러나오자 윤진사가 그녀의 젖가슴을 게걸스럽게 빨기 시작한다.
“으응...”
유경이 작게 몸부림쳤다.
그녀의 속속곳이 그녀의 발목 아래로 흘러내렸다.
- 기생이란 무엇이어요? -
문득 그녀가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녀가 교방에 수업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어린 유경을 향해 교방의 선생님은 간단하고 명쾌하게 가르쳐 주었었다.
- 웃음을 팔고, 재주를 팔며 몸을 파는 것이 기생이다. 사내들에게 웃음만 파는 기생이 있고, 사내들에게 온갖 재주를 파는 기생이 있지만, 웃음도 팔지 못하고 재주도 팔지 못하는 기생은 몸 밖에는 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몸만 파는 기생을 가장 천한 기생으로 취급하는 법이다. 기생의 으뜸은 웃음을 파는 기생이요, 그 다음은 재주를 파는 기생이니 너도 진짜 기생이 되고 싶다면 웃음을 파는 법을 배우고 팔 재주를 익히거라. 그것을 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몸 외에는 팔 것이 없어질 것이야. -
교방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고 유경이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사내들에게 웃음을 팔 능력이 없다.
다만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미모를 가져 그것으로 사내들이 웃게 만드는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
그리고 재주도 없다.
춤도, 가야금도, 노래도, 하다못해 싯구 조차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늘 둔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외모도, 재주도 가지지 못한 그녀는 결국 기생 중에서 가장 천하다는 몸 파는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팔 것이 몸 밖에 없다면, 그리하여 그것으로라도 기생의 이름을 유지할 수 있다면 팔아야 한다.
그것마저 팔지 못한다면 정말 쓸모 없어지는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으읏...나으리...불을...”
불을 꺼달라는 유경의 애원에 윤진사가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어린 년 구멍이라 냄새가 틀리긴 틀리구나.”
다리 사이에 훅, 끼치는 더운 숨에 유경이 다리를 움찔거렸다.
윤진사의 혀가 꿈틀거리며 그녀의 꽃잎을 파헤치며 들어온다.
그 거칠고 음험한 혀의 침입에 놀란 유경의 허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손으로 잡은 윤진사가 그녀를 금침 위에 돌려 엎드리게 한다.
“자, 자. 자고로 놀이 중에 최고의 놀이는 방중 마상이라고 했지.”
그녀를 엎드리게 한 윤진사가 그녀의 둥근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더듬었다.
“아읏!”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윤진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둥근 엉덩이를 때린다.
“이 년 엉덩이 살 찰진 것 좀 보게. 어린 것이라서 살이 아주 찰지구만.”
그 말과 함께 윤진사가 다시 한번 그녀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으읏...”
금침 위에 엎드린 채 엉덩이를 쳐든 유경이 작게 신음했다.
그녀의 뒤로 윤진사가 올라타고 있었다.
벌거벗은 윤진사의 몸이 그녀의 뒤로 닿는 순간, 그녀가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꾹 참았다.
윤진사의 물건이 그녀의 계곡을 가르고 안쪽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느낌에 유경이 눈을 질끈 감으며 어젯밤 그 흐릿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안아주었던 남자의 윤곽을 떠올렸다.
“아...나으리...”
그 남자를 부르고 싶었다.
이추영 나으리, 라고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가 지금 이순간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단 한번 정을 나누어 가진 그 남자가 무척이나 보고 싶고, 또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다정하게 안아주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하며 원망하는 것이다.
차라리 거칠게, 마구잡이 물건을 대하듯이 안았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다정하게 안아주는 바람에 그녀의 몸이 그 다정한 남자의 품을 각인해버린 것이다.
다정한 듯 뜨겁게 안아주던 그 남자의 몸을 그녀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뒤쪽에서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윤진사의 몸이 벌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으리...아흣...”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이 음탕한 욕정의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유경이 바랬다.
*
그 날 유경이 청연루를 나선 것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것인지 윤진사는 그녀를 한번 안은 것으로 뻗어 버렸다.
한번, 그것도 몇 번 허리를 흔들지도 못하고 금침 위로 뻗어버린 윤진사의 벌거벗은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 유경이 옷을 갖추어 입고 그 방을 나선 것이다.
오늘 화대는 나중에 추월이 한번에 셈을 치루어 줄 것이다.
기다리고 있던 할멈을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유경의 눈가에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밤의 찬 바람이 그녀의 젖은 눈가를 씻고 지나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눈가가 젖어있는 것은 가슴 속에 새겨진 그리운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그녀가 가만히 가락지 낀 손가락을 가슴에 모아본다.
소중하게 가락지 낀 손을 가슴에 모으는 유경의 뺨에 바람이 스쳤다.
차가운 듯 젖은 바람이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