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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춘삼월.

제법 쌀쌀한 날씨이건만 방안에 불을 많이 땐 것인지 더운 공기에 유경이 숨이 막혀왔다.

방이 뜨거운 것인지 아니면 유경 자신의 몸이 뜨거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매끄러운 비단 금침이 등의 살갗에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사내의 손에 의해 속적삼과 속치마가 순서대로 그녀의 몸에서 벗겨져 나가자 사내가 그녀를 비단 금침 위에 눕힌 것이다.

그녀를 눕히기 위해 그녀의 허리에 닿는 사내의 손바닥의 느낌이 투박했다.

양반의 손은 여인의 손보다 더 곱다고 들어온 유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몸을 만지는 손은 크고 거칠고 투박한 손이었다.

투박하고 뜨거웠다.

사내의 손이 닿은 그녀의 허리 주변이 뜨거웠다.

어둠 속에서 희끗한 그녀의 살결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속적삼과 속치마로 감추고 있던 봉긋한 젖가슴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채로 그녀가 금침 위에 반듯이 누웠다.

그녀를 눕힌 사내가 천천히 그녀의 속속곳을 그녀의 다리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은밀한 부위를 가린 다리 속곳 하나만이 남겨졌을 때 그녀가 애써 삼키던 숨을 작게 내뱉었다.

만약 촛불이 켜져 있었더라면 정말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을 것이다.

작게 숨을 내뱉는 그녀의 옆에서 사내가 도포를 벗기 시작했다.

부스럭거리며 도포와 그 안에 입고 있던 저고리와 바지를 벗는 사내의 움직임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 안에 흐릿하게 들어왔다.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인 그녀의 숨이 가빠져왔다.

이제 곧 사내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부끄러움과 불안함이 겹쳐져서 그녀의 머리가 어찔해졌다.

이리 무섭고도 부끄러운 일을 다른 기생들은 어떻게 치뤘는지 궁금해졌다.

재작년에 머리를 올린 동무 연홍은 유경 자신보다 몸집도 작은 데 어떻게 이런 무섭고도 아찔한 일을 견뎌냈는지 정말 궁금해진 것이다.

옷을 다 벗은 것일까.

사내가 유경의 옆으로 몸을 뉘었다.

그녀가 베고 있는 베개 옆에 나란히 놓인 베개 위로 사내가 눕는 것이 유경에게 느껴졌다.

금침 위에 누우면서 사내가 이불을 끌어올려 유경과 자신의 몸 위에 덮었다.

금방이라도 사내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을 것 같아서 유경이 작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도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유경의 몸을 만져오지도, 유경을 향해 돌아눕지도 않았다.

그저 반듯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유경이 생각했다.

초야는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유경도 알고 있었다.

어떤 기생은 초야를 치를 때 밤새 시달려서 아침이 되었을 때 두 발로 걸어 나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저...”

마침내 유경이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저, 나으리...”

하지만 유경이 부르는 소리에도 사내는 움직이는 기척이 없었다.

유경이 잠시 고민했다.

이 사내는 유경 자신 쪽에서 먼저 안겨오기를 바라는 것일까?

옷을 벗겨준 것으로 사내 자신이 할 몫을 다했으니 이제 유경이 안겨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짧은 시간 고민하던 유경이 마침내 생각을 정했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 역시 이제 기생인 것이다.

사내를 유혹하지 못하면 어떻게 남은 시간을 기생으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나으리...”

유경이 사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사내의 가슴 위로 살며시 손을 올려 놓아 본다.

사내의 단단한 가슴이 유경의 손바닥에 느껴졌다.

사내의 손바닥에서 느껴졌던 그 투박함이 가슴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나으리, 제가...”

사내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만지며 유경이 사내의 가슴 위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젖가슴이 사내의 가슴에 짓눌리며 말캉하게 뭉그러졌다.

젖가슴에 닿는 낯선 사내의 감촉에 유경의 귓불이 달아올랐다.

그때였다.

“애쓰지 말거라.”

긴 침묵을 깨고 사내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유경 쪽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였다.

“네?”

사내의 말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유경이 그대로 멈췄다.

그런 유경에게 등을 보이며 사내가 돌아누웠다.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 사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은 유경이었다.

그제야 그녀가 확실히 깨달았다. 이 사내는 자신을 안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들어오자마자 혼자서 술을 따라 합환주를 혼자 마셔버린 것도, 망설임 없이 촛불을 불어 꺼버린 것도, 그리고 그녀의 옷을 다 벗기지 않고 다리 속곳을 남겨둔 것도, 그리고 그냥 나란히 누워버린 것도,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누운 것까지, 이 사내는 유경의 몸을 취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옷고름은 풀어줬으니 그만이지 않느냐. 밤이 깊었다. 그만 자 두거라.”

유경의 확신에 쇄기를 박듯 사내가 그 말을 던지고는 아무런 말이 없다.

돌아누운 사내의 등을 바라보며 유경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원래 받기로 한 머릿값의 두 배를 이 사내가 치렀다고 들었다.

그런데 머릿값을 치르고 그녀를 안지 않겠다는 사내.

머리를 올려주는 상대에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은 사내.

매정하게 돌아누워 버린 사내.

순간, 유경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소리 내서 울 수는 없었다.

자신은 기생 실격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다.

기생으로서 실격이라고.

초야도 치르지 못한, 아니 초야를 치를 가치조차 없는 기생이 무슨 기생이란 말인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없게 보였으면 초야도 치르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니 스스로가 비참해서 눈물이 쏟아지는 유경이었다.

사내가 탐내지 않는 기생은 기생이 아니다.

꺾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꽃이 꽃이 아닌 것처럼, 옆에 두고도 사내가 탐내지 않는 계집을 어떻게 기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몰려들어서 유경의 눈물을 부추겼다.

기생이라는 이름은 얻었으되 평생을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기생이 되어서 홀로 쓸쓸하게 늙어갈 지도 모를 일이었다.

등을 돌린 사내의 뒤에서 유경이 몸을 웅크리고 울음을 삼켰다.

비참함과 불안감이 섞인 눈물이 그녀의 뺨으로 흘러내렸다.

“우는 것이냐?”

사내가 몸을 일으킨 것은 그때였다.

유경의 흐느낌이 이불 안에서 전해진 것일까.

그녀의 울음이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사내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눈물로 눈앞이 뿌옇게 변해서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내가 너를 울린 것이냐?”

처음에는 무섭기만 하던 사내의 목소리가, 딱딱해서 무섭기만 하던 그 목소리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흑...”

유경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유경이 흐느낌을 애써 삼켰다.

흔들리는 그녀의 어깨에 사내의 손이 닿았다.

“울지 말아라. 대체 왜 우는 것이냐.”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잡은 사내가 몸을 기울여 얼굴을 가까이 가져온다.

사내의 숨결이 그녀의 눈물에 닿자 더 서러워진 그녀가 눈을 꽉 감았다.

꽉 감은 눈꺼풀 위에 따뜻한 것이 닿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것이 사내의 입술이라는 것을 그녀가 깨달은 것은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그녀의 눈꺼풀에서 미끄러져 눈물이 흐르고 있는 그녀의 뺨에 머물렀을 때였다.

사내가 그녀의 눈물을 입술로 핥아주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냐?”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던 사내가 살며시 그녀의 입술을 훔친다.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사내의 부드러운 입술에 유경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의 떨림을 느낀 것인지 사내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러 덮는다.

처음에는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사내의 입술이 두 번째 겹쳐지는 순간, 유경이 사내의 손보다 더 뜨거운 입술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입술, 그리고 그보다 더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벌어진 입술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으응...”

저도 모르게 그녀가 신음하며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어둠 속에서 사내의 얼굴이 흐릿하게 들어왔지만 그 얼굴이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유경이 자신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오는 사내의 혀를 받아들였다.

뜨거운 혀가 그녀의 혀를 휘어 감으며 그것과 동시에 사내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휘어 감고 있었다.

그녀의 위로 사내의 몸이 겹쳐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계피몬님 ㅠㅠ 첫 코멘트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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