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회: 초야 -->
처음 입어보는 고운 비단 옷자락의 느낌에 유경이 자꾸만 팔을 들어봤다.
살갗에 와 닿는 매끄러운 비단이 너무나도 가벼워서 지금 자신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벗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만약 명경이 있다면 지금 자신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다.
기생 언니들이 그녀의 얼굴에 하얀 분을 발라주며 이런 저런 조언들을 해줬지만 하나도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그저 코끝을 찌르는 분냄새와 입술에 덧칠해 진 연지의 느낌이 생소할 뿐이었다.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한 것은 가슴깨에 매달고 있는 사향낭의 향 때문일 것이다.
이 사향낭을 달고 있어야 사내가 좋아한다는 다른 기생들의 말을 떠올리며 유경이 저고리에 매달린 비취 노리개를 만져본다.
오늘 머리를 올리는 그녀에게 행수 기생이 선물한 것이다.
행수 기생 추월이 유경의 저고리에 이 노리개를 달아주며 신신 당부를 해주었다.
- 절대 사내에게 정을 줘서는 안 된다. 사내는 한번 돌아서면 남과 다를 것이 없으니 첫 사내라고 해서 정을 주면 마음 고생하는 것은 결국 네가 될 것이니, 몸은 주되 정은 주지 말거라.
물론 유경도 잘 알고 있었다.
기생을 찾는 사내들이 그녀들에게서 만족감을 얻더라도 절대로 그녀들의 삶까지 전부 책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루에서 자라며 보아왔던 것이다.
운이 좋아야 양반의 첩실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 버려지는 것이다.
유경이 머리를 쪽지고 있는 비녀를 손으로 한번 어루만져 본다.
처음으로 머리를 쪽지고 그 머리에 꽂은 은비녀였다.
지금까지 유경을 키워준 강씨가 직접 꽂아준 은비녀에 딸을 시집보내는 듯한 강씨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게 단장한 유경이 촛불로 밝혀진 방 안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얼굴도 모르는 사내를 기다려본다.
난생 처음 입는 비단옷에 처음 꽂아본 비녀, 그리고 떨잠, 비치 노리개, 그녀의 몸을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아름다운 것들도 그녀의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녀의 옆에 비단 금침이 깔려 있었다.
너무 고와서 손으로 만지지도 못할 것 같은 그 비단 금침 위에서 사내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낯선 사내의 품에 안겨서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몸을 열어주고 마침내 진짜 기생이 되는 것이다.
문득 사흘 전의 그 소란이 떠올라서 유경이 어깨를 가만히 떨어본다.
밤중에 그녀의 방에 침입해서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던 그 물장수는 관아에 넘겨져 곤장을 맞고 옥사에 갇혔다고 들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무서웠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이 지나면 이제는 아무나 그녀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돈만 내면 사내라면 누구라도 그녀의 몸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마음대로 꺾을 수 있는 꽃.
들 꽃.
말 그대로 노류장화가 되는 것이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문이 덜컹거리기라도 하면 행여나 기다리던 사내인가 싶어서 유경이 화들짝 놀라며 문 쪽을 쳐다봤다.
그녀의 옷고름을 풀어줄 첫 사내는 젊은 사내라고 다른 기생들이 미리 언질을 주었었다.
원래 그녀의 머리를 올려주기로 한 늙은 양반 대신 한성에서 온 젊은 양반이라고 자기들이 더 좋아하는 모습이 유경의 눈 안에 선했다.
머리값도 원래의 값에서 두 배를 치렀다고 했다.
‘어떤 사내일까...’
유경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모습을 한번 상상해본다.
지금까지 이 기루에 발을 들여놓았던 양반님네들의 모습을 섞어가며 이런 저런 모습을 상상하던 유경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슬쩍 어깨를 떨었다.
어쩌면 또 바람 소리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유경이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고 안ㄴ으로 들어서는 사내의 모습이 그녀의 눈 안에 들어왔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숨을 삼켰다.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얼굴을 들어 그 사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붉어진 얼굴을 숙여버린 유경이 애꿎은 치맛자락만 움켜잡았다.
버선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고개 숙인 그녀의 눈에 그녀의 바로 앞에 앉는 도포자락이 들어왔다.
하늘빛을 닮은 푸른 도포자락이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유경도 알고 있었다.
- 한성 사시는 현신교위 품계의 이추영 판관 나으리라는 분이시다. 잘 모셔야 한다.
행수 기생 추월이 그 이름을 유경에게 말해주며 몇 번이나 잘 모시라고 당부를 했었다.
‘이추영 나으리...’
유경이 앞에 놓인 푸른 도포자락을 살며시 눈으로 훔쳐보며 그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어떤 얼굴인지 보고 싶지만 쉬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술을 따라 드려야 하는데...’
유경이 살짝 옆에 놓인 주안상을 쳐다봤다.
그곳에 합환주와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그 합환주를 나눠 마신 다음 사내가 기생의 쪽진 머리에서 비녀를 빼주고, 옷고름을 풀어내 동침을 하는 것이다.
합환주가 담겨진 주전자를 잡는 유경의 손이 덜덜 떨렸다.
교방에서 몇 번이나 교육을 받은 것이지만 막상 진짜로 하려고 하니 손이 떨리는 것이다.
“됐다. 내 손으로 따라 마시마.”
그것이 처음으로 들은 사내의 목소리였다.
무뚝뚝한 그 목소리에 유경이 주전자를 잡은 손을 얼른 치운다.
목소리가 무서웠다.
그의 목소리가 무서워서 아니라고, 자기 손으로 따라드리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내의 손이 주전자를 들어 올리는 것이 유경의 눈에 살짝 들어왔다.
작은 두 개의 잔에 술이 따라지고 그 중 하나를 사내가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술을 넘기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온다.
그러나 유경이 자신의 술잔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손이 떨려서 술을 쏟을 것만 같았다.
스스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지 유경이 당장이라도 이 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완전히 기생 실격인 것이다.
이 사내도 이런 것을 바라고 머리를 올려주겠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기생 같은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아양을 부릴 줄도 알고, 교태로운 모습으로 품 안에 나긋나긋하게 안기는 모습을 기대하며 머리를 올려주겠다 했을 이 사내에게 미안해서 도저히 그녀가 얼굴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마음은 뭔가 가득한 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시지 않을 거라면 불을 꺼도 되겠느냐?”
주저하는 그녀의 귀에 다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은 불을 밝힌 채로 첫 밤을 보낸다고 유경이 들어 알고 있었다.
보통 새끼 기생의 머리를 올려주는 양반들은 그 첫날밤에 불을 밝힌 채로 그 새끼 기생의 몸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수줍게 안기는 모습과 처음으로 사내를 받아들이는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기에 거의가 불을 끄지 않는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이 사내가 지금 불을 끈다고 하는 것이다.
‘역시 난 안 되는 건가봐...’
얼마나 자신이 매력이 없으면 차라리 불을 끄겠다 말하겠는가 싶어서 유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이 상태로 불을 꺼버리면 아마 밤이 새도록 사내의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자신의 첫 사내의 얼굴을 모른 채로 살아갈 지도 모른다.
“저어...”
불은 그냥 두면 안 되겠냐고 유경이 용기를 내서 말하려고 할 때,
“훅.”
사내가 촛불을 불어 껐다.
그리고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 앉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그 사이로 사내의 손이 유경의 옷고름에 닿은 것은 그때였다.
“아...”
유경이 작게 소리를 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옷고름을 풀던 손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그녀의 머리 뒤쪽으로 옮겨간다.
비녀를 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쪽진 머리에서 비녀가 빠져나가며 그녀의 땋은 머리가 흘러 내렸다.
곱게 땋은 머리가 등으로 내려지며 다시 사내의 손이 그녀의 옷고름을 잡아 당겼다.
유경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방안이 환했다면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붉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그녀의 어깨에서 저고리가 흘러 내렸다.
그녀의 가슴 중앙에 묶여 있는 치마의 매듭을 풀기 위해 사내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유경이 속적삼에 젖어드는 사내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웠다.
숨결이 이렇게나 뜨거웠다.
이렇게나 숨결이 뜨거운 것이 사내인 것이다.
그녀의 비단 치맛단이 작은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