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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회: 초야 -->

후회할 땐 후회하더라도 유경에게 고백을 하자는 결심을 한 산호가 유경의 방으로 향했다.

만약 유경이 자신을 거절하면 그땐 이곳 청연루를 떠날 결심까지 한 것이다.

유경과 맺어질 수 없다면 차라리 이 청연루를 떠나서, 유경의 곁을 떠나서 먼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을 하고 유경의 방으로 찾아오는 길이었다.

이 시간이면 그녀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밤이 가기 전에, 잠든 그녀를 깨워서라도 고백을 하고 대답을 들을 결심이었다.

그런데 유경의 방 가까이 왔을 때 산호의 눈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읍! 으읍!”

닫혀진 유경의 방 안에서 억눌린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유경의 것이었다.

“유경아?!”

틀림없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산호가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유경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방문을 연 산호의 눈에 막 유경을 겁탈하려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속적삼이 찢어진 채로 젖가슴을 드러낸 유경은 하체 마저도 완전히 벌거벗겨져 있었고, 그런 그녀의 알몸 위에 짐승 같은 사내가 올라타 있었다.

“오라버니!”

입을 틀어막고 있던 사내의 손이 떨어지는 순간 유경이 비명을 질렀다.

“이 죽일 놈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온 산호가 유경의 위에 올라타고 있던 사내를 거칠게 끌어내렸다.

“윽!”

거센 산호의 힘에 사내가 바닥에 뒹굴었다.

“어떤 놈이 감히!”

산호가 바닥에 뒹구는 사내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크악!”

산호에게 걷어차인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구르듯이 방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달아나려고!”

달아나는 사내를 잡으려고 산호가 뛰어 나가려고 할 때 유경이 산호를 붙잡았다.

“오라버니! 가지 말아요!”

뒤돌아본 산호의 눈에 덜덜 떨고 있는 유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벌거벗은 알몸을 가릴 생각도 못한 채로 유경이 산호의 바짓단을 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괜찮니?”

달아나는 사내를 잡으려는 생각을 포기한 산호가 유경에게 다가 앉았다.

“괜찮은 거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다행히 겁탈 직전이었던 것 같았다.

그 사내놈은 유경의 옷만 찢어놓고 제 욕심을 미처 채우기도 전에 산호에게 발각된 것이다.

천만다행이라고 산호가 안심했다.

만약 자신이 유경에게 고백하려는 결심을 하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분명 유경은 그 놈에게 겁탈 당했을 것이다.

“이걸로 좀 가려야겠다.”

산호가 벌거벗은 유경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준다.

어차피 속적삼은 찢어졌고 방안 이곳저곳에 그녀의 다리 속곳이며 속속곳이 흩어져 있었다.

급한 대로 이불로 그녀의 몸을 가려준 산호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

“괜찮아, 오라버니가 왔으니까 이제 괜찮아.”

“흑...흐윽...”

긴장이 풀린 것인지, 유경의 입술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너무 무서웠던 그녀였다.

정말 그대로 당한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던 그녀가 바로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산호의 손길에 안심이 되며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내가 있잖아, 유경아...”

이불로 몸을 덮은 유경을 살며시 끌어안으며 산호가 연신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저 놈을 당장 관아에 넘겨 버려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추월이 밧줄에 꽁꽁 묶여서 꿇어 앉혀진 사내를 향해 소리를 쳤다.

유경을 겁탈하려다 실패하고 담을 넘어 달아나려던 괴한이 청지기 유씨에게 붙잡혀 끌려온 것이다.

잡아놓고 보니 물지게를 지고 이곳 청연루에 물을 대주는 물장수 중의 한명이었다.

아마 이곳에 물을 대주러 들락거리면서 유경의 방을 알아둔 것이리라.

“저런 놈은 물건을 잘라 버려야 정신을 차리지.”

싸늘한 추월의 표정에 동석한 기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해붙인다.

“관에 넘길 때는 넘기더라도 멍석은 말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 멍석은 말아야지.”

“추월 언니. 멍석을 말자, 응?”

멍석을 말자는 의견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자 추월이 마당에 서 있는 유씨와 산호에게 손짓을 한다.

“들었지? 멍석 좀 말아서 정신이 번쩍 나게 한 다음에 관아에 넘겨 버려.”

추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씨와 산호가 그 물장수 사내를 멍석에 말기 시작한다.

“제발 살려주시오! 제발!”

물장수 사내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이내 멍석에 둘둘 말려 버린다.

물장수 사내를 만 멍석에 이내 유씨와 산호가 몽둥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멍석을 몽둥이로 내리치는 산호의 얼굴에 핏대가 서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사내를 죽이고 싶었지만 죽일 수는 없었다.

대신 죽일 듯이 몽둥이로 사내를 둘둘 만 멍석을 내리치는 산호의 얼굴에 살기가 맺혀 있었다.

“물 좀 뿌려서 핏자국 좀 지워내게.”

마당 가운데 흥건하게 고인 핏물을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로 바라보던 추월이 치맛자락을 추슬리며 청지기 유씨에게 말했다.

멍석말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사내는 이미 관에 넘겨준 후였다.

얼마나 두들겼는지 멍석이 피범벅이 되고 마당에까지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아마 유씨가 말리지 않았으면 산호는 그 사내를 멍석에 만 채로 때려죽였을 것이다.

평소에 순둥이라고 소문나있던 산호가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한 것은 처음 보았다고 그걸 구경한 기생들이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평소에는 무슨 말을 해도 웃고, 무슨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던 착한 것 빼면 시체일 것 같은 산호가,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더군다나 사람을 때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못할 것 같던 산호가 마치 그 사내를 죽일 듯이 두들겨 패는 모습에 다들 오늘 이러다가 일 치르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던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심장 내려앉을 뻔 했네.”

사흘 뒷면 머리 올릴 아이가 겁탈 당했다는 소문이 나면, 아니 소문 이전에 비싼 값을 치르고 머리를 올리는데 처녀가 아니게 되면 그 뒷감당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추월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방으로 들어가자 피가 흥건한 마당에 물을 부어 쓸어내던 청지기 유씨가 마당 뒤편을 슬쩍 돌아본다.

유경의 방이 있는 방향이었다.

지금쯤 아내인 강씨가 놀란 유경을 다독거리고 있을 것이다.

“에그...”

유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유씨도 산호의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들이지만 그렇게까지 무섭게 화를 내는 모습이 처음이라서 유씨의 마음이 더 무거운 것이다.

그렇게까지 유경을 생각하는 산호인데, 정작 유경이 머리를 올리게 되면 그 아이가 어떻게 변할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워진 유씨가 빗자루를 움직인다.

빗자루로 쓸어내듯 마음도 쓸어지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렇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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