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8)

8. 짐승이 되어서라도

 “쯧쯧. 어리석은 것.”

부친 윤문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연리가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친이 뭐라고 말하던 연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폐하께서 지난 일을 다시 들추시는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이미 폐하와 담판을 지었다. 그러니 너도 더는 그 섬에서 있었던 일을 마음에 담지도 말고 기억도 하지 말거라.”

“아이를 죽였어요.”

벽을 바라보며 연리가 겨우 그 말을 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어요.”

“너는 모르겠지만 폐하께는 원래 손위 형님이 한 분 계셨다. 후궁의 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장자였지. 그가 열두 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다들 형이 황위를 이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형이 사고로 죽고 폐하께서 태자에 책봉되었지. 그게 정말 사고라고 생각하느냐?”

“아니겠지요.”

“폐하는 늘 불안에 사로잡혀 살아오셨다. 태자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계셨지. 그래서 황위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역모를 일으켜 그 손으로 옥좌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야. 그리고 이번 양 재인의 일도, 홍 재인의 일도 그것과 같은 것이다. 폐하는 장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분이고, 정통성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신 분이다. 그래서 장자는 반드시 황후의 아이여야 하는 것이고, 네가 낳지 않아도 홍 재인이 낳는 아이를 기어이 네 아이로 만들 것이다.”

연리는 귀를 막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있으니 너는 걱정할 것이 없다. 어차피 폐하는 나 없이는 지금의 권력을 유지하지 못하시니 나를 봐서라도 너를 홀대하지는 못하실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도 처신을 잘 해야지. 천한 놈과 놀아나서 이 아비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윤문이 벽을 보고 누워 저를 외면하는 딸을 쳐다봤다.

윤문이 보기에 딸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그녀를 황후로 만들어 줬다.

그런데 잠깐 눈 밖에 둔 사이에 섬 무지랭이와 통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다 하더라도 황제는 지금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권의 복권은 전적으로 윤문이 이끌어 낸 결과다.

자신이 유배지에서 자신을 따르던 군사들을 일으켜 그를 복권시키지 않았으면 지금쯤 권은 유배지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권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권의 욕심과 야욕을 떠받쳐 줄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오랫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으며 윤문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세력을 쌓아놓았다.

권은 그걸 알고 자신과 야합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받아들였고 황후로 만들어 주겠다 약속했다.

만약 권이 그 약속을 어기는 순간 윤문은 권을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생각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황족들 중 한 명을 허수아비 황제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다.

그건 어렵지 않다.

윤문도 알고 있다.

지금은 권이 제 세력을 두려워하며 저와 손을 잡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권이 독자적으로 힘을 쌓으면 그때는 저를 쳐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원래 정치적인 관계는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관계다.

물론 윤문도 눈 뜨고 당할 생각은 없다.

권이 자신을 쳐내기 전에 자신이 권을 먼저 쳐낼 생각이다.

일단은 딸의 황후 책봉이 우선이다.

딸을 황후로 책봉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홍 재인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빼앗아서 연리의 자식으로 삼고, 연리를 태자의 어미, 황후로 만든 다음에 권의 목을 베어 버리면 끝이다.

그렇게 연리가 태후가 되고, 연리가 낳은 건 아니지만 연리의 자식인 태자가 황제가 되고, 자신은 황제의 외조부가 되어 황제와 같은 권세를 누릴 생각이다.

물론 이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의 일이다.

일단 홍 재인이 아들을 낳아야 한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홍 재인이 아들을 낳으면 네 아들로 삼으면 된다. 물론 책봉이 먼저겠지만 말이다. 책봉 일은 서둘러서 보름 후에 치르기로 했다. 그리 알고 있거라.”

그 말을 마친 윤문이 밖으로 나가자 유모가 얼른 다가와 연리의 머리맡에 있는 촛불을 꺼 주었다.

“아가씨, 다른 생각 마시고 지금은 그냥 어르신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세요. 그러셔야 해요.”

유모까지 밖으로 나가자 어둠 속에 연리 혼자 남겨졌다.

‘미안해요…….’

연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섬이, 섬에 사는 이들이, 그리고 그 사내가 죽었다.

그들은 죽어 가면서도 왜 죽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모두 자신 때문이다.

‘나 때문에…….’

이제는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자신이 믿었던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믿었던 권도, 믿었던 부친도 그 환상이 깨어지고 말았다.

권도 괴물이고 부친도 괴물이다.

지금도 도성에서는 매일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고 그건 부친의 짓이다.

황궁 안에서도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그건 권의 짓이다.

자신이 한때 가장 의지했고 사랑했던 이들은 이제 괴물이 되어 모두를 죽이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은커녕 자신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죽었다.

‘더는 싫어…….’

벌떡 일어나 앉은 연리가 침상의 요 아래에 감춰 뒀던 허릿단을 꺼냈다.

삭이 준 것이다.

삭은 이걸 주며 이것을 매달아 놓으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이걸 매달아도 그 사내는 오지 못한다.

그 사내는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이제 머잖아 처참한 모습이 되어 제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걸 보고 싶지 않다.

소금에 절여진 그 사내의 주검을 보고 싶지 않다.

‘그 전에 차라리 죽자.’

결심을 내린 연리가 침상에서 내려왔다.

지금 자신에게는 이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지금 황제와 부친의 연결고리는 자신이다.

자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면 두 사람의 사이는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두 사람에게 미약하나마 복수를 하고 싶다.

이런 것은 복수 축에도 끼지 못하겠지만 이것이 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다.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것.

적어도 죽음만이라도 자신의 의지로 하겠다는 것.

이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창가로 걸어간 연리가 삭이 준 허릿단을 창가로 뻗어온 나뭇가지에 묶었다.

그 사내의 넋이라도 이걸 보고 제 넋을 데리러 와 주길 바라며 그걸 묶었다.

정말 혼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사내는 제 주위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혼백이 저것을 보고 제게로 와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와 함께 저승길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침상 쪽으로 온 연리가 얇은 이불을 찢어 그것을 엮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다.

자신이 쉴 수 있게 유모가 궁녀들을 전부 물린 것이 틀림없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연리가 가지고 나온 찢은 이불을 대들보에 걸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제 목에 감고 가지고 나온 의자 위에 올라섰다.

“하아…….”

이제 이 의자를 걷어차면 모든 것이 끝난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결국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이게 맞아. 이렇게 해야 해.’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삶을 사느니 이게 옳다.

죽음이 답이다.

심호흡을 한 연리가 의자를 걷어찼다.

휘청-!

그녀의 몸이 흔들리며 목에 감은 천이 목을 확 졸라 올 때였다.

“아악!”

갑자기 저를 꽉 붙잡는 두 손에 놀란 연리가 비명을 질렀다.

“누……!”

“쉿.”

그러나 다음 순간, 연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지금 저를 꽉 끌어안고 떠받치고 있는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 사내, 삭이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자신은 죽은 걸까?

그래서 지금 삭의 혼백을 보고 있는 걸까.

“자, 조심조심…….”

사내는 대답 대신 연리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리고 그녀의 목에 감겨 있는 천을 벗겨 줬다.

“날 아주 안 볼 작정이라도 했소.”

“어떻게 여기에…….”

그러나 혼백이 아니다.

분명 산 사람이다.

“저걸 걸어 놓았기에 내가 보고 싶구나 싶어 얼른 달려왔소.”

“거짓말…….”

거짓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죽었잖아요. 죽었는데…….”

“누가 죽었다 그러오. 내가 죽기를 바랐소?”

“그런 것이 아니라…….”

“안 죽었소. 안 죽었으니 된 것 아니오.”

“어떻게 궁 안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드나들려고 작정을 하면 들어오지 못할 것도 없지. 안 그러오?”

사내는 참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왔소. 어찌할 생각은 없었고 보고 싶어서 왔소. 보고 있다가 잘 지내면 돌아가려고 했소. 그런데 저걸 걸어 놓길래, 같이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데리러 왔소.”

사내가 연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 줬다.

“어찌하겠소. 나와 함께 갈 거요?”

“저는…….”

“나와 함께 도망칩시다.”

전에는 이 말을 거절했었다.

같이 살자는 말을, 도망치자는 말을 외면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도망칠 곳이 없다 하더라도, 단 하루를 산다 하더라도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

이 사내와 살고 싶다.

하루를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사내와 하루를 살고 죽고 싶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가야 할 것이 있소?”

“아니요.”

“그럼 바로 가도 되겠소?”

“지금이요?”

“지금. 바로.”

사내가 웃으며 연리를 번쩍 안았다.

“아……!”

사내는 연리를 등에 업고 재빠르게 황후전을 빠져나왔다.

연리는 황궁에 그런 통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인적이 없는 곳으로만 골라서 길을 잡으며 사내는 연리를 업고 어두컴컴한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의 수로였다.

황궁 안에는 우물이 없어서 도성의 물길이 수로를 통해 황궁 안으로 들어온다.

사내는 그 수로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다.

수로는 깊고 좁아서 물살이 세기 때문에 감히 누구도 수로를 헤엄쳐서 황궁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만 이 사내는 이 정도의 물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연리를 업고 수로를 헤엄쳤다.

어둠 속에서 세찬 물살을 사내는 한 번도 쉬지 않고 헤엄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수로의 끝, 병사들이 지키고 서 있는 곳을 지날 때에는 수로 아래로 잠수했다.

사내가 물속으로 들어가자 연리도 그의 등에 꽉 매달린 채로 숨을 참았다.

마침내 사내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연리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돌아봤을 때, 등 뒤로 저 멀리 황궁이 보였다.

수로를 통해 황궁에서 벗어난 것이다.

누구도 할 수 없는 방법, 오직 이 사내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황궁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짜며 연리가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 역시 전신에서 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역시 물에 있어야 아름답다.

바다, 물, 그리고 이 사내.

“집으로 갑시다.”

“하지만 섬은…….”

“돌아갈 곳이 집이 아니겠소.”

“네?”

“갑시다.”

사내는 긴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연리는 다시 사내의 등에 업혔다.

도성을 벗어나 얼마 가지 않아 말을 묶어 놓은 곳까지 간 후에는 한 마리의 말에 두 사람이 함께 올라타고 달렸다.

어둠 속을 달리면서도 연리는 사내에게 어디로 가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사내의 말이 맞다.

이 사내가 있고 제가 있는 곳이 집이다.

그곳이 어디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함께 있는 곳이 돌아갈 곳이고, 자신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집이다.

그러니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저 달리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둘이서, 함께.

* * *

“고마워서 어째?”

“아니에요. 저야말로 너무 감사한걸요.”

새로 지은 옷을 내어 주며 연리가 환하게 웃었다.

연리에게서 옷을 받은 나이 많은 여인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일어섰다.

“나중에 한번 들러. 우리 집 닭이 알을 잔뜩 낳았는데 그걸 내가 다 가져오지 못해서 그냥 있으니까, 나중에 삭이랑 한번 들러. 아니면 삭이만 보내던가.”

“네. 그럴게요.”

여인이 돌아가자 연리가 그녀가 주고 간 음식이 가득 들어 있는 바구니를 부엌으로 가져갔다.

연리는 아직 음식을 잘 못 한다.

그래서 이렇게 누가 음식을 나눠 주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대신 연리는 가장 잘 하는 바느질 솜씨를 활용해서 다른 이들의 옷을 지어 준다.

옷도 지어 주고, 버선도 지어 주고 이불도 꿰매 준다.

그러면 다른 이들은 고맙다며 쌀이며 반찬 등을 가져다준다.

이 섬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어머. 비가 오네…….”

부엌에서 나왔을 때 연리의 손등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늘이 백중사리라고 하던데. 서방님은 언제 오시려나…….”

그러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때 울타리 안으로 삭이 들어섰다.

“거기서 뭘 하고 있소?”

삭이 어깨에 메고 있던 망태를 내려놓고 허리를 쭉 폈다.

그가 내려놓은 망태에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백중사리날이라 그물에 고기가 잔뜩 걸려든 것이 틀림없다.

“언제 오나 했어요.”

“실없기는. 비가 오는데 기다리지 말고 안에 들어가 있기나 하오. 내 이것들 다 손질하고 들어갈 것이니.”

“그냥 여기서 구경할게요.”

연리가 얼른 우산을 가져와서 물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하는 삭의 머리 위에 씌워 줬다.

빗줄기는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옷이 젖어.”

“괜찮아요.”

“고집하고는.”

픽 웃은 사내가 날이 잘 든 칼을 꺼내 물고기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사내의 거침없는 손놀림을 가만히 구경하던 연리의 머리 위에서 우산에 빗물이 부딪치는 소리가 탁, 탁, 듣기 좋게 울렸다.

* * *

이 섬은 예전에 살던 섬에서 배로 한 다경이면 건너가는 곳에 있는 섬이다.

원래 이웃 섬이라 불린 곳인데 사람은 살지 않았다.

그 이웃 섬으로 원래 살던 사람들이 죄다 옮겨 왔다.

그 섬을 들락거리던 병사들이 얼른 귀띔해 준 덕분에 섬에 살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다치지도 않고 세간을 전부 정리해서 이웃 섬으로 올 수 있었다.

물론 병사들이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불태웠다고 거짓 보고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이웃처럼 지내 왔는데 생사람 잡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며 병사들이 섬사람들을 이웃 섬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간간이 밖의 소식을 가지고 온다.

연리와 삭이 황궁에서 도망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1년 사이에 중간중간 도성의 소식을 전해 들어서 자신들이 도망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윤문과 황제 사이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윤문이 황제 권을 옥좌에서 끌어내리고 목을 치는 것으로 권의 짧은 치세가 끝났고, 권이 죽은 후 윤문은 홍 재인이 낳은 핏덩이 유복자를 황제로 만들어서 권세를 휘두르다가 독살을 당했다고 했다.

윤문이 죽은 다음에는 황실의 인척들이 저마다 정당한 옥좌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세력을 일으켰고 그 와중에 갓난아기 황제는 홍 재인과 함께 실각하고 유배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 년 사이에 황제가 세 번은 바뀌었나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네 번째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언제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섬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던지 섬은 그저 평화롭다.

그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사이에 도성의 높은 분들에게서 섬은 잊혀졌고, 이웃 섬으로 옮겨 왔던 이들 중에서 절반가량은 다시 원래 섬으로 되돌아갔다.

지금은 절반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 사람들도 겨울이 오기 전에 원래 섬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삭과 연리는 이 섬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모두가 떠나도 이 섬에서 둘이서 살기로 말이다.

그래 봤자 원래 섬과 이 섬은 배로 금방 건너가니 이웃과 다를 것이 없다.

필요한 것은 가끔 뭍으로 나가 구해 오고, 다른 것은 다 자급자족이다.

이곳에서는 부족한 것이 없고, 욕심을 부릴 것도 없다.

오늘처럼 물고기를 많이 잡아 온 날이면 온 섬사람들이 함께 나누면 된다.

바다에 배를 띄우지 못하는 겨울에는 가을까지 말려 놓은 생선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긴긴 겨울을 보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섬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르는 섬에서 삭과 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삭이 무척이나 곤혹스런 얼굴로 제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그의 허리 아래, 정확히는 다리 사이에는 지금 연리가 웅크리고 있다.

연리는 지금 그의 음경을 막 삼키기 직전이다.

“윽……!”

연리가 입을 크게 벌려 음경을 삼키자 삭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그동안 삭이 연리의 음부를 애무해 준 적은 무수하게 많았지만, 연리가 삭의 음경을 입에 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은 연리가 유독 고집을 부렸다.

삭의 음경을 입에 문 연리가 솔직히 당황했다.

그의 음경이 굵고 길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입에 물자 그 크기가 아래로 넣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아래로 그의 음경을 받을 때에도 그 굵기 때문에 숨이 차오르고 아래가 버거웠었지만 입에 넣자 턱이 빠질 것처럼 뻐근했다.

뿐만 아니라 입 안이 불타는 것 같다.

연리의 입 안에서 삭의 음경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에 더 그랬다.

입 안에서 음경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그래도 연리는 입에 문 것을 뱉지 않았다.

뱉기는커녕 두 손으로 음낭을 주무르며 열심히 빨았다.

그런데 음경을 빨기만 하는 건데도 아랫배가 떨린다.

연리가 입을 한껏 벌리고 삭의 음경을 빨았다.

머리 위에서 삭이 흘리는 뜨거운 신음이 들려왔다.

항상 어쩔 줄 모르는 신음을 내는 쪽은 자신이었는데 지금은 삭이 그런 신음을 흘리고 있다.

연리가 기쁜 마음으로 더 세차게 음경을 빨았다.

목 안쪽까지 힘껏 음경을 빨아들인 순간, 입 안에서 뜨거운 것이 터졌다.

삭이 제 입 안에 사정한 것이다.

“사, 삼키지는 말…….”

그러나 삭이 삼키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연리가 얼른 입 안에 들어찬 것을 꿀꺽 삼켰다.

맛을 떠나서 삭의 일부를 자신이 삼켰다는 사실에 희열이 몰아쳤다.

평소에는 삭이 자신의 애액을 이런 식으로 삼키기 때문이다.

삭도 이런 희열을 느꼈던 걸까.

“삼키지 말라니까.”

연리를 끌어올린 삭이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혀가 얽히며 연리의 위로 삭이 올라탔다.

하루 종일 바다에서 씨름하는 사내의 전신은 붉은색으로 그을렸다.

손은 거칠고 어디 한 곳 매끄러운 구석이 없지만 이 사내는 세상에 다시 없는 다정한 사내라는 것을 연리는 안다.

“하읏……!”

입술을 놓아준 삭이 그녀의 젖꼭지를 가볍게 깨물고 혀끝으로 굴렸다.

이제는 그의 차례인 것이다.

“아, 하응…… 아, 읏…….”

연리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젖혔다.

이 집은 외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밤에 어떤 소리를 내도 듣는 이가 없다.

또 듣는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다.

자신들은 이제 부부가 되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 부끄러운 건 아니다.

“하아읏……!”

사내가 제 살갗을 사납게 깨물고 빨아대자 연리가 허리를 떨었다.

전신에 열이 올라 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조금 전에 제가 빨아서 사정하게 만든 음경이 다시 뻣뻣하게 굵어져 제 음부를 문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아아!”

삭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제 음부 안을 찌르고 휘젓자 연리의 몸이 더 휘어졌다.

그의 팔에 안긴 채로 연리가 몸을 휘고 엉덩이만 들썩였다.

애액으로 이불이 푹 젖을 정도로 음부를 휘젓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대신 그 자리에 뜨겁게 팽창한 남근이 닿았다.

벌써 이렇게 커졌다.

그것이 제 안으로 들어온다는 생각에 연리의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하으응!”

푹, 하고 소리를 내며 삭의 남근이 연리의 음부를 벌리고 안으로 찔러 들어왔다.

“아! 아아아아!”

굵은 것이 제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연리가 사내의 목에 매달린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에게 매달리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그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흔들며 연리가 황홀한 쾌감으로 빠져들었다.

이건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런데도 단 하루도 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했던 적이 없다.

이 뜨거운 삽입이, 부대끼는 살갗이 익숙해진 적도 없다.

이 쾌감이, 이 희열이 매일 새롭듯이 둘이서 함께 맞이하는 아침도 늘 새롭다.

매일 밤 잠이 들 때에는 내일이 기다려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함께 맞이하는 새날에 기뻐한다.

그리고 사내는 바다로 가고, 연리는 사내를 기다린다.

사내는 어김없이 연리에게로 돌아오고, 석양과 함께 사내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연리는 그에게로 뛰어간다.

이것이 이 섬에서의 그들의 일상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었고 또 수없이 반복될 나날이지만, 이 나날들이 행복하지 않을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아아아아!”

제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내의 물줄기를 느끼며 연리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제야 사내의 무게가 그녀의 위로 실려 왔다.

다정하게 제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는 사내의 손길에 연리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바로 앞에 삭의 눈동자가 있다.

바다를 닮은 눈동자였다.

자신은 처음부터 삭이라는 이름의 바다에 빠져 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내의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릴 것 같소.”

연리를 끌어안은 사내가 한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저녁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좋아요.”

연리의 속삭임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내일이면 그칠 것이다.

그리고 섬에는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사계가 흘러도 이 섬에는 여전히 행복한 이들이 산다.

이 섬에 행복은 여전히 이렇게 흐르고 있다. 바다 건너의 뭍에서는 모르는 그런 행복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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