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삭
“뭘 좀 잡았나?”
배가 들어오는 부두 근처에서 할 일이 없어서 그늘 아래에 낮잠을 자다 깬 병사가 어깨에 그물을 잔뜩 이고 걸어오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괜히 아는 척을 했다.
“이것저것 잡았지.”
사내가 병사의 앞에 그물을 축 내려놓았다.
사내의 그물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었다.
“요즘 물때가 좋은가 보구만.”
“멀리까지 가서 잡으니까 그렇지. 물때가 좋기는.”
사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퉁명스럽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것은 이 사내의 습관이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법을 사내는 배우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배를 끌고 바다에 가서 조업을 하는 것에 잔뼈가 굵은 사내라 바람이 불고 파도치는 바다에서 늘상 귀가 떨어져라 소리를 지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괜히 말투가 이렇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걸 다 알고 있다. 이 병사를 포함해서 이 섬의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
이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이라고는 서른 명이 넘지 않는다.
서른 명? 정확히는 스물세 명이 전부다.
이 사내를 비롯해서 원래 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열아홉 명, 그리고 이 섬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사흘 간격으로 왔다 갔다 하기에 사는 사람으로 쳐주는 장사꾼이 한 명, 뭍에 살고 있지만 이 섬에 들어온 지 5년이 넘는 병사 두 명. 이렇게 해서 스물두 명에 어제 이 섬에 유배를 온 여자까지 해서 스물세 명이다.
원래 이 섬은 오랫동안 유배를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배형을 받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 유배지가 모자라는 바람에 근 20년 만에 죄인이 유배를 온 것이다.
병사들도 이 섬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빈둥거리며 낚시나 하고 주민들의 일이나 돕고, 우물에 문제가 생기면 우물을 치우는 것을 돕고 산사태가 나면 흙을 좀 치우고, 그런 일이 전부였던 이들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죄인이 이 섬으로 유배를 오는 바람에 병사들 역시 조금은 기분이 새롭지만 그 새로운 기분이 하루를 가지 않았다.
죄인이 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죄인과의 접촉은 금지되어 있고, 그렇다고 접촉했다고 해서 그걸 또 고자질할 만한 사람도 이 섬에는 없다.
뭍으로 나가는 배를 타지 못하는 이상 죄인은 도망칠 수도 없다.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는 것? 그런 건 물고기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 섬은 사면이 험준한 암초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 부두를 거쳐야만 바다에 배를 띄울 수 있다.
“몇 마리 주면 말려 놨다가 장사꾼이 오면 그걸로 술이나 바꿔 먹어야겠다.”
능청스런 병사의 말에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물 안에서 제법 큼직한 생선 몇 마리를 꺼내 휙 던졌다.
“죄인이 온 건 알고 있지? 너 사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그 낡은 폐가에 어제 죄인이 왔는데 그 뭐라더라, 태자비? 하여간에 간택도 끝나고 태자비가 될 사람이었다고 하더라.”
“관심 없다.”
사내는 무뚝뚝하게 그물에서 생선을 떼어 냈다.
막 배에서 내린 듯 사내의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신을 신지 않은 발은 온통 모래투성이에 무척이나 투박했다.
이미 오랫동안 신을 신지 않고 다녀 발이 아예 온갖 굳은살로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사람 신세 알 수 없다고, 저리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죄인 신분이라 평생 여기 갇혀 살아야 하는데 시집이나 가겠어. 죄인은 국법으로 혼인도 금지되었으니 말이야. 얼굴도 곱상하던데.”
병사가 사내를 힐끗 쳐다봤다.
“시간 날 때 가서 얼굴이나 한번 봐라. 여간 고운 얼굴이 아니더라. 또 알아? 인연이 되면 옷고름 풀고 한집에서 살게 될지.”
“죄인이라고 지금 네놈 입으로 말했으면서 지금 나더러 죄인을 데리고 살라고?”
사내가 막 떼어 낸 생선을 병사의 얼굴에 철퍼덕 집어 던졌다.
“별 미친 헛소리를 다 듣겠네.”
“누가 알아. 어차피 확인하러 오는 상전들도 없고, 여기서 평생 살 사람인데 그러면 처녀 총각끼리 잘해 보면 좋지. 누가 섬 밖으로 가서 이를 사람도 없고. 너도 이 섬에서 나갈 생각이 없을 텐데 이 섬에 처녀가 어디 있나?”
“장가 못 가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닌데 혼자 살면 그만이지.”
“쯧쯧쯧.”
병사가 사내의 그물에서 생선 한 마리를 더 떼어 내어 제 망태에 쑥 넣으며 혀를 찼다.
“이 섬에 사는 인간들이라고는 죄다 나이가 예순 살은 넘은 늙은이들밖에 없는데 당장 10년만 지나도 무덤만 즐비하지 누가 있겠어. 그렇다고 섬 밖에서 여기에 살러 오겠다는 사람도 없을 텐데. 뭍에 나가서 섬에 들어와 살 계집을 구해 봐라, 구해지나. 다 죽고 없는 섬에 혼자서 살 생각이 아니면 슬슬 장가도 들고 애도 낳고 그래야지. 우리가 눈감아 줄 때 모르는 척 얼른 장가를 들면 그만 아니냐.”
“헛소리.”
사내가 벌떡 일어나서 다시 그물을 지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라고!”
뒤에서 병사가 소리쳤지만 사내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지랄이야.’
사내가 잔뜩 부아가 난 얼굴로 괜히 걸음을 쿵쿵 걸었다.
‘장가는 무슨 장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계집을 데려다가 무슨 수발을 들라고.’
사내가 그 외딴집에 들어온 살결 고운 여자를 떠올렸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여자다.
불도 피울 줄 모르고 생선 손질은 더더욱 모른다.
하긴 그런 것을 해 봤겠는가.
‘호의호식하면서 살아만 봤겠지. 이런 곳에 올 줄 몰랐을 테니까.’
그 여자에 대해 이 사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섬사람들이나 병사들이 지껄이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말을 전부 믿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원래 사람들의 말은 반은 지어낸 말이다.
과장을 덧붙여서 부풀려 말하기 마련이다.
‘태자비? 그런 높은 사람이 고작 이런 섬에 유배를 왔겠어? 더 크고 감시가 삼엄한 곳으로 갔겠지.’
사내가 집으로 향하던 발을 슬쩍 멈췄다.
병사가 말한 것처럼 유배 온 죄인의 집은 이 사내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 집을 지나 조금 더 언덕으로 올라가면 이 사내의 집이 있다.
이 섬에는 그리 많은 이들이 살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치자면 서른 채가 넘는 집이 있지만 지금은 열 채 남짓에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다 나이가 들어 병사의 말처럼 10년, 20년만 지나면 이 섬에도 더는 남아 있는 사람이 없게 될 수도 있다.
이 사내의 이름은 삭이다.
이름이 왜 삭이 되었는가 하면 이 사내가 그믐달이 뜨는 밤에 이 섬으로 떠밀려 왔기 때문이다.
그믐달이 뜨던 밤에 썰물이 밀려 나가자 조개를 주우려고 나갔던 아낙이 밀물이 조금씩 차오르자 다시 뭍으로 돌아오는 길에 밀물에 실려 흔들리며 떠내려오는 궤짝 하나를 발견했고 그 궤짝 안에 탯줄만 겨우 뗀 핏덩이 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사내 삭이다.
조업을 나갔던 지아비가 돌아오지 않아 일찌감치 과부가 되었던 아낙은 그 아기를 죽은 지아비의 혼백이 보내 준 아이라 생각하고 아기를 품고 키웠다.
그렇게 해서 이 사내 삭은 피도 섞이지 않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그 어머니는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바구니 안에는 신분이나 친부모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아기를 둘둘 만 비단 천이 전부였을 뿐이다.
물론 삭은 친부모를 찾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세상 어딘가에 낳아 준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사내에게 있어서 부모는 길러 준 어머니 한 명밖에 없다.
전에는 이 섬에도 젊은 사람이 두세 명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섬을 떠나 뭍으로 갔다.
그러나 이 사내는 이 섬을 떠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여기로 떠내려왔고 여기에 어머니를 묻었으니 이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묻힐 생각이다.
뭍으로 나가 봤자 복잡한 것밖에 없다는 것을 이 사내는 잘 안다.
이 섬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
열심히 일하면 바다와 땅은 필요한 모든 것을 준다.
그런데 왜 이 섬을 떠나겠는가.
당장 병사들을 통해서, 혹은 가끔 오는 장사꾼을 통해서 듣는 섬 밖의 세상은 온통 싸우고 죽였다는 소리뿐이다.
강도를 당했다느니, 나라에 전쟁이 났다느니, 역모가 일어났다느니, 파벌이 어쨌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이 섬과는, 그리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들이다.
바다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이 사내는 관심도 없다.
욕심을 버리면 이 섬은 낙원이다.
그리고 삭은 이 낙원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툭.
집으로 돌아온 삭이 마당에 그물을 던졌다.
그리고 항아리의 물을 바가지로 가득 퍼서 머리에 뿌렸다.
새벽에 나가 조금 전까지 바다에 있느라 몸은 온통 바닷물에 절여졌다.
머리에 물을 한 바가지 뿌린 삭이 다시 물을 뜨려고 항아리 안을 들여다봤다가 혀를 찼다.
물 항아리가 빈 것이다.
아주 빈 것은 아니고 두세 바가지밖에는 되지 않는 양이라 사내가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흔들어서 털고는 지게에 항아리의 절반 정도 되는 물독을 싣고 마당을 다시 나왔다.
우물은 그리 멀지 않다.
생각난 김에 항아리에 물도 채우고 우물에 가서 몸도 씻을 생각으로 사내가 지게에 물독을 얹고 곧장 우물로 향했다.
한낮의 우물은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우물은 이 섬사람들이 거의 쓰지 않는 우물이다.
이 섬에는 우물이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섬의 북쪽에 있는데 그 우물 주변으로 집들이 흩어져 있어서 대부분 그쪽 우물을 사용한다.
섬의 남쪽에 있는 이 우물은 외떨어진 곳에 있는 우물이라 여기까지 물을 길어 오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이 사내 혼자서 이 우물을 사용해 왔다.
툭.
지게와 물독을 내려놓은 사내가 바다의 소금기에 절여진 옷을 훌러덩 벗었다.
누가 보지 않으니 딱히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 사내가 옷을 전부 벗고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을 몸에 쏟아부었다.
쏴아아아-.
물을 한 두레박 쏟아부은 다음에 삭이 제 몸을 손바닥으로 쓱쓱 닦았다.
그리고 다시 두레박을 우물 안으로 떨어뜨리고 물을 길어 올렸다.
쏴아아아-.
두 번째 물을 몸에 퍼부을 때였다.
“악!”
난데없는 비명에 삭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물이 줄줄 흘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손등으로 눈가의 물을 훔치고 난 후에야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 여자였다.
이 섬에 유배를 온 죄인. 그녀였다.
“저, 저, 저 그러니까…… 보,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무, 물을 길러 왔는데…….”
여자는 당황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손에 든 것을 보니 작은 솥이다.
저 작은 솥에 물을 길어 가려고 온 것이다.
‘장난하나…….’
삭이 입술을 비틀었다.
저런 작은 솥에 물을 길어 가면 아마 스무 번은 왕복을 해야 물 항아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 뻔하다.
“저, 저, 저는 나,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여자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허둥지둥 돌아서는 것을 보며 그제야 삭은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리 사이에 좆이라는 것이 흔들거리고 있으니 그걸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치려는 것이다.
‘나 참…….’
그러나 삭은 좆을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다.
까짓 거, 벗은 몸이나 좆이나 조금 본다고 해서 닳겠는가.
이런 걸 보고 허둥거리는 것이 더 이상하다.
자신은 저 여자의 벗은 몸을 봤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집에 물이 떨어졌소?”
“네?”
삭이 말을 걸자 금방이라도 도망치려던 여자가 그 자리에 멈추더니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물론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그 꼴이 너무 우습고 기가 막혀서 삭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집에 물이 떨어졌냐고 물었잖소. 귓구멍이 막혔나?”
“무, 물이 떨어져서…….”
“그래서 겨우 그 솥으로 물을 길어 가려고?”
“무, 물독은 무거워서 들지를 못하기에…….”
하기는 저런 가느다란 손목으로 물독을 어찌 들겠는가.
조금만 힘을 줘서 붙잡으면 부러질 것처럼 얇은 손목이다.
손목만 얇은 것이 아니라 허리도 가늘고 전부 다 가늘다.
저래서야 어찌 살겠는가. 바람 한번 불면 휙 날아가게 생겼는데.
“난 상관없으니 알아서 물을 길어 가시오. 보든 말든 아무 상관 없으니까.”
퉁명스럽게 말한 삭이 다시 두레박을 우물 안에 넣어 첨벙거리며 물을 길어 올렸다.
그리고는 제 몸에 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여자가 주춤주춤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돌아볼 마음은 없다.
첨벙-.
두레박을 우물 안에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윽……! 윽!”
그런데 두레박을 끌어 올리는 기합이 참 기가 막히다.
누가 알면 엄청난 것을 끌어 올리는 줄 알 정도로 기합에 힘이 들어가 있다.
슬쩍 돌아본 삭이 미간을 찡그렸다.
여자를 두레박의 줄을 쥐고 끙끙거리며 우물에 몸을 반 정도 들이밀고 있었다.
‘저러다가 우물에 빠지지.’
우물에 빠지기 딱 좋은 모습이다.
헤엄은 칠 수 있을까?
아마 못 칠 것이다. 헤엄도 치지 못하면서 우물에 빠지면 그냥 죽는 거다.
‘골치 아프게.’
삭이 미간을 퍽 찡그리고 우물에 빠질 것처럼 위태로운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가 손에 겨우 붙잡고 있는 밧줄을 확 빼앗아 손에 쥐었다.
“걸리적거리지 말고 저리 비켜 서 있으시오.”
참 손이 많이 가는 여자가 아닐 수 없다.
두레박을 끌어 올린 삭이 여자가 가지고 온 작은 솥에 물을 부었다.
한 번에 그 작은 솥은 가득 찼다.
“이걸 머리에 일 수나 있소?”
“네?”
“이걸 들 수 있냐고 물었소.”
두레박도 못 끌어 올리는 힘으로 이 솥은 또 어찌 가지고 돌아갈 생각인 걸까.
“하, 할 수 있어요.”
여자가 그 가느다란 손으로 솥을 잡더니 낑낑거리며 힘을 썼다.
하지만 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 원 참…….”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좆을 드러낸 채로 삭이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건 절대로 기분 좋아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바보같이 멍청하고 어이가 없는 상황이 처음이라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 * *
“감사합니다…….”
여자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고맙다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여자의 집 부엌에 있는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운 삭이 부엌을 한번 둘러봤다.
기가 막혔다.
항아리에 물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궁이도 식었다.
불씨 항아리에도 재가 싸늘한 것이 불씨를 꺼트린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말리라고 준 생선에는 파리가 새카맣게 들러붙었고 모든 것이 엉망이다.
‘이래서야 한 달도 못 가서 죽겠네.’
안 봐도 눈에 뻔하다.
이 여자는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전혀 없다.
“불씨는 왜 꺼뜨렸소?”
“그, 그것이…… 잠깐 잠이 들었는데 불씨가 생각나서 얼른 일어나 나와 보니 이미 꺼져 있어서…….”
“불도 없이 뭘 해 먹었소?”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소?”
“식은 밥을 조금 먹고…….”
구석에 곡식 자루가 눈에 띄었다.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죄인에게 곡식을 줬으면 얼마나 줬겠는가.
삭은 섬 밖에서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섬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무지렁이인 자신도 느끼는 것은 있다.
이런 보잘것없는 작은 섬에 유배를 보낼 정도의 죄인이라면 나라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죄인이 여기에서 죽기를 바라는 걸 수도 있다.
괜히 죽였다는 소리를 듣기 싫으니 이런 곳에 보내 놓고 알아서 굶어 죽든 힘든 나머지 자살을 하던 알아서 죽어 주었으면 하고 죄인을 이곳에 보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삭이 봐도 이 여자는 이대로 내버려 두면 한 달도 못 가서 죽는다.
죽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이 여자는 틀림없이 죽는다. 한 달? 그것도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당장 밥을 짓는 법도 모르고, 불을 피우는 법도 모르고, 말을 나눌 이웃도 없이 이 외떨어진 집에서 굶주리고 물도 떠오지 못하다가 스스로 자괴감을 이기지 못해서 목을 매달지 말라는 법이 없잖은가.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그냥 알아서 죽으라고 여기에 보내진 것이리라.
마치 우물 안에 밀어 넣은 것처럼 말이다.
이 섬은 이 여자에게 있어서는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는 우물의 바닥과 같은 곳이다.
“곡식은 이게 다요?”
산이 구석의 곡식 자루를 열어 봤다.
잡곡이 절반 정도밖에 없다.
이건 열흘치도 안 되는 양이다.
아주 아껴서 하루에 한 끼 죽만 해먹어야 한 달을 살까 말까 한 양이다.
다른 자루에는 감자가 조금 들어 있었다.
그게 전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기가 막혔다.
그제야 삭은 여자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닐 텐데 여기 와서 생고생을 하는구만.’
저 여자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남의 재물을 훔쳐서 여기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삭도 안다.
태자라는 놈이 역모를 일으켰고 그래서 태자비가 될 뻔한 저 여자도 죄인이 되어 여기에 왔다고 했는데, 순전히 남의 죄 때문에 여기까지 온 불쌍한 여자다.
“내 집이 여기서 조금만 가면 되는데, 내 집에 가서 밥이라도 한술 뜰 거요?”
“네?”
“여기서 굶고 있지 말고 밥이 없으면 내 집에 와서 먹고 가도 된다는 거요. 한 사람 더 먹일 양은 충분히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오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배가 고프면 오시오. 우물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길을 틀어서 조금만 위로 올라오면 보이는 집이 내 집이요.”
이 여자에게 강요를 할 생각은 없다.
제집에 밥을 먹으러 올지 말지 선택을 하는 건 이 여자다.
어쨌든 자신은 항아리에 물은 다 채워 줬다.
이 정도면 제 딴에는 엄청나게 신경을 써 준 것이라는 걸 이 여자도 알아야 한다.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 불쌍해서 챙겨 준 것에 불과하다.
괜히 딴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절대로 그건 아니다.
‘괜히 눈앞에 얼쩡거려서 마음을 심란하게 하기 때문에 도와준 것이지 다른 속셈이 있어서 도와주는 건 절대 아니라고 삭이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 * *
여자가 삭의 집 방문을 두드린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그때 마침 삭은 저녁밥을 먹으려고 하고 있었고 여자를 위해 준비할 것은 수저 한 벌이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 여자도, 삭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지 밥을 허겁지겁 떠서 먹었고 삭은 그런 여자의 앞쪽으로 반찬을 밀어 주고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여자는 가느다란 몸의 어디에 밥이 그렇게 들어가는지 두 그릇이나 먹은 다음에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자를 위해서 솥에서 밥 끓이고 남은 숭늉을 떠서 들어오던 삭이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여자가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겁도 없이.”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으면 모르는 사내의 집, 방 안에서 이렇게 앉은 채로 벽에 기대 꾸벅거리며 조는 것일까.
“고되기도 하겠지. 모르는 곳에 와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귀하게 살던 아가씨가 이런 섬으로 와서 이 낯선 곳에서 첫날부터 물에 빠지고 굶고 그 고생을 하다가 간만에 배부르게 먹었으니 잠이 솔솔 올 법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도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밥상 앞에 앉았다.
“밥은 둘이서 먹어야 맛난 법인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밥맛이 좋다 싶었더니 혼자 먹는 밥이 아니라 그런 것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처음으로 다른 이와 겸상을 했다.
이 집에 다른 사람을 들인 것도 처음이다.
“쯧쯧쯧…… 옷도 다 낡았고…….”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은 아주 낡았다.
죄인이니 옷이라도 챙겨 왔겠는가.
“여기쯤에…….”
삭이 경대 가장 아래 서랍을 열어 뒤적거렸다.
거기에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옷이 들어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태워 버려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쓸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충 맞겠지.”
삭이 꺼낸 옷은 지금 연리가 입고 있는 옷보다는 새것이다.
아주 새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렇게 낡고 구멍까지 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여자와 죽은 어머니의 체구가 비슷해서 옷도 대충 맞을 것 같다.
“깨면 이거나 가져가라고 해야지.”
삭은 지금 여자를 깨울 생각이 없다.
모처럼 곤하게 자는 것일 테니 그 잠이 얼마나 꿀맛이겠는가.
그러니까 지금은 계속 단잠을 자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삭이 조심조심 밥상을 치우고 다시 방에 돌아왔을 때까지도 여자는 벽에 기댄 채로 잠들어 있었다.
그 지친 잠든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삭이 이불을 가져와서 여자의 몸에 슬그머니 덮어 줬다.
그리고는 마당으로 나가 긴 곰방대를 꺼내 연초를 채우고 불을 붙인 다음 길게 한 모금 빨았다.
하얀 연기를 내뿜자 어둔 밤하늘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밤중에 연초 한 대를 피는 것은 삭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곧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좌우로 흩어졌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태풍의 느낌이 섞여 있었다.
머잖아 저 바다에서 거센 태풍이 밀려올 것을 삭이 예감했다.
태풍이 불어오기 전에 장사꾼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