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8)

2. 광풍, 첫 바다, 첫날 밤, 그 사내

 덜컹- 덜컹-.

낡은 문짝이 무서운 바람에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흔들리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던 연리가 어쩔 수 없이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 속에서 나왔다.

바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섬이라 그런지 이곳은 바람이 무섭게 분다.

‘문이 걸리지 않아…….’

방문을 안에서 잠그려고 했지만 걸림쇠가 고장이 나서 잠기지 않는다.

집이 너무 낡은 탓이다.

연리가 유배 온 이 섬의 이름은 죽도라는 이름의 섬이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서 그리 불린다고 들었다.

유배지이긴 하지만 이 섬에 사람이 살지 않는 건 아니다.

저녁 무렵에 배가 이 섬에 도착하고 이 집까지 연리를 데려온 병사가 자기 딴에는 이것저것을 많이 설명했지만 연리는 그것들을 그리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다.

들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보통 유배지에 죄인을 안치하면 병사들이 죄인의 집 주위를 지킨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섬 자체가 이미 감옥이기 때문에 섬에서 나가고 섬으로 들어오는 배만 살피면 병사들의 눈을 피해서 이 섬에서 빠져나갈 방법 자체가 없다.

그래서 병사들은 배가 들어오는 작은 부두만 지키고 있다.

중죄인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여자 한 명,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섬에는 열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열 가구라고 해 봤자 스무 명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섬에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은 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고 연리가 안치된 집은 그 중에서도 외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까지 죄인이 유배를 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 섬에서 죄인을 머물게 하는 집은 10년 가까이 쓰지 않은 빈집이었고 그 때문에 벽이 허물어지고 지붕에 구멍이 나고 문짝까지 고장이 나 버렸다.

하지만 죄인이 머무는 집을 친절하게 고쳐 줄 사람은 없다.

바람이 들어오면 바람이 들어오는 대로, 비가 새면 비가 새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낡긴 했지만 이불이며 솥이며 세간을 어느 정도 갖췄고 먹을 양식은 한 달에 한 번 병사들이 가져다준다고 했다.

오늘 당장 한 달치 양식을 두고 갔는데 그 양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적어서 그것으로 한 달은커녕 열흘 버티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 양식으로 한 달을 버티려면 밥이 아니라 죽을 끓여 먹어야 하고 그 죽마저도 배부르게 먹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병사들이 이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양식을 가져다주러 오는 그 때뿐, 한 달에 한 번. 만약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어도 병사들이 오기 전에는 자신의 죽은 시신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뭐 별건 없겠지만, 그래도 법은 법이니 다른 사람들과 만날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연리를 여기에 두고 간 병사들은 그렇게 무심하니 한마디 던지고 갔다.

딱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지는 않겠지만 이 섬에 사는 주민들과 접촉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죄인은 죄인이니 말이다.

물론 연리는 병사가 주의를 주지 않았더라도 이 섬의 주민들과 마주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은 그저 죄인일 뿐이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선입견 가득한 시선과 동정 어린 눈빛을 받고 싶지는 않다.

유배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황제의 마음이 변하면 또 모를 일이다.

만약 황제가 태자를 측은하게 여기는 날이 온다면, 운이 좋아 그렇게 되면 태자의 유배가 풀리며 저와 제 부친의 유배도 풀릴 수 있다.

아니면 차기 황제가 누가 되더라도 10년, 20년이 지나 사면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누군가가 부친과 자신을 위해 탄원을 해 주기라도 하면 이 섬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이루어진다는 보장조차 없지만. 그것이 연리가 붙들고 있는 실낱처럼 간절한 단 하나의 희망이다.

‘어떡하지?’

문고리를 꽉 잡고 있던 연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걸림쇠가 고장이 나 이 거센 바람에 자꾸 방문이 열려 바람이 안으로 들이쳤다.

이대로는 잠들 수가 없다.

‘천으로 묶기라도 해야 할 텐데…….’

걸림쇠가 고장이 났으니 문고리와 걸쇠를 천으로 묶어 놓아야 한다.

만약 이대로 뒀다가 강한 바람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면 그건 또 누가 고치겠는가.

병사들이 와서 고쳐 줄 리가 없다.

구멍이 난 벽도, 천정이 뚫린 지붕도 그대로 방치한 것을 보면 이 집에서 뭐가 고장이 나도 부서져도 병사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뭘로 묶지?’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문고리를 묶을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옷고름으로 묶을까?’

급한 대로 속저고리의 옷고름이라도 뜯어 그것으로 문고리를 묶자 싶어 연리가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고 제 속저고리의 옷고름을 힘줘서 뜯어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쓸 수 있는 세간이 있고 그 중에 바늘과 실도 있어서 내일 아침에 옷고름은 다시 꿰매면 된다.

이 밤만 어떻게 버티면 되는 것이다.

“아……!”

그러나 옷고름을 뜯기 위해 문고리를 놓는 순간 방문이 활짝 열리며 거센 바람이 들이쳤다.

“꺄악!”

눈을 뜰 수 없는 강한 바람에 연리가 잠깐 고개를 숙였다 드는 순간, 그녀의 눈에 바깥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붉은 것이 보였다.

“안 돼……!”

저 붉은 것은 태자가 제게 준 허리띠다.

제가 태자에게 허리띠를 수놓아 주자 태자가 그 답례로 제게 선물한 허리띠다.

그것은 정혼의 증표이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유일하게 품고 있던 물건이기도 했다.

비단에 금사로 수놓은 것이라 값이 꽤 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병사들에게 주면 편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끝내 품 안에서 꺼내 보지도 않았던 것이 지금 바람에 날아가고 있다.

속저고리의 옷고름을 풀 때 치마끈에 끼어 놓았던 것이 그만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안 돼……!’

저것만큼은 잃어버리기 싫어 연리가 거센 바람이 부는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밖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연리는 무서운 것도 잊고 허리띠만 쳐다보며 뛰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 붉은 허리띠에 수놓인 금사가 반짝거리며 눈 안에 들어왔다.

허리띠는 가라앉을 듯하다가 다시 허공에서 미친 듯 춤을 추며 날아갔다.

‘제발……!’

저건 연리의 마지막 희망이다.

저걸 품고 있으면서 언젠가는 다시 도성으로, 자신의 집으로, 태자비라는 신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그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다 빼앗겼지만 저것 하나만은 품 안에 숨기고 아직 버리지 못한 과거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저걸 잃어버리면 이제 자신에게 남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어둠 속에서 뛰느라 연리는 제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모래가 밟혔는데 지금은 모래가 아닌 단단한 바위가 밟혔다.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 젖은 바위가 발바닥에 느껴졌지만 연리의 신경은 지금 온통 허리띠에 향해 있었다.

“잡았다!”

허리띠는 바로 앞에 떨어져 있었다.

그 떨어진 허리띠를 연리가 손으로 움키는 순간,

철썩-!

“꺄아악!”

무서운 파도가 연리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사, 사람 살려-!’

파도에 휩쓸리는 순간 연리는 제가 바다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갯바위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무섭게 몰아치던 파도에 떠밀려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수, 숨 막혀……! 숨 막혀……!’

당연한 것이지만, 연리는 헤엄을 치지 못한다.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연리가 팔다리를 휘저었다.

그러나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몸은 더 깊이 가라앉고 숨이 막혀 왔다.

‘이렇게 죽긴 싫어……!’

죽는 것은 무섭다. 이런 식으로 물에 빠져 죽는 건 더 무섭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저를 살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지만 살고 싶었다.

그때였다.

연리의 머리 위에서 수면이 부서졌다.

연리는 그것이 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수면이 산산이 부서지더니 시커먼 것이 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연리의 눈이 감겼다.

누군가 제 허리를 붙잡은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정말이라면 저를 붙잡은 것을 눈을 뜨고 볼 수는 없었다.

까무룩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 * *

“콜록! 콜록!”

연리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물 밖으로 나온 후였다.

사납게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연리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커다란 사내의 등에 업혔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사내가 그녀를 등에 업고 물속에서 걸어 나와 백사장 멀찍한 곳까지 온 다음에야 그녀를 내려놓았다.

잔뜩 들이마셨던 짠물을 전부 뱉어 낸 연리가 모래 위에 축 늘어진 채로 제 곁에 앉은 사내를 실눈으로 쳐다봤다.

아직 시야가 흐릿하고 밤이 너무 어두워서 사내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섬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 사내는 당연히 모르는 사내일 것이다.

허연 무명옷으로 봐서는 병사도 아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사내 덕분에 살았다. 만약 이 사내가 저를 건져 내지 않았으면 자신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고, 고맙, 고맙습니다…….”

연리가 간신히 감사의 말을 꺼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유배 온 죄인과는 말을 섞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걸까…….’

이곳에 사는 주민은 죄인과는 가까이할 수 없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법이라는 것이 있으니, 적당히 봐줘도 곤장 다섯 대는 맞을 거요. 그러니 남들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주민들하고는 만나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마시오.’

병사들이 그리 당부한 것을 연리가 떠올렸다.

지금 자신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져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런 밤중에 바다에 빠진 자신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 자신은 정말 빠져 죽었을 것이다.

그걸 살려 줬으니 이 사내가 제게 말을 걸지 않는다 해도, 죄인 취급 한다 해도 원망할 것은 못 된다.

“목숨을 구해 주신 것은 고마우나, 나는 유배를 온 죄인이니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벌을 받을 겁니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 전에…….”

“이 밤에 누가 본다고.”

바람 소리가 거세게 윙윙거리는 속에서 연리의 귀에 들어온 사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퉁명스럽고 또 투박했다.

“여기서 죽고 싶으면 그러고 있고, 죽기 싫으면 업히지 그래?”

참 쌀쌀한 말투다.

하지만 저를 모르는 척하지 않고 살려 주고 집까지 데려다주려는 것을 보면 어디 나쁜 사람이겠는가.

‘혼자 갈 수 있을까…….’

연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아주 잠깐 물에 빠졌을 뿐인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팔다리가 축 늘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기어가면 모를까 걸어서 가기는 틀렸다.

한두 시간 쉬면 걸어서 돌아가겠지만 머리와 옷이 이렇게 젖어 이 어둠 속에서, 이 무서운 바람 속에서 다리 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싫다.

‘밤이니까 아무도 보지 않겠지.’

“업힐 건지 말 건지 빨리 결정하지 그래. 나도 통발을 보러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까.”

사내가 퉁명스런 말투로 재촉을 하자 연리가 어쩔 수 없이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그러면 신세를 질게요…….”

사내가 연리에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알아서 업히라는 것이다.

비틀거리며 사내의 등에 업히자 사내가 불쑥 일어났다.

꽉 잡으라는 말도 하지 않은 사내였지만 사내의 등에서 떨어질까 싶어 연리가 얼른 그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여전히 바람은 몰아치고 있었고 조금 전에 저를 삼켰던 바다는 바람보다 더 무서운 소리를 내 가며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치고 있었다.

사내의 등에 업혀 가며 연리는 자기가 꽤 멀리까지 왔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없이 뛰느라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도 몰랐었다.

‘결국 잃어버렸어…….’

파도에 휩쓸리기 전에 분명 허리띠를 잡았었는데 바다에 빠지며 놓쳐 버렸다.

지금쯤 그 허리띠는 먼 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이다.

허리띠를 잃어버린 것이 꼭 ‘너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해.’라고 바람이, 바다가 말하는 것 같아 연리의 마음이 침울해졌다.

연리를 업은 사내는 얼굴을 사납게 때리는 바람도 아무렇지 않게 맞으며 연리가 유배된 집의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이라고 해 봤자 싸릿대를 엮어 만든 울타리 안에 한 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작은 마당으로 들어선 사내가 등에 업고 있던 연리를 방문 앞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열린 채로 덜컹거리는 방문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들어온 것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울타리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고맙다는 말을 한 번 더 하고 싶었지만 사내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연리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사내가 사라진 어둠 속에서는 여전히 사나운 바람만 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 * *

연리를 깨운 것은 목마름과 배고픔이었다.

지난밤에는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방으로 거의 기어 들어와 그대로 정신을 잃듯 잠이 들어 버렸었다.

문고리가 고장 난 문이 밤새도록 덜컹거리며 열려 있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정말 죽은 듯이 잠들었었다.

‘몸에서 냄새가 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잠에서 깼지만 연리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제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바닷물에 빠졌을 때 젖은 옷과 머리 그대로 잠들어 버렸으니 몸에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물부터 마시고 몸을 좀 씻자.’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갈아입을 옷이 있다는 것과 씻을 물이 있다는 것이다.

도성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는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었고 마음대로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이곳은 유배지라고 해도 필요한 것들은 그럭저럭 갖추었다.

제 옷도 아니고, 남이 입던 누더기 같은 옷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벌의 옷이 두 벌 정도 바구니 안에 들어 있고, 어제 살펴보니 손바닥만 한 부엌에는 물이 들어 있는 커다란 항아리도 있었다.

이 섬에서 물을 길어 올 수 있는 우물은 두 곳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직접 물을 길어 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물을 길어 오기만 하면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에서 나온 연리가 부엌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항아리 안의 물로 목을 축였다.

한 바가지 가득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난 다음에야 연리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 보니까, 나 어제 죽만 조금 먹었었구나…….’

어제 이 집에 도착한 후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병사들이 두고 간 양식 중 자루에 들어 있던 약간의 곡식으로 죽을 만들어 먹은 것이 전부다.

‘일단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밥을 지어 먹자.’

사실 연리는 음식 하는 법을 모른다.

지금까지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법도 몰라서 어제 죽도 물에 곡식을 넣고 뭉근하게 불기를 한참 기다렸다가 거의 불은 생쌀에 가까운 것을 억지로 씹어 먹은 것에 불과하다.

땔감이 조금 있고 아궁이도 있지만 불은 어찌 피워야 하는지 모른다.

‘불을 어찌 붙여야 하지?’

할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부싯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부싯돌로 불 한번 붙여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하면 되려나?’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연리는 찬물에 몸을 씻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더운물을 사용하려면 아궁이에 물을 넣고 끓여야 한다.

그리고 아궁이를 사용하려면, 당연한 것이지만 불을 붙여야 한다.

일단 불을 붙여야 죽도 해 먹고 밥도 해 먹고 몸을 씻을 물도 끓일 수 있다.

탁, 탁, 탁.

그러나 아무리 부싯돌끼리 문질러 봐도 불꽃이 튀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역시 불꽃은 튀지 않았다.

‘어디 가서 불을 얻어 올 수도 없고……일단 찬물에 씻을까?’

지금 찬물 더운물을 가릴 때가 아니다.

몸에 진동하는 이 짠내부터 처리해야 한다.

‘일단 씻자.’

찬물에 씻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연리가 더는 짠내가 나는 옷을 입고 있을 수 없어 옷부터 벗었다.

죄인이 유배된 집에 누가 올 리가 없으니 마음 놓고 부엌에서 옷을 벗었다.

전부 다 벗은 다음에 물 항아리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올려 머리부터 감기 시작했다.

창포나 그런 것은 구할 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물로 머리의 소금기를 씻어 냈다.

머리를 감은 연리가 이번에는 몸을 씻어 내렸다.

차가운 물을 퍼부울 때마다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지만 꾹 참고 몸에 묻어 있던 소금기를 거의 씻어 갈 때였다.

덜컹-.

갑자기 부엌문이 열리는 바람에 연리가 기겁을 했다.

“꺄악!”

갑자기 문이 열리자 연리가 벗은 몸을 손으로 가리며 주저앉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것은 모르는 사내였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머리가 부엌 천정에 닿아 몸을 숙여야 할 정도로 큰 사내가 불쑥 들어서자 잔뜩 겁에 질린 연리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누, 누, 누구인데 함부로……!”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이 없기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

대뜸 대답하는 목소리는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다.

자세히 보니 어젯밤 그 사내다. 자신을 물에서 건져 주고 여기까지 업어다 준 사내.

“다, 당장 나가지 못하겠소! 당장……!”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듣고 달려와 줄 사람이 없다는 건 연리가 가장 잘 안다.

이 섬에서 누가 자신을 도와주겠는가.

“이거, 잃어버렸지?”

그러나 사내는 아무렇지 않은 무심한 눈으로 연리의 앞에 뭔가를 툭 내던졌다.

그게 뭔가 하고 보니 허리띠다.

어젯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태자가 준 허리띠를 본 연리가 순간 멍해졌다.

이건 어제 바다에 빠졌을 때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걸 이 사내가 어떻게 찾아온 걸까.

“그물에 걸렸기에 버릴까 하다가 가져왔다.”

사내는 허리띠 말고도 다른 것도 부엌에 툭 내려놓았다.

망에 담긴 그것은 생선 몇 마리와 큰 조개 같은 것들이었다.

사내는 연리의 벗은 몸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먹을 수 있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버리고.”

“저기요!”

그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내를 연리가 얼른 불러 세웠다.

옆에 뒀던 옷을 당겨 벗은 몸을 가리고 연리가 황급히 사내를 불렀다.

갑자기 저 사내가 나타나 놀라긴 했지만 지금은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체면이나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잠시만요! 잠시만 저 좀 보세요!”

“귀찮게 왜 자꾸 부르고 그래?”

울타리를 벗어나려던 사내가 휙 돌아봤다.

그 무뚝뚝한 얼굴에 연리가 살짝 겁을 먹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죄송하지만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걸 좀…….”

“뭐?”

사내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는 순간 연리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해칠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아직까지 벌거벗고 있었다.

* * *

“이런 것도 안 해 보고 뭘 하고 산 건지…….”

사내가 짜증을 내며 아궁이 안에 땔감을 집어넣었다.

이 사내가 불을 붙여 준 덕분에 지금 아궁이 안에는 불길이 활활 잘도 붙었다.

연리는 사내가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것을 유심히 봐 두었다.

나중에 혼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봐 두었다.

“여기에.”

그런데 사내가 구석에서 뭔가를 끌어당겼다.

작은 무쇠 항아리였다.

“여기에 불씨를 담아 놓는 거야. 불을 피울 때마다 부싯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불씨를 담아 두고 꺼지지 않게 간수만 잘하면 아궁이에 불을 붙일 때마다 이 불씨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아궁이에 불이 잘 붙는 것을 확인한 사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부엌을 나갔다.

그 사내의 뒤를 쪼르르 따라 나간 연리는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연리가 이렇게 좌불안석인 이유는 다름 아닌 사내가 부엌에 두고 간 생선과 조개 때문이었다.

그것을 거기에 두고 가면 어쩌란 말일까.

연리는 생선을 손질하는 법도 모르고 조개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저대로 내버려 두면 이 날씨에 분명 썩어서 냄새가 진동할 것이 틀림없다.

“저기, 그런데…….”

“또 뭐요?”

사내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생긴 것도 험상궂은데 말할 때마다 버럭거려서 연리는 이 사내가 무서우면서도 지금 도움을 청할 곳은 이 사내밖에 없어서 더 곤란했다.

“생선을 어찌 손질하는지 알지 못해서…….”

“할 줄 아는 것이 뭐요?”

사내의 퉁명스런 목소리에 연리의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나도 할 줄 아는 것은 많이 있는데…….’

자신의 바느질 솜씨, 수놓는 솜씨, 옷 짓는 솜씨는 다들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었다.

그 솜씨를 이곳에서는 뽐낼 수 없어서 그렇지 자신도 잘하는 것이 있다.

불을 지필 줄 모르고 생선을 손질하지 못할 뿐이지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안 해 봐서 그렇지 한두 번만 눈으로 보면 나도 다 할 줄 안다고…….’

“불도 지필 줄 모르고 어제는 뭘 먹었소?”

“그냥…… 물에 쌀을 불려서…….”

“생쌀을 씹어 먹었소?”

사내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에 연리가 괜히 속이 상했다.

지금 사내가 저를 바라보는 표정은 ‘이런 모자란 바보가 있나’라는 그런 표정이다.

그러나 자신도 생쌀을 물에 불려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할 줄 모르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나 원 참…….”

혀를 차며 사내가 다시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가리는 먹을 줄 아시오?”

죽은 생선을 칼로 자르기 전에 사내가 연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아니요…….”

“대가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못 먹어.”

사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에 든 칼로 생선의 머리를 내리쳤다.

‘윽……!’

거침없는 칼질에 생선의 머리가 단번에 잘리자 연리가 기겁을 했다.

부엌에 진동하는 비린내에 코를 막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앉았다.

사내는 오래 걸리지 않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생선 몇 마리를 전부 손질하고 그릇에 담았다.

“오늘 다 못 먹으면 먹을 것만 빼고 나머지는 소금 뿌려서 볕 좋은 곳에 널어 놓으시오. 말려 먹으면 꽤 오래 먹을 수 있으니까. 조개는 짠물에 반나절 담궈 놓으면 해감이 되니 해감하고 나서 국을 끓이든 탕을 끓이든 하시오.”

“아, 네…….”

실은 연리는 조갯국을 끓이는 법도, 생선을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조개탕이나 생선구이를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건 남이 해 줄 때의 일이다.

‘음식을 못한다고 하면 또 버럭거리겠지. 괜찮아. 할 수 있어. 소금 뿌리고 구우면 되는 거 아냐.’

이제는 저 사내에게 괜히 못한다는 소리도 하기 싫어서 연리가 음식 하는 법은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서…….”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사내를 따라나와 연리가 연신 허리를 굽혔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사내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히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혼자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런 사내일지라도,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밤에 돌아다니지나 마시오. 어제는 운이 좋았던 거지 항상 그렇게 운이 좋으라는 법이 없으니까.”

그 말을 던지고 사내가 멀어지는 것을 빤히 지켜보던 연리가 퍼뜩 생각했다. 저 사내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하긴, 이름을 알아서 무엇 하겠어. 하지만 생명의 은인인데…… 나중에 뭐라도 줘야 하나…….’

이 낯선 섬에서 저 사내는 연리가 처음 만난, 그리고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연리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은인이다.

저 사내가 아니었으면 어제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법을 알려 준 것도, 먹으라고 생선을 가져다준 것도 고마운 일은 틀림없다.

사람이 무뚝뚝해서 그렇지 아주 나쁜 사람이었다면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한밤중에 바다에 뛰어드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데 뭘 줘야 하나…….’

연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은 유배를 온 죄인이다.

당장 먹을 양식도 모자란 형편에 저 사내에게 보답한답시고 줄 만한 것도 없다.

꼬르륵-.

배 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연리가 더는 저 사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지금은 일단 배를 채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 * *

“이걸 어째…….”

새카맣게 타 버린 생선을 앞에 두고 연리가 울상을 지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밥을 지어 봤지만 망했다.

아궁이의 솥이 너무 커서 그 솥에다 밥을 지으면 한 달치 쌀을 전부 다 쏟아부어야 할 것 같아서 궁리를 한 끝에 바가지에 쌀을 한 주먹 넣고 솥 안에 바가지를 살짝 얹어 밥을 지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밥은 죽처럼 질퍽하게 익어 버렸다.

죽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되지만 문제는 사내가 주고 간 생선이었다.

생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무턱대고 아궁이 안에 넣어서 구웠는데 아주 새카맣게 타 버렸다.

부엌 한구석에서 질퍽한 밥과 새카맣게 탄 생선을 살살 발라 먹으며 연리가 자꾸만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질퍽하게 퍼진 밥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숯덩이가 되어 버린 생선 살을 발라 입 안에 넣자 탄내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버릴 수도 없었다.

예전에 집안에 있던 찬모는 생선을 가지고 튀기기도 하고 조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조리고 튀긴 생선을 혹시나 가시가 목에 걸릴까 싶어 유모가 하나하나 살을 발라 제 그릇에 얹어 주었는데 그걸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제 자신을 챙겨 주고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것을 저 스스로 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도 눈물이 났다.

이 섬에서 얼마나 오래 지낼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모든 것이 막막해졌다.

“흑…….”

눈물이 밥그릇에 뚝 떨어졌다.

눈물이 섞인 죽밥을 숟가락으로 떠 입 안에 넣으며 연리가 계속 울었다.

그것이 연리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이 섬에서 직접 해 먹은 첫 끼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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