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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볼모의 경계 (5) (10/17)

9장. 볼모의 경계 (5)

“희우 님.”

“…….”

“희우 님?”

두 번의 부름에서야 희우는 깨어났다. 화들짝 고개를 치들자 반대로 이런 자신을 의아하게 응시하는 주 실장이 보였다.

그제야 희우는 자신이 네모난 파프리카를 찍은 포크를 가만히 들고 있기만 했다는 걸 알았다. 뒤늦게 입에 넣고 오물대며 눈가를 덮어 문질렀다.

“약 드셨어요?”

근래 들어 이렇게 넋을 빼는 일이 잦아진 희우의 모습을 상기했는지 주 실장이 넌짓 물었다. 희우는 입에 음식이 있어 육성 대신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역시나 주 실장도 이런 희우의 상태가 약 기운 때문이라고 짐작한 듯싶었다. 어렵게 떠올린 결론도 아니리라. 안 박사가 오는 날이면 희우는 녹아 가는 얼음덩어리처럼 흐물흐물 늘어지기 일쑤니까.

하지만 이처럼 하루 매시간 그러지는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안 박사가 자택 치료로 방문하는 날에만 유독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 외의 날에는 몸이 조금 나른한 정도였는데…….

작금은 식사를 이유로 의식이 선명히 깨어 있어야 하는 때마저도 잠기운이 잡아먹을 것처럼 몰아쳤다.

지금도 그랬다. 입에 음식을 넣고 씹고 있는데도 졸렸다.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올까. 그런 생각을 잠깐 떠올렸다가 말았다. 어차피 정신을 차려야 할 일도 없다. 이 감옥 같은 집이 선사하는 게으름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처지를 매 순간 실감하게 만들었다.

희우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게살 볶음밥을 한 술 떠먹으며 귀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만져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그러나 소리는 여전히, 아주 멀리서 작게 속삭이는 걸 잡아채는 수준으로 들렸다.

가늘고 길고 희미하게.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어도 누가 목소리를 잡아다가 뭉갠 것처럼 인식이 됐다. 그나마 알아듣고 대화가 가능한 건 멀쩡히 작용하는 다른 쪽의 귀 덕분이었다.

한참 귀를 매만지다가 끼얹어진 타격에 이어 고열로 신경이 죽은 것 같다던 안 박사의 진단이 떠올랐다. 그 뒤로, 약물 치료가 효과가 없으면 보청기 착용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효과…… 없는 건가?’

벌써 치료를 받은 지도 몇 주. 아직까지 소리가 멀게만 들리는 걸 보면 결과는 더 볼 것도 없이 정해진 셈이었다. 보청기가 아니면 평생 이렇게 실낱같은 소리만을 잡아 가며 살아야 하는 거구나.

귀의 상태를 인지할 때마다 저를 향해 울분이든, 슬픔이든 무언의 감정을 표하던 오빠의 무거운 눈빛이 떠올랐다. 자신이 어쩌다가 밖에서 다치고 오는 일이 있으면 저보다 더 아프고 힘겨운 표정을 지어 보이던 때의 눈빛.

입 안에 넣은 음식을 씹던 움직임이 천천히 멎었다. 희우는 열없이 귓바퀴를 문지르던 손을 아래로 툭 떨궜다.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응답을 해 주는 이는 없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해답을 던져 주는 이도 없다. 몰랐는데, 그리움도 지치는 단계가 있나 보다. 희우는 이제 오매불망 오빠를 덧그리며 기다리는 게 힘에 부쳤다.

그게 오빠에게 실망을 했다든가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억지로라도 온전하다 여기던 오빠의 생사와 안위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쪽이 가까웠다.

혹여나 오빠의 목숨이 위험해졌다면, 자신은 지금 귀 한쪽 아픈 걸로 투정을 부릴 처지도 아니라는 생각이 이따금 고개를 들었으니까.

이제는 그냥, 살아만 있어 줬으면 해.

더도 덜도 바라지 않아.

딱 그것만…….

희우는 힘겹게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밥알을 삼켰다.

그녀가 먹는 걸 지켜보며, 혹은 감시하며 서 있던 주 실장이 지잉 울린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곧 대표님 귀가하신다네요.”

본래 주 실장은 희우를 케어하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가 3, 4시경에 사라지고는 했으나 요즘 들어 그 시간이 많이 늦추어졌다.

이 보고를 위해서였다.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희우는 고개를 주억였다. 가뜩이나 입맛도 없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물을 한 잔 비우는 걸 마지막으로 스툴에서 일어났다.

주 실장의 저 전언은 하나의 신호였다.

‘앞으로는 현관으로 나와서 기다려.’

서수혁이 그런 지시를 내려서였다. 자신이 귀가할 때가 되면 현관으로 미리 나와 있으라는.

처음에는 왜 그런 걸 원하는가 했다. 가끔씩 이상한 데서 예의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 사내라지만 그걸 불만으로 삼기에는 때가 지나치게 늦었다. 그간 마중 나오지 않는 꼴을 눈꼴셔 했다기에 그런 기미는 발견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의문은 바로 다음 날 현관에서 기다리는 즉시 알게 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그는 현관에서 복도로 꺾어지는 구간 벽에 기대서서 현관을 바라보고 있는 희우를 발견하고서 멈칫했다. 자신이 내린 지시를 잊어서 그랬다기에는 눈빛에 의아한 구석이 없었다.

그건 오히려 뭐랄까, 그 모습을 곱씹는 것처럼 잠깐의 간극을 두는 느낌이었다.

희우가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금세 본래의 여유로운 태세로 돌아온 그는 구두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어안이 벙벙하던 마음은 곧 다가온 그가 입술을 다짜고짜 맞부딪친 시점에서야 의문을 해갈했다.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나왔을 때 주 실장은 이미 퇴근을 한 후였다. 혼자 남겨지자 적막이 또다시 희우를 좀먹을 것처럼 밀려왔다. 희우는 물기 남은 입술을 소매로 닦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벽에 기대어 서서 발 앞코로 바닥을 톡톡 찧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무료히 버스를 기다리는 모양새로 그러고 있자니 잠시 후 도어록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리며 문만큼이나 커다란 사내가 들어섰다.

서수혁은 이제 마중 나와 서 있는 희우를 익숙하게 응시하며 구두를 벗었다. 다가오자마자 허리를 굽힌 그는 인사를 대신하듯 입을 맞추었다. 물론 반갑다거나 애틋한 그런 느낌의 입맞춤은 단언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듯 달려들듯이 냅다 들이박는 느낌이었다.

희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빨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서수혁은 밀면 밀리는 대로 후퇴를 거듭하는 그 입술 사이를 갈라 혀를 집어넣으며 걸치고 있던 재킷과 베스트를 차례대로 벗어 냈다.

이대로 침실로 향하는 길목 위, 서수혁을 감싸던 슈트의 복장들이 이정표처럼 남겨졌다.

섹스에 임하다가 곯아떨어지는 것도 예삿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그저 그에게 잡혀 무력하게 휘둘리고 헐떡이느라, 순전히 체력적인 이유에서 달려 늘어지는 거였다면 이제는 조금 결이 달랐다.

서수혁은 어느 순간부터 희우가 쾌락을 감당치 못해 부르르 떠는 걸 보는 데에 재미가 들린 것처럼 굴었다. 그걸 위해서 생전 입에 댈 생각도 않던 비부에 코와 입을 아예 뭉그러질 기세로 박고 저 안쪽에서 샘이 물큰히 터질 만큼 쩍쩍 빨아 댔다.

특히나 음핵을 괴롭히는 방법 하나는 기가 막히게 터득하여 허리를 흔들 때마저도 그 적빛 돌기를 궁굴리고 긁으며 희우의 감도를 아예 황홀경에 이를 지경까지 끌어 올렸다.

그렇게 달구어진 구멍을 저 좋을 대로 쑤시고 난도질해 가며 희우를 수 번이나 절정에 이르게 만들었다.

“…….”

그 과정을 지나 깨어났을 때는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그가 퇴근을 하자마자 침대로 직행한 결과였다.

이른 아침이라면 남자가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만, 사위 고요한 밤임에도 남자가 침실에 없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아직 다 달아나지 않은 잠기운에 누운 상태로 멍하니 눈만 가물거리던 희우는 어쩐지 속이 좋지 않은 거 같아 상체를 일으켰다.

흘러내리는 이불을 걷어 내며 맨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격하게 몸을 움직이느라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기다려 보았으나 단전에서부터 울렁이는 듯한 오심은 가라앉을 듯 가라앉지 않았다.

‘물을 좀 마셔야겠다.’

목이 마르기도 하고, 이렇게 앉아 있어 봤자 좋아질 증상처럼 다가오지가 않아서 희우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실에 따로 마련된 욕실에서 간단히 물만 뿌리고 나온 희우는 의자 위에 걸쳐진 가운을 착용했다.

닫힌 침실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얼핏 서수혁이 통화를 하나 싶었으나 목소리는 정확히 두 개로 구분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윤서원이 온 듯했다. 이 야밤에 방문할 정도면 사안이 꽤나 급한 모양이었다.

희우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 부엌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들 쪽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코너로 돌아가는 사이, 힐끗 눈길을 준 끝에는 역시나 윤서원이 있었다.

“……래서 현재 시체는 저희 쪽으로 인도한 상태…….”

윤서원의 단정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허공을 울리며 희우에게까지 도달했다. 단지 일 얘기라고 치부하고 지나치려던 발이 그 한마디에 칭칭 감겨 묶인 것처럼 멈추어 섰다.

……시체?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얼음이 가득한 냉수 속에 빠진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끼치는 오한을 간과할 수가 없었다.

심장 끄트머리가 빠근하게 저려 왔다. 극도의 긴장감이 예기치 못하게 치솟을 때에 느끼고는 하는 현상이었다.

이를테면, 아주 질이 나쁜 예감이 덮쳐 올 때.

오빠를 아느냐며 찾아온 도끼가 저를 보고 히죽 웃었을 때에도 느꼈던 이 감각은…….

윤서원이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들었다. 그러다가 멍하니 이쪽을 보고 선 희우를 발견하자마자 잘만 놀리던 혀를 멈춰 세웠다.

차라리 다른 반응이었으면 이보다 나았으리라.

자신을 보자마자 허를 찔린 것처럼 급히 말을 멈추는 그 모습이 오히려 희우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이런 야밤에 급히 상사의 집에 방문했어야만 하는 큰일.

그의 입에서 시체를 운운하며 난색을 내보일 만한 일.

그 일은.

그 일은 아무리 봐도.

윤서원이 보고를 멈추고 어딘가를 빤히 바라만 보자 야경 비치는 창밖을 내다보던 서수혁이 몸을 쓱 돌렸다.

조금 전, 침대에서 함께 뒹굴 때만 해도 불티 같은 열기가 배어나던 눈동자가 지금은 겨울철 처마에 맺히는 고드름처럼 날카롭고 차갑기만 하다.

“지금…… 누구 얘기를 하는 거예요?”

“…….”

“누가, 죽었다고…….”

희우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분명 지면은 멀쩡하게 자리하고 있는데도 온 땅이 물렁물렁한 늪지대 바닥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아니겠지?

설마, 설마 아니겠지…….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거겠지.

뇌가 출렁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얕은 수준으로 감돌던 오심이 목구멍을 찌를 기세로 치밀어 올랐다.

윤서원은 희우의 질문에 난처한 기색만 보였다. 잘만 움직이던 입은 자물쇠를 걸어 잠근 것처럼 미동이 없다.

그래서 더 애가 탔다.

희우의 이런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윤서원이 곁에 선 서수혁을 힐끔 돌아보았다.

담배를 문 서수혁은 똑바로, 천천히 걸어오는데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느낌을 선사하는 희우를 주시하다가 단조로이 읊조렸다.

“묻잖니, 서원아.”

서수혁이 빈손을 허공에서 느리게 돌렸다. 테이프를 거꾸로 감는 느낌을 주는 손짓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조금 전 제게 올리던 보고를 처음부터 복기하라는 제스처였다.

윤서원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정희본 시신 발견했습니다.”

“…….”

“지문과 그 밖의 대조 결과 정희본 본인 일치했고요. 강원도 방면 6번 국도에서 사고 발생한 걸로 추정됩니다. 현장 확인 결과 자동차 급발진으로 산기슭까지 추락한 사고사로 보였으나, 정황상 사고사로 위장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시체 부위 중에 왼쪽 손목이 실종된 상태라…….”

희우의 귀에 뒷말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희본 시신, 본인, 추락, 사고, 시체, 실종.

온갖 것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이는 게 꼭 깊은 바닷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을 선사했다. 누가 자신의 정수리를 누르고 또 누르고 눌러서 아예 숨도 못 쉴 만큼 납작이 짓뭉개 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래도 다른 한쪽의 귀는 멀쩡히 작동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그럴 리가 없다.

오빠가 왜 죽어.

다 헛소리를 하는 것만 같았다. 눈 뜨고 잠꼬대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윤서원이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닌 걸 알면서도, 사실 이성은 이 거부가 하등 무용한 짓인 걸 알고 있지만 뒤틀리고 졸리는 마음이 모든 걸 쳐 낼 것처럼 부정했다.

이들에게 잡혀 지내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희우는 마지막 희망을 한 가닥은 품고 있었다.

오빠는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고.

저를 버린 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거라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확신인지 소망인지 모를 마음 하나 가지고 버텨 오던 모든 의지가 허물어졌다. 보루처럼 가진 마지막 희망이 끊겼다. 절망이 바닥을 가르며 솟아올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최악이네.”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떠는 희우를 응시하던 서수혁이 픽 웃으며 뇌까렸다.

잠시 후 웃음을 내지은 적 따위 없다는 것처럼, 반듯한 미간에 고우면서도 엄한 금이 하나둘씩 그어졌다.

“도둑맞은 물건은 찾지도 못하고, 지멋대로 집 나간 애는 송장으로 돌아오고.”

“…….”

“이렇게 씹스러울 수가 있나.”

끝을 모르고 가라앉던 정신이 그 말에 확 돌아왔다.

희본을 여전히 도둑놈쯤으로 취급하는 그 말이 희우의 너절한 정신을 칼날처럼 헤집어뜨렸다.

아까 윤서원의 말대로라면 분명 시체는 이쪽에서 인수하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영혼이 빠져나가 차갑게 식어 버린 오빠의 몸뚱이만큼은 지금, 희우의 가까이에 있는 거다.

이들에게 있어서 희본은 배신자였다.

서수혁이 도끼를 처벌했던 방식만 떠올려 봐도, 배신자에 대한 처우가 어떻게 될지는 뻔히 짐작이 갔다. 어떻게든 훼손시키지 못해 안달 내려 할 거다.

최대한 수치스럽게, 최대한 굴욕스럽게.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집단이 오빠의 마지막을 그런 식으로 맺음 짓게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배신자니 뭐니라 한들 희우에게는 세상에 하나 남아 있던 가족이고, 피붙이고, 보호자였다.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이대로, 오빠의 마지막이 허무하고 처량하게 끝나도록 놔둘 수는…….

“…….”

담배를 피우느라 꺾여 있던 팔목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져, 서수혁이 눈길을 내렸다.

어느덧 희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제 겨우 멍이 가셨으나 그게 다 쓸데없이 느껴질 정도로 퍼런 빛이 완연한 안색이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를 무너뜨릴 것처럼 몰아치는 쾌락의 파도에 잠겨 헐떡이던 볼 만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붙잡고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지 입술만 수 번 달싹인다.

윤서원이 더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그 광경 속에서, 서수혁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어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보자는 것처럼.

“장례식…….”

한참을 기다린 끝에 꺼내어진 말은 그게 다였다.

누가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드는 것처럼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문장을 제대로 완성하지도 못하고 툭 잘리게 뱉어 낸 끄트머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고작 거기까지밖에 뱉지 못할 만큼 힘에 부쳐 하는 어조였다. 그래서 더 처절하게 느껴졌다.

서수혁은 피죽도 못 먹은 희우의 얼굴을 한 번, 제 소매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한 번씩 돌아보았다.

그리고 담배 연기보다 더 맵싸하게 뱉어 냈다.

“치르게 해 달라고?”

“…….”

“내가 왜?”

“…….”

“보란 듯이 내 통수 치고 나가서 혼자 지랄하다가 뒤져 버린 새끼 뭐가 이쁘다고 그런 걸 해 주니.”

서수혁이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끄고는 냉정히 몸을 돌렸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소매를 잡아끄는 힘이 느껴져서였다.

눈길만 쓱 돌린 그 끝에 희우의 떨림은 한층 심해져 있었다. 클럽 룸에서 목도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오히려 심각한 걸로 따지자면 이쪽이 더해 보였다. 그때는 두 눈과 귀만 가려 주면 될 성싶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조차 먹히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은 게 보였다. 그게 애잔함과 눈꼴심을 동시에 부추겼다.

곧 희우의 자세가 천천히 낮아졌다.

서수혁은 제 앞에서 무릎을 꿇는 희우를 보자마자 인상을 확 굳혔다.

“부탁드립니다…….”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촉촉하다. 그런데도 듣기 역했다. 서수혁은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여자가 일으키는 모든 감정의 작용에 비위가 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별 반응 없이 가만 서 있기만 했다. 그 부동이 어떤 의미로 다가온 건지, 희우가 갈급히 입을 열었다.

“오, 오빠한테 가족이라고는 저밖에 없어요. 제가 치러 주지 않으면 끝이에요.”

“…….”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장례식만 치르게 해 주세요. 제발…….”

그렇게나 간절히 애원해도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에 마음이 급해진 희우는 바닥을 짚던 두 손을 들었다. 신 앞에 제사 지내는 신도처럼 맞붙인 두 손바닥을 비비면서까지 빌었다.

근방에 선 윤서원이 이런 저를 안타깝게 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그간 오빠가 저를 위해 감내하고 희생한 것들을 헤아리면 이깟 자존심, 몇 번이고 팔 수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해야만 했다. 떠나는 길을 잘 포장해 주는 것이 이제는, 희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이자 위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피할 길 없이 주어진 죽음 앞에서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시야가 뿌옇게 젖었다. 다행이었다. 서수혁의 냉엄한 눈길에 겁먹지 않고 빌 수 있으니까.

희우는 다 뭉개진 목소리로 제발, 제발, 그 애원만 거듭했다.

서수혁은 흥건히 젖은 그녀의 얼굴과 발열이 올라올 만큼 싹싹 비는 손, 허옇게 질린 무릎을 차례대로 살폈다.

지금까지 남이 이런 모습을 취하는 건 적잖이 봐 왔다.

아니, 적잖이가 아니라 수도 없이.

목숨 앞에서는, 돈 앞에서는, 뭐든지 간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앞에서는 자존심 따위 몇 번이고 내다 버릴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당장 도끼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본인이 가진 지위와 목숨만큼은 지켜보겠노라는 심경으로 손을 직접 잘라 버린 제 앞에 찾아와 무릎을 꿇고 구질구질하게 빌었다.

지금껏 그런 모습을 보며 단 한 번도 어떤 감흥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냥 비는구나, 싶은 감상에서 그칠 따름이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굴욕적이고도 비참한 내면을 가감 없이 파헤쳐 대면서도 서수혁은 매사 덤덤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짜증이 치솟는지 모르겠다. 눈이 뻐근해질 정도로 불유쾌했다. 심사가 실시간으로 뒤틀리고, 머릿속에 까슬까슬한 거스러미가 일어나는 기분.

서수혁이 희우의 가는 팔목을 덥석 붙잡았다.

“일어나.”

그렇게까지 말하며 힘을 주지만 오히려 희우는 버텼다. 허락해 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태세라는 걸 깨닫고 서수혁은 혀를 찼다.

“알겠으니까 일어나라고.”

그 말에서야 희우는 몸에 꾹 주고 있던 힘을 뺐다.

저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에 의지하여 다리를 세우던 희우가 찰나 크게 휘청거렸다. 서수혁은 저도 모르게 얼른 팔을 뻗었다. 희우가 그 위로 풀썩 넘어졌다.

다음 순간 확인한 얼굴은 혼절이라고 판명하는 게 적절할 만큼 엉망이었다.

* * *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장례식.

실제로는 두 번째로 목격하는 광경이었다.

네모난 사진에 걸린 검은 띠와 그 주변을 둘러싼 새하얀 국화, 여름의 마지막 정기처럼 청명한 색감을 띤 풀.

향로 재단에 놓인 촛불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가 장례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꺼림칙한 느낌을 가득 끌어 올렸다.

실체 없는 죽음의 냄새는 거기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빈소는 아침저녁으로 썰렁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가족들에게는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적이 없었고, 직장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기실 장례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다는 점만 해도 감읍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렇게 텅텅 빌 걸 알면서도 희본의 장례에 고집을 피운 이유는 하나였다.

‘희우야, 있잖아. 엄마가 죽으면 꼭 바다에 뿌려 줘.’

‘엄마가 왜 죽어?’

‘사람은 원래 다 죽어.’

애를 앞에 두고 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으나 엄마는 극히 담담했다. 오빠는 가끔 엄마가 엉뚱한 면이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게 이런 면을 일컫는다는 걸 희우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 나도 죽어?’

‘응.’

‘난 죽기 싫은데…….’

‘근데 희우는 아직 아니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난 다음에. 엄청 엄청 나중에.’

‘나중에?’

‘그럼. 우리 희우는 아직 아기니까.’

‘으응.’

‘엄마는 희우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았잖아. 그니까 엄마가 더 일찍 가게 될 거야.’

‘가아?’

‘죽는다구.’

‘으응…….’

엄마가 희우의 품에 들린 곰 인형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어쨌든, 하고 잠시 딴 길로 샌 말머리를 잡아 돌렸다.

‘그때 엄마는 꼭 바다에 뿌려 줘야 해.’

‘바다? 왜?’

‘엄마는 늘 묶여 있어야 했거든. 이제 그런 것도 지긋지긋해. 죽어서까지 얽매이긴 싫어. 그러니까 파도 타고 헤엄치면서 자유롭게 여행할 거야.’

그러며 엄마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떤 삶을 살았든 마무리가 좋으면 되는 거야. 그럼 충분히 멋진 삶을 산 거라고, 엄마는 생각해.’

하고.

당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도 이상하게 기억에 콕 남은 그 말은, 머리가 커 가면서 똑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억울하고, 기이하고, 또 이상한 죽음이 너무나 많았다. 뉴스만 틀어도 쉽게 접하게 되는 그런 것들은 대개 제대로 된 애도조차 받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게 된다.

그러니 오빠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장례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오빠의 말로를 제대로 매듭지어 주고 싶은 마음이어서.

그 마음을 해결한 직후에야 헛헛증이 밀물처럼 몰려 들어왔다. 엄마가 떠나고, 뒤이어 오빠마저 떠난 세상에 이제는 진짜 저 홀로 남겨졌다는 실감이 그 헛헛증의 재료였다.

희우는 망연히 영정 사진을 보았다.

핸드폰도 어디 갔는지 모르고, 집도 서수혁의 손에 넘어가 정리가 되어 희우는 수중에 희본의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것조차 서수혁의 도움으로 얻게 되었다. 희본이 입사 시 제출한 증명사진이 사내에 하나 남아 있던 덕분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빌었고 뜻한 대로 이렇게 상복까지 입고서 유일한 상주로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

지금 저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오빠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니. 지금 당장이라도 제 어깨를 붙잡으며 ‘뭐 해, 희우야.’ 하고 나타날 것 같은데.

그런데 없다니. 사라졌다니. 영영 못 본다니. 이별이라니. 끝이라니…….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날 버려도 되는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서 숨 쉬며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랐는데 대체 왜…….

오빠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게 너무 서글펐다. 왜 기억을 못 하는 거냐고 멍청한 머리를 꾸짖고 싶었다.

믿기지가 않으니 눈물도 나지 않았다. 단지 멍하기만 했다.

이게 진짜라고? 지금 이 상황이 실제라고? 꿈을 꾸는 거 같은데 꿈이 아니야? 그런 생각만이 쳇바퀴 돌듯이 맴돌았다. 아무래도 뇌가 오빠의 죽음을 거부하고 힘껏 튕겨 내는 것만 같았다.

아직,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빈소 입구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희우는 흐트러진 상복을 정리하며 열없이 늘어뜨려 둔 몸을 일으켰다. 안으로 들어서던 윤서원이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그가 이쪽으로 다가와 손에 쥐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놓은 뒤 희우와 마주 보는 위치에 섰다.

뭔가 싶어 가만히 마주 보고 있자니 윤서원이 간단히 목을 숙여 인사를 전했다. 그제야 그가 조문객의 목적으로 방문했다는 걸 깨닫고 희우는 어색하게 고개를 따라 숙였다.

이후 윤서원은 재단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꽂혀 있던 향 하나를 들어 촛불에서 불을 옮겨붙인 뒤에 향을 흔들어 불씨를 꺼트렸다. 진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막대기를 향로에 꽂은 그가 남은 순서를 치른 뒤 희우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밥은 좀 먹었어?”

희우는 파삭하게 마른 입술을 감쳐물었다가 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속이 안 좋아서…….”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은 거 아니야?”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지금은 더 입을 열 기력도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자니 윤서원이 한쪽에 내려놓은 쇼핑백을 쥐어 가져왔다.

“이거 죽이거든. 내가 자리 지키고 있을 테니까 저 안쪽 방에서 좀 먹고 있어.”

“괜찮은데…….”

“너 지금 이러고 있는 거 알면 희본이가 좋아할 거 같아?”

윤서원이 답지 않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사양하던 희우는 희본을 들먹이는 말에 하는 수 없이 쇼핑백을 쥐었다. 윤서원의 말처럼, 함께 지낼 적에 오빠가 그 무엇보다 신경을 쓰던 게 제 끼니인 걸 알아서였다.

“누구 오면 불러 줄 테니까 편히 쉬고 있어.”

희우는 잠시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장례식 준비가 막 끝났을 때 서수혁에게 한 번 더 간절히 빌어 외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 보기는 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문자라도 남겨 두었으나 장례식 이틀째인 오늘까지 그들은 머리칼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감은 눈곱만 했으나 예상을 현실로 만든 일가친지들의 태도에 희우는 힘 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제 장례식이라면 부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다. 이제 머리가 큰 희우 역시 그들에게 남은 건 악감정뿐이었다.

그럼에도 연락을 한 건 어쨌든, 희본이 떠나는 길인 만큼 조금이라도 풍성하게 찼으면 하는 마음이라서였다. 그건 저 홀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눈앞의 윤서원이 내보이는 호의를 무시하기가 어려워서 희우는 안쪽에 마련된 쪽방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쇼핑백에서 죽이 담긴 용기를 꺼냈다. 뚜껑 벗기는 부분을 잡아당겼으나 힘이 없는 건지, 압착력이 강한 건지 자꾸만 손이 헛돌았다.

두어 번 더 시도해 보다가 관뒀다. 윤서원의 채근에 어쩔 수 없이 하던 짓이었지, 허기가 돌아 한 건 아니었다.

희우는 뜨끈한 열감이 오르는 죽 용기를 앞에 둔 채 삐죽 세운 양 무릎을 끌어안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저 바깥의 빈소보다 더 고요한 방에 놓이자 삽시간에 의문이 몰아쳤다. 가라앉은 눈길로 김이 서린 포장 용기 뚜껑을 더듬던 희우가 무릎에 이마를 박았다.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건가?

갑갑한 마음은 그 소망과도 같은 가정을 맨 위로 떠올려 보냈다.

그런데 이제 집은 없는데 어떡하지. 알바를 하면서 싸게 구할 수 있는 방을 알아봐야 하나. 고시원 이런 곳이라도 머물러야 할까. 근데 장례식 비용도 해결해야 하는데…….

서수혁이 알아서 처리해 줘서 지금 여기에 있지만, 희우는 이게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들이 배반자를 위한 빈소를 속 좋게 마련해 줄 리도 없을 테니.

두둥실두둥실 떠오르는 사고의 구름을 헤집다 보니 한 가지 물건이 불쑥 떠올랐다.

장부.

그러고 보니 장부는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찾은 건가? 어쩌면 죽은 오빠에게서 다행히 장부를 발견하여 장례식을 치르게 해 주는 친절 정도는 베푸는 건가?

‘도둑맞은 물건은 찾지도 못하고.’

아니다.

서수혁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찾지 못했다고.

그럼…… 장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건가?

그게 진짜라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오빠가 죽은 이상 인질로서 발휘될 가치는 없을 텐데, 그냥 보내 줄까?

집에 갈 수 있는 걸까?

생각의 갈래가 자꾸만 집이라는 매개로 이어졌다. 이제 더 이상 집은 없는데. 오빠도 없는데. 아무도 없는데……. 무릎에 닿아 있던 고개가 안쪽으로 더더욱 말려들었다.

그때 저 멀리서부터 저벅이는, 존재감 선명한 걸음 소리가 들렸다.

힘 풀린 이목구비가 보이게끔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문이 벌컥 열린 뒤였다.

“…….”

손잡이를 쥔 서수혁이 안을 향해 지긋한 눈길을 던졌다.

희우의 말간 얼굴을 송곳처럼 쑤시던 시선이 곧 미끄러져 그 앞에 가지런히 놓인 포장 용기에 가 닿았다. 알 만하다는 듯 바람 빠진 웃음이 그 뒤를 사납게 이었다.

“자리 계속 지켜, 서원아.”

간명히 지시를 내린 서수혁이 안으로 들어서며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그를 앞에 두고서 희우는 옹송그리고 있던 자세를 애매하게 흐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널찍하게 느껴졌던 방이었는데, 서수혁이 들어서자 꽉 차다 못해 넘치는 기분이었다.

희우의 곁을 차지하고 앉은 그는 그녀가 내내 씨름을 벌이던 뚜껑을 아주 가볍게 해결했다. 곁다리에 놓여져 있던 일회용 숟가락 비닐을 뜯은 그가 그것을 희우에게 건넸다.

희우는 마지못해 숟가락을 쥐어 김이 올라오는 죽을 조금 떠먹었다.

한 입을 먹자마자 가뜩이나 울렁이던 속에서 급격히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든 참고 삼켜 내자마자 식도가 뒤틀렸다. 생리적인 거부감에도 옆에서 두 눈 뜨고 지켜보는 남자가 무서워서 몇 입 더 밀어 넣었으나 메슥거림만 심해졌다.

“모, 못 먹겠…….”

“…….”

“못 먹겠어요…….”

개미만 한 목소리로 주장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입 안에 남아 있는 죽의 미끈한 촉감마저 역함을 부추겼다. 속을 달래려 저 나름대로 애쓰던 차에 훅 다가온 손이 희우의 턱을 움켜쥐었다.

“굶어 뒤지려고?”

어느새 서릿발 같은 표정이 된 서수혁이 숟가락을 대신 쥐었다. 그러곤 희우의 양 뺨을 손으로 눌러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으……!”

비명을 지를 것처럼 헤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죽을 한 술 크게 뜬 숟가락이 우악하게 밀려들어 왔다.

“아주 아사하려고 작정을 했나 보네.”

“우읍! 흑…….”

죽은 조금씩 떠먹어도 호호, 불어야 할 정도로 뜨거운 편이었다. 그런 것을 사정 봐주지 않고 마구잡이로 처넣으니 당연히 입안 점막이 금세 다 데고 터지는 화상을 입었다.

희우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자 서수혁은 그 발악을 더 강한 힘으로 누르며 제압하려 들었다.

“흐, 싫. 으, 싫어, 싫……!”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샘솟았는지 알 길이 없다. 허공에서 마구 휘적거리던 손이 그대로 서수혁의 손을 쳐 냈다. 본능적인 위기감이었던 것 같다.

죽이 살짝 남은 숟가락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 뒤를 이어 서수혁이 얼굴을 놓아주는 것과 동시에 희우는 고개를 비틀었다.

“우욱! 욱…….”

조금 전에 막 목으로 넘긴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역류했다. 고개를 돌린 희우가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콜록, 콜록 기침을 토해 냈다.

목구멍이 다 짓무르고 헐어 버린 느낌에 씨근대고 있자니 뒤에서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실감한 희우는 오금이 욱신 저려 왔다.

“그래. 관둬.”

상복 밑으로 삐죽 튀어나온 발목이 붙잡혔다. 다음 순간 주르륵 끌려갔다.

상체만큼은 제대로 세우고 있던 몸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자세에서 강제로 눕혀지는 자세로의 변환이 심한 현기증을 부추겼다.

서수혁이 길고 거추장스러운 상복 치마를 추스르며 그 위로 올라탔다. 아예 빙글 돈 것처럼 새카맣게 벌어진 눈동자가 코앞으로 다가오자마자 희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수혁이 그를 오냐오냐 봐줄 리가 없었다.

“웁! 응……. 흐……!”

그는 지금 막 희우가 토한 걸 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그마한 입 속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순전히 그의 비위가 상할 것이 두렵고 무서워서 희우는 작게 버둥질을 쳤다.

서수혁이 그런 그녀의 양 손목을 거머쥐어 머리 위로 고정시켰다. 치마 밑으로 드러난, 창백하게 질린 발등이 나무 장판을 아무렇게나 밀어 대며 거부감을 표출했다.

“흣, 응, 음…… 으…….”

죽의 미끈한 촉감과 순간적으로 입은 후끈한 화상 통증에 넝마가 되어 있는 입 안은 혓바닥의 침입만으로 발발 떨며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서수혁은 늘 그렇듯이 목구멍 안쪽까지 죄다 틀어막을 것처럼 혀의 몸통을 질기게 쑤셔 박아 댔다. 타액으로 미끈한 살덩이가 안을 내밀하게 공격할수록 가라앉지 않은 토악질이 머리를 어지럽게 흔들어 댔다.

희우의 혀를 채찍처럼 감아올려서는 되는대로 빨아 재끼던 그가 쭈웁 소리가 나게 머금고는 이내 입술을 떼어 냈다.

달리는 호흡을 충당하는 희우의 이목구비는 여전히 힘을 잃은 채로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사고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지 짐작도 하기 어렵게 가라앉아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인상을 떠안겼다.

늘 그랬지만 오늘은 유독 심하다.

아니, 희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희우는 이랬다.

표정에서 도통 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전엔 공포심을 모방한 듯한 잿빛, 그와 곁가지가 비슷한 암색 정도는 발견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정말 전무했다.

단지 아직 숨이 붙어 있기에 이 땅에,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삶의 의미를 지독히도 퇴색시키는 얼굴이었다.

그게 서수혁의 배알을 사정없이 꼴리게 만들었다.

해 달라는 걸 다 해 줬는데도 식음 전폐라도 벌이듯이 식사를 거부하고 이 지랄 발광을 떠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자비 한번 베풀면 그에 감읍하여 몸을 떨며 제게 잘 보이려는 작자들만 넘치는 세상이었다. 그러니만큼 이런 식으로 제 심사를 색다르게 뒤트는 년은 또 처음이었다.

“끼니도 족족 거르니 직접 몸 안에 넣는 수밖에 없겠네.”

서수혁이 기력 없이 드러누운 희우의 몸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치맛자락을 두 쪽으로 갈라진 엉덩이가 보일 만큼 걷어 올렸다.

다 죽어 가는 여자를 보는 와중에도 발끈 치켜 서는 자지의 용맹함에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주 씹맛 한번 제대로 든 모양이었다.

“입에 처넣어 봤자 다 뱉어 내니 아래로라도 먹여야겠어. 그치?”

그가 상복 치마 안에 자리한 속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겨 내는 동안에 희우는 큰 반항 한번 하지 않았다. 그저 네발짐승처럼 엎드린 몸을 추스르며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조차도 거슬리는 기분을 자아냈다.

훤히 드러난 희우의 엉덩이를 좌우로 만판 벌렸다. 옴폭 팬 엉덩이 골과 창백하게 질린 회음부, 그리고 그 앞쪽으로 건조하게 말라 아무런 성적 감흥도 찾아볼 수가 없는 질구가 보였다.

사내의 고환에 저장되는 정액에는 일부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고, 그녀가 식사를 거르는 걸 아주 마뜩잖게 생각하는 서수혁은 그거라도 몸에 주입시킬 궁리였다.

입 구멍을 통해 단번에 먹여 주는 게 베스트일 테지만, 조금 전 죽을 다 토해 내는 걸 봐서는 구음을 시도해도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므로 자궁에 직접 진하게 쏴 주려는 심산이었다. 아랫놈들이 헛짓거리처럼 내뱉던 음담패설에서 얻은 정보를 설마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위든 아래든 몸에 스미기만 하면 효과가 있겠지.

의학적 지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무논리를 들먹이며 그가 그새 배꼽을 두드릴 정도로 올라붙은 살덩이를 그득 거머쥐었다. 

이미 한바탕 쏟아 낼 준비를 마친 귀두 구멍이 제 한 몸을 부르르 떨며 어서 빨리 눅진한 곳에 몸체를 묻어 달라 성화를 부렸다.

귀두 껍질이 열리도록 잡아당긴 채로 그가 미끈하게 솟은 갓을 메마른 질구에 더듬더듬 문질렀다. 순순히 길을 내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하듯이 위아래로 몇 번 움직거리다가 허리 뒤쪽이 떨리는 흥분감이 치밀었을 때 구멍을 활짝 열어젖혔다.

“……읏, 흐…….”

아무런 윤활제도 바르지 않아 건조한 아래가 찢어지듯이 벌어지는 느낌에 희우가 신음했다. 겨우 세운 허벅다리가 실색하듯 질려 퍼들퍼들 떨리고 엉덩이에도 힘이 바짝 들어가며 보조개가 또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서수혁은 입구에서부터 턱 막혀 들며 페니스를 옥죄는 내부 살의 압력에 둔탁한 숨을 흘려보냈다.

그간 찔러 올리는 대로 촉촉한 물기를 자아내며 유들유들하게 풀어졌던 속살점은 교태 부리는 듯한 그 행색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 것처럼 서먹하게 굴었다.

들어오는 게 뭐든지 간에 침입자로만 규정하고 아예 끊어 먹을 태세로 통로 전체를 힘껏 수축시킨다. 실로 오랜만에 겪어 보는 압착력이었다.

그래, 처음이 아니라 오랜만에.

이건 희우가 씹질에 있어서 아무런 흥미도, 감흥도 얻지 못하던 때의 반응과 똑같았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역시도 그런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였다.

메마른 구멍은 아플 정도로 표면에 들러붙어서는 살갗을 찢어 먹을 것처럼 짓눌렀다. 그를 무시하고 꾸역꾸역 처박아 넣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꽉 조이는 구간이 나왔다. 그 안쪽으로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성기를 살벌하게 압박해 오는 내부 살의 눌림 감각에 뭉근한 쾌락보다 뻑뻑한 수고로움이 더 진하게 뒤따랐다.

“……흐, 응, 읍, 윽.”

엎드린 채로 아래가 뚫린 희우는 조금도 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툭툭 잘린 신음만 흘리며 장판을 거머쥐었다.

일단 한 번 싸지르면 안이 좀 젖겠지 싶어 서수혁은 한악스러운 추삽질을 강행했다.

아래에서 꼬물거리는 희우의 신음이 한 옥타브 더 높아졌다. 물론 여전히 뜨끈한 습기를 머금은 양 헤실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고통 위로 또 다른 고통이 얹어진 듯 억눌린 채 아픔을 호소하는 육성이었다.

쯧, 서수혁이 다 들리게끔 혀를 찼다.

이거야 원 쑤셔 줄 만해야 쑤셔 주든가 하지. 이런 상태로는 새끼손가락만 한 실좆이 들어와도 쩔쩔거리게 생겼다.

그런 가늘고 얇은 게 들어와도 애를 먹을 게 뻔한 구멍에다가 팔뚝만 한 걸 오직 기세만으로 헤집어 대고 있으니 넣는 쪽도 박는 쪽도 생고생이었다.

예전에는 이 무지막지한 흡착력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떡맛을 뽑아내는 듯했으나, 보지가 찰지게 풀어져 음경을 딱 좋은 세기로 감쳐물고 빨며 깨물어 대는 걸 경험한 이후로는 조금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토록 육감적이며 알랑거리는 식으로 구는 반응을 똑똑히 아는데, 지금 척박한 오지처럼 쩍쩍 마르기만 한 안을 쑤시는 게 재미가 있을 리가.

그렇다 보니 사정감이 그렇게 치솟아 오르지도 않았다. 한 번 싸 주려고 해도 귀두 부근이 알알하게 저려 올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서수혁은 불알까지 처박을 기세로 넣어 둔 샅덩이를 길쭉하게 뽑아냈다. 그러고는 이제 익숙하게 밀부에 입술을 처박았다.

혀가 먼저 마중을 나가 자지에 호되게 혼이 난 날개살을 핥아 주자 희우가 전신을 흠칫 떨며 발가락을 말았다. 그가 움푹 말린 희우의 발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무람없이 젖혀진 양 음순을 번갈아 가며 빨아들였다.

그래도 그간 혀 빠지게 굴려 대며 보빨에 정성을 들인 게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입구 부근에서 혀를 슬금 뒤굴리자마자 구멍이 움찔대며 군침이 맺히는 개폐를 보이기 시작했다.

평평히 넓힌 혓바닥으로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는 구멍살을 차지게 흡입했다. 입을 보지 모양에 결 맞추듯 동그랗게 오므리고서 흡입기처럼 쯔읍 소리가 나게 빨아들이자 살점이 부르르 떨리며 약하게 수분기를 배출했다.

서수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혀로 갈라 음부 안으로 굼실굼실 기어들어 갔다. 조금 전까지 좆기둥을 버겁게 받아 물던 입구 주름이 완만하게 펴지며 혀를 너끈히 받아들였다.

그는 희우가 유난히 느껴 하는 입구 주위 연한 살점을 입에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둥 돌려 빨며 서서히 피가 몰리기 시작하는 좆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보지액을 걸신들린 양 빨며 용두질하듯이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자위를 해 본 경험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부르면 달려와 눈앞에서 보지를 까고 드러누울 기집애들이 한 트럭인 만큼 한 번도 여자가 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손목이 아파 올 정도로 딸을 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본능에 의하여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입 안을 적시는 애액을 점막에 골고루 처바르는 행위가 머릿속 한편을 돌게 만들었다. 새침을 떨듯이 아직은 완전히 풀어진 게 아닌 걸 알아서 다짜고짜 박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라도 치솟는 열감을 해소하는 거였다.

“읏! 흐…… 아…….”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희우의 입에서도 한결 간드러진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담으면 담을수록 귀가 간지러워졌다. ‘오빠?’ 하고 부르던 그때 그 음성이 지금 제 혀에 아랫살을 샅샅이 빨리며 달큰한 교성으로 변질됐다는 게 맘속에 화한 발열감을 더했다.

불길은 금세 척추를 타고 내려가 국부에까지 전달이 되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거근이 도취감에 꿈틀거렸다.

그나마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식으로라도 고정이 되어 있던 희우의 상체가 어느 순간 푹 꺼져 완전히 바닥과 마찰했다. 엉덩이도 마찬가지로 세우고 있을 힘이 없었으나 서수혁이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받치고 있어서 어떻게든 고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발정 난 암캐처럼 엉덩이만 바짝 치든 채 사내의 얼굴에 밀부를 부벼 대는 적나라한 자세를 그려 냈다.

“응, 읏, 아으…… 흣.”

어느새 녹은 구멍은 혀로 뭉개는 대로 질퍽한 물기를 튀겨 댔다. 서수혁은 딱 좋은 세기로 풀어져 혀를 조이는 보짓살을 칭찬하듯이 찌걱찌걱 짓쑤셔 주며 용두질의 박자를 올렸다.

연한 벚꽃색인 좆머리가 한층 더 팽팽해지며 휘는 곳 하나 없이 굵다랗게 이어지는 기둥의 핏대가 선명해졌다. 그는 게걸스러운 커닐링구스를 자행하며 예정에도 없는 딸딸이를 치다가 귀두 꼭지가 후끈하게 달아올랐을 즈음 상체를 바로 세웠다.

혀가 빠져나가자마자 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요부처럼 발름이는 보지에 숨 돌릴 틈 없이 귀두를 물려 주자 꿀렁이던 살점이 그것을 전심으로 감아 깨물어 왔다.

서수혁은 바로 허리를 쳐올려 성기를 깊숙이 삽입했다. 아까 전 아프게 옥죄기만 하던 점막이 물렁하게 녹아 페니스를 아늑하게 휘감아 든다. 맥을 탁 풀리게 하는 사정감이 곧 죽어도 터져야 할 것처럼 강렬하게 몰아쳤다.

그는 둥그런 고환을 손으로 문질거리며 희우의 질 안에 뿌연 정액을 잘잘 흘려보냈다.

탁액을 지리는 상황에서 허리를 뭉근히 돌리자 안쪽에 파묻힌 귀두가 회전하며 철벅거리는, 물웅덩이를 헤집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불알에 고인 거 하나 없게끔 토정액을 차고 넘치게 지려 준 그가 희우의 골반을 쥐고서 그대로 몸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자마자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은 머릿속을 이루는 신경 다발이 죄 끊어져 간당거릴 정도로 좋았으나 희우는 그런 사감 하나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얼굴 좀 보며 좆질을 하려다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너 죽었니?”

“…….”

“뒤진 건 정희본인데 왜 네가 그런 것처럼 굴어.”

못마땅하게 혀를 찬 서수혁이 희우의 다리를 붙잡고서 제 허리춤에 교차하듯 엇걸었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시커먼 옷자락이 흘러내려 가며 드러나는 쌀죽 같은 흰 다리. 마치 생과 사의 경계처럼 선명한 대비감을 이루는 색조가 시야를 어찔하게 뒤흔든다.

장례식장에서 빠구리를 뜨는 경험은 또 처음임을 인지하며 서수혁은 안이 가득 눌리게끔 틀어막아 둔 자지를 꺼냈다.

귀두만 아슬하게 걸쳐질 만큼 빼냈다가 불시에 구불구불한 길목을 점거하며 짓쳐들어가 아기집 부근을 쾅 때려 박았다.

“흐……!”

희우에게서 그럴듯한 반응이 나온 것도 동시였다.

아래, 거근을 감싼 채로 보이는 질 내부의 반응은 곧 그녀의 반응과 일맥상통했다. 어느 정도 풀어진 질길의 변화는 그녀의 몸 역시 첩첩이 고이는 쾌락을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야 좀 살아 있는 인간처럼 구는 희우를 잡고서 서수혁은 미끈미끈해진 구멍을 격정적으로 박음질했다.

“아, 아……! 으……! 흐.”

타고 남은 재처럼 혼탁해진 희우의 눈동자가 빠르게 감겼다가 뜨이길 반복했다. 그 사이로 생리적인 현상으로부터 불거지는 물기가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서수혁은 희우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꼴 보기가 싫은 것처럼 혀로 빠르게 훔쳐 냈다. 이제는 이 같잖은 눈물에서도 단맛이 나는 건지 뭔지 미뢰에 감기는 맛조차 음침한 자극을 부추겼다.

할 수 있으면 이 작고 가냘픈 온몸에 좆을 문질러 대고 싶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이게도 쭐깃쭐깃하게 감겨 오는 이 안에서 성기를 빼고 싶지 않은 기분도 들어서 서수혁은 끝내 고개만 움직였다.

혓바닥으로 턱을 핥아 올리고 목덜미로 내려가 이를 박았다. 희우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버둥거리는 몸체를 껴안듯 붙잡고 내리누르며 성기를 치덕치덕 깊게도 박아 주었다.

하얀 목덜미에 붉은 욕정의 자국이 생긴 걸로는 성에 차지가 않아서 그는 단정히 갈무리되어 있던 상복 앞섶을 헤집어뜨렸다.

얌전하게 젖가슴을 감싸는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고서 젖꼭지를 한입에 삼켰다. 뻑, 소리가 날 만치 강하게 빨아올릴 때마다 유두 심지가 발기하듯 부풀어 오르며 허공을 향해 제 한 몸을 뾰조록 곤두세웠다.

서수혁은 양쪽 돌아가며 희우의 젖꼭지를 발간 울혈이 생길 지경까지 씹고 빨고 휘돌려 핥아 댔다. 그러며 여전히 우람한 살기둥으로 엉덩이 사이의 비좁은 길목을 퍽퍽 뚫어 댔다.

위아래로 달뜬 자극이 넘쳐흐르자 희우도 마냥 죽은 사람처럼 열의 없이 굴 수가 없었다.

“아, 아! 으, 흣…… 응…… 아아…….”

그가 페니스를 저 깊다란 굴 안쪽까지 깃발 꽂듯 밀어 넣으며 동시에 젖부리를 질근질근 깨물 때마다 뇌 안쪽에서 산란한 빛이 터졌다.

모든 감각이 다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며 동시에 그게 너무 자극적이라서 절로 입이 헤벌어졌다.

콱콱 찔러 박혀 오는 살덩이가 자궁 점막을 고루고루 눌러 줄 때마다 배꼽 아래 부근이 비비 꼬이며 불두덩 아래가 둔탁하게 요동쳤다.

기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희우에게 그 자극은 아주 괜찮은 도피로가 되어 주었다.

적어도 분사하듯이 확 퍼지며 정신줄을 죄다 끊어 넣고 신경을 잡아먹는 쾌락의 발현이 희우의 머릿속을 진정 텅 비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상념을 덜어 내는 데에 있어서는 가장 흡족스러운 행위였다.

“…….”

서수혁이 멈칫했다.

희우가 기력 없이 내려뜨린 채 바닥만 긁던 두 손을 들어 제 목을 감싸 안은 시점이었다.

그는 오묘한 표정으로 희우를 내려다보았다. 희우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얼핏 넋이 나간 듯하지만 살짝 홍조가 오른 안색은 명백히 이 섹스를 인식하고 있었다.

때로 눈치가 귀신 뺨치는 서수혁은 희우가 지금 무슨 의미로 자신을 잡은 건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영 씹스러워서 쳐 내고 싶었으나 목에 감긴 손길이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유혹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고를 틀어막았다. 씨발, 거친 욕설을 내뱉은 그가 희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세게 부딪쳤다.

타액을 끈질끈질 두른 혀를 세게 빨아 젖히며 그녀의 엉덩이를 터뜨릴 것처럼 쥐어 올렸다. 추삽질 한 번에 움푹움푹 팰 보조개의 위치를 손가락 끝으로 문대며 푹, 푸욱 아래 방향으로 여성기를 내쳐 박았다.

“읏, 음, 으, 흐! 으, 읏!”

그에게 설소대가 아릿해질 정도로 혀를 희롱당하며 희우는 가랑이를 더 넓게 벌려 보았다. 서수혁이 상하로 내리찍는 색정적인 허리 놀림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녀가 체념처럼 긴장을 풀며 이 섹스를 받아들이자 질 내벽이 한층 더 가파르게 개방되며, 생수통같이 우람한 자지 끄트머리가 닿으면 안 되는 구간까지 흠씬 처박혀 왔다.

퍽, 퍽, 퍽 처박는 속도와 힘이 완전히 달라졌다. 뿌리 끝까지 쑤셔박혀 내부 살점이 뒤집어질 기세로 들락날락거리는 성기의 발광에 내장이 다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러기를 바랐다. 정말 자신을 죄다 헤집어 망가뜨려 줬으면 했다.

그럼 지금보다 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이 헤아릴 수 없는 심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넓게 벌어진 사타구니 사이가 굵직한 거근에 쉼 없이 꿰뚫렸다. 서수혁은 어느새 두 번째 사정을 시작했으나 신경 쓰지 않고 허리 짓을 이어 나갔다.

한 번의 피스톤질에도 대충 하는 법 없이 귀두관까지 빼냈다가 융기한 질벽살 저 끝까지 치닫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발사되고 있는 정액이 그대로 틈을 타고 후드득 터져 나왔다.

이미 안에서 고이기 시작한 희우의 액과 버무리가 된 체액은 불투명하고 점성 높은 형태로 변질되어 걸쭉한 물거품이 되었다.

희고 찐득한 포말이 희우의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 장판 아래로 물구덩이처럼 둥글게 고였다. 이미 쉼 없이 마찰하고 있는 두 생식기 사이는 거미줄처럼 쫙쫙 진을 친 게저분한 형용이었다.

“읏, 앙…… 하아……!”

아찔한 쾌락점만을 쑥쑥 처박아 올리며 씹방아에 임하니 희우도 더는 참지 못하고 턱을 뒤로 젖히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서수혁이 침 묻힌 손가락으로 도톰하게 발기한 클리토리스를 빠르게 비벼 주자 희우가 헐떡이며 고개를 저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을 표하면서도 서수혁의 목을 끌어안은 팔에서 힘을 빼지는 않는다. 그걸 보고 서수혁은 지금 이게 그녀에게 있어서 도피성 섹스라는 걸 확신했다.

실로 좆같은데 떨쳐 낼 수가 없다. 이걸 뿌리치면 저를 이용하는 건방진 꼬락서니는 막을 수 있더라도 희우는 또다시 영혼 너갱이가 빠진 인형 상태로 돌아올 거다.

적어도 섹스에 있어서만큼은 솔직하게 구는 반응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용을 당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없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놀아나는 기분은 수렁에 빠지는 것처럼 껄끄럽고 뒷맛 더러운 여운을 선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 집중할 여건도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중독되기 시작한 이 안이, 희우의 속살점이, 정액을 넘치도록 채우는 데에 재미가 들린 이 음벽이 주는 황홀경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서수혁은 끝내 이용당해 주기로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신에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화풀이를 하듯이 더욱 가혹하게, 열정인지 분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좆질로 내부를 후끈하게 마찰질 해 댔다.

이미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은 다 흐트러지거나 구겨져 엉망의 상태가 되었다. 외적의 매무새만큼이나 내적 상태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 속에서만큼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걸 실감한 거다.

“아, 아……! 응, 읏, 아, 하아, 앙…… 앙!”

희우는 저를 향해 상체를 숙여 준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저도 모르게 살짝살짝 허리를 흔들었다.

더, 더…….

이보다 더 엉망으로 자신을 짓찧어 줬으면 좋겠다는 자기 파괴적인 욕구가 구름처럼 증식했다.

배 안쪽에서부터 번져 혈관과 신경을 타고 흘러가 끝내 전신을 난도질하는 쾌락이 번번이 머릿속을 허옇게 표백시켰다. 상념을 끊어 내기에 딱 좋은 섬광이 쉼 없이 튀어 올랐다.

철퍽, 철퍽, 철퍽!

사타구니가 맞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울려 그나마 멀쩡한 쪽의 귀에까지 굴러 들려왔다. 마찰음은 꼭 싸대기를 때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푸른 파도가 저 멀리서부터 몰아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확 조여들었다가 풀리는 말초 신경을 타고 번지는 아득한 나른함이 정말로 물속에 잠겨 들어가는 기분을 선사했다.

철퍽, 철퍽, 철퍽…….

파도가 친다.

‘엄마는 꼭 바다에 뿌려 줘, 희우야.’

‘사람은 원래 다 죽어.’

서서히 눈이 감겼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몸에 이성이 뭉개지고 의식이 파편째로 갈라진다.

그런데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이게 죽어 가는 기분과 유사해서일지…….

* * *

탁.

차 문이 닫혔다.

뒷좌석에 올라탄 희우는 망령의 숨결만이 남은 듯 써늘한 공기가 떠다니는 장례식장 주차장을 돌아보았다.

결국 찾아오는 이 없던 쓸쓸한 빈소를 정리하고 이만 화장을 위해 화장장으로 떠나려는 차였다.

희우는 갈라진 상복 치마를 정리하려다가 관두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무심히 돌아본 창문에 흰 뭔가가 반짝였다. 리본 모양의 하얀 머리핀이었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반대쪽 문이 열렸다.

자신이 탔음에도 아직까지 출발하지 않은 건 이 남자가 오지 않아서였다.

마련된 쪽방에서 섹스를 한 그날, 희우는 진종일 그곳에 처박혀서 서수혁과 몸을 섞었다. 거부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거부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가 뜨니 하루가 지나고 오빠의 시체를 곱게 갈아 뿌려 줄 날이 왔다.

서수혁은 희우를 가만 바라보았다. 때로 섬뜩하게 다가오는 남자의 눈에는 선명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이번 역시도 영락없이 뻗쳐 오는 그 힘에 희우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꼭 제게서 뭔가를 찾아내고 싶은 것처럼 눈을 떼지 않았다.

앞쪽에 앉은 김상필이 룸미러를 힐끗거렸다. 이만 출발해도 되는지 눈치를 살피기 위함 같았다.

그걸 보자마자 서수혁이 화장장까지, 또 어쩌면 그 이후까지 동행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어디까지 따라올 셈이지?

불현듯 속이 답답해졌다.

희우는 머리카락 사이에 걸린 하얀 핀을 잡아 내리며 물었다.

“끝나면, 가도 되나요?”

고된 섹스의 여파로 희우의 목소리는 성대가 똑 부러진 것처럼 쉬어 있었다. 꺼끌한 흔적이 고요한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어디를.”

“집에…….”

“집?”

서수혁이 차게 웃었다.

“네가 집이 있긴 하니?”

조소처럼 들리는 음성이 일종의 가시가 되어 가슴을 할퀸다. 쥐어짜는 것도 같았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데 아직도 손상을 입을 부분이 남았는지 새삼스럽게 지끈거린다. 화끈거리기도 했다. 뭔가가 복받치듯이 저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왜요?”

“…….”

“왜 못 가게 해요……?”

장부를 잠시 떠올리기는 했지만 이제는 정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오빠 죽었어요. 희본 오빠, 죽었다고요.”

“…….”

“그런데 저를 붙잡고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오빠가 어디서 뭘 한 건지도, 그 장부라는 것도 저는 몰라요. 저는, 전, 그냥, 윽, 그냥, 흐…….”

빈소를 지키는 도중에도 한 방울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뒤늦게야 제 주장을 하며 터져 나왔다.

스스로의 입술로 피붙이의 죽음을 실토하는 순간에 다다르고서야.

확인 사살처럼 나갔다가 돌아온 육성이 귓바퀴에 철썩 달라붙었다. 겨냥하는 화살처럼 사정없이 박혀 들어와 뼛골 깊숙이 못질을 해 댄다. 쑤셔 발겨진 마음에서 시큰한 통증이 피멍처럼 번져 갔다.

믿고 싶지 않은데 믿어야만 하는 상황뿐이다.

장례식.

까만 상복과 향의 냄새.

피 냄새보다 더 끔찍했다.

그건 그야말로 공허의 향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공간에만 도래하는 흔적이었으니.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오빠가 없다는 걸 그 어떤 방식보다 처절히 깨닫게 만드는 절차였다.

뜨겁게 새어 나온 숨이 헉, 하고 삼켜진 건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돌리는 손길 때문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얼굴이 위로 들렸다. 서수혁이 짧은 사이에 물기로 범벅된 뺨을 검지로 느릿느릿 쓸었다.

“희본이 말고 누가 또 있니?”

“…….”

“너 아무도 없잖아.”

남자는 도통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희우의 속에 대못을 박았다. 여전히 잔존하는 그를 향한 두려움 때문에 차마 대항하지 못했다. 사실, 대항할 길이 없기도 했다. 저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이제 희우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근데 왜 벗어나질 못해서 안달이 났지?”

그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눈꺼풀만 가물거렸다. 서수혁이 그 처연한 작태에 지긋한 관심을 꽂았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는 숨 막히는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공기가 뾰족뾰족 날이 섰다.

그러던 중,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서수혁이었다.

그의 다부진 턱이 비스듬히 꺾였다.

“뭐야, 저건.”

차 전방을 일별한 그가 눈가를 좁히며 혼잣말했다. 그 뜬금없는 반응에 희우의 고개 역시 돌아갔다. 그리고 덩달아 의아해졌다.

그들이 탄 차 보닛 앞에 웬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까만 점퍼에 까만 바지, 까만 장갑과 까만 복면.

완전히 검정 일색으로 스스로를 가린 이가 무언가를 번쩍 치들었다.

새빨간 소화기를 발견한 희우의 눈이 커졌다. 잠시 후 치이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소화기 내용물이 입구를 타고 정신 사납게 분사되었다. 투명한 유리 밖으로 펼쳐지던 사위가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얼을 타다가 반사적으로 서수혁을 돌아보았다. 똑같이 난데없이 몰아친 일을 맞닥뜨리고 있음에도 그는 당황한 기색이 별로 없었다. 이런 일에 자주 처해 본 것처럼.

그는 시들한 눈길로 정면을 응시하다가 좌석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 안에서 폴딩 잭나이프가 나왔다.

서수혁이 차 손잡이를 잡으며 희우를 돌아보았다.

“나오지 마.”

이윽고 달칵 열리는 문틈 사이로 성대를 긁는 비명과 악다구니, 뭔가에 찔리거나 몸이 쿵 쓰러지는 둥 아수라장과 다를 바가 없는 소란이 마구잡이로 섞여 들어왔다.

두 눈이 크게 뜨이는 사이에 쾅, 하고 문이 닫혔다.

희우는 금세 그 위험천만한 세계에서 유리되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소음은 번잡한 안개 사이로 은연히 섞여 들어와 희우의 피부에 차갑게 달라붙고 있었다.

저를 둘러싼 풍경 속에서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습관적으로 두 팔이 귀를 향해 올라간다. 적응하길 원치 않는 이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은 것처럼.

그때였다.

벌컥.

희우가 앉은 쪽의 문이 열렸다.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다가온 팔이 그녀를 덥석 붙잡았다.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몸이 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우뚱 무너지는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축축이 젖은 천이 코와 입을 동시에 덮쳤다.

훅, 들이 삼키는 숨 사이로 비강이 헐 만큼 독한 향이 스며들어 왔다. 희우의 눈꺼풀이 무력에 의해 닫히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동공을 덮었다.

빛 한 점 스며들 수 없는 암흑이 찾아왔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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