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볼모의 경계 (4)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희우는 셀렉트 숍 내부 거울에 비치는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소리 없는 한숨을 삼켰다.
평상시에도 없는 입맛은 저번처럼 뜬금없는 외출을 알리는 주 실장의 말에 저 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이제 굶주림에 몸이 적응을 해 버린 모양이었다.
송 사장이 긴 유리잔에 내온 오렌지 주스로만 입을 축이는 사이에 준비는 끝났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블랙 톤의 원피스가 오늘도 희우의 몸 위를 둘렀다. 분명 서수혁이 제 취향이다 어쩐다 했었지. 아무래도 그의 입맛대로 주문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번과 같이 오금이 다 떨리게 되는 힐을 신기지는 않아 안심했다.
오늘도 갤러리에 가는 걸까. 그리고 그림을 보다가 그때처럼 어두컴컴한 지하의 클럽 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앉아 기다리기만 하던 지난날과 달리 이미 한 번 경험이 새겨진 외출의 기억이 희우의 뒷덜미를 뻣뻣히 굳혔다. 그날 일만 생각하면 뇌 한구석에 저장이 된 것처럼 최 사장이 내지르던 비명이 먹먹하게 떠올랐다.
벌써 두 번.
서수혁이 제 눈앞에서 타인을 폭력으로 굴복시킨 횟수였다.
그 횟수가 이 이상 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니 당연히 외출이 달가울 리 없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심이 그렇게 이상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런 꼴을 볼 바에야 너무 한가하고 고요해서 잠만 솔솔 오는 집에 박혀 있는 쪽을 택하는 게 나은 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바깥으로 표출될 수 없는 욕심이었다. 이 무리, 서수혁에게 잡힌 후부터 희우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인질이라는 처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날처럼 숍을 나서니 이미 차가 와 있었다. 세단의 보닛이 어느덧 어두워진 밤하늘에도 매끄러운 윤기를 선보였다. 거기에 이미 뒷좌석에 올라타서 서류를 살피는 서수혁의 모습까지.
저번과 완전히 일치하는 장면이었다.
역시 또 갤러리로 가는 건가?
의문이 쑥 고개를 들자, 불가항력으로 방 하나를 죄다 차지할 기세로 들어선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날부로 희우는 시간이 나면 그 방으로 가 몇 번이나 그림들을 살피고 둘러보았으나 역시 뾰족이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남자의 의중은 더욱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진심으로 저를 기만한 이가 또 있는 건지 알아보고 싶은 거라면 이런 분야의 전문가를 쓰면 되지, 왜 나한테?
제 사고로서는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대표님, 차가 막혀서 도착 시간이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됐어. 어차피 오늘은 우리가 준비한 물건도 없으니까.”
운전대를 잡은 김상필의 말에 서수혁은 선선히 대꾸했다.
전방을 살펴볼 겸 들린 고개는 재차 서류로 떨궈지기 직전, 이 짤막한 대화로나마 무언가를 알아내고 싶은 것처럼 눈알을 굴리는 희우에게 먼저 가 닿았다.
오늘은 보트넥 형태에 잘록한 허리 라인만 살리고 나머지는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느낌의 원피스라 그런지 저번보다 단아하고 우아한 느낌이 더 살아 있는 매무새였다. 어쭙잖게 몸 선을 강조하는 쪽보다 이게 훨씬 나았다.
특히나 보트넥 위로 아슬하게 두드러진 얇고 미려한 쇄골 선이 시선을 끄는 경향이 있었다.
만져 달라는 식으로 윤곽을 드러낸 빗장뼈를 참지 않고 쓰다듬자 희우는 또다시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목덜미부터 움츠리고 본다. 긴장으로 굳는 뺨과 오늘은 적당히 어울리는 색조로 칠해진 입술이 다음으로 시야에 들었다.
가장 마지막은 역시, 애매한 틈을 보이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침도 삼키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혀.
연약한 쇄골 위에 얹어져 있던 손가락은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의 입술에 안착해 있었다.
슬쩍 문지르자 붉은 연지가 지문 위로 짙게 묻어난다.
서수혁은 중앙에 위치해 있던 엄지를 뺨 쪽으로 쭉 밀었다. 립스틱이 붉게 번져 가는 입술이 야하게 우물거렸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것처럼 부산스레 구는 혀끝을 보니 저번에 가열하게 빨아 준 기억이 샘솟아 올랐다. 전두엽을 지글지글 끓게 만들던 단맛이 났던 것도 같다.
“아……!”
그의 팔이 적정 거리를 벌리고 앉은 희우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몸이 제대로 끌려오기 전에 제 고개가 쭉 빼어져 나가 희우의 입술을 베어 문 게 먼저였다. 오히려 당겨지던 희우의 몸이 서수혁의 기세에 밀려 도로 차 문 쪽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희우의 뒤통수가 유리창에 쿵 부딪히는 것과 두 사람의 입술이 완전히 맞물리는 건 같은 타이밍에 일어났다. 놀라 벌어진 사이로 서수혁의 혀가 미끈하게 넘어와 안을 채웠다.
차라는 불편한 장소를 고려치 않고 달려들 때부터 느낀 대책 없는 기세는 그 본인이나 그의 혓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응, 읍…….”
희우는 갑자기 짐승이 몸 위로 올라탄 것만 같은 당혹스러움과 중압감을 동시에 느꼈다.
저도 모르게 서수혁의 어깨를 거머쥐었다가 저번 섹스 때 뺨을 맞은 기억이 떠올라 화들짝 놓았다. 그러는 동시에 혀가 휘말려 쭈우웁 빨리는 바람에 약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서수혁은 그녀의 혀가 달큰한 사탕 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완전히 닳게 해 녹여 먹을 기세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댔다. 돌기가 일어난 옆면을 중점으로 핥아 올리고 전체적으로 칭칭 휘감아 애무하듯이 쓴다.
그러잖아도 체온이 높은 편인 입 안이 그보다 더 후끈한 열기로 차오르는 느낌에 희우가 밭은 숨을 내쉬던 차였다.
“……!”
운전석에 앉은 김상필과 룸미러로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아무것도 못 본 척 다시 정면을 돌아보았으나 희우는 그처럼 침착하게 굴 수 없었다. 관객을 둔 채 키스를 당하는 추태를 보이는 건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서수혁을 밀어 내기에는 또 어떤 후폭풍이 일지 몰라 모골이 송연했다.
그가 적당히 하고 떨어졌으면 이런 고민을 할 일도 없을 테지만, 가죽 시트를 짚으며 몸을 붙이는 동시에 턱을 비틀어 접문을 깊게 하는 서수혁의 태세로 보건대 키스가 금방 끝나진 않을 것 같았다.
“웃…… 흐읏.”
이런 와중에도 그의 혓바닥이 기어이 침 고인 설소대와 혀밑샘을 간지럽히듯이 문질러 대어 신음 소리가 얕게 비어져 나왔다.
그러나 입 속에 좆질을 하듯이 혀를 콱콱 쑤셔 박아 대던 그의 손이 기어이 치맛자락을 들치며 허벅지를 거머쥐어 왔을 때는 반사적으로 가슴팍에 손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확 밀치지는 않았으나 내내 손끝 하나 대지 못하다가 간신히 닿은 것만으로도 소심한 의지가 전해졌는지 서수혁이 멈칫하고는 고개를 뒤로 물렸다.
코앞에서 눈길이 뒤섞였다.
“사람이…….”
있는데…….
희우는 차마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웅얼거리며 고개를 비틀었다.
서수혁은 호흡이 달려 살짝 상기된 그녀의 옆태에 눈길을 주다가 헛웃음을 쳤다. 저 말은 또 뭐야. 사람만 없으면 입에 좆을 처박아도 상관없다는 건가. 이상한 데서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제 손으로 번지게 만든 립스틱이 거의 지워져 있었다. 입 안으로 모자라 바깥까지 게걸스레 혀를 돌려 대는 데에 넋이 나간 자신이 죄다 핥아 먹은 셈이었다
재차 달려드는 대신에 서수혁은 굽히고 있던 상체를 뒤로하며 살짝 비틀어진 넥타이를 바로 했다. 그녀의 머리 뒤로 보이는 풍경이 도착지에 가까워졌음을 알려서였다.
“오늘은 어디 가는지 아니?”
아직도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옷자락이라도 정돈하던 희우가 눈을 들었다.
갤러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묻는 걸 보면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는 뻔한 답을 재미없는 질문으로 내지 않으니까.
“아니요……?”
“경매장에 가는 거야.”
“경매요?”
“마침 잘됐네. 오늘 자리 지루해서 어떻게 버티나 했는데 네 혀나 빨고 있으면 되겠어.”
“네?”
때마침 앞 좌석의 김상필이 거의 도착했음을 알렸다. 희우가 그를 돌아봄과 동시에 서수혁이 붉은 립스틱 묻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꾸욱 눌렀다.
“오늘 마주치는 사람마다 얼굴 잘 보여 줘.”
“…….”
“그래야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를 네 오빠 귓구멍에 사랑하는 동생 소식이 한 줄이라도 들어가겠지.”
친절한 듯 사악한 말.
그걸 듣고서야 희우는 저번에 이어 이번 외출이 가진 의미를 알아차렸다. 아니, 어쩌면 이번 외출만이 아닐지도. 혹시 저번에 예고도 없이 부닥쳤던 외출의 의미 역시…….
기도가 마비된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미끼.
자신은 그야말로, 오빠라는 먹잇감을 낚기 위한 미끼에 불과한 거다.
희우가 쩍 얼어붙은 사이에 차는 어느 건물의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경매는 이미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경매장 내부는 일종의 극장을 연상시켰다. 경매 물품 위로 쨍한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 아래, 대기석은 초대된 손님들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비싼 값을 치러야만 앉을 수 있는 극장 홀의 VIP석처럼 프리이빗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 원한다면 양옆으로 둥글게 달린 벨벳 커튼을 쳐 자신의 자리를 주위로부터 가릴 수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안으로 막 들어설 때만 해도 희우는 머릿속이 무거웠다. 이제야 파악한 외출의 의미가 그녀에게 혼돈을 꽂은 까닭이었다.
그럼 여기서 자신을 목격한 누군가에 의하여 오빠에게 제 소식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일이 정말 이루어진다면…….
미처 갈무리를 짓지 못한 갈등이 또다시 몰아쳐 왔다. 구하러 와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딱 그만큼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였다. 낮과 밤의 공존처럼 자리하는 생각의 모순이었다.
그렇게 야기된 혼란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희우를 이보다 더 당황하게 만드는 그림이, 실내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 테이블 위에 놓인 연약한 조명이 내부를 밝히는 빛줄기의 전부가 되어 줄 만큼 어슴푸레한 장소는 기이한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비린 내음과 묘한 소리들이 한데 뭉쳐 소용돌이쳤다.
룸이 가득 딸린 지하로 내려갈 때처럼, 서수혁의 너른 등판만 보며 걸음을 옮기던 중 희우는 커튼이 열린 어느 구역의 자리를 보았다.
눈이 굴러떨어질 듯이 뜨인 건, 바닥에 개처럼 자리한 여자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유두 부분이 뚫린 레이스 브래지어 하나 걸친 여자는 알몸 차림새로 엎드려 뒤쪽 의자에 앉은 남자의 좆을 받고 있었다.
“아앙! 앙! 아아응!”
아까부터 귀를 스치던 그 소리는 다름이 아니라 교성이었다. 타인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두 남녀는 발정제 맞은 개들처럼 흘레붙고 있었다.
술에 취한 양 게슴츠레 풀린 눈의 남자가 여자의 통통한 엉덩이를 거침없이 내리치자 여자가 좋다고 허리를 비틀며 밑으로 오줌 같은 물줄기를 철철 지렸다.
포르노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생중계되는 상황에 희우는 솜털이 삐죽 솟아올랐다. 저도 모르게 못 본 체 고개를 돌리고 서둘러 서수혁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런 식으로 질펀한 떡판을 벌이는 남녀만 세 쌍을 더 보았다. 체위도 가지각색이었고 개중에는 심지어 무슨 밧줄 같은 걸로 사지가 묶인 여자도 있었다.
경매장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여긴 누가 누가 이상한 페티시를 가지고 있나 대결하는 집단 난교 현장 같았다.
자신이 알던 경매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희우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 그녀와 달리 서수혁은 이런 조악하고 색광 넘치는 환경에 익숙한지 마련된 의자에 태연하게 걸터앉았다.
대기석 자리가 채워지기 무섭게 그림자처럼 어둠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던 서버가 다가와 여분용 의자를 하나 더 준비해 드릴지에 대해 물었다.
희우가 얼을 타는 사이에 서수혁은 됐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희우를 끌어당겨 제 다리 위에 앉혔다.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이미, 익숙해지기에는 두려움을 먼저 꽃피우는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살짝 걸터앉은 수준으로 있던 자세는 희우의 엉덩이를 확 잡아당긴 서수혁의 손아귀로 인해 완전히 맞물렸다.
지금 지나가는 누군가가 본다면, 이 대기석 바깥에서 라이브 섹스쇼를 벌이는 이들처럼 금방이라도 요란하고 음란한 몸의 율동을 그려 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자세가 밀접했다.
설마설마하던 희우는 서수혁의 손이 자연스럽게 치맛자락을 들추며 파고드는 바람에 흠칫 떨었다.
입장한 그의 고갯짓 한 번에 벨벳 커튼이 사위를 적당히 가려 와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인 무대만 보이게 했다. 차분한 경매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피부에 달라붙을 것처럼 울리고 있었기에 소름을 돋게 하는 거부감이 더 컸다.
“저, 저……. 읏.”
긴 치마라서 그런지 속바지도 제대로 입히지 않아 서수혁의 손가락은 금세 팬티 라인에 닿았다. 좌우로 벌려진 탐스러운 엉덩이를 따라 늘어난 라인 줄을 더듬다가 가볍게 들추며 안으로 파고든다.
마찬가지로 벌어진 구멍 입구에 금세 닿는 손가락은 온기보다는 냉기에 가깝다 평해야 할 정도로 서늘했다. 은밀한 부위에 닿는 사늘한 촉감에 어깨가 절로 말렸다.
서수혁은 희우가 바르작거리거나 말거나, 또 경매가 한창이거나 말거나 코앞에 놓인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게 베개라도 된다고 믿는 것처럼 여유로이 낯짝을 문질러 댔다.
첫 섹스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유방에 상판을 뭉개는 걸 참으로 좋아했다. 그러며 입을 벌려 젖꼭지가 있는 중점 부근을 이로 까득 깨문다. 그 부분의 원단이 그의 타액에 먹혀 축축해졌다.
“으…… 아! 핫……!”
위에서 정신없게끔 굴어 혼을 쏙 빼놓은 사이 질구를 더듬던 손가락이 안으로 쭉 진입했다.
그의 손가락 중에 제일 긴 중지가 금세 내벽 살을 미끈히 파헤치며 지문을 남길 것처럼 콱 짓쳐들어왔다. 바로 이 주위에 인파가 즐비한데 아래에 누군가의 손가락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희우를 당혹게 만들었다.
이 자리로 오는 동안 음부살을 자지러지게 뚫리며 소변처럼 눅눅한 액체를 지리던 여자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자신의 모습이 그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초조와 거부감이 앞다투어 치밀어 올라 정수리를 뒤틀었다.
그렇다고 하여 서수혁을 밀어 낼 용기 같은 건 머금을 수도 없었다.
“하읏, 아, 아…….”
“뜨끈뜨끈해라.”
서수혁이 협소한 질길을 느긋하게 휘적거리며 속삭였다. 곧 그는 처음부터 눈여겨봐 둔 것처럼 배꼽이 있는 위쪽으로 손가락을 굽혀 살살 갉작거렸다.
저로서는 간의 기별도 안 갈 움직임이었으나 역시 희우에게는 딱 적당한 감도를 부추기는 식으로 작용했는지, 내부 벽이 꿀렁이며 한층 더 감질나게 침입자를 조여 왔다.
당연히 습하게 맺혀 손가락을 아교풀처럼 휘감는 애액의 양도 불어났다. 찌걱찌걱. 가려진 치마 아래에서 물소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읏, 응. 하, 거기 그, 응…… 아……!”
“왜 말을 똑바로 못 하니. 그, 뭐. 그만?”
“하, 아아. 아, 잠. 아! ……흡.”
“이렇게 잘 빨아 먹으면서 그만?”
얄궂은 웃음기 서린 얼굴로 고개를 든 그는 바라는 대로 따라 주기는커녕 기다란 검지를 하나 더 삽입했다. 오므라든 질구가 가로 모양으로 쭉 벌어지며 안쪽으로 설핏 보이는 연분홍빛 점막이 두 손가락에 압착판처럼 들러붙어 왔다.
가뭄 인 땅처럼 메말라서, 미끈둥한 요철의 페니스에 벅벅 긁힐 때마다 맥을 못 추기 바쁘던 전과 다르게 오늘은 어서 들어오라 채근하듯 보짓물을 촉촉하게도 뿜어내어 준다.
서수혁은 호텔에서 원 없이 빠구리를 쳤던 그날처럼 기분 좋게 아가리를 벌려 물어 오는 질막의 기꺼운 반응에 짧게 웃었다.
“응, 아, 아…….”
계속 같은 포인트만 찌르고 긁어 대는 손끝의 문란한 마찰질에 희우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서수혁은 제 어깨에 기댈 듯 말 듯 떨어진 얼굴 측면에 눈길을 두다가 홍조가 얕게 올라온 뺨 위로 혀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축축하고 직접적인 마찰에 놀랐는지 희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며 돌아온, 난처해하면서도 힘이 풀린 눈빛에 여지없이 국부로 피가 몰렸다.
저 눈동자를 쏙 빼내어 입에 넣고 침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굴려 보고 싶다는 추악하고 원초적인 충동이 든 순간에는, 이미 허벅지 윗면이 크게 솟아오를 정도로 작정하고 텐트를 쳤다.
그 발정 난 태세는 하복부가 딱 맞물린 희우가 누구보다 먼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색 연한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법도 했다. 오기 전 목격하게 된, 지들 씹방아질하는 걸 노출하지 못해 안달을 내던 다른 고객들의 외설적인 행위를 의식한 거겠지.
“키스해 봐.”
“네……? 아!”
“키스하면 손가락 빼 줄게.”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는데도 그는 혹 희우가 알아듣지 못할 거라 여기기라도 한 것처럼 마디 끝까지 밀어 넣은 단단한 손가락 두 개를 가위질하듯이 쭈욱 벌렸다.
안에 고인 번들번들한 체액이 상형문자가 새겨진 손가락 위로 칠갑될 것처럼 흐르며 찌걱이는 소리가 고막을 이따금 간지럽혔다.
희우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박치기하는 수준으로 서수혁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부딪쳤다.
물론 기세만 그러했을 뿐, 실제로는 닿기 직전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 방법은 조금도 모르는 것처럼 살짝 포개는 식으로 갈음했다.
서수혁은 어린애 뽀뽀보다 더 유치할 접촉에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뭐 휘말린 입술에 꾹 꾹, 고양이 발바닥처럼 문대져 오는 젤리 같은 촉감이 나쁘지 않아서 잠자코 보지만 나른히 헤집어 주었다.
“흐읏, 응…… 읍.”
희우의 키스는 엉망이었다.
일단 입을 맞추기는 했는데 이 뒤부터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아예 감을 못 잡는 것처럼 재미없게 비비기만 했다.
지금껏 늘 서수혁이 먼저 혀를 뽑아낼 기세로 빨아 주고 목구멍을 고루고루 침칠해 주며 연약한 볼살을 희롱해 주니 색정적인 환희에 벌벌 떨며 딥키스를 받기만 했을 뿐, 주체가 되니 영락없이 얼라행이었다.
아니 진짜로,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이것보다 키스를 잘할 것 같았다. 입술을 어떻게 움직이고 혀를 어떻게 쓸지 쥐톨만큼도 감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철옹성처럼 막힌 막을 벌리기 위해 혀로 스륵 문지르거나 입술이라도 빨아야지, 뭔 어쭙잖은 애원이라도 하는 양 살살 비빚대기 바빴다.
말랑하고 온기 있는 감촉이 나쁘지 않아 봐주고 있었지만 조금 지나니 금세 식상해졌다. 오히려 저를 약 올리나 싶은 불쾌한 생각이 슬금 고개를 들기도 했다. 저 안에 숨어 있는 혓바닥에서 나는, 뇌 속을 짜릿하게 뒤흔드는 단맛을 알고 있는 서수혁에게는 그리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서수혁은 친절히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입을 벌려 주었다. 뾰족하게 세운 혓바닥 돌기로 뜨끈한 구강을 맘껏 추삽질해서 나를 불알이 다 저려 올 정도의 황홀경으로 이끌어 달라는 느낌으로.
갑자기 허락된 문처럼 열리는 남자의 입에 희우는 흠칫 눈꺼풀을 떨었다. 곧 그것이 제대로 하라는 무언의 으름장처럼 다가와서 얼른 벌어지는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서수혁이 늘 입을 맞추면 혀부터 갈급히 쑤셔 박았던 게 떠올라서였다.
“음, 읍. 흐응…….”
언제나 구석에 감겨 말린 채 숨기 바쁜 희우의 혀와 달리, 서수혁의 것은 맘대로 잡아 잡수라는 것처럼 뻔뻔히 중앙에 놓여져 있었다. 오히려 새로운 굴을 발견한 구렁이처럼 진입한 희우의 혀가 제동이 걸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망설임이 길어지자 서수혁은 아래에 처박아 두고 잠깐 움직이지 않았던 핑거링질을 재개했다.
딱 이어 붙인 두 손 끝으로 핀 포인트를 도톰히 헐게 만들 만큼 짓뭉개자 희우의 눈가에 힘이 움씬 들어오며 혀가 발작하듯이 움직였다.
그 떠는 몸짓에 두 사람의 살덩이가 맞물렸다. 처음 닿았을 때는 전기라도 흐른 것처럼 주춤댄 희우의 혀는 이내 용기를 머금은 것처럼 서수혁의 혀 끝단을 머금고 옆으로 미끄러져 우둘투둘 작게 융기한 돌기를 쓱 핥았다.
음, 재미는 없지만 썩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라 서수혁은 구멍을 찌걱찌걱 쑤셔 주며 몸에 힘을 풀었다.
“하아, 하…… 우응…….”
차끈한 인상과 다르게 남자의 입 안은 정상적인 사람의 것처럼 뜨거웠다. 간혹 그가 희우의 어색한 혓바닥 애무질에 고인 침을 꿀꺽 목 뒤로 삼킬 때면 입 안 전체가 꽉 조여들며 덩달아 희우도 자극을 받았다.
그 이상야릇한 느낌에 손과 발끝이 찌릿찌릿했다. 그의 손가락을 포근하게도 감쳐문 아랫입이 둥둥 맥박 치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허공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으나 키스가 시작된 이래 희우의 두 팔은 안정적으로 서수혁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기실 난생처음 해 보는, 그러니까 자신이 처음 주도해 보는 키스에 진땀을 빼느라 스스로조차 인식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볼 안쪽의 야들야들한 부분을 훑은 뒤 뭉친 타액을 목구멍 쪽으로 흘려보낸 희우가 살그머니 고개를 뒤로 뺐다.
이제 됐느냐는 뜻이 여실한 표정에 서수혁이 기가 찬 눈빛을 던졌다. 그런 뒤 삽입하지 않은 나머지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는 약속과 달리 빠르게 안을 짓쑤셨다.
“아, 아, 아……! 읏, 응, 아앙……!”
지금껏 손장난 치듯이 누르고 비비대던 돌출부가 아니라 더 안쪽으로 미끄러뜨려서는 속살을 뒤집어 깔 심산처럼 팍팍 쳐올리자 치마 안쪽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헤쳐 벌어진 질구가 비말을 찍찍 싸 대어 옷자락 안쪽을 흥건히 적셔 대었다. 차마 튀어 오르지 못한 채 엉덩이 골을 타고 끈적히 흐르는 애액수는 거의 허공에 뜬 희우의 발치로 끼얹어졌다.
“앙, 아, 읏! 으, 하으……!”
희우가 휘청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을 때 서수혁은 손장난을 멈췄다.
연방 숨을 터뜨리는 얼굴이 딸기처럼 새빨갰다. 그는 제게서 틀어진 희우의 얼굴 방향을 쫓아 떨어진 입술을 다시 포개었다.
각기 다른 두 개의 개체로 존재하지만 언제든 맞물려 있어야 하는 샴쌍둥이처럼 살짝 성마른 감이 있는 입맞춤이었다.
“으, 빼, 빼 주신다고…….”
완전히 먹히기 직전, 희우는 물기가 선연히 묻어나는 음성으로 항변했다.
“응…….”
서수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원 없이 빨지 못해 아쉬움이 드는 희우의 보드라운 살덩이를 잘근잘근 물고 늘어졌다. 대충 되는대로 대답하자 희우가 조금쯤 억울하다는 듯 성긴 숨소리를 터뜨렸다.
그가 희우의 촉촉한 점막을 혀 길게 뺀 개처럼 핥아 올렸다. 아예 혼이 딸려 나올 기세로 쪼오옥 빨아들이자 예민한 입은 금세 내부를 꽉 조이며 진한 타액을 육수처럼 분출해 냈다. 서수혁은 그 체액 한 방울도 놓치기 싫은 것처럼 혀를 게걸스레 휘돌려 모조리 삼켰다.
저와는 차원이 다른 서수혁 식의 키스가 끝났을 때 희우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영 성에 차지 않는 키스에 화풀이하듯이 희우의 구멍을 애액 잘잘 터지게끔 헤집어 올렸다.
“아, 흐으윽……!”
“씹도 못해, 키스도 못해.”
“응…… 아, 그만…….”
“이렇게 꽉 죄면서 그만이라는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만 해.”
서수혁이 피어나는 수치심과 배 아래로 뭉근히 퍼지는 날연한 쾌락에 덜덜 떠는 희우의 턱을 거머쥐어 확 들어 올렸다.
맥이 살짝 풀려 길게 늘어난 눈매가 야했다.
페니스를 저 질 안쪽에 힘껏 처박아 줄 때에, 자궁에 귀두를 부딪치는 연속적인 키스를 갈기다가 이내 부르르 떠는 요도구를 타고 자짓물을 걸게 쏟아 내 줄 때에 얼굴과 유사했다.
그가 희우의 하얗고 동그란 코끝을 콱 깨물고는 혀를 쭉 내밀었다.
“혀 대 줄 테니까 경매 끝날 때까지 연습 좀 해.”
“네, 네?”
“키스로 싸게 하면 봐주지.”
싼다는 것의 주체가 무엇인지 친절히 알려 주겠다는 듯이 그가 희우의 손을 잡아 뜨겁게 오른 열감을 발산하는 페니스 위에 얹어 주었다.
“아기니까 핸디캡으로 두 번 정도 쓰다듬는 건 허락해 줄게.”
“…….”
“뭐 하니? 여기서 궁둥이 깔래?”
당장이라도 의자에서 밀쳐 저를 바닥에 깐 뒤에 금수처럼 흘레붙을 조짐이 보이는 그 한마디에 희우는 얼른 허리를 바르게 세웠다. 그러고는 어떠한 미션의 클리어 조건처럼 뻔뻔히 내밀어진 혓바닥을 감아 물었다.
쯥, 소리가 나게 빨자 서수혁의 눈매가 웃음기로 휘어졌다. 희우는 최대한 열심히 혀를 굴렸다. 여기서 박히긴 싫으니까. 누군가가 보든 말든 짐승처럼 울며 방뇨를 싸지르는 여자들처럼 굴기는 싫었다. 그 일념 하나로 혀뿌리 근육이 뻐근히 조일 만큼 열심히 서수혁의 혀를 돌려 핥았다.
하지만 그는 영 시큰둥한 기색으로 간간이 박자만 맞춰 비벼 올릴 뿐 크게 감흥이 없어 보였다. 물론 좆이 섰다는 것 자체가 그가 흥분했다는 증거지만 그거야 키스 전부터 발기해 있던 게 아니던가.
키스로 싸게 하지 못하면 섹스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던 희우는 언젠가 그의 자지로 목구멍 피스톤질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펠라티오로 그는 분명히 사정에 임했다. 희우는 책임을 떠맡기듯 축 늘어진 그의 혓몸을 마치 튼실한 좆이라도 되는 것처럼 흡음하기 시작했다.
대가리를 곧게 세우게 할 기세로 목구멍 가까이 끌어당겨 머금고, 혀를 바지런히 굴려 옆면도 착실히 긁어 문질렀다. 제 입 속으로 유인해 전체적으로 빨래질을 하듯이 점막에 마찰시키며 성감을 잔뜩 돋아 주기도 했다.
그 입씨름이 구음을 적용한 것임을 금세 알아챘는지 서수혁이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라서 희우는 그의 혓바닥을 입에 머금은 채로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입 안이 타액으로 범벅이 되게끔 여기저길 건드리며 전체적으로 압박을 가하자 마침내 서수혁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희우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내려 우람히 불거진 서수혁의 성기 윤곽을 쓰다듬었다.
단지 옷 위로 주물렀을 뿐임에도 이미 팔뚝을 능가하는 크기로 자라난 그것이 어서 빨리 만져 달라 성화를 부리듯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이 샅기둥이 제 아랫입 안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절로 떠올라 등허리가 움츠러들었다.
그때였다.
착.
무언가 걷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쪽 면을 가리던 커튼이 확 젖혀졌다.
비밀스럽던 대기석 공간이 오픈되며 희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뗐다.
초반의 방임적인 태도를 버리고 혀를 살짝살짝 얽어 주던 서수혁은 떨어져 나가는 입술을 따라 무심코 고개를 디밀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어지간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미간에 깊게 새겨진 주름은 유흥을 방해받아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희우는 그런 남자의 기분을 조금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벨벳 커튼이 걷혀진 건 옆 대기석 사람의 짓이었다. 한 여자가 손자국 난 젖통을 출렁출렁 흔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넘어지며 아무거나 쥐다가 두 사람이 차지한 대기석 커튼을 잡고 늘어진 모양이었다.
아까 종종걸음으로 지나치기 바빴던 씹떡쇼가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앙! 앙! 앙! 아아아! 하앙!”
이쪽으로 얼굴을 고정한 여자는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꺼먼 눈자위가 거의 뒤로 넘어가 흰자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발씬거리는 입매를 타고 침인지 뭔지 모를 것이 흘러나오다가 그것은 끝내 부글거리는 거품처럼 변질됐다.
그렇게 만드는 게 무엇이겠나.
일자로 찢어질 것처럼 벌어진 보지 사이를 흠씬 때려 박는 시커먼 생좆이었다.
여자의 골반을 바투 쥔 남자는 색정증에 걸린 미치광이처럼 허리를 재게 털어 대기 바빴다. 거무죽죽한 고환이 차지게 흔들리며 여자의 뽀얀 엉덩이를 매닥질하듯이 후려갈기는 게 보였다. 여자가 약이라도 잘못 처먹은 것처럼 이상해지든 말든 남자는 제 그릇된 욕망을 풀어 헤치기에 바빴다.
그러던 차 눈앞으로 뭔가가 쓱 다가왔다.
“이게 어디서 한눈을 팔고 있어.”
서수혁의 손이었다.
돌아간 희우의 고개를 완전히 제 쪽으로 돌려 고정시키는 손길은 자못 거칠었다.
“아기는 저런 후진 좆 보는 거 아니야.”
그가 비어진 손으로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는 아직까지 삽입되어 있던 손가락으로 아랫입을 찔뻑찔뻑 질러 박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희우는 얼른 목에 힘을 풀고 그의 입술을 재차 물었다.
그러나 한번 날아간 집중력이 다시 모여들 리 만무했다. 커튼을 제대로 치지 않아서 사내의 거무튀튀한 페니스를 받으며 실신할 것처럼 눈을 까뒤집는 여자의 모습이 아직도 시야에 남아 있었다.
전혀 야하거나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고 싶어서 발악하는 존엄을 짓밟는 뭔가를 보는 것처럼 불쾌하고 속이 역하기만 했다.
희우는 두 눈을 꾹 감았다. 그 태도에서 서수혁은 이미 그녀의 흥이 다 식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살짝만 살펴보아도 이쪽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게 티가 났다. 서수혁은 어렵사리 제 혀를 베어 무는 희우의 미끈미끈한 소음순을 쓰다듬어 주며 흘긋 눈길을 돌렸다.
누군가 했더니 예전에 한 번 자금 거래를 한 적이 있던 모 파이낸셜 대표였다.
아랫도리를 얼마나 방탕하게 놀리며 색에 영혼을 판지는, 대충 접대 몇 번으로 판가름이 났다.
그는 열 번 권유하면 열다섯 번을 되레 요구해 올 만큼 파렴치한에 호색한이었다. 더구나 우연히 얻은 발정제로 천국을 맛본 뒤로는 늘 파트너에게 약을 먹이는 걸로 이 바닥에서 유명한 또라이였다.
서수혁이 봐도 입맛 다 떨어지게 하는 섹스였다. 눈을 회까닥 뒤집은 채 아랫배를 벌벌 떨며 아래위로 물거품 쏟아 내기 바쁜 그 모습은 확실히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건 즐긴다기보다는 당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 괴상망측한 그림을 코앞에 두었으니 당연히 희우의 기가 이렇게 다 죽을 만도 했다.
언뜻 이 자리에 꼭 희우를 데려가야 하는 거냐는 윤서원의 걱정 어린 반박이 떠올랐다. 저런 건 이곳에서는 일상인 그림이었고, 아마도 윤서원은 그 사실을 염려하여 제게 그런 반기를 든 것이리라.
이미 의지를 잃고 빙빙 헤매기나 하는 희우의 혀끝을 질근 깨문 서수혁이 입술을 떼어 냈다.
“이따위로 빨아서 싸게 할 수 있겠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희우가 무슨 변명도 못 하고 입술만 오물거렸다. 타액이 윤기처럼 묻어나 잘 익은 앵두같이 반들거리는 입술이 어떠한 시각적 자극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랫도리가 더 발끈거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리자 희우는 그게 저를 혼내는 윽박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을 피했다.
서수혁이 희우의 턱을 쥐어 저를 똑바로 마주 보게 했다.
“재미도 없는데 우리도 떡이나 한 판 칠까?”
비밀 얘기를 하듯 작게 속삭여 묻자 그러잖아도 백자 같던 얼굴이 아주 달걀귀신처럼 허예진다. 지진이 인 동공이 힐끔힐끔 곁눈질을 한다. 자기도 저런 모습이 될까 미치도록 두렵고 겁이 나는 듯이.
서수혁이 그런 그녀의 뺨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쫄기는.”
그가 지금껏 치마 속으로 밀어 넣어 희우의 가랑이 사이를 예뻐해 주던 손가락을 빼냈다. 그리고 그녀를 먼저 일으켜 세워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돈해 주었다.
구겨진 치마를 쓱 쓸어내리는 손날로 펴 주고 물결치듯이 흐트러진 보터넥을 좌우로 잡아당겨 본래의 모양새로 만져 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상황에서도 희우는 투명한 막 뒤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뒤늦게 의자에서 일어난 서수혁은 그런 희우의 팔목을 붙잡고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희우의 옷가지를 정돈해 주던 손길은 분명 여유로웠으나, 지금 출구로 향하기 위해 내디디는 걸음걸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희우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수혁의 바지춤은 제대로 걷는 게 신기할 정도로 뻣뻣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에게 잡혀 끌려가던 중 희우는 어둠 속에서 반짝, 눈을 부시게 하는 점멸을 인식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쓱 돌아간 눈길이 곧 누군가를 잡아챘다.
꼬아 앉은 다리 끝에서 까딱거리는 가죽 구두의 발치가 제일 먼저 보였다.
그다음으로 보인 건.
‘인사를…….’
하는 건가, 지금?
실루엣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거리가 있고 또 빛줄기가 연약하여 은은한 바탕 속에서 웬 남자가 제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서수혁에게 잡혀가면서도 희우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부근에 호텔 있으면 그리로 가.”
차에 오르자마자 서수혁이 뗀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아까 뒷좌석에서 벌어진 요란한 키스를 목격하던 김상필은 어느새 사라지고, 지난날처럼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윤서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윤서원은 룸미러로 희우 역시 뒷좌석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시동을 걸었다. 희우 또한 그를 확인했으나 신경을 오래 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저, 저기!”
서수혁은 윤서원이 있건 말건 희우를 제 허벅지 위로 앉히고는 치맛자락을 거침없이 뒤집어 깠다. 팬티 라인에 손가락이 걸리고 그것이 바로 다리를 타고 벗겨진 뒤 앞으로 휙 날아가 조수석에 안착했다.
희우는 금방이라도 물을 쏟아 낼 듯 울멍거리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 탓에 붉어진 눈가를 서수혁이 혀로 펴 올리듯이 문질거리며 무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앞과 뒷좌석을 분리시키는 파티션이 고요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가림막 덕분에 시야는 가려졌다지만 엄연히 앞 좌석과 한 공간이었다. 뒷좌석에서 벌어지는 일을 앞 좌석이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그게 당혹스러워 바르작대는 희우를 도망 못 가게 한쪽 팔로 감아 안은 서수혁은 나머지 손으로 제 바지춤을 풀어 헤쳤다.
까만 브리프의 밑단 쪽이 살짝 젖었다. 그새 보짓살에 흠씬 파묻히고 싶어 안달이 난 귀두관이 눈물처럼 자짓물을 좀 지린 모양이었다. 이렇게 성욕이 주체가 안 되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서수혁은 귀 따갑게 앙알대는 희우의 입에 거추장스럽게 흘러내리는 치맛자락을 물렸다.
그사이에 속옷 밖으로 나와 완전히 자유를 되찾고 발끈거리는 성기의 몸통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것을 핏대 선 머리만 꾹 눌러 희미하게 보이는 음부살에 마찰하다가 입구 주름이 딸려 들어가게끔 꾸우욱, 힘만으로 우악스레 밀어 넣었다.
“으으응…… 흐……! 응……!”
입에 옷이 물려 발음이 뭉개진 신음만 내던 희우가 턱을 위로 쳐들었다. 서수혁이 열감 오른 눈동자로 그런 희우의 이목구비를 뚫어져라 주시하며 겨우 귀두만 포근히 밀어 넣은 길을 무참히 찢어 벌렸다.
“아으흐! 으, 응……!”
무지막지한 중압감에 배 안쪽이 다 뒤틀리는 것만 같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은 미미했다. 이미 경매장 내부에서부터 신명 나게 가위질을 당하며 쑤셔지고 벌려진 내부는 뜨거운 탕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설설 끓으며 움씰움씰 떠는 모양새가 좆물을 받아 마시려 목 끝까지 애가 탄 기색이었다. 그러니만큼 두 교합 생식기는 퍼즐 조각 맞물리듯이 완전히 합일됐다.
꿀렁이는 내벽이 사탕 막대기라도 짓쳐들어온 양 자지를 깊이 물어 삼켰다. 그뿐일까, 아예 음경 포피를 헐게 만들고 싶은 것처럼 진득히도 휘감아 대며 애액을 짓궂게 처발라 댔다.
“흐응, 으으응…… 아아…….”
물이 찔찔 나오는 구멍에 좆이 마개처럼 깊숙이 꽂히자마자 희우는 내부 기관이 마비되는 양 저릿저릿한 감각에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역시나 저번과 같았다.
버겁고 힘들고 침 삼키기도 벅찰 만큼 어려운데 희한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건 서수혁이 아래에서 위로, 방갓 모양의 선단으로 물렁한 내벽 살을 짓빠댔을 때 더 확고히 절감했다.
“아으응……!”
비음 섞인 교성에 잇새가 벌어지며 그가 물려 준 치맛자락을 놓쳤다. 나풀나풀 떨어진 그것이 추접스럽게 맞물린 사타구니를 가리듯이 쓱 덮었다. 서수혁은 그것을 다시 들춰내면서까지 흠씬 달라붙어 서로를 발라먹는 성기 마찰을 넋 뺀 이처럼 관찰했다.
올록볼록한 윤곽이 진 질구가 제 구멍 지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페니스를 한 입이라도 더 머금으려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희우의 살이 원체 희었고, 서수혁의 좆도 워낙에 매끈하고 예쁜 모양새라 그것은 흡사 일체처럼 보였다. 그게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하여 가만히만 있기에는 귀두 구멍이 저리도록 간질거려서 참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이 협소한 질을 무두질하듯이 펴 올려 자궁 입을 쩍 벌리게 한 다음에 음낭에 빵빵히 고인 정액을 옴팡지게 싸지르고 싶었다.
그 욕구대로 질 안을 치덕치적 땜질하기 시작하자 희우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높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뒤에 파티션이 있기 때문에 서수혁은 굳이 그런 그녀를 잡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색하게 휘저어지는 양다리를 붙잡아 제 팔뚝에 걸고서 박자감 있는 피스톤질에 임했다.
“아흣, 윽, 응. 아, 살살…… 아……!”
“지금도 살살인데?”
“응, 그럼, 그럼 더…… 읏, 아아…….”
“칭얼댈 시간 있으면 젖이나 까지 그러니.”
그에게서 직접적인 명이 떨어지자 희우의 손은 마치 입력값이 들어간 로봇처럼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공중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손을 목 부근으로 내려 하나 있는 단추를 톡 풀었다.
그러자 상반신을 감싸 주던 보트넥이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손으로 잡아당기면 끌어 내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마침 원피스를 찢어 버릴까 고민하던 서수혁은 그걸 보고서 옷자락을 쥐어 올려 희우의 머리를 아예 통과하게 만들었다. 몇 번 군데군데에 걸려서 덜컥 제지를 당했으나 기어이 옷이 벗겨지고 희우는 희뽀얀 알몸으로 그의 위에 올라타게 되었다.
“다리 내리지 말고 들어. 아래 보면서 뚫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우물쭈물거리자 서수혁은 친절히 희우의 양 오금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그의 허벅지 위에서 다리가 엠 자 모양이 되게끔 벌렸다. 꼭 낡은 수세식 변기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새였다.
자꾸만 흘러내려 와 시야를 덮는 옷자락이 사라진 까닭에 이렇게 앉으면 정말로 제 밀부가 그의 좆을 어떻게 물고 있는지가 여실히 노출됐다.
다른 기집년이었다면 알아서 엉덩이를 돌려 가며 떡방아를 찰박찰박 찧었겠지만 희우는 아직 아기라 그런 기술 같은 걸 몰랐다.
그래서 서수혁은 제가 친히 허리를 털어 보지를 짓쑤셔 올렸다. 그의 힘에 못 이겨 자세를 취한 희우는 말 그대로 쾅 때리고 들어와 내부를 장악하는 피스톤 운동에 번번이 눈앞이 허옇게 물들었다.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힘이 단단히 들어간 허벅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바들바들 경련했다. 그럴수록 질 전체가 발씬거리며 바게트 같은 좆기둥을 더 뻐근히 감쳐물었으나 긴장해서 그것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근데요. 흑, 응, 그, 근데…….”
어쩔 줄 모르고 쪼그려 앉아 음부를 뚫어 대는 박음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희우가 소심히 입을 열었다.
평소 배어나는 냉엄한 느낌이 얼핏 흐려진 서수혁의 눈동자가 살짝 풀어진 채로 희우에게 닿았다.
“응?”
“근데, 이거, 하, 너무, 너무 깊게, 흐으, 들, 어와서…….”
희우가 훌쩍이며 신음에 토막 난 말 한 단어 한 단어를 어렵사리 이어 붙였다. 다리를 조금 더 넓게 벌리며 희우의 부푼 소음순 주변으로 애액이 물큰히 늘어져 내리는 광경을 구경하던 서수혁이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씩 웃었다.
“응, 좋아서.”
생각해 보니 지금 자지 선단으로 긁어 주고 있는 부분은 희우가 유난히 느끼던 지점이었다. 아무래도 아래에 힘이 들어가는 자세에서 자꾸 거기를 퍽퍽 때려 박아 주니 자극이 심한 모양이었다.
밑구멍에 끈덕지게 고인 보짓물처럼 눈꼬리에 애처롭게 매달린 물기를 보니 입 안으로 침이 고였다.
“좋아서 좋다고?”
서수혁이 희우의 늘씬한 허리를 붙들고서 찐득찐득 젖은 샅살을 갈라 연속적으로 쑤셔 주었다.
하윽! 목구멍 안쪽에서 우글우글 밀집된 숨을 터뜨린 희우가 자지러질 것처럼 도리질을 하며 하체를 발발 경련했다. 서수혁은 더 감칠맛 나게 죄여 무는 내벽을 미끈하게 쑤셔 발기며 그 지점만을 공략해 갔다.
어느새 뒷머리가 파티션에 부딪쳤다. 서수혁이 두들겨 대는 박자에 맞춰서 쿵쿵, 그 위를 찧던 희우는 돌연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이 바로 너머에 사람이, 그것도 다름 아닌 윤서원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순간 허옇게 질릴 만큼 긴장되어 있던 무릎에 힘이 풀리며 소변을 눌 듯한 자세로 앉아 있던 다리가 완전히 그의 위로 뭉개졌다.
결합부가 오히려 더 깊어지더니 굵은 살기둥어리가 금세 속살을 꿀럭꿀럭 가르며 단번에 포르치오 저변에 키스를 해 왔다. 자지 구멍이 벌렁거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압박하는 질 경련에 서수혁은 반항하지 않고 백탁액을 뿜어내 주었다.
거꾸로 쏘아져 오르는 정액 분수에 좁진 자궁목 주변이 흠뻑 젖어 들었다.
내부가 액으로 흥건해지는 느낌은 말로 표현 못 하게 이상야릇했다. 질 안이 무슨 갯벌처럼 질퍽질퍽 젖어 들어서 멀쩡히 눈 뜬 채로 실금을 저지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가 떡 치는 소리를 내며 한껏 두들겨 팬 게 제 몸 안인지 두개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몽롱했다.
서수혁은 언제든 섹스에 있어 휴식 텀을 두지 않았다. 희우를 붙잡고서 몸을 빙글 돌렸다. 지금까지 파티션에 쾅쾅 부딪혀 대던 뒤통수가 이번엔 가죽 시트에 닿았다. 제 위로 새까만 차의 천장을 뒷배경 삼은 서수혁이 올라탔다.
그가 느긋하게 허리를 돌리자 질 점막 내부가 가득 문질러지며 질척한 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서수혁이 불알 밑동까지 처박고 재게 흔들어 대던 자지를 귀두만 걸쳐지게끔 끄집어내자, 안에서 고인 정액이 물풀처럼 찐득한 모양새로 변하여 음경 겉면을 끈끈하게 둘러쌌다.
점성이 높은 액이라서 그런지 애액보다 마르는 게 늦어 구멍을 쑤시는 맛이 났다.
위로 들린 희우의 발목을 고삐 쥐듯이 움켜쥔 서수혁이 올찬 흉상을 조각처럼 이루는 근육을 역동적으로 쪼개며 흡사 말 타는 자세로 골반을 쳐올렸다. 꺼먼 유리창 위로 자맥질에 임하는 서수혁의 음란한 뒤태가 비쳤다.
“하으, 응…… 읏!”
몸속을 꽉 채운 성기가 열성 어린 질구를 성큼 벌리어 들며 들락날락하는 게 느껴졌다. 그새 횟수가 쌓인 피스톤질로 입구 주변까지 포말이 뿌옇게 일어서 더는 그의 좆을 받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 역치의 상승은 여전히 희우를 생경한 기분으로 몰고 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시트에만 손톱을 세우는데 문득 눈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아……! 저, 기! 으……!”
갑자기 발목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이 기어올라 왔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굴리자 서수혁이 제 얼굴 옆으로 다가온 희우의 복숭아뼈를 혀로 굴리고 있었다.
이 어두칙칙한 풍경 속에서도 존재감을 선연하게 밝히는 혓바닥은 독 발린 뱀의 것처럼 복숭아뼈를 배회했다.
단순히 복사뼈일 뿐이지만 그게 엄연히 깨끗하지는 못한 부위인 발이라는 수치심과, 핥아질 때마다 발가락이 다 말리는 근질근질한 전율에 희우는 눈을 부산스레 슴벅였다.
서수혁이 그를 발견하고 웃었다.
물론 굳이 희우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걸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껏 발기한 살덩이를 는실난실 비빗대며 즐기는 속주름이 아주 쭐깃쭐깃하게 감겨 온 탓이었다.
“여기로도 느껴?”
“하읏, 응…….”
“이상한 데가 성감대네.”
그러지 않아도 미미한 줄기처럼 피어오르던 수치감이 그 말 한마디에 나뭇가지처럼 굵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배꼽 아래가 사르르 비틀리는 것만 같은 얄궂은 희열을 무시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차 안이라는 협소한 환경 때문에 제멋대로 안을 눌러 찍고 내리박는 추삽질을 하기가 어려운 까닭인지 서수혁은 평소보다 조금 자제된 삽입 운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느린 식의 피스톤질이 희우의 감도를 착착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 모든 섹스는 서수혁의 충동에 의하여 벌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의 입맛에 떨어지는 짓거리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희우에게는 적절했으나 그는 입맛만 버리는 짓이었는지 그가 공들여 핥던 희우의 발목을 거머쥐어 제 어깨 위로 척 얹었다.
그러지 않아도 직각의 자세로 있던 몸이 완전히 접히려 들었다. 그에 부담감을 느낄 새도 없이 불시에 그가 좁아진 음부를 퍼억, 퍽! 내리 처박았다.
“응! 읍. 읏! 흐, 아, 아……!”
후려 패는 것과 유사한 힘에 대한 반동으로 희우의 엉덩이가 시트에서 통통 튀어 올랐다. 거친 왕복 운동을 반복하는 음경이 삐져나올 때마다 틈새로 음액이 울컥울컥 터져 나왔다.
척추가 끊어질 듯이 접히고 그대로 처박힐 듯 내리누르는 체중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신경은 더 팔딱팔딱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 어느 곳보다도 집중적으로 때려 박히는 여성기의 신경 다발이 미치도록 과민하게 달아올라서였다.
“읍, 응, 흣……!”
희우는 손등을 들어 입술을 틀어막았다. 몸을 따라 반응을 하기에는 이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 신경 쓰였다. 이보다 조금만 더 소리가 커진다면 윤서원에게 다 들려 버리리라.
기실 진작부터 시작된 섹스로 윤서원은 지금 뒤에서 무슨 난장이 벌어지고 있는지 뻔히 알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소리를 생중계로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 차에서 내리게 되면 그를 도대체 어떤 얼굴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란함이 전신을 쥐락펴락하는 쾌락 사이로 뭉근하게 피어올랐다.
그 때문에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씹는데, 불현듯 허리 짓이 우뚝 멈추었다.
“뭐 하니, 너.”
난데없이 지적을 받은 희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서수혁의 눈발이 희우의 손을 향해 직선으로 파고들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지?”
왜 그러나 했더니, 신음을 참겠다고 입을 틀어막은 게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희우는 눈치를 살피다가 입매를 가리던 손을 꾸물꾸물 내렸다. 서수혁은 피가 몰려 발갛게 익은 입술을 보다가 그 위를 엄지로 꾸욱 눌렀다.
“또 그러면 내가 직접 네 입 막아 줄 거야.”
온건하지만 그 안에 담긴 속뜻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경고였다. 저 막아 준다는 게 단순히 손으로 막아 버리겠다는 건지 혹은 저번처럼 싸대기를 때려서 억지로 다물게 한다는 건지 구분이 불분명해서 더욱 그랬다.
이제 다 가신 뺨의 통증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 같아서 희우는 잠시간 숨도 내쉬지 못했다.
잠시 후에야 그가 여전히 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 “네, 네.” 하며 서둘러 대꾸했다.
서수혁은 물기 젖은 입술을 빨려다가 중간에 끼인 그녀의 다리가 걸리적거리자 머뭇거리지 않고 좌우로 벌려 제 허리춤에 엇갈리게 했다. 그러고는 원하는 대로 몸을 숙여 희우의 아랫입술을 길게 감쳐물고, 아예 색소를 죄다 앗아 갈 요량처럼 격렬하게 빨아 댔다.
그가 혀를 굴리느라 살짝 어눌해진 발음으로 제 목을 안으라고 속삭였다. 희우는 이 이상 그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가는 뺨을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얼른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저 좋을 대로 입술을 들이빨던 서수혁은 고개를 물리는 대신에 희우의 가녀린 턱선을 혀로 쓸어 올리며 멈추어 둔 말뚝질을 재개했다. 반까지만 밀어 넣어 둔 걸 있는 힘껏 짓쳐 박자 내부의 통로는 이제 거리낌 없이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리며 살기둥을 맛깔스럽게도 흡착했다.
“이제 진짜, 하, 잘 받아 무네…….”
“으, 흐응…….”
“좆 받는 길이 난 모양인데.”
머리를 아득히 점멸시키는 쾌락이 강했다. 다름 아닌 제 좆으로 뚫어 낸 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서수혁은 희우의 허벅지 안쪽을 시트로 내리누르며 재차 격동 어린 몸놀림으로 처박아 대기 시작했다.
안을 쑤걱쑤걱 펌프질하니 샘 안쪽에서부터 질액이 홍수처럼 괴어져 나왔다. 이제 굳이 두 사람의 신음이나 적나라한 말이 아니더라도 그 질척한 소리만으로 떡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 드러낼 수 있었다.
“응, 아, 아읏……! 흐, 아아!”
핏줄 선 거근이 안을 빻아 댈 기세로 후려칠 때마다 내장이 들썩이는 것만 같았다. 그 주요 장기들이 제자리를 잃고 뭉그러지는 느낌들 사이로 미치도록 아뜩한 신열이 일었다.
머리꼭지가 뒤틀리고 눈앞에서 산란한 빛이 터졌다. 이 어두운 환경 가운데 적응이 되지 않는 총천연색 불빛.
특히나 시냇물처럼 잔잔히 밀려오던 그 요란하고 달큰한 감각은 반복되는 음부 못질하에 서서히 급물살로, 파도로, 이내 쓰나미의 수준으로 변질되어 희우를 완전히 무방비하게 잠식하려 들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감각의 아찔한 교란에 희우는 어떻게 버티지 못하고 그만 끌어안은 채 끝이 구부러지는 교성을 흘렸다.
파티션에 희우의 구둣발이 탁탁 부딪치며 흰 발목에 스트랩으로 묶인 까만 리본이 공중에서 낭창낭창 흔들렸다. 음란하고 선정적인 그림을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아, 아, 아…… 읏, 아, 앙…… 아!”
당연히 그럴수록 페니스에 달라붙어 채신머리없이 빨아 재끼는 보짓살의 압착력도 진하게 펌핑됐다. 서수혁은 서서히 핀치를 올려 희우의 음부를 아예 쪼갤 기세로 부딪쳐 왔다. 샅끼리 맞물릴수록 웅덩이를 헤집는 것만 같은 접촉음 소리가 커졌다.
“하악, 앙! 아, 읏, 흐…… 하으으응!”
조금씩 조금씩, 손과 발끝을 먹어 치우고 몸통과 이어지는 부위들, 아랫배, 척추뼈, 이내 좁아진 목구멍을 이루는 모든 신경 다발이 자르르하게 맥동하며 감각의 고조로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르렀을 때 희우는 생전 처음 오르가슴에 다다랐다.
서수혁은 보지 전체가 둔중하게 맥박치는 걸 느끼자마자 성기 밑뿌리를 쥐어 몸체를 훅 끄집어냈다.
그 순간 페니스로 막혀져 있던 구멍이 벌어지며 애액수가 포물선의 모양으로 주룩, 주르륵 터져 나왔다. 온몸을 무자비하게 주무르는 방탕한 감각에 입 안에 고인 침도 못 삼킨 채 여운을 헤매던 희우는 곧 소음순 사이에 돋아난 돌기를 긁는 감촉에 움찔했다.
“이제 물 지릴 줄도 알고.”
일순 대견하다는 것처럼 들리는 어투였다. 평상시보다 더 짓궂은 느낌이 은은하게 섞여 있어서 그랬다.
서수혁은 손장난을 치듯이 음핵을 빙글 돌리고 그 위로 옅게 난 숱 적은 음모를 비비 꼬아 장난을 치다가 오르가슴의 여파로 벌름이는 구멍 속에 손가락을 넣어 느긋이 후벼 주었다.
아직 과열된 성감이 가시지 않은 삽입구는 그럴수록 좋다며 찝찔한 물을 흘려보냈다. 제가 이미 싸질러 놓은 정액과 섞여 희끄무레해진 체액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걸 구경하던 중 차가 멈춰 섰다. 호텔에 도착한 것이었다.
뒤늦게 편안한 장소를 놔두고 이 비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번거롭게 떡을 쳤다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거방진 육체를 한껏 구겨 대고 뒤트느라고 사지 곳곳이 뻐근했다.
“이래서 카섹스는 취향 아니라니까.”
푸념처럼 읊조린 서수혁은 아래로 떨어진 원피스를 주워 희우의 머리로 밀어 넣었다. 거의 흘러내리기 직전의 모습으로 원피스를 갖춰 입은 희우는 그에게 붙잡혀 차에서 끌어 내려졌다.
* * *
벌컥벌컥.
손에 쥔 물병 속의 액체는 빠른 속도로 비워지다가 이내 텅 빈 밑바닥을 보였다. 단 한 입으로 생수통 한 병을 깔끔히 비운 서수혁은 갈증을 축인 입술을 손등으로 쓱 닦아 냈다.
“후.”
단전에 묵직이 고인 숨을 털어 냄과 동시에 망막이 아릿해졌다. 블라인드가 미처 가리지 못한 햇살이 눈가를 바늘처럼 찌르며 파고든 까닭이었다.
남들 다 잘 시간에 오기처럼 뜨여 있던 눈이 뒤늦은 피로를 호소했다. 뻐근한 눈자위를 매만지던 서수혁은 시야의 폭을 가로지르는 얇은 발목을 보고 멈칫했다.
엉망으로 말린 이불 아래에 가지런히 포개어진 두 발이 보인다. 어젯밤 스트랩으로 이루어진 구두를 신고 있던 자그마한 발이 밤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완벽한 탈피를 마친 것처럼 미끈한 맨발이 되어 있었다.
그 위로 도도록이 돋아난 복사뼈 주위가 멍이라도 든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차에서 우연히 희우가 저 부위에 유독 연약하게 반응한다는 걸 깨닫고서 이 스위트룸에 들어와서는 아주 살갗이 부르틀 기세로 틈만 나면 빨아 댄 결과였다.
그것 좀 깨물고 씹었다고 저렇게 엉망이 되다니.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몸이었다.
두 발만 삐죽 내민 몸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희우는 보송보송한 이불 안에 완전히 파묻혀서 잠이 들어 있었다. 어찌나 깊은 잠에 빠졌는지 새근대는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서수혁은 하나 더 구비되어 있는 생수병을 들어 뚜껑을 땄다. 그러며 발을 옮겨 희우의 머리맡으로 향했다.
이불을 쓱 걷어 내니 그제야 얼굴을 보여 준다. 간밤 서수혁의 품 안에서 낯선 자극의 와류에 잠겨 자지러지고 발버둥을 치던 희우는 평상시 알던 얌전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 와중에 쉼 없이 터뜨린 눈물의 증거로 눈가는 여전히 발갛게 부어오른 채였다.
불감증인 줄 알았더니.
어떻게 찔러 넣어 박박 긁어 대도 영 반응이 없고 되레 말라 가기만 하는 게 일상인지라 정말 잘 느끼는 성질과는 거리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이 등신처럼 엄한 구석만 건드리고 있었던 거다.
한번 물꼬를 틀자 희우는 수분기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건드리는 족족 물을 후드득 쏟아 내며 까무러치기 바빴다.
어젯밤, 윤서원에게서 건네받은 키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서수혁은 희우의 치마 속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조수석으로 날아간 팬티를 주워 입고 올 정신이 없어서 숱 적은 음모만이 자리한 민둥산으로 승강기에 올라탄 희우는 바로 벽 쪽으로 비틀거렸다.
서수혁은 그런 희우의 질척한 음부를 둥글게 매만지다가 땡땡 부어오른 음순살을 가르며 안으로 손가락 두 개를 찔러 넣었다.
찌르면 찌르는 대로 찍찍 분출하는 애액수를 손가락으로 덜어 오목하게 팬 엉덩이 골에 발라 주기도 했다. 그 상태로 룸이 있는 고층에 도착할 때까지 아래를 저 좋을 대로 헤집고 쑤석거렸다.
중간에 누가 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는지 희우는 자꾸만 벽 쪽으로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런 소심한 행동이 오히려 회를 동하게 만들었다.
결국 서수혁은 차에서 내리기 전 엉성히 바지춤을 갈무리한 보람도 없이 브리프를 끌어 내리고 퉁- 끄집어낸 샅기둥을 희우의 허벅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키 차이가 여실하다 보니 박는 맛이 원활하지가 않아서 결국 희우는 양다리가 그의 팔뚝에 매달린 채로 삽입을 당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해당 객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 아슬아슬한 농탕질은 계속되었다.
간신히 객실 앞에 도달했으나, 서수혁은 지금 들어가야 하는 곳은 스위트룸이 아니라 희우의 보짓살 안이라고 주지시키듯이 문 앞에 기대어 선 채 맘껏 허리를 터는 데에 분주했다.
희우는 촉촉하게 젖은 눈을 황망히 굴리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엉엉 울며 제발 들어가서 해 달라고 빌었다. 카드 키가 그의 손에 있는데 대체 왜 실내로 들어가지 않고 남이 돌아다닐 수 있는 복도에서 이런 짓을 하는지 그녀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나 약속해.’
‘으응, 읏, 흣…….’
‘기절하지 마. 오늘은.’
‘후, 으. 아……!’
‘밤새도록 혼자 노는 것도 이제 지겹거든.’
자신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하는지 희우는 뭔들 좋다며 고개만 주억거리기 바빴다. 어떤 조건이든지 간에 객실 내부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팔 눈치였다.
서수혁 역시 남에게 섹스 장면을 보여 주는 괴벽한 취향은 없는지라 선선히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결국 희우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 오히려 일반적인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시점에.
여자 사정과 다를 바가 없는 오르가슴을 겪으며 전신을 가로지르는 탈력감이 대폭 커졌는지 금세 지쳐서는 도통 정신을 못 차렸다.
어젯밤 제 아래에 깔려 눈물짓기 바쁘던 그 얼굴에 시선을 꽂은 채로 서수혁은 나머지 물병 역시 말끔히 비웠다.
어느 순간부터 희우를 보고 있노라면 갈증이 이는 기분이 들었다. 절로 입 안에 침이 고이고 목구멍이 근질거리듯이 조여드는 느낌이랄까.
탁상시계를 확인한 서수혁은 아직 여유가 있음을 깨닫고 욕실로 가는 대신 침대 위로 올랐다.
“으응…….”
마주 보는 자세로 눕자 체온이 끼치는 온기가 넘어왔는지 희우가 꾸물대며 품으로 다가들었다.
서수혁은 제 가슴팍을 스치는 희우의 보드라운 숨결을 느끼며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
어쩌다 보니 갈 곳을 잃고 어정쩡하게 구는 팔을 열없이 늘어뜨리고만 있자니 꼬물거리던 희우가 잠결에 그것을 베개로 여긴 듯 포근히 기대 왔다. 내쳐도 될 일이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서수혁은 잠자코 있어 주었다.
말아쥔 희우의 주먹이 시트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성정을 보여 주듯이 말린 모양새도 어쩜 엉성하기 짝이 없다.
서수혁은 그것을 들어 올려 검지와 중지를 폈다가 접었다가 하는 장난을 치다 문득, 이전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졸리지 않다는 제 말에 대신 잠이라도 불러 줄 것처럼 토닥거리던, 그 가당치도 않으면서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던 손짓 말이다.
서수혁은 그날의 행동을 재연시키듯이 희우의 손을 잡아다가 제 옆구리 위로 내려놓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예 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작은 손은 번번이 미끄러지기만 했다.
서수혁은 포기를 모르는 이처럼 그걸 몇 번이고 되풀이하다가 힘 빠진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은 황당한 심경이 기습적으로 치고 올라와서였다.
아기랑 놀다 보니까 어째 수준까지 닮아 가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서수혁은 이후 몇 분 가까이 희우의 손을 가지고 놀다가 느지막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찾아 윤서원에게 연락을 넣어 둔 서수혁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 가운 차림으로 스위트룸 문을 열었다. 이미 도착해 있던 윤서원이 정장 케이스를 내밀었다. 서수혁은 건네받은 그것으로 갈아입은 후, 마무리로 넥타이를 조이며 침대로 다가갔다.
환한 햇살이 아침의 운치를 공격적으로 드러내며 쏟아져 내렸다.
그는 자신이 같이 눕느라 널브러진 이불을 끌어당겨 본래 취하고 있던 모습 그대로 희우의 정수리 끝까지 휙 덮어 주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놔두면 애 숨이 막히지 않을까 싶어 얼굴만 보이게끔 내려 주고는 이내 발을 돌렸다.
룸 밖으로 나서니 윤서원이 정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차례대로 전하는 보고에 귀를 기울이며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복도를 밟았다.
그러며 서수혁은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살폈다.
어젯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금 가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동안 희우는 공중에 떠 있었다. 그러며 찐득하게 접붙은 아랫입 사정에 객실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래로 음액을 뚝뚝 지렸다.
방울지게 흘린 그 흔적은 이미 새벽을 지나 다 말라붙었는지 눈을 가늘게 떠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감쪽같이 증발한 후였다. 그게 당연한 일인데 왜 은근한 아쉬움이 따라붙는지 알 길이 없다.
“그건 네 선에서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기 깨어나면 밥 좀…….”
주차장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던 서수혁이 잘만 흘려보내던 목소리를 멈추었다. 곧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면을 향하던 고개를 살짝 비튼다.
“주 실장 여기로 호출해서 아기 밥 좀 먹이라고 해.”
그가 구두로 내려 주는 결재 사항을 태블릿 PC에 빠르게 체크하던 윤서원이 멈칫했다.
그사이, 서수혁은 이미 고개를 바로 한 뒤 차가 주차된 구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윤서원의 머릿속에 불똥 같은 불안 한 가닥이 튀었다. 그것은 마른 들판 같던 정신머리로 순식간에 옮겨붙어 그를 성마른 초조로 달구었다.
지금, 대표의 저런 행동이 무얼 뜻하는지 대번 알아챘기에.
누구보다도 절 신용했던 대표가 눈에 보일 만큼 뚜렷한 선을 긋고 있었다. 그게 무엇과 무엇 사이에 긋는 선인지는 윤서원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섬찟 굳느라 잠시 멈추어 둔 다리를 얼른 움직여 대표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런, 의미 아닙니다. 대표님.”
그리고 이만 뒷좌석에 올라타려는 서수혁을 향해 고했다. 문을 붙잡은 서수혁이 몸을 숙이다가 말고 비서를 돌아보았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수혁은 대화를 나눌 때에 무엇보다 눈을 직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평상시에도 둥글게 고인 안광이 형형하게 살아 있는 대표의 눈을 담담히 마주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피하게 된다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으로 윤서원은 목 뒤를 단단히 굳혔다.
수그리고 있던 상체를 천천히 세운 서수혁이 윤서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눈발이 제게 일직선으로 꽂혀 들어왔을 때 윤서원은 등을 타고 흐르는 진땀을 실감했다.
그러고서야 아스라이 스쳐 지나가는 오싹함이 있었다.
그 반응 자체로도 윤서원의 머릿속에는 소리 없는 혼돈이 일었다. 자신이 정말로, 제 입으로 고한 대로 아무런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잘못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숨긴 어린아이처럼 긴장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때아니게 몰아친 내면의 아비규환에 도리 없이 잠식되어 가던 차, 다가오는지도 몰랐던 손이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해명하는 게 더 좆같은데, 서원아.”
조금 전까지는 적어도 한 터럭 정도의 의심이 남아 있었으나 이 말로 인하여 명확해졌다.
대표는 지금 자신이 희우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확신하며, 또 그걸 아주 고깝게 여기고 있었다.
저것이 단지 인질로 잡혀 있는 이와 내통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나오는 불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더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그보다 조금 더 아득하고 내밀한 것.
이를테면, 희우가 다른 남자와 엮이는 걸 바라지 않는 아주 지극히 원초적인 수컷의 본능.
“내가 네 손까지 따야겠니?”
“…….”
“그러기 싫으니까 처신 잘해.”
서수혁에 한해서는 의심이 쓸모가 없었다. 그는 감정을 가리지 않았고 숨기지 않았다. 그럴 만한 위치가 아니니까. 그는 제 신경 거슬리는 걸 드러내도 그 누구 하나 지적할 수 없는 자리였다.
어젯밤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운전대를 잡고 가는 동안 연신 귀를 긁었던 가녀린 신음과 살 치대는 소리.
실상 대표의 경고는 그 순간에 가장 날렵한 발톱을 드러낸 격이었다.
‘형님, 아니,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쇼!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대표 앞에 무릎을 꿇고 빌던 도끼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떠올랐다.
지금껏,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표의 눈 밖에 나게 된 이들의 비참한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해 온 게 바로 윤서원이었다.
서수혁은 품을 때 확실히 품는 것처럼 버릴 때에도 조금의 가차가 없었다.
그걸 알기에 윤서원이 뒤로 물러나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저도 모르게 잡아 버린 무언가를, 절대로 내보여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처럼 주먹을 꾹 쥔 채였다.
서수혁은 단정한 가마를 잠시간 내려다보다가 이만 차에 올라탔다.
동쪽의 지평선, 해가 그 무엇도 숨길 수 없게끔 환하게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