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실종과 인질 (4)
막연히 윤서원이 동행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찌 됐건 이들의 입장에서 저를 집에 보내 준다는 건 꽤나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 될 테니까.
“표정 띠꺼운 거 봐라.”
“…….”
“좋은 말로 할 때 눈까리에 힘 풀지?”
그래서 막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도끼의 얼굴에, 희우는 잠시간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건 한숨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도끼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사이에 내쉰 덕택에 그 행동을 감출 수가 있었다.
왜 이 사람을 붙인 거지.
희우는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벽 쪽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지난날 컨테이너 박스에서 겪었던 일이 심장을 거뭇거뭇하게 조였다.
차마 실물을 살필 자신이 없어 거울 너머로 껌을 짝짝 씹어 대는 도끼를 힐끔거렸다.
불편함은 아래로 줄기차게 하강한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달하고서도 계속됐다. 희우는 보폭이 큰 그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이윽고 까만 세단에 도달했을 때 그녀의 걸음은 자연히 뒷좌석으로 향했다.
곧장 운전석으로 향하던 도끼가 그걸 발견하고 눈알을 매섭게 부라렸다.
“이 썅년이. 네가 내 상전이냐? 앞에 안 타?”
저렴한 비속어가 섞인 걸걸한 윽박질에 희우는 겁을 집어먹었다.
도끼의 옆자리. 조수석은 정말 싫었으나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희우는 오늘 집에 가게 된 이 순간이 두 번은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타자마자 그가 내비게이션을 찍으라며 거만하게 턱짓했다. 차는 희우가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출발했다. 매너라고는 쥐톨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는 태도였다.
출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로는 한산했고, 그리하여 도시의 가장자리를 그림자처럼 둘러싼 달동네에 도착하는 건 금세였다. 가는 동안 차 내부를 울린 건 짝짝거리며 도끼가 껌을 씹는 소리뿐이었다.
간혹 그가 옆자리를 곁눈질할 때마다 희우는 손가락을 꾹 말아 쥐었다. 지난날 제 엉덩이 골을 가를 기세로 짓누르던 소름 끼치는 발정의 감각이 불쑥불쑥 떠올라 야단이었다.
“히야, 풍경 한번 죽이네.”
정차한 차에서 먼저 내린 도끼가 씹어 대던 껌을 퉤, 뱉고는 낙후된 동네를 쓱 돌아보았다. 그러는 사이 희우는 거의 몇 주 만에 마주하게 된 풍경을 서걱거리는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얼른 앞장서라며 등을 퍽 후려치는 도끼의 손길에 간신히 깨어나 비탈진 언덕길을 올랐다.
“그렇게 바라던 집 다 왔고만, 표정이 왜 이렇게 그지 같애?”
그녀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도끼가 넌지시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희우는 컨테이너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잊은 듯 구는 도끼가 퍽 떨떠름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멱을 따는 게 일상인 이 바닥에서 그런 건 일일이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닌 걸지도.
“다른 분이 오실 줄 알았어요.”
그럼에도 희우에게는 아직 적응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떠안아야만 했던 거북함의 발로처럼 모난 어투가 말릴 겨를도 없이 톡 비어져 나왔다.
“다른 분? 누구? 아, 윤 비서? 이따 올걸? 원래 윤 비서가 붙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작업 칠 일이 생겨서.”
아무 생각도 없이 도끼를 보낸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사이에 일정 변경으로 인력이 재배치된 모양이었다.
깃드는 아쉬움의 정도가 유난히 컸다. 윤서원과 함께 왔다면 이렇게 가시가 박힌 듯한 심경을 감내하지는 않았을 테니. 하지만 번히 도끼가 있는 앞에서 그를 티 낼 수는 없었다.
“아, 네…….”
“그보다 윤 비서는 갑자기 왜.”
“…….”
“뭐야……. 씨벌, 너도 윤 비서한테 뻑 갔냐?”
희우는 정작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도끼는 갑자기 비위가 상한 것처럼 어조를 낮추며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칙, 간단한 손짓으로 불을 지핀 그가 자욱한 연기를 터뜨리며 껄렁하게 지껄였다.
“하여튼 기집년들,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게 뭐가 그리 좋다고.”
“…….”
“하긴, 한두 명인가. 우리 얼굴마담한테 넘어가는 년들이. 업소만 뜨면 잘생겼다고 꺅꺅……. 아주 주둥이를 찢어 버리고 싶게들 유난이야.”
생각만 해도 기가 찬다는 듯 웃은 도끼가 대뜸 희우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치미는 거부감을 이기지 못하고 한 발을 벌렸으나 그래 봐야 골목길 내에서 피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야, 속지 마라.”
“…….”
“윤 비서 그 음침한 씹새, 면전에 대고 자기 예쁘장하다고 껄떡대는 새끼들 눈알 쑤시는 게 취미인 애야. 어? 걔가 지금까지 뽑아낸 눈깔이 몇 갠데……. 그거 진짜 곱상한 독종이라니까.”
진짜 희우가 윤서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노라 착각이라도 하는 양 육성에 밴 호소력이 짙었다. 그러나 도끼를 혐오하는 수준으로 꺼리는 희우에게는 단지 투박한 돌멩이가 반질거리는 보석을 질투하는 격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이후로도 도끼는 묻지도 않은 말을 잘도 나불거렸다.
“네 오라비도 얼굴마담으로 유명했던 거 아냐? 아주 그냥, 윤 선비랑 쌍으로 뒤질라게 잘나셨어요.” 하며 궁금해하지도 않은 희본의 얘기까지 들먹였다. 누가 보면 희우의 속을 어떻게든 긁어 보려 안달이 난 이라 여길 정도였다.
희우는 조용히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녀가 오빠와 단둘이 지내던 집은 차가 진입할 수 없을 만큼 좁은 안쪽에 자리했다. 몇 년을 머물렀던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끼로부터 기인하는 불편함은 조금도 개의치 않을 만큼 마음이 풀어졌다.
“…….”
집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기 무섭게 희우는 멈칫했다.
그날, 그 아침의 풍경이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수업에 늦을까 정돈할 새도 없이 뛰쳐나가느라 뒤도 한 번 돌아보지 못하고 나섰던 일상의 배경…….
희본이 이곳에 들르지 않았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희우는 정돈에 영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 살림은 늘 희본의 몫이었다. 출장인지 뭔지, 며칠을 꼬박 사라졌던 오빠가 돌아오는 날이면 지저분하던 집 안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는 했다.
“챙길 거 빨랑빨랑 챙겨라.”
그녀의 뒤를 따라 옹색한 문으로 들어선 도끼가 위쪽 문틀을 양손으로 거머쥔 채 지시했다.
희우는 가장 먼저 개다리소반에 놓인 노트북으로 향했다. 덮개를 열고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중고로 저렴한 값에 구매한 그것은 부팅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화면에 불이 들어온 걸 확인한 희우는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위하여 분주히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사이 도끼는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며 내부의 집기를 슬금슬금 건드렸다. 그의 손때가 묻는 게 싫었으나 지금은 그런 사소한 상황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구석에서 큰 가방 하나를 끄집어내 온 희우는 그 안에 속옷과 옷가지 몇 벌을 욱여넣었다.
또 챙길 게 있나 돌아보던 중 협소한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녹이 슨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냄비였다.
아직 노트북의 메인 화면이 켜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조용히 그리로 향했다. 냄비 뚜껑을 열자 시큼한 냄새가 훅 퍼졌다. 희본이 사라지기 전, 끼니를 거르지 말고 다니라며 끓여 둔 김치 콩나물국은 완전히 상해 있었다.
희우는 냄비 뚜껑을 쥔 채로 집 안 풍경을 쓱 돌아보았다.
기억의 물결이 빠르게 밀려온다.
언젠가 머물렀던 크고 웅장한 외가, 그로부터 벗어나 셋이 오순도순 살았던 별장을 거쳐 끝내 남매 둘만이 정착하게 된 이곳은 희우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지점이기도 하였다.
타인이 보기에는 누추하고 변변찮을지 몰라도 희우에게는 아늑한 보금자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곳곳에 누런 얼룩처럼 자리한 오빠와의 추억이 그러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저녁, 희본이 해 주었던 식사가 아직까지 기억이 났다.
아주 새빨간 떡볶이였다. 그때는 희본도 어리다면 어릴 나이였다. 그래서 누구에게 제대로 한번 내어 준 적 없는 요리 솜씨는 서투르디서툴렀다.
그가 쥐여 준 포크로 콕 찍어 먹은 떡은 코가 찡할 만큼 매우면서 짰고,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끝맛은 싱거웠다.
‘미안. 맛없지.’
‘…….’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사 와야겠다. 이거 먹지 말고 기다려, 희우야.’
희본은 머쓱하게 뺨을 긁다가 이대로 굶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바로 일어나 외투를 집어 들었다.
희우는 그런 오빠를 잡아채고서 떡볶이를 억지로 입에 욱여넣었다. 한 번에 서너 개씩 찍은 떡을 입 안 가득 삼켜 오물거리며 한껏 과장된 모습으로 ‘맛있어’ 하고 말했다.
결국 다음 날 배탈이 나는 결과로 인해 희본이 더 어쩔 줄을 몰라 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희우에게 그 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미흡하고 부족한 솜씨로 제게 밥을 차려 주겠다며 한참이나 씨름을 하던 희본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날 벌인 각고의 결과로 희본은 왼쪽 손가락 안쪽에 화상까지 입었다. 그것은 훗날이 된 현재, 지그재그 모양의 흉으로 남아 있었다.
“야, 너 뭐 하냐.”
도끼가 얼을 타는 희우의 행동을 지적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희우는 얼른 냄비 손잡이를 쥐어 쉰내가 나는 국을 배수구에 쏟아 냈다. 그냥, 저와 희본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쓰레기장처럼 너절히 버려진 집으로 놔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침 돌아본 시야에 드디어 메인 화면이 뜬 노트북이 보였다. 희우는 버벅거리는 노트북을 조작하여 간신히 휴학 신청을 마쳤다. 개강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지라 아슬아슬하게 기한을 맞출 수가 있었다.
사실상 휴학 신청이 가장 급한 불이었기에 그것을 마쳤을 때는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래간만에 돌아온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서 희우는 아직 볼일이 남은 척 미적거렸다.
서수혁에게 책을 핑계로 둘러대었기에 그녀는 한쪽에 놓인 자그마한 책장 앞으로 향했다.
동기들이 희한하다 평할 만큼 자주 들여다보는 전공 책을 가방 안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개중에서도 작품이 그림 자료로 많이 실려 이따금 펼쳐 보고는 했던 책 하나를 발견했다.
희우는 그 자리에 서서 책을 펼쳤다. 무의식중에 한 행동인데 갈라져 있던 페이지 사이에서 뭔가가 팔랑, 떨어졌다.
수표였다.
출처는 금세 떠올랐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가기엔 섭하지.’
아, 그래.
이건…… 서수혁이 제게 주고 간 바로 그 돈이었다.
아끼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이 간직한 건 아니었다. 단지 이걸 쓰려 할 때마다 발목이 잡아채이듯 망설이게 되었다. 희우의 생 속에서 이토록 큰돈을 받아 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허튼 데에 낭비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엄습했다.
그러니까, 이보다 더 값지게 쓸 수 있는데 고작 이런 걸로 날려 버릴 거냐는 것처럼.
그래서 그냥 이 전공 책 사이에 가둬 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저 느려 터진 거 봐라. 너 씨발, 전생에 굼벵이였던 거 아니냐?”
부산스럽게는 구나 진척은 없는 듯한 희우의 꼴이 못마땅했는지 도끼가 까칠하게 툴툴거렸다. 그는 어느새 반도 넘게 태운 담배를 아래로 내리고는 물었다.
“야, 화장실 어디냐? 아니지, 존나 후져서는……. 여기 안에 있기는 있냐?”
가는 길목마다 훼방을 놓기 바쁜 도끼는 정말이지 거슬렸다. 희우는 진드기를 떼어 놓는 심정으로 구석에 자리한 화장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닌 척 소변이 급했는지 도끼는 금세 걸음을 옮겼다.
‘혹시 모르니까 챙겨 두자.’
오늘로써야 빛을 발하게 된 돈을 챙기려고 손을 움직였다. 어중간하게 끼워져 있던 수표 한 장이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것을 줍기 위해 상체를 수그리는 차였다.
50만 원권, 이라고 쓰인 종이 위로 화한 빛이 스며들었다. 희우는 그 광경에 잠시간 넋을 놓았다.
빛이, 그러니까 빛이…….
그녀의 고개가 어중간한 각도에서 조금씩 틀어졌다. 부채꼴 모양으로 벌어지는 빛보라의 출처는 빤했다.
활짝.
그들이 닫지 않고 들어온 현관문이 아주 활짝 열려 있었다.
아득하기만 하던 햇살이 유난히 반갑게 다가오는 건 자유를 잃고 살아온 며칠간의 회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끄트머리가 잘려 가시목처럼 까끌한 포대 자루가 머리에 쓰이던 순간이 또렷했다.
근데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양 현실감이 적었다.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자신이 집에 돌아왔음을 똑똑히 인지하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세상은 여전히 함께 존재했다. 헐거워서 잘 닫히지 않고, 닫을 때마다 끽끽 부산스러운 소음을 내는 화장실 문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콧소리.
갑자기 모든 게 서러워졌다. 저를 삼킬 듯이 거세게 밀려온 감정이었다.
이곳, 새 보금자리와도 같은 집에서 나가게 된 후에 벌어질 일들이 차례차례 눈앞에 그려졌다.
또다시 갇히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의지 하나 품을 새도 없이 눈치를 보고.
그리고…… 그리고 서수혁에게 강간도 당하겠지.
남자는 매양 무미건조한 듯 보이나 희우는 알았다. 간혹 그에게서 목격되고는 하는 정욕의 흔적. 말라붙은 듯 윤기도 찾아볼 수 없이 침잠한 눈동자 속에서 때때로 비추는 야수의 광포가 있었다.
지난날, 제 입 속에 둔중한 성기를 처넣을 때도 그랬다. 나른하게 풀린 눈매 사이로 번들거리는 건 명백한 육욕의 발현이었다.
희우가 알아서 그의 아래에 깔려 다리를 벌린다고 하여도 그건 명백히 강간이었다.
그녀는 원하지 않으니까.
가랑이 사이를 까 보이는 이유는 남자처럼 본능의 한 꺼풀 때문이 아니라, 단지 공포심의 작용에 불과할 뿐이니.
상념이 거기까지 미치자 불현듯 억울해졌다.
왜, 왜 내가 그런 일을 당해야 하지.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 어째서 익숙해져야 하는 거지. 그건 내게 있어서 당연한 일이 아닌데.
‘어쩌면 지금이…….’
어중간하게 숙여져 있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허리를 곧게 세울 틈도 없었다. 희우의 두 발은 부당과 괴리에 완전히 함락되어 제멋대로 움직였다.
신발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인 현관을 통과하여 외부로 빠져나왔을 때, 먹먹하던 오감이 한순간 제자리를 찾았다.
외진 동네 특유의 퀴퀴하고도 꽉 막힌 냄새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지붕이 어설프게 얹어진 살림집들의 향연, 때와 녹으로 범벅이 되어 구불구불하게 자리한 골목길들…….
물이 엎질러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희우의 발은 이미 지면을 박차고 있었다.
헉, 목에서 비린 피 맛이 느껴질 만큼 달음박질했다. 구석진 위치에 처박힌 집의 모퉁이를 돌아 빠져나왔을 때에서야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이라는 걸 알았다.
“하아, 흐……!”
내리막길이라 주체 없이 달려 나간 길목의 중간에 뭔가가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타고 온 차였다.
희우는 운전석으로 향해 문손잡이를 덜컥거렸다.
이럴 때에도 희본의 생각이 검질기게 달라붙은 이유는 하나였다.
희본은 여느 때건 다정하지만 타협이 없는 부분에서는 한 점 물러섬이 없었다. 희우가 성인이 되자마자 면허를 딴 일도 그에 해당했다.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그는 갓 스물이 된 동생의 학원비를 내 주어 면허를 따게 했으며 이후로 단순히 썩히지 않게끔 직접 연수에도 두 발 벗고 나섰다.
한번 나가면 며칠간 집을 꼬박 비우는 바쁜 일정을 강행하면서도 그랬다. 처음에는 어려워 곧잘 헤맸으나 반복되는 연습하에 희우는 운전대를 잡고 도로로 나갈 수 있는 실력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이 달동네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 목전까지 들이닥쳤을 때 반사적으로 차를 찾았다.
덜컥.
덜컥, 덜컥.
위기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손짓에도 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차 키……!’
희우는 황망히 고개를 쳐들었다. 차 키를 뽑아낸 건 운전대를 잡은 도끼일 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제야 손에 언제 주웠는지도 모르게 자리하는 수표를 알아차렸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소리가 귓구멍을 쑤셨다. 서수혁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갑자기 오금이 저렸다.
다음 순간 어깨가 움칠 떨렸다.
조금 전 그녀가 뛰쳐나온 집 쪽에서 들리는 미약한 소란 때문이었다. 끼이익- 철제로 이루어진 경첩의 비명과 그 뒤를 따르는 누군가의 격양된 욕지거리…….
거리가 꽤 있음에도 알 수 있었다.
도끼가 화장실에서 나온 거다.
희우는 유일한 기회처럼 매달리던 차를 버리고 얼른 골목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미로처럼 자리하여 이리로 가면 저 길이 나오고, 또 저기로 가면 이 길이 나오는 골목길은 이곳에 사는 그녀조차 헷갈릴 만큼 굳건한 방벽을 자랑했다.
때로 무지막지한 빚을 떠안게 된 이들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각막과 간, 신장 등등 제 장기를 도려내어 팔아 버릴 요량으로 두 눈에 불을 켜고 찾아온 사채꾼들을 따돌려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 보려고.
그래서 어느 때의 밤, 이 골목길은 단말마의 비명으로 차오르고는 했다.
죽기 직전처럼 질러 대는 구슬픈 외침에 잠이 들어 있다가 깨어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다시 잠이 들기를 버겁게 만드는 야밤의 사나운 소동이었다.
희본이 있을 때면, 그런 희우의 등을 토닥여 주며 다시 자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없을 때는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무슨 소리가 나든, 누군가 살려 달라고 문을 두드려도 결코 열어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때는 마냥 남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이토록 좁은 길 사이를 누비며 누군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제 일이 되리라고는…….
“허억, 흐.”
무릎이 후들거렸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토해 내는 숨을 따라 터져 나왔다. 희우는 번들거리는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꺼칠꺼칠한 재질의 벽에 어깨를 기댔다.
갑작스럽게 뜀박질을 해서인지 심장의 고동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뿐일까, 배 안쪽 근육은 미친 듯 당겨 오고 눈앞이 너절하게 뭉개지는 현기증도 이따금 엄습했다.
희우는 혹여나 숨소리가 새어 나갈까 입을 꾹 틀어막았다. 기척을 죽이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음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도끼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유리병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 벽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 씨발씨발거리는 걸쭉한 욕설이 그 위로 덧대어졌다. 그는 지금 이 너저분한 동네를 완전히 뒤집어 대는 중이었다. 저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스스로 엎지른 물이 오한이 되어 등 뒤를 덮쳐 왔다.
그저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다.
다만, 다만…… 희본에게 전화 한 통만이라도 걸고 싶었다. 그보다 조금 더 큰 욕심이었을지 몰라도 희우는 제가 할 수 있는 선이 딱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알았다.
오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간절했다. 만약 통화가 연결된다면, 그래서 딱 한 가지만 물을 수 있다면 묻고 싶었다.
나를 버린 거냐고.
현기증으로 얼룩진 시야를 걷어 내고서 희우는 한쪽에 놓인 드럼통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그것만큼은 해내고 싶었다. 지금 움직인다면 반드시 도끼에게 들킬 터. 이곳 지리에 능하지 않은 도끼를 따돌리기 위해서 지금은 은신을 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기척이 잦아들었을 때쯤 몰래 이 허름한 동네를 빠져나가서, 그래서 핸드폰을 빌려 보자. 어렵다면 공중전화를 찾아보자.
그러고 보니 저 아래 작은 슈퍼 앞에 공중전화 박스가 하나 있었던 것도 같다. 전화를 걸려거든 동전이 필요할 텐데. 아, 그래. 이 정신에도 용케 챙겨 온 수표가 있었지. 누군가에게 주면서 아무 지폐로나 바꿔 달라고 하면 해 주지 않을까? 무려 50만 원이니까.
희우는 두 눈을 감은 채 마구잡이로 꼬여 들끓는 생각을 하나둘 정리했다.
그사이, 예상대로 서슬 퍼렇던 도끼의 기척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수수께끼처럼 꼬불꼬불한 길모퉁이를 헤집어 대다가 제풀에 지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디에 기대 쉬거나, 혹은 가지고 온 차로 이 동네를 벗어나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희우의 관자놀이를 타고 떨어졌다.
어디선가 요란한 배기음 소리가 났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바쁜 이 동네 사람들은 변변한 차 하나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건 짐작대로 도끼가 차에 올라타 궁벽한 동네를 떠날 심산인 걸지도 모른다.
이제 시간 싸움이었다. 도끼가 자신이 사라졌다는 걸 알리면 필시 인력이 충원될 테다. 이 낙후된 동네에 콕 숨어 버린 저를 무 뽑아내듯 잡기 위해서.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드럼통의 가장자리를 붙잡아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길쭉한 그림자가 발치에 고여 있었다.
눈이 경악스레 치켜뜨이기도 전에 머리채가 꽉 잡혔다.
“악!”
“이 쥐 좆 같은 년이…….”
살기가 감도는 육성이 고막을 할퀴었다. 모발이 뽑힐 듯 잡아당겨지는 힘에 다리가 풀렸다.
도끼는 풀썩 주저앉은 희우를 골목 바깥으로 질질 끄집어냈다. 머리카락이 다 뽑혀 버리는 것만 같은 통각에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히 도망을 가? 이게 누구를 엿 처먹이려고!”
도끼는 십년감수를 한 이처럼 끝도 없이 중얼중얼거렸다. 음산한 어조는 악력을 더욱 사납게 달구었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채로 질질 끌려가며 희우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신발을 신지 못한 발이 꺼끌한 지면에 긁혀 생채기를 입었다.
“도와주세요! 누가, 좀……!”
이대로 끌려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다. 그래서 외쳤다. 밤도 아닌 낮이니까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그러나 눈먼 희망임이 여실했다. 돌아오는 침묵이 그를 주지시켰다. 희우는 절망의 파도가 들어찬 동공으로 생의 반을 살아온 동네를 훑었다.
‘누가 도와 달라고 해도 무시해.’
‘절대 문 열지 마. 창문도 열지 말고.’
‘그냥…… 지나가길 기다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희본의 충고는 곧 이 동네의 섭리였다. 뼈아프고 잔혹한데 그래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칙…….
뜨거운 서러움이 괴어올랐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거다. 도끼가 저를 이 자리에서 두들겨 패든, 어떤 식으로 파손을 시키든 용기를 갖고 내어다 보는 이 하나 없으리라.
그 소름 끼치는 생각이 머릿속 깊숙이 박혔을 때는 이미 집으로 돌아온 후였다.
“아윽!”
배를 걷어차는 발길질에 희우는 나가떨어졌다.
오만 데를 쏘다닌 모양인지 도끼는 숨이 거칠었다. 땀도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것을 쓱 쓸어 닦는 와중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는 육두문자를 끝없이 쏟아 내며 희우를 수 번 걷어찼다.
“야, 이 개좆년아.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네?”
“흐으, 흐…….”
“윤 비서한테 도망갈 마음 없다고 그렇게 빌었다길래 진짜 깜-빡 속을 뻔했지 뭐야. 아니 그뿐이야? 집에 와서도 딴맘 없는 척 얌전히 굴길래…… 하하. 씨벌, 이게 완전히 날 병신처럼 갖고 놀아?”
미주알고주알 씨부리는데, 외려 그 되짚음에 더더욱 꼭지가 도는지 도끼의 목소리는 갈수록 거칠어졌다. 그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어딘가에 던졌다. 그러고 다가와 희우의 목덜미를 그러쥐어 뒤통수가 장판에 처박히도록 콱 밀어붙였다.
“너는, 너 같은 년은 아예 기를 꺾어 놔야 해.”
그가 두 다리를 성큼 벌려 대뜸 희우의 위로 올라탔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이상했다. 제 목을 잡아챈 쪽이 아닌 다른 쪽의 손이…….
희우는 저를 깔아뭉개고서 바지춤을 풀어 헤치는 도끼를 알아채고서 대경실색했다.
“어? 이딴 식으로 사람 호구 만들 생각도 못 하게, 아주!”
“싫어, 악, 으, 싫어……. 하지 마!”
희우는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저를 무참히 내리누르는 도끼의 팔과 몸통을 아무렇게나 때렸다. 그러다가도 커다란 손이 목울대를 콱 짓이길 때면 급소를 가격당하기 직전인 사람처럼 헛숨을 삼켰다.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는 배 위에 올라탄 양 한참이나 헛손질을 하던 도끼는 그럼에도 착실히 제 바지춤을 끌렀다. 희우는 흐려진 시야에 잡힌 도끼의 잔혹한 미소를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애를 먹은 만큼 잔뜩 열이 오른 성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낸 도끼의 손은, 희우의 바지춤을 다음 정착지로 삼았다.
희우는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끌어 내리려는 손길을 알아차리고 한층 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정신의 끄트머리가 깎여 가고 있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성토가 마모되는 양 거칠고 조악해졌다.
바지춤을 벌릴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으나 제 옷을 벗기려는 태세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부정하는 게 외려 멍청이가 되는 일이었다.
도끼는 지금 컨테이너 박스에서 미처 행하지 못한 죄악을 범하려 하고 있었다.
물기로 젖어 든 눈알이 핑글 돌았다. 희우는 온 힘을 다하여 고개를 저었다. 그 탓에 목울대를 그악하게 압박하던 손아귀가 떨어져 나갔다.
희우는 곧장 따라붙어서 그의 손등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아예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악!”
예기치 못한 공격에 제대로 한 방을 먹었는지 도끼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바지와 팬티에 걸려 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갔음에 안도할 새도 없었다. 매섭게 뺨을 후려치는 손길에 희우는 그대로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 씨팔!”
도끼는 한 입 거리도 되지 않는 기집애가 제 손등에 상처를 입혔다는 데에서 자존심이 제대로 구겨졌는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연속해서 뺨을 올려붙였다.
“씨발! 씨발! 씨발!”
악의 서린 욕설은 하나의 구호처럼 전락했다. 한 번의 외침에 따귀가 짝, 짝-! 동네북처럼 후려쳐졌다. 빗발만치 거세고 폭우만치 쉴 새 없는 손찌검이었다.
볼 안쪽 살이 무참히 터진 희우의 입술은 각혈을 토해 내는 이처럼 벌겋게 젖어 들었다. 콧대 역시 두들겨 맞아 터진 모양인지 구멍 바깥으로 피가 질척하게 흘렀다.
내려치는 손의 모양새가 바뀌었다. 손바닥에서 주먹으로. 도끼는 금으로 이루어진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것이 완전히 얼굴을 함몰할 지경으로 내리쳐 오자 진짜 정신이 뭉개졌다.
삐이이-
흐리멍덩하게 굴던 희우가 별안간 귀를 감싸 쥔 건 세상을 둘로 쪼갤 듯 몰아치는 이명 때문이었다.
고막이 산 채로 뜯겨지는 것만 같았다. 작달막한 몸이 새우처럼 둥글게 말렸다.
귓바퀴를 부산스레 더듬거리던 손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선명한 선혈이 손끝을 질척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크게 뜨인 두 눈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 난폭한 이명이 모든 감각을 잡아먹을 것처럼 그녀의 뇌리를 쥐락펴락했다. 그래서 희우는 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던 폭력이 대뜸 그쳤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놔! 씹, 이거 안 놔? 놓으라고!”
다짜고짜 끌어당기는 힘에 벽으로 밀어붙여진 도끼가 고함을 질렀다.
“너 뭐 하는 짓이야!”
대문 바깥에서부터 들리는 소란에 급히 집 안으로 들어선 윤서원은 난장을 치는 도끼를 최대한의 힘으로 억압하며 외쳤다.
“정신줄 제대로 안 잡아? 지금 밖에……!”
덩치도 만만치 않은데 흥분하여 좀처럼 제어가 되지 않는 도끼 때문인지 윤서원은 몇 번이고 비틀거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손짓으로 날붙이를 튀어나오게 해 그것을 도끼의 목울대 앞으로 디밀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목젖이 잘려 나갈 위기를 귀신같이 알아챘는지 도끼가 격렬한 몸부림을 멈추었다. 윤서원은 냉엄이 서린 눈으로 도끼의 목울대를 계속해서 조였다.
그 상태에서 고개만 쓱 돌렸다.
바닥을 한바탕 뒹군 희우는 축 늘어진 채였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내려앉은 얼굴은 흘깃 살피기만 해도 피투성이였다. 살아는 있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대표님께서 분명…….”
“도망가려고 했어.”
“뭐?”
“도망가려고 했다고. 저 망할 기집년이!”
희우를 흠씬 내리치던 손바닥으로 얼굴을 쓱 쓸어내린 도끼는 나름 합당한 변명이라는 것처럼 지껄였다.
그때였다.
닫히다가 만 현관문이 재차 열렸다. 뚜벅, 시린 구둣발 소리가 질기게 공기를 눌렀다. 반쯤 나갔던 희우의 정신이 돌아온 것도 그 타이밍이었다.
이명이 그치지 않는 귀를 틀어막은 희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서 상체를 간신히 세웠다.
기척은 그런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희우가 핏내로 얼룩진 안면을 드는 것보다 누군가 그녀의 턱을 쥐어 올리는 게 빨랐다.
각막에도 손상이 갔나?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오뉴월의 서리처럼 등장한 서수혁이 희우의 턱을 놓고서 굽히고 있던 다리를 제대로 폈다. 희우의 시선이 그를 따라가다가, 목 뒤가 끊어질 것만 같은 통증에 다시 떨구어졌다.
“뭐가 그렇게 어렵니?”
길게 펴진 남자의 손가락이 희우를 척 가리켰다.
“넌 집에 다녀온다고 했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끼였다.
“넌 얘 따라가서 감시하라고만 했는데.”
“…….”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서수혁은 진정 골이 아프다는 듯이 미간에 엷은 주름을 그려 냈다. 이 집에서 벌어진 일과 비교하자면 실로 단정하고도 바른 어투였다.
그는 고리타분하다는 눈으로 희우를 뜯어보다가 도끼에게 가벼이 손짓했다. 대표의 등장으로 잠시 풀어진 이성이 완전히 제자리를 찾았는지 도끼는 매무새를 대강 여미며 쏜살같이 다가왔다.
“쟤는 아기라서 그렇다고 치자.”
“…….”
“도끼야, 넌 뭐가 문제일까?”
뒷짐을 지고 서자마자 서수혁이 도끼의 뒷덜미를 거머쥐었다. 그게 책장의 모서리에 쾅, 소리가 나게 부딪히기까지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
“내 밑에서 하루 이틀 밥 벌어먹니? 아님 병신인가? 뇌가 없어? 네 머리통을 갈라서 직접 확인해 봐야 하나?”
쾅, 쾅, 쾅!
뇌가 있는지 없는지 기어이 육안으로 판단해 봐야겠느냐는 질책처럼, 서수혁은 정말 도끼의 머리통을 쪼갤 기세로 팔을 움직였다.
일정한 박자와 균등한 힘.
오로지 계산된 폭력만을 사용하는 그 움직임은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벌어졌다. 그게 사내를 진정 사람이 아닌 무언가처럼 느껴지게 했다.
처음에는 이를 악물고 버티던 도끼였으나 계속해서 행해지는 타격 앞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개골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두려운 건 정말, 뼈가 그렇게 아작 나 그 사이로 물컹한 두뇌가 드러날 때까지 내려칠 기세처럼 보이는 대표님의 태도였다.
책장의 날 선 모서리가 마침내 그의 이마 살갗을 찢어 냈다. 피가 질척하게 터져 나오는 동시에 도끼의 무릎이 바닥과 마찰했다.
서수혁은 제 앞에 굴복한 그의 머리통을 한 치의 미련 없이 놓았다. 팽개치는 식에 가까울 만큼 심드렁한 손길이었다.
치미는 신음을 삼키며 손을 든 도끼는 찢어진 부위로부터 냇물처럼 쏟아지는 피를 쓱 닦아 냈다. 희미한 짜증이 서린 서수혁의 눈길이 사로잡힌 건 바로 그 대목이었다.
그는 도끼의 손등에 맺힌 상처를 주시했다.
누군가 있는 힘껏 깨물기라도 한 듯 피부가 잘게 찢어져 있었다. 서수혁의 눈동자가 조금 더 가늘어졌다.
곧 그가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을 발견한 건 도끼가 아니라, 한쪽에 주저앉아 이 끔찍한 상황을 목도하는 희우였다. 기실 이명이 엄습한 뒤로는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서수혁이 보이는 태도가 범상치 않다는 건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서원아. 트렁크에 좀 다녀올래?”
간명한 지시가 떨어지자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던 윤서원이 소리 없는 한숨을 터뜨렸다. 무언가를 직감한 이처럼 무거운 기색이었다. 그런 떨떠름한 모습으로 그는 서수혁의 명을 이행하기 위하여 집 밖을 나섰다.
“아기가 내 면상도 이렇게 긁어 놓은 적이 있는데.”
“…….”
“그게 뭐 하다가 그랬는지 너는 알까?”
서수혁이 도끼의 짧은 머리칼을 쥐어 제 얼굴을 들여다보라는 것처럼 치들었다. 도끼는 제 상사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종잡을 수가 없었는지 부단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걸 알아챈 건 희우였다.
희우가 감히 그의 뺨에 상처를 냈을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쾅!
문이 닫히는 소리에 희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어……?’
힘없이 돌아간 눈길 끝에 윤서원이 있었다. 희우가 눈을 비빌 만큼 의아해진 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본 순간이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의심하게 만드는 물건…… 그건 바로 도끼였다.
사람 도끼가 아닌, 연장 도끼.
서수혁이 한 가닥의 웃음을 거두었을 때는 이미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가 얼을 타는 도끼의 어깨를 힘 있게 내리눌렀다. 커다란 상박이 낡은 장판에 부대껴졌다. 어느새 드러누운 자세였다.
서수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위로 올라섰다. 한쪽 발로 도끼의 어깨를 짓밟고, 반대쪽 발로 도끼의 손등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뒤로 빼며 눈매를 좁혔다. 꼭 어디부터 어디까지 잘라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양.
이윽고 그가 손을 까딱였다.
윤서원이 빈손에 도끼를 넘겼다.
“서원아, 뭐 하니? 잡아야지.”
“예, 대표님.”
윤서원은 익히 예상한 일이었다는 것처럼 담담히 자세를 낮춰 도끼의 손을 고정시켰다. 정해진 수순인 양 아무런 장애물 없이 행해지는 이 모든 일이 희우의 눈에는 괴상한 그림으로만 비쳤다.
잠시 후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를 가장 늦게 알아챈 건 도끼였다. 시퍼렇게 질린 낯빛이 잔뜩 졸아든 그의 간을 대변했다.
“내가 분명히.”
“대, 대표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대표님! 대표님! 대, 대표……!”
“재미없어질 거라고 했는데…….”
혼잣말처럼 뇌까린 서수혁이 정교한 가늠을 마친 이처럼 주저 없이 도끼를 추켜올렸다. 그것이 사선으로 미끄러져 허공을 가르는 게 희우의 동공을 쪼갰다.
“아아아악-!”
날이 갈린 연장은 사람의 피부가 젤리라도 되는 것처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집행이 벌어지는 근처에 놓인 희우의 노트북, 미처 덮개를 닫지 못한 화면과 키보드 위로 그 핏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사람의 신체라는 게 한 번으로는 쉽게 절단되지 않는 걸 알기에 서수혁은 자연히 도끼를 다시 꺼올렸다. 희우는 이 무지막지한 처형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광경을 징그러운 뭔가를 보듯 응시했다.
뭐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왜, 왜 저 사람들은…… 이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신체를 끊어 내려 하고 있었다. 그게 희우의 온몸을 얼음 틀 안에 가뒀다. 사시나무처럼 진동이 끝이 없었다. 침도 삼키지 못할 중압감이 전신을 덮쳐 왔다.
옅게 들이켜는 호흡을 타고 맡아지는 게 이젠 제 피비린내인지, 뼈와 근육, 살집을 이루는 섬유 조직이 덜렁덜렁 잘려 나가며 풍겨 나는 악취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도끼의 손목은 그렇게 잘려 나갔다.
고작 다섯 번의 도끼질에 의한 결과였다.
댕강 잘려 나간 손이 희우의 근처로 굴러떨어졌다. 잘려 나간 부위의 단면에 희우는 토악질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진짜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손등에 난 상처가, 자신이 온 힘을 다해 깨문 상처가 그를 양껏 부정했다.
윤서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서서 기절한 도끼를 데리고 나갔다. 그게 희우의 귀에는 죄다 지직거리는 이상한 잡음으로만 들렸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에 턱이 덜덜 떨려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서수혁과 윤서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끼 말로는, 도망을 치려고 해서 붙잡은 것뿐이랍니다.”
꼭 미처 하지 못한 해명을 덧붙이듯 윤서원이 읊조렸다.
그에게서 담배를 건네받은 서수혁이 그것을 잇새로 물었다. 그는 피가 웅덩이처럼 맺힌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희우에게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희우는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했다. 저를 삼킬 어둠이 다가오는 것처럼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건 서수혁이 엉망으로 헝클어진 제 머리채를 휘어잡았을 때 완전히 극에 달했다.
“그랬어?”
“윽…… 흐.”
“진짜 도망치려고 했어?”
귓속에 벌 한 마리가 기어들어 온 것처럼 연신 웅웅댔다. 칼날이 박힌 것처럼 너무나 아팠다.
그러나 티를 낼 수조차 없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투정이 먹힐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고통을 피력하는 것보다 저 희번덕대는 눈길을 어떻게든 모면하는 게 중요했다.
“피임약!”
희우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피, 피임약을, 사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도망이 아니라, 진짜, 진짜로요.”
“…….”
“하실…… 거잖아요. 저랑 하시겠다고 했잖아요. 혹시나 아기가 생기면 안 되니까. 전, 저도 사생아로 자라서, 아, 아빠가 없이 자라서, 저 같은 처지로 만들기 싫어서…….”
희우의 손이 펴지며 무언가가 그들 사이로 굴러떨어졌다. 피로 젖어 들어 본래의 형태는 찾아볼 수도 없어진 수표였다. 서수혁의 눈길이 그리로 데굴 굴러갔다.
그는 고요히 그 돈을 더듬었다.
하얀 막대를 문 잇새가 비죽 벌어진 건 잠시 후였다.
“피임약?”
“…….”
“지금 피임약이라고 했어?”
하, 하는 작은 조소가 터졌다. 곧 그것은 하하! 하는 커다란 웃음소리로 변질됐다. 도끼를 향해 보내는 차가운 미소와 달랐다. 그보다 조금 더 말갰다. 경쾌하고 투명한 느낌이었다.
보이는 얼굴 역시 그러했다.
정말로, 즐거운 기색이 만면에 번져 있었다.
“이거 참신한데…… 아기라서 그런가? 진짜 골 때려.”
서수혁은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짓씹으며 한참이나 웃음을 흘렸다. 번들거리는 눈알의 기세가 조금 꺾여 들었다. 살기등등한 태세에 바람결 같은 유쾌함이 섞여 들었다.
그는 저 좋을 대로 한참을 큭큭대다가 후, 하고 긴 숨을 뱉어 냈다.
“돌아가면 아주 구멍 마를 구석이 없게 박아 줘야겠는걸?”
“…….”
“그래야 피임약 하나 사겠다고 이 난리를 친 보람이 있을 거 아니야.”
장난기 서린 투는 내막을 익히 알지만 넘어가 주겠다는 의도처럼 들려왔다. 단지 웃겨서. 제게 재미를 주어서. 악말갛게 터져 나온 웃음이 감히 그런 짐작을 내리게끔 했다.
머잖아 서수혁의 입꼬리가 차근차근 제자리를 찾았다.
“알아서 눈치 보고 기길래 따로 씨불이는 건 필요 없을 줄 알았더니.”
언제 웃음을 터뜨렸느냐는 듯 음습하게 낮아진 저음이 희우를 찔렀다. 조금은 약해졌던 손속이 다시금 강해지는 순간, 반쯤 숙여진 희우의 얼굴이 위로 들렸다.
서수혁은 눈과 눈이 일직선으로 맞닿는 위치에서, 범접할 수 없는 살기를 두른 채 뇌까렸다.
“너 도망치면 죽어.”
“…….”
“알겠니?”
온몸의 세포를 경직시키는 경고.
시퍼렇다가, 새하얬다가 하는 비정상적인 색깔을 넘어 시궁창처럼 꺼멓게만 보이는 주의.
희우는 반쯤 풀린 눈동자로 그의 어깨 너머를 더듬거렸다. 동강 잘려 나간 도끼의 손목이 거기에 있었다.
저런 게 왜 집에 있을까.
오빠와 자신의 집에 왜…….
감당의 역치가 머리 끄트머리를 넘나들었다. 희우는 새로운 시작점이나 다를 바 없던 제 세상이 철저히 뒤집힌 걸 느끼며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