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실종과 인질 (3)
생쥐는 피가 나도 생쥐고, 무언가에 짓밟혀도 생쥐다.
서수혁의 집 안에서 그런 변변찮은 꼴로 숨어 지내고 있는 희우도 마찬가지였다. 얼떨결에 그의 눈에 띄어, 원치 않는 강간을 당한 뒤로도 그녀는 생쥐처럼 이 집 한구석의 공백에 기생하여 살았다.
그날 소리 소문도 없이 방으로 돌아온 건 나름대로 잘한 선택 같았다.
섹스의 난폭한 여운 때문에 며칠간 심장을 부여잡고 살았으나 서수혁이 대뜸 이 방을 찾아오는 일은 전무했기에.
물론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그걸로 안심을 하기에는 사내가 남겨 놓은 흔적이 너무나 진했다.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리는 뺨의 통증은 여전했고, 줄기차게 버르집어 대던 음경의 광포로 죄 까져 버린 사타구니의 살집은 따끔거렸다.
며칠 내도록 이어진 배 속의 뭉근한 통증도 그 여파 중 하나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희우는 팬티 중앙에 묻어난 핏자국을 발견하고 쩍 얼어붙었다.
피가 왜?
왜 갑자기…….
신경이 쭈뼛 올라설 정도로 당황하여 굳어 있던 희우는 한 박자 뒤에야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가정 하나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무리에게 잡힌 기간이 한 달하고 좀 되지 않았나?
‘생리?’
희우는 진심으로 울고 싶어졌다. 가뜩이나 볼품없는 형편에 대체 이 무슨 난관이란 말인가. 생리를 하면 필요한 게 무척이나 많아졌다. 구석에 콕 박혀 눈치로 생을 연명하는 처지로서는 실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당장 생리대부터 문제가 되었다. 그뿐인가? 겨우 하나 있는 속옷도 지금 막 터진 혈로 인해 더럽혀진 차였다. 즉 더 이상 마냥 이 방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거다.
서수혁에게 제 발로 찾아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오늘이 첫날이라면 내일과 내일모레의 양은 불가피하게 많아질 테니까.
어떻게든 대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 대책은 단 하나였다. 이 감옥 같은 곳에서 바깥으로 통할 수 있는 길이라고는 남자뿐이니.
“…….”
희우는 마지못해 문 앞에 섰다.
아주 약간만 열어 바깥의 동태를 기민하게 살폈다. 꽤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으니 혹시나 남자가 아직 집을 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미 외출을 했다면 어떡하지, 하고 속으로 걱정을 되뇌던 차였다.
저벅.
바깥에서부터 묵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작 그 기척 하나에도 희우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이렇게 떨어져서, 저 혼자 인지하는데도 심장이 쾅쾅 울리는데 마주 보고 서서 말을 제대로 전할 수나 있을까.
그러나 버티어 봤자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각오처럼 숨을 삼켜 낸 뒤 그녀는 문을 열고서 바깥으로 나섰다. 피가 묻은 속옷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어 벗었더니, 티셔츠 하나로 겨우 가려진 허벅지 안쪽이 휑했다.
기척은 따라잡을 새도 없이 다시금 자취를 감추었다. 다행히 희우는 사내의 동향을 금세 포착했다. 이곳에서 눈을 뜨게 된 첫날 그의 자택임을 알게 해 준, 시계 진열장이 있는 방이었다.
시계를 차고 있기라도 하는 건지 안쪽에서는 스윽, 슥, 하고 움직임에 기인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살짝 열려 있는 문 앞에 숨듯이 선 희우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영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의 생각을 걷어 내며, 팔을 엉거주춤 들어 올렸다.
어쨌든 노크를 해야 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거든.
그럼에도 좀처럼 결단이 서지 않아 머뭇거리던 차였다.
쾅!
큰 소리로 문이 열리는 게 먼저였다.
희우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날의 밤보다 훨씬 더 매끈하게 성장한 서수혁은 형형한 눈발을 창처럼 내리꽂다가, 영 의외의 것을 본 이처럼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그러다가 희우를 뜯어볼수록, 탁하던 의문이 선명한 해답으로 변질되는 양 눈매의 힘을 차츰 풀었다.
저번과 같았다.
유리잔을 자신이 있는 벽 쪽으로 집어 던진 뒤 눈이 딱 마주쳤을 때.
그제야 희우는 한 가지 깨달음에 부닥쳤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게 내 집에 있었지.’
서수혁의 저런 노골적인 행동은 그런 의미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내내 희우라는 존재를 무시했던 게 아니라, 정말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잠시 후, 그의 눈길은 유유히 이동했다.
서수혁이 선수 치듯 먼저 문을 열어 버리는 바람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공에 떠 있게 된 희우의 손이었다. 그가 그걸 바라보는 걸 눈치채고서 희우는 쏜살같이 팔을 등 뒤로 숨겼다.
“새, 생리를 해요.”
“…….”
“속옷도, 생리대도 없어서…….”
“…….”
“멋대로 나가면, 화, 내실까 봐.”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걸음에 수도 없이 연습했던 말은 조금도 번지르르하게 흘러나오지 못했다. 서수혁의 저런 안광 앞에 놓일 때면, 피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앞에 둔 이처럼 실로 어려운 기분이 되었다.
간신히 입을 벌려 터뜨린 피력이 끝났을 때, 서수혁의 눈동자는 다시금 잠잠히 움직였다. 이번엔 희우의 가랑이 사이였다. 그의 시선이 옷자락 밑으로 숨겨진 은밀한 삼각지를 더듬고 있음을 깨닫고 희우는 크게 흠칫했다.
기껏 용기를 내어 말했는데 그는 침묵을 유지했다. 일자로 다물린 고고한 입매가 철옹처럼 쉬이 넘볼 수 없는 독자적인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여전히 두 눈은 희우의 사타구니에 다소 상스럽다 여겨질 만큼 빤히 꽂힌 채였다.
적막이 길어질수록 희우는 가지런히 놔둔 발끝을 움츠렸다. 연신 꼬물거리는 끄트머리를 타고 수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조금의 의사도 없는 섹스를 당하면서도 느끼기 힘들었던 수치심이 지금에서야 파도처럼 몰려드는 이유야 빤했다. 그날과 달리 현재의 서수혁은 아주 멀쩡한 맨정신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심오하게 살펴보자면, 그런 겉핥기식의 이유만은 아닐 터.
친구, 어쩌면 가족에게까지 낱낱이 고할 필요가 없는 속사정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여자가 치르는 그 문제는.
그걸 친하기는커녕 평생 멀찍이 거리를 벌린 채 살고 싶어지는 사내 앞에서 낱낱이 실토하는 심경은 전신이 화끈해지는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게 만들었다.
한곳에 콕 틀어박혀 도통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서수혁의 눈길이 그 수치스러움에 후끈함을 덧입혔다.
그는 희우가 제 입으로 고한 ‘생리’를 한다는 걸 육안으로 직접 확인이라도 할 기세로 고집스레 버티었다. 그의 자비를 간절히 바라야만 하는 희우의 처지로서는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는 모욕이었다.
희우의 낯빛이 약간의 활기를 되찾은 건 바닥을 가로지르는 서수혁의 그림자가 살짝 움직였을 때였다.
그에 용기를 입어 살포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서수혁은 여전히 오만방자한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턱을 위로 당겼다. 사내치고 빽빽한 속눈썹으로 둘러싸인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자 무기질 같던 동공이 조금 더 도발적인 분위기를 냈다.
“…….”
그러나 희우의 눈에 들어온 건 그런 사사로운 변화가 아니었다.
백자기를 떠올리게 할 만큼 맨들맨들한 뺨 위, 희미하지만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는 길쭉한 금이 나 있었다. 막 상처를 입었다가 이제 겨우 아문 걸로 추정이 되는 흉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희우는 그 정체를 헤아렸다. 성깔과 어울리지 않게 예술적으로 반반한 저 상판을 손톱으로 직 긁은 순간은, 머리보다 몸이 더 잘 기억하고 있단 것처럼 손끝 마디가 욱신거렸다.
서로의 눈길이 닿을 듯 말 듯, 미묘한 곡예를 타며 허공중에서 계속해서 어긋났다.
서수혁은 분명 처음에는 저 좋을 대로 눈알을 휘돌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희우의 시선을 따라잡고 있었다. 이내 그는 희우가 제 뺨에 그어진 흉터를 확인하는 걸 눈치채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서수혁이 보인 반응은 슈트의 재킷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드는 거였다.
“그래, 서원아.”
나직한 음성이 오늘따라 유독 좁게 느껴지는 집 안의 바닥에 은근히 깔렸다.
“생리대 좀 사 와야겠다. 그리고 속옷도.”
삐딱하게 기울인 고개의 귀퉁이에 핸드폰을 댄 서수혁은 희우가 간신히 입에 올린 단어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따라 읊었다. 그녀가 수치심을 느낀 것 자체가 이상한 일로 보일 만치 무신경한 작태였다.
곧 남자는 작게 웃었다.
“내가 생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 속옷을 왜 사니.”
“…….”
“여자 걸로.”
통보에 가까운 전화를 마친 서수혁이 핸드폰을 아래로 내렸다.
그는 그것을 티가 나지 않게 궁굴리며 고심에 잠긴 낯을 해 보였다. 여전히 눈은 희우를 향해 있으나 이번의 향방은 그래도 나름 건전했다. 아직 멍이 다 빠지지 않은 그녀의 뺨에 가 닿아 있었다.
분명 바라보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안광을 투명한 막처럼 감싸는 기세는 바람이 부는 것보다 조용하게 돌변했다. 그게 하나의 위협으로 돌아온 까닭에 희우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뒤로 물렸다.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겠다,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기 전 혹시 또 꼬투리가 잡힐까 두려워 얼른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했다. 가만 보면 그는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 같았으니.
“읏……!”
하나 매끈하게 빠진 사내의 손이 희우의 턱을 콱 움켜쥐는 게 먼저였다.
“누군가 했더니…….”
의미 모를 말을 뇌까린 그는 희우가 어렵사리 벌린 거리를 고작 한 보폭으로 바짝 추격했다. 아까보다 더욱 가까워진 몸과 몸 사이를 체감한 희우는 딸꾹질을 하기 직전처럼 숨을 덜컥거렸다.
그러나 서수혁은 브레이크를 모르는 사람처럼 남은 거리마저 확실히 좁혔다.
“너였구나?”
“네, 네?”
“겁도 없이 내 면상 긁어 놓은 년이.”
단정하고 깔끔한 음성이나 그 이면에서는 성난 파도가 철썩철썩 밀려오고 있었다.
노기, 라고 단정 짓기엔 약하나 그렇다고 아까처럼 마냥 심드렁한 태세도 아니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애매한 분개심……. 희우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사내가 언제는 뻗으면 잡힐 듯, 내다보는 걸 쉬이 허락해 주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서수혁이 대뜸 상체를 숙이기에, 희우는 불덩이가 날아온다 믿는 이처럼 얼른 뒤로 피했다. 그럼에도 그는 악착스레 따라왔다. 오히려 이런 날랜 행동이 성가신 것처럼 희우의 뒷덜미를 서슴없이 붙잡아 회피를 무력화시켰다.
희우의 투명한 동공 속으로 비치는 서수혁의 얼굴이 차츰 가까워졌다.
“아!”
신음은 예고 없이 번지는 통증 속에서 피어났다.
키스를 할 것처럼 턱을 비스듬히 꺾은 채 다가오던 서수혁의 입술은, 우려와 달리 멍 자국이 남은 희우의 뺨 위에서 정지했다. 곧 날렵하게 세워진 이가 푸른빛이 감도는 피부를 아작 베어 물었다.
“뭐, 하시…… 흣.”
서수혁의 기행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아예 확실한 자국을 남기려는 의도처럼 말랑하고 여린 볼살에 이를 차근차근 박아 댔다.
지금껏 겪어 본 아픔에 비하면, 볼을 자근자근 깨물어 대는 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수혁의 숨결이, 그의 온도가 너무 긴밀하게 다가오고 있던지라 희우는 어깨를 움찔움찔 떠는 과민 반응을 그칠 수 없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이제 알겠다.
내 뺨에 보기 좋게 생채기를 입혔으니 동등하게 너의 뺨에도 하나 남겨 주겠다는, 치졸한 복수심.
하지만 영 치졸하게 다가오는 그따위의 것도 서수혁이 하면 차마 무시 못 할 위력을 발산했다. 그건 현재, 좀처럼 맥을 못 추고 뒷걸음질 치기만을 반복하는 희우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
계속되는 후퇴는 갑작스러운 장애물에 틀어막혔다. 종아리를 짓누르는 힘을 이겨 내지 못한 희우가 그대로 풀썩 넘어갔다. 대체 어디까지 도망을 오게 된 건지 어느새 디귿 자 모양으로 놓인 소파가 있는 거실이었다.
상반신이 뒤로 젖혀지는 바람에 허벅지를 간신히 가리던 티셔츠 자락이 배꼽을 드러낼 만큼 들춰졌다.
서수혁의 눈길은 다시금 비부의 골 사이로 미끄러졌다.
모발처럼 연한 빛깔의 음모가 장막같이 자리한 삼각지의 안으로.
희우는 팬티를 입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얼른 가랑이를 붙이려 했다. 그 행동이 유독 부산스럽고 성마른 건, 오늘의 상태가 평소와 여실히 다르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서였다.
생리 중이었으니 아래에는 분명, 피가 맺혀 있을 게 뻔했다. 제 입으로 그 사정에 대해 고백하는 건 몰라도 아랫구멍의 내막까지 훤히 노출시킬 의향은 조금도 없었다.
“잠……!”
다음 순간 희우의 얼굴빛은 새하얗게 질렸다. 언제건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는 사내가 아님을 알지만 그는 오늘조차 여지가 없었다.
희우가 바둥거리며 숨기려 애쓰는 부위를, 양 오금을 잡아 휙 들어 올리는 식으로 간단히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체격에서 보이듯 힘의 차이가 여실했기에 희우의 밑구멍은 그 무엇으로도 보호받지 못한 채 사내의 시야각 아래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불쏘시개를 삼킨 듯 목구멍 끝이 타들어 갔다. 머리 한구석을 미쳐 돌게 만드는 수치감이 신경 전체를 먹먹하게 물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수혁은 젖통에 비하면 살집이 없어 매끄럽게 떨어지는 불두덩 아래, 수풀처럼 자리한 치모로 간신히 제 행색을 가리는 구멍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이제야 좀 기억이 나네.”
“저, 저기. 저기…….”
“그날도 피 났었지?”
안개에 가려진 듯 뿌연 감이 있던 동공은 희우의 외음부를 조사라도 할 기세로 속속들이 파헤칠 때마다 조금씩 선연해졌다. 정말로 까무룩 묻어 두었던 기억의 모래사장 속에서 그 파편을 하나둘씩 거머쥐는 것처럼.
자세가 자세인지라 희우는 시커멓게 벌어진 동공이 벌이는 추태를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냉한 성에를 박아 놓은 듯 번번이 오금을 저리게 하는 눈발의 태세를 이기지 못한 것처럼 질구가 이따금 움찔거렸다.
그가 제멋대로 좆을 뿌리 끝까지 처박고서 아랫도리를 양껏 흔들어 댈 때에 뿌연 눈물이 왈칵 터진 것처럼, 방어기제로서 작용하는 생리적 반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사내의 뭔가를 자극한 듯했다.
“끊어 먹을 것처럼 씹는 데다가 뒤지게 빡빡해서, 박는 맛이라고는 영 없었는데.”
“…….”
“희한하게 자꾸 생각이 나더란 말이지…….”
헛숨이 꼴딱 넘어갔다.
그러나 그건 나은 형국이었다. 가벼이 내던지는 투로 감회를 자아낸 서수혁의 손가락이 부숭부숭한 치모를 들추듯 쓱 쓸어 올렸을 때에는, 말 그대로 호흡이 아예 멎었다.
문신이 자리한 손가락은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탐험가처럼 꽤나 열띤 호기심을 품은 채로 이동했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생리한다고 말까지 했는데, 그럴 리가.
희우는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며 전신을 아르르 떨었다. 서수혁은 그날의 밤을 완전히 복기하고 싶은 이처럼, 이 촉각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양 한참이나 희우의 사타구니 사이를 지분거렸다.
엉덩이를 터뜨릴 기세로 쥐었다가 놓기도 하고, 가볍게 손바닥으로 찰싹 내려치기도 했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영역의 주위만 빙글빙글 도는 태도가 희우의 간을 바짝 졸였다.
잠시 잠깐 잿빛의 생각이 두둥실 떠오르기도 했다.
난 그저 생리대와 속옷이 필요해서 남자를 찾은 것뿐인데, 왜 이런 그림이 된 거지?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으면서도 이제 와 드는 건 후회가 전부였다.
그게 최고조를 찍은 건 애써 외면하던 사내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을 때였다.
“……악!”
우려대로, 조붓한 입구를 가르며 손가락이 안으로 파고든 것도 동시였다.
지난날의 고통을 꾸역꾸역 되새기려는 음심만이 자리 잡은 듯 실로 탐욕스럽고 독선적인 추삽이었다. 간신히 아물고 있는 질구 부근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느낌이 신경을 쑤셔 발겼다.
희우의 등허리가 어중간하게 휜 상태로 경직됐다. 길쭉한 손가락이 어거지로 벌리어 든 구멍은 이 이상의 출입을 금하듯 아가리를 꽉 다물었다.
“그래, 이렇게 좁아터져서…….”
희우의 성기가 필사적으로 내보이는 반응은, 서수혁에게 단지 무의식적으로 묻어 둔 기억을 들썩이는 자극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끙끙 앓는 희우를 알아채고서도 뻔뻔하게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는 짓을 벌일 수는 없었을 터.
헉, 얼굴을 옆으로 비튼 희우가 가죽 소파 겉면에 뺨을 문지르며 숨구멍이 틀어막히는 소리를 냈다.
구불구불한 길목을 점거하듯이 치고 들어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손가락 두 개가 뜨끈뜨끈한 점막을 쓱 헤집었다. 저번과는 달리, 돌입을 하자마자 질척이는 액체 소리가 가랑이 사이에 퍽 난잡스레 울렸다.
둘 다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내부에서 울걱거리며 손가락에 들러붙는 건 애액이 아닌, 시뻘건 피일 테니까.
“윽, 흑, 흐…….”
자비 없이 헤집어지는 속살이 경련하듯 내떨렸다. 질 안 깊숙이 들쑤셔지는 감각은 모조리 고통이었다. 그뿐일까. 찝찝하고, 불쾌하고, 건드리면 안 되는 곳이 뒤집어 까지는 느낌이었다. 신경이 완전히 비틀리는 감각을 따라 의식이 잘게 바스라졌다.
어느새 소파에 드러누운 희우의 위로 서수혁이 거방진 몸을 접붙였다. 그는 제 팔다리를 이용해 희우의 가랑이를 둔각의 형태가 되도록 만판 벌렸다. 그 상태로 외압에 못 이겨 열린 구멍을 몇 번 더 쑤석거린 뒤 느릿느릿 손가락을 빼냈다.
비뚜름히 이동한 사내의 눈길이 질구가 갖은 애를 쓰며 빨아 삼키던 손가락에 닿았다.
흑색의 기호 위로 붉은색이 뒤덮였다. 번들대는 건 체액이기는 하나 맑은 색은 아니었다. 벌그스름한 윤기를 내는 그것은 명백한 선혈이었다.
서수혁은 가르기 전의 나무젓가락처럼 나란히 붙이고 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벌렸다. 피 특유의 비린 내음이 물큰 끼쳤다. 마디의 틈새로 질척이며 늘어나는 음혈의 걸쭉한 작태가 추잡스러웠다.
피로 샤워를 하는 게 일상인 삶을 살아온 만큼 새삼스러울 게 없는 풍경일진대,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읍…… 헉! 아, 으……!”
바르작거리던 희우가 재차 억눌린 비명을 터뜨렸다. 분명히 피가 나는 걸 확인하고도 그가 다시 손가락을 집어넣은 탓이었다.
밑이 엉망진창으로 쪼개어지는 것만 같은 사나운 통증에 희우는 이가 부딪힐 정도로 턱을 떨며 도리질을 했다. 그가 아까처럼 멋대로 손가락을 철벅철벅 놀릴까 두려워진 그녀는 사타구니 사이를 기둥처럼 장악한 사내의 팔뚝을 갈급히 붙들었다.
“다, 다음에.”
그의 손가락이 아래 살점을 거침없이 젖혀 벌린 시점에서, 희우는 얼추 예견했다.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제게 거부권 따위 없다는 걸 확인시켜 줄 암울한 미래는 분명 다가오리라는 걸.
그건 눈치를 채든 못 채든 변하지 않을 일이었고, 현재의 상태로는 갖은 애를 써서 그가 하려는 짓을 유보시키는 게 최선이었다.
“다음?”
“제가 생리, 중이라 몸이 안, 좋…… 하면 너무 아, 아플 것 같은데…….”
“언제?”
생혈로 인하여 평소보다 예민하게 수축하는 점막을 보드랍게 긁어 올린 손가락이 질 안에서 조금씩 굽혀졌다. 내벽 살의 일부가 파인 것처럼 눌리는 느낌에 희우는 혼탁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다음 언제.”
아파서 말을 못 하자 꼭 확답을 받겠다는 듯 칼날 같은 음성이 떨어졌다.
“생리 끝…… 나면…….”
개미만 하게 속삭이자 위에서 작은 웃음이 떨어졌다. 그리 가볍지는 않으나, 조금 전처럼 독촉을 하려는 태세는 아니기에 제법 유순하게 다가오는 웃음이었다.
“당돌하네.”
“네……?”
“생리 끝나고 나서가 애 배기 제일 좋은 때 아닌가.”
조소가 서린 음성이 묘하게 짓궂었다.
희우가 물기 젖은 눈을 깜빡깜빡거리고 있자 그는 마디 전부를 박아 둔 손가락을 찬찬한 움직임으로 빼내었다. 퉁퉁 부은 속살이 별안간의 침습을 얼마나 지대한 혹사로 받아들이고 있던 건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퇴각마저도 버겁게 다가왔다.
“그래, 다음에.”
희우는 그가 물러나고서도 한참이나 꼼짝하지 못했다.
어디 하나 허투루 잡힌 게 없는 근육질의 몸을 따라 시커먼 그림자까지 발치에서 멀어지고서야, 흐트러진 몸을 추슬렀다.
저번과 같은 거실, 저번과 같은 심경이었다. 대관절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한 건지 머릿속이 먹먹하게 잠겨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안도 아닌 안도가 들었다. 그래도 지난날처럼 싫다는데도 억지로 섹스를 행하려 들지 않은 건 실로 다행인 일이었으니.
그럼에도 입은 충격이 옅어지는 건 아니었다.
납작한 아랫배가 보일 만큼 말려 올라간 옷자락을 확 잡아 내리는 손끝이 덜덜, 미약한 진동을 품었다.
저절로 달궈지려는 눈시울을 식히려 부단히 애를 먹었다. 자신이 변주처럼 달라진 반응을 보이면, 그게 또다시 사내의 회를 동하게 할까 봐 못내 두려웠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시체처럼 구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절로 숨을 죽이게 됐다.
조각이 나 부스러기처럼 나부끼는 의식을 어떻게든 긁어모은 건, 욕실 쪽으로 향했던 서수혁이 재차 나타난 시점이었다.
희우는 행여나 그가 또 변심하여 저를 우악스레 깔아뭉갤까 두려워져서 얼른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서 있는 부근을 지나친 그는 손에 남아 있는 물기를 수건으로 쓱 닦아 냈다.
“너 오늘 내가 왜 봐주는지 알아?”
수건을 한쪽에 내려놓은 그가 멀쩡해진 손으로 본인의 뺨을 톡톡 쳤다.
희우는 엉겁결에 자신의 뺨 위로 손을 올렸다. 슬그머니 닿고서야 피멍이 깃들어 지끈대는 부위임을 깨달았다.
그가 그 부상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도.
“그날은 최 사장 그 뽕쟁이가 지 좆대로 퐁당질을 해서…….”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서슬 어린 음성으로 뇌까리던 서수혁은,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여전히 뺨을 감싸 쥐고 있는 희우를 힐끗 일별하고는 작게 혀를 찼다.
“됐다, 아기가 뭘 알겠니.”
“…….”
“서원이 오면 문이나 열어 줘.”
왁스를 발라 깔끔하게 정돈한 머리칼을 한 번 쓸어 올린 서수혁은 성큼성큼 걸어 금세 시야에서 증발했다. 그가 나가는 동선을 좇아 눈알만 굴리던 희우는 현관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나고서야 안도의 숨을 터뜨렸다.
여전히 사타구니 사이에는 얼얼한 통각이 들불처럼 잔류해 있었다. 희우는 곧장 욕실로 향해 호스를 들고서 뒷물을 했다.
남아 있던 아릿한 충격이 쏟아지는 물줄기에 섞여 흘러가는 듯했다.
오늘 당한 짓은 결코 예사롭지 않으나 서수혁과 엮인 이래 기상천외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짓을 수두룩이 당해서 그런지 그사이에 쥐톨만 한 내성은 생긴 모양이었다.
사내의 지문이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꼼꼼히 씻은 뒤에야 희우는 욕실을 빠져나왔다. 용무를 다한 수건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서수혁과 달리, 그녀는 물을 닦아 낸 수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들고서 거실 근방을 서성거렸다.
문득 지나치게 넓어 황량하게까지 느껴지는 내부가 눈에 가득 들어찼다. 오늘 이 소란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는 남자에게 똑똑히 각인되었다. 그러니만큼 조금은 실내를 살펴볼 용기가 났다.
그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동선으로만 이동했기에 소파 너머의 부근까지 가 본 적은 없었다. 오늘로써야 처음 발돋움하는 통창 앞에 서서 깔끔하게 쳐진 커튼을 쓱 걷어 냈다.
“……와아.”
제가 산송장처럼 지내는 방에는 바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창뿐이었다. 그래서 희우는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나 다름없는 이 까마득한 풍경을 처음 보았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높은 곳에 있었구나. 뭉게뭉게 떠오른 구름과 맞닿을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층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만큼 아득함을 끼치는 감옥이었다.
희우는 몸을 완전히 창틀에 기댔다.
창을 개방할 수 있는 손잡이가 따로 없어서 오직 일방적인 햇살의 침습만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간만에 보는 바깥 풍경이었다.
그리 낯설지 않은 그림임에도 확 트이는 외부를 보자 이곳에서 떠안아야만 했던 폐쇄성의 색채감이 연해졌다. 그래서 자꾸만 통창으로 밀착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윤서원이 도착한 건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그가 자신이 찾아왔다는 기척을 알리기 전까지 희우는 한참이나 유리창에 이마를 철썩 대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아득함이 괴어올랐다.
도망치지 않기를 잘한 거 같아.
이 높이라면 로비까지 내려가는 데 한참은 걸렸을 테고, 그 결과는 필시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붙들리는 식으로 이어졌을 테니까.
그저 상상에 그쳐 다행이라 여겨지는 생각을 한쪽으로 미뤄 두고서 희우는 초인종 소리가 나는 현관으로 어물어물 향했다.
내부가 하도 넓어서 현관을 찾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초인종은 아무래도 기척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희우가 현관 쪽에 다다랐을 때 도어 록이 알아서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한쪽 벽에 숨듯이 기대선 희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윤서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꽤 커다란 면적을 자랑하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당당히 나와서 마주하기에는 꼬락서니가 영 형편없어서 희우는 그가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눈치가 여간 빠른 게 아닌 모양인지 그는 그런 희우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고 곧장 거실 쪽으로 발을 뻗었다.
희우는 주저하다가 그 뒤를 졸졸 따랐다.
“이거.”
내려놓은 쇼핑백에 시선을 꽂은 윤서원이 개중 두 개를 집어 내밀었다. 슬쩍 윗면을 벌려 보았다. 한쪽에는 생리대와 속옷이, 그리고 한쪽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홈웨어가 담겨 있었다.
희우는 그것을 품에 소중히 안고서 호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쇼핑백 안에는 팬티뿐만 아니라 브래지어까지 포함된 채였다. 사이즈를 알지 못한 채 구매해서인지 브래지어는 조금 작고 팬티는 조금 컸지만, 없는 것보다 백 배, 아니 천 배는 나았다.
나름대로의 뒤처리를 마치고 나오고서야 윤서원을 조금쯤은 담담히 마주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여전히 어색하고 떨떠름한 게 덜어지지 않는 분위기이기는 했다.
“밥은 먹었어?”
“아직…….”
그가 목각인형처럼 뚝딱대는 희우를 응시하다가 남은 쇼핑백을 마저 벌렸다. 그 안에서 꺼낸 일회용 식기들이 커다란 식탁 위에 하나하나 나열되었다. 잠시 후 맛있는 냄새가 공기 중에 얽혀 들었다.
“혹시 몰라서 사 온 건데. 죽이랑 한식이니까 편한 쪽으로 골라 먹어.”
희우는 윤서원이 가리키는 위치로 가 앉았다. 며칠 내도록 제대로 먹은 게 없다 보니 손은 한식보다 죽으로 가 닿았다. 뚜껑을 열자 참깨와 김 가루가 솔솔 뿌려진 전복죽이 보였다.
희우는 그가 주는 숟가락을 들어 크게 한술을 떴다.
“지금까지 굶었어?”
“그냥…… 과일이 있길래요.”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어서 후, 하고 불다가 윤서원의 말에 멋쩍은 투로 답했다.
그러자 맞은편의 윤서원이 조금은 안쓰럽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게 꼭 미처 헤아려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처럼 보여서 희우는 외려 얼떨떨해졌다.
불현듯 신기해졌다.
이 기묘한 납치를 통해 희우가 겪어 온 세 사람은 한 집단이라고 묶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근데 어쩜 이렇게 다 다르지. 굳이 서수혁까지 갈 것도 없었다. 윤서원과 도끼도 하늘과 땅만큼의 성향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나 도끼는 전에 윤서원을 분명히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럼 윤서원이 그보다 상사라는 건데, 저토록 다감하고 섬세한 성미의 사람이 그토록 조악하고 거친 부하를 대체 어떻게 거느리고 있는지 근원적인 의문이 피어올랐다.
물론 그건 희우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기에 그녀는 수저에 뜬 죽을 입에 밀어 넣는 데에 집중했다.
며칠 만에 제대로 된 탄수화물을 섭취하자 배 속이 고요히 요동을 쳤다. 그간 과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충만히 메꾸어지는 느낌에 희우는 부지런히 숟가락질을 했다.
그녀가 늦은 식사를 시작한 사이, 포장된 한식 용기를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넣은 윤서원은 남은 쇼핑백을 정리하며 말했다.
“앞으로 냉장고에 음식 채워 둘 테니까 챙겨 먹어. 대표님은 이런 쪽으로 무신경하시니 네가 알아서 챙기는 게 좋을 거야.”
“아, 네. 감…… 사합니다.”
입에 밀어 넣은 죽이 뜨거워서 나름대로 식히느라 답이 어정쩡하게 흘러나왔다. 윤서원은 그런 희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또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투명한 물이 담긴 컵이 들려 있었다.
갑작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진 건 그 행동에서 익숙한 누군가가 언뜻 스쳐 지나간 탓이었다.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하는 희우를 위해 희본은 늘 이렇게 찬물을 떠다 주었다. 가끔은 귀찮을 법도 한데 그는 그런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식사를 하다가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는 했다.
희우는 쥐고 있던 일회용 숟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입 안에서 뭉그러진 전복을 오물거리다가 꿀꺽, 간신히 삼켜 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가슬가슬거렸다.
“저, 그…….”
“응?”
눈치라도 보듯이 숟가락으로 애먼 죽만 휘휘 젓던 희우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윤서원과 눈이 딱 마주쳤지만 그래도 서수혁이나 도끼만큼 겁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만난 이래 제게 한 번도 폭력적으로 굴지 않았기 때문에.
“오빠 일은, 어떻게 됐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뭐…… 여전해.”
제 피붙이가 이들에게 선사한 난관에는 영 진척이 없는 모양인지 윤서원이 곱게 뻗어진 눈썹을 살짝 모았다. 그는 직후 착잡한 숨을 내쉬었다.
“너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해 주면 좋겠다.”
“네…….”
“마저 먹어.”
그는 잠깐의 대화로 완전히 멈춰 버린 희우의 손을 눈짓했다. 단정하지만 힘이 있는 시선에 희우는 손가락을 마저 움직여 고소한 죽을 한 움큼 떴다. 그러나 그것을 입으로 가져오는 대신 허공에 띄운 채로 멈추었다.
아까와 달리 퍽 자신이 없는 것처럼 눈꺼풀을 사선으로 내리깐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운을 뗐다.
“혹시.”
“응?”
“오빠가 집에 들렀을 가능성은…….”
“왜? 희본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거 같아?”
희우는 뒤늦게야 숟가락으로 뜬 죽을 한입 가득 머금었다. 회피보다는 모르겠는 기분이 커서였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집으로 돌아왔을지가 궁금하다기보단, 오빠가 자신을 이렇게 버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희망이 잔존해 있다는 쪽이 옳았다.
태풍처럼 부닥친 일에 의하여 잘게 갈라지고 파훼되어도 그간 쌓아 온, 오직 단둘뿐인 피붙이와의 기억이 선사하는 어떠한 희망이었다.
가끔은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애먼 것에 제 목숨줄을 맡기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희본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희우가 아는 그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저를 버리고 떠났다면 그건 그의 의지라기보다는 어떠한 외부의 개입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들 만큼.
특히나 그가 속해 있는 세계가 이런 위험천만한 일이 일상처럼 도사리고 있는 세계임을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음.”
“그래서 말인데, 제가 집에 한 번만 다녀오면…… 안 될까요?”
윤서원이 다시금 웃었다.
그제야 희우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는 대답이나 반응을 하기가 난처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휘마는 듯했다. 짐작대로였는지 그는 그에 관해서는 명확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희우는 급히 숟가락을 내리고서 등줄기를 빳빳하게 세웠다.
“도망가려는 거 절대 아니에요!”
“…….”
“못, 못 믿으시겠다면 같이 가셔도 돼요. 그게 어렵다면 다른 사람을 붙이셔도 되고……. 그냥 저는.”
“…….”
“오빠가 진짜 이렇게 사라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자기주장처럼 강하게 솟구쳐 오른 육성은 차츰 기세가 잦아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성대에 힘을 주었던 희우는 땀이 맺히기 시작한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그럼에도 한 줄기의 빛은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윤서원에게서 두 눈을 떼지 않았다.
서수혁이나 도끼였다면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부탁이었다. 그들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면, 얻어맞지나 않으면 다행인 일일 테니까.
그나마 윤서원에게서는 적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줄 여지 정도는 느껴지기에 마음을 다잡고 꺼낸 발언이었다.
짐작대로 윤서원은 오묘한 표정으로 미간을 긁적였다. 일단은 당장 내치며 저를 억누르려는 포악한 기색은 풍겨 나지 않았기에 희우는 수런거리는 가슴 안쪽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차피 대표님 선에서 잘릴 것 같기는 한데…….”
“…….”
“그래도 말씀은 한번 드려 볼게.”
조마조마한 심경으로 그의 반응만을 기다리던 희우의 낯이 조금쯤 해사해졌다. 고맙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전혀 과장이 느껴지지 않는, 그만큼 진심으로 가득 찬 행동이 웃기기라도 했는지 윤서원은 바람 빠진 미소를 터뜨렸다.
볼일이 끝나자마자 그는 군더더기 없이 발을 돌렸다.
현관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아서 희우는 앉아 있던 몸을 어정쩡히 일으켰다. 끼익. 의자가 뒤로 밀리며 대리석 바닥과 부딪혀 마찰음이 났다.
윤서원이 멈칫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희본이 말이야.”
그의 날렵한 턱선이 희우가 있는 뒤편을 향해 비스듬히 틀어졌다. 앞도 뒤도 아닌, 옆의 방향으로 빗겨 나가는 눈길이 동트기 전의 하늘처럼 어둑하고 무거웠다.
“넌 모른다고 했으니 큰 기대는 안 해. 그래도 여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대표님 찾아와서 빌라고 해.”
“…….”
“팔이나 다리 하나 포기할 각오는 해야겠지만 장부 건드리지 않고 가져다 둔 다음에 진심으로 빌면 대표님께서도 받아 주실 거야. 그만큼 희본이를 여러모로 아끼셨으니.”
나직한 음성이 바닥에 깔렸다. 착잡함이 배로 짙어진 기색이 선연했다. 윤서원은 그 말을 끝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겨진 희우는 한 박자 후에야 그 의도를 짐작했다. 그는 혹여나 자신이 오빠와 내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고서 진심 어린 설득을 권하는 것이었다.
그에 희우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많은 감정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쳐 왔다.
적어도 이곳에서 오빠의 존재란 다른 이로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였고, 그래서 꽤나 오빠를 아끼는 사람이 많았고, 이들이 이토록 괴팍하게 구는 것은 그만큼 아낀 이가 뒤통수를 쳤다는 화풀이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자신은 정말로 오빠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그래서 조금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설득을 권하고 싶은 건 외려 희우 본인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당장 오빠의 소재도 모르는데 어떻게 설득을 할 수가 있을까.
희우는 그새 살짝 식은 죽을 휘적거렸다.
아마 이걸 먹으면 배는 차겠지만 마음속의 허함은 덜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벌어진 잇새로 무게를 잴 수 없는 숨이 터져 나왔다.
* * *
도어 록이 눌리는 전자음에 희우는 눈이 동그래졌다.
입에 물고 있던 젓가락을 스르르 빼는 동시에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희우가 앉은 다이닝룸 안으로 기다란 음영이 불쑥 침범했다.
실제의 인물은 아니었다. 단지 제 침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는 서수혁의 그림자였을 뿐.
그럼에도 희우는 꼭 무람없는 침공을 당한 이처럼 딱딱히 굳었다. 오죽했으면 젓가락 한쪽이 주르륵 흘러내려 식탁 위로 떨어졌다.
당연히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이토록 이른 퇴근은 희우가 여기 머물며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몇 시지?
확실한 건 6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라는 거였다. 희우는 늘 서수혁과 겹치지 않는 동선으로 움직여 윤서원이 아침마다 챙겨 두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니.
‘얼른 들어가야지.’
희우는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삼켰다. 다 먹지 못하여 음식물이 남은 용기를 들고 냉장고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죄다 버리면 더 빨리 정리를 마칠 수 있을 테지만 그러기에는 영 아까웠다. 풍족하게 먹고 지내지 못한 과거의 나날이 맘속에 남아서 그런 행동을 죄악으로 규정지었다.
하는 수 없이 희우는 용기를 잘 갈무리해 냉장고에 밀어 넣었다. 가짓수가 꽤 많아서 최소 두 번은 움직여야 했다. 아직 수납하지 못한 용기를 챙기기 위해 재차 식탁으로 향하던 희우는 어느새 거실로 나온 서수혁을 발견하고 다시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다 먹었니?”
미처 자리를 다 정돈하기도 전에 나타난 서수혁은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미끈한 입매가 벌어지며 흘러나오는 말에 희우는 저도 모르게 기침을 터뜨릴 뻔했다.
“네, 네.”
아까 침실로 향할 때 이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기에 관심이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낭패라는 생각에 희우는 식탁을 짚은 손가락만 꼬물거렸다.
사선으로 기운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지탱한 서수혁이 삐딱한 눈길로 희우를 물고 늘어졌다.
“생리는 끝났고?”
명치 끝에 뭔가가 탁 걸린 것처럼 호흡이 힘겨워졌다. 희우는 몸이 비틀거리는 걸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며 입술을 감쳐물었다. 칠흑빛의 동공 속으로 번뜩이는 안광은 확실히, 위험했다.
그게 속내에 박혀 드는 순간 희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바로 아차 했다. 지난번에 이런 식으로 고갯짓을 했다가 무릎이 짓밟히지 않았었나.
행동을 정정하듯 쏜살같이 입을 벌렸다.
“아직…… 이요.”
“그래?”
답에 답을 더하는 태도에 서수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가 손을 들어 자기 쪽으로 다가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희우는 쭈뼛거리며 그가 앉은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서수혁은 무얼 하기에 참으로 어중간한 위치에서 멈춰 선 희우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에 겁을 먹은 희우가 후다닥 더 다가갔다. 그럼에도 펴지지 않는 미간은 비로소 희우가 어느새 벌려 앉은 두 다리 사이에 갇히듯이 선 후에야 조금쯤 누그러졌다.
그는 소파 옆 탁자에 놓인 지포 라이터를 쥐어 희우에게 휙 던졌다.
엉겁결에 그를 붙잡자마자 서수혁이 라이터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담뱃갑을 흔들어 연초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희우는 눈치껏 지포 라이터 뚜껑을 열고서 휠을 돌렸다. 잘 해 보지 않아 어색하고 굼뜬 손길 위에서 불꽃은 피어오를 듯 피어오르지 않았다.
의외로 서수혁은 두 손가락 사이에 막대기를 끼운 채, 그 속 터지는 행동을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치이익. 허공중에 따듯하면서 따가운 기운이 퍼졌다. 막대기의 끄트머리가 불살에 잡아먹히며 지글지글 타올랐다. 서수혁은 점화된 담배를 한 입 빨아 물며 뒤로 상반신을 젖혔다.
“나 지금 무슨 생각 중이게?”
지포 라이터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전긍하던 희우의 신경을, 동굴 같은 저음이 꽉 붙잡았다.
“이걸 또 봐줘야 하나?”
너저분하게 퍼진 연기 사이로 어스름 비쳐 오는 서수혁의 낯가죽이 유난히 시렸다.
“한 번이면 뺨 터진 값으로 충분한 거 같은데…….”
실내임에도 개의치 않고 애연을 즐기던 사내가 탁하게 끄집어내 놓은 혼잣말 같은 언사에 희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제 팬티를 뒤집어 까 보지도 않았는데 생리가 끝난 걸 어떻게 안 걸까. 통상적인 사내와 달리 생리에 대해 얄팍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져도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를 간파한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의 굵직한 허벅지 사이에 갇힌 희우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내 모진 사내의 눈과 딱 마주치는 순간, 이러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님을 깨우쳤다.
“그게 사실, 사실은 아직 찢어진 데가 조금 아파서…….”
변명이지만 진실이기도 했다.
지난날 본인의 설명에 의하자면 약에 취해 있던 사내가 거대한 살덩이로 무참히 쑤셔 발긴 구멍의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그래서 생리 기간 동안에도 뒤처리를 할 때에 몇 번이고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이제야 겨우 고통이 옅어진 상태에서 지난날 그, 팔뚝만 하던 걸 고스란히 받을 자신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먹구름 같은 겁만 잔뜩 몰려들었다.
중언부언 터뜨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턱이 콱 붙잡혔다. 연약한 뼈가 빠각, 으스러질 것 같은 힘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지껄였어야지.”
그녀 쪽으로 상체를 세운 서수혁이 야수처럼 번뜩이는 안광을 내비쳤다.
“누가 너한테 거짓말하래?”
“…….”
“나 그거 되게 싫어해. 하지 마.”
머릿속에 똑똑히 박아 두고 있으라는 것처럼 음절 하나하나에 실린 서슬이 가히 시퍼랬다.
희우는 명심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우듯 얼른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호들갑스러우나 그만큼 절박한 태도에서 진심을 느꼈는지 서수혁이 턱을 아작 낼 기세로 거머쥔 손아귀 힘을 슬며시 풀었다.
마디마디가 곧게 이어진 손가락이 이제 멍 자국이 희미해진 희우의 말랑한 뺨을 쓱 쓸어 올렸다. 덩달아 연해진, 그가 깨문 상처 역시 얼떨결에 휩쓸렸다. 촉감 좋은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노는 애처럼 그는 그것을 꼬집었다가 꾹 눌러 비벼 대며 손장난을 쳤다. 살짝살짝 통증이 번졌지만, 그렇다고 쳐 낼 용기는 추호도 없었다.
“근데 뭐.”
찹쌀떡처럼 희고 고운 뺨을 한참이나 유린하던 서수혁의 손가락이 슬그머니 밑으로 빠졌다.
“박을 수 있는 구멍이 그거 하나는 아니지 않니.”
그의 손가락이 갈고리의 모양으로 변하여 희우의 잇새를 갈랐다. 백치처럼 의도를 단번에 캐치하지 못한 희우의 입술은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벌어졌다. 굽어진 손가락의 끝마디가 뜨끈하고 보드라운 혓바닥의 중앙을 꾹 눌렀다.
처음에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 입 속에 막대 같은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고서 점막을 끈적하게 훑는 무도한 움직임이 그걸 도저히 모를 수가 없게끔 했다.
손끝이 다시 한번 파르르 떨려 왔다. 숨겨 봤자 어차피 사내의 시야에서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의 약동이었다.
당장 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됐다.
‘집에 한 번만 다녀오면…… 안 될까요?’
직직, 낙서라도 한 것처럼 지저분해지는 머릿속으로 윤서원에게 건넨 청탁 아닌 청탁이 두둥실 떠올랐다. 만약 그 보고가 현재 사내에게 올라간 상태라면, 지금 그의 비위를 상하게 만드는 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내게 이걸 거부할 만큼의 힘이 있을까.
골몰해 봐도 답은 틀에 박힌 듯 명확했다. 희우는 하는 수 없이 서수혁의 두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만무도하게 벌어진 국부가 시선을 꼼짝 못 하게 사로잡았다. 대체 어느 틈에 부풀어 오른 건지 알 수 없는 성기의 윤곽이 바지춤을 뚫을 기세로 솟아올라 있었다.
형용이 벌써부터 대단스러웠다. 검은 바지춤에 가려져 시야에 노출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의 모양새가 번히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미 밑구멍으로 받아먹은 전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크기가 신경줄을 꼬집었다.
희우는 침을 꼴깍 삼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담배 끄트머리를 꼬나문 서수혁이 한쪽 눈썹을 들썩거렸다. 채근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 오연하고도 방자한 태세가 희우의 혀끝을 바르르 떨게 만들었다.
그녀의 손은 조금 전 라이터를 켤 때처럼 꽤나 진득이 헤맸다. 그래서 발딱 선 것만 빼면 단정하기 그지없는 바지춤을 벌리고서 흉흉한 살덩이를 끄집어내는 걸 성공했을 때에는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이 살짝 맺혔을 지경이었다.
서수혁의 좆은 잔상과 한 치의 다를 바도 없었다. 아니, 생각은 대체로 희망에 근거한다는 말처럼 실제는 잔상보다 조금 더 우악하고 큼지막하게 보였다. 아직 완전히 발기하지 않았는데도 원체 부피나 질량이 막대하다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희고 고운 자지의 선단이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번들거렸다. 미끈한 귀두로부터 어느 하나 휨 없이 곧게 내려오는 기둥 역시도 심미적으로 우아한 뭔가를 뽐내듯이 꼿꼿하게 자리했다.
대체적으로 허연 편인 피부 가죽을 따라 그 안에 맴도는 혈관의 푸른빛이 은연하게 비쳤다.
그나마 흉측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거뭇한 수풀 더미에 모습을 감춘 음낭 정도였다. 그러나 그도 거무죽죽하고 조악한 타인의 불알에 비하면 실로 곱게 빚은 모양새를 선보이는 격이었다.
차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 좆과 대치라도 하듯 아득한 눈길만 주던 희우는 가마 위로 떨어지는 웃음소리에 고개가 절로 상승했다.
“저번에도 이러지 않았니?”
“…….”
“예쁜 거 알겠는데 그렇게 할 때마다 번번이 넋 뺄 생각이야?”
민망이나 수치 따위는 쥐톨만큼도 느끼지 않는 면피로 그가 잘도 지껄였다. 솔직히 희우에게는, 네 맘 잘 알겠으니 감상은 그쯤 하고 빨리 입에 처넣기나 하라는 재촉의 연장처럼 다가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희우는 그의 자지가 성기라는 남사스러운 부위답지 않게 반드럽고 훤칠하여 눈길을 준 게 아니었다.
정말 단지 감상의 목적에 그친다면 그와 같은 의미로 넋을 잃을 수도 있었겠지만, 윗입이건 아랫입이건 이걸 받아 물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분히 곤혹스럽기만 했다.
희우는 그의 허벅지를 배회하며 한참 망설이던 손을 뻗었다. 구불구불한 거웃으로 뒤덮인 밑동을 조심스레 감쌌다.
손끝으로 닿는 감촉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했다. 질 점막에 눅진히 비벼지던 감촉과는 달랐다.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힘이 있었다. 퍽 서늘하게 보이는 외양과 달리 손바닥에 들러붙는 온도는 제법 뜨거웠다.
서수혁이 후, 하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공중에 퍼지는 매캐한 연기가 희우를 덮쳐 왔다. 암흑에 잠기는 기분으로 그녀는 작고 선 얇은 입술을 더듬더듬 벌리었다. 입에 넣기 편하도록 기둥을 제 쪽으로 기울여 귀두를 조심스레 물었다.
“음.”
선단이 눅눅한 입 안에 감싸여 타액으로 젖어 드는 감각이 썩 나쁘지 않았는지 서수혁이 이완된 숨을 흘려보냈다.
희우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고작 무딘 세모꼴의 귀두관 하나를 물었을 뿐인데 입 안은 벌써 공간이 부족했다. 사내의 성질머리처럼 한악스러운 장악력이 따로 없었다. 그런고로 끝 지점만 앙 베어 물고 어쩔 줄을 몰라 하자 담배를 삐딱하게 문 서수혁이 미간을 얇게 일그러뜨렸다.
“뭐 하니? 자지 물다 기절했어?”
“읍…….”
“고작 그거 받아 처먹고 잘도 빨겠다.”
소슬한 어조와 함께 서수혁의 손이 희우의 뒤통수를 감쌌다.
놀라 흡, 숨을 들이켜는 동시에 흔들어도 털어 낼 수 없을 듯한 힘이 그녀의 고개를 앞으로 잡아당겼다.
즈윽- 맨들맨들한 대가리가 희우의 볼 안쪽 살을 짓궂게 긁고서 조금 더 위로 솟구쳐 올라 완만한 경구개를 퍽 두드렸다.
“입이 이렇게 좁아서 어디다 쓰나…….”
“우, 읍.”
“어떻게 된 게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좁네.”
희우가 제 굵직한 성기를 머금기 버거워하는 건 목젖 안쪽까지 꾸역꾸역 쑤셔 박고 있는 서수혁이 더 잘 체감하는 바였다.
담배를 쥔 손가락이 희우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걷어 내고는 가냘프게 떨리는 눈꺼풀을 더듬거렸다. 손끝에 착 감겨 오는 무해한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곧 서수혁의 눈길이 고요히 이동했다. 허벅지 부근에서 느껴지는 작고 소소한 따가움 때문이었다. 희우가 어느새 손톱을 세워 그 부근을 짓이기고 있었다.
기실 따갑다고 평할 수도 없는, 굳이 정의하자면 벌레가 내려앉았나 싶은 수준의 자극이었다. 그럼에도 그게 희우에게 있어서는 악에 받쳐 벌이는 최대의 발악인 양 다가와서 절로 신경이 꽂혔다.
정작 희우는 자신이 감히 그의 허벅지를 할퀴고 있는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들어와 혓바닥을 문지른 귀두가 점막을 끈적하게 짓누르며 조금씩, 조금씩 들어올 때마다 숨통이 틀어막혔다. 외압에 의해 벌어지는 하악을 따라 턱의 이음새가 뻐근하게 저려 왔다.
이거, 어디까지, 들어오는…….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목구멍이 쩍 열렸다.
끝까지 밀고 들어올 작정이 아니라면 진입하기 어려운 통로가 안을 후려치는 좆질 한 번에 무력히 벌어졌다.
내밀한 안쪽에 자리한 연구개가 들썩 들어 올려지며 그 안으로 짓쳐 들어오는 하얀 좆은 먹이를 찾아 끝도 없이 파고 들어오는 탐욕스러운 뱀을 연상시켰다.
습한 자극에 힘입은 선단이 울걱울걱 흘리는 진한 쿠퍼액으로 두툼한 몸체가 조금씩 젖어 들어가는 게 그 음충한 느낌을 고양시켰다.
희미하게 뜨인 희우의 눈동자 초점이 부스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원활하지 않던 호흡 길이 완전히 틀어막혔다. 그럼에도 가장 두려운 건 길쭉한 기둥이 자꾸만 구강 살을 실쭉 밀어 올리며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으, 컥…… 우, 흡.”
숨넘어가는 소리가 종종 성대 안쪽에서 그윽하게 울렸다. 서수혁은 그게 무슨 감미로운 노랫소리라도 되는 양 즐기며 희우의 협소하면서고 쫀득한 입 구멍에 느릿느릿 살덩이를 치댔다.
무아지경으로 질 안을 쑤셔 발길 때와 비교하자면 그리 거칠지 않은 몸짓이나 문제는 지금 그의 성기 끄트머리가 희우의 조붓한 멱통 안쪽까지 들어찼다는 사실이었다. 그 상태에서는 가벼운 추삽질만 벌여도 희우는 전신이 꼬챙이로 들쑤셔지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꿰뚫리는 듯한 압박감을 견뎌 내야만 했다.
“흐, 어, 읍, 응……! 웁!”
한쪽 손으로는 담배를 태우며, 다른 쪽 손으로는 희우의 뒷덜미를 틈 없이 거머쥐고서 여유작작 아랫도리를 휘돌리며 입보지를 헤집는 데에 열중하던 서수혁은 국부가 통으로 욱신대는 느낌에 단숨을 터뜨렸다.
문득 내려다본 아래, 처량하게 붉어진 눈시울이 시야를 서슴없이 침범했다.
작고 동그란 뒤통수를 틈 없이 감싸 쥐고 있던 손이 소리 없이 움직여 희우의 가는 목덜미를 감쌌다. 전체적으로 더듬어 주다가 살짝 구부린 엄지로 목울대를 쭉 쓸어내리더니 도도록이 튀어나온 중앙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여자는 겉으로 목젖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내부의 길을 차지하고서 볼록하니 몸체를 드러내는 건 제 튼실한 좆대가리였다.
“여기까지 들어왔나…….”
새까만 침잠에 젖어 든 저음이 허공을 적셨다. 서수혁은 진심으로 유쾌한 일을 대하듯이 제 성기 기둥의 진입 현황을 희희낙락하게 가늠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고통스러워서 소리 없이 눈물만 줄줄 터뜨리던 희우는 그가 욕망을 터는 허리 짓으로 협소한 숨길을 콱 짓이겨뜨리는 순간, 눈가에 맥없이 힘을 풀었다.
“끕, 흐…….”
연한 빛깔의 동공과 그 위를 풍성하게 감싸는 속눈썹이 바르르 떨었다. 직후 그것은 혼절하기 직전처럼 유약하게 무너져 내렸다.
서수혁은 그녀가 진짜로 까무룩 기절하기 전에 성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그사이 완전히 피가 몰려 퉁퉁 불거진 좆은 희우의 타액으로 칠갑을 하여 미끈둥하게 윤기를 냈다.
퉁, 하고 수직으로 올라선 살덩이를 쥔 그가 힘 풀린 희우의 이목구비 여기저기에 몸통을 살가이 문댔다. 좆기둥이 말랑한 볼살과 높다란 콧대, 아직 힘이 돌아오지 않아 연약하게 늘어진 눈두덩과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터진 입술 가장자리를 숨 가쁘게 누볐다.
희우는 몸을 뒤로 물리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아 냈다. 솔직히, 몽둥이 같은 것으로 꿰뚫린 목구멍이 아릿아릿거려서 대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편이 옳았다.
“젖 까 봐.”
서수혁이 몸을 살짝 뒤로 빼며 명령했다. 파정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듯 그는 희우의 침으로 추근추근하게 수몰된 자지를 머리부터 뿌리까지 짓주무르는 용두질을 자행하며, 나른하게 잠긴 시선으로 젖가슴을 겨냥했다.
밭은 숨을 터뜨린 희우는 최대한 빨리 이 사태를 끝내고 싶어서 얼른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펠라티오의 난폭한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그런지 자꾸만 손이 단추 위에서 헛돌았다.
서수혁이 낮게 혀를 차는 게 들리자 마음이 한층 더 조급해졌다. 그게 최고치를 찍은 건 서수혁이 헛손질을 하는 희우의 손을 탁 쳐 냈을 때였다.
제 머리채나 뺨을 호되게 때릴 것만 같던 손은 예상외로 희우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주었다. 희우의 손아귀에서는 새초롬한 태세로 잠겨 있던 그것들은 서수혁의 손짓 아래에 가벼이 함락되어 앞섶을 활짝 벌리었다.
이윽고 드러난 흰 윗가슴을 본 서수혁이 눈썹을 추켜 올렸다.
“뭐니, 이건.”
“…….”
“서원이가 쓸데없는 짓을 했네.”
이전에 없던 브래지어를 발견한 그의 눈초리가 영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휘었다.
“하다못해 사이즈라도 맞추든지. 빨통은 다 삐져나와 가지고.”
희우는 남자의 심기가 불편해진 걸 깨닫고 얼른 브래지어를 벗으려고 했으나 그 전에 서수혁이 와이어가 촘촘히 끼워진 둘레에 손가락을 걸어 위로 훅 들추는 게 먼저였다.
그의 말마따나 작은 사이즈의 컵에 간신히 모아져 있던 살집이 곡선의 형태로 출렁이며 과감하게 내려앉았다.
서수혁은 소담히 내려앉은 젖가슴, 그 중심에 자리한 산호색 알맹이에 시선을 박았다. 야들야들한 젖꼭지를 게걸스레 핥는 상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시하며 그가 못다 한 수음에 열을 올렸다.
눈으로 상스럽게 범해지는 기분에 희우는 아랫입술을 소리 없이 깨물었다. 예쁘고 흉측한 살기둥이 함부로 쑤셔 댄 목구멍은 뒤늦게 부어오르고 있는지 목 안쪽이 칼칼했다.
꼴깍 삼키던 침이 별안간 중턱에서 걸린 건 서수혁이 걸쭉한 좆물을 뽑아내겠다고 한참을 부지런히 자위질에 임하던 차였다.
완전히 핏대를 세운 좆기둥이 대뜸 희우를 향해 숙여졌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입 안을 쑤걱쑤걱 헤집어 대던 귀두가 핏줄 선 사내의 아귀힘을 입어 벌름이는 요도구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흣…….”
서수혁은 오목하게 파인 귀두 구멍에 희우의 젖꼭지를 끼울 것처럼 그 위를 살살 궁굴렸다. 미끈거리는 점액의 감촉이 희우의 젖무덤에까지 들러붙었다.
물을 질질 흘려 대는 홈은 한참을 헤매다가 간신히 젖알을 쪽 빨아 삼키듯이 제 몸에 보드라운 알갱이를 끼워 넣었다.
그 상태에서 서수혁이 음경 전체를 힘 있게 주물러 대며 마지막 남은 흥분의 기운을 발산했다. 소심히 모인 두 발아래 놓인 희우의 엉덩이가 유두를 깔짝깔짝 자극하는 색정적인 자지 놀림을 이기지 못하고 이따금 들썩거렸다.
“입 벌려.”
그리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육욕적인 딸딸이에 열을 올리던 남자가 아까 전보다 낮고 거칠게 가라앉은 음성을 토해 냈다. 희우는 감쳐물고 있던 입술을 개미 손톱만큼 벌렸다. 그 대신 눈은 저절로 질끈 감겼다.
사내 특유의 짙은 숨이 가장 먼저 터져 나왔다. 그 뒤로 검질기게 따라붙는 건 브래지어가 어중간하게 둘러진 젖가슴에 후드득 튀어 댄 질척한 점질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솟아오르는 건지 그것은 희우의 턱과 뺨 부근에까지 튕겨 올라 음란한 흔적을 남겼다. 서수혁은 밤꽃 내음을 강하게 풍기는 진액을 걸게 뽑아내는 와중에도 그 고조된 몸체의 대가리로 희우의 젖꼭지를 비비 긁어내렸다.
진득하니 이어진 사정을 마치고 나서는 아예 손가락으로 유방 위에 튄 정액을 덜어 살짝 도톰해진 젖꽃판에 치덕치덕 발라 댔다.
희우는 후희 같은 그의 야릇한 손놀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만가만 굴었다. 물론 그가 심술을 부리듯 정액 발린 젖꼭지를 꽉 꼬집을 때마다 의도치 않게 움씰거리기는 했다.
“정말 희본이가 이유야?”
툭 던져진 물음이 묵직한 포환처럼 안착했다.
감고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집에 가고 싶다며.”
“어, 읏…….”
입술이 한 뼘 벌어지기 무섭게 다시 다물린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혀끝에서 번지는 비린 맛과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얼룩진 목젖 내부의 상황 때문에.
희우는 헛기침으로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손장난을 치는 대상을 바꿔 이제는 희우의 젖꼭지를 물고 늘어지는 사내의 권위적인 눈발은 그런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낱낱이 파헤쳐질 것만 같은 기세 아래에서 희우는 확신했다. 윤서원의 부탁은 대표인 그에게까지 확실히 들어갔다. 이제 그걸 성사시키는 건 온전히 제 몫이 되어 버린 걸지도.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며 고개를 빙빙 가로저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남자가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싫어한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것도 있지만…….”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럼?”
“제 옷도 좀 챙기고 싶고. 그리고 책도요…….”
“책?”
“아직 제가 학교를, 큼, 다니고 있어서.”
매정스러운 피스톤질로 뭉개진 성대가 아파서 목청을 골랐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는 그게 아닌지 음성은 갈수록 쥐어짜는 식으로 변모했다.
서수혁은 퍽 심드렁한 상판으로 우유 같은 음수에 덧입혀진 유두를 손톱으로 까득 긁었다.
“무슨 공부 하니?”
영 추잡스러운 손길과 달리 몹시도 무미건조한 색깔의 질문이었다. 그로부터 깃드는 괴리감에서 얼른 빠져나온 희우는 그가 묻고자 하는 바를 캐치했다.
“고고…… 미술사학과요.”
“고…… 뭐?”
“…….”
“생판 처음 들어 보네.”
생경하기 그지없는 단어를 곱씹기라도 하는지 사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하도 문지르고 꼬집어 발딱 선 젖알을 함몰하는 형태로 만들 기세처럼, 안쪽으로 꾹 짓누르고 있었다.
“좀 느낌이 있긴 해. 영 뻣뻣한 게 말이야.”
저와 제 전공을 뭉뚱그려 전하는 표현이 묘하게 신랄했다. 잠시 후 서수혁은 흡족할 만큼 괴롭혔는지 스스럼없이 손길을 거두었다.
제 손아귀에 묻어난 정액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는 그 손으로 하얀 담배를 고쳐 쥐었다. 무심한 듯 맹기가 서린 눈동자가 가늘게 좁아졌다.
“그러고 보니 희본이도 작품 보는 눈이 꽤 있었지……. 둘 다 미술에 뭐가 있나?”
“아,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하셔서…….”
서수혁의 입가에 잔웃음이 배었다. “예술가시다?” 하며 희우의 대답을 작게 되뇐 그는 제 씨물로 젖어 든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서슴없이 쥐어 올렸다.
“그래서 이렇게 만들었나?”
“…….”
“면상 때깔 한번 곱게.”
그의 손가락이 핏기 몰린 희우의 붉은 입술을 쓱 쓸었다. 아직 닦이지 않은 정액이 고스란히 그 위로 옮겨붙었다.
“희본이도 조질 때 얼굴만큼은 안 건드렸어.”
“…….”
“나도 예쁜 거 좋아하거든.”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왜 웃지? 희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수혁이 번지르르하게 웃어서, 꼭 어린아이가 농담을 건네고 그를 과시하듯 구는 모습에 얼결에 따라 입가를 휘었다. 그러자 서수혁이 “웃기는.” 하며 희우의 입 안으로 크림 같은 정액을 쓱 밀어 넣었다.
그것을 삼키고 싶지 않아 혀를 굴리는 사이 뒷덜미가 다시 바투 잡혔다. 눈이 조금 커졌을 때는 이미 서수혁이 상체를 확 수그린 후였다.
그가 제 이마를 희우의 이마에 툭 가져다 댔다.
“아기야.”
“…….”
“난 거짓말하는 거 싫어한다고 했어.”
무릎을 향해 떨어지는 음성이 독 발린 칼날 같았다.
“넌 나한테 분명히 희본이 소재를 모른다고 했고. 그치?”
희우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매가리 없이 구는 태도를 보고 서수혁은 다시금 바람 빠진 소리를 내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 짜증 나면서도, 몸에 밴 습관처럼 나오는 자연스러운 형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제 말도 못 알아듣고 삐약대기 바쁜 병아리를 잡고서 으름장을 놓는 허황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자. 알겠니?”
희우가 헛숨을 삼켰다.
이토록 날이 서린 경고의 의미는 하나였다.
집에 다녀오는 것에 대한 허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