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실종과 인질 (2)
잊고 있던 기억은 때로 꿈을 통해 개벽되는 경우가 있었다. 희우 역시 수몰되듯 빠진 꿈속에서 그걸 경험했다.
고작 한순간이기에 흘려보내 버리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잊고 살 수가 있었을까’ 싶게 만드는 기억.
바로 서수혁과의 첫 만남이었다.
계기는 이 역시 희본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처음 보는 까만 차가 비좁은 골목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뒷좌석 앞에 공수를 한 오빠가 있었다.
‘오빠?’
큰 고민 없이, 그저 그가 눈에 보이기에 저절로 입이 열렸다.
다음 순간 제게로 황망히 돌아오는 희본의 시선을 느끼고서야 희우는 괜한 짓을 했음을 깨달았다. 오빠의 그런 표정은 처음 목격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잡다한 것이 꼬여 있으나 가장 분명한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누구니?’
어디에선가 무시하기 힘든 중압감을 떠안기는 저음이 흘러왔다.
보드랍게 감싼 듯한 어미지만 하도 짙게 깔려 들리는 바람에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육성. 그를 뒷받침하는 건 창문 밖으로 슬그머니 삐져나온 굴곡진 손이었다.
손가락 등에 하나하나 입혀진 까만 문신, 그리고 점화된 담배.
고작 손아귀의 형태 하나만으로 위험한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였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입니다.’
‘동생?’
‘예.’
한 박자 후에야 실수를 인지한 희우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눈만 데구루루 굴렸다. 고작 알은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희본이 저리 쩔쩔매는 사람이라면 분명, 높은 존재란 거다.
‘그래……. 여동생이 있다고 했었나.’
나른한 어조가 공기를 잡아먹더니, 이내 담배를 태우던 손이 유리 안으로 쓱 빨려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이 다시 노출됐을 때는 지폐로 추정되는 길쭉한 사각 종이가 어중간하게 접힌 채 들려 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가기엔 섭하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대표님.’
‘너 주는 거 아니니 좋게 말할 때 받아.’
희본은 어찌할 줄 모르다가 창문이 내려진 뒷좌석을 힐끔 일별하고는 마지못해 지폐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정차해 있던 세단은 볼일을 마친 것처럼 창문이 지이잉, 올라갔다.
그러기 전, 담배를 거머쥔 손가락은 희우에게 평온한 인사를 건네듯 허공에서 가벼이 휘저어졌다. 빤히 주시하고 있지 않았노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조용한 행동이었다.
‘희우야.’
희본은 시커먼 세단이 골목길에서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희우를 돌아보았다.
피붙이의 눈길 한 줌이 최면에 걸린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희우를 깨웠다. 그녀는 쭈뼛대며 오빠에게로 향했다.
‘미안.’
‘뭐가?’
‘그냥…… 내가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인 거 아니었나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좀 놀랐어.’
‘…….’
‘자.’
사내의 손에서 희본의 손으로 건너온 지폐는 곧 희우의 손에 안착했다. 반으로 성의 없이 접힌 그것을 펼쳐 본 희우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저를 두고서 먼저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오빠의 옷깃을 다급히 잡아챘다.
‘오, 오빠. 이거.’
‘응?’
막연히 5만 원짜리가 아닐까 한 그건 다름 아닌 수표였다. 50만 원짜리 두 장, 즉 100만 원. 희우는 느닷없이 제 손에 들어온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실감조차 할 수 없었다.
‘액수가 너무 커. 오빠가 가지는 게 나을 거 같아.’
‘너 하라고 주신 돈이야.’
‘하지만…….’
‘괜찮아, 희우야. 네가 가지고 있다가 사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써.’
하루아침에 떨어진 커다란 돈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희본은 충분히 예상한 금액이었다는 것처럼 태연자약했다. 희우는 그런 오빠의 모습이 인생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수표를 쥔 제 손등을 탁탁 두드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오빠의 뒷등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뿌옇게 헤집어진 기억의 상영을 마쳤을 때는, 이미 눈을 뜬 후였다.
처음 보는 천장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희우는 곤하게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몸이 유난히 무거웠다. 그러나 흐리터분한 의식이 뒤로 밀어 버린 그간의 기억들을 순차적으로 떠올리는 순간, 억지로 상체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읏.”
곧게 세운 허리가 새우처럼 둥글게 말렸다. 습관적으로 가슴팍을 부여잡는데 이상한 뭔가가 만져졌다. 허망이 시선을 내리깐 희우는 옷 위를 더듬거리다가 상의를 들췄다. 복부 부근을 딱 맞게 감싼 복대가 있었다.
유별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부터가 생경했다. 널찍한 침대와 깨끗한 침구, 새것처럼 반듯하고 깔끔히 놓인 탁자나 그 위에 놓인 꽃병……. 도끼에게 모진 고초와 수모를 당하던 그 공간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누군가의 집, 손님에게 내어 주는 방 같았다.
그게 별세계에 똑 떨어진 것처럼 현실과 유리되는 충격을 끼얹는 바람에 희우는 한참 동안 몸을 웅크리고서 커다란 눈만 데구루루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이 상황을 납득시켜 줄 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치료를 해 준 건가?’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서 한참이나 굴러다니는 동안, 내도록 느껴졌던 갈비뼈의 통증이 상기됐다. 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했으니 이런 조치를 해 둔 거고, 그렇다면 누가 자신을 치료하려고 한 건 확실한 셈이었다.
희우는 침을 꼴깍 삼키고서 미처 다 확인하지 못한 몸 상태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군데군데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고, 어딘가에 쓸리고 밀려 찢어진 찰과상도 수두룩했다. 아예 살갗이 벌어져 너덜거리는 상처는 꿰매진 채였다.
‘심각해 보이는 건 치료하고 그 외에는 그냥 뒀구나.’
손길이 닿은 곳과 아닌 곳의 차이는 금세 구분이 가능했다. 진한 멍이나 피딱지가 앉은 것처럼 시간이 가면 자연적으로 낫는 부상은 건드린 흔적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입술을 버끔대다가 찢어진 듯 따끔함이 번지는 입꼬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보다도 스스로의 용태를 살피며 깨달은 한 가지가 있었다.
‘속옷…….’
본래의 옷은 많이 더러워졌을 것이다. 먼지가 가득한 공간을 한참 동안 굴러다녔으니.
그래서 아마도 이곳으로 데려온 후 옷을 갈아입힌 듯한데 치료를 취하며 벗긴 건지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채였다. 더군다나 걸친 옷이라고는 허벅지가 겨우 가려지는 커다란 티셔츠 한 자락뿐이었다.
영 민망한 행색이었다. 고민 끝에 희우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윽…….”
매섭게 날이 선 조각 하나가 늑골 사이로 기어들어 온 것처럼 아슬아슬한 통증이 번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도 내내 이 상태라 무기력하게 누워서만 지냈는데, 도끼에게서 도망칠 힘은 대체 어디서 솟아오른 걸까.
달리 헤아려 보면 정말 우려하던 일이 닥치자 너무나 싫어서 죽을힘을 다한 셈이었다. 지금의 고통이 더욱 생생한 건 그때 그렇게 아등바등하느라 부상이 악화되어 그런 걸지도 몰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바닥을 가로지른 작은 발이 커다란 문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를 조심스레 쥐고 소리가 나지 않게끔 천천히, 아주 신중한 몸짓으로 잡아당겼다.
“…….”
바깥을 살펴볼 수 있는 틈 정도만 벌린 채, 동공을 부지런히 굴렸다.
내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나서게 되면 마냥 회피하고 싶어지는 상황이 만들어질지 모르나 그렇다고 하여 계속 이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가운 대리석으로 꾸며진 바닥.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의 계열에 맞게 꾸며진 인테리어는 사뭇 발을 뻗기 힘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기류가 목 뒤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게 제발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절로 부정을 뇌까렸다.
아닐 거야.
설마, 그럴 리가.
희우는 일단 제대로 된 옷이라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복대 위, 아무것도 걸치지 못해 헐렁하게 달라붙는 젖가슴이 얇은 옷자락 위로 고스란히 노출되는 게 신경이 쓰였다.
이곳저곳을 고요하면서도 잽싼 동태로 둘러보던 희우는 잠시 후,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신했다.
“여긴…….”
방이 하도 많아서 어디부터 둘러보아야 할지 모를 심경에 애먼 복도만 서성이던 차, 희우의 눈에 하나의 공간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반짝거리며 망막을 서슴없이 찌르고 들어온 빛살의 유혹이라 봄이 옳았다.
가까이 다가가고서야 파악한 그건 시계 진열장이었다.
먼지 자국 하나 없이 매끄러운 유리판 아래로 척 봐도 값깨나 나갈 것처럼 보이는 시계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고급 브랜드의 컬렉션만 수집해 놓은 것처럼 때깔이 죄다 번지르르했다.
진열장의 높이는 희우의 가슴 부근에 닿을 만큼 높았다. 그럼 설마 이 안이 전부 시계야? 아연해진 마음에 줄지어 나열된 서랍장 하나를 조심스레 연 희우는 이윽고 쩍 얼어붙었다.
흡사 못 본 체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다급히 서랍 문을 닫았다. 성마른 손길에 쿵, 하고 닫힌 소리가 널찍한 공간을 울렸다. 그러나 저 바닥까지 내려앉은 희우의 심장 고동 소리가 더욱 컸다.
‘가죽 장갑…….’
서랍의 한 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명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어둑어둑한 빛깔의 가죽 장갑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이곳이 어디인지를 능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남자, 서수혁의 집인 거다.
‘왜 나를 이리로 데려온 거지?’
희우는 더듬더듬, 뒷걸음질을 쳐서 돈을 처바른 듯 눈이 절로 돌아가는 재물로 가득 찬 과시용 방을 빠져나왔다.
설마 하던 가정이 현실이 되어 버리자 눈앞으로 밀려온 건 막막함이었다. 그 뒤를 따라붙는 거부감이 유난히 질겼다.
저를 직접적으로 폭행한 건 도끼지만, 그 행위를 사주한 건 서수혁 그 남자였다. 고로 서수혁이 저를 이런 꼴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망가고 싶어.
희우는 저도 모르게 현관문을 찾아 나섰다. 자택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니만큼 야외로 통하는 문이 하나쯤은 있을 터였다. 어수선하게 굴던 걸음은, 난데없는 움직임에 갈비뼈 통증이 심해졌을 무렵 우뚝 멈춰 섰다.
지금 도망을 갔다가 잡히게 되면?
그럼…… 또 끌려와서 맞게 되겠지?
이번에도 도끼에게?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도끼에게 맞는 것도 아프지만 이번엔 괘씸하다는 이유로 서수혁, 그 사내에게 직접적으로 고초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인간적으로 너무 무서웠다.
시달리게 되는 그림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구석을 지녔다. 희우의 의식 속에는 그가 가죽 장갑을 낀 채 피 묻은 골프채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던 장면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 일단은.
일단은…….
아직 몸이 성치 않았기에 여기서 더 아프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도 위급한 상처를 치료해 준 걸 보면 날 여기에 가두고 패려는 속셈은 아닌 걸 거야. 희우는 잿빛 가정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하였다. 실은 지금으로서는 그것밖에 매달릴 구명줄이 없기도 했다.
* * *
적요한 풍경 속, 희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는 볼가에 닿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꽤나 익숙해진 바였다. 뻐근한 눈꺼풀을 깜빡거리고 있자니, 쏜살같이 흘러간 며칠의 기억이 속속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려와 달리 그녀는 며칠간 나름대로 호의호식을 했다. 서수혁, 생각지도 못한 그 남자의 집에서 말이다.
형태는 간단했다.
구석에 숨어 사는 자그마한 생쥐 같은 느낌으로였다.
이곳에 오게 된 첫날, 서수혁의 집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처음 눈을 떴던 방에 콕 박혀서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숨을 가늘게 내쉬며 존재감을 죽였다.
작게 난 창이 푸릇푸릇한 색을 넘어 꺼멓게 암전이 될 때까지 남자는 귀가하지 않았다. 기를 쓰고서 문밖의 동태를 살피던 희우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기실 정신을 차리고 있기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컨테이너 박스에 갇히며 겪게 된 수면 부족이 그녀의 정신을 쥐고 탈탈 흔들어 댔다.
그렇게 눈을 뜬 아침, 살금살금 바깥으로 나가 보니 전날처럼 아무도 없었다.
수면욕이 어느 정도 채워지자 고개를 든 건 식욕이었다. 무엇보다도 목이 너무 말랐다. 희우는 걸음 소리를 꾹 죽인 뒤 부엌을 찾아 헤맸다. 마침내 발견한 다이닝룸 속 거대한 냉장고를 열자 생수병이 두 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혹시 모를 마음에 희우는 개중 몇 개를 빼내어 자신이 머무는 방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하나를 따서 원하는 만큼 목을 축였다.
갈급증이 해결되자 꼬르륵, 하고 뱃고동이 울릴 만큼 입맛이 돌았다. 하지만 제집도 아닌지라 함부로 식량을 축낼 수는 없었다.
그런 희우의 눈에 띈 게 바로 과일이었다.
하나의 장식품처럼 둥글넓적한 그릇 위에 마련된 그것은 언제나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싱싱한 과일로 간신히 주린 배를 달랬다.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사이에 화장실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둥 급한 문제를 해결했다.
이게 바로 희우가 보낸 며칠의 밤낮이었다.
그사이 변하지 않은 점과 변한 점은 함께 존재했다. 갈비뼈는 살짝 금이 간 수준이었는지 며칠을 푹 쉬니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통증은 많이 약화되어 자의적인 판단하에 복대를 풀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니 젖꼭지가 옷 위로 도드라지는 게 심해져 속옷이 더욱 절실했으나, 사내 혼자 머무는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잠기가 묻은 눈을 깜빡거리던 희우는 어물어물 상체를 일으키고서 눈두덩을 비비적거렸다.
낮에 할 게 없어서 낮잠을 자다 보니 작금 들어 이렇게 밤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그보다, 자기 전에 물을 마셨더니 요의가 몰려왔다. 무딘 감각으로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만큼 급해서 얼른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사내는 없을 테지만, 밤인 걸 인지하고 사뭇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가장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끼게 한 건 틈새로 희미하게 풍기는 술 내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리가 꽤 있는 소파 위에, 톡 하니 튀어나와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까만 뒤통수를 보고 진정 망부석이 되어 버렸다.
집주인이니만큼 당연히 귀가를 하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만, 며칠간의 고요한 평화로 마음이 살짝 풀어진 건지 갑자기 긴장감이 용솟음쳤다.
‘몰래…… 갔다 올 수 있을까?’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그럴 수준이 아니었다. 오금을 꽉 수축시키는 요의는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면 방에서라도 실례를 하게 될 만큼 급했다. 그런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릴 바에야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화장실에 가는 게 나았다.
며칠간 혼자 있을 때 탐방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기에 화장실 위치는 모조리 파악해 두었다. 지금, 서수혁이 앉아 있는 디귿 자 모양의 소파를 지나치지 않고 뒤로만 이동해도 화장실로 갈 수 있었다.
희우는 그간 해 온 대로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용조용히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다행히 화장실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급한 볼일을 마친 그녀는 최대한 조용히 손을 닦으며 생각했다. 방까지도 무사히 돌아가야 하는데……. 누군가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인지 몰랐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한층 신중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서수혁은 희우가 화장실을 가기 전과 다를 바가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 쪽에서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어떤 표정으로,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호했다.
확실한 건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 여전히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와 액체 속을 부유하는 얼음의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희우는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휙-
무언가가 벼락같이 날아와 희우의 눈앞을 덮쳤다.
쨍그랑!
코앞에서 벽과 마찰하여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유리의 잔해가 반짝거리는 모래 같았다. 그것은 희우의 발치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고작 한 발 앞이었다. 자칫 밟았다가는 발바닥이 모조리 찢길 듯 위협적인 모양새가 도처에 깔렸다.
뻑뻑해진 목 뒤가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걱삐걱 움직였다.
간신히 소파 쪽을 보았을 때 종전만 해도 우람한 뒤태를 자랑하던 서수혁이 비스듬히 고개를 꺾은 채 이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벽에 철썩 붙어 있는 희우를 발견한 사내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곧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힘이 풀리며 나른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희우에게는 여전히 사납게만 느껴졌다.
다듬어지지 않은 짐승의 눈빛. 그와 같은 안광이 제게 화살촉같이 박혀 들수록 희우는 벽과 물아일체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달라붙었다. 갑자기 무릎이 아파 왔다. 사내의 구둣발이 가차 없이 짓밟았던 그 부위였다.
그가 퍽 권태스러운 움직임으로 눈을 깜박였다.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는 이처럼 반복적으로.
방해하지 말고 가라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희망에 걸친 자의적 해석을 마친 희우는 벽에 달라붙은 몸을 한쪽으로 꾸물꾸물 옮겼다. 유리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바꾼 발길을 한 걸음 떼자마자 서수혁의 미간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오라고.”
거스를 마음 따위 들지 않게 하는 저음은 희우의 희망과 완전히 상반되는 명령을 내놓았다. 고작 한마디의 지시에 심장이 저 밑까지 꺼진 희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심호흡을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내에게로 향하는 발바닥이, 이미 유리가 가득 찔려 피가 줄줄 빠져나가는 것처럼 무뎌진 감각을 체감하게 했다.
쭈뼛쭈뼛 그가 있는 소파로 다가갔다. 서수혁은 앉으라는 듯 오만한 동공을 아래로 한 번 내리깔았다가 들어 올렸다. 희우는 설령 손을 뻗는다고 해도 그와 닿을 수 없는 소파 끄트머리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술잔을 고쳐 쥔 서수혁이 픽 웃었다. 가시처럼 피부를 날카롭게 할퀴는 조소였다.
“거기 앉아서 뭐 하자는 거지.”
“…….”
“어색하게 인사나 할까?”
좋게 말할 때 더 다가오라는 으름장이나 진배없었다. 희우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굼뜬 몸짓으로 일어나 소파 정중앙을 차지한 사내 쪽으로 이동했다.
서수혁은 늘어뜨리고 있던 상체를 세운 뒤 은통 안에 든 집게를 쥐었다. 그걸로 은통 안을 헤집어 잘게 부스러진 얼음 조각 몇 개를 크리스털 잔으로 추락시켰다.
댕그랑, 댕그렁.
원통 면에 부딪혀 울리는 소음은 희우의 맘처럼 번잡스러웠다.
술잔에 얼음을 채우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희우를 향해 있었다. 혹 어딘가가 물릴까, 노심초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 뒷덜미가 물려 질질 끌려가는 기분을 선사하는 눈발이었다.
“……!”
거리가 한 뼘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서수혁은 거침없이 팔을 뻗어 희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몸이 반으로 접힐 것처럼 비틀렸다. 끌어당기려는 남자와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 사이에서의 작은 소란이었다.
그러나 이 공방전의 승자와 패자는 불 보듯 뻔했다.
억센 팔 힘에 못 이겨 사내의 허벅지에 걸터앉게 된 희우는 불편함을 내색하지 못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한 박자 후에야 인지한, 목전에서 떨어지는 사내의 관심에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가까이서 본 서수혁의 눈동자는 이 정도 거리가 아니라면 몰라볼 만큼 풀어져 있었다. 몸이 찰싹 달라붙으니, 풍기는 술 냄새도 코가 아플 수준으로 진해졌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사내는 지금 단단히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읏……!”
머뭇거리던 희우가 갑자기 몸을 뒤챈 건, 허리춤에 뱀처럼 감겨 있던 서수혁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그녀의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주무르기 시작해서였다.
희우의 안색이 못 볼 꼴을 본 이처럼 희멀겋게 질렸다. 여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위기감이 심장을 끈으로 조이듯 맥을 못 추게 만들었다.
남자의 손길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어서, 오히려 희우는 당황한 제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허벅지를 간신히 가리는 기다란 티셔츠를 걷어 올린 뒤 얇은 팬티 하나 걸친 희우의 엉덩이를 터뜨릴 기세로 조몰락대며 술잔을 마저 기울였다.
강제적인 손길에 하릴없이 노출되는 바람에 덜덜 떨기만 하던 희우는 한 박자 후에야 어떠한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사람을…… 착각하는 건가?’
제게 갑자기 이런 음습한 마수를 뻗쳐 온다기엔 너무 느닷없었다. 지금껏 서수혁에게서는 이전의 도끼와 같은 꺼림칙하고 음침한 기색을 조금이나마 엿본 적이 없었으니.
지금 남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그에 따라 상황과 인물을 잘 분별하지 못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실내의 조명등이 겨우 하나 켜진 집 안 내부는 온갖 문란한 소행이 벌어지는 술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윽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취기에 흠뻑 전 남자가 저를 작부로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수혁은 이 관계 속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가 저를 어떤 식으로 망가뜨린다고 한들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이 그에까지 미치자 신경계 하나하나가 고도의 긴장감으로 젖어 들었다.
“이거 물어 봐.”
호박빛 술이 담긴 잔을 손에 쥐고 빙글 굴리던 서수혁이 대뜸 말했다.
암울한 상념에 잠겨 있던 희우는 ‘이거’가 뭘 뜻하는지 몰라서 급히 눈알을 굴렸다. 굼뜬 행동이 썩 탐탁지 않았는지 서수혁은 직접 희우의 상의를 쥐어 그녀의 입에 물렸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열어 옷자락을 고스란히 받아 문 희우는 잠시 뒤에야 아차 했다.
이렇게 해 버리면…….
“흐……!”
갖춰 입은 속옷이라고는 팬티가 전부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브래지어가 있을 리 만무하기에 희우는 얇은 상의 한 벌로만 젖가슴을 겨우 감출 수 있었다. 그 옷자락이 맥없이 무너진 방벽처럼 끌어 올려진 상태이니 새뽀얀 둔덕이 그대로 바깥을 향해 노출되었다.
서수혁은 실하게 뭉쳐져 흘러내리는 물방울 모양의 살덩이를 나른한 눈길로 응시했다. 알코올의 기운으로 흐려진 동공이 다소 사납게 다가왔다.
그가 차가운 술잔을 쥔 손가락으로 희우의 말랑말랑한 젖꼭지를 콕 찔렀다.
“분홍색이네.”
“읍.”
“손때를 한 번도 안 탔나. 너 아다니?”
서수혁은 질문을 혼잣말처럼 읊조리며 조금 더 진한 색의 유륜으로 둘러싸인 젖알을 단정한 손톱으로 즉 긁어내렸다. 희우가 기습 공격을 당한 자라처럼 목을 대번 움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수혁은 자극 한 번 입어 본 적 없는 양 순수한 빛깔로 번들거리는 유두를 저 좋을 대로 꼬집고 비벼 댔다. 흥미로운 부위를 관찰하듯 차분하고 평온한 행동임에도 부위가 부위이다 보니 그건 일종의 애무처럼 보였다.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소리 소문 없이 움직여 희우의 몸을 잡아끌었다. 그에게 더욱 폭 안겨, 빠져나올 수 없는 자세가 된 희우는 혀끝이 저린 감각에 눈가를 바르르 떨었다.
그럼에도 행여나 물고 있는 옷자락이 떨어질까, 그러면 사내에게 맞을까 무서워서 고집스레 입매에 힘을 주었다.
허리와 엉덩이 사이를 종횡무진 움직이던 그의 손은 살결을 헤아리듯 느릿느릿 올라와 희우의 풍만한 젖가슴을 쥐어 올렸다. 시원시원하게 뻗어진 손가락으로도 다 감쌀 수 없는 크기였다. 서수혁은 질량과 부피를 가늠하듯 거유 전체를 한 번 꽉 그러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눈가를 찌푸렸다.
“몸은 삐쩍 말랐는데 이건 제법…….”
의문스러운 동시에 흡족의 기색이 묻어나는 혼잣말이었다.
그는 탐스럽게 무르익은 젖꼭지를 살살 돌리며 술잔을 쉼 없이 기울였다.
산호색 젖부리에 들러붙은 손길은 다소 악착스러웠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젖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희우의 눈두덩이 점점 달아오르고, 토막 난 신음을 흘릴 만큼 꾸준하게 유두를 달구었다.
촉감 좋은 장난감처럼 농락당한 꼭지 역시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알이 도톰히 굵어졌다. 서수혁은 자기주장을 하듯 꼿꼿하게 올라선 유두를 손톱으로 긁어 주며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까만 머리통이 목전으로 불쑥 다가왔다.
“흡……!”
몇 분 내도록 괴롭힘을 당하여 도독하게 솟아오른 젖꼭지가 그의 입 안으로 속수무책 빨려 들어갔다. 희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파 등받이를 거머쥐었다.
그래 봐야 스판성 하나 없는 가죽 소재이기에, 제대로 잡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손은 갈 곳을 잃은 것처럼 허공을 방황했다.
서수혁은 조금 전 술을 머금듯이 유두를 한입 가득 처넣고서 입 안 점막을 수축시켰다. 그의 판판한 뺨이 담배를 피울 때처럼 홀쭉하게 말려들었다. 어찌나 억척스레 빠는지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른 유륜까지 통째로 물린 채였다.
욕심껏 삼켜 댄 사내는 척척한 점막 속에서 혀를 휘돌려 대며 희우의 젖가슴에 질척한 침 칠을 해 댔다. 조금 전까지 유두를 비벼 대며 그것을 발기하게 만든 손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 희우의 엉덩이를 떡 반죽 치대듯이 짓주물렀다.
위아래가 사내에게 전부 함락당한 희우는 조금씩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신선한 우유라도 나오는 줄 아는 기세로 흡착하던 사내가 고개를 뒤로 물렸을 때는 점막과 덕지게 여문 살덩이가 마찰했다가 떨어지며 뻐억, 하는 소리가 났다. 사특한 혀 놀림에서 빠져나온 대접젖이 꽤나 요란하게 출렁이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소담히 내려앉아 접치는 젖 아래 살에 코를 들이박고서 살을 발라 먹을 기세로 핥아 대던 서수혁의 혀는 직선의 형태로 쭉 올라와 젖꼭지에 닿을랑 말랑 하는 위치에서 멈췄다.
“뭐 해? 잡아 줘야지.”
“으, 에……?”
별안간 말문이 넘어오자 희우는 당황하여 어눌한 발음을 냈다. 어느새 축축해진 옷자락이 여전히 그녀의 입에 물려 있는 탓이었다.
“빨통 좀 제대로 빨게 쥐어 올리라고.”
희우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분명 한국어인데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사내가 무언의 압박을 가하듯이 엉덩이를 꽈악 쥐어 왔을 때는 이미 손을 움직인 후였다.
조금 전까지 그가 달콤한 간식거리라도 되는 양 들이빨던 젖가슴의 아랫부분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리 억세지 않은 힘에도 살집이 원체 풍만하게 차올라서 젖꼭지는 딱 먹기 좋은 형태로 불거져 나왔다. 서수혁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것을 감쳐물고서 목젖이 있는 곳까지 끌어당길 기세로 흠빨았다.
도수 높은 술을 즐기던 그는 어느새 희우의 젖으로 유희를 이어 갔다. 몇 분째 혀로 문대지고 으깨지며 희롱을 당한 유두는 이미 옷을 걸치면 뾰조록 튀어나와 자기주장을 할 만큼 곤두선 채였다.
그저 이 상황이 무섭기만 한 그녀가 제대로 성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자극에 의해 생리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서수혁은 통통하게 살이 찐 젖꼭지를 아예 잡아 뜯어낼 기세로 잇새에 물어 당기기도 하고, 제 혀에서 전이되어 술기운이 너저분하게 들러붙은 가슴골에 낯짝을 느적느적 비벼 대기도 하며 희우를 즐겼다.
우유를 뭉친 것처럼 말랑하고 푸지게 차오른 젖통이 푹신푹신한 베개라도 되는 양 뺨과 콧대를 문질러 대며 한 번씩 만족스러운 숨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희우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작달막한 몸을 간간이 움찔대기만 했다.
“음.”
그런 희우의 어깨가 크게 들썩인 건 서수혁의 입에서 미지근한 호흡이 터져 나왔을 때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 께름한 기분을 유발시키는 감촉이 허벅지와 무릎 사이를 지긋하게 눌러 왔을 때.
사실 아까부터 조금씩 실감하고 있었으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건 아주 노골적으로 희우의 몸을 겨냥해 쿡쿡 찔러 대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 속, 도끼의 아귀힘으로 벽을 향해 밀어붙여졌을 때 느꼈던 그것.
완벽히 피가 몰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른, 서수혁의 성기였다.
희우는 슬금슬금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몸을 뒤로 뺐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시키는 거부감에 가까웠다.
그에게 붙잡혀 맘껏 문대지는 젖가슴은 그냥 둔 채로 엉덩이만 은연하게 내뺐다. 심장이 바짝 조일 만큼 비밀스럽게 행하던 짓은, 별안간 가슴골에 대고 피식 웃는 서수혁의 나른한 숨결 하나에 모조리 제동이 걸렸다.
“귀엽게 굴어…….”
소동물의 움직임을 관망하던 육식 짐승의 기지개처럼, 기가 찬다는 듯 약하게 깔리는 목소리가 뒷덜미를 서늘하게 적셨다. 그건 서수혁이 대뜸 제 몸을 잡아 올렸다가 앉히며 자세를 강제적으로 바꾸었을 때 한층 배가됐다.
졸지에 그를 가운데에 두고서 다리를 양쪽으로 활짝 벌리게 된 희우는 낯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서수혁은 희우의 양 골반을 붙들어 매고서 튼실하게 발기한 성기가 그녀의 팬티 정중앙에 놓이도록 몸을 꾹 내리눌렀다. 그 상태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듯이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바지춤부터 허벅지 중앙까지 일자로 도드라져 올라오는 굵다란 음경이 팬티 한 장으로 겨우 가려진 그녀의 음부를 간접적으로나마 마찰하는 결과를 낳았다.
희우는 음부를 꾸욱꾸욱 눌러 대는 이상야릇한 접촉에 골반을 비틀며 몸을 크게 들썩거렸다.
그러자 서수혁은 남은 웃음기를 털어 낸 뒤 퍼억, 퍽, 성교를 떠올리게 할 만큼 속된 소리를 발산해 내며 희우의 사지를 멋대로 뒤흔들었다.
“아다랑은 놀기 한번 힘드네.”
후, 하고 숨을 내쉰 그가 돌발 행동을 취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돌연 바지춤을 풀어 여태껏 천 자락의 억압을 받던 살덩이를 바깥으로 끄집어낸 것이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흉 한번 찾아볼 수 없이 미끈둥한 데다가 전체적으로 하얬으며 방갓 모양으로 까진 끝부분만 연한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 봐야 시야 속의 모든 장면이 충격적이고 선정적으로만 다가오는 희우에게 그건 하얀 구렁이처럼 징그럽고 불유쾌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실제로 문대질 때부터 아찔한 위협을 체감하게 했을 만큼 범상치 않은 크기라는 것부터가 그랬다. 어디 하나 휘는 곳 없이 수직으로 솟구쳐 오르는 꼿꼿한 모양새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사내의 성질머리처럼 어딘가 모르게 감때사나웠다.
“그래, 나 자지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으니까 그만 쳐다보고.”
희우가 넋을 잃은 이유를 너무나 제 식대로 해석한 서수혁은 곧장 그녀의 팬티에 손가락을 걸었다. 고무줄로 이루어진 골반 부근이 아니었다. 가장 좁은 면적을 자랑하는, 은밀한 비부를 가리는 핵심부였다.
장막처럼 쳐진 그것을 옆으로 쓱 걷어 내고는 어느새 흉기같이 쥐고 있던 성기를 좁은 구멍에 들입다 쑤셔 박았다. 그야말로 급습이나 진배없는 행위였다.
“악!”
메마른 질구가 즉- 늘어나며 꼭 다물려 있던 길이 멋대로 열리는 느낌에 희우의 입술이 하릴없이 벌어졌다. 여태껏 무서움을 이기지 못해 물고 있던 옷자락을 놓쳤다. 오감을 수축시키는 고통에 절어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진 까닭이었다.
서수혁은 본능적으로 피하려 드는 작달막한 몸을 콱 붙잡은 채, 이제 겨우 좆의 머릿대만 삽입한 구멍을 갈기갈기 난도질할 기세로 밀어붙였다.
타인의 신체 부위가 아니라 웬 불붙은 몽둥이 같은 것이 조붓한 입구의 살점을 뻑뻑하게 밀어 올리며 강제적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희우는 눈물이 핑 돌았다.
“흐, 싫어. 싫어. 하, 하지, 아으윽……!”
지금껏 두려움을 이유로 손길 한번 스치지 못하던 사내의 어깨와 가슴팍을 마구잡이로 밀쳐 냈다.
한쪽의 공포심을 이겨 낼 만큼 다른 쪽의 공포심이 지대했다. 무자비하게 뚫린 가랑이 사이를 타고 전신이 반으로 쩍 갈라질 것만 같아 의식이 혼탁해졌다.
젖지도 않은 채 삽입을 당한 비부가 찢어진 건지 뭔지, 서수혁이 흉측한 자지를 꾸역꾸역 들이밀면 들이밀수록 속수무책 벌어진 부위로 퍼지는 따끔거림과 홧홧함이 심해졌다.
예상보다 격한 반항이 영 못마땅했는지 절반 정도까지는 억지로 살 기둥을 욱여넣던 서수혁이 미간을 팍 찡그린 건 다음 순간이었다.
그가 희우의 뽀얀 둔부 살을 쫙 잡아 늘이며 삽입을 일조하던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서 사선을 향해 아주 매끄러운 모양새로 내리쳤다.
짜악!
후끈한 마찰음과 함께 희우의 고개가 꺾였다. 충격으로 점철된 동공이 희부옇게 흐려진 채로 경직됐다. 심장이 크게 움씰거렸다.
뭐지. 사고회로가 전기로 지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얼얼한 통각이 쉽사리 가시지가 않았다. 여운이 지나치게 깊이 내리꽂히는 힘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뺨은 지금껏 도끼에게 수도 없이 맞아 본 바였다. 아직도 입꼬리에 남아 있는 작은 상처가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러나 서수혁의 힘은 그와 차원이 달랐다.
맞은 건 뺨인데 뇌가 다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전두엽이 구둣발에 짓이겨진 것만 같은 해를 입히는 타격이었다. 간신히 나아 가던 입가의 상처는 며칠을 이겨 온 보람도 없이 재차 터졌다.
싸대기 한 대에 넋이 나간 희우의 몸부림이 약해지자 서수혁은 반쯤 힘겹게 밀어 넣은 페니스를 역으로 잡아 빼 버렸다. 그래도 맡은 바 제 역할은 하겠다는 양 내벽 살의 일부가 거리낌 없는 음경의 후퇴를 쫓아 은근하게 딸려 나왔다가 간신히 제자리로 말려 들어갔다.
그는 귀두관 부근에 희미하면서도 질척하게 묻어나는 선홍색 체액을 발견하고는 쯧, 혀를 찼다.
“아다를 떼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나 할 것이지.”
“…….”
“귀찮게 굴고 있어.”
침습에 무참히 찢어발겨진 희우의 구멍이 토해 낸 핏물을 손바닥으로 대강 닦아 낸 서수혁은 팽팽히 부푼 좆기둥을 잡고서 다시금 질구를 성큼 벌렸다.
그래도 한 번 뚫어 줬다고 입구 부근이 아까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자지를 받아먹으려 들었다. 그래 봤자 말아쥔 주먹처럼 커다란 감이 있는 서수혁의 귀두에는 여전히 끊어 먹을 정도로 억세게 들러붙는 수준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은 희우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감쳐물었다. 혹여나 아까처럼 거슬리는 소리를 내거나 사내를 밀어 내는 행동을 하면 또다시 얻어맞을까 무서워 방어기제가 걸린 것이었다. 속절없이 터져 버린 입가의 상처가 무진 따가웠으나, 서수혁의 싸대기에 비하면 투정 부릴 수준도 아니었다.
역시나 이 남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반항하면 안 된다. 거슬러서도 안 된다.
희우는 그저 죽은 사람처럼 숨을 가늘게 내쉬려고 노력했다. 물론, 비부를 억지로 비집어 벌리고는 구불구불한 통로를 멋대로 장악하려 드는 포악한 좆질하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
“흣, 으…… 읍.”
희우의 몸은 어느새 진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복부가 쪼개지는 듯한 격통을 겪으면서도 소리 한 줌, 반항 한 번 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건 당장 기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에너지를 가져다가 쓰게 만드는 짓이었다.
지탱할 것 하나 없이 움츠린 채로 버티던 희우는 어느새 놓쳐 아랫배 부근에서 살랑이는 티셔츠를 잡아 다시금 입에 물었다. 계속 입술을 깨물기에는 찢어진 입가의 쓰라림이 심해져 버거웠다.
그걸 본 서수혁은 처음으로 희우의 행동이 마음에 든 것처럼 도드라진 눈매를 휘어 웃었다. 물론 질식할 듯 몰아치는 괴로움에 절어 헐떡이기 바쁜 희우는 발견하지 못한 변화였다.
그녀가 돌연 숨을 집어삼킨 건 서수혁의 손이 자그마한 턱을 그러쥐어 얼굴을 들게 만든 시점이었다.
문신이 곱게 수놓아진 손가락은 강간을 한 이치고는 너무나 다정하게 희우의 뺨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사내의 눈동자는 사막 속에서 쬐는 햇살 같았다. 피할 겨를 없이 쏟아져서 희망이 아닌 절망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름이 뭐더라?”
끈질긴 시선 뒤로 심드렁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희우는 초점에 실금이 간 동공으로 간신히 그를 담았다. 일렁이는 눈물 자국 때문에 시야가 흐릿흐릿했다.
“대답 안 해? 혀가 진짜 잘렸나?”
티셔츠를 입에 물고 있어서 답을 못 한 것뿐인데 그는 입술에 손가락을 넣어 직접 확인해 볼 기세로 턱을 꽉 고쳐 쥐었다. 희우는 마지못해 입에 물고 있던 티셔츠를 스르륵, 뱉어 냈다. 그리고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답했다.
“저, 정희우…….”
“희우, 그래.”
“…….”
“희본이랑 정말, 많이 닮았네.”
남자가 저를 작부로 오해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 싶었던 희우는 고통에 잠겨 헐떡이면서도 지리멸렬한 혼돈을 떠안아야만 했다.
취하지 않은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제 이목구비를 유난히 집요하게 뜯어보는 사내의 동공은 여전히 힘이 얼기설기 풀린 채였다.
잠시 요지부동이던 그는 절반 넘게 박아 둔 채 도통 쓸 기미를 보이지 않던 성기를 조금씩 휘돌렸다. 서수혁이 허리를 살짝 쳐올리기만 해도 희우의 가랑이는 자연히 더 찢어지며, 미개한 탐욕을 부리듯 사내의 자지를 한 뼘 한 뼘 간신히 삼켜 냈다.
“으흑!”
“어느 쪽을 닮은 거지? 외탁? 아니면 친탁?”
“어, 어머니요. 어머니를…… 악!”
서수혁은 내내 인질처럼 쥐고 있던 희우의 턱을 미련 없이 놓았다. 자유가 된 손은 아래로 하강해 희우의 볼기짝을 주물럭거리며 성기를 더 깊숙이 품을 수 있도록 사정없이 잡아 벌렸다.
갈래로 나누어진 소음순 사이를 게저분하게 차지한 좆이 구멍의 여린 살점과 질 점막을 미끈하게 들쑤시며 처벅처벅, 격동적인 자맥질에 임했다.
“어머니?”
“읏, 흑. 아악, 아!”
“어머니 낯짝이, 후, 좀 반반했나 본데.”
“으, 하아읏……!”
척 봐도 저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지 몰라도 희우는 지금 자신을 이런 식으로 욕보이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운운하는 사내의 태도가 상당히 검측측하게 느껴졌다. 의도가 영, 불순하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위기감과도 같은 생각은 매대기질이라도 하듯 질벽을 힘껏 짓쳐 올리는 허릿심에 고스란히 흩어졌다.
“아! 윽……! 흡. 으흐…….”
뜨거운 눈물이 주룩주룩 터져 나왔다.
어딘가가 너무 아픈데 부위를 명확하게 꼬집을 수 없었다.
말에 달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크기의 가운뎃다리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후려갈기는 구멍 속인 것도 같고, 자궁이 자리한 배꼽 아랫부분인 것 같기도 했다.
발끝이 아플 만큼 말려들고 무릎이 바들바들 떨렸다. 힘이 정도 이상으로 들어간 허벅지 안쪽은 뻐근함을 넘어서서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였다.
“힘 좀 빼지.”
“흐윽…… 으.”
“이 정도 쑤셔 줬으면 알아서 젖는 성의 정도는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니.”
작게 뇌까리는 말로 스스로가 베푼 관용에 후한 점수를 부여한 서수혁은, 진실로 장난은 여기까지라는 것처럼 별안간 피스톤질의 속도와 힘에 추진력을 더했다.
두 사람을 실은 가죽 소파가 거칠게 끽끽대기 시작했다. 스퍼트가 올라가며 그렇지 않아도 버겁게 받아 물던 페니스가 더더욱 가열하게 구멍을 짓빠대며 완전히 내벽 살을 버르집으려 들었다.
희우는 누군가가 배 속을 두들겨 패는 듯한 충격을 감내하지 못하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허공을 휘젓던 그녀의 손이 살려 달라는 것처럼 발버둥을 치다가 그만, 서수혁의 맨들맨들한 뺨을 후려쳤다. 정확히는 손톱으로 광대 아래 부근을 직- 그었다는 표현이 옳았다.
폭거 같던 피스톤질이 우뚝 멎었다.
두 성기가 찔뻑대는 체액으로 엉겨 붙으며 흘레붙던 소리가 멎고, 고조됐던 희우의 숨소리 역시 차츰 잦아들었다.
그러자 사위에 내려앉는 건 조금 전의 사특한 열기를 죄 앗아 갈 법한 냉기였다. 침묵이 켜켜이 내려앉은 공기는 말 그대로 피부를 짓이기는 것만 같았다.
사고회로가 완전히 함몰됐던 그녀는 잠시 후에야 제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실감이 났다. 후환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꿀꺽, 간신히 넘기는 침을 타고 목구멍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심장이 역방향으로 쥐어짜이는 것처럼 수축했다.
차마 사내를 살펴보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떨고만 있던 찰나였다.
“악!”
별안간 몸이 바닥으로 밀쳐졌다.
얇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재질의 러그 위였다. 자비 없는 손길에 나뒹굴게 된 소리가 유난했다.
네발짐승처럼 엎어진 사지를 제대로 추스르기도 전에 뒷덜미가 붙잡혀 바닥에 머리가 쿵- 처박혔다.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손속에 의식 전체가 볼품없이 일그러졌다.
깔고 누운 러그의 털은 관리를 잘 받은 동물의 그것처럼 부드러운 축에 속했는데, 이상하게도 얼굴이 쓸리는 감각은 가시 수십 개가 박히는 것처럼 따끔따끔거렸다.
“죄, 죄송합…… 으흑!”
실수로 그런 거라고, 결코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죄와 변명을 건네기도 전에 오물대며 수축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멍을 성큼 벌리어 드는 좆의 횡포가 몰아쳤다.
몰매를 행하듯 거침없이 아래를 찢고서 들어오는 무도한 몸짓에 희우는 사지를 아우르는 저릿저릿한 경련과 함께 설핏 굳었다. 틀어진 각도를 따라서 매끈한 삿갓 형태의 귀두가 아귀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방향이 달라졌다. 그러나 어디를 어떻게 할퀴든지 간에 내부가 첨예한 통증으로 얼룩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윽, 흐, 아…… 아, 아흑!”
아물 새도 없이 혹사당하는 상처로 인해 구멍은 완전히 넝마가 되어 가는지, 성기의 색처럼 뽀얀 편에 가까운 고환이 둔중하게 흔들리며 회음부를 철썩- 두들길 때마다 음부 전체가 후끈후끈해졌다.
사나운 출납이 반복될수록 그 얼얼함이 배가돼서 희우는 지금 제 안을 들락날락거리는 게 사내의 굵다란 자지인지 불붙은 몽둥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뒤통수를 짓누르는, 차마 거역할 수 없는 악력이 이 모든 상황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자연히 옆으로 눌린 고개, 모의 방향으로 치들린 눈길 끝에 거실과 다른 공간을 깔끔히 분리시키는, 유리로 된 매끄러운 슬라이딩 도어가 들어왔다.
희붐한 조명 하나 켜 둔 거실을 제외하고 집 안은 모조리 칠흑 같은 어두움에 잡아먹혔다. 그렇기에 지금 저 멀리 자리한 슬라이딩 도어도 까만색으로 칠 되어 꼭 거울처럼 러그 위의 잔혹한 광경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희우의 동공 속에서 그 무참한 잔상이 아스라이 흔들렸다. 살짝 희미하나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개처럼 엎어진 자신과 그 위를 차지하고서 저를 신명 나게 깔아뭉개고 있는 사내의 정사 장면…….
이상했다. 분명 사람인데, 제 머리통을 억누르고서 아랫살을 성큼 파고들어 안을 쿵쿵 짓찧어 대는 서수혁은 사람인데 꼭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처럼 보였다.
아주 사납고 흉포한, 마주치면 절로 오금이 굳어 버리고야 마는 거대한 짐승.
이 위치에서는 서수혁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러한 감정의 파동에 지대한 몫을 더했다.
“흑, 흐…… 읍.”
용기를 내어 머리를 조금 흔들면, 그보다 배는 위협스러운 힘이 손바닥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그럴 때마다 알싸한 소름이 척추뼈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간신히 터뜨리는 한 줌의 호흡이 아연한 울음기로 얼룩졌다.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여긴 갈비뼈가 다시금 쿡쿡, 뭔가에 걸리는 것처럼 아파 왔다. 신체적인 증상이 아니었다. 이건 금수 같은 존재가 등 뒤를 억압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실로 선연한 공포심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이 공포심을 그냥 넘기면 갈비뼈에 다시 이상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건 마냥 기우가 아닐 테다.
서수혁에게 얻어맞은 뺨은 완전히 부어터진 건지 잿불이 잔재해 은은히 발화하고 있는 듯한 통증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몸이 옹송그려졌다. 저를 아무도 볼 수 없는 구석으로 숨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 작은 쥐처럼 희우는 가장 멀리 떨어진 손과 발의 거리를 계속해서 좁혔다.
그게 한창 음란한 자맥질로 재미를 보는 사내의 심기를 건드린 건 한순간이었다.
“너 지금 뭐 하니.”
“…….”
“씹맛 떨어지게, 씨발…….”
조용조용한 듯 묘하게 부산스러운 그녀의 행색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까칠한 어조로 뇌까린 서수혁이 으깰 기세로 바닥에 지근지근 누르던 뒤통수에서 손을 떼어 냈다.
후, 하고 묵직하게 터져 나온 사내의 호흡을 두 귀로 실감했을 때 희우의 몸은 종잇장 흔들거리듯 가벼이 돌아갔다.
아찔한 빛점이 시야 안에서 널을 뛰었다.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두 무릎이 사슬에 얽매이듯 잡히고 늘어진 몸이 조금 더 아래로 질질 끌려갔다. 천장을 응시하며 제 의지가 아닌 힘으로 옮겨지는 건 가마 끝을 오한으로 쭈뼛 서게 만들었다.
시커멓게 벌어진 동공이 곧 사위를 에워쌌다. 가로로 거침없이 뻗어진 눈매 아래에 직- 그어진 불그스름한 생채기가 그 뒤를 따랐다.
서수혁은 되지도 않는 친절이라도 발휘하듯이 희우 쪽으로 상체를 비스듬히 숙인 채, 한 손으로 그녀의 양 뺨을 콱 쥐어 올렸다. 가장자리가 터지고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으로 촉촉해진 희우의 입술이 붕어의 그것처럼 빨쭉 솟아올랐다.
“기절하지 마.”
“…….”
“시체 쑤셔 대는 거 같아서 좆같으니까.”
경고하듯 한 치의 여지도 없는 저음을 뱉어 낸 서수혁은 움키고 있던 뺨을 가벼이 내던지고는 희우의 양 오금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간신히 엉덩이 끄트머리에 걸려 있던 그녀의 팬티가 완전히 날아가 소파 팔걸이에 안착했다.
서수혁은 시계조차 풀지 않은 손으로 사정 한 번 이르지 않아 완전히 불뚝 선 거근을 위아래로 진득하게 문질렀다. 튼실한 귀두 사이의 홈에서 질금질금 솟아오르는 탁액을 혈관이 돋아난 기둥에 발라 대는 모습은 재삽입을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가 입질이 온 것처럼 오물대는 질구에 제 몸을 잘착잘착 문질렀다. 이윽고 서수혁의 능숙한 허리 놀림 한 번에 질 입구는 재차 여지없이 벌어졌다.
보통의 사내들은 귀두가 큼지막하고 그 아랫부분은 조금이나마 얇아지는 감이 있으나, 서수혁의 좆은 그런 알량한 배려심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선단부터 음낭 두 쪽이 자리하는 뿌리 끝까지 그 어디 하나 좁아지는 부분 없이 두께가 균등한 크기로 뻗어졌다. 그러므로 희우의 아랫입은 어디 하나 쉴 틈 없이 늘어나 사내의 아랫도리를 옴씰옴씰 삼켜야만 했다.
요철은 물론이거니와 부피도 어지간한 게 아니다 보니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배 속이 빠듯하게 비틀리는 듯한 팽만감이 신경 다발을 억압했다.
서수혁은 그 상태에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아까처럼 격정적이고 정신 사나운 방아질을 강행했다. 일정한 박자감을 체감할 수 없을 만큼 무질서하며 불규칙한 추삽질이었다.
“아윽, 흐…… 으……!”
호르몬이 잔뜩 고여 거칠거칠하게 부푼 불알이 젖어 든 샅을 처벅처벅 쳐 대는 게 꼭 엉덩이를 후려 맞는 기분을 선사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혼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얼떨떨하면서 동시에 곤혹스러웠다.
실은 그렇게 딱 잘라 정의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잡다한 모든 게 얼기설기 꼬인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그가 힘차게 헤집어 대는 질벽 안이나,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심경이나.
흡사 일방적인 전쟁 같던 정사는 비린 밤꽃 내음, 그 사이로 아리송하게 풍겨 드는 피 냄새와 함께 파종을 맞이했다.
희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아우르는 무지근한 근육통에 서수혁이 비켜나고서도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천장을 향하는 시선이 물속에 몇 방울 떨어진 기름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두둥실, 떠돌아다니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밤을 지나 아침이 온 건지, 제 몰골이나 매무새가 어떠한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체감할 수 있는 감각이라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통증이 다였다. 아파. 한참 비명과 울음이 섞인 교성을 번잡하게 터뜨리다가 결국에 성대가 나가 버린 건지 목 안쪽이 인두로 지진 것처럼 쓰라렸다.
그렇다고 겉이 멀쩡한 것도 아니었다.
‘몇 대를 맞은 거지?’
희우는 간신히 한쪽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폈다. 눈동자가 힘없이 구를 때마다 손가락이 하나, 둘, 셋…… 고이 접혀 갔다. 그 과정에서 한참 구르며 바닥을 긁어 대던 약지의 손톱이 깨진 것도 발견했다.
굼뜬 속도로 손가락을 접어 가던 행동은 다섯 개를 넘어간 순간 관두었다.
차라리 기절을 하고 싶은 행위였다. 그런데 기절도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의 몸은 무척이나 약하다고 했는데, 희우에게는 그 수두룩한 정론들이 늘 가분히 빗겨 나갔다.
이런 상황에 노출되기 시작한 정신줄이 방어기제로서 쇠심줄처럼 질겨지기라도 한 건지 도통 기절도 안 했다. 아니, 사실 기절을 할라치면 감궂은 손바닥이 뺨을 찰싹! 내려치는 바람에 번번이 실패했다고 봐야 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헤아리고 싶었으나 거실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초를 셌다. 조금씩 속도가 붙어 어느새 경주마처럼 격해진 서수혁의 허리 짓 한 번은 1초와 동일하게 느껴졌다. 그런 무의미한 생각을 헤아리고 있을 때마다 손바닥이 날아왔다.
그런 점이 바로 사내를 더없는 짐승처럼 인식하게 했다.
희우가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하면 서수혁은 귀신같이 그를 알아채서는, 괴팍한 폭력으로 그녀의 온 신경을 섹스에 메다꽂았다.
“…….”
희우의 고개가 소리 없이 쓱 이동했다.
그리고 저렇게, 자기 좋을 대로 욕구를 다 푼 뒤에 완전히 늘어진 모습조차도 지극히 본능적이었다.
희우의 젖가슴에 상판을 골고루 문질러 가며 여린 둔덕 살을 쩍, 소리가 나게 빨았다가 놓기를 반복하며 한참이나 파정을 즐기던 그는 한순간 쓱 몸을 돌렸다.
그 후 벗지 않은 시계를 찬 쪽의 팔뚝으로 눈가를 가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사내가 완전히 수면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된 건 워낙에 길어 끝도 없이 뻗어지는 다리 끝의 까닥거림이 멎었을 때였다.
희우는 바로 지금이 이 자리를 피할 기회라는 걸 눈치채고 조금씩 상체를 일으켰다.
한쪽 팔로 바닥을 짚는 것만으로도 바윗덩이에 무참히 깔리는 것처럼 몸 여기저기가 미치도록 욱신거렸다. 윽, 반사적으로 신음이 터져 나갈 뻔한 입술을 간신히 감쳐물었다.
서수혁의 단잠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벌건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남은 무릎이 하릴없이 후들거렸다. 소파 팔걸이를 잡아 간신히 일어나는 데에 성공했으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울컥-
수도 없이 꿰뚫리는 바람에 성기가 빠져나갔음에도 여전히 흐물흐물 벌어져 있는 구멍을 타고 뭔가가 쏟아져 나왔다.
툭 꺾인 시야의 끄트머리, 희우는 양 허벅다리를 타고 흐르는 백탁액을 두 눈으로 발견했다.
계속해서 충격적인 일의 연속선상이라서 그런가. 그 상스러운 장면은 멘탈에 거대한 요동을 끼얹지 못했다. 혹은 더 이상 새삼스레 깨질 부분이 남아나지 않은 걸지도.
간신히 두 다리를 바로 세운 희우는 소파 팔걸이에 걸린 팬티를 붙잡았다. 그나마 벗겨지지 않은 채인 티셔츠를 아래로 끌어 내린 뒤 절뚝절뚝 걸어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게 문을 꼭 닫고서 거울을 보았을 때 희우는 처음으로 웃었다.
파란색을 넘어 보랏빛으로 맺힌 피멍이 얼굴의 반절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래서 그렇게 아팠구나. 손등으로 어혈이 잡힌 부위를 가늠하던 희우는 한숨과 함께 손을 내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제대로 만져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돌려 최대한 조용히 뒤처리에 임했다. 고요에 잠긴 화장실 내부는, 흘러내린 물이 배수구를 통해 꼴꼴 빠져나가는 스산한 소리만 났다.
다행히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서수혁은 여전히 한량처럼 늘어져 있었다. 마르지 않아 똑, 똑 떨어진 물방울을 냉큼 닦아 낸 희우는 기척을 최대한 지워 내려 애쓰며 간신히 방으로 돌아왔다.
“윽…….”
침대에 누울까 했으나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서수혁이 또 언제 깨어나 갑자기 여기로 들이닥칠지 모르겠다는 불온한 상상이 깃들어서였다.
푹신한 침대 대신, 문을 열어도 보이지 않는 침대 뒤편의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여긴 틈새로 찬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컨테이너 박스가 아닌데도 추웠다. 희우의 자세는 어느새 새우처럼 옆으로 돌아누운 식으로 갈음됐다.
눈물이 터진 것도 같은 타이밍이었다.
어, 하고 형태가 불분명한 육성이 터져 나왔을 때는 이미 뺨이 흥건하게 젖은 뒤였다.
공포심이 모든 걸 압도하여 숨을 죽이는 게 최선이던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한 자락 탈피하고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한 건지에 대한 실감이 몰아쳤다.
단전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울분의 물길이 거셌다. 침대 뒤편에 처량하게 숨긴 몸이 부들거렸다. 맨들맨들한 바닥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로 인해 축축하게 침수해 갔다.
모든 걸 감당하기가 버거운데, 그게 피할 수가 없는 현실이라는 게 더 힘들어서 희우는 흠뻑 젖은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저, 시발, 저거, 저년이 문제라니까. 어? 정여래가 저 기집애, 딸이랍시고 데려와 눌러앉았을 때부터 아버지 건강이 갑자기 악화됐잖아. 내 말이 틀려? 저거 진짜 사주에 뭐가 있다니까. 팔자 드럽게 사납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닐 거라고!’
문득 떠오르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외삼촌이 엄마의 품에 폭 안긴 자신만 보면 습관처럼 하던 말이었다. 고양이처럼 표독스러운 인상의 외삼촌은 저만 보면 그랬다. 팔자가 사납다고.
팔자가, 사납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와 희본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판가름한 건 희우가 처한 현실이다.
지금 이런 일을 당하는 것도, 내 팔자가 사나워서일까?
끓어오르는 눈물방울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자고 싶은데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서수혁의 장대한 기골 아래에 볼모처럼 깔려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던 게 떠올랐다. 팔과 다리를 아무리 웅크려도 그 진저리나는 감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멀미가 엄습하는 것처럼 욕지기가 치밀었다.
하는 수 없이 희우는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툭, 툭.
어중간하게 편 손으로 어깨와 팔뚝이 이어지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두드렸다. 그녀가 밤잠을 설칠 때마다 엄마가, 혹은 희본이 달콤한 잠을 선물해 주기 위해 해 주던 행동이었다. 꼭 아기를 다독이듯이.
토닥거리는 소리 아래로 훌쩍이는 울음이 불협화음처럼 겹쳐졌다.
방의 구석, 아주 사소한 틈에서 묻어나는 설움이 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