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1장. 실종과 인질 (1) (2/17)

1장. 실종과 인질 (1)

쾅!

머리통을 짓찧어 오는 강렬한 타격에 두개골이 그대로 함몰되는 것만 같았다.

부딪힌 그 부분이 움푹 파인 건 아닐까 우려가 들었으나 그 뒤를 덮쳐 오는 아찔한 현기증이 뇌리를 먼저 뒤흔들었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릴 틈을 주지 않겠노라는 매서운 압박처럼.

윽, 의도하지 않은 신음이 탄식처럼 새어 나갔다. 쿨럭거리며 말리기도 전에 터져 나온 기침에 비린 피 맛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살려 달라고 발악하듯 허공에서 휘적거리던 손으로 통증이 퍼지는 부위를 만지작거렸다.

더듬대는 손끝이 질척하게 젖어 간다. 땀이 날 만한 부위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건 피였다.

아무래도 두피가 제대로 찢어진 모양인지 가시 수십 개가 일제히 박히는 것만 같은 통각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희우는 정신을 차리려고 눈꺼풀을 빠르게 슴벅였다. 부산스러운 행동을 벌이자 오히려 시야는 벌겋게 흐려지기만 했다.

여기로 끌려와 몇 분이 지났는지,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가기는 했었나?

이 모진 고초의 발단이 불쑥 떠올랐다.

대학 수업을 마치고 막 정문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목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번쩍거리는 엠블럼과 미끈한 몸체를 드러내는 에쿠스가 장벽처럼 나타나 앞을 막아 세웠다.

걸음이 절로 멈추는 사이, 뒷좌석 문이 벌컥 열리고 그 안에서 내린 누군가가 물었다.

‘정희우?’

제 이름을 머금은 사내는 도끼로 얼굴을 찍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흉측한 자국이 있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번들거리는 눈알이 검게 가라앉았다.

‘누구…….’

남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안쪽으로 자리한 금니가 번쩍, 빛을 내기도 전에 목덜미가 붙잡히고 에쿠스로 끌어당겨졌다.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어둡게 물들이는 차체의 내부는 흡사 어두침침한 동굴 같았다.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일부 잘라 낸 포대 자루 같은 것이 얼굴에 씌워졌다.

뒷덜미를 움켜쥔 손길이 모질고 사나웠다. 반사적으로 호흡을 짧게 끊어 쉬기 시작하는 사이, 멈춰 있던 차가 출발했다. 바퀴가 도로를 굴러가는 감각 뒤로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도착한 게 바로 이 밀실 같은 골방이었다.

천장에 달린 전구 알 말고는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갇히자마자 그녀에게 떨어진 질문은 하나였다.

‘네 오빠 어딨어?’

꺼끌꺼끌한 포대 자루가 얼굴에서 벗겨진 희우는 쉽사리 의식을 붙잡지 못하고 입을 달싹거렸다. 핏줄이 형형하게 돋아난 거구의 눈알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달걀귀신 같은 모양새였다.

엄습해 오는 두려움이 일종의 압박이 되어 입술을 비집어 벌렸다.

‘모, 모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토로하자마자 짝- 소리와 함께 뺨을 얻어맞았다.

누구의 손인지도 모르겠다. 앞뒤로 살짝만 움직여도 끽끽대며 음산한 울음을 토해 내는 철제 의자가 쿠당탕, 엎어졌다. 거의 바닥을 구르는 수준으로 넘어졌으나 그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지 않았다.

그보다 싸대기 한 대에 입가가 터져 버린 충격에 희우는 과호흡처럼 고여 오르는 숨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손찌검이라니.

살아생전 누구에게도 당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공포심에 절어 바르르 떨리는 동공으로 바닥만 정처 없이 훑던 도중, 머리채가 험하게 붙잡혀 턱이 확 치들렸다.

‘으…….’

‘대가리 잘 굴리고 답해야지?’

코앞으로 다가온 남자의 눈알이 불투명하게 번들거렸다. 기름이 낀 것처럼 보이는 눈빛은 범인의 그것이라 판단하기에 위화감이 있었다.

굳이 눈빛으로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

처음 봤을 때 식겁할 수밖에 없었던, 왼쪽 눈 바로 옆부터 턱 아래까지 쭉 이어지는 흉터 자국이 그가 뒷세계의 사람임을 소상히 밝혔으니.

두피의 가죽이 벗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억세게 머리채가 잡힌 희우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항변과 애원의 뜻을 담은 눈빛을 그 뒤에 실어 보냈다.

진짜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들이 웃었다. 바짝 말라 숨조차 쉬기 힘든 공기 속에서 작게 오가는 웃음 소리는 하나의 위협처럼 음습했다.

이해가 아닌 조소는 곧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돌변했다.

희우는 이들이 갑자기 자신을 잡아 와 이런 폐허 같은 공간에 가둬 놓고서 복날 개 패듯이 두들겨 패는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챘다.

오빠를 찾고 있는 거다.

그런데 오빠를 왜?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뜨거운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통을 붙잡고 있는 사이, 관자놀이와 귀 사이로 사나운 손길이 끼얹어졌다. 자비 없이 따귀를 올려붙이는 손길에 희우의 상체가 바닥을 향해 맥없이 엎어졌다.

두 팔로 간신히 바닥을 짚어 버텼다. 뚝, 뚝. 어둠에 동화된 눈은 이제 어느 정도 주변을 식별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어도 지금, 콧잔등과 입술을 타고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걸 희우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 씨벌. 질기네.”

발치로 짜증이 반쯤 어린 탄식이 떨어졌다.

이제 울음도 나오지 않아서 숨만 죽이는 사이 머리채가 다시 잡혔다. 희우는 머리카락을 노끈처럼 휘어잡고서 저를 개처럼 질질 끌고 가는 사내의 손길에 무력하게 놀아났다.

습자지처럼 얇아진 정신줄은 계단의 턱처럼 이어지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간신히 더듬거렸다. 어디선가 습한 기운이 훅 퍼졌다. 그에 불길함이 등골을 덮쳐 오기도 전에 뒤통수가 도망칠 수 없게끔 붙잡혔다.

“욱!”

첨벙-!

억지로 잡아 누르는 힘에 얼굴이 축축한 물기로 잠겼다. 절로 막혀 오는 숨통에 달궈진 불판 위로 떨어진 붕어처럼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휘저어 댔다.

그러나 뒤통수를 꽉꽉 눌러 대는 아귀힘은 조금의 틈도 노려볼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기습 공격처럼 물에 푹 잠긴 머리통을 타고 구멍이란 구멍 속으로 수분이 대차게 들어왔다. 오감이 먹먹하게 잠겨 가는 동시에 따가운 감각이 몰아쳤다.

이러다가 죽겠다.

죽을 거 같아. 숨 막혀.

욕탕의 타일처럼 차고 축축한 계단 턱만 더듬더듬거리며 미약하게 반항하다가 그 움직임이 조금씩 사그라들 무렵, 머리통이 번쩍 들리며 물속에서 끄집어내졌다.

프하, 콜록, 캑, 컥……. 희우의 입에서 물과 피가 섞인 기침이 역류하듯이 터져 나왔다.

눈이 따가워서 뜰 수가 없었다. 들이켜는 숨마다 날붙이가 박힌 것처럼 못 견디게 아팠다. 생리적인 고통에 눈물이 터져 끅끅거리자 조금 전까지 저를 물속에 집어넣고서 고문을 행하던 손이 투박하게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쉽게 쉽게 가자. 어엉?”

소리가 물때에 얼룩진 것처럼 잘 들리지 않는다. 설득 같기도 한데 결국은 협박이었다. 희우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찾는 제 피붙이의 행방을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건 아무리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달래듯 말해도 살 떨리는 협박에 불과했다.

희우가 아무런 답도 못 하고 발발 떨기만 하자 쯔읏,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턱을 타고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이 수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암흑을 선사하는 이 방의 사면에 부딪혀서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울림이 유난히 큰 건 골이 울리고 있어서일까.

“악! 읍, 컥.”

손길은 삽시간에 유순함을 버렸다. 머리통을 똑 떼어 낼 것처럼 모발을 거칠게 휘어잡고서 희우가 반항을 표출하기도 전에 물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눈과 코는 이미 담겼다. 입 역시도 그 뒤를 따라 숨구멍이란 숨구멍은 죄 막히기 직전이었다.

“도끼, 살살 하지.”

아무리 좋게 말해도 껄렁대는 기색을 숨기기 어려운 사내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저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그 목소리가 발치로 넘어 들자마자 희우를 물속에 처박고 담금질을 하려던 손속이 우뚝 멈췄다.

“많이 어리던데.”

“짐 뭔 소리 하십니까? 형님.”

“저 어린애가 이런 식으로 뒤지게 팬다고 입을 열까 싶어서.”

“아니, 씨발. 그럼요?”

“차라리 구슬려 보지 그래.”

“한가하게 구멍 쑤시려고 데려온 것도 아닌데 구슬리긴 뭘 구슬립니까?”

희우를 갖은 방법으로 후려 패던 사내가 짐짝 내팽개치듯 그녀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희우는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른 이마를 차끈한 타일에 기댔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폭우처럼 쏟아지던 폭력이 잠시나마 멈추어진 것에 감사했다.

몸의 상태가 완전히 정상을 벗어났다는 건 스스로가 잘 알 수 있었다.

창살처럼 쏟아진 싸대기로 한쪽 면의 이목구비는 죄 퉁퉁 부은 지 오래였고, 지금 막 행해진 물고문 때문에 얼굴 곳곳이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쓰라렸다. 바닥을 구르다가 복부를 대차게 걷어차이는 바람에 배도 피멍이 든 것처럼 지끈지끈했다.

꾹 밟힌 지렁이처럼 졸도하기 직전인 몸을 간신히 추스르기만 하는 사이, 서늘하고 건조한 바닥을 밟는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기 무섭게 가는 팔목이 붙잡혀 몸이 돌아갔다.

수분기에 젖은 망막을 아프게 찔러 들어오는 전구의 불빛에 희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 하자 턱이 붙잡혔다. 수도 없이 쏟아진 싸대기 세례에 턱뼈가 부러지기라도 한 걸까. 그리 그악스러운 힘이 아니었음에도 악, 하고 단전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는 신음이 터졌다.

피멍이 들고 땡땡 부어서 잘 보이지 않는 왼쪽 눈 대신 오른쪽 눈으로나마 상황을 헤아리려 애썼다.

반듯한 슈트 차림새의 사내가 다리를 굽히고 앉아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다갈빛의 눈동자는 창백한 희우의 얼굴을 가볍게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표님이 이 꼴 보면 참 좋아하시겠다.”

“예? 뭡니까. 얘 대표님한테 데려가요?”

얼굴 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자국이 있고, 조금 전까지 신명 나게 희우를 후려 패던 남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희본이를 좀 아끼셨니. 대표님이.”

희우의 눈꺼풀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 끝에 맺혀 있던 핏방울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희본, 오빠의 이름이 여운처럼 드사납게 맴돌았다.

“달리 알아낸 건?”

“죄송합니다. 잡년이 어찌나 뻗대는지 도통 입을 열 생각을 안 해요. 후우.”

도끼를 향해 반쯤 틀어져 있던 사내의 고개가 희우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끔 다시 돌아갔다. 그는 희우의 뺨을 타고 얼룩진 핏자국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시야를 조금 더 확장했다.

도끼가 얼마나 험하게 구타를 한 건지 자그마한 얼굴에 남아난 부분이 거의 없었다. 몰아치는 통증이 심한지 혼절하기 직전처럼 초점 역시 부옇게 흐려진 채였다.

사내, 윤서원이 손등을 들어 핏물로 얼룩진 뺨을 탁탁- 두들겨 깨웠다.

도끼라는 남자처럼 모질지 않으나 그렇다고 하여 관용을 바랄 만큼 자상한 손길은 아니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무감했다. 제게 주어진 사무적인 일을 행하는 사람처럼.

그래도 그 기척에 희우의 초점이 미약하게나마 돌아왔다.

“안녕, 정신 드니?”

“…….”

“너 정말 네 오빠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희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방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가 오가는 기분이었다.

일단은 손찌검으로 질의응답을 강요할 기색은 아니라서 희우는 가까스로 조각조각 난 의식을 바로잡았다. 그러고는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부산스레 고개를 주억였다.

나직한 숨을 터뜨린 윤서원이 협소하고 숨 막히는 내부를 한 번 쓱 돌아보았다.

“여기, 다 네 오빠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

“그런데 희본이가 지금…… 우리가 좆될 만큼 큰 뒤통수를 치고 사라져 버린 상황이거든.”

오빠가 위험한 업에 몸을 담고 있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가끔씩 집에 돌아온 오빠의 옷을 빨 때 흉흉한 핏자국이나, 안감이 연장에 스치거나 찢어져 너덜거리는 흔적도 몇 번 발견했었다.

그럼에도 희우는 그에 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오빠가 그러한 길을 걸어서라도 지키려 한 것이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거, 내가 뭐랬습니까. 지 오래비 얘기만 나오면 조개처럼 입 싹 다문다니까. 이거 분명히 알면서 시치미 떼는 거라고. 이런 잡년 한두 번 털어 봐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 수도 있지.”

“와, 씨팔……. 윤 비서, 프로답지 않게 왜 그래?”

“됐으니 수건이나 가지고 와. 이런 상태로 대표님한테 데려갈 수도 없어.”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희우를 두고서 사내 둘이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게 유난히 음산하게 고막을 두드렸다.

잠시 후, 희우는 제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수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어물어물 얼굴을 들자 윤서원이 닦으라는 제스처처럼 수건을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또 어디론가 가는 건가?

희우는 얼결에 건네받은 수건으로 조심조심 얼굴을 문질렀다. 진한 피로 얼룩진 뺨을 미적미적 닦아 내며 시선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자세를 낮춘 윤서원을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적어도 그는 굼뜬 희우의 행동을 이해해 주고, 매섭게 닦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가 달달 떨릴 만큼 무서웠다.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아서였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대표님?

대표님이 누군데?

구더기처럼 무럭무럭 증식하는 생각을 발산하지 못한 채, 희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전구 알 하나 존재하는 내부는 어두웠고 그에 반해 제게 주어진 수건은 너무나 하얬다. 그 위로 지저분한 낙서처럼 그어지는 핏물에서 현실감을 찾아보기란 퍽 힘든 일이었다. 고통이 이렇게 선명한데, 아니,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아득했다.

얼추 피를 다 닦아 냈다고 여겼을 즈음 수건을 얼굴에서 떨어뜨린 뒤 퍽 둔한 모양새로 윤서원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거해 가 옆에 서 있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거구에게 넘겼다.

“희…… 얘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어, 잠만요. 우요. 정희우.”

“아, 그래. 희우.”

윤서원은 수건을 건넸으나 여전히 옆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희우의 신경은 오직 그쪽에만 쏠려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무자비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낯설기에 두려운 건 사실이었다. 또 뭐가, 뭐가 나오려고.

“희우야. 지금 만나러 갈 대표님이 아주 무서운 분이거든.”

“…….”

“그니까 되도록 허튼짓할 생각 말고…….”

윤서원의 말은 중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비워져 있던 그의 손으로 넘어온 뭔가가 희우의 신경을 죄 사로잡은 까닭이었다. 까끌거리는 무언가…….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촉감이 뻔히 읽혔다.

저건 이곳까지 오는 와중 머리 위에 쓰였던 바로 그 푸대 자루였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수순처럼 희우의 머리통을 재차 먹어 치웠다.

비명을 터뜨리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어느새 밤이었다.

골방 같은 장소에 몇 시간 동안 갇혀서 구타를 당한 건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까만 밤임을 알 수 있었던 건, 푸대 자루에 가려진 얼굴 위로 닿는 공기의 온도 때문이었다.

싸늘한 밤공기가 겨울바람처럼 밀려왔다가 잠잠히 가라앉았다.

차에서 끌어 내려져 양팔이 붙잡힌 채 어느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두 발로 간신히 짚는 바닥의 표면이 잘 깔린 건물 내부의 타일처럼 매끄러워졌다.

그리 열심히 헤아려 보았자 무얼 하나.

의지 하나 없이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는 주변의 형태를 겉핥기식으로나마 추측게 만들었다.

모래알 같던 공기의 흐름이 바뀐 건 찰나였다.

시야가 푸대 자루로 인해 흐려져 분별하기가 어려웠지만, 소리를 지르면 굉굉하게 울려 댈 만큼 넓은 공간 안으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끌려가는 수준으로 이동되던 희우는, 오금을 세게 걷어차는 발길질에 못 이겨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고 푸대 자루가 벗겨졌다.

까슬한 감촉이 상처를 제멋대로 건드리는 바람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아악!”

비명은 바로 그 타이밍에 터져 나왔다.

희우의 손가락이 지레 겁을 먹듯 움츠러들었다. 눈두덩이 퉁퉁 부어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완전히 가시지 않은 현기증 때문인지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시야가 핑글핑글 돌았다.

그토록 혼란스레 흔들리는 가운데, 동공 위로 심지처럼 우뚝 선 이가 박혀 들었다.

희우는 시선이 요동치지 않도록 다잡는 데에 안간힘을 썼다.

한 남자였다.

오빠나, 저를 두들겨 패던 도끼라는 사내나, 무심히 수건을 건네주었던 윤서원이나 모두 작지 않은 키였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감을 여실히 박살 낼 만큼 덩치도, 체구도, 골격도 모든 게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사내는 밤빛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는 통창 너머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시야에 먼저 들어온 건 사내의 얼굴이 아닌 손이었다.

피부가 새까맸다. 한 박자 후에야 그게 가죽 장갑을 끼고 있어서임을 알았다.

실내라는 환경과 장갑은 퍽 부조화스러웠다. 자연스럽지 않은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내는 가죽 장갑을 낀 채로 골프채를 쥐고 있었다. 비스듬한 각도로 하강한 골프채의 끝에 뚝, 뚝 무언가 떨어졌다.

방울들이 모여 엉겨 붙은 아래로 피 색의 웅덩이가 생성되어 있었다.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그것은 시선의 초점이 이동할수록 더 그랬다.

피가 묻을까 봐 가죽 장갑을 낀 것 같은데 하등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사내는 그게 아니어도, 이미 입고 있는 와이셔츠와 뺨 부근에 핏물이 너저분하게 퍼져 있었으니.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지금 막 살인을 마친 이처럼 오싹하게밖에 다가오지 않는 형용이었다.

그리고 그 방증처럼 사내가 서 있는 소파의 뒤편으로 축 늘어진 누군가의 두 다리가 보였다. 조금 전 이 공간을 쩌렁하게 울렸던 단말마는 아마도 저 사람의…….

“대표님, 데려왔습니다.”

부름에 사내는 느긋하게 고개를 틀었다.

가벼운 움직임에도 묘한 기백이 살갗을 에일 듯 다가오는 건 어디 하나 허투루 넘겨볼 수가 없는 우람한 체격 때문이었다.

사내는 바로 다가오는 대신 소파에 착석했다. 조금 전 자신이 골프채로 가감 없이 후려 패 목숨줄을 간당간당하게 만든 이가 그 여유로운 구둣발의 근처에 있었다.

그는 그 상태로 태연하게 등받이에 몸을 묻고서 가죽 장갑을 벗었다.

맨손을 드러낸 사내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쓱 쓸어 넘기고는 턱 부근을 매만졌다. 가죽 장갑을 낀 보람도 없이 다섯 개로 갈라진 손가락 위에 핏물이 선명하게 번져 갔다.

사내는 그 손으로 담배를 꺼내 들었다.

희우가 눈을 깜박였을 때, 분명 제 곁에 있던 윤서원이 소리 없이 이동하여 사내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고 있었다.

관골부터 턱까지 그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사내의 얼굴선이 씰룩이더니 곧 뺨이 훌쭉해졌다. 담배 끄트머리로 화한 불씨가 다닥다닥 옮겨붙으며 맵고 쌉싸름한 연기가 허공을 갈랐다.

사내는 그 상태로 인질처럼 대령된 희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내리깔린 눈매, 그 안으로 보이는 흑빛 동공이 벌어져 있었다. 위협스러운 눈발이었다.

시원스럽게 뻗어진 눈매가 가늘게 접힌 건 다음 순간이었다.

“아기네.”

담배를 피우는 누군가의 형상을 지금껏 수두룩이 목격해 왔다. 하다못해 동기들이 흡연 구역에 모여 공기를 탁하게 만들며 낄낄거리던 장면은 눈에 익을 정도였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그런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뭔가가 있었다.

금연자를 현혹시킬 만큼 맛있게 빠는 듯도 한데, 아슬아슬한 삶에 찌들어 이 정도의 자극으로는 감개를 발휘하기 힘든 것처럼 세상만사 심드렁하게 보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더 어려 보이잖아.”

입술 사이에 물려 있던 담배가 검지와 중지 사이로 옮겨졌다. 희우의 눈길 역시 정처 없이 그를 좇았다.

담배를 끼운 두 손가락을 포함한 모든 손가락의 등에 까만 글자가 한 자씩 새겨져 있었다. 곧게 손을 폈다면 알아볼 수도 있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아서 무리였다.

“대학생이랍니다.”

“그래? 어디?”

“한국대입니다.”

사내는 썩 의외라는 듯 턱 끝을 까딱였다.

단추로 여민 와이셔츠가 팽팽하게 벌어질 만큼 거방진 흉통이 희우가 무릎을 꿇고 앉은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매끄러운 바닥 위를 가로지르는 사내의 그림자가 요망하게 뻗어진 뱀의 혀처럼 길어졌다.

큼직큼직한 장신들 사이에 둘러싸여 더욱 작고 왜소하게 보이는 희우를 먹잇감이라도 되는 양 한차례 훑어보던 사내가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숨을 죽이던 희우의 뒷덜미가 콱 붙잡혔다. 그 상태로 사내가 기대앉은 소파 앞으로 끌려갔다. 일어나 제 발로 걸어갈 기회 따위 주어지지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이동되는 바람에 희우는 무릎걸음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훔쳐보는 수준으로나마 사내를 목도할 수 있었던 건 담배가 그려 낸 연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로 제 눈길을 숨기면 조금은 가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러니만큼 거리가 좁혀질수록, 남자가 선명해질수록, 희우의 고개는 누가 목 뒤를 퍽 내려친 것처럼 숙여졌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타인의 다리가, 골프채로부터 흘러내려 만들어진 피 웅덩이가, 소파에 앉은 사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죽은 사람처럼 꺼져 가던 호흡은 완전히 바닥을 기는 기세로 잦아들었다.

그러니만큼 갑자기 코앞으로 피 묻은 손이 불쑥 다가왔을 때는, 기겁하듯 몸을 퍼드득 떨기 충분했다.

맞붙은 손가락이 희우의 코앞에서 딱, 딱 튕겨졌다.

“어디 봐? 나 여기 있는데.”

그건 주의를 끌 때에 주로 쓰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사람보다는…… 동물에게 쓰는 게 더 적절한 기법이기도 했다.

그게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처지를 한순간에 주지시켰다. 자신은 이 사내 앞에서 목이 잘려 나가도 무방할 피식자와 진배없었다.

그게 그의 말에 꼼짝없이 복종하게 만들었다. 희우는 떨리는 손가락을 꾹 말아쥐고서 느릿느릿 얼굴을 들어 올렸다. 간신히 바로 세운 목 뒤는, 사내가 발산하는 위력에 짓이겨 나무 조각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희우가 얼어붙는 것도 거의 동시였다. 짐승을 잡아먹는 동굴처럼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동공은 은연하게 드러난 희우의 낯을 차근차근 뜯어보았다.

“얼굴은 왜 이러니.”

“도끼가 맡았습니다.”

“손버릇하고는……. 티 안 나게 할 수도 있을 것을.”

짧게 혀를 찬 사내가 희우의 턱을 톡 두드렸다. 거의 스치듯 지나간 접촉임에도 희우는 헛숨을 삼켰다.

사내는 그녀를 코앞에 무릎 꿇려 놓은 채로 묵묵히 흡연을 이어 갔다. 핏물로 얼룩진 입이 다시금 열린 건, 어느새 한 대를 동내고 다른 막대기를 꺼내 드는 차였다.

“오빠한테 내 얘기 들은 적 있니?”

사내가 애연을 즐기는 동안 희우는 골방에서 윤서원이 건넨 경고만 상기하고 또 상기했다.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허튼짓을 하지 말라고도 했다. 무슨 말을 더 하긴 했는데 거기까진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머릿속에 꼭꼭 박아 둬야 할 주의 사항인 건 확실했다.

그걸 유념하고 또 유념했기에 대답은 빠르게 건넬 수 있었다. 피딱지가 얹어져 얼얼한 입가를 벌리는 대신,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저었다.

사내가 미미하게 눈가를 구긴 건 다음 순간이었다.

“아!”

곤히 놓인 구둣발이 희우의 무릎뼈를 콱 짓눌렀다.

사내의 태도는 여전히 무감했다. 그러나 구둣발은 희우의 무릎 피부를 까지게 만들 기세로 느릿느릿 문대졌다.

차라리 퍽 치고 지나가면 후끈한 통증이 일었다가 멎었을 텐데, 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자근자근 뭉개는 통에 알싸한 통증이 지속됐다.

“어린년이 어디서 버릇없이 고개질이야. 혀 잘렸어?”

“아, 아니요. 아니요!”

검붉은 피딱지가 얹어진 입가의 상처가 다시 벌어지든 말든 굴하지 않고 성마르게 답을 끄집어냈다. 정신 나간 이처럼 아니라는 말을 거푸 반복하자 무릎뼈를 아작 낼 기세로 놓여 있던 구둣발이 슬쩍 물러났다.

“그래?”

자칫하다가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희우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여전히 사내의 뒤로는 축 늘어진 사체가 있다. 가시적인 위협이었다.

“나 서수혁이라고 하는데.”

“…….”

“어, 그러니까…… 너희 오빠 대빵, 뭐, 이런 거?”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밝힌 사내, 서수혁이 심드렁히 읊조리고는 시선을 비스듬히 틀었다. 소파 옆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윤서원을 돌아보는 행동이었다.

“아기니까 이 수준으로 말해 주면 되려나?” 하고 장난스레 묻는 태도가 희우의 속에 혼란을 심었다. 크게 화가 난 것 같은데, 또 저리 무미건조한 모습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어렵다. 어려운 사람이었다.

서수혁의 손가락은 방심하는 차에 재차 다가왔다. 입술을 꽉 감쳐문 희우는 입꼬리를 두드리는 감촉에 얼른 힘을 풀었다.

한 박자 후에야 아차 했다.

무릎을 으깰 기세로 짓누르던 것처럼 입술에 손가락을 걸고 찢어 버리려는 건 아닐까. 담배 연기가 희미하게 증발한 사이로 두려움의 안개가 대신 피어올랐다.

서수혁은 생각과 딴판으로 움직였다. 적어도 희우가 잠깐이나마 그린 아찔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무자비한 건 여전했다.

입가에 난 피딱지를 꾹 누른 것이었다.

“잘 들어.”

“으흡…….”

“너희 오빠가 나한테서 장부 하나를 훔쳐 갔거든?”

“…….”

“근데 그게 외부에 까이면 다칠 사람이 아-주 많아요.”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피딱지를 눌러 대는 서수혁의 손가락에 힘이 실렸다. 희우는 입꼬리 끝이 파이는 듯한 통증을 간신히 삼켜 내며 사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부를 훔쳐?

오빠가……?

그래 봤자 여전히 머릿속에서 증식해 가는 건 새파란 의문이 전부다.

“그런 개좆 같은 상황이 오기 전에 막아야지. 아기야,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이제야 알았다. 상처를 짓누르는 힘은 무언의 겁박과도 같았다. “내 말이 틀려?”라며 꼭 의견을 구하듯 묻지만,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대답을 내놓는 즉시 우려대로 입술을 찢어 놓을 기세였다.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거세게 꿈틀거렸다.

희우는 정신없이 “아니요, 아니요.” 하고 아까처럼 반복하여 되뇌었다. 이 무리에게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한 이래 무력한 얼간이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런 희우를 보며 서수혁은 날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더니 부지불식간 손을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입가에서 머물던 손이 헝클어진 희우의 머리칼을 꽉 잡아 뒤로 젖혔다. 턱이 살짝 들리며 드러난, 동그랗고 하얀 희우의 이마에 서수혁의 이마가 부딪혔다.

뭔가가 신랄하게 번들거렸다. 사내의 눈동자에 고인 빛점이었다.

“정희본 어딨어?”

그제야 한 가지는 또렷이 알 수 있었다.

태도만 침착하게 갈무리했을 뿐, 사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귓구멍을 포악하게 쑤시고 드는 음성이 이처럼 섬뜩하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잘 벼린 날붙이가 고막에 대고 문질러지는 것처럼 소름을 감추기가 어렵다.

희우는 조금 더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골방에서부터 여기까지 자신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건, 이들이 내놓으라는 걸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뭐라도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으리라.

‘학교 잘 다녀와. 희우야. 밥 거르지 말고 꼬박꼬박 먹고.’

희본과의 마지막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날의 아침은 여타의 날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나 살펴볼 이유도 없었다.

오빠는 그렇게 훌쩍 집을 나섰다가 짧게는 사흘, 길게는 일주일 동안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잦았다. 이번에도 그런 출장이겠거니 했다.

그러니까, 희우로서는 이 남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다는 거다.

“모, 몰라요. 진짜 모르…….”

코앞에서 번들대는 동공에 그나마 한 줌 남아 있던 빛이 꺼졌다. 실망과 안타까움이 깃드는 변화는 아주 잠시 잠깐 그 이면을 드러냈을 뿐, 희우가 길게 숨을 내쉬었을 때는 이미 깔끔히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래…….”

서수혁이 머리채를 한가득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부딪혔다기보다는 문질러지던 이마가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머뭇거림 없이 뒤로 물러난 몸은 잇따라 소파에서 일어났다. 키가 원체 크기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은 희우가 그를 보려거든 본능적으로 고개를 젖혀야만 했다.

희망이 부식된 눈이 무기질적인 그것과 허공 중에서 포개어졌다.

“그럼 맞아야지, 뭐.”

서수혁의 판단은 희우의 정수리에 서릿발처럼 꽂혀 들었다. 벼락같이 꽂혀 몸을 포악하게 가로지르는 건 공포심이었다.

서수혁의 판결 같은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대기하던 거구 둘이 다가와 희우의 양팔을 붙잡아서였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저, 저기. 저기……!”

예의 없는 고갯짓으로 인해 무릎을 가격당해 놓고 또 바보같이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공포심이었다.

손에 들고서 발화하지 않은 채 굴리기만 하던 담배에 뒤늦게 불이 붙었다. 서수혁은 절망스레 반응하는 희우를 내려다보며 필터를 길게 빨았다.

“나는 매가 약이라는 걸 믿는 사람이야. 왠지 알아? 이 바닥 새끼들은 희한하게 모른다고 하다가도 두들겨 패면 결국 입을 열더라고. 그럴 거면 맞기 전에 열면 좀 좋아?”

“아니에요. 아니요. 저는, 전 진짜……!”

“사람이 교양 있게 가고 싶어도 참, 그럴 수가 없게 만들어.”

서수혁은 담배와 문신으로 심플하게 장식된 손을 간결히, 그리고 명료히 움직였다.

“도끼한테 다시 보내.”

그 손이 목적을 다한 것처럼 깔끔히 거두어졌을 때 희우는 이미 집무실 밖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조금씩 작아지는 사내의 형상이 끝내 쾅 닫힌 문 너머로 사라졌을 때 그녀에게 남은 거라고는 암흑뿐이었다.

* * *

콜록.

메마른 기침이 속절없이 터졌다.

옆을 향해 새우처럼 등을 말고 누워 있던 희우는 잘 뜨이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한데 뭉친 피가 엉겨 붙어 있다가 그대로 응고라도 된 건지 속눈썹이 무겁고 까슬거렸다. 굳이 그 부위를 확인하느니 천장을 향해 제대로 돌아눕는 데에 전념했다.

“아으읍…….”

신음이 잇새로 새어 나오는 건, 쉼 없이 걷어차인 복부와 등허리 부근이 미치도록 욱신댄 까닭이었다.

갈비뼈도 문제가 생겼는지, 호흡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마다 날카로운 흉통이 질기게 따라붙었다.

간신히 정자세로 돌아눕는 데에 성공한 희우는 무기력한 눈동자를 가물거렸다.

고통이란 신기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몰아쳤음에도 결국은 살아 있었다. 이미 죽은 거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기엔 오감이 너무 생생했다.

어디선가 들은 말로, 또 희우가 지금껏 겪어온 바로 사람의 목숨은 아주 쉽게 끊어지고는 하던데 그녀에겐 영 신빙성이 없는 말이었다.

목숨은 예상외로 질겼다. 그게 아니라면 하루 온종일 이곳에 박혀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력의 세례를 받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희우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기 위해 혀를 빼어 냈다. 느리게 핥는 행동 뒤로 배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이제 이게 입에서 터진 피인지 콧구멍을 타고 주르륵 흐른 피인지도 분별이 불가능했다.

오늘로…… 며칠이 지난 거지?

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뇌리를 부유했다.

도끼라는 남자는 가차가 없었다. 실상 희우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했던 골방에서의 폭력은 그에게 몸풀기도 아닌 수준이었다.

그는 흡사 희우를 실에 걸린 인형 대하듯 가지고 놀았다. 굳이 따지면 저주 인형. 왜, 짚으로 만들어 못으로 아무렇게나 찔러 대는 그런 유형의 인형 있지 않은가.

그 정도로 희우를 못살게 굴고 껄렁한 비난조로 협박했다.

그는 제게 질기다고 했으나 희우가 느끼기에는 그가 더욱 질겼다. 한 가닥의 머리칼까지 전부 움켜쥐고서 벽에 머리통 앞면을 쾅쾅 박아 댈 때에는 도무지 모른다는 말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딘가를 말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빠와 갔던 식당으로 기억한다.

그냥, 뭐라도 말해야 살 것 같았다.

도끼가 무식하게 박아 대던 이마 한가운데서 피가 질질 새고 있었고, 거의 기절하기 직전인지라 갈급한 무의식에 터져 나온 말에 가까웠다.

도끼는 장소를 듣자마자 두어 번을 되묻고는 바로 이곳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희우를 팼다. 갈비뼈는 아마 그때 ‘씨팔! 이 미친년이 좆뺑이를 시켜?’ 하며 화풀이하듯이 내지른 발길질에 손상을 입은 걸로 기억한다.

희우는 그 후부터 그냥 닥치는 대로 장소를 불렀다.

그렇게라도 해야 잠시나마 혼자서 눈을 붙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봐야 도끼가 돌아오면 찬물이 얼굴에 부어져 강제로 깨어나야만 했지만…….

이들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서수혁, 이라고 했었지.

그 사람이 가장 그랬다. 도끼한테 무진 후려 맞은 기억이 낭자한데도, 그가 구둣발로 흰 무릎을 내리밟던 순간이 더욱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오금이 저린 느낌이었다. 두 다리로 서 있었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도움 청할 곳 없이 갇혀 버린 깊숙한 산속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을 마주친 심경이었달까.

어쨌든 그토록 무서운 이들이 오빠를 쫓고 있었다.

이유는 이제 알고 있다.

‘너희 오빠가 나한테서 장부 하나를 훔쳐 갔거든?’

오빠는 그런 걸 왜 훔친 거지?

뭐가 됐든, 그 일로 인해 이들이 머리끝까지 바짝 열이 올라 오빠를 찾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희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천장이고 벽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하늘을 까마득한 눈으로 더듬었다.

그럼 이 사람들이 찾는 오빠는 어디로 간 걸까.

오빠는…… 날 버렸나?

버린 건가?

애써 천장을 향해 돌려 눕혔던 몸을 다시 벽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제집을 찾는 달팽이처럼 신체를 한껏 구겼다. 그렇게 움츠리지 않으면 맘속을 속수무책으로 파헤쳐 들어오는 공허감을 이기기가 어려웠다.

희본은 희우의 세상에 단 하나 남은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삶 속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지금 어딘가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유일한 부모인 어머니는 보다 이른 나이에 절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희본은 고작 한 가지의 의미로 정의할 수 없는 버팀목이었다. 망망대해 같은 이 세상 속의 유일한 등대였다. 자신의 곁에서 때로는 부모가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남매가 되어 주기도 하는 희본이 바로 유일한 피붙이이며 무이한 울타리였다.

자신을 최대한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어린 나이에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해 오던 오빠를 알기에 조금 더 눈물이 났다.

어쩌면 오빠가 저를 버린 걸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 그걸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쌓아 온, 녹록지 않았던 삶의 무게를 알기에.

하지만 그래도 슬프다. 아파서 더 슬펐다. 집에 가고 싶었다.

비좁고 먼지 냄새가 눅눅히 내려앉은 단칸방이지만 적어도 여기보다는 나을 것이다. 돌아가서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장롱 속에 넣어 둔 솜이불을 끄집어내 몇 날 며칠 아무 생각 없이 푹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나, 집에 갈 수는 있을까?

암울한 희망밖에 되지 않는 질문이 곰팡이처럼 희우의 속에서 번져 갔다.

부식된 눈으로 정처 없이 허공을 더듬다가 정말로 집에 가고 싶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차올랐다.

어둠에 잡아먹힌 것처럼 까만 벽을 응시하다가 동공을 느리게 굴렸다.

일단은 여기가 어디인지 헤아려 보았다.

스며드는 빛은 분명 있으나 꼭 인공적인 무언가로 막힌 것처럼 지극히 적은 양이었다. 창문이 있지만 흑지나 그 외의 물건을 붙여 바깥을 염탐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키는 듯했다.

문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알고 있었다.

기절한 척 누워 있을 때 제 발치 근처의 문을 열고 사라진 도끼의 행방을 기억해서였다.

희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 아주 미약하지만 짠 내가 실려 있었다. 거기다 의식이 드문드문 끊기는 바람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몇 번 울린 것도 같았다. 짠 내와 뱃고동을 조합해 보면 이곳의 위치는 단 하나로밖에 추정되지 않았다.

‘항구……?’

이렇게 팔자 좋게 나자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가 정말 항구라면 희망은 조금 더 퇴색되겠지만, 그래도 상황을 조금이라도 파악해 두고 있는 편이 나았다.

어쨌든 납치를 당한 입장으로서는 말이다.

“후으…….”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자마자 지끈거리는 통증이 신경을 타고 기어 올라왔다. 어딘가에 부딪히기를 수 번 반복한 어깨는 새파란 피멍이라도 들었는지 마구잡이로 쑤셔 왔다.

간신히 상체를 곧게 세우는 데에 성공한 희우는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듬더듬.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육안으로 구별하기도 어려운 내부를 한참이나 더듬었다. 그러다가 뭉툭하게 튀어나와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단단하고 곧게 뻗친 게 마치 틀 같았다.

확신을 얻고 더욱 열심히 더듬거리자 곧, 뭔가를 부착한 테이프 자국을 찾아냈다. 지직. 그것을 뜯어내자 한 줌 내려앉는 빛살이 조금 더 진해졌다. 얇은 막을 한 뼘의 크기로 들어 올리자 드디어 그토록 헤아리고 싶어 하던 바깥의 경치가 보였다.

주변에 즐비한 건 컨테이너 박스였다.

파란색과 빨간색, 주황색처럼 갖가지 화려한 색깔로 채워진 컨테이너 박스가 수두룩했다. 그런 풍경을 보다 보니 희우는 자신이 갇혀 있는 이곳의 정체도 금세 가늠했다.

항구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구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희우는 다시 테이프를 잘 붙여 두고서 몸을 뒤로 물렸다.

튈까?

문은 저기에 있고 희우의 몸을 구속하는 건 없었다. 물론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룩진 고통이 절로 숨을 헐떡이게 만들었지만, 그거야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튀면 어디로 가지?

이들은 사람 찾는 데에 이골이 날 만큼 전문인 사람들이다. 꽁꽁 숨어 버린 오빠마저도 저렇게 혈안이 되어 서울 바닥을 이 잡듯이 다 뒤지고 있는데 나 하나 찾는 게 어려운 일일까.

오히려 한 번 튀었다가 잡히면 더 두들겨 맞지 않을까?

몇 번이고 타격을 입는 바람에 두뇌 회로가 망가졌는지 생각은 또렷한 해답 없이 잔혹한 가정만을 줄기차게 이어 갔다. 그럴수록 희망은 계속해서 저물어만 갔다. 나름 의지를 가지고 곧추세워진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기울었다.

잿빛으로 얼룩진 희우의 눈동자가 닿은 건 몸을 일으켜 앉느라 말려 올라간 치맛자락이었다.

그녀의 미간이 불쾌한 뭔가를 떠올린 이처럼 잔뜩 일그러졌다. 얼른 손을 뻗어서 그것을 확 잡아 내렸다.

도끼에게서 오묘한 기색이 느껴지기 시작한 건 며칠 전의 밤이었다.

‘씨이벌,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취조라는 이유로 희우를 저 좋을 대로 흠씬 패고는 어디선가 가져온 철제 의자에 걸터앉은 그가 한탄처럼 뇌까렸다.

‘너 이렇게 버텨 봤자 소용없다니까? 하, 존나 복장 터지게 하네.’

기절한 척 숨소리를 감추는 희우의 머리통을, 깨어 있는 거 알고 있으니 간사한 꾀 부리지 말라 윽박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픽픽 찔러 대며 그가 거친 음성으로 읊조렸다.

곧 품을 뒤지는 소리가 났고, 라이터 휠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칼칼한 연기가 협소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는 담배를 뻑뻑 피우며 걸쭉한 욕지거리를 쉼 없이 뱉어 냈다. 귀가 썩는 기분에 희우는 두 눈을 감고서 차라리 정신을 잃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피곤해 죽겠네. 씨팔, 네년 때문에 내가 요즘 빠구리도 제대로 못 쳐요. 하, 나, 업소 새로 들어온 갈보년 젖통 커서 따먹는 맛이 있었는데……. 대표님은 하필이면 나한테 넘겨 가지고…….’

도끼의 타령은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제 아랫도리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식으로 갈음되었다. 매캐한 내음과 함께 구시렁구시렁 늘어놓는 한탄은 눈 뜨고 못 봐 줄 만큼 저급했다.

‘가오 없게 딸을 칠 수도 없고.’

‘…….’

‘아, 존나 떡치고 싶다.’

그는 꼭 성행위를 연상시키듯이 철제 의자에 앉힌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도끼를 등 뒤에 두고 있었기에 그 행동을 추측할 수 있었던 건 끼익, 끽 거리며 요란스레 울리는 철제의 소리 때문이었다.

거기에 맞춰서 그는 꼭 섹스하는 여자의 신음을 흉내 내듯 아, 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끽끽거리는 철제 소리에 덧입히듯 아, 아, 아, 아- 하고 점점 고조되는 신음 소리를 흉내 내는 모양새가 볼품없이 저열했다.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는 듯했으나 이 작은 상자 속에서 그에게 한차례 굴려진 희우에게는 선뜻 넘길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도끼의 천박한 장난이 멎은 건 잠시 후였다.

낄낄대며 혼자서 저질스러운 짓을 해 대던 행위가 뚝 멎자 사위로 내려앉는 건 짙은 침묵이었다.

그 사이에서, 희우는 똑똑히 체감했다.

그의 눈길이 제 몸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음을.

여기저기 성치 않아서 힘이 잔뜩 풀린 몸이 다시 긴장으로 차올랐다. 그리고 그건 도끼의 손이 희우의 무릎을 덮었을 때 배가됐다.

벌레가 달라붙은 것처럼 당장 그 손을 털어 내고 싶었다. 마음은 그랬으나 정작 몸은 망부석처럼 딱딱히 굳어 버렸다.

도끼는 자신이 발로 까 멍이 든 희우의 무릎을 매만지다가 천천히 손길을 옮겼다. 그 행적이 옷자락에 덮인 엉덩이에 도착했을 때는 당장 사내의 뺨을 후려치고 세상의 반대편까지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오히려 여기서 허튼짓을 하면 정말로,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목 끝에 칼처럼 디밀어졌다.

단지 후려 맞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심이 몰려왔다. 단둘뿐인 공간, 어떤 식으로도 뒤집힐 수 없는 상하 관계, 살려 달라고 소리를 친다고 한들 그 누구 하나 들어 주지 않을 것만 같은 고립감.

그 모든 것들이 무형의 물질이 되어 희우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야, 자냐?’

‘…….’

‘정희본 그 기생오라비 닮아서 얼굴은 반반하니 제법…….’

담배를 문 탓에 발음이 약간 어눌해져 있으나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도끼의 마음이 점점 좋지 못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희우는 어느새 자신이 숨도 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나마 살집이 있는 희우의 엉덩이를 한참이나 주물럭거리다가 슬금슬금 배가 있는 쪽으로 팔을 뻗었다.

희우의 눈이 절망으로 감겼다.

판판한 배꼽 주변을 느리게 더듬던 꺼칠한 손바닥이 한껏 들이켠 우려심처럼, 아슬아슬한 곳으로 빠지려는 차였다.

단조로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도끼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씨발! 뭐야.’

뒤를 돌아 쿵쾅쿵쾅 내디디는 걸음새에 신경질이 여실히 묻어 있었다. 일반적인 인사말이 아닌, 따지고 들듯이 전화를 받는 태도는 꼭 잘못을 저지르다가 직전에 들킬 뻔한 어린아이의 것처럼 성마른 감이 있었다.

다행히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나 희우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도끼가 제 몸을 만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는 걸.

희본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저를 잡아 두는 일에 전념하는 도끼는 그 시간 동안 해소하지 못하는 성욕을 해결하기 위하여 희우를 지분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릎이나 팔뚝처럼 사소한 부위였는데 갈수록 그 범위가 대범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제는 기어이 허벅지 안쪽까지 기어들어 와 말캉한 살집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 댔다. 그 태세는 가히 허투루 볼 것이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끼쳐서 희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끼의 만행을 헤아리고 있자니 더더욱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오빠는 대체 어떻게 이런 이들과 어울리면서 일을 한 걸까.

그런 그를 헤아리다 보면 슬픔과 미움이 동시에 괴어올랐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빠의 행방을 밝히는 것 하나뿐이다. 그러나 희우는 그의 행방을 정말 몰랐다. 그러니 남은 건 도망뿐이지만 그러다가 잡히면 이번엔 얼마나 맞게 될지 몰랐다.

고장 난 사고는 그 반복적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쳇바퀴 돌듯 행해졌다.

그렇게 맥없이 굴고 있을 때였다.

터벅.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희우는 잠이라도 드는 것처럼 몸을 미끄러뜨렸다.

도끼가 이곳을 나가기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자니 문이 벌컥 열렸다.

“야!”

“…….”

“또 처자냐?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이거. 어휴, 지금 밖에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다가온 도끼가 등을 가차 없이 발로 깠다. 하마터면 벽에 부딪힐 뻔하는 바람에 놀란 희우의 입에서 기침이 터졌다.

그 때문에 깨어나 있다는 걸 들키자 도끼가 히죽 웃으며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야 이 기집년아……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너 오늘은 진짜 잘못 답하면 칵 뒈질 수도 있거든?”

그가 희우의 머리채를 움켜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는 눈가의 힘이 풀린 그녀의 양 뺨을 콱 잡아 제게로 고정시켰다.

“그니까 판단 잘하자고. 어엉?”

가차 없이 움킨 뺨을 탈탈 흔들어 대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그게 힘겨워서 고개를 비틀어 피하자마자 냉혹한 손찌검이 날아왔다.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 튀는 것과 동시에 몸이 축 늘어졌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여긴 상태는 단지 익숙됨의 망각이었는지 다시 전신이 아릿아릿해졌다.

이후 악순환의 굴레처럼 돌팔매질 같은 폭력이 쏟아졌다. 간신히 피딱지가 벗겨지며 나은 입가는 여지없이 터지고 거푸 후려 맞은 눈자위의 핏줄이 터져 눈가가 붉어졌다.

헉, 도끼가 커다란 몸으로 저를 벽에 밀어붙였을 때에는 단말마처럼 숨이 끊기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씨발…… 이렇게 처맞는 거 지겹지도 않어? 어? 난 이제 지겹거든?”

압사라도 시킬 작정인지 그가 거대한 체구로 희우를 짓눌러 왔다. 벽과 하나가 될 것처럼 딱 달라붙은 희우는 꺼끌한 벽면에 얼굴이 쓸리는 게 따가워서 턱을 비틀었다.

그러다가, 흠칫했다.

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뭔가가 닿고 있었다. 사람의 신체 기관이라기에는 묘하게 딱딱했다.

처음에는 몽둥이 같은 것인가 했다. 그러나 도끼는 폭력을 행사할 때 별도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걸 막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정체를 가늠한 후였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표백됐다. 도끼는 지금 성기를 세우고 있었다. 일반적인 신체 부위라기에는 지나치게 단단한 강도가 바로 그 증거였다.

부러 의식하라는 것처럼 그것을 희우의 엉덩이에 대고 느릿느릿 비벼 대는 몸짓에 토할 것처럼 욕지기가 치밀었다.

처음에는 희우를 겁박할 용도로 벽으로 밀어붙인 듯한데, 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기라도 했는지 그는 조금 더 허리를 적극적으로 놀렸다.

비위가 상하는 게 정도 이상으로 심해졌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며 놀란 뇌리를 달래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기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게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면 몰라도 이미, 전초전은 수두룩하게 벌어지지 않았는가.

“악! 씨팔년이!”

사람은 진정으로 위기 상황이 도래했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는 했다. 지금의 희우도 그랬다.

대체 무슨 힘으로 도끼를 밀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쯤 방심을 하고 있었던 건지 도끼는 보기 좋게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연장처럼 뒤통수를 후려쳐 오는 그의 음성을 뒤로한 희우는 황급히 문가로 달려갔다.

동그란 쇠 문고리는 다행히 별도의 잠금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벌컥 열어젖히자마자 며칠간 제대로 보지 못한 햇볕이 머리 위로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 아득함에 눈앞이 점멸했다가 돌아오는 순간, 당장이라도 부리나케 달아날 것처럼 굴던 희우의 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코가 아플 정도의 짠 내가 강하게 밀려왔다. 그 소금기 어린 내음을 배경 삼아 선 검은 슈트의 거구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지난날 제 무릎을 가차 없이 밟았던 사내가 있었다.

막 불을 붙이려고 했는지 담배를 입에 문 서수혁이 소란에 고개를 돌렸다.

고작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희우는 지난날같이 무릎이 짓이겨진 이처럼 주르륵 주저앉았다.

“너, 이, 씨팔!”

뒤에서 튀어나온 도끼의 손이 희우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비좁은 공간에 도끼와 있을 수는 없었다. 그건 제게 분명히 재앙이 될 일이었다.

희우는 몸부림치듯 사지를 비틀었다. 서수혁은 바로 뒤편에 놓인 세단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로 이쪽의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고개를 한 번 까닥거렸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 몸짓을 읽은 도끼가 쩝, 소리를 내며 손을 뒤로 물렸다.

저를 잡아채는 억센 힘도 사라졌으니 바로 서야 하는데, 무릎에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끼와 멀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서, 이 지긋지긋한 컨테이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희우는 무릎걸음으로 기었다. 도처의 이목이 모두 제게 쏠려 있다고 한들 이 우스꽝스러운 짓을 멈출 수 없었다.

거칠거칠한 재질의 땅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멍이 든 무릎이 엉망으로 갈라졌다. 아마 자세히 보면 살결이 다 쓸리고 찢어졌을 게 뻔했다.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났다. 이 냄새마저도 이골이 났다.

그렇게 서수혁을 향해 절반쯤 기다가, 아파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 그 자리에 앉아서 숨만 할딱이고 있자니 목전으로 시커먼 두 다리가 불쑥 들어왔다.

“…….”

희우가 힘겹게 고개를 드는 것보다, 서수혁이 다리를 굽혀 자세를 낮추는 게 한 템포 빨랐다.

어느새 담배 끄트머리에 화한 불씨가 붙어 있었다.

그는 오른쪽 잇새로 연초를 꼬나문 채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도끼가 실력이 나쁜 친구가 아니거든.”

“…….”

“근데 며칠째 진척이 없다길래, 궁금해져서 말이지.”

서수혁은 그토록 간결한 말로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전했다. 그건 희우에게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가까워진 그의 소매 춤을 움켜쥐었다.

주변에 널린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송곳날처럼 곤두선 걸 알면서도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저, 사, 살려 주세요…….”

“…….”

“진짜 몰라요. 오빠가 저한테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그냥, 어느 날부터 안 오길래, 이번에도 일하느라 안 들어온다고만 생각했지. 그냥, 밥, 밥 잘 먹고 있으라고. 그렇게만 말해서. 저는, 전 진짜로…….”

이 남자가 제 납치를 사주했을 장본인임을 알기에 살려 달라는 말이 어불성설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도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 이 남자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서수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뚫을 듯 피할 길 없이 뻗쳐 오는 눈길은 불꽃처럼 강렬했다.

눈자위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의식할 새도 없이 터져 나온 눈물 때문에 눈앞이 엉망진창으로 뿌예졌다. 사내의 형상이 흐려졌음에도 여전히 그, 불씨처럼 강인한 눈길이 제게 닿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의 소란으로 부딪힌 머리가 징징 울려 댔다. 울음을 터뜨린 까닭인지 현기증이 점차 심해졌다. 눈앞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에도 굴하지 않고 한사코 빌었다.

서수혁은 조금씩 눈꺼풀을 닫는 희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가녀린 몸이 옆으로 기우뚱 쓰러졌을 때 반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툭, 부딪힌 뒤 실려 오는 무게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희우는 완전히 기절했는지 옆으로 기운 그 상태에서 조금씩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뒤편에 서서 대기하던 윤서원이 급히 서수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연기 같아?”

“예?”

“난 아닌 것 같은데.”

“…….”

“이게 연기면 얜 배우 시켜야겠네.”

윤서원은 그의 말을 알아듣고서 조용히 몸을 숙여 기절한 희우를 안아 들었다.

“내 집으로 데려가.”

“대표님 자택, 말씀이십니까?”

“희본이가 자기 동생을 꽤 아끼지 않았니.”

“…….”

“내 수중에 있다는 게 소문이 나야 지 발로 뛰쳐나간 집에 돌아올 생각이 들겠지.”

묵묵히 귀를 기울이던 윤서원은 더 묻지 않고 잠자코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세단 쪽으로 향했다.

그사이 느긋하게 몸을 일으킨 서수혁은 여전히 컨테이너의 문가에서 서성이는 도끼에게 눈짓했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잠자코 지켜보던 도끼가 한달음에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간 수고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근데 도끼야.”

서수혁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 들었다.

“내가 얼굴은 손대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니?”

“아, 그게 말입니다, 대표님.”

반사적으로 입을 열던 도끼는 그게 썩 옳지 않은 행동임을 깨닫고 조용히 뒷짐을 졌다.

서수혁이 담배를 다시금 입에 물었다. 마지막 호흡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깊이 들이마신 그는 다음 순간, 주저 없이 담배를 도끼의 관자놀이에 짓눌렀다.

치이익, 살이 타는 소리가 잔혹하게 허공을 갈랐다. 꼿꼿하던 도끼의 자세가 허물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고꾸라지면 다음에는 칼날로 피부가 포 뜨일지도 모를 일이기에 아득바득 두 장딴지에 힘을 줬다.

도끼의 이마 부근에 푸른 핏줄이 형형히 돋아나고 구겨진 눈알이 화상의 고통으로 번들거렸다.

큭, 끝내 삼켜 내지 못한 뭉툭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사이 도끼의 관자놀이를 재떨이 삼아 담뱃불을 끈 서수혁은 꺼멓게 진화된 막대기를 심드렁한 손길로 내던졌다.

“네 좆대로 굴 거면 네가 대표 하지 그러니.”

“아닙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다음에도 이러면 재미없을 줄 알아.”

간명하나 무게감이 여실한 말로 경고를 남긴 서수혁이 뒤따라 세단에 올라탔다.

이후 짠 내가 몰려오는 항구에는 출발하는 차의 배기음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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