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6)

5. 에필로그

강당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 있었으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 많은 견습생의 관심의 끝에는 연금술사가 한 명 서 있었다.

“올해 정식 연금술사 승단 시험을 통과한 상급 견습생들의 이름은…….”

그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곤, 증명서 위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아돌프 하이델베르크, 프레드릭 웨스트모어, 마리온 플라리넷. 이상의 세 명은 단상으로 나오도록.”

우당탕! 쿵쾅!

이름이 불린 세 명 중 한 사람인 아돌프가 황급히 일어나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리온은 웃지 않았다. 그가 몰락해가는 자신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이 탑에서 7년이나 고된 견습 생활을 하였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7년간의 고생을 드디어 보답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마리온을 비롯한 세 사람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나이 든 연금술사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행실과 연구를 칭찬하고, 임명장과 반지를 수여했다.

“마리온 플라리넷.”

마침내 마리온의 차례가 되었다. 앞선 두 사람의 칭찬을 할 때는 어렵지 않게 말을 시작했던 연금술사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음…….”

이것은 그가 마리온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머릿속을 추스르고 할 말을 앞선 두 사람과 비슷한 분량으로 정리한 연금술사가 입을 열었다.

“마리온 플라리넷. 자네는 입적한 뒤 단 3년 만에 정식 연금술사가 됨으로써, 10년 만의 최단 정식 연금술사 승단 기록을 세웠다. 이는 현 탑주님에 비견할 정도의 성적으로, 자네 역시 그만큼이나 훌륭한 연금술사로서 성장하기를 기대하겠다. 또한 자네는 첫 여성 연금술사라는 이유로 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그에 굴하지 않는 정신력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분명 여성은 물론 모든 연금술사의 꿈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이니만큼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울 정도의 극찬이었다. 한 차례 박수갈채가 지나갔다.

연금술사는 다시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특히 식물 성장촉진제와 수분과 영양분을 장기 보존하는 흙은 견습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농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곧 그녀에게 역시 임명장과 연금술사의 반지가 전달되었다. 연금술사의 반지는 연금술사의 탑에서 인정하는 정식 연금술사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탑의 문장이 새겨져있는 금반지였다.

마리온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임명식이 끝나고, 모여 있던 인원이 전부 해산했다.

마리온의 곁으로 몇 명의 견습생이 몰려들었다.

“마리온 선배님! 역시 선배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제일 먼저 그녀에게 말을 붙인 사람은 하급 도제인 애슐리였다.

마리온의 소문이 퍼졌기 때문인지, 올해에는 그녀 다음의 여성 연금술사 견습생이 두 명이나 들어왔다. 마리온이 견습생이 된 뒤로 2년 만에 처음 생긴 여성 후배였기에, 마리온은 그들을 애지중지하며 몹시 아꼈다.

곧 또 다른 여성 후배인 세실과 그녀와 단짝처럼 친한 중급 도제 도미닉, 상급 도제 에녹이 다가왔다.

“축하한다, 마리온! 너라면 이번에 승단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정말 부럽다.”

“정식 연금술사가 되신 것을 정말 축하드려요, 선배님. 시험 기간에도 제 질문을 받아주시고, 제 연구과제를 성심성의껏 도와주셨던 것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선배님이 그리워질 것 같아요.”

“마리온은 아직 탑을 나갈 거라는 얘기도 안 했는데 왜 벌써 작별인사를 하고 그래?”

세실이 훌쩍이자 에녹이 타박을 주었다.

친한 여성 견습생 후배가 생기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마리온을 겉돌게 하는 분위기를 주도하던 헥슨이 탑에서 퇴출당하면서 마리온에게도 자연히 함께 수업을 듣고 식사를 하는 친우들이 생겼다.

마리온은 각자의 방식으로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친우들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에녹 말이 맞아. 당장 탑을 나갈 생각은 없어. 한동안은 여기서 연구를 더 할 생각이야.”

“저, 정말요? 하지만…… 이곳에 남으시면 귀족 가문의 후원을 받기 어려우시잖아요?”

“맞아요. 선배님은 황실에서도 탐을 낼 만한 인재이신데…….”

세실과 도미닉이 깜짝 놀랐다. 연금술사로서 부와 명예를 제일 쉽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귀족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해당 가문의 전속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돈도 벌고, 연구와 발명품들을 상류사회에 제일 빨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마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귀족 가문에 종속되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아니라 후원자들이 원하는 연구를 하게 되잖아.”

“그건…… 그렇죠.”

“내가 하고 싶은 연금술은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연구를 더 하고 싶어.”

마리온이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친우들의 눈에 감명받은 기색이 어렸다.

“과연…… 선배님이셔요.”

“넌 정말 한결같구나. 대단해.”

“하긴, 선배님은 발명품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벌이가 되니까요.”

“그것도 그렇고…… 사실은, 알펜슈타인 선생님이 내년부터 은퇴하신다고 하잖아. 내가 그 자리를 맡기로 했어.”

“네에?”

이 말에는 모두가 놀랐다. 견습생 전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곧, 질문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탑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선생이 되다니! 그럼 이제 네가 견습생들을 가르치는 거야?”

“그럼.”

“그럼, 그럼 저도 선배님이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물론.”

“그렇다면 앞으로도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 여쭤보러 가도 될까요?”

“그야 당연하지.”

마리온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선생을 하면 연구지원금도 많이 나오고, 남는 시간에 내 개인 연구를 할 수도 있고, 앞으로 들어올 여자 후배들에게 용기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계속 탑에서 지낼 수 있잖아.”

“네? 탑에서 지내신다고요?”

애슐리의 질문에 마리온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여태껏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던 그 사람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해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꼬았다.

“사실…… 너희한테는 여태까지 말을 안 했는데 말이지. 이건 절대 너희를 믿을 수 없다거나 그래서가 아니고……. 그냥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정식 승단을 하면 말하려고 아껴놓았던 건데 말이야…….”

“네, 네.”

“사실…… 나 탑주님이랑 교제 중이야. 한 일 년 반쯤 됐어. 탑주님도 떨어지기 싫어하고, 나도 그래서 승단 뒤에도 탑에서 지낼 방법을 여러모로 알아봤지.”

이 말을 하는 마리온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한폭탄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당연히 친우들이 엄청나게 놀랄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선생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을 때보다 훨씬 더.

하지만 그녀의 예상을 깨고, 몇 초나 지나도 친우들의 반응은 조용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뿐이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에녹이었다.

“뭐야…… 비밀 연애 하고 있었어?”

“전 당연히 다들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요.”

“뭐?”

“일 년 반밖에 안 됐어? 난 그보다 긴 줄 알았는데. 한…… 삼 년?”

“뭐라고?”

이렇게 되니 오히려 놀란 건 마리온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들 알고 있을 수가 있지? 나름대로 숨긴다고 열심히 숨긴 건데…….

“다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요, 이 탑에 모르는 사람 없을 걸요?”

“당연하지. 그렇게 찰싹 붙어 다니고, 주말엔 같이 놀러도 다니고, 널 보는 탑주님 눈빛이 다른 놈 볼 때랑 완전 다른데 그걸 어떻게 모르냐. 3살짜리 애가 아니고서야.”

“뭐…… 뭐어?”

마리온은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티를 냈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과 가까운 몇 명도 아니고 탑의 모두가 내심 알고 있을 정도로?

다들 아는데 자신만 남들이 모를 줄 알았다니. 이건 완전히 타조가 자기 몸을 숨기겠다고 굴속에 머리만 넣고 있는 꼴이었다.

‘난……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평소에는 쌩쌩 잘만 돌아가던 머리가 당혹감과 무안함으로 가동이 중지되었다. 그녀가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깨에서 친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다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지금 이 녀석을 데려가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중언부언 늘어놓지 않아도 되어서 말이야.”

“타, 탑주님!”

마리온을 제외한 모든 견습생들이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견습생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볼 일이 드문 상대였기 때문이다.

오베론은 마리온의 등을 다정하게 감싼 채, 도제들을 향해 빙긋 웃었다.

“빌려 가도 상관없겠지?”

“무,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고맙다. 그럼.”

오베론은 마리온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리온은 그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탑주님.”

“응?”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오베론이 아름다운 입꼬리로 호선을 만들며 대답했다.

“이 조막만 한 탑에서 갈 곳이야 뻔하지.”

아니나 다를까, 그 행선지는 예상대로 오베론의 연구실이었다.

“안녕?”

마리온은 익숙하게 프리지아에게 인사했다. 이 프리지아는 아주 오래전에 그녀가 오베론에게 준 것인데, 그로부터 머지않아 오베론은 강력한 절화(折花)보존제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프리지어는 여전히 이슬방울이 떨어질 것처럼 싱싱한 상태 그대로였다.

오베론은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차를 한 잔 가져다주었다.

“마리온 플라리넷, 정식 연금술사로서의 승단을 축하한다. 정식 연금술사가 된 뒤로 처음 가지는 티타임을 나와 함께해 주다니 영광이야.”

마리온은 그의 농담에 풋 웃었다.

“그거 축하해 주려고 데려오신 거예요? 이런 말씀은 그 자리에서 해주셨어도 괜찮았을 텐데.”

“안 되지. 그 자리에서는 함께 차를 못 마시잖아. 그리고…….”

오베론이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지난 시간 동안 그의 화법에 익숙해진 마리온은 차분하게 차를 마셨다.

하지만 다음의 말에는 마리온도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엔 없었다.

“아까의 그 말은 탑주로서의 오베론이 한 말이고. 마리온의 연인 오베론이 해줄 말은 따로 있거든.”

“네? 어, 어떤 거요?”

갑작스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차를 마셔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마리온은 손끝이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오베론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리온은 입에서 심장을 뱉을 뻔했다. 승단식 때는 거의 떨거나 긴장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는 이렇게나 긴장되는지.

오베론은 더없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싸늘한 인상을 주는 파란 눈이, 그녀 외의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따뜻한 빛을 내며 휘었다.

그는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있는 반지를 꺼냈다. 그것은 백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그의 눈을 닮은 파란 보석이 박혀 있는 보석 반지였다. 굉장히 섬세한 세공이 되어 있었고, 척 보기에도 매우 값지고 귀해 보였다.

오베론은 마리온의 왼손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곤 말했다.

“마리온 플라리넷, 내 목숨의, 삶의 의미의 구원자. 그대에게 구제받은 목숨, 오로지 그대만을 위해 쓸 테니, 여신께 이 영원한 사랑과 존경을 맹세하건대, 부디 나와 결혼해 주었으면 좋겠군.”

마리온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둥근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그녀가 큼직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하자 오베론은 소매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정말 눈물이 많다니까. 그래서, 대답은?”

“그, 그걸 지, 지금 질문이라고 하세요? 당연하죠!”

마리온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오베론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오베론의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했다. 오베론은 매우 흐뭇한 얼굴로 그녀의 포옹과 입맞춤을 만끽했다.

“어떡해요, 하루 만에 반지가 두 개가 생겼어요.”

“둘 다 끼고 다녀.”

“이상하잖아요.”

“그럼 내가 준 걸 끼고, 연금술사의 반지는 줄에 달아서 목에 걸고 다녀.”

그의 말에 울던 마리온은 까르르 웃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보고 있던 오베론이 물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뭐가 난대더라?”

이제 보니, 흐뭇한 얼굴이 아니라 음흉한 얼굴이었나 보다.

“어디 한 번 벗겨서 확인해 봐야겠는데. 내 아내의 엉덩이에 이상한 게 돋아있으면 곤란하잖아.”

오베론이 마리온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녀의 작은 몸이 그의 무릎 위로 쏙 끌려왔다. 그의 큰 손이 마리온의 엉덩이를 더듬기 시작하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그를 찰싹 때렸다.

“이 짐승! 임명식이 방금 끝났는데.”

“임명식이 방금 끝난 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하여간에, 그의 능청스러움에 마리온은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도서관과 탑에서 공부만 한 그녀가 뒷골목을 구르며 익혀온 오베론의 말장난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그런 점 역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마리온은 행복하게 웃으며 오베론의 몸에 머리를 기댔다. 그것을 허락의 신호라고 여긴 오베론은 그녀의 입술 위에 입 맞추었다. 마리온 역시, 수줍어하면서도 이젠 제법 익숙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얽어오는 살덩이가, 달콤한 손길이 오갔다.

오늘도 한두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 * *BORI 갠소요게X

마리온은 곤히 잠들었다. 갈색 머리카락은 땋은 자국을 남긴 채 구불구불한 형태로 흐트러져 있었고, 안경은 그녀의 얼굴 위에 아슬아슬한 형태로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한 탓인지 마리온의 체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와 처음 몸을 섞었을 때부터, 몇 번인가 절정에 이르면 견디지 못하고 곧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오베론은 그런 그녀의 이마를 쓸며 웃음 지었다. 그녀의 코끝에 걸린 안경을 벗겨주곤, 그 입술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으음…….”

입술 위에 내려앉은 감촉 때문인지 마리온은 이마를 찌푸리며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그러고는 곧 다시 고요해졌다. 그녀에게서 들리는 소리라곤 새근거리는 숨소리뿐이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 오베론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인생에 이런 존재가 발을 들인 것은 기적이었다. 얼어 죽어가던 자신을 격려하며 체온으로 녹여 구해준 그 날이 첫 번째 기적. 그리고 그렇게 찾아 헤매던 소녀가 연금술을 배우고 싶다며 자신의 탑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이 두 번째 기적.

기적을 잃어버려, 그리도 오래 찾아 헤매던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 기적을 만났을 때 오베론은 이것을 거머쥐어 이번에야말로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리온이 탑에 처음 들어온 날부터 그녀의 곁에 몇 명의 감시꾼을 심었다. 계속되는 차별과 멸시에 그녀가 지쳐 탑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적어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도록.

한동안 그녀의 곁을 맴돌며 자신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친밀감을 쌓았다. 그것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느꼈을 때는 그녀가 탑에 들어온 지 일 년이 지나서였다.

정말로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기약 없이 찾아 헤매기만 했었으니까.

감시꾼들로부터 그녀가 최근 피로회복제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레시피를 전해 들었을 때 오베론의 머릿속에서 계략은 완성되었다.

‘마리온에게 붉은 가시꽃을 넣으라고 조언하도록 해. 마리온이 듣는 낌새이면, 얼른 자리를 피해주는 것도 잊지 말고.’

감시꾼 중 한 명에게 내린 지시. 스승과 제자였을 뿐인 두 사람을, 오베론과 마리온의 관계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이끌어준 그 말.

오베론은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마리온의 작은 어깨를 품에 안은 채로.

죄책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것인 것은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고, 물이 위에서 아래를 향해 떨어지듯 당연한 진리였다. 그녀를 처음 본 그 날, 그 순간부터 그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가 후회할 일도, 죄책감을 느낄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오베론은 그녀의 작은 몸을 끌어안은 채 만족스럽게 웃고는, 눈을 감았다.

그녀를 완전히 손에 넣은 세 번째 기적은 이전의 것들과 달리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그 연금술사의 비밀수업 <완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