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리온의 걱정과 달리, 오베론과 그녀는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좋은 스승과 제자였다.
낮에 오베론은 변함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리온을 대했고, 개인 수업도 계속되었다.
“앗, 하앗, 흐윽……!”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실습도 마찬가지였다.
달콤한 사탕을 혀끝으로 굴리듯이 오베론은 마리온의 한쪽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의 촉촉한 혀와 입술이 가슴의 민감한 선단을 자극하자 마리온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탑…… 주님……!”
마리온은 오베론의 어깨만을 부여잡고는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충분히 즐긴 오베론은 고개를 들었다. 마리온은 협탁에 눕혀진 채 가슴 부분의 셔츠 단추만 풀어 하얀 유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양 갈래로 땋아 내린 갈색 머리카락은 양옆으로 흐트러졌다. 붉어진 뺨을 하곤 눈을 질끈 감은 마리온의 가슴이 그녀가 숨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모습을 오베론은 마치 최고의 절경이라도 되는 듯 기분 좋은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마리온이 가까스로 눈을 뜨자, 오베론이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정말 예뻐.”
이미 그에게 몇 번이나 들은 말이지만 마리온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리온이 부끄러워하는 동안, 오베론이 시선을 내렸다. 그가 치마 아래로 손을 넣어 마리온의 속옷을 내리며 말했다.
“여기도 예쁘고.”
“윽, 탑주님……!”
다리 사이로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자 마리온은 기겁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려 했지만, 오베론이 조금 더 빨랐다. 그는 그녀의 두 손을 한 손에 쥐었다. 여전히 시선은 돌리지 않은 채였다.
마리온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몸을 섞은 사이라지만, 이런 곳을 그렇게 자세히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자신조차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오베론의 정성스러운 애무로 인해 지금 자신의 가랑이는 잔뜩 젖어 있었다. 분비물이 흘러내리는 자신의 다리 사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그렇게 들여다보지 말아…… 주세요……!”
마리온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오베론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온의 두 손을 쥐지 않은 손으로는 그녀의 다리 한쪽을 들어 더 벌려보기까지 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마리온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오베론이 장난스레 말했다.
“이렇게 예쁜데, 왜?”
“아, 탑주님도 참……! 탑주님 정말 변태예요!”
그 훌륭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스승, 오베론이 그녀를 상대로는 이렇게나 파렴치하다고 누가 상상했을까?
연금술사의 탑의 모두가 오베론을 훌륭한 스승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천재적이었으며 또 현명했다. 깊은 생각을 지녔으며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했다. 그는 가장 낮은 사람조차 언제나 웃는 낯으로 대했다.
‘그 웃는 얼굴 뒤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변태일 줄은 나도 정말 몰랐어.’
오베론은 쿡쿡 웃더니 손가락 끝으로 마리온의 음핵을 굴렸다.
“아아앗!”
마리온은 파드득 놀라다가 축 늘어졌다.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이 더 크게 웃은 오베론이 갑자기 몸을 숙였다.
“마리온, 내 실험을 도와줘야겠어.”
“하아…… 실…… 험이요?”
마리온이 할딱이면서 물었다.
“탑주님의 발명품인가요?”
“그래.”
“물론 도와드려야죠. 어떤 발명품인가요?”
의욕적으로 대답하는 마리온을 귀엽다는 듯이 한 번 쓰다듬고는, 오베론이 몸을 돌렸다. 그는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와선 마리온에게 보여주었다.
마리온은 그것이 일종의 마개라고 생각했다. 작고 동그란 그것은 꼭 욕조 마개처럼 생겼는데, 욕조 마개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에 녹색 말미잘 같은 작은 촉수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촉수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마리온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손가락으로 촉수를 찔러보았다. 촉수는 깜짝 놀란 듯이 오므라들었다. 그 모습은 의외로 꽤 귀여웠다.
“신기해요! 살아 있는 건가요?”
“살아 있는 건 아니야. 그냥 움직이게 만든 것뿐이지.”
“그런데 이게 뭐예요?”
“장난감이다. 어른의 장난감.”
“네? 탑주님도 참. 어른이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요.”
실제로 장난감처럼 생기긴 했으나, 마리온은 그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베론은 진지해 보였다.
그는 마리온이 앉아 있는 협탁에 앉아 그녀를 보았다. 그가 묘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나?”
“어…… 네.”
마리온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오베론이 말했다.
“이 녀석의 위력을 보여주지.”
오베론이 장난감(?)을 마리온의 가슴 위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촉수는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저 혼자서 마리온의 유두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여러 갈래의 촉수로 마리온의 유두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앗! 아앗…… 타, 탑주님! 으응!”
장난감의 예상외의 기능에 마리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사적으로 장난감을 떼어내려 해 보았지만 촉수의 흡착판이 생각 외로 강력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해도 장난감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핫, 아앗, 으응……! 이, 이게 뭐예요!”
오베론이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소용없어. 떼어내는 방법이 있는데, 그대로 하지 않으면 안 떨어져. 그리고 그 방법은 나만이 알고 있지.”
“그, 그러엄, 흑, 아앗, 이것 좀 떼어주세요!”
이걸 가지고 한바탕 골탕을 먹이려나 싶었는데 오베론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리온의 유두 끝을 끈적한 촉수로 간지럽히는 것도 모자라 빨아들이기까지 하는 장난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무슨 방법을 썼는지 마리온은 그렇게 용을 써도 떼어내지 못한 그것을 너무나 쉽게 떼어냈다.
뽁! 소리와 함께 장난감이 떨어져 나가고 점액에 젖은 유두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다. 마리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실험을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나?”
마리온은 오베론을 매우 존경했고, 좋아했고, 이제껏 그의 발명품을 처음으로 시험해볼 기회를 얻은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약간의 불길함을 느꼈다.
“어, 어떻게요?”
오베론은 장난감을 들고 눈짓했다.
“마리온, 다리를 벌려.”
“네?”
마리온은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저 장난감을 그녀의 음부에 가져다 붙이겠다는 건가?
촉수와 흡입 기능 때문에 가슴에만 가져다 대도 그렇게 큰 자극이 느껴졌는데,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에 가져다 대면 그 자극이 얼마나 강렬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보다 부끄럽고 무서웠다.
“하, 하지만.”
마리온이 붉어진 얼굴로 주저했다. 오베론은 그런 그녀를 잠자코 바라보더니, 달콤한 어조로 말했다.
“마리온, 언제나 좋은 제자로서, 내 실험을 도와주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내 발명품들을 실험하는 것을 몇 번이나 도와주지 않았나? 덕분에 나도 네 도움을 무척 많이 받았어.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지.”
마리온은 깜짝 놀라 오베론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진심이라는 듯 눈썹 끝을 늘어뜨린 채 그녀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탑주님의 도움이 되었다고?’
심장이 뛰었다. 그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한낱 견습생인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연금술사인 그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이렇게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은 더 없을 것이었다.
오베론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도와주기가 곤란하다고 해도 난 다 이해할 수 있어. 너무 걱정 마. 나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럼 난 다른 실험 대상을 찾아봐야…….”
“자, 잠깐만요, 탑주님!”
마리온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 곤란하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도와드리게 해주세요!”
몸을 돌리던 오베론이 그녀의 말에 우뚝 멈췄다.
“정말인가?”
“그럼요! 전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고요.”
마리온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제야 오베론이 그가 마리온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고 웃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는 더 이상 처연하게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처연하다기보다는…… 위험해 보인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좋아, 이걸로 허락한 거다, 마리온.”
마리온의 머릿속 경보기가 사이렌을 울려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뭐라고 하기에는 그의 처연한 눈이 기억 속에 너무나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게다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해놓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녀가 머뭇거리는 새에 오베론은 몸을 굽혔다. 그러고는 마리온의 다리를 벌리고 들어와, 그녀의 음부에 촉수를 가져다 대었다.
“앗, 하앗!”
예상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작은 촉수는 꿈틀꿈틀 움직이며 그녀의 제일 여린 곳을 정복해 나갔다. 끈적한 점액이 흥건한 촉수를 빙글빙글 돌리듯 음핵을 훑으면서, 그와 동시에 그녀의 문 안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강한 압력으로 음핵과 문 입구를 빨아들이기까지 했다.
“탑, 주님……! 응, 으읏……!”
어마어마한 자극이었다. 마리온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지 중 그 어느 것도 그녀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스승의 로브를 거머쥐고 아이처럼 안겨드는 것뿐이었다.
멀어져가는 이성을 느끼며, 마리온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의 스승, 오베론밖에 없었다. 그녀는 오베론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꽉 붙잡았다. 두 다리는 주체할 수 없이 경련을 일으켰고, 발가락은 새하얗게 구부러들었다.
멋대로 떨리는 다리를 어찌할 줄 몰라 하던 마리온은 두 다리로도 오베론에게 매달렸다. 촉수의 점액과 마리온이 흘리는 애액이 섞인 점성 높은 액체가 줄줄 흘러 협탁과 오베론의 로브를 적셨다.
로브에 얼굴을 묻은 채 밀려드는 쾌감을 감당하느라 마리온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베론은 그런 그녀를 대단히 만족감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여유가 넘치던 그의 파란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 눈에 비치는 것은 명백한 소유욕과 정욕이었다. 단순히 발명품을 실험하려 한다는 변명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감정들. 그래,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으로 마리온이 어찌할 줄 모르며 쾌감에 물드는 모습에,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세상에 그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매달리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별다른 장식은 없어도 다림질만은 깔끔하게 된 로브를 마구 구겨놓고 있었지만 오베론은 개의치 않았다.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마구 주름진 로브와, 그것을 거머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맛 좋은 요리를 혀로 핥듯이 탐욕스럽게.
그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마리온, 얼굴을 보여줘야지.”
그의 긴 손가락이 마리온의 뒷머리를 쓰다듬다가, 그녀의 턱을 짚었다.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로브에 처박고 있던 마리온의 얼굴이 사뿐하게 들렸다.
믿을 수 없이 흐트러져서 녹진녹진 녹아버린 그녀의 얼굴은 그에게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주는지!
“타, 압, 주니임. 으응, 응…….”
마리온은 발갛게 된 눈가를 하고 울먹였다. 하지만 오베론은 그녀를 여기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마리온, 기분이 어떻지?”
“앗, 흐윽. 탑, 주님. 이제, 그마안…….”
오베론은 그런 그녀의 이마 위에 입 맞추었다. 그녀의 동그란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가 속삭였다.
“괜찮아, 마리온. 내가 여기 있잖아. 조금만 참으면 끝난다.”
“정, 아응, 정말요……? 으윽, 응! 탑주님, 탑주니임…….”
“물론. 마리온, 내 발명품의 첫 실험자가 되어주기로 했지?”
오베론은 ‘첫 실험자’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며 말했다.
꼭 마리온 다음의 실험자가 있을 것 같은 말이지만, 거짓말이다. 그녀 다음의 실험자가 있을 턱이 없다.
이 발명품은 그가 오로지 마리온 플라리넷, 그녀만을 위해 만든 것이니까. 아니, 이것뿐만이 아니다. 여태까지 비밀 교습을 빙자해 그녀에게 실험한 물건들 전부가 그랬다.
그런 사실은 다정한 미소 뒤에 숨긴 채 오베론은 말했다.
“그렇다면 실험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지. 그렇지?”
금방이라도 절정에 도달해버릴 것 같은 와중에도 마리온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제일 존경하고 감사하는 스승, 오베론은 그녀를 믿고 그녀에게 첫 실험자의 역할을 맡겨주지 않았던가. 힘들거나 부끄럽다고 그만둘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앗, 하윽! 네, 에…….”
마리온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오베론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정말 착한 아이구나, 마리온. 그래, 좋아. 그럼 설명해 봐라. 지금 기분이 어떻지? 보고서를 쓸 때처럼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해라.”
안 그래도 머릿속이 새하얀데 느끼고 있는 바를 구체적으로 말하라니. 하지만 요령이 없고, 언제나 맡은 일에 성실한 마리온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으, 응……! 주, 죽을 것, 같아요. 기, 기분이, 핫, 이상해서어…… 으응, 응! 하아, 나, 날아가, 아앙! 하늘을 나는 것 같, 가앝아요…….”
“기분은…… 좋은가? 나쁜가?”
“조, 좋아요, 탑주님……. 기분, 좋아요…….”
이 말이 눈앞의 남자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쾌감을 가져다주는지 마리온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엔 마리온은 그저 이성이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오베론은 손을 들어 올렸다. 입가 가득 띠고 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촉수의 작동 과정은 어떻지?”
“네…… 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봐.”
이것은 더 어려웠다. 그녀의 음부를 더없이 음란한 방식으로 유린하고 있는 촉수를 생각한다면, 그 작동 과정을 설명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리 만무했다.
마리온은 숨에 차 새빨개진 얼굴로 헐떡이면서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심지어는 상대가 이미 그녀와 몇 번이나 몸을 섞은 사람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대답이 늦어지자 오베론이 속삭였다.
“이건 실험이다, 마리온. 알고 있지? 내가 네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그 말에, 마리온은 일전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게는 기대가 많다, 마리온 플라리넷.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말도록.’
‘마리온, 넌 나 다음가는 최고의 인재야. 내가 네게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를 존경했고, 흠모했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마리온은 울먹이면서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말들을 입에 담았다.
“흣, 촉, 수가…… 제, 으, 음핵을 문지, 르면서…… 빨아, 들여서. 아앗! 아! 미, 미칠 것 같아요.”
“옳지, 착하다, 마리온. 좀 더 설명해 봐. 질은 어떻지?”
“질에, 질에도 들어와서…… 세 개, 아니, 네 개는 될 것 같…… 으응! 벼, 벽을 긁어서…… 너무, 깊어요…… 앗! 으응……! 힉, 히익!”
그런 그녀를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던 오베론은 깊은 한숨을 토했다. 그는 마리온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비볐다.
“미치겠군, 마리온.”
오베론은 다급한 손을 그녀의 다리 사이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몇 번 간단한 조작을 하더니 촉수를 어렵지 않게 떼어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곧, 그의 발기한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붉은빛을 띤 그것은 선단은 탄력 있고 매끄러웠지만, 뿌리로 갈수록 도드라진 힘줄과 핏줄은 마치 야수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아름다운 얼굴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흉포한 그것은 뜨거운 열기를 띤 채 끄트머리에서는 선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거대한 물건을 마리온의 몸에 밀어 넣었다.
“앗, 흐으윽!”
입구는 이미 잔뜩 젖어 있었기에 조금도 어려움 없이 미끄럽게 들어갔지만, 그 큰 물건이 꽉꽉 들어차는 감각은 마리온, 그녀만이 알 수 있었다.
마리온은 헐떡이며 눈물 젖은 얼굴로 오베론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담고 있는 눈동자가, 타액에 젖은 입술이 오베론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허리를 움직이면서 그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마리온, 사랑스러워. 너처럼 음란한 여자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넌 정말 예쁘고 아름다워.
그런 달콤한 말을 해주는 사람 역시 이 세상에 그 말고는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따뜻했다. 꼭 그가 자신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는 것만 같아서, 마리온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실험을 도와야 한다는 이유로 가까스로 잡고 있던 이성은 놓아버렸다. 마리온은 그가 몰아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격렬하게 몸을 관통하는 쾌락 끝에, 절정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절정이었다. 숨이 막히고,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떠오르는 부유감.
“하아아!”
땀에 흠뻑 젖은 마리온은 몸을 축 늘어뜨렸다. 기진맥진한 그녀를 끌어안은 채 오베론이 그녀의 입술 위에 가볍게 입 맞췄다.
“수고 많았다.”
“으응…… 탑주님…….”
“옳지, 마리온. 착한 아이야.”
오베론의 말버릇인 것 같기도 한 그 말은 어쩐지 마리온의 긴장을 풀리게 하고, 그녀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녹초가 된 마리온은 포근함을 느끼며 그의 품 안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 * *
둘만의 수업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마리온은 언제나처럼 일 분도 어기지 않고 제 시각에 도착했다. 손에는 교과서와 각종 실습용 실험도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채였다.
“실례합니다, 탑주님. 마리온 플라리넷입니다.”
연구실 문을 열자 오베론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는 그 장식 없는 로브 위에 외투를 걸치고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마리온은 순간 그가 어딜 다녀온 뒤 바로 돌아왔나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알기로 그의 오늘 외부 일정은 없었다. 그는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밖에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외출복 차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오베론이 씩 웃으며 일어났다. 그는 그 긴 손으로 손뼉을 짝 쳤다.
“왔군, 마리온. 외투를 입는 게 좋을 거야. 폴의 날씨관측기가 오늘은 꽤 춥다고 알려줬거든.”
“어, 어어……. 외투라고요?”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마리온이 묻자, 오베론이 대답했다.
“오늘은 야외 수업이다, 마리온.”
더없이 명쾌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탑을 나섰다.
마리온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마차가 시내에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금술의 야외 수업이라고 하니 막연히 재료의 수확지나 마나석 광산 등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왔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을 깨고 마차는 시내 한복판에 멈추어 섰다.
“이리 와, 마리온.”
오베론은 마차에서 먼저 내리곤 마리온에게 팔을 뻗었다. 그 미소와, 에스코트를 해줄 생각인지 내민 손은 의외로 제법 자연스러웠다.
‘하긴, 높으신 분들과 자주 만나실 테니……. 예법도 의외로 조예가 있으시겠구나.’
연구실은 온통 어질러져 있고 머리카락도 멋대로 잘라놓고 돌아다니는 오베론이니, 막연히 예절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선입견이었다.
오베론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린 마리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시내 상점가였다.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마리온이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 구두 가게와 화려한 살롱 등이 있는 곳.
‘대체 이곳에서 어떤 수업을 할 생각이신 걸까?’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마리온은 문득 깨달았다.
‘아, 서점에 가려고 하시는 건가? 아니면 재료상점?’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 간 지 꽤 오래되었으니, 그사이에 좋은 연금술 서적들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책을 골라주시거나, 질 좋은 재료를 고르는 요령을 전수해 주려는 것이리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무 흥미로울 것 같았다. 마리온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오베론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은 또 한 번 깨졌다.
“어서 오세요, 윌헬미나의 구두 가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화려한 금발을 부풀려 올리고, 입가에 점이 있는 가게 주인이 인사했다.
가게 내부는 화려했다. 고급스러운 새틴 재질의 아이보리색 커튼이 창가에 늘어져 있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벨벳 받침대 위에 아름답고 세공이 섬세한 구두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의 안쪽에서는 값비싼 양가죽, 소가죽과 무두질용 약품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
마리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 탑주님, 오늘 배우는 것이 신발에 대한 내용인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연금술로 의복에 특수한 기능을 덧붙이는 기술 역시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베론은 예의 그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를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한번 신어보지 그래.”
“네…… 네? 이 구두를요? 제가요?”
마리온은 입을 떡 벌렸다. 이곳의 구두들은 모두 그녀는 신어보기는커녕 만져보기도 두려울 정도로 비싸 보였다.
물론 그녀는 발명품이나 특허를 판 돈이 있어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정식 연금술사가 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아껴 써야 했다.
“다, 당치도 않아요, 탑주님. 이건 너무 비싸다고요.”
“그러지 말고 신어보래도.”
오베론은 안절부절못하는 마리온을 의자에 앉혔다. 그러곤 가장 가까운 곳에 놓여 있던 구두를 집어 들었다.
마리온은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가게 주인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물건에 멋대로 손을 대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는걸 보니, 아마 사전에 협의가 된 것 같았다.
오베론은 바닥에 털썩 앉곤 마리온의 한쪽 발을 잡았다. 마리온은 다시 한번, 불에 덴 듯 놀랐다.
“서, 서, 설마 직접 신겨주시게요?”
“그래. 왜, 싫어?”
“아, 아니. 싫은 게 아니고요! 제가 어찌 감히 탑주님께……. 아니 저, 저 그게.”
정말이지 송구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 같은 한낱 견습생에게! 오베론 같은 위대한 대연금술사가, 발에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서 신발을 직접 신겨주겠다니.
‘차라리 반대라면 몰라. 내가 스승님 발 씻겨드린 적도 없는데…….’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은, 오베론의 이 명쾌한 한 마디였다.
“이것도 수업이다, 마리온.”
‘수업’이라는 말에 마리온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일종의 반사행동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게 무슨 수업인지, 그녀가 이 상황에서 뭘 배워야 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분도 아니고 탑주님이신데, 분명 깊은 뜻이 있으신 거겠지.’
마리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리온이 얌전해지자, 오베론은 그녀의 신발을 벗겼다. 그러자 그녀의 작고 하얀 발이 드러났다. 그는 구두를 한 짝 집어 들어 그녀의 발에 조심스레 신기기 시작했다.
마리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이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오베론,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그녀에게 신발을 신겨주다니.
맨발에 그의 손가락이 와 닿는 기분이 묘했다. 약간 간지럽고, 닿은 부분이 묘하게 뜨거웠지만 마리온은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오베론은 다른 발에도 같은 과정을 거쳐 그녀에게 구두를 신겼다.
“예쁘군, 마리온.”
그가 말했다.
마리온은 구두를 신은 자신의 두 발을 내려다보았다. 구두는 확실히 예쁘긴 했다. 하지만 평소에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지 그 이상의 감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비싸 보여서 좀 부담스러운데……. 게다가 굽이 너무 높아서 걷기 힘들어 보여.’
“아…… 네. 예쁘네…… 요.”
마리온이 말했다. 오베론은 그녀를 흐뭇하게 보더니, 손짓했다.
“한번 걸어봐.”
직접 신겨주기까지 했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마리온은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게 내부를 한 바퀴 걸어보려고 했다.
“아얏!”
그러나 높은 굽은 역시 무리였다. 다섯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발목이 꺾였고, 그녀는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녀가 넘어지지 않은 것은 전부 오베론의 반사 신경 덕이었다. 마리온이 넘어지기 직전 그의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왔다. 넘어지는 대신 그의 어깨에 기대게 된 마리온은 쑥스러워하며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죄송하긴 뭐가. 높은 구두는 익숙하지 않은가 보지?”
“아, 네……. 원래 잘 안 신거든요. 탑에 들어오기 전에도 거의 신은 적 없어요.”
그녀가 오늘 이곳에 신고 왔던 것도 굽이 낮은 단화였다. 원래 그녀는 조금만 굽이 높은 것을 신으면 발꿈치가 까지고 불편해서 굽 있는 구두를 거의 신지 않았다.
오베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준비되어 있는 구두들은 전부 굽이 높았다.
“나가지.”
그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아쉽게 됐군.”
함께 시내를 걷던 도중, 오베론이 입을 열었다.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네?”
마리온은 다시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베론이 그녀에게 구두를 사주려고 했다는 것도, 그 구두가 엄청나게 비싼 구두였다는 것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마리온은 열심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괜찮아요! 선물이라면 오히려 제가 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탑주님은 제 은사님이신데도 전 아직 아무것도 못 드렸는데……. 아, 그리고 그런 좋은 구두를 갖기엔 거기에 맞춰 입을 드레스도 없어서요. 탑에 들어올 때 편한 옷만 챙겨왔거든요.”
마리온은 원래 패션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나마 집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시집을 잘 가려면 여자애다울 필요가 있다며 채근해서 치마를 입었지만, 부모님이 없는 지금은 맘껏 편한 옷만 입고 다니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녀가 입은 것은 오베론의 것과 비슷한 발목까지 덮는 긴 로브였다.
오베론은 아주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럼 드레스부터 맞추면 되겠군.”
“아니, 정말 괜찮아요! 저, 드레스 별로 안 좋아해서요. 전 편한 옷이 좋아요!”
마리온은 정말이지 필사적이었다.
그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손을 내젓자, 오베론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이상한걸. 여자들은 다 드레스와 구두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사람 나름이죠. 여자들도 관심사는 각자 다르니까요.”
마리온의 말에 오베론은 손으로 턱을 짚었다. 풀리지 않는 무언가를 곰곰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리온은 그 모습이 신기했다. 오베론이 그런 모습을 하는 것은 난생처음 보았다.
“그랬군. 여자와 사적인 일로 만나본 적이 없어서 몰랐어.”
“네에?”
대체 오늘 하루는 놀랄 일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마리온은 정말 깜짝 놀랐다. 확실히 오베론이 연애 같은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정말 잘생겼고 똑똑하니 인기가 많았을 테고, 그럼 자연스레 연애를 한두 번 정도는 해보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베론은 고민에 빠진 듯 제 턱을 쓸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공식과 가설로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이 있었다니, 놀랍군.”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곧 턱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고는 마리온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말해봐라, 마리온. 넌 뭘 좋아하지?”
“네? 저요? 연금술이요.”
마리온은 엉겁결에 우스꽝스러운 대답을 하고 말았다. 오베론이 피식 웃었다.
“그거 말고.”
이번엔 마리온이 고민할 차례였다. 그녀는 잠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민해 보았다.
그녀는 연금술 외의 주제의 책도 좋아했고, 고양이도 좋아했고, 오베론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대답으로 내놓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대답했다.
“아, 저 케이크 좋아해요.”
“케이크?”
“네. 저쪽 길로 쭉 가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케이크집이 나와요. 시험이 끝나면 꼭 거기서 케이크를 사 먹어요. 가끔은 시험이 없어도 사 먹고요.”
오베론은 마리온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럼, 케이크를 먹으러 가볼까. 하지만 갖고 싶은 것이 생긴다면 언제든 말하도록 해, 마리온. 그걸 생각하는 것 역시 수업의 일부임을 잊지 말고.”
두 사람은 마리온의 단골집에서 케이크를 먹었다. 마리온은 함께 갈 만한 사람이 없어 언제나 이 가게에 혼자 들렀으므로, 다른 사람과 함께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늘 혼자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던 케이크집 주인도, 그녀가 오베론과 동행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어머! 어서 오세요. 오늘도 늘 찾으시던 걸로 드릴…… 어머나!”
주인은 컵케이크를 가득 담고 있던 쟁반을 거의 놓칠 뻔했다. 다행히도 쟁반을 떨어뜨리지 않고 무사히 내려놓은 그녀는, 실례라는 것도 잊고 마리온의 얼굴과 오베론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케이크집 주인은, 마리온이 주문하는 케이크를 골라주고 두 사람에게 자리를 안내한 다음 마리온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한동안 안 보이시더라니 이런 일이 있었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너무 잘 어울리세요.”
마리온은 잠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초가 지나자, 마리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저분은 저희 스승님이라고요!”
“어머, 그래요? 탑에 저런 연금술사분도 계셨던가요? 정말 젊으신데…….”
주인은 완전히 납득하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오베론은 듣지 못했겠지만, 마리온은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토마토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주인과 뭔가 속삭이는가 싶더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돌아온 제자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오베론이 물었다.
“무슨 비밀 이야기를 했길래 이렇게 얼굴이 빨개졌나? 내게도 알려주지 그래.”
“네, 네? 제 얼굴이 빨개졌나요?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아이, 탑주님도 참.”
마리온은 손부채질을 했다. 오베론은 싱글싱글 웃으며 그런 마리온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닿는 곳조차 열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거 서운한데. 내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있었다니. 좀 더 많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오베론이 마리온의 손등을 살짝 건드렸다. 묘하게 훑는 그 느낌은 명백한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리온은 얼굴이 더욱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자기 손을 거두어 다른 손으로 문질렀다. 공공장소에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그의 발을 가볍게 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화제를 돌리고 싶어 머리를 굴리던 마리온은 생각나는 것을 아무거나 주워섬겼다.
“그, 그건 그렇고 탑주님은 유명인이시니까, 다들 알아볼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은가 봐요.”
거리에서도, 가게 안에서도 간혹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은 있었지만 그건 오베론이 잘생겼기 때문이지, 그를 알아봐서는 아닌 것 같았다.
마리온은 그와 함께 시내에 나오면 사인이라도 받고 옷자락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사람 무리에 치일 줄로만 알았다. 오베론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공식 석상에는 안 나가니까. 귀찮잖아. 필요 이상의 시선을 끄는 건 질색이라서.”
“네? 하, 하지만, 제국 황실에서도 많은 부름을 받지 않으셨나요? 훈장도 받으셨고…….”
오베론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상이나 훈장도 늘 전보로만 받아. 황궁까지 갈 시간이 있으면 논문을 하나 더 쓰고 말지.”
“네에?”
마리온은 입을 떡 벌렸다.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금독수리 훈장 같은 영예로운 것을 공식 행사에서 황제에게 수여받는 것이 아니라, 집에 앉아서 전보로 받는 사람은 역사책 속에서도 그가 유일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주님이 원하는 대로 해준 황실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황실이 그렇게 움직이게 만든 탑주님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던 마리온의 머릿속에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정도로 외부활동을 안 하신다면…… 에스코트는 어떻게 배우신 거예요?”
그러자 오베론의 눈이 휘어졌다.
“어떨 것 같나?”
“네?”
마리온의 얼굴이 멍해졌다.
대조적으로, 상대의 눈은 더더욱 둥글게 휘어졌다. 반달 모양을 띠는 깊고 푸른 그 눈은 장난기를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마리온조차 잠시 넋을 놓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왜 배웠을 거라고 생각하지?”
“어…….”
그런 걸 마리온이 알 턱이 없었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 주인이 케이크 두 조각과 음료를 담은 쟁반을 가져왔다.
오베론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번 수업의 숙제다, 마리온. 오랜 시간을 들여서 깊게 생각해 보도록 해.”
케이크는 언제나처럼 맛있었다. 이 달콤함도 마리온이 언제나 만끽하던 일상의 일부였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오베론과 공유한다는 사실이 괜히 싱숭생숭했다.
무엇을 배운 수업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미리 마차를 불러놓은 장소로 가는데, 마리온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작은 인영이었다. 해가 져서 골목마다 가뭇한 어스름이 진 이 시각. 쌀쌀한 공기 속에서 작은 인영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뭔가 익숙한 감각이야.’
마리온은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잠깐만요, 탑주님.”
마리온이 오베론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인영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꽃 사세요, 꽃 사세요.”
마리온보다 일고여덟 살은 어릴 것 같은 어린 여자아이가 노란 꽃을 한 아름 들고 있었다. 아이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맨발이었다.
“거기 지나가시는 신사님, 꽃 한 송이 안 필요하신가요? 어여쁜 프리지어예요. 꽃 사세요.”
“저리 안 비켜? 난 바쁜 몸이야.”
신사가 질색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마리온은 그 모습을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이 시간이 되도록 팔리지 않은 꽃을 가득 안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소녀가 안고 있는 꽃은 돈이 없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떼 왔는지 약간 시들시들하고, 흠집이 있었다.
마리온은 도저히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마치 발이 아교로 바닥과 꼭 달라붙어 버린 것만 같았다.
얼마나 추울까.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오늘 밤은 굶주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마리온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오는 것이 있었다. 오베론의 손이었다.
마리온이 입을 열었다.
“탑주님, 저 갖고 싶은 것이 생겼어요.”
“무엇이지?”
마리온이 오베론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저 꽃이요. 가능하다면 전부 갖고 싶어요.”
오베론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한없이 깊어서,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할까? 기껏 생긴 기회를 보잘것없는 꽃 따위에 쓴다고 한숨 쉴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베론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마리온은 진심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저 흠집 있고 허름한 꽃만큼 가지고 싶은 것은 없었다.
오베론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넌 변함이 없구나, 마리온.”
머리 위에서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따뜻한 손길은 그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아서 마리온은 마음이 놓였다.
“변함없이 착한 아이야.”
그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것이 기뻤다. 그가 칭찬을 해주는 것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어쩐지 행복해서 마리온도 그만 웃고 말았다.
탑으로 돌아가는 길, 마리온의 품에는 노란 프리지어가 한 아름 가득 안겨 있었다.
마차의 안에서, 오베론과 마리온은 마주 앉아 있었다. 마차 안은 넓었지만, 가끔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무릎과 무릎이 스쳤다.
오베론은 그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특유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눈으로.
마리온은 프리지어 꽃다발의 향을 맡으며 그의 얼굴을 힐끗거렸다.
자꾸만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어쩐지 그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부끄러웠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좋게 여기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였다. 그녀가 탑에 처음 들어와 목표를 이야기했을 때도, 꽃을 파는 소녀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도 단 한 번도 그녀를 나쁘게 보지 않은 사람. 오히려 그녀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동의하고 격려해 준 유일한 사람.
“저, 사실은 처음부터 연금술사를 지망했던 것은 아니에요.”
오베론이 문득 시선을 들었다. 그는 마리온을 돌아보았다.
마리온은 상한 꽃대를 다듬으며 말했다.
“제가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무엇이지?”
오베론의 눈빛과 어조에는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너무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부끄러워져서 마리온은 푸스스 웃었다.
“사실은……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어요. 정말 잠깐 만난 사이고, 굉장히 오래전의 일이라 그쪽은 절 기억도 못 할 거예요.”
꽃을 다듬던 손이 멈추었다. 마리온의 눈이 추억에 잠겼다. 잠시 그 기억을 회상하던 마리온은 곧 다시 꽃을 다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도 가끔 생각나요. 잘 지내고는 있는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한번 수소문이라도 해보지 그래?”
오베론이 툭 내뱉듯 말했다. 하지만 마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이름도 모르고, 너무 어릴 적의 일이라 얼굴도 기억이 안 나서요. 아하하, 정말 우습죠? 고작 이 정도의 인연으로 인생의 진로를 정하다니 말이에요.”
마리온이 조심스레 오베론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늘 여유롭고 장난스러운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대단히 진지한 얼굴로, 그가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우습지 않아.”
마리온은 마음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녀의 힘이자 격려가 되어주는 사람. 언제고 기댈 수 있는 단단한 벽 같은 사람.
그가 이런 사람이라서 너무도 기뻤다. 단지 책과 논문으로 알 때부터 이미 굉장히 동경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그와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책 너머의 그를 알 수 있어서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지어는 마리온의 작은 방을 장식했다. 어찌나 많은지 꽃병 세 개에 나눠 담고도 한 줌이 남았고, 덕분에 마리온의 방에는 프리지어 향이 진동했다.
마리온은 감사의 뜻으로 오베론에게도 프리지어를 주었다. 그의 실험도구와 흩어진 논문, 책으로 엉망인 방의 눈에 잘 띄는 책상 위에, 어울리지 않게도 샛노란 프리지어 꽃병 하나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