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급 도제 승급 시험의 합격자를 발표하겠다.”
연구실에 모여 있던 중급 도제들의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난 이번엔 꼭 승급해야 해. 4년째 중급이란 말이야.”
“나는 6년째야. 학비만 해도 어마어마해서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
“젠장, 난 자신 없어. 시험 완전히 망쳤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끊어질 듯한 긴장감. 모두의 시선이 스승의 입술에 머물렀다.
그 숨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 스승이 입을 열었다.
“……마리온 플라리넷. 로버트 에덴발트. 알베르토 미슐렝. 이상이다.”
“아아.”
그 짧은 말에 희비가 엇갈렸다.
마리온은 참았던 숨을 토했다. 긴장감이 한꺼번에 물러나자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의 얼굴 가득 천천히 함박웃음이 번졌다.
‘됐어!’
시험을 꽤 잘 쳤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번 승급 시험에 떨어질까 봐 잠도 설치고 밥도 덜 먹었다.
‘나도 이제 상급 도제야. 연금술사의 탑에 들어온 지 만 1년 만에 상급 도제가 된 거야.’
만 1년 만에 하급에서 중급을 거쳐 상급으로 승급.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연금술사의 탑에서는 한번 승급하기 위해 3~4년을 공부와 연구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재능과 노력은 그야말로 백 년에 한 명 날 정도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렇게 빨리 승급하는 수련생은 현 탑주님 말고는 본 적이 없어.’
‘그렇다니까. 어지간한 남자 도제 100명을 갖다 놔도 못 당해낼걸.’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녀가 이렇게 인정받기까지는 많은 방해와 고난이 있었다.
이 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수련생들, 심지어는 스승 중 처음부터 그녀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오베론뿐이었다.
‘감정적인 여자가 어떻게 논리적인 학문인 연금술을 할 수 있겠어?’
‘반년도 못 버티고 시집이나 갈 텐데 열심히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그런 것에 굴할 마리온이 아니었다. 이 정도에 물러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온은 첫 수업 때 ‘생물학적으로 여자의 두뇌는 남자의 것보다 가벼워서 그만큼 여자의 지능이 남자보다 떨어진다’라고 일장 연설을 했던 스승의 시험에서 유일한 만점을 받음으로써 그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 어떤 수업에도 제일 성실하게 임했으며, 연구실에는 누구보다 일찍 들어가서 밤늦게 나오곤 했다. 밥 먹을 때조차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편견을 가진 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계집애가 상급 도제 같은 걸 해서 어디에 써? 어차피 곧 시집이나 가버릴 텐데.”
“야, 야. 헥슨.”
마리온이 연구실에서 나가기 위해 짐을 꾸리던 찰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계집애가 머리 같은 거 좋아봤자 쓸모 하나도 없어. 얼굴이 반반한 게 제일 중요하지. 그런데 플라리넷 넌 그른 것 같다.”
헥슨이라는 이름의 중급 도제였다. 아무래도 자기가 승급을 못 한 것이 약이 올라 저러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런 일은 익숙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마리온은 푹 한숨을 쉬곤 말했다.
“중급에서만 5년째인 너에겐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 넌 그 잘나신 사내인데도 계집애보다 머리가 나빠서 큰일이네.”
“뭐, 뭐라고?”
“내가 시집을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지만 네 장가나 신경 쓰렴. 아, 넌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였지, 참? 시내에서 너에 대한 소문 들었어, 헥슨. 연금술사입네 하고 온갖 마을 여자들을 다 찔러봤다며? 그런 소문은 다 나니까 행실 간수 잘해. 그리고 연금술사라고 거짓말하지 말고 연금술사 중급 수련생이라고 해야지.”
헥슨은 잘 몰랐던 것 같지만 이런 소문은 여자들 사이에선 날개 달린 말보다 빨랐다. 마리온도 탑 근처 마을 시내의 단골 케이크 가게 점원에게 이 소문을 들었다.
그녀의 말에 여기저기서 풉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저 녀석……. 곧 장가간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더니 동네 여자들을 전부 찔러보고 있었다고?”
“자기가 여자들한테 인기 많다더니 순 허풍이었군.”
평소 헥슨이 동료 도제들에게 어찌나 자기 자랑을 해댔는지. 자기가 여자를 꼬시면 백발백중 넘어온다는 둥, 곧 예쁘고 돈 많은 여자를 물어 결혼할 거라는 둥, 자기한테 목을 매는 여자들을 줄 세우면 동구 밖 한 바퀴를 돌 거라는 둥…….
그런 그의 자랑질을 아니꼽게 여겼던 동료들이 많았는지 분위기는 순식간에 마리온 쪽으로 기울었다.
헥슨이 어버버하던 찰나였다.
“그럼 난 이만. 연구할 게 남아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속사포 같은 말솜씨로 제 할 말만 쏟아낸 마리온은 잽싸게 짐을 들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승급을 한 기쁜 날이었다. 시내에 나가서 케이크라도 사 먹으며 자축할 만도 하지만 마리온은 그러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텐데. 거의 완성된 것과 마찬가지야…….’
모처럼 강의가 없는 오후인데도 마리온은 개인 연구에 몰두했다.
그녀가 최근 푹 빠져 만들고 있는 것은 피로 회복제였다.
늘 밤을 새워 공부하다 보니 피곤하고 눈 밑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질 날이 없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직접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인간의 몸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이렇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리온은 그간 들은 강의 기록들이 적혀 있는 필기 노트와 도서관에서 빌린 논문들을 뒤적였다.
강의와 각종 논문 내용의 응용이 많이 필요하긴 했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탑주님의 논문에 따르면 그날 밤 뜨는 달의 크기에 따라 월광도마뱀 꼬리의 효능이 달라진다고 했지.”
탑주가 쓴, 연금술의 역사에 남을 정도로 걸출한 논문들을 뒤적이고 있자니 얼굴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탑주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
연금술사의 탑의 오베론은 여전히 모든 연금술사 지망생의, 그리고 마리온의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극적인 첫 만남 이후로도 마리온은 계속 오베론을 존경하고 잘 따랐다. 비록 어마어마하게 바쁜 데다 탑의 주인인 그가 일개 도제에게 쓸 시간은 많지 않았고, 그렇기에 첫 만남 이후로 그와 만난 건 오다가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몇 가지 질문을 한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마리온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막히는 연구에 대해 물어보면 그는 언제나 술술 조언해 주었고, 그 조언대로 하면 늘 언제 막혔냐는 듯 말끔히 해결되곤 했다.
이런 이야기를 동료 도제들에게 하면 대체 어떻게 탑주님과 우연히 마주쳤냐는 질문을 들었다. 대부분의 학우가 그를 ‘우연히’ 만나는 일은 마리온만큼 많지 않았다.
‘난 정말 탑 최고의 행운아인 것 같아. 탑주님과 이렇게 자주 우연히 마주치다니…….’
잠시 탑주님과의 추억들을 떠올려보던 마리온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러니까 월광도마뱀 꼬리의 효능은……. 그리고 이것이 야생 박하와 가시씀바귀와 만난다면…….’
하지만 풀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끓는 솥 앞에서 한참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던 마리온은 근처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케이크나 먹으러 갈 걸 그랬나 봐.’
기분이 답답하고 울적했다. 아까 헥슨이 시비를 걸 때보다 훨씬 더.
‘이럴 때 탑주님과 우연히 마주친다면 정말 좋을 텐데……. 분명 유용한 가르침을 주시겠지.’
그때였다. 연구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인영이 들어왔다.
마리온은 순간, 아주 잠깐. 그가 탑주 오베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탑주와 만나기를 너무나 고대한 나머지 눈의 착각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는 탑주가 아니라 그저 선배 도제일 뿐이었다.
“아, 안녕. 미안, 방해했구나. 사람이 있는지 몰랐지 뭐야.”
그는 마리온이 연금술사의 탑에 입성했을 때부터 상급 수련생이었던 선배였다. 그리고 마리온에겐 꽤 친절한 편이었다.
마리온은 밝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니에요, 괜찮아요. 원래 연구실은 같이 쓰는 거잖아요? 자, 제 물건을 좀 치워드릴게요.”
“고마워. 오늘따라 빈 곳이 별로 없더라고…….”
선배 도제와 연구실을 나눠 쓰기 시작한 직후,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마리온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골몰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신경이 쓰였는지 선배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마리온, 표정이 안 좋네. 연구가 잘 안 풀리나 봐? 혹시 무슨 연구를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아, 물론이죠. 저는 지금 피로 회복제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안 풀리네요.”
“약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지. 어디서 막혔는데?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는 재능이 출중한 편이라서, 상급 수련생이 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곧 정식 연금술사로 승급을 할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건 마리온만큼은 아니지만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러워서, 혹은 상대가 자신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을까 봐 염려돼서 연구에 대한 내용을 조금도 공유하지 않는 도제들이 많았지만…… 마리온은 아니었다. 그녀는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믿을 만한 상대에겐 확실히 털어놓는 편이었다.
“사실은, 잠을 조금만 잔 날에도 피로가 회복되는 중상급의 피로 회복제를 만들려고 했는데요. 피로 회복제에 제일 흔히 들어가는 재료인 월광도마뱀의 꼬리가 들어갔고, 눈이 침침하고 뻑뻑한 것도 없애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으면 해서 야생 박하도 넣었어요. 여기 보고서대로 제조했는데, 제 예측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 청량한 향이 나는 청록색 액체가 나와야 하는데 자꾸만 혼탁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주황색으로 변하지 뭐예요.”
선배는 자신의 연구에 바쁠 텐데도 마리온의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주었다. 고민하던 그가 대답했다.
“혹시 붉은 가시꽃은 써보았니?”
“네? 붉은 가시꽃이요? 하지만 선배님, 그건 독초인데요?”
“그렇지. 하지만 경우에 따라 미량의 독은 다른 재료들과 혼합하면 새로운 효과를 내기도 해.”
마리온은 깜짝 놀랐다. 붉은 가시꽃이라니, 전혀 생각도 못 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싸하기도 했다.
‘붉은 가시꽃 독은 극미량을 사용하면 몸의 열을 올리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지. 피로를 제거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마리온의 얼굴이 햇살처럼 밝아졌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해요, 선배님. 이번엔 진짜 잘 될 것 같아요.”
“그, 그래. 아, 난 이만 가봐야겠다. 그럼 수고해.”
“네! 안녕히 들어가세요.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선배가 떠난 뒤, 마리온은 그의 조언대로 했다. 솥 안에서 끓고 있는 약물에 붉은 가시꽃 한 병을 털어 넣은 것이다.
‘됐다!’
마리온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솥 안의 액체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다만 박하의 시원한 향보다는 가시꽃 특유의 꿀처럼 달콤한 향이 피어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목표에 가까워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약물은 완성이 되었으니 원하던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할 차례였다.
정식 연금술사라면 실험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을 지불하고 실험대상을 모집하기도 하지만 견습생에게 그런 건 사치였다. 견습생들은 대개 자신의 발명품을 자신에게 직접 실험하곤 했다.
마리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작은 유리병에 완성된 약물을 담았다.
“실험 용량, 30㎖……. 실험 시각, 562년 11월 21일 오후 10시 38분. 실험 대상, 마리온 플라리넷.”
보고서에 몇 마디를 더 휘갈겨 쓴 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유리병 안에 담긴 약물을 한 번에 마셨다.
약은 생각보다 달콤한 맛이 났다.
약의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마리온은 보고서에 몇 마디를 더 추가했다.
“10시 40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머리가 무겁고 눈이 침침하고 어깨가 결렸었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랬다. 마리온은 기분이 고양되어 감을 느꼈다. 과로가 누적되어 무겁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번 실험, 성공일지도……!”
그런데 그때였다.
뱃속이 이상하게 뜨거웠다. 마치 불덩어리라도 삼킨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기분 좋을 정도였지만, 뱃속의 열기는 점점 손끝, 발끝까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얌전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땀이 흘렀다. 긴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마리온이 중얼거렸다.
“왜…… 왜 이렇게 덥지?”
마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을 쐬어야 할 것 같아 그녀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창문이 눈앞에서 바짝 가까워졌다가, 또 훌쩍 멀어졌다가 했다.
“으……!”
그녀는 무너지듯 창문에 기댔다. 호흡이 가빴다. 뜨거운 숨이 입가를 타고 빠져나왔다.
마리온은 휘청이며 가까스로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적셨다. 땋아 내린 긴 밤색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살랑였다.
시원한 바람을 쐬니 조금 낫다고 느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밤바람 따위로는 식힐 수 없는 열기가 찾아왔다. 온몸이 들끓는 것 같았다.
“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럴 리가…… 없는데.”
실험이 실패할 리 없었다. 그녀는 정확한 계산대로 피로 회복제를 만들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 외의 다른 효과가 날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 하아, 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까스로 창틀에 몸을 기대고 있던 그녀의 몸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가녀린 몸이 달싹거렸다. 가슴이 끊임없이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마룻바닥에 주저앉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위험해.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면…….’
몸을 일으켜 세워보려 애썼지만 땀에 젖은 손으로 벽을 짚어보았자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었다.
‘누가…… 좀 도와줘.’
열기에 몽롱해져 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녀가 골머리를 썩일 때마다 우연히 나타나서 도움을 주었던 그 사람. 불친절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단단하게 의지가 되었던 단 한 사람…….
‘탑주님…….’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마리온은 그것이 몸의 열감 때문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정말로 떠오르고 있었다.
“앗!”
자신의 몸이 누군가의 손에 안아 올려졌음을 깨달은 마리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걱정하지 말아라, 마리온.”
낮고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 목소리에, 와 닿는 상대의 숨결에 몸이 달아오르고 말아 마리온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타, 탑주님…….”
바로 그였다. 그녀가 그렇게나 믿고 따르는 스승, 오베론.
그녀가 곤란해할 때마다 우연히 마주쳤던 그가, 그녀가 최고로 난처한 상황에 놓인 바로 지금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시야가 몽롱한 와중에도 그의 얼굴만은 확실히 보였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숨 막히게 잘생긴 얼굴. 검은 머리칼과 그 아래에서 빛나는 파란 눈동자. 그만큼이나 그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녀를 가까이서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코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마리온은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마치 그의 마력에 꽁꽁 묶이기라도 한 양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마리온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그녀의 뺨을 간지럽히듯 훑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작은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아 그녀는 흠칫 떨었다.
“예쁘군.”
그 말에 사랑스러움이 담겼다고 하면 기분 탓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야.”
웃음기 어린 그 목소리는 어쩐지 맛좋은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의 그것처럼 들렸다.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고 싶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는 욕심과 욕망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
이상한 일이었다. 오베론은 그저 믿음직하고 다정한, 동경하는 스승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그가 단지 스승이 아닌, 남자로 보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리온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는 그에게 끌리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와줄까, 마리온?”
그의 손길이 등허리를 감싸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단단한 팔을 지금 그녀는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의 다른 손이 마리온의 동그란 이마를 쓸어내렸다. 마치 두 눈을 감싸듯이, 그녀의 얼굴 위에 무수히 많은 작은 열기를 남기며.
“도와달라고 말해. 언제나 그랬듯이.”
마리온은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약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실험했는데 어디서 오류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되었다. 해독제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말을 그렇게 조리 있게 하기에 그녀의 머리는 너무나 몽롱했고, 그녀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도와주세요.”
그의 입가에 더더욱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마리온을 끌어안듯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물론이지.”
그러고는 그의 입술이 마리온의 귓불을 물었다.
“앗…….”
쪽, 쭈웁,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마리온의 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마치 맛있는 것이라도 되는 듯이 핥아 내려가는 그의 입술이, 그의 혀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타, 탑주님…….”
도와주길 바랐지만, 이런 방향은 아니었는데…….
‘그만하라고 해야…….’
하지만 어쩐지 싫지가 않았다.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바로 이런 것을 원했다는 듯 전신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 손놀림과 입놀림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온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하, 아…….”
귀에 이어 목을 입으로 애무하며 오베론은 몇 번이고 마리온의 목선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영역 표시를 하듯이.
그의 큰 손이 마리온의 몸을 덮었다. 마리온 그녀의 몸은 약물과 애무로 인해 굉장히 달아올라 있었음에도, 그의 몸은 더더욱 뜨거워 불덩이 같았다.
그의 뜨거운 체온이,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다정하고 감미롭지만 다소 다급한 손길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원하는 것보다도 더더욱.
‘어째서…….’
마리온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탑주님이 이렇게나 흥분해 버린 걸까? 약을 마신 건 그가 아니라 그녀인데.
그가 마리온의 로브를 벗겨 내렸다. 마리온의 하얀 어깨, 쇄골, 탐스럽게 봉긋 부풀어 오른 가슴이 드러나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굶주린 짐승처럼 그녀의 몸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그녀를 먹어치울 것만 같았다.
“앗, 아!”
마리온이 몸을 떨며 오베론의 옷깃을 잡았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약으로 인해 달아오른 몸은 평소보다도 몇 배나 더 예민해져 있었다. 가슴을 매만지고, 그 끝의 작고 붉은 것을 둥그렇게 간질이다가 마침내 맛있는 과실이라도 되는 듯 입에 문다. 마리온은 참을 수가 없었다.
“타, 탑주…… 니…… 임! 하아!”
그의 아름다운 붉은 입술이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물고 있는 모습은 견딜 수 없이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뜨겁고 능수능란한 혀가 민감한 유두를 간지럽히고, 긁어내리며 주변을 둥그렇게 훑는다. 마리온은 난생처음 느끼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이, 이러며언……! 안 되는, 앗! 으응!”
다리 사이에서 뜨겁고 미끈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소변을 본 걸까? 아니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나를 봐, 마리온.”
대체 어떻게 안 것일까? 주의가 흐트러진 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턱을 부드럽게 짚어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강제로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파랗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동자와 마주치자, 마리온은 뱃속이 떨리는 것만 같았다.
“으, 하, 하지 마세요…….”
“내가 맞춰볼까.”
눈앞에서 오베론의 얼굴이 사라졌다. 안심할 수 있었던 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가 어디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지 깨달은 마리온은 기겁했다.
“이곳 때문이지?”
곧 열기와 습기로 가득 차 있던 다리 사이가 한결 시원해졌다. 주르륵 하고 허벅지를 따라 점성 있는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마리온의 속옷을 벗긴 것이다.
얇은 천 한 장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의 가림막도 없이 치부를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존경하는 스승님에게.
“앗, 거, 거기는……!”
마리온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리를 오므리고 손으로 가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단단한 손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부드럽게 밀어냈다.
한 손으로 그녀의 두 손이 억압당하는 동안 오베론의 다른 손은 그녀의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결국 마리온의 미약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마리온의 음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벌써 이만큼이나 젖었군.”
“그, 그게요. 저는……!”
마리온은 울고 싶었다.
약에 취했다곤 하지만 겨우 가슴을 애무당한 정도로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승님에게 이렇게나 발정해 버리다니…….
하지만 곧, 부끄러움은커녕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마리온의 두 손을 놓아주곤 그녀의 갈라진 작은 골을 따라 훑었다.
“아흣!”
단지 그것만으로도 몸이 튕겼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파도가 곧 그녀를 덮쳤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작고 동그란 정점을 눌러, 그 위에 덮인 살점을 벗겨냈다. 그러고는 그 구슬 같은 것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며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앗!”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의 몸에 이렇게 야한 곳이 숨겨져 있었을 거라고 마리온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손끝을 문지를 때마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하얗게 될 정도로 구부러들고 온몸이 비틀렸다. 불꽃놀이라도 터지는 듯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아앗, 앙! 타, 타압…… 주님! 아!”
어마어마한 부유감. 온몸이 허공으로 치솟는 듯한 기분과 함께 마리온은 첫 절정을 맛보았다.
점멸했던 세상이 돌아와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마리온은 큭큭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벌써 가버리다니. 착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구석도 있었군. 하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던가? 그 영리하고 선량한 마리온 플라리넷이 실은 스승에게 흥분하는 아이였다니.”
“아, 아니에요. 정말로, 탑주니임…….”
그의 놀림에 마리온이 원망스레 칭얼댔다.
그녀의 수치심에 붉어진 뺨 때문인지, 그녀가 처음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안경 너머로 살짝 고인 눈물 때문인지 오베론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굽히더니,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쪽 소리가 났다.
“농담이야. 네가 흥분하듯 나 역시 흥분하고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너보다도 더.”
“네?”
“몰랐나? 내가 네게 발정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제야 마리온의 눈에 상대의 바지춤이 들어왔다. 그의 바지춤은 눈에 띌 정도로 불룩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스승의 그것을 훔쳐보았다는 사실에 놀란 마리온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약이라도 먹었다지만 상대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오베론은 손에 꼽힐 정도의 미남이라지만 마리온은 그렇지 않았다.
헥슨의 말은 얄밉지만 사실이었다. 그녀는 남자를 매혹할 수 있는 외모는 아니었다. 촌스러운 땋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까지……. 그런데 오베론씩이나 되는 남자가 어째서 그녀에게 흥분한단 말인가.
그런 그녀의 생각을 꿰뚫은 것일까? 달콤하고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가르쳐 줄 수 없다, 마리온. 지금은. 그저 내가 너에게 굉장히 발정했다는 사실만 알아둬.”
손가락 하나가 흥건하게 젖은 치부를 가르고 들어왔다. 마리온은 화들짝 놀랐다.
“윽……!”
외부의 무언가가 몸속에 들어오는 것은 정말 이상한 감각이었다. 이미 한 번의 절정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녀의 좁고 좁은 입구는 손가락 하나 정도는 고통 없이 받아들였으나, 그래도 배 속이 가득 차는 것 같은 이물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하아아…….”
마리온은 온몸을 긴장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남자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기도 만져본 적 없는 곳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다니……. 그것도 존경하는 스승을.
‘거부…… 해야 하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약에 취한, 아니. 그에게 취한 몸은 한 번의 절정을 맞이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저 손가락 하나를 받아들였을 뿐인데도 몸이 기뻐하는 것이, 그러면서도 더더욱 갈구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이게 무슨 일이람…….’
그녀가 갈등하는 동안에도 오베론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느리게 손가락을 빼내더니, 곧 조금 더 빠르게 들이박았다.
“읏!”
“마치 짐승처럼 말이야. 널 꿰뚫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아아……!”
“네 이런 모습들을 보고도 지금 이렇게 참고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
그의 손가락은 점점 속력을 내는가 싶더니, 그녀의 몸을 파고드는 손가락도 어느샌가 두 개로 늘었다. 그녀의 좁지만 탄력 있는 내부는 고작 몇 번 들락인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상해. 그저 탑주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느끼다니…….’
“으응. 앗! 아앗!”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자 감각은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 잔뜩 젖어 질척거리는 음란한 소리도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약효로 인해 그녀의 몸은 그의 손길에 기뻐하면서도 점점 더한 것을 원했다. 그저 손가락 몇 개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인데도 어느샌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리온은 깜짝 놀랐다.
처음인데, 정말 처음인데. 이래서야 천박하고 음란한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마리온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오베론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천박한 모습에 환멸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의 반응은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의 시리도록 파란 눈은 불타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웃음기와 여유 따윈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진 얼굴로 그가 씹어뱉었다.
“정말 날 어디까지 꼴리게 하려는 건지.”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가 마리온을 안아 든 것이다.
“첫 경험을 바닥에서 하게 할 순 없지.”
그는 마리온을 연구실 테이블 위에 눕히곤 거치적거리는 실험도구들을 팔로 쓸어버렸다.
와장창! 섬세하고 값비싼 실험도구들이 산산조각 났지만 그는 티끌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조급한 손길로 로브를 벗어 마리온의 몸 아래에 깔았다.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손에 쥐며 그가 속삭였다.
“이런 곳이라 미안하게 됐지만, 이제 한순간도 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군. 용서해라, 마리온.”
정신없는 와중이지만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마리온은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이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려움과 부끄러움과 묘한 기대감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갈등하면서도 마리온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끌림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앗, 하아……!”
그녀의 입구로 무언가가 침범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가락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부피감.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끝부분이 와 닿는 것만으로도 이런 것이 들어올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베론은 조급하게 그녀의 안에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 입구가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고 짓눌렸다.
“앗, 흐윽……! 탑, 주님. 아흑……!”
마리온은 오베론에게 아이처럼 매달렸다. 이 뻐근하고 버거운 감각, 너무나 커다란 그의 물건에 자신이 찢어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긴장감에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 들던 그때였다.
“마리온. 쉬이. 착하지.”
크고 두툼한 손길이 등을 덮었다. 그 따뜻한 손은 요령 좋게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마치 우는 아이를 달래는 듯이 다정하게.
“자, 숨 들이마시고. 옳지…….”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안심이 되었던지, 마리온은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무심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가 또 천천히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자, 확실히 몸에서 힘이 풀렸다. 두려움으로 긴장했던 몸이 발끝부터 조금씩 이완되고 있었다.
“옳지, 착하다. 어때, 하나도 무섭지 않지?”
“하아…… 타, 탑주님…….”
마리온이 물기 어린 눈으로 오베론을 올려다보았다. 오베론은 그런 그녀의 허리를 계속해서 토닥이며, 힘이 풀린 그녀의 안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오베론이 마침내 끝까지 밀어 넣었을 때 마리온은 다시 버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찢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잦아들었지만 난생처음 무언가를 들여보냈으니,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것을 통째로 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들어온 것은 아랫배 쪽인데 왜 숨이 막히는지 마리온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정말 논리적이지 않았다.
“아, 흐으으…….”
“큭……. 정말 좁군. 나까지 약간 아플 정도인데.”
오베론은 마리온의 귀에 입 맞추곤 귓불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내게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어, 마리온.”
“하아…… 익, 숙이라니…….”
마리온이 가까스로 되물었으나 그녀의 스승은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느리게 허리를 뒤로 당겼다. 그의 물건이 따라 마리온의 안에서 빠져나왔고, 그의 것을 빈틈없이 단단하게 물고 있는 속살이 딸려 나오는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읏!”
마치 활에 시위를 걸듯 허리를 최대한 끌어당긴 그는, 당길 때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골반을 밀어붙였다.
“으응!”
언제 빠져나갔냐는 듯 그의 것이 그녀의 안에 착 감겨 들어갔다. 약의 효과와 그의 정성스러운 애무로 잔뜩 젖어 있던 마리온의 비부에서는 더없이 음란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침입을 허용하긴커녕 보인 적도 없는 부끄러운 곳을 훤히 보이면서, 스승의 치부를 받아들이다니…….
그러나 이런 혼란을 느끼는 것은 그녀뿐이라는 듯, 오베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릿짓을 거듭할 뿐이었다.
“앗, 하앗, 아항, 핫…….”
맹세코 그를 그렇고 그런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생겼지만 그 이상으로 존경스러운 사람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의 살덩이가 깊게 들어와 마리온의 정점을 찍을 때마다, 그 사실은 죄책감으로 와닿았다. 결국 그와 이렇게 난잡한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은 그녀 역시 그를 아주 조금쯤은 그런 시선으로 보았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그에게 몹시 미안하고 죄스러우면서도, 또…….
말도 안 되게도, 이해할 수 없게도, 오히려 더한 쾌감으로 다가와서…….
‘어떡하지. 이러면 안 되는데. 스승님과 이런 일은…… 정말 곤란한데…….’
그가 찔러 들어올 때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관절이 하얗게 될 정도로 구부러들었다.
이상하다. 첫 경험은 무지무지 무섭고…… 아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마을의 여자들은 전부 그렇게 말했다. 아프고, 상처가 나고, 남자는 배려가 없고, 그렇게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어쩌면 약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상대가 정말 특별한 걸지도.
“괜찮아, 마리온. 걱정할 것 없어.”
마치 그녀의 마음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속삭였다.
최고의 연금술사란 원래 독심술도 쓸 수 있는 것일까? 몸을 가누기 어려운 자극에, 빠른 속도로 골반을 치고 들어오는 충격에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마리온은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의 다정한 속삭임을 들으면, 그의 손길이 닿으면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그녀의 첫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남편감이 아니라는 것도. 첫 경험이 아프지 않다는 것도. 스승과 이런 난잡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금은 그저 모든 걸 약 때문인 것으로 책임을 돌리고 그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아! 하아앙. 아! 하으…… 으응!”
마리온은 그저 한 포기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그의 목에 매달릴 뿐이었다.
실패한 약의 효력은 대체 언제까지인 걸까? 마리온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 밤은 그보다 훨씬 오래 이어졌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