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순간 (2/20)

2. 순간

“작가님, 취한 것 같은데 그만 드세요!”

재경은 처음 보는 현주의 모습에 잔을 뺏어 들고 말했다. 손에서 와인 잔을 뺏긴 현주는 입술을 쭉 내밀고 칭얼거렸고, 곁에 있던 지원은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새 와인 잔을 다시 쥐여 주었다.

“야, 왜 계속 줘. 이러다 작가님 취하면 어떡해.”

재경의 잔소리에 지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새로운 여자가 궁금할 뿐이었다. 연예계 특성상 늘 보던 인물만 보며 자란 탓에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이상한 호기심이 일었다. 지원에게 있어서 현주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나 새로웠다. 그녀는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수줍음이 많았다.

새벽 네 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은 하나둘 취했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파티의 주인공인 남자와 그의 어깨에 기댄 한 여자만 빼고 다들 이 모든 것이 즐거운 듯 보였다. 한껏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재경도 제 코트를 챙기며 지원에게 말했다.

“작가님 내가 데려다 드릴게. 주소는 아니까 매니저 시키면 돼.”

재경이 현주를 향해 손을 뻗자 지원은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재경이 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소 알려 줘. 나 아직 일어나기 싫어.”

일어나도 현주와 같이 일어나겠다는 뜻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제나 독특한 고집을 부리는 그였기에 재경은 순순히 주소를 넘겼다.

“잘 모셔다 드려. 나 잘 보여야 될 사람이야.”

지원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경이 라운지 문 밖으로 벗어나자 그는 그녀의 주소가 적힌 종잇조각을 곱게 접어 와인 잔 안으로 던졌다. 붉은빛의 와인이 잠식하듯 종이를 적셨다.

“나갈래요?”

“……아뇨.”

“더 마시고 싶어요?”

“아뇨.”

“그럼…….”

나가자는 지원의 말에 현주는 계속해서 싫다고 대답했다. 아까는 제 눈치를 보며 어색해하던 그녀가 지금은 제 품에 안기다시피 한 채 칭얼거리니 꽤 귀여웠다.

“밑에 그 사람 없어요?”

“네?”

“그 사람이요. 여전히 잘생기고 멋있어서 아쉬워 죽겠는 내 전 남친이요.”

지원은 그녀가 복도 끝에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퍼마신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아, 신파는 싫은데.”

그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열심히 속삭였다. 밑에는 그 사람이 없을 거라며, 그 사람은 이미 가고 없으니 어서 나가자고. 그는 오늘 하루 종일 단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오랜 연예계 생활을 통해 터득한 음주의 법칙이었다.

‘보는 눈이 많을 땐 술을 먹지 않는다.’

사실 대중이 바라보는 제 이미지가 딱히 모범적이지는 않아서 상관없긴 했지만, 데뷔 17년 차, 서른두 살이 되도록 지키고 있는 생활의 규칙이었다.

휘청거리는 그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많이 마시긴 했지만 완전히 취한 건 아니었는지 그녀는 간간이 말을 걸었다.

“어디 가요?”

“내 집이요.”

“아아, 그렇구나아―”

진짜 알아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름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집 앞에 도착하고도 제 발로 차에서 내려 제 발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녀였다. 휘청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쥐고 번호 키를 누르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디예요?”

“우리 집이요. 들어갈래요?”

그녀는 라운지 복도에서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나중에 발 빼지 마요.”

그는 그녀의 작은 귓바퀴에 속삭이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번호 키의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마치 장엄한 음악이라도 나와야 할 것처럼 무게감 있게 열린 문은 지원과 현주를 집어삼킨 후 다시 닫혔다.

그는 집 안에 들어서자 곧바로 등을 돌려 현주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여태 정신없이 헬렐레하던 그녀의 이성이 딩동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찾았다. 그녀의 양손이 그의 가슴을 힘껏 밀어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아, 신파는 싫다니까.”

그는 그녀의 반응에 짜증스럽다는 듯 손을 들어 머리를 헝클었다. 제멋대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그의 섹시함을 한층 더 배가시켰다. 그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주가 마찬가지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이내 등과 문이 닿고 말았다. 취기로 오른 체온 때문인지 긴장 탓인지 모를 식은땀이 차가운 문과 닿아 소름이 끼쳤다.

소리라도 질러야 하건만 집 안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그의 분위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양손이 그녀를 가두고는 천천히 입을 맞췄다.

“싫어요?”

“…….”

그가 그녀의 목에 나른한 숨소리를 뱉으며 다시 물었다.

“싫어?”

키 차이 때문에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던 현주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차마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입술 때문이었다. 작게 호선을 그린 그의 입술은 분명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를 위압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뇨.”

그의 입술이 장난스럽게 말리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착하네.”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던 그는 이내 짙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의 정신은 분명 점점 뚜렷해졌다. 아니 감각이 뚜렷해졌다. 문 앞에서의 키스가 그녀의 술기운을 깨웠다면 지금의 키스는 다시 한 번 취기를 불어넣고 있는 듯했다.

현주는 원나잇은 안 된다는 조신한 마음가짐과 달리 그를 향해 몸을 점점 밀착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급하게 달려들자 지원은 푸스스 바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는 그녀의 귓바퀴를 깨물며 혀로 살짝살짝 간질였다.

“뭐가 이렇게 급해.”

“…….”

현주는 자신이 더 원하는 것 같은 상황에 민망해졌다. 어색함에 그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내리고 방어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는 잠시 물러나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던지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의 입술이 쫀득한 소리를 내며 현주의 목에 닿았다. 길고 가는 그녀의 목이 간지러움에 옆으로 휘어지자 이번에도 그의 손은 그녀의 목을 잡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아 두었다.

그의 손길은 현주의 혼을 빼놓기 딱 좋았다. 부드럽게 허리를 간질이는 그의 손길에 절로 신음이 나오고 온몸의 힘이 풀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지원은 현주의 입술을 열렬히 탐하며 침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순진하게도 건드리는 족족 달아오르는 이 여자의 몸을 조금이라도 빨리 탐하고 싶었다.

침대로 미끄러지듯 쓰러진 그녀는 생각보다 육감적인 몸매를 갖고 있었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선하며 잘 익은 사과처럼 둥근 곡선을 자랑하는 엉덩이까지. 애초에 가졌던 흥미보다 더 큰 욕망이 생기자 그는 혀끝으로 천천히 입술을 적셨다.

입고 있던 검은색 니트를 벗어 던지자 그의 잘 만들어진 근육들이 드러났다. 지원은 그녀에게 다가가 손끝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선을 쓸었다. 현주의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긴장돼?”

“…….”

현주는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꼴깍, 침을 삼켰다. 그는 특유의 끈적거리는 눈으로 현주의 머리카락, 눈, 코 그리고 입술을 살폈다.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는데도 그 어떤 애무보다 위험하고 위태로웠다. 지원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입술을 문질렀다. 키스한 뒤여서 그런지 충분히 젖은 모습이 먹음직스러웠다.

“하―”

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뱉었다. 긴장된 마음이면서 동시에 흥분되어 있던 그 숨소리에 지원은 아이처럼 웃었다. 그러곤 손가락 하나를 그녀의 입술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말캉한 혀끝이 손가락에 닿자 그의 표정은 들끓는 욕망으로 천천히 굳어졌다.

“앗.”

현주는 주체할 수 없는 긴장에 지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라 놀란 현주는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유혹도 할 줄 아네.”

라고 말했다.

“그, 그게 아니라.”

“긴장 안 해도 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는 그녀가 자신과의 하룻밤을 앞두고 긴장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가늘고 긴 목에 다시 한 번 고개를 파묻고 입을 맞췄다. 현주는 발끝까지 퍼지는 아찔한 전율이 싫지 않았지만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평소의 그녀는 이런 식의 감정적인 상황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예술가였지만 그녀가 솔직해지는 순간은 오로지 그녀의 글 속에서만이었다. 반면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앞에서 망설여 본 기억이 없는 그의 표정엔 짜증스러움이 역력했다.

“밀어내지 마. 참기 힘들어.”

그는 증명하듯 단숨에 그녀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달려드는 그의 입술은 굶주림에 헐떡이는 늑대처럼 거칠고 매서웠다. 현주는 태어나 그토록 본능에 충실한 형태의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 모습이 흡사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 같아서 두렵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 순수하게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그 자극이 싫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 남아 있는 이성으로 지원을 다시 한 번 밀어냈다. 지원은 일어나려는 현주의 양손을 잡아 쥐고 거칠게 밀어붙였다.

“왜. 뭐가 문제야.”

“…….”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계산이나 생각 따위는 없는, 오로지 본능과 욕구만 있는 뚜렷하고 투명한 것이었다. 세상 어느 여자도 그 깊은 눈에 빠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침대 위라면 더욱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주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처음이에요.”

“뭐가.”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 남자랑 처음 자 보는 거라고요.”

“…….”

지원은 여자의 말을 곱씹으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되뇌었다. 그녀의 손목을 결박한 그의 손에서는 아직 힘이 풀리지 않았다.

“왜?”

“뭐…… 내가 아직 처녀인 거에 이유도 필요해요?”

“나이 스물여덟에 처녀인 거면 이유가 필요해.”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한편으론 화도 나 있는 것 같았다. 현주는 이전 연인들에게 해 오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아니야.’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늘 그렇게 말해 왔었다. 그 말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래도록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모두들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떠났다. 현주는 제 처지에 뜬금없는 회환이 밀려왔다. 지원이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꾸욱 짚었다.

“나랑 얘기할 때 딴생각하지 마.”

“네?”

“물었잖아. 이유가 뭐냐고.”

현주는 눈알을 굴리며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냥 자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지원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남자와의 잠자리를 피하는 성인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 수만큼 다양했다. 두려운 것이 이유가 되기도 했고, 종교적인 신념이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채 낯선 남자 집까지 들어온 여자가 자신은 한 번도 남자와 자 보지 못했고, 그 이유를 ‘잘 이유가 없어서’라고 답할 확률은 흔치 않았다.

현주도 제 대답이 누군가를 이해시킬 만큼 설득력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민망한 표정을 짓는 현주를 보며 생각을 마친 지원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럼 지금은?”

“…….”

“지금도 잘 이유가 없어?”

그는 천천히 상체를 숙여 현주의 목에 숨을 박아 넣었다. 그의 불규칙한 숨은 델 만큼 뜨겁기도 하고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갑기도 했다.

“하아―”

현주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를 처음 본 순간, 그와 첫 키스를 한 순간 느껴졌던 이성이 차단되는 느낌이 다시 한 번 되살아났다.

“어때?”

그는 이를 세워 곧게 뻗은 그녀의 쇄골을 깨물었다.

“아앗.”

그가 잡고 있던 손은 자유로워진 지 오래였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커다란 팔은 그녀의 허리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목과 가슴팍에 파묻혀 여린 살결을 뜯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의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싫어?”

현관에서 키스하기 전 물었던 물음이었다. 그녀가 핑계 댈 것은 많았다.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고, 헤어진 연인과 그의 새로운 연인을 만났으며 그녀를 유혹하는 남자는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김지원이었다.

현주는 제 인생에서 한 번쯤은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 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목에 닿은 그의 입술이 둥글게 말리며 낮은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흘러들어 갔다. 그는 다시 열렬하게 키스했다. 좀 전보다 더 깊고 더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그의 혀가 입안을 휘젓고 있는 동안 현주의 셔츠는 조금씩 벌어져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맨살에 그의 손이 닿자 그녀는 이질감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익숙해질 거야.”

지원은 능숙하게 속옷의 후크까지 풀어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녀의 상체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흥분한 탓에 복숭아처럼 분홍빛으로 물든 가슴은 제 손에 맞춘 것처럼 딱 들어왔다. 아직 낯선 손길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작게 솟은 정점은 벌써부터 빳빳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원은 현주의 가슴을 입안 가득 베어 물었다.

“하앗!”

현주는 두려움과 긴장감 그리고 묘한 쾌감이 한데 섞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슴께에 붙어 있는 그의 어깨에 솜방망이 같은 주먹질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단단한 바위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혀끝으로 그녀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쫀득거리는 소리가 어두운 방 안 전체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그의 손길이 그녀의 치마로 향했다. 지퍼를 내리는 손길에서 애정이 느껴질 만큼 조심스럽고 또 부드러웠다. 그녀는 팬티를 제외하고 다 벗겨져 버린 제 몸을 감싸며 곁에 있는 이불을 끌었다.

“추워요.”

그는 감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보란 듯이 이불을 들어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현주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자 그는 잘빠진 청바지를 벗으며 말했다.

“곧 더워질 거야.”

깔끔하게 벗어 버린 덕에 현주는 지원의 완전한 나신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딱딱해진 욕망에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지원의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커다란 손이 파고들 듯 여자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으읏…….”

지원의 손은 그녀의 팬티에 닿을 듯 말 듯 장난치듯 움직였다. 분명 끈적거리는 눈빛과 손길로 여자의 온몸을 훑고 있었지만 오직 그곳만큼은 건들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주는 아래에서 시작되는 뻐근한 무언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입술이 골반에 닿아 혀끝으로 할짝일 때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간지러움도 아닌 짜릿한 촉감이 자동으로 허리를 튕기게 만들었다.

지원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 이리저리 농락했다. 그녀의 몸이 떨리는 만큼 그녀의 부푼 가슴 역시 흔들렸다. 그 모습은 숨 막히도록 야한 장면이었다. 지원의 손이 그녀의 허리와 허벅지를 오가며 간지럼을 태웠다.

“하앗.”

그녀의 짧은 신음도 그 주기가 계속해서 짧아지고 있었다.

“참지 마. 듣기 좋아.”

현주는 듣기 좋다는 그의 말에 더욱 부끄러워졌다. 자연스럽게 들썩이는 제 허리와 입술을 깨물어도 새어 나오는 신음이 민망할 뿐이었다.

그가 불쑥 상체를 세우고 그녀의 다리를 양쪽으로 벌렸다. 현주가 부끄러움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은밀한 곳과 가까운 허벅지 안쪽을 씹어 먹듯 빨아 대는 것이 느껴졌다.

안달 난 그녀의 다리가 그의 상체를 조이며 가깝게 밀착시켰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팬티 위를 지분거렸다. 뜨거운 숨을 내뱉던 그녀의 은밀한 곳이 참지 못하고 애액을 쏟아 냈다.

“하아― 하, 더워요.”

“알아.”

아까는 춥다고 하더니 지금은 덥다고 말하는 현주의 말에 지원은 참으로 솔직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익숙하게 그녀의 팬티를 벗겨 내렸다.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작은 숲에 그의 혀끝이 닿았다.

“아앗, 하지 마요.”

놀란 현주가 그를 밀어내자 그는 쉽게 물러났다. 지원은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를 쓸며 한가득 쥐었다가 다시 놓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빳빳한 다리가 부드러워지자 그는 손가락 하나로 그녀의 작은 숲을 침범했다.

이미 젖을 대로 젖은 그녀의 숲은 미끄러웠다. 굳이 눈으로 클리토리스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동그랗게 부푼 그것이 손에 닿자 그녀는 쾌락의 비명을 내질렀다.

“하앗!”

질척이며 부푼 그곳을 천천히 자극하자 그녀의 입에서 쉼 없이 신음이 쏟아졌다. 지원 역시도 이토록 즉각적이고 야릇한 풍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을 좁은 길에 집어넣었다.

“아앗!”

“……괜찮아.”

“아파요…….”

손가락 하나임에도 단단하게 조이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팔이 침대 위에서 부들부들 떨렸다. 생소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이 퍽이나 안쓰러웠지만 또 가련했기에 아름답기도 했다. 그는 손가락을 빼지 않고 상체만 숙여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날 믿어. 힘 빼.”

그가 다시 한 번 입을 맞추며 뜨거운 체온을 전하자 현주의 몸은 조금씩 이완되었다. 손을 뺄 수 있을 만큼 느슨해졌을 땐 그도 손가락을 움직이며 길을 만들었다.

“하아, 하. 나, 나 좀 잡아 줘요.”

여전히 손가락으로 자신을 농락하고 있는 그를 향해 그녀는 손을 뻗어 애원했다. 어디라도 의지할 곳이 있어야만 지원이 전하는 아찔한 쾌감을 오롯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원은 거절하지 않고 그런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녀의 가녀린 팔이 자신을 끌어안고 신음을 내뱉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욕망이 솟아올랐다.

“하, 지금보다 조금 더 아플 거야.”

“하아, 하…….”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두 다리를 넓게 벌렸다.

“아프면 말해. 최대한 노력해 볼게.”

뭘 노력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주는 그의 말이 꽤 믿음직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그 생각을 취소했다. 그는 번들거리는 그녀의 여성 앞에 딱딱한 자신을 문지르더니 이내 깊게 찔러 넣었다.

“아악!”

현주의 짧고 굵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원이 생각해도 이것은 너무한 것이었다. 그녀의 안은 생각한 것보다 비좁고 숨 막혔다. 그녀 역시 고통에 고개를 비틀고 있었다. 지원은 몸을 숙여 그녀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그녀는 그의 품에 갇힌 것마냥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눈 떠 봐.”

“…….”

“내 말 들어. 눈 떠.”

현주는 그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짙고 깊은 눈이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착해.”

그는 그녀의 탐스러운 허벅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로지 방어하기 위해 굳어 있던 그녀의 하체가 뜨거운 손길에 점차 정신을 잃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가 다시 눈살을 찌푸리려 하자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말했다.

“나한테 집중해.”

그녀는 분명 지원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원은 현주의 고통과 쾌감 그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는 고통을 어서 빨리 쾌감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쥐고 더 넓게 벌렸다.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아까보다는 수월해진 감이 있었다.

“하아, 하. 으윽.”

신음이기도 하면서 비명이기도 한 그녀의 소리는 지원을 점차 흥분시켰다. 그녀가 손톱을 세워 등을 흠집 내고 있어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이 점차 거칠어졌다.

“아앗, 천천히. 천천히요. 제발.”

그녀의 절규는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 뿐이었다. 지원의 귓가엔 더, 더 해 달라는 애원으로 들렸다. 그녀는 그가 치고 올리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허리는 들렸고 몸은 흔들렸다. 찰싹이는 살 소리가 계속해서 빨라졌다. 그는 그녀의 허벅지를 들어 올리고 제 허리를 말았다. 둘의 모습이 동그랗게 변했다.

“흐응…….”

지원은 그녀가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벅차하면서도 입을 벌려 자신을 삼키고 있는 그녀의 작은 숲이 매혹적이었다. 그는 그녀의 음핵을 천천히 문질렀다. 뿜어내는 뜨거운 기운이 제 남성을 태울 만큼 위협적이었다.

“하아, 지원 씨.”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 이름을 찾아 부르는 그녀가 귀여웠다. 처음임에도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관계 도중에 끊임없이 팔을 뻗어 저를 안으려는 그 몸짓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더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으앗, 지, 지원 씨.”

“응…… 말해.”

“하아, 하아…….”

좋은 매트리스건만 침대도 격렬하게 출렁였다. 덩달아 그녀의 가슴도 둥글게 원을 그리며 탱글탱글 움직였다. 찌푸린 미간, 저를 부르는 입술, 빼어난 곡선을 이루는 그녀의 몸매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그의 손이 거칠게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허리는 마지막을 향해 내달렸다.

“하앗!”

지원이 짧은 신음을 뱉으며 제 남성을 빼냈다. 그의 욕망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하아…….”

“하…….”

이미 혼이란 혼은 다 빨린 것 같은 표정의 현주 곁으로 지원은 쓰러지듯 누웠다. 그녀의 몸은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떨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짧은 입맞춤을 전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움찔거렸다.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렀다.

“아직 가르쳐 줄 게 많아.”

하지만 현주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처음 맛본 커다란 충격을 받아들이기에도 충분히 바빴다.

현주는 강렬하게 부서지는 태양빛에 힘겹게 눈을 떴다. 먼지 하나 앉지 않았을 것 같은 하얀 이불, 한쪽 벽면을 채운 커다란 창까지,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그중 가장 익숙하지 않은 것은 허리와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통증이었다.

“으…….”

몸을 뒤척이며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오, 이런.”

육성으로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머릿속엔 잊을 수 없이 선명한 기억들이 난무했다. 28년을 살면서 가장 강렬하다 칭할 수 있던 움직임, 끓어오르는 욕망, 거북할 정도로 적나라했던 남자의 육체까지. 흐릿한 기억이라곤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평소보다 많이 마신 편이기는 했지만 사리분별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대체 왜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하게 된 걸까.

“결국 기다리고 기다린 게 이거냐.”

현주는 자책 섞인 한탄을 중얼거렸다.

‘헤어진 지 일 년이 지나도록 아련한 기억의 전 연인에게도 내어 주지 않았던 하룻밤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것도 타락하고 타락해도 저 끝까지 타락한 것만 같은 그 남자와 나누다니.’

현주는 괴로운 자아비판 속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전라로 누워 있는 침대와 그 침대가 놓여 있는 이곳은 그녀의 방이 아님을. 뒤늦은 깨달음에 몸을 일으킨 그녀는 욱신거리는 통증에 또 한 번 얼굴을 찡그렸다.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살펴도 지원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여기 호텔인가.”

일단 옷이라도 입어야 할 것 같아 침대 옆 서랍을 뒤지는데 방문이 열리고 어제의 그보다 훨씬 더 근사한 그가 들어왔다.

“일어났어?”

가라앉은 목소리가 탁했다. 그는 한 손에 머그잔을 쥐고 그대로 문에 기대섰다. 분명 음기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쾌청한 아침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일렁이는 불꽃이 또 한 번 타오르고 있었다.

“뭐, 뭘 봐요.”

그의 눈은 이상하리만큼 그녀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타락하긴 했지만 어떤 숨김이나 가식 없이 투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주는 그런 그의 눈과 거짓이라면 거짓투성이인 제 눈동자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지원은 더듬거리며 말하는 그녀를 향해 미간을 찡그리며 다가갔다. 침대 한쪽에 걸터앉은 그가 말했다.

“아침에 하는 것도 궁금하지 않아?”

그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지만 걸치고 있는 탓에 여실히 드러난 그의 상반신이 유혹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단호히 대답했다.

“안 궁금한데요.”

그는 그녀의 대답엔 관심도 없다는 듯 들고 있던 머그잔을 건넸다.

“물이에요?”

이번에도 그는 그녀의 물음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녀 입가에 머그잔을 대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현주는 마시라는 말인가 싶어 손을 들어 머그잔을 쥐려 했지만 그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입 벌려. 먹여 줄게.”

“혼자 먹을 수 있어요.”

“알아. 그래도 벌려.”

지원은 오동통하게 부어 있는 그녀의 입술에 안달이 나고 있었다. 그 입술이 물기를 머금는 순간을 꼭 보고 싶었다. 현주는 지원의 고집에 하는 수 없이 살짝 입술을 벌렸다. 지원은 중요한 시험이라도 보는 사람마냥 뚫어져라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잔을 기울이자 담겨 있던 물이 그녀의 입술로, 그리고 입술 밑으로 흘렀다.

“에이, 흘렸잖……!”

지원은 그녀의 목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받아 마시듯 핥았다. 그의 끈적한 움직임에 현주는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움츠렸다.

그는 연인의 피를 마시는 흡혈귀처럼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끌어당겼다. 지원의 입이 목에서 입술로 점차 움직였다. 말캉하게 빨려 오는 부푼 입술이 사탕처럼 달았다.

그는 아쉬움이 역력히 느껴지는 몸짓으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현주 역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를 잡을 뻔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스케줄 때문에 곧 나갈 거니까 쉬다 가.”

그 순간, 영화 같던 어제와 오늘의 아침은 현실이 되었다. 그녀의 눈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속옷이 보였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신경 쓰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웠던 이불의 촉감도 그저 답답하게 느껴졌다. 현주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하룻밤이야. 하룻밤.’

현주는 지원이 욕실로 들어간 사이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정신 차려, 유현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높디높은 지원의 펜트하우스에서 나오자 그녀는 제 처지를 보다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다리가 떨리는 밤을 보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또한 그리 생각할지는 알 수 없었다. 보나마나 그의 많고 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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