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어렸을 적,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다. 나는 여덟 살이었고, 해가 쨍쨍 내리쬐던 여름의 낮이었다. 누나는 학원을, 아버지는 일을 나가셨다. 어머니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주저앉아 이미 싫증이 난 커다란 로보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새 장난감을 사달라는 내 요구를 무시하고 뜨개질에 집중하는 어머니 때문에 나는 심통이 나있던 차였다. 단단히 화가 난 나는 어머니를 골려줄 생각이었다.
확 가출이라도 해버릴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나는 어머니가 우아하게 음악에 몸을 맡긴 것을 흘끔거렸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잘 나가는 집안이 다 그렇듯, 선행학습으로 중학교 과정을 끝낸 후의 어린 아이다. 부모를 닮아 타고난 머리가 좋았지만 영악함은 초등학생의 그것이었고 자신의 치기 어림을 눈치 채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정말 가출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2층 방에 쏜살처럼 달려 들어가 A4 용지에 삐뚤거리는 글씨로 장난감에 대한 내 욕망을 표출했다. 끝으로 커다랗게 ‘나 가출할 거야!’라고 휘갈긴 나는 좀 있다 벌어질 웃긴 에피소드를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가출했다는 걸 알아채면 엄마는 엉엉 울며 장난감을 사주고 말거야. 암 그렇지, 안 사주고 배길 수 없을 걸?
어머니는 뜨개질에 심취해 있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취미를 가진 여인이었다. 클래식 음악에 발소리를 숨겨 나는 번호키가 달린 집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앉아 있는 흔들의자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장식장에 모습을 감췄다. 급하게 숨느라 종아리에 살짝 스크래치도 나고 피도 낫지만 까짓거, 난 남자애니까. 울지 않아. 비좁은 장식장 안은 공기가 탁했다. 불편한 자세로 앉아 어머니의 반응을 기다리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점심 먹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배가 슬슬 고파왔지만 그보다는 낮잠의 유혹이 강했다. 그 좁은 안에서 어떻게 그렇게 쿨쿨 잤는지 알 방도가 없다.
왜 하필 그 날이었을까? 왜 하필 그 날 강도가 들이닥쳤고, 왜 하필 그 날 어머니와 나 밖에 없었을까? 왜 하필 나는 그 장식장에 숨어 있었을까?
어머니는 점심을 준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내가 사라진 걸 발견한 것 같다. 뜨개질 거리를 탁자에 내려놓다가 내가 올려놓은 A4 용지가 눈에 띄었던 걸까. 황급히 집 안 곳곳을 찾아 헤맸지만 장식장 안의 나를 발견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왜 하필 그 날이었을까?
아버지는 재력가였고 전략가였다. 그는 전투적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필요 없는 고용인을 가차 없이 자르고 법에 걸리지 않는다면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는 냉철한 수재였고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이 대개 그렇듯, 원한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원한의 두께와 깊이가 얼마나 무거운지.
현관문이 열려 있는 걸 발견하고 급히 날 찾아 나가려던 어머니는 두 남자와 맞닥뜨렸다. 어머니는 없어진 아들 때문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굽신거리며 고개를 숙인 남자들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따뜻하고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때의 그녀는 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밀린 임금을 받으러 왔다는 남자들은 누덕더기를 걸친 채 고개를 굽신거렸지만 금방이라도 밖으로 박차고 나가려드는 어머니를 보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말싸움이 붙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장식장 문틈으로 남자와 어머니가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소리치는 모습을 나는 평생 단 한 번 보았다.
남자들은 어머니를 떠밀었다.
그들은 품에서 숨겨왔던 흉기를 꺼내들었다. 처음에는 찌를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겁을 줄 생각이었겠지.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그런 위협에 겁을 먹는 성격이 아니었다. 흉기에 깊숙히 찔린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들을 지켜봤다.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나 그 때, 사실 엄마와 눈이 마주쳤어.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뻐끔거리는 그 입도 보았다.
‘나오지 마.’
수차례 어머니를 찌른 남자들이 도망치듯 집을 나가버렸다. 나는 어머니가 시킨 대로 장식장 안에 몸을 숨긴 채였다.
살짝 열린 장식장의 문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까 쨍쨍 내리쬐던 태양이 환상이라도 되는 듯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 어두워져 있었다. 그림자 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나는 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구름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장식장 안은 비좁았다. 입 안에 까끌까끌하게 먼지 맛이 닿아왔으나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급하게 숨느라 종아리가 문 모서리에 긁혀 상처가 난 듯 따끔따끔 거렸다. 어린아이의 여린 살결이 쓰라렸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애써 외면한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저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잿빛 구름의 수를 세고 있었다.
문 틈 밖으로는 구름이 아득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몸을 일으켜 장식장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꽤 흐른 듯, 소나기가 휘몰아치고 지나간 창밖의 꽃들이 몇 송이 꺾여 있었다. 나는 쓰러진 어머니의 주검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나는 피를 밟지 않으려고 하얀 양말을 신을 발로 까치발을 든다.
2층에 놀이방으로 가자. 그 곳에는 로보트도 있고 기차도 있고 꼬마 자동차도 있어. 그걸 타고 도망쳐 버리자.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으니, 꿈같은 동화 나라로 여행을 떠나자. 비틀거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누군가 속삭인 것 같다.
‘이런 건 잊어버려.’
그 속삭임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이런 끔찍한 기억은 잊어먹는 게 좋은 거야. 같은 목소리가 또 속삭여왔다.
‘이런 끔찍한 기억은 내가 가져갈게. 넌 행복한 것만 기억해.’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힘든 일은 모두 잊어버려도 된다는 소리야?
목소리가 다정하게 대답한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널 위해 모든 걸 해줄 수 있어.’
이중인격이요? 그딴 거 소설에나 나오지, 지랄하고 있어요. 씨발, 나한테 이중인격이 있어서 내 몸을 조종한다고 생각해보라고요? 너나 생각해봐요, 존나 소름 돋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해도, 내 오른팔에 남겨진 선명한 흉터를 부정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무너져 내린다.
“으읏, 흑..! 읏..! 흑!!!!”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오른 팔에 길게 남은 흉터가 더욱 확실히 보였다. 벌려진 입술을 뚫고 짐승 같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놈이 내게로 다시 한 번 손을 뻗어왔다. 놈이 흐느끼는 내 얼굴을 감싸 안고 자신의 품을 내어준다.
놈은 마치 주문이라도 걸듯, 숨조차 쉬지 않고 빠르게 속삭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 넌 네 상처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을 뿐이야. 그 나이의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듯. 도망치려 했을 뿐이야.”
“으읏, 흑! 으으으읏! 윽! 흐 흐윽..!”
나는 놈의 품에 고개를 묻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내 얼굴 꼴은 정말 웃긴 사진 콘테스트에 보내야 할 정도일 거야. 나는 오열을 삼키고 삼켜 끝내는 그저 사냥 당한 토끼처럼 신음을 흘린다.
놈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묻어나오고 있다. 놈은 날 안심시키겠다는 양 내 등을 쓸어내리며 계속 속삭인다.
“나는 네 도망처가 되고 싶었어. 네 아픈 기억, 힘든 기억은 모두 끌어 모아 내 품에 감춰두고 싶었어.”
“으읏, 으흑.. 읏! 흑!!”
“그녀를 죽인 건 네가 아냐. 나야.”
거짓말.
거짓말쟁이!!
“내가 그렇게 지키고 싶고 품어주고 싶었던 네게 상처를 주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 그 뿐이야. 그래서 내가 네 몸을 사용해 그녀를 죽인 거야.”
거짓말쟁이!!!!!!!!!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건 나야. 나는 그 배신감을 견딜 수 없었어. 그녀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른 것도 나고, 목을 조른 것도 나야. 당신은 그저, 내 잠재의식 속에 숨어서 잠자코 있었을 뿐이야.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그 날부터, 당신은 내 잠재의식 아래에 숨어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당신은 그저 존재했을 뿐이야.
내 몸을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나는 무너져 내린다.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처럼, 나는 산산이 부서져 내릴 뿐이다.
“..으읏, 흑.. 말도 안 돼. 이런 건... 말도 안 돼.”
"그래, 말도 안 돼."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싸는 나를 끌어안으며 놈이 대답했다. 놈의 음성은 이 와중에도 달콤하다. 씁쓰레한 레드 와인처럼 달콤한 음성이 심장에 닿아왔다.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놈이 한번 나를 힘껏 껴안은 후, 품에서 놓아준다. 그리고서는 놈이 몸을 일으켜 방 안에 있는 서랍장으로 다가가 첫 번째 서랍을 열어젖힌다. 그 안에서 놈이 과도 크기의 칼을 꺼내들었다. 깜짝 놀란 내가 놈을 바라보자 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처음 만난 날ㅡ 아니, 처음 감금당한 날 놈이 보여줬던 미소다. 고양이를 가장한 맹수의 미소.
‘놈’이 내 손에 칼을 쥐어준다.
“찔러.”
“....뭐?”
“찌름 끝나.”
개새끼.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씨발 새끼!!!!!!!!!!!!!!
“누굴?”
악을 쓰며 비명을 지르고 싶은 속마음과는 달리 내 목소리는 아주 조그맣다. 놈이 웃는다. 놈이 팔을 벌려 품을 내어준다.
“찔러. 죽여 버려.”
놈은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다. 병신같이 불쌍해보이게.
“...미친 새끼.”
“피하지 않을 거야. 걱정 말고 찔러.”
“미친 새끼!!!!!”
“널 위해 죽어도 좋을 만큼 널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놈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놈은 내게 진실밖에 말하지 않았다. 놈이 내게 거짓을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눈동자에서 나는 놈의 진심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놈은 나를 사랑한다.
이 세상에 이 자식보다 나를 사랑하는 녀석은 존재하지 않아. 그건 사실이야.
나는 칼을 고쳐 쥐었다. 칼 손잡이를 잡은 손만이 아니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비명을 지른다. 악을 쓰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