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上) (15/17)

15. [完]

(上)

어머니는 내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다. 강도에 의한 살인사건이었다. 집 안에 있던 사람은 어머니와 나, 단 둘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과 아버지가 고용한 고용인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나는 놀이방 안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거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나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내가 방 안에서 잠들어 있는 걸 범인이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아버지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네가 괜찮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라는 거짓말을 했다. 누나는 울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누나가 그렇게 펑펑 우는 건 태어나서 처음 봤다. 누나는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꿈을 꾸고 있다.

살짝 열린 장식장의 문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 어두워져 있었다. 그림자 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나는 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구름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흘러간다. 움직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장식장 안은 비좁았다. 입 안에 까끌까끌하게 먼지 맛이 닿아왔으나 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급하게 숨느라 종아리가 문 모서리에 긁혀 상처가 난 듯 따끔따끔 거렸다. 어린아이의 여린 살결이 쓰라렸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애써 외면한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저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잿빛 구름의 수를 센다. 

문 틈 밖으로는 구름이 아득하게 흘러가고 있다.

끝 모르고 구름만 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골목길을 걷고 있다. 낯선 길이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와 본 기억이 없는 길.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길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 꿈에서 본 그 길이구나. 

앞에는 그녀가 더러운 벽에 기대어 서 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성큼성큼 걸어간다.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죽인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하여 몽둥이를 들어 눈앞의 그녀를 강하게 내리쳤다.

뻐억!

피가 튀었다. 손, 얼굴, 죄다 적신다. 그 감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다.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휘청거리며 돌아서 나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인다.

“다... 당신..!”

외마디 비명을 지를 틈조차 주지 않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 날씬한 목을 두 손으로 비튼다. 여자가 나의 팔에 손톱을 박는다. 꽃 장식과 큐빅이 붙이고 반질반질하게 손질한 손톱이 나의 오른팔을 휘어 감고 할퀸다. 그 손톱자국을 타고 선연한 핏방울이 흘렀다.

여자의 마지막 반항이었다.

나는 돌아본다. 놈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비명을 지른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꿈에서 깬 후에도 나는 계속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것이 꿈의 연장인 양, 아니면 꿈마저 현실인 양 눈앞의 세계가 일그러져 있었다.

“괜찮아, 진정해! 진정해, 이재윤!!!”

비명을 지르는 나를 놈이 품에 끌어안는다. 내 몸은 식은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형광등에 눈이 부셨다. 나는 콧잔등을 찡그린다. 어제... 나는 꿈을 꾸고... 놈이 나를 안고... 나는 꿈에서... 나는 꿈에서............ 이런 빌어먹을 꿈이 어디 있어!!!!!

이런 좆같은 꿈이 어디 있냐고!!!!!!!!! 저 새끼랑 섹스 했더니 이제 아주 감정이입 시작했어?!?!?! 이런 좆같은 꿈이 어디 있어!!!!!!!!!!!!!!!

“흐읏, 으응! 윽! 으아읏, 아아아악! 으아아악!!!”

“괜찮아! 괜찮으니까!”

“으읏, 윽! 흐읏! 으으읏..!”

“괜찮아, 이재윤. 내가 곁에 있잖아. 내가 네 옆에 있어. ㅡ언제나처럼.”

언제나처럼?

이 바리톤의 속삭임을 듣고 나는 왜 안도하는 걸까. 이 자식 진짜 스토커잖아. 소름 돋아야 하는 거 아냐? 놈이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고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절박한 손길에 온 몸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놈의 품에 기대었다.

놈이 내 땀에 젖은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놈의 손길은 놈의 정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다. 놈이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물어왔다.

“악몽을 꿨나.”

“...으읏, 흑.. 읏.. 흑..!”

“울지 마. 다 괜찮으니까, 울지 마.”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건데? 당신이 좀 대답해봐. 당신은 도대체.... 도대체.....

놈이 나를 품에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나는 놈의 팔에 매달린다.

“이제 그런 악몽 따위 잊어버려. 넌 영원히 내 품에서 편안하게 지내면 돼. 다른 생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악몽이란 게 뭔데?

두루뭉술하고 찝찝한 이 꿈의 정체가 뭔데?

놈의 커다란 손이 내 눈가를 훔쳐낸다. 내 눈물은 이제 짭쪼름하고 쓰기만 할 거야. 너무 펑펑 울어서 이제 소금만 남았어. 놈이 다정하게 귓가에 속삭여왔다. 뜨거운 숨결이 귀에 닿아 오싹해졌다.

“네 어머니의 죽음은 네 탓이 아냐.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잊어버려.”

흐느끼는 날 안심시키기 위해 놈의 손이 끊임없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놈의 길쭉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놈의 목소리도 그렇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네 탓이 아니야. 넌 너무 어렸어. 장식장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어린 나이였어. 네 탓이 아냐.”

“으흣, 읏.. 읏..! 흑..!”

“잊어버려, 그러기 위해 내가 네 곁에 있는 거야.”

나는 흐느낀다. 온 몸에 힘이 빠져 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간힘을 써 놈의 팔을 뿌리친다.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 나는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바르작거리며 놈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당...신... 누구야.”

“............”

나는 헐떡이고 있고, 놈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한 달 전,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거야. 당신은 그때 내게 대답했어야 했어. 날 감금하고, 날 사랑한다고 부르짖고,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기 전에.... 당신은 내게 대답했어야 했어.

“당신.... 도대체 누구야?”

놈이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놈에게서 물러선다. 깨닫고 보니 내 팔의 족쇄는 풀러져 있었다. 놈은 무슨 생각으로 내 팔의 족쇄를 푸른 것일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뒷걸음질 치다가 뒤에 자리한 탁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다. 바닥에 쓰러진 나를 향해 황급히 달려온 놈을 뿌리쳤다.

놈은 쓰러진 내게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 역시 몸을 일으킬 생각을 안 한 채 놈을 올려다본다. 형광등에 눈이 부셨다. 역광이라 놈의 얼굴은 음영처리를 한 사진처럼 새까맣게 보인다. 그러나 난 놈의 눈동자 속 깊숙이에서 절망을 읽어낸다.

그 절망 속에 내가 비춰지고 있다.

“...엄마가 죽을 때 그 옆에 내가 있던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토할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돌아가실 때 장식장 안에 있었다는 사실.... 나 말고는 아무도 몰라.”

놈의 목덜미가 움칠 굳어진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섰다.

“나... 아직까지 당신한테... 이름.... 물어 본 적 없지.”

아아, 아아 제기랄! 아, 아 제기랄! 빌어먹을! 제기랄! 빌어먹을!!!!!!!!!! 뇌가 뜨겁다.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누가 내 뇌를 지글지글 자글자글 볶기라도 하는 듯.

나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물었어야 했어. 당신은 내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냐. 알려줄 수 없었던 거야. 그러니 이것만큼은 물었어야 했어.

나는 언제나처럼 문제점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던 거야. 나는 현실에 타협하고 싶었던 거야.

“당신....! 당신 이름이 뭐야!!!”

“........”

나는 놈이 뻗은 손을 뿌리쳤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벅차오른 숨을 헐떡인다.

“당신..... 당신은...........”

나는 오열한다.

“당신 이름은........ 으읏! 흑!”

“.......”

“흐...으... 흐으으!”

“.......”

“흐읏, 으으읏! 흑! 으으응!”

비통한 소리다. 나는 심장을 쥐어뜯을 듯 자신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나는 그 방처럼 하얀 나의 옷자락을 쥐어뜯는다. 입이 장식인 양, 내 다그침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놈은 그저 나를 바라본다. 놈의 눈빛이 처연했다. 

놈은 애원한다. 맹수의 얼굴을 하고.

“...걷지 마, 이재윤.”

나는 이제 끅끅 거리며 절정에 치달아 있다. 나는 자신의 긴팔 옷을 내려다본다. 어째서 이제까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이건 마치 소설의 우스꽝스러우리만큼 노골적인 장치와도 같다. 놈도 나도 긴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놈은 죽어도 옷을 벗지 않았어. 놈은 내 옷도 벗기지 않았어!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생각이었을까?

“걷지 마!”

놈의 다급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나의 오른쪽 팔을 걷어 올렸다. 소년처럼 마른 팔목에 선연한 붉은 손톱자국이 그린 듯이 선명히 보였다.

여자의, 마지막 저항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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