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7)

14

그 흉터에서 시선을 돌려 놈을 바라보았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놈의 홍채 속을 들여다본다. 내가 비춰진다. 그 안의 나와 마주한다.

누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놈이야, 나야?

내 위로 쓰러졌던 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놈의 팔은 뜨거운 찌개 탓에 벌겋게 부어있었다. 그러나 흉터만큼은 뚜렷했다. 놈이 한 걸음, 두 걸음, 느리게 뒤로 물러섰다. 서로의 눈을 여전히 마주한 채. 감추고 또 감췄던 흉터를 들킨 놈의 얼굴은 차라리 무덤덤해보였다.

입을 열었으나 작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이리저리 할퀴어져 만싱창이였다. 배에 힘을 주고 말을 하자 쉬어 탁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꿈...을 꿨어.”

“........어떤 꿈이지?”

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나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떤 꿈인지 놈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놈 역시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어떤 꿈인지, 놈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

혀가 바싹 말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침으로 혀를 축였다. 나는 나 자신이 놀라울 만큼 담담하다.

“당신.... 내 여자 친구를 죽였어?”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초점을 잃은 눈. 상처 입은 짐승처럼 겁에 질린 눈동자. 놈이 조용히 눈을 감아 동요를 감춘다. 눈을 감은 놈의 얼굴은 처연했다.  

“.........그래.”

팽팽히 당겨졌던 실이 끊어진 듯, 나는 그 순간 정신을 잃고 침대 위를 나뒹굴렀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하얀 천장과 눈부신 전등에 눈살을 찌푸려야했다. 너무 적응해서 잊고 있었어. 온통 하얗고 밝은 방이야. 낮도 없고 밤도 없는, 거짓말처럼 하얀 방. 새까만 옷으로 중무장한 놈과는 정말 다른 하얀 방.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방에는 김치찌개 냄새가 배지 않았다. 페브릿x라도 뿌렸나? 방 안의 공기가 생각보다 상쾌해 나는 눈을 감고 들이마셨다. 놈은 방 안에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온 몸이 시리고 뻐근하고, 무거운 족쇄가 거추장스러웠지만 신경 쓰지 않고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묻었다.

놈은 잠시 후 방으로 들어왔다. 놈은 말없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용히 물었다.

“왜 죽였어?”

“.........”

“대답해. 듣고 싶거든.”

내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가웠다. 놈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 여자가.... 나를 배신해서?”

“........”

“당신 스토커라더니, 진짜 무서운 놈이구나? 내가 이제까지 사귄 여자 친구의 이름을 하나하나 꿰고 있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던 거네? 사람까지 죽이고.”

“..........”

묵언수행이라도 하고 있어? 도 닦아? 이 새끼는 왜 대답을 안 해?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고 놈을 노려봤다. 놈의 얼굴 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봐ㅡ 씨발!!!! 저 새끼 얼굴을 보니까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가 뭐야? 비에 젖은 고양이마냥 애처롭고 나약해 보이는 이유가 뭐냐고!!!!! 봐!!!!!!

나는 지금 저 새끼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란 병신새끼는, 저 자식이 가엾고 가여워서 돌아버릴 것 같아.

불쌍한 새끼야. 어떻게 보면 저 자식도 나 때문에 인생 말아먹은 거야. 놈이 그 여자를 죽인 이유는 뻔하잖아. 나를 사랑해서!!! 나를 죽고 싶을 만큼 사랑해서!!!!!! ㅡ그런 게 사랑이야? 나를 배신한 여자 친구를 죽이고 나를 감금하고.... 

그런 게 사랑이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 혼자 알아내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대신 놈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풀어. 안 도망가. 풀어.”

내 차가운 목소리에 놈이 조용히 나를 쳐다본다. 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듯, 놈의 짐승처럼 검은 눈이 황망히 움직였다. 놈의 눈이 내 목덜미를 노리고, 난 신경질적으로 양 팔을 휘둘렀다.

“안 도망가니까 풀라고!!!!! 어차피 내가 도망치려고 해도 살인마 손에서 못 벗어나!!!! 풀어!!!!!!!!!”

이 말은 놈에게 한 방 먹인 게 분명하다. 놈의 눈동자가 일순 절망적인 빛을 띠었다가 잠잠해졌다. 대신 놈은 내 말을 따라 순순히 족쇄를 끌러냈다. 이렇게 손쉽게 풀러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 작은 열쇠로 이렇게 쉽게 열리다니. 한달 간 나를 괴롭혀왔던 무거운 족쇄를 풀자 양 손과 양 발이 너무나도 가벼워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반대로 자유의 무게가 몸을 짓눌렀다.

나는 풀려났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놈과 몸싸움을 해서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나는 허약한 몸 때문에 변변찮은 싸움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 때문이 아니다.

나는 들어야 할 것이 있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이 질문에 놈의 눈이 흔들렸다. 놈이 동요를 감추기 위해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배고프지 않나.”

“씨발 새끼!!!!!!”

하고 싶은 말이 겨우 그거야?!?!!?!

눈앞이 새빨갛게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무 열이 받으면 정말 눈앞에 뵈는 게 없다더니... 이런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놈이 족쇄를 풀기 전부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탁자 위에 있는 커다란 도자기를 손에 들었다. 도자기와 그 도자기에 꽂혀 있는 모조 꽃마저 하얀색이었다. 진저리가 나!!! 있는 힘껏 그 도자기를 바닥으로 던졌다. 그리고 놈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몸을 날려 커다랗고 잡음직한 크기의 파편을 움켜쥐었다. 너무 세게 움켜쥐어 날카로운 파편에 베였는지 피가 스며 나왔다.

나는 파편을 들고 놈 쪽으로 휘둘렀다. 다가오면 당장 찌르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뚝 뚝, 손에서 피가 흘러 손목을 타고 내려간다.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내 손목을 타고 흐르는 피가 더 신경 쓰이는 듯, 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놔, 이재윤. 내려놔!”

“나가고 싶어, 내보내 줘!”

“피 나잖아!! 그거 내려놓으라고!!”

저 개새끼가 어디서 기르는 애완동물 가르치는 말투를 써?! 나는 놈의 말을 아랑곳 않고 즈려 뱉듯 말했다.

“ㅡ밖으로 나가고 싶어. 나갈 거야. 안 그럼 찌를 거야.”

“......내려놔, 이재윤.”

이 악물고 최대한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는데, 역시 요지부동이다. 놈이 낮은 목소리로 애원하듯 속삭였다. 그러나 놈의 눈은 피가 흐르는 내 손만을 바라보고 있다. 알고 있어. 놈은 절대로 내게 해를 끼칠 수 없어. 내가 놈을 찌른다고 해도 놈은 내 손만 쳐다보고 있을 거야. 내 칼을 쥐고 위협하는 모양세가 무섭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을까? 그러나 이번에는 빵칼이 아니라 진짜 날카로운 도자기다. 나는 놈이 내 위협에 반응이 없자 반대로 도자기를 내 목 근처로 가져다댔다. 놈의 잘난 낯짝이 이제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놈이 다급하게 내 쪽으로 다가오려는 걸 저지했다.

“다가오지 마, 그을 거야.”

“이, 이재윤..”

놈이 말 더듬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배를 끌어안고 폭소했을 텐데. 나는 놈을 똑바로 노려봤다. 베인 손바닥이 아팠지만 꾹 참았다.

“그어버릴 거야. 내보내주지 않으면, 그을 거야.”

“이재윤!!!”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죽어버릴 거라고!!!!”

눈을 질끈 감고 악을 썼다. 현기증이 날만큼 고래고래 악을 썼다.

“...씨발!”

놈이 욕 하는 걸 본 것도 처음이다. 오늘따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봤다. 놈이 내 진심을 읽은 건지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내 뜻을 따르는 건 거기까지인지. 놈은 이를 드러낸 짐승처럼 잇새로 으르렁거린다.

“말했잖아, 이재윤. 넌 죽어도 여기서 못 나가.”

“왜?”

“.....내가 널 사랑하니까.”

진짜 미친 새끼. 발작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놈을 따라 미쳐버린 걸까.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사랑-? 지랄하네.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죽는 거야.”

진짜 죽어버릴 거야. 하고 결심하고 나는 도자기를 목에 가져다댔다. 도자기의 단면이 목에 닿아 그 차가운 무기질의 감촉이 느껴졌다. ‘자 이제 그을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앗, 하는 순간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을 노려 목을 그을 수는 없었다. 자살을 하려면 엄청난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더니, 난 내 목을 그을 강단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놈 역시 내가 멍청하고 소심한 찌질이란 걸 알고 있었겠지. 

내 손아귀에서 도자기 파편을 뺏은 놈이 내 손을 펼쳤다. ‘빌어먹을!’하고 욕을 토해낸 놈이 날 번쩍 안아 자신의 어깨에 들춰 멨다. 사방에 깔린 유리조각을 밟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놈은 성큼성큼 걸어가 나를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윽!!”

그리고 놈에게 따귀를 얻어맞았다. 눈앞이 노래지고 세상이 하얘졌다 검어졌다 난리가 났다. 놈이 내 팔을 붙잡고 다시 족쇄를 채운다. 한 달 만에 얻은 자유를 이렇게 쉽게 빼앗길 줄이야. 나는 침대에 발라당 뒤집어져 숨을 몰아셨다. 머리가 아프다.

놈이 내 위로 몸을 숙여 으르렁거렸다.

“ㅡ죽는다고? 네 어머니가 목숨 바쳐 살린 목숨을 그렇게 쉽게 버리겠다는 거냐?”

내 어머니가 목숨 바쳐?

“..당신이 뭘 알아?!”

“너보다는 잘 알고 있으니까 입 다물어, 이재윤.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그렇게 쏘아붙인 놈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내 입술을 덮쳐 왔다. 놈의 혀를 깨물어보려고 했지만 능수능란하게 파고드는 놈의 애무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숨을 고르는 사이 놈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아왔다. 나는 이번에도 움찔거리며 몸을 피하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놈 아래에서 버둥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어린아이처럼 울음이 복받쳐 올라 흐느꼈다.

“...나쁜 놈아, 나가고 싶단 말이야. 내보내 줘.”

“........”

“내보내 줘, 제발... 부탁이야. 날 사랑한다면, 내보내 줘.”

나는 울고 있었다. 줄줄 흐른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눈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룰 만큼 흘러넘친다. 아아, 아아. 목이 메어 나는 자꾸만 울었다.

“부, 부탁이야....”

놈이 상처받은 눈을 했기에, 더욱 눈물이 나왔다.

혹시 기르는 개가 눈물 흘리는 거 본 적 있는 사람? 나는 본 적 있는데. 저 놈의 개가 정말 슬퍼서 우는 걸까, 아니면 아파서 우는 걸까. 강아지의 망막을 감싸고 차오른 눈물을 보며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놈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놈이 내 목을 조를 듯 내 멱살을 붙잡는다. 힘을 주고 싶다는 듯, 눈앞에 있는 먹잇감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놓고 싶다는 듯, 놈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흔들린다. 그러나 놈이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재윤.”

“.........”

놈이 고개를 숙인다. 따라서 어깨가 숙여지고, 놈이 내 위로 웅크렸다. 건장한 어깨가 주저앉아 있었다. 놈이 작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딱... 한 번이면 돼. 사랑한다고 말해줘.”

“........”

“딱 한 번만.”

하얀 방 안. 혼자만 동떨어져 깜장머리 깜장 옷. 알고 있는데. 나는 분명 알고 있는데. 저건 맹수야. 고양이인 척 놀음을 하는 맹수. 방심하면 단박에 목덜미에 이를 박고 나를 잘근잘근 먹어버릴걸?

ㅡ이미 먹혔잖아 병신아. 잤으면 먹힌 거지?

뇌가 뜨겁다. 컴퓨터 시스템 과부하인 마냥. 나는 어쩌다가 납치당했더라? 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교수님을 만나서... 그리고.. 찌릿- 뇌를 관통하는 고통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알고 있어. 저 녀석은...... 그치만, 가엾다. 가여워 미칠 것 같아. 불상해. 저 녀석이 불쌍해 미치겠어.

“...거짓말이라도 좋아.”

놈의 절박한 숨소리. 놈의 절박한 눈.

“........사랑해.”

ㅡ이거, 정말 거짓말이야?

이 대답을 끝으로 나는 놈과의 파도 속에 휘말렸다. 격정적으로 놈이 나를 안았고 나는 놈의 품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파도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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