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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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뱉어낸 말에 놈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훗, 정말이지. 바보로군.”

“뭐야?!”

“너에 대해 내가 모르는 건 없어.”

발칵 화를 내는 날 향해 놈이 별 괴상한 걸 자신 있게 단언한다. 잘 빠진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며 ‘뭐 이런 것쯤이야’하고 중얼거린다. 그리고선 자랑하듯 하나하나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네 이름, 나이, 성별... 은 당연한 건가. 그리고 취미, 기호.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하?”

“잠 잘 때는 어렸을 때부터 입은 잠옷까지 꼭꼭 챙겨 입고 잔다는 것, 새우잠 자는 거... 뭐가 또 있나. 아, 네가 이제까지 사귄 여자 친구들 이름도 줄줄 꿰.”

얼이 빠져 입을 헤 벌린 내 입술을 검지손가락으로 톡, 치며 놈이 입꼬리를 잔뜩 말아 올린다. 남자답게 커다란 손인 주제에 뼈대가 곧고 예쁜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으로 내 입술의 라인을 따라 지긋이 훑고 지나간다.

“이재윤. 난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네 머리끝 부터 발끝 까지, 어쩌면 네 자신보다도 난 널 잘 알아.”

“...하....”

“네 어린 시절도 빠짐없이 알고 있어.”

“...미, 미친새끼.”

“아아, 그런가. 말 그대로 너한테 미친놈은 맞지.”

그렇게 속삭인 놈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정말 즐겁다는 듯한 얼굴로. 그런데 그걸 보자 나는 정말이지, 이 자식에게 감금당한 후 며칠 중 놈이 제일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도대체 저 망할 스토커 자식은 대체 몇 살 때부터 날 스토킹한 걸까? 도대체 몇 년을?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농담이 아니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에게 스토킹 당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소름 끼치고 무서운 일이었다니. 게다가 머리가 단단히 돌아버린 그 스토커에게 납치 감금까지 당했다. 날 발가벗긴 듯 잘 알고 있다는 상대 앞에 온몸이 결박되어 침대에 묶여 있는 걸 상상해보라.

토할 것 같았다.

입술도 달싹이지 못할 만큼 겁이 나고 끔찍해서,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으로만 놈을 쫓았다. 그런 날 발견한 놈이 ‘쯧’하고 성마르게 혀를 찬다.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억지로 다정한 얼굴을 한다.

맹수 주제에.

“아아, 겁을 주려는 건 아니었는데... 넌 초식동물처럼 구는 경향이 있어.”

왜, 그래서 물어뜯고 싶냐? 넌 빌어먹을 육식동물 같아. 

나는 속으로 욕설을 꼭꼭 씹어 삼켰다. 놈은 샹냥하게 대해주는 척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놈도 그걸 알고 있다. 머리를 흔들어 놈의 손을 뿌리치자, 뿌리쳐진 자신의 손을 흘끗 내려다본 놈이 픽, 실소를 흘렸다.

“뭘 그렇게 무서워하고 그래?”

“...미친새끼. 끔찍해 하는 거야.”

“흐음?”

“네가 정말로 역겹고 토할 것 같이 느껴진다고.”

이건 놈에게 한 방 먹인 게 틀림없다. 잘도 태연하고 여유만만한 얼굴을 지껄이던 놈이 입을 꾹 다문 것이다. 어린 아이가 삐쳐 오리주둥이를 하고 입을 다무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하지만 이내 회복한 듯, 놈은 짧게 잘린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충격 받거나 심란한 일이 있으면 머리를 만지는 습관이 있는 듯싶다. 기분이 상한 고양이과 짐승들이 털 손질을 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역겹다니. 너무 하잖아?”

“ㅡ역겨워.”

“........”

“역겹고, 토할 것 같아.”

일부러 우습다는 듯 장난스럽게 말한 놈의 노력을 무시한 채 나는 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난 천성이 기가 약한 남자다. 놈의 잘생긴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놈의 다친 짐승 같은 눈동자가 분노한 듯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분노가 아니라 당혹스러운 감정이 섞여 있을 터였다. 

도저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날 물어뜯어 죽여 버리고 싶다는 듯한ㅡ 그런 표정이었다. 

당장 놈의 이빨 사이에서 짓이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놈은 내게 이를 드러내는 대신, 악물은 잇새로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래봤자 널 이 작은 방에 가둔 건 나야. 넌 죽어도 나한테서 못 벗어나.”

방 안이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내 귀에는 너무나도 똑똑히 들렸다. 

그니까 왜 ‘죽어도’냐고, 미친놈의 새끼야.

욕설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말을 고른다. 놈에게 더 상처를 줄 수 있는 말. 이런 말도 안 되고, 세상 모두가 미친 것 같은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말.

그런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놈과 눈을 똑바로 맞추고 천천히, 또박또박, 친절한 척, 제대로 들으라는 듯 말했다.

“죽어도.”

“......”

“너 같은 끔찍한 새끼를 사랑하게 되는 일 따위 없어.”

이건 착각이 아니다. 이 말에는 천하의 놈도 숨을 삼켰다. 할 말을 잃은 건지, 이 선언의 충격이 너무 큰 건지. 놈은 조금 휘청이는 듯 하더니 손으로 눈을 가린다. 나도 참 바보 같지. 그 순간 왜 나는 놈이 우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걸까. 놈의 넓은 어깨가 축 쳐져 있었기 때문일까. 완벽한 직모인 듯 빳빳이 선 놈의 스포츠머리마저 축 쳐진 듯 보였기 때문일까.

눈을 가렸던 손을 내렸을 때, 놈은 평소처럼 오만하고 당당한 맹수의 눈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놈처럼,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놈처럼, 그런 얼굴로 돌아와 있었는데 말이야.

놈은 씨익 웃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를 드러내고 있다.

“내기 할까?”

“.....무슨 뜻이야?”

“난 ‘네가 나랑 사랑에 빠진다.’에 걸지.”

미친놈. 하고 씹어뱉듯 화답해주자 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완연한 짐승의 미소다.

“왜? 이쪽은 너에 대한 건 프로야. 몸은 99% 넘어왔으니 마음만 넘어오면 되는 거잖아?”

“ㅡ씨팔, 누구 몸이 넘어왔다고!!”

“넘어왔잖아?”

너무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말하는 터라 반박도 못하겠다. 놈이 놀리듯 내 턱을 훑는다.

“안 그럼 나한테 당할 때 왜 그렇게 좋아했지? ㅡ응? 대답해 봐.”

“씨발, 안 좋아했어!!!!!”

“워워, 거짓말. 네가 어떤 식으로 자위하는 지도 알고 있어.”

그 적나라한 표현에는 정말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내가 말을 잃고 혀를 깨물고 있자 놈이 즐거운 듯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손길은 열대지방 맹수답지 않게 따스하다. 나는 놈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거, 건드리지 마!”

“자. 사실은 아까부터 무척 졸렸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말마따나 사실은 아까부터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 말했듯이 수면제가 섞여 있을 음식은 먹고 나서 삼십분 후까지 깨어있으면 용한 거다.

“ㅡ귀엽게 굴어. 나도 최대한 상냥하게 굴어주고 있잖아?”

그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놈이 내 눈을 억지로 감긴다. 그게 어디가 상냥하다는 거야?! 사이코 스토커 새끼! 

놈의 커다란 손이 눈 위를 덮어 왔다. 그리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긴다. 

한계다. 사실은 졸려. 졸려 미치겠어.

내가 어떻게 마스터베이션을 하는지도 안다는 새끼 곁에서 잠에 빠져 들다니, 이건 말도 안돼. 하지만 내 눈을 덮은 놈의 손이 빛을 차단해줘서 아늑한 기분도 들고, 적당한 온도로 맞춰진 방안의 공기도 선선하다. 잠... 자는 거냐 씨발, 나란 놈은......

잠에 빠져들기 직전, 이마에 촉촉한 것이 닿아 왔다. 놈의 입술인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사랑하고 있어, 그건 거짓말 아냐.”

꿈결에 그 목소리가 어쩐지 가련하게 느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도 병신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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