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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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결코 재밌게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널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널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널 사랑해.’

이 따위 정신 나간 고백을 면전에 대고 하는 미친놈이라니. 

나는 필사적으로 그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결과 놈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섰지만 그것 뿐. 그 후로 어떠한 진전도, 그렇다고 후퇴도 없었다.

나는 놈의 정체에 대해서도, 여기가 어딘지도, 날 붙잡아 온 목적에 대해서도,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답을 알아낼 수 없었다. 아, 한 가지. 놈의 성적 취향이 병신이라는 것, 이 새끼가 남자에 미친 호모 새끼라는 사실 하나는 알게 되었다.

거리낌 없이 내게 키스를 퍼부을 때에도 기겁했지만, 놈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은 것이다. 내 허벅지를 억지로 밀어젖혀 그 사이에 손을 대고서는,

“귀엽게 굴어, 이재윤ㅡ 누누이 말하지만 난 착한 놈이 아냐.”

이런 식의 난폭한 협박을 해댔다. 그러나 그런 협박보다도 납치범 자식의 입에서 불린 내 이름에 딱딱하게 굳어야 했다. 내 허벅지를 단단히 붙든 그 손을 꽈악, 있는 힘껏 붙들고 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이 질문에 내 몸에만 관심을 갖던 놈의 시선이 흘끗, 하고 내 얼굴로 향했다. 

그러나 이내, 놈은 고양이과 짐승이 완전히 싫증난 물건을 쳐다보는 듯 한 눈빛으로 되묻는다. 

“그런 게 중요한 문제던가?”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으므로, 나는 그 여유로운 목소리에 더 약이 오르고 말았다.

“씨팔, 중요하지 그럼 이 새끼야!!! 너 내 스토커냐!?!? 이 세상에 김태희처럼 예쁜 여자가 널렸는데 씨발, 왜 같은 남자를 스토킹 하고 지랄이야!!!!”

“ㅡ닥쳐.”

“이 미친 스토커 새끼야- 너, 너 이 새끼-!! 변태 호모 새ㄲ-!!!”

콰악!

“입 닥치라고 했지, 이 재윤. 죽여 버리기 전에, 입 닥쳐.”

사자가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듯 놈의 손아귀에 멱살을 붙잡혔다. 날 자기 근처로 끌어당겨 바리톤의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그 부드럽게 속삭이는 음성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잘못하면 물어 뜯긴다.

또다시 꼼짝 못하고 졸아들은 내가 소심하게 시선을 피하자 놈의 잘생긴 입술에 미소가 돌아왔다. 피식, 놈의 입술을 타고 허파에서 바람 빼는 듯 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도 아픈 짓 당하기 싫을 거 아냐? 착한 아이처럼 굴어 보라고.”

“......”

“그래, 그렇게.”

아픈 짓? 어떤 아픈 짓? 때릴 텐가?

나 자신이 돌아봐도 놀라우리만큼 나는 순진무구했다. 그러나 긴소매인 윗도리와는 다르게 핫팬츠 마냥 짧은 반바지(이 무슨 악취미인가)를 끌어내렸을 때에는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놈은 온순한 덩치 큰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마치 순박하게까지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 턱에 손을 올린다.

“사랑해.”

“........미친 새끼.”

나는 마음 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욕설로 화답했다.

그 하얀 방에는 눈이 아플 만큼 환한 형광등이 아침이고 밤이고 켜져 있어 날짜를 알 수 없다. 

오늘이 며칠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며칠을 여기서 놈과 같이 보낸 건지, 아니면 겨우 몇 시간을 놈과 같이 보낸 건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난 원래 시간 감각이 없는 녀석이었고, 창문조차 없는 방 안에서 정신이 나가버린 짐승 한 마리와 갇혀 지내다 보면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아지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는 몇 끼고 몇 끼고 식사를 했다. 처음 며칠 놈은 죽만 들고 왔다. 소화를 돕기 위해서겠지. 누가 하는 것인지 알수 없었으나 사실 그 죽이 맛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가 고팠던 탓만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그럼에도 납치범이 주는 음식 따위에 의탁하고 싶지 않았던 내가 완강하게 버티며 거부하면, 놈은 또다시 잡아먹을 기세로 덮쳐왔다. 

“고집을 부리는 군. ...먹여주는 편이 더 좋나?”

“미친 새끼, 헛소리 하고 있! ㅡ읍! 으읍!!”

“뭐, 상관 없어. 계속 굶다보면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음식을 찾을테니.”

입술을 덮쳐와 억지로 죽을 삼키게 하며 놈이 즐기는 듯한 기색으로 희희낙락한 꼴을 보였기에 그 다음부터는 내가 숟가락을 쥐고 직접 퍼먹는 편을 택했다. 

말마따나 인간의 인내심이란 짧았다. 그 뒤로 바로 며칠 뒤 나는 남자가 시키기도 전에 그릇 밑바닥을 핥을 만큼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아, 한 가지 더. 

이상하게도 그 죽을 먹으면 더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착각이 아니리라. 놈이 무언가 안정제건 마약이건 집어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식사를 끝마치면 언제나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졸음이 쏟아졌고 나는 곧바로 잠들어 한 참 후에야 깨어나고는 했으니까.

깨어났을 때의 시야에 제일 먼저 잡히는 건 언제나 놈의 얼굴이다. 

다정함을 가장한 커다란 맹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짓는다. 잡아먹기 전에 보여주는 관용이냐? 그 따위 것에 속을 리 없는데도 놈은 다정한 척을 즐겼다. 

그리고 깨어난 내 몸을 놈은 어디고 마음에 드는 곳을 만족할 때까지 만져댔다.

정신 나간 새끼. 남자가 똑같은 남자 몸을 만져서 뭐가 좋다고! 그렇게 남자 좆이 만지고 싶으면 마스터베이션이나 해, 이 개새끼야!

그러나 나는 묶여있는 상태였고, 막 깨어나 노곤한 상태였다. 변명이라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쏘아붙여 보지도 못하고 놈이 원하는 대로 여자처럼 신음하며 놈의 손에서 놀아난 것이다. 마치 놈은 내가 어디를 어떻게 원한다는 걸 훤히 꿰뚫어 보는 듯, 아니, 나보다도 더 잘 안다는 듯 만져왔다.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딥키스. 자신의 혀를 내 목구멍까지 깊이 찔러 넣는 딥키스를 하며, 놈은 배부른 고양이과 맹수의 얼굴을 한다.

이런 짓을 당한 후에는 또 다시 노곤해져 다음 음식이 나올 때까지 다시 잠에 빠져든다. ㅡ씨팔,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방도가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고분고분히 잠에 드는 어린애처럼 계속, 계속, 놈이 원하는 대로.

이런 생활을 했으니 오늘이 며칠이고 과연 얼마나 놈에게 감금당했는지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저 ‘식사’를 한 횟수를 세자면... 그래, 적어도 일주일은 넘게 놈에게 감금당했으리라.

약 기운인지, 온 몸의 힘이 빠져 나른하고 노곤한 가운데 퍼뜩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이렇게 놈에게 감금당한 채로 포기하고 있어도 되는 거야? 왜 집에서는 경찰을 풀어 날 찾지 않는 걸까? 아냐, 내가 이렇게 오래 납치되어 있는데 찾지 않을 리 없어... 아무리 내가 성인이 됐다고 혼자 자취한다고 손 쳐도 설마 내가 사라진 걸 모를까? 아냐, 그래도 나도 친구가 있는데. 여친도 밥해주러 집에 가끔씩 들리니까 내가 없어진 걸 모르진 않을 거야, 응? 

제기랄!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왜 나를 못 찾는 거지? 아예 내가 사라진 걸 알지도 못하는 거 아냐? 나 여기서 평생 썩어야 해?!

오만가지 질문들이 머리속에서 한데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알고 싶고, 가장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하나였다.

저 망할 새끼는 도대체 누굴까? 누구길래.

도대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언제야 얻을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달칵. 

너무 하얘서 더 이상해 보이는 방문이 열리고, 놈이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문 밖에 대체 뭐가 있는 지 이번에도 확인하지 못했다. 일부러 보여주지 않기 위해 감추기라도 하듯 너무 잽싸 눈이 따라잡지 못한다. 

그보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갓 구운 크로아상과 버터를 바른 토스트였다. 향기로운 크림 스프와 함께다.

“식사다.”

배 속에서 힘차게 뿜어내는 듯 한 깊은 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이며 놈이 식사를 내밀었다.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라서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자 나는 더 이상 자존심 세울 것 없이 그 식사를 받아 들었다. 감금되어 며칠인지 모른다고 해도 배 시계는 정확했다. 제때 배가 고프니까. 말마따나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었다. 

놈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빵을 입으로 쑤셔 넣고 보는 내가 우스웠는지, 놈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젠장맞게도 영화배우처럼 멋있는 웃음소리다.

“기다렸나? 아주 급하군.”

ㅡ미친놈.

외모도 갑이겠다, 키도 크겠다, 몸도 좋겠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성우 뺨치겠다. 지나가는 어떤 여자를 붙들어도 당장에 ‘OK’사인이 떨어질 미남자가 왜 나에게 집착을 하면서 감금까지 하는 걸까. 또라이 새끼. 날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주 체하겠다 씨발. 매번 먹을 때마다 사랑스러워 돌아가시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아무리 나라도 비위가 거슬린다고, 이 소름끼칠만큼 미친놈아!

애써 그 시선을 피하며 스프를 떠먹는데, 놈의 커다란 손이 뻗어와 내 볼을 훔친다. 그리고선 볼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내 그걸 자신의 입으로 옮겼다. 순간 사례가 들려 성대하게 기침을 한 나는 콜록 거리며 놈을 째려보았다.

“...미친... 새끼!”

“푸핫, 입 험하기는. 뭐, 귀엽지만.”

네 놈이 날 귀엽게 보건 말건 그다지 관심 없어! 하지만 제발 그런 역겨운 짓은 하지 말아줘. 

나는 아직 다 먹지 못한 tm프를 끝낼 마음도 들지 않았기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근데 이 새끼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마냥 날 포동포동 살찌워 잡아먹기라도 하려는 건지 내가 음식을 남기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한다.

“내가 남기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

“으읍!”

아니면 그저 나한테 변태처럼 키스를 하고 싶던지. 언제나와 같은 수법으로 놈은 내가 스프를 끝까지 비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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