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7)

감금되었다.

'놈'은 굶주린 맹수처럼 흉폭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미친개한테 물린 셈 쳐."

ㅡ미친 새끼. 이게 어디가 미친개한테 물리는 것과 같아? 그리고 미친개한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린다는 데, 미친놈에게 물리면 뭐에 걸리는 건데?

1

정신이 들었을 때, 시야에 가장 먼저 잡힌 건 하얀 방.

막 페인트칠을 하기라도 한 듯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은 새하얀 방이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방은 채워진 가구들마저 하얀색이었다. 방에는 창문이 없는 대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종이가 들어있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액자 옆으로 침대에서 가장 먼 구석에 하얀 문이 있다. 굳게 잠긴 손잡이마저 하얀 페인트칠이 된 상태로, 소름끼칠만큼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든 방이었다.

그 광경을 맞닥뜨리자 순간 핑그르르, 모든 것이 흔들리고 현기증이 덮쳐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온몸의 힘이 하얀 액체가 되어 흘러내린 듯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없이 나른했다.

ㅡ평온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나른함은 아니다. 

몸이 무겁고, 눈꺼풀조차 들어 올릴 수 없다. 흰 깃털 이불의 감촉은 부드럽고 코끝에 어쩐지 약냄새 같은 게 맡아져 왔다. 어지러웠다.

여기는 어디지?

입안 쪽에서 단내가 밀려왔다. 토하듯이 ‘여기는...’'하고 중얼거린 후에야 자신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마구 비명이라도 지른 후처럼 성대가 깔깔하고 구토기가 차올랐다. 입을 틀어막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찰캉- 찰캉-

낯선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눈을 돌려 팔에 감긴 팽팽하게 잡아 당겨진 쇠사슬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뭐야ㅡ 이게? 만화에서 자주 보던 것 같은데... 

차가운 금속 족쇄가 차인 자신의 하얀 팔목은 우람한 것에 감싸여 있어 그런지 더 가녀리고 연약해 보였다. 울긋불긋 상처가 난 팔목의 쓰라림이 그제야 전해져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아, 머리가 아프다. 깨져버릴 것 같아.

“으으... 으읏....”

도대체ㅡ 이게 무슨 꼴인거지. 얼굴을 감싸안을 수도 없을만큼 짧은 족쇄라니. 침대에 구속구가 매여있다. 침착하려고 애쓰며 이불을 들어 올렸다. 제발, 제발ㅡ

하ㅡ! 맙소사!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 여자아이마냥 짧은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하얀 다리마저 족쇄에 구속되어 있었다. 

아주 사지를 묶어놨구만! 욕지기 차올랐으나 간신히 집어삼켰다.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길이로 묶여 있는 터라 누운 채로 바지락거렸다.

뭐, 뭐야 이게? 

덮쳐온 패닉에 온 몸이 덜덜 떨리는 것만 겨우 참았다. 

납치? 성인 남성인 날, 납치? 게다가 이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악취미적인 구속구는 뭐란 말인가?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난 왜 이 꼴이야? 아프다. 머리가 아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술이라도 진탕 마신 걸까? 어제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나는... 교수님과 면담을 갖고... 여자 친구랑 헤어진 후에 집으로 가는 중에....

“윽, 으.. 윽..”

핫, 하고 이를 깨물었다. ‘찌릿’하고 덮쳐온 아픔에 눈알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만큼 극심한 고통이 뇌를 짓눌렀기 때문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으나 닿지 않아 나는 애꿎은 베개잇만 물어뜯었다. 침으로 축축이 젖은 그것에서 마른 먼지 맛이 났다.

ㅡ달칵.

절대 열리지 않을 듯 이질적으로만 보이던 문이 열린 게 그 순간이다. 벌레처럼 몸을 말고 있던 내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다시 '달칵'하는 조용한 울림과 함께 닫혔지만, 대신 사람 한명이 들어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는 190cm는 훌쩍 넘어보일 만큼 덩치 큰 남자였다. 곰처럼 큰 덩치라기보다는 날렵한 맹수의 체구다. 그래, 동물로 치자면 흑표범 같은. 아마 그 검은 티셔츠 아래에는 꽉 짜인 근육이 있을 터였다. 위압감을 느끼게 할 만큼 당당한 체구였다. 그만큼 몸짓에서도 여유가 묻어났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날렵한 시선이 사냥감이라도 보듯 내 미간을 노린다. 

하얀 방과 대조 되듯 시선을 사로잡는 새까만 머리칼과 새까만 눈. 검은 티셔츠와 검은 면바지. 입가에 걸린 고양이 같은 미소.

“마침 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

배 안 쪽에서 내듯 허스키하고 무거운 그 음성은 여성이 들었다면 그 목소리만으로도 환호할 만한 것이리라. 

따끈한 죽이 담긴 접시를 하얀 탁자 위로 내려놓으며 ‘놈’이 미소 지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미소에 순간 착각하고 ‘예ㅡ 덕분에 푹 잤습니다.’하고 대답할 뻔 했다. 하지만 나는 내 팔목을 구속한 족쇄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시선만으로 죽일 듯 노려보자 어깨를 으쓱인다. 

“죽이 식겠군. 계속 정신을 잃은 채였으니 시장할까봐 급하게 솜씨를 좀 발휘해 왔는데.. 맛있게 먹어 주겠지?”

“......”

“소화가 어려울 것 같아서 다른 반찬은 가져오지 않았어. 원한다면 바로 가져다주겠지만... 아, 떠먹여 줘야 하나? 족쇄가 많이 짧은가?”

싱긋, 눈꼬리가 휘어져 덩치 큰 개 마냥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가 웃는다. 그것이 연기라는 건 어떤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거다. 세포 하나하나가 느끼고 위험신호를 보낸다. 놈은 친근하게 다가와 사지가 묶여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족쇄에 묶여 있어 뿌리칠 수는 없었으나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흐음, 예쁜 이마에 생채기가 났군. 흉터가 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 누구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핥으면 나으려나?”

“뭐야, 당신!! 내 말 안 들려?! 이게 무슨 짓이ㄴ..!!”

할짝

놈의 혀가 이마에 닿았다. 얇은 피부가 벗겨졌을 이마의 작은 상처에 축축하고 말캉하며, 어지럼증을 유발할 듯 뜨거운 혀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닿았다 떨어진다. 그 감촉이 온 몸의 세포를 하나하나 깨운다. 겨우 작은 부위에 닿았을 뿐인데 몸 전체가 반응했다.

“헉- 하앗, 미, 미친...!! 으아악! 으악, 이거 풀어!! 미친놈아, 이거 풀라고!!”

발광하듯 짧은 족쇄에 묶인 팔을 휘둘렀다. 찰캉 찰캉 찰캉 찰캉!!! 시끄러운 소리만 날 뿐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풀어-!" 

콰악!

그런 내 양 팔목을 남자는 순식간에 붙잡아 내리 누른다. 팔목을 억누른 그의 힘이 느껴졌다. 같은 남자로서 무력감을 느끼게 할 만큼 억센 힘이었다. 반항할 수 없다. 남자가 내 위에 엎드린 채 귓가에 대고 속삭여 온다. 그 목소리가 차라리 감미롭게 느껴졌다.

“어이, 귀엽게 굴어. 귀엽게 굴면 나도 부드럽게 대해줄게.”

“하, 하앗.. 하.. 헉, 미, 미친새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나, 남자를 감금해 놓고 이게 무슨...!”

다시 비명을 지르려는데, 남자의 주먹이 퍼억! 벽을 때렸다. 벽이 부셔진다거나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진 않았지만 그 속도와 주먹의 매서움에 나는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놈은 마치 기르는 개를 신문지로 바닥을 때리며 가르치듯 벽을 때린 것이다.

“시끄럽게 굴지 마. 소리도 못지를 만큼 귀여워 해주기 전에.”

그런 난폭한 말을 한 주제에, 졸아들어 눈으로만 그의 모습을 쫓는 나를 보자 웃음이 났던 걸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첫눈에 호감을 가지게 할 듯 연예인처럼 잘생긴 남자는 잘생긴 입술을 천연덕스럽게 말아 올린다.

"바보 같긴. 뭘 그렇게 무서워하고 그래?"

고양이를 가장한 맹수의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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