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순애는 졸린 눈을 비비며 또박또박 이력서를 썼다.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가져온 몇 푼의 엔화를 환전해 허름한 사글셋방을 얻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향이라 해도 연줄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처녀가 갑자기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시 공장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일문이 유창하면 고향에 돌아가 무역 회사 여급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냐던 호시의 말을 기억해 낸 순애는 용기를 내어 작은 전자 기기 수입 회사에 원서를 넣어 볼 생각이었다.
춥고 졸음이 살살 오자 갑자기 따뜻한 드립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처음엔 쓰디써서 제대로 마시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인이 박였나… 자꾸 생각이 나네….’
어느새 인이 박여 자꾸 생각이 나는 건 드립 커피뿐만이 아니었다. 순애는 제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액자에 시선을 보냈다.
그건 떠나오던 날, 그의 서재 책상 위에서 액자째 집어온 것이었다. 그의 책상 한구석에 놓인 결혼사진을 봤을 때 순애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던가. 그래서 이제는 다 끝난 꿈이란 걸 알면서도 순애는 그 사진을 가져와 제 책상에 세워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부터 방 공기가 싸늘했다. 어느새 방바닥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무래도 연탄이 꺼진 모양이었다. 순애는 오스스 몸을 떨며 연탄불을 살피러 부엌으로 내려섰다. 역시나 연탄불은 하얗게 죽어 있었다. 난생처음 써 보는 이력서에 진땀을 빼느라 연탄 갈 시간을 깜박 놓친 것이다.
‘에휴… 정신도….’
그녀는 매서운 초겨울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집 뒤 켠 창고로 종종걸음 쳤다. 온종일 흐리더니 음산하도록 바람이 찼다.
연탄집게로 연탄 하나를 찍어 온 순애는 부엌 아궁이에 연탄을 밀어 넣고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오들오들하는 손으로 신문지에 불을 붙여 연탄 위에 올린 후 다시 번개탄을 올리자 불씨가 타닥타닥 타오르더니 곧 파랗고 빨간 불의 혀가 널름거리며 연탄을 집어삼켰다. 순애는 그새 차가워진 손을 비벼댔다. 그때였다.
어렴풋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막 방으로 올라가려던 순애는 몸을 굳히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바깥은 바람 몰아치는 소리뿐이었다.
‘잘못 들었나….’
그때 다시 한번 선명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야심한 시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미 밤 아홉 시가 지난 시간, 남의 집에 올 만한 시간은 아닌 데다 그녀에겐 마땅히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누, 누구세요?”
순애가 연탄집게에 손을 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바깥에서는 한참 말이 없었다. 겁을 왈칵 집어먹은 그녀는 연탄집게를 잡은 손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나야.”
꽉 잠긴 목소리. 순애의 손에서 연탄집게가 툭 떨어졌다. 그녀는 제 귀를 의심했다.
‘이건 바람의 장난이다. 파도의 장난이다. 환청이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을 부정하듯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까보다 조금 더 거칠고 성마른 손길이었다.
“나야.”
머리가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눈앞이 새하얗게 아득해졌다. 그러나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달려 나가 떨리는 손으로 부실한 현관의 잠금쇠를 풀었다.
헐거운 문짝을 열자 날 선 바람이 왈칵 밀려들어 겨우 따뜻해진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조차 느낄 수 없었다. 시선이 고정된 곳에 거짓말처럼 남자가 서 있었다. 순애는 유령이라도 본 듯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당신….”
남자가 거친 칼바람이 되어 사납게 그녀를 덮쳤다. 마치 그대로 여자를 할퀴듯, 잡아먹듯 그녀를 품 안에 쓸어 담았다. 순애는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차라리 이대로 제 몸이 산산이 부서지기를 바랐다. 진주 같은 눈물이 그녀의 고운 눈매에서 퐁퐁, 끊임없이 솟았다.
“여, 여보….”
“알아. 다 알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마.”
호시는 순애를 가볍게 둘러업더니 부엌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장판에 군데군데 벽지가 벗겨진 단칸방은 두 사람이 들어가자 터질 듯 빠듯했다. 살림이라고는 책상 겸 식탁으로 쓰는 작은 소반 하나와 이불 한 채뿐, 단출하다 못해 보잘것없을 지경이었다.
호시는 순애를 그 허름한 방바닥에 그대로 쓰러뜨리고 그녀를 짓이기듯 찍어 눌렀다. 그리고 눈물에 젖은 여자의 얼굴을 꽉 쥐어 잡고는 제 호흡을 찾듯 여자의 입술을 찾았다.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제 입술에 살짝 닿는 순간, 피가 온몸을 열두 바퀴 돌고 재주넘기까지 하다가 아래로 가득 몰렸다. 눈이 뒤집힌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그는 이성을 잃고 그녀의 입술을 찢어발기듯 콱 물어뜯었다.
“앗!”
여자의 얼굴이 확 찡그려지더니 붉은 석류 같은 입술이 활짝 열렸다. 그는 기갈이 든 사람처럼 그녀의 입술에 달라붙더니 제 혀를 깊숙이 밀어 넣고 입안의 붉은 보석들을 알알이 발라먹었다. 여자의 발그레한 얼굴에 곧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오늘 밤 그녀의 입술을 핥고 빨아 아주 다 없애버릴 기세였다.
“하아… 하아….”
새 연탄을 지핀 방바닥은 그야말로 지글지글 끓었다. 호시는 여자를 잠시 놓아주고 제 겉옷을 벗어 던졌다. 가쁜 호흡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는 순애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여, 여보….”
순애가 애원하듯 입을 열었다.
“고작 여기야?”
“…….”
“날 버리고 가려면 더 꼭꼭 숨었어야지! 더 그럴듯한 데로 가서 더 잘 살았어야지!”
순애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남자가 제 아랫입술을 콱 깨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못할 거라면 날 믿었어야지.”
“하, 하지만… 나 때문에 당신 인생이 망가지면 난….”
남자의 잇새에서 어이없다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굳은 어깨가 늘어졌다.
“정말 몰라? 넌 이미 내 인생을 망쳤어. 너 없이 난 허깨비나 마찬가지야. 산송장이나 다름없다고! 이것 봐, 넌 아직도 나를 몰라. 내가 원하는 걸 모르고 나한테 네가 대체 뭔지도 몰라! 그러니까 날 위해 떠난다느니 하는 짓거리나 해서 날 환장하게 하는 거야!”
그는 저도 모르게 분노를 토해 냈다. 그녀가 떠난 뒤 겪었던 피가 마르는 고통과 배신감이 되살아났다. 그러자 뼈마디 마디에 맺힌 울분이 거름망 없이 고스란히 여자에게 쏟아졌다.
“…….”
바짝 갈라진 여자의 입술이 울음을 머금은 채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원래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오는 길 내내 화내지 말아야지, 오히려 위로해 주고 보듬어 줘야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는 순간 이성은 하얗게 날아가 버리고 폭주 기관차 같은 애증이 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왜 넌 날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가. 널 보고 있으면 미친놈처럼 가슴이 벌떡벌떡 뛴다. 밉고 화가 나서. 하지만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시 널 갖고 싶어서.
널 갖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네 마음에 단 한 번 닿는 것만으로도, 아니, 스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이제 그 정도론 절대 만족할 수 없다. 네가 그렇게 만들었다. 네가 나를 이토록, 이토록 깊게 뜨겁게 만들었다. 이젠 나는 널…!
다시 그녀를 제 품 속 깊은 곳에 집어넣자 여자가 버르적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놈의 고집은! 좀 가만있어!”
호시는 여자의 엉덩이를 팡 때렸다. 손에 닿는 그 귀여운 살집이 말도 못 하게 그의 애를 태웠다. 여자가 몸부림을 칠수록 그의 아랫도리는 터질 듯 일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그를 흥분시켜 놓고 입으로는 화를 돋웠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싫어요!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똑같아요? 당신은 이기적이야! 당신은 늘 당신만 생각해! 당신만 힘들고 당신만 괴로워! 나는 좋아서, 좋아서 당신을 떠난 줄 알아요? 내 가슴이 얼마나 문드러졌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요?”
“이 바보가! 너한테 오려고 내가 차장한테 몇 번이나 머리를 굽신거렸는지나 알아? 겨우겨우 휴가 얻어서 미친놈처럼 날아왔더니 한다는 말이 고작!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넌 어쩜 그렇게 티를 안 내? 왜 나한테 전혀 틈을 안 줘? 왜 날 의지하지 않아? 왜 날 믿지 않냐고?”
그녀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원망스레 그를 흘겨볼 뿐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기무라 그 새끼가 널 협박했다는 얘긴 왜 안 했어? 넌 내가 그 새끼 하나 어떻게 못 할 것 같았어? 내가 고작 그런 새끼에 벌벌 떨면서 내 마누라를 내놓을 줄 알았냐고!”
“하, 하지만 내가 그런 데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당신은… 나, 난 당신을 위해서….”
“네 정혼자가 다른 여자 생겼다는 얘기는 왜 안 했어! 아주 조금이라도, 티라도 좀 냈으면 좋았잖아! 그랬으면… 그랬으면… 넌 대체… 무슨 여자가 이렇게 지독해! 박순애! 넌 정말… 정말 치가 떨려!”
순애는 온몸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음을 문 채 야속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 시뻘겋게 핏발이 선 호시 역시 이미 터질 대로 터진 상태였다. 그는 벗어던진 제 외투를 잡아끌더니 그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봉투 하나를 꺼내 여자의 앞에 내던졌다. 봉투를 흘낏 본 순애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이건 또 뭐야! 이건 대체 뭐냐고! 이혼? 아주 가지가지 해! 아주 사람 환장할 짓은 다 골라서 한다고! 겁도 없이 이런 짓을 해 놓고 어디서 큰 소리야?”
순애가 몸을 움츠리며 파르르 떨었다. 그의 서명을 위조해 제멋대로 이혼 신청을 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제 잘못이었다. 그것만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혼? 그래, 이혼하면? 그럼 다 끝날 줄 알았어? 내가 널 잊을 줄 알았어? 널 놔줄 줄 알았어?”
“…….”
“그럼 넌 날 잊을 수 있어? 넌 그럴 수 있냐고?”
분이 오른 호시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자 순애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대체 저건 뭐야! 결혼사진은 왜 가져갔어! 결혼반지는 왜 아직 끼고 있고?”
호시가 그녀의 초라한 앉은뱅이 상 위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더니 그녀의 왼손을 왈칵 쥐어 잡았다.
“잊지도 못할 거면서… 잊지도 못할 거면서 이런 짓거리를 해? 너 정말… 어디서 그런 못된 건 배워서… 어디서 감히 이혼은 이혼이야! 누구 인생 망치려고… 어디 네 멋대로 날 이혼남을 만들어!”
결국 순애의 흐느낌이 봇물 터지듯 터졌다. 그녀는 남자에게 한 손을 붙들린 채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호시가 그런 그녀를 덥석 안아 정신없이 순애의 볼에 제 얼굴을 비볐다.
“넌 정말…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해… 내가 원하는 건 우리가 같이 있는 것뿐인데… 그걸 위해서라면 난 뭐든 할 수 있는데… 네가 기무라 그 새끼를 다시 보기 싫다면 내가 다른 부처를 지원할게. 네가 타향살이가 힘들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일을 찾을게. 네가 혼자 외로웠다면 내가 네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남편도 될게. 네 모국어도 배울게.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난… 난… 순애야….”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모두 그를 위해서였음을. 그런 그녀의 가슴 역시 저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썩어 문드러졌을 것을.
그는 제 품에 든 여자를 으스러지라 안았다. 여자의 보고 싶었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고, 그리웠다고, 그 한마디면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 울기만 했다.
‘바보… 네 말 한마디면 나는 그냥 녹아버릴 텐데… 바보….’
여자의 존재가 호시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왔다.
누구보다도 밉고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내 아내, 내 사랑. 어느새 남자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떨어져 뺨을 타고 조용히 흘렀다.
그의 품에서 서럽게 울던 순애가 꺽꺽 울음을 삼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나… 이제 알아요…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순간 남자의 몸이 살짝 굳었다.
“읽었어요. 당신이 제출한 혼인 경위서….”
호시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더니 말을 제대로 빚어내지 못하고 힘없이 달싹였다.
“너….”
순애가 코를 훌쩍이며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을 닦아 내더니 아직 눈물에 젖은 말간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나 이제 당신 마음 알아요. 다 알아요. 당신 날 끔찍이 사랑하잖아요.”
그는 허를 찔린 듯 말문이 탁 막혔다. 그 눈빛이었다. 처음 우동집에서 그녀를 관찰하다가 마주쳤던 눈빛. 그때도 그는 저 눈빛에 허를 찔린 듯 말문을 잃었었다. 남자가 귓가를 붉히며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부정할 생각 말아요. 다 아니까.”
“부정할 생각 없어.”
남자의 무뚝뚝한 항복을 확인한 여자가 그제야 작게 웃더니 그제야 그의 품에 폭 안겨 왔다. 구름사탕처럼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몸이 달큼한 향기를 풍기며 그의 귓가에 꿈결처럼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 작은 속삭임이 대체 뭐라고. 어찌할 수 없는 행복감이 그의 전신에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그 아찔한 감각에 호시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도대체 이 여자를 당해 낼 수 없었다. 그에게 댈 수도 없이 작고 가냘픈 데다 그보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이 여자를.
‘앞으로도 당할 수가 없겠지. 나는 평생 이 여자의 조그만 손바닥 안에서 놀게 될 것이다.’
근데 그게 왜 이리 행복할까. 왜 이리 마음이 흐뭇할까.
‘미친놈….’
그는 벅차오르는 행복감에 떨며 제 품 안의 여자를 쓰러뜨렸다.
“아, 으응….”
순애는 계속 신음이 흘러나오는 제 입을 두 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아래층 주인집이 신경 쓰였다. 아까 큰 소리 내고 싸운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이 소리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호시는 제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그녀에게 몰두해 있었다.
“저기… 아래층… 다 들려요….”
순애가 겨우 신음을 씹어 삼키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순애 역시 재회의 기쁨에 맘껏 취하고 싶었지만 이 허름하고 낡은 집이 얼마나 방음에 취약한지 제가 몇 번이나 경험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없이 그녀에게 몸을 짓쳐 대던 호시가 그러냐는 듯 눈썹을 살짝 까딱하더니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와락 덮었다. 위아래로 그가 제 몸 깊숙이 뱀처럼 파고들자 순애는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지경이었다.
“으으응…!”
속살을 찢어발기며 파고드는 남자가 연료라도 넣은 듯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다. 추진력을 얻은 그의 몽둥이가 더욱 세차게 날뛰며 순애를 난도질하자 그녀는 눈앞이 다 아찔했다. 마치 맹견의 날카로운 이빨에 꽉 물린 채 질질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호시의 입술을 콱 물고 말았다.
“읏…!”
호시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가 물고 있던 순애의 입술을 놓자 아랫입술에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아, 미, 미안….”
그녀의 말이 채 매듭지어지기도 전에 그가 순애의 새끼 제비처럼 작고 귀여운 입 안으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쑥 밀어 넣었다.
“…….”
잠시 그녀의 입술과 입 안을 지그시 문지르던 그의 눈에 사나운 욕망이 고였다. 그가 구석에 던져진 제 넥타이를 집어 들더니 그녀의 입에 단단히 재갈을 물렸다.
“으으읍….”
놀란 순애가 멈칫한 새에 그가 그녀를 성급히 뒤집어엎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얗고 둥근 엉덩이를 꽉 잡아 열더니 아주 깊숙이 제 몸을 밀어붙였다. 순애의 눈꺼풀이 파르르 경련했다. 남자는 그대로 제 몸을 사정없이 들이박았다. 꼭 사자의 발톱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제 몸이 그대로 관통당해 두 쪽이 날 것 같았다. 순애는 필사적으로 버르적거렸으나 그녀의 가는 허리를 움켜쥔 그의 움직임에는 한 점의 자비도 없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전기 드릴처럼 사정없이 그녀의 안을 깊이 긁어내고 헤집어 댔다. 그의 진동이 순애의 몸에 고스란히 옮아오자 그녀는 저를 어쩌지 못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흐읍! 으으읍!”
남자가 허리를 굽혀 단단한 젖꼭지를 거칠게 쥐자 순애는 아픔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아랫도리는 옴죽거리며 남자를 날름날름 뿌리까지 집어삼켰다. 호시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파였다.
‘널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얼마나 원망했던가. 너를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와 싸우던 밤… 너는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영영 모르겠지.’
투명한 체액으로 흠뻑 젖은 귀여운 엉덩이가 파들파들 떨며 저를 조여 댈 때마다 그대로 그사이에 얼굴을 박고 살점을 뜯어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남자의 눈빛이 새까맣게 번뜩이더니 그녀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비틀 듯이 꽉 쥐었다. 모세혈관을 터뜨릴 듯 강한 악력이었다.
“으흐… 응…!”
둔부의 통증에 순애가 그를 떨쳐 내듯 몸을 크게 부르르 떨자 순간 남자의 몸이 떨어졌다. 그사이 순애는 정신없이 기어 그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그 좁은 단칸방에 도망칠 데가 있을 리 없었다.
“어딜….”
남자가 뒤에서 그녀의 두 발목을 잡아 끌어당기자 그녀는 힘없이 질질 끌려갔다.
“으으읍…!”
다시 한번 뒤에서 충격이 밀려왔다.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고운 눈매에 어느새 눈물이 흠뻑 고였다.
“어딜 자꾸 도망가? 인제 보니 아주 못된 버릇이 들었어.”
“으으….”
“가만있어. 아주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지.”
여자의 가느다란 몸을 파고드는 남자의 몸짓이 더욱 거칠어졌다. 순애의 눈에서 눈물이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겨우 숨을 할딱할딱할 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러나 몸은 그의 리듬에 맞추어 쉼 없이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만큼이나 황홀했다. 제 몸 깊숙한 곳에 그가 섞이는 느낌이 기뻤다. 그가 마구 제 안에 쳐들어와 그의 영역인 듯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이 흐뭇했다. 그건 제가 그의 여자라는 인증이었다. 그의 여자. 마침내 그녀에게도 누군가의 것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평생 이름표를 갈망해 온 인생이었다. 부모를 다 잃고 험한 세상을 온몸으로 구르며 살았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귀속되고 싶었다. 단 한 뼘이라도 좋았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남들처럼 저만의 자리를 갖고 싶었다. 그녀도 이 풍진 세상에서 편히 몸을 부리고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모질게 인색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그 한 뼘을 쉽사리 내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애가 탔다. 조급해졌다. 그래서 몇 번 빵집 데이트를 한 게 다인 남자를 찾아 낯선 남의 나라까지 흘러들었다.
“하아… 순애야….”
그리고 이 남자를 만나고 비로소 사랑을 찾았다. 제 자리를 찾았다. 한 뼘은 웬걸, 같이 바라봤던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넉넉하고 넉넉한 품. 이제 그녀는 그 품 안에서 실컷 활개 칠 것이다. 마음껏 사랑하고 꿈꾸고 행복할 것이다.
“읏!”
순애가 있는 힘껏 안쪽을 조이자 호시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관자놀이에 파란 핏줄이 돋은 호시가 순애를 바로 눕히더니 재갈을 풀고는 그녀 입 안에 불쑥 제 남성을 들이밀었다. 놀란 순애의 몸이 순간 바짝 굳었다.
“벌 받아야지.”
그가 흠뻑 젖은 채 펄펄 살아 날뛰는 시뻘건 짐승을 그녀의 입 안에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으응….”
순애의 작은 입술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남자가 더 몸을 깊숙이 부리자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차고 넘친 물건이 입안 깊숙한 곳을 찔렀다.
“으….”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그녀가 겨우 혀를 살짝 움직이자 남자가 경련했다.
“흐… 하아….”
호시의 입술이 살짝 열리더니 그의 고개가 젖혔다. 순애의 긴장된 입가가 풀어지더니 살살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직 어설펐다. 하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서투름이 오히려 남자의 쾌감을 증폭시켰다. 순애가 그 커다란 이물질을 더 강하게 할짝대자 호시의 잇새로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큿….”
“여자를 찢어발기던 그 사나운 맹수는 순식간에 그녀의 충성스러운 애완견으로 전락했다. 여자의 애무에 애완견이 꼬리를 치며 좋다고 재주를 부렸다.
“하앗… 순애야….”
더는 참을 수 없어진 남자가 제 몸을 빼내더니 그녀 위에 무너지듯 다시 몸을 겹쳐 왔다. 또 틀렸다. 오늘 밤, 저를 버리고 간 여자가 제 밑에서 발발거리며 울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저 작은 머리통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저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흐트러지는 건 오히려 그였다. 정신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매달리는 것도 그였다.
“순애야… 여보… 내 사랑….”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 깊숙이 들어갔다. 여자가 몸을 벌려 그를 맞아들였다. 두 몸이 하나처럼 단단히 결합하자 두 사람의 입에서 그제야 나른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 여기가 그의 자리였다. 여기가 그녀의 자리였다. 순애의 투명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남자가 그녀에게 입 맞추었다.
“여보….”
여자가 사르르 눈을 감더니 저를 통째로 내주었다. 어느새 순애의 뺨에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대로 두 사람의 살이 섞이고 피가 섞이고 영혼이 섞였다.
호시는 순애를 끌어당겨 아직도 펄떡이는 제 다리 사이에 단단히 껴 넣었다. 순애는 아직도 할딱이고 있었고 온몸에 미열이 고여 따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말로 못 할 벅찬 여운에 잠겨 있었다.
“미안해요.”
한참 후에야 순애가 겨우 입을 뗐다.
“내 멋대로 당신 이혼남 만들어서.”
그제야 그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더니 몸을 일으켜 순애에게 내던진 봉투를 찾았다.
“이거 봐.”
호시가 순애 앞에 서류를 펴더니 의기양양하게 들이밀었다.
<귀하가 접수하신 이혼 신청 관련 처리 결과에 대해 안내해 드립니다. 귀하의 신청은 배우자의 불수리 사전 신청에 따라 기각되었음을….>
“!”
순애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던 호시가 싱긋 웃었다.
“내가 이래봬도 일류 법대 출신에 법무성 관료란 걸 잊었어? 혹시 몰라 미리 조치해 뒀지.”
“어, 어떻게…?”
“배우자의 일방적인 이혼 신청을 막기 위한 보완 장치로 불수리 신청이란 게 있어. 미리 그걸 해 두면 상대 혼자 이혼 서류를 제출해도 소용없어. 두 사람이 같이 신청해야만 이혼이 성립돼.”
순애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그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던가.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알겠어. 날 위해서 그랬다는 것도 알겠어. 하지만 부부는 한 몸 아니야? 우린 부부잖아. 당신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거 아니야. 더구나 이혼이라니,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마. 무슨 일이 있든 나하고 의논해 줘. 나를 믿고 따라와 줘.”
엄하고도 다정한 눈빛에 순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저는 그를 믿지 못한 것이다. 두려웠다. 고작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그가 먼저 저를 버릴까 봐. 그의 차가운 눈빛을 상상만 해도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이 얼어붙었다. 겁이 왈칵 났다. 그러느니 차라리 제가 먼저 그를 떠난 것이다.
“응. 응….”
순애가 몸을 잘게 떨며 흐느끼자 호시가 그녀를 꽉 끌어안고는 아기 달래듯 살살 달랬다.
“이 울보, 인제 그만 울어. 아까부터 계속 울잖아. 눈가 다 짓무르겠다. 자 어서, 착하지.”
호시가 순애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 손길이 부끄럽고도 기뻐서 순애는 훌쩍이다가도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나 내일모레까지 휴가야. 사실 좀 더 오래 쉬고 싶었지만 이것도 그나마 차장이 배려해 준 거야. 갑자기 낸 휴가니까.”
“응….”
“내일은 같이 어머님께 가서 인사드리자. 또 여기 일도 정리하고. 그리고 모레 같이 돌아가자.”
호시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엄마를 기억해 준 남편이 고맙고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사람들 얼굴을 볼 생각을 하자 조금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 물었다.
“이시다 상이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했어요?”
호시의 얼굴에 짓궂은 웃음이 슬쩍 떠올랐다. 그가 조금 입가를 씰룩이더니 미적미적 입을 열었다.
“당신 몸이 안 좋아서 시골 본가에 좀 쉬러 갔다고 했어.”
“그, 근데 그 웃음은 뭐예요?”
호시가 또 혼자 빙글빙글 웃더니 순애에게 다시 뜨거운 눈빛을 흘렸다.
“당신이 아이를 가졌다고 했거든.”
“네?”
“이시다 상이 당신 안색이 계속 안 좋았다고, 어디가 아픈 거냐고 하도 걱정해 대기에 어쩌다 말이 그렇게 나와 버렸어.”
순애는 당황한 나머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어요? 왜 괜히 그런 거짓말을….”
“어쩌긴 뭐 어째? 하나 만들어 가면 되지. 그럼 진짜가 되는 거 아냐? 그게 뭐가 어려워?”
“아, 아니….”
“싫어?”
순애의 말문이 탁 막혔다. 어떻게 당신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렇게 숨도 못 쉬게 단단히 휘어감아 놓고는. 이렇게 애간장이 녹게 만들어 놓고는. 이렇게 몸이 저밀 정도로 간절하게 만들어 놓고는. 게다가 당신과 나의 아이라니…. 순애는 신음을 끙, 삼켰다.
“시, 싫다기보단 그런 게 어떻게 맘대로… 하, 하늘이 점지해 주시는 건데….”
순애가 그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자 그런 그녀를 지그시 보고 있던 호시가 이젠 됐다는 듯 씩 웃었다.
“나만 믿고 따라오랬잖아.”
그가 다시 펄펄 끓는 장판 위로 여자를 쓰러뜨렸다.
‘아이고… 아무래도 내일 아침엔 아랫집 아줌마가 올라올 것 같네….’
순애는 새벽 댓바람부터 씨근덕거리며 쳐들어올 아줌마를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행복이 가득했다. 그녀는 제 다리 사이를 깊이 파고드는 남자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황홀이 눈을 감았다.
-마침-
각주
1) 유흥업소 여주인
2) 아이의 3,5,7세를 축하하는 행사
[금목서 향기]
발행일 2022년 2월 10일